대체 뭔 소리야?

아마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일


그녀는 그저 아이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온순한 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오후 그녀는 온순한 연상의 사촌 둘과 함께 밖에서 놀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기 역할인 그녀를 돌보는 척하는 놀이에 세 아이는 지나치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옹알이를 했고, 그들은 그녀의 매끈한 민머리에 리본을 매주고 그녀를 손수레에 태워 밀었는지 모른다. 용변이 급해졌을 때, 그녀는 어쩌면 양해를 구하고 손수레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는 대신 정말로 아기 역할을 충실히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바지에 실례를 했는지도 모른다. - P117

어쩌면 아기가 아니었던 아기는 아기였을 때처럼 우유 상자위로 올라가 창문으로 엄마와 이모를 쳐다봤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엄마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비닐 식탁보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서 이 이야기 속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들보다더 오래 살아남을 분홍색 멜맥 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자주 피우던 담배를 이모에게 내밀었을 것이고, 비닐장갑을 낀 채 염색약을 섞고 있던 이모는 그럴 때마다 담배를 받아 한 모금씩 빨아들였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와 이모가좋아했던 술이 담긴 납작한 술병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애들이 죽으면 안 되니‘ 술에 커피를 섞었을 것이다. - P118

그때 우유 상자가 기울어져 그 위에 있던 아이가 뒷문 옆 흙바닥에 내던져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바람에 아이의 오른쪽 무릎에자갈이 박혀 동그란 모양의 창백하고 파란 상처가 생겼고, 아이는두 개의 점 근처에 생긴 그 상처를 보며 무릎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닐 식탁보를 어깨에 두르고 있던엄마가 한쪽 벽을 짙은 녹색으로 칠한 거실을 가로질러 전화기를향해 걸어갔을 가능성도 크다. 이모는 거기 그대로 앉아서 염색약그릇과 염색약을 바르던 도구를 내려놓았고, 덕분에 엄마가 전화를 받은 다음 ‘여보세요‘라고 말한 후 상대방의 말이 들리길 기다리는 동안, 장갑을 벗고 뒷문으로 나가 날카로운 돌 위로 넘어져통곡하고 있는 아이를 안아 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날 오후 이모는 바지에 실례를 한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가 무릎의 피가 멎었는데도 여전히 우는 이유를 몰라 아주 오랫동안 혼란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 - P119

아니, 그런 일이 있었던가? 아마도 커피가 여자들을 나른하게하고, 장미 덩굴 향기가 암모니아 냄새와 섞이고, 소녀들은 엄마인 척하고 엄마들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인 척하던 더운 여름날 오후에는 어쩌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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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읽기 시작~~

궤도 -1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가끔은 똑같은 꿈도 꾼다. 프랙털들과 파란 구체들과 어둠이 집어삼킨 낯익은 얼굴들의 꿈, 감각을 강타하는 밝고 활기찬 검은 우주의 꿈. 날것의 우주는 야생이자 원시의 검은 표범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선실을 활보하는 꿈을 꾼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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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페레 공항‘을 보고 이제는 헬싱키로 간다.
헬싱키는 바다에 면한 도시이다.
헬싱키 최고의 숙소는 에어비앤비...
작가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의 주인장 아리의 맛집 리스트는 나에게도 공유해주면 참 좋겠다.

˝7월의 헬싱키 날씨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워˝
덥지도, 춥지도 않고 화창한 날씨에 쾌청한 공기...
황홀하고 완벽한 날씨가 선사하는 반짝임을 만끽하며 헬싱키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여름엔 북유럽의 핀란드로 여행을 가야하나보다.
트램을 타고 에스플라나디 공원을 산책하고 핀란드 디자인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구경하거나 미술관, 박물관을 둘러보는 이런 코스가 걷거나 트램을 타고 모두 할 수 있다는게 너무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민을 빼놓을 순 없지~~^^*


에스플라나디 거리의 명품 매장 앞에 놓인 s 자 모양 벤치는 각자 s 자 모양의 둥글게 막힌 부분을 등받이 삼아 앉는 형태여서 서로 등을 맞대듯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단다. 신기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란 생각이 들어 그곳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상쾌한 공기, 미세먼지 따위 한 톨도 없는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신선한 볕을 즐길 수 있는, 즉 ‘완벽한 날씨‘를 기대할 수 있는 계절에 그곳에 넋놓고 앉아있는 두 사람...


세라믹 제품을 파는 아라비아 매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건 역시 무민이었다.
매년 그 해에만 출시되는 무민 라인 머그컵이 있는데 올해의 테마는 호랑이었다. 노란 호랑이의 등 위에 무민마마가 올라타고 있는 일러스트가 무척 귀여웠다.
- P253

대체, 무민은 왜 이렇게 좋을까?
무민을 처음 좋아하게 된 건 물론 무민의 하얗고 둥•글넓적한, 특유의 귀여운 생김새 때문이었지만 원작을읽고 나서 더 겉잡을 수 없이 무민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꽤 큰돈을 들여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전권을장만하게 되었다. 집 안에 마련해둔 내 작업실은 책상과 책장을 각각 평행한 벽에 붙여두었는데, 책장을 등지고 일하는 셈인 나는 그 이야기가 내 등 뒤에 있다는생각을 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마음이 지치고허할 때면 「무민 코믹 스트립을 손 가는 대로 집어 보약처럼 펼쳐보곤 한다.  - P254

무민, 무민마마, 무민파파, 리틀 미이 등 무민 골짜기의 캐릭터들은 이미 유명하지만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들도 많다. 악당 중의 악당 스팅키,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교적인 녀석들인 니블링 같은 캐릭터들 말이다. 겨울 스포츠 중독자인 브리스크, 정신과사인 닥터해터 같은 캐릭터도 있고 이름이 따로 없는그냥 시인, 독재자, 고양이, 호랑이, 경찰서장, 등대지기도 있다. - P254

‘아카데미아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카테미넨 서점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서점으로, 스토크만 백화점 별관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아카테미넨 서점이 스토크만 백화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깨닫고 엄청 놀랐다.  - P255

나는 여행하면서 서점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는데비록 읽을 수 없는 언어더라도 소설 코너와 사회학 코너를 살펴보곤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책 한권을 산다. 뜻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언어와 문장이 들어 있는 좋은 기념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뭘 살까 고민하다 「핀란드인의 악몽」새 시리즈를 하나 샀다. 이번 시리즈는 내향형 핀란드인을 보여주는 핀란드 속담을 다룬 책이었다. 예진이느 아이들에게 줄 어린이용 무민 그림책을 샀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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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와 친구 예진의 15 년 만의 리유니언 핀란드 여행의 시작은 교환학생으로 와서 6 개월 간 머물렀던 쿠오피오이다. 쿠오피오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핀란드의 중남부 지방에 위치한다. 짧은 기간 머물렀었지만 추억이 잔뜩 서린 대학도시를 방문하고 그시절의 친구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그 시절의 친구가 아직 그 도시에 남아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도시가 탐페레이다(지도를 보니 핀란드의 남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고 쿠오피오보다 더 남쪽이다).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되었던 <탐페레 공항>을 가기 위해서였다. 단편 <탐페레 공항>을 쓸 당시 작가는 그 작은 공항을 가본 적이 없었고 친구 예진의 이야기를 듣고 단편을 구상했다고 한다. 여러번 다시 쓰고 다시 또 고치고 하면서 여러 문학상에 출품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실망을 거듭했었는데, 마침내 첫 단편집의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이 되었고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하는 작품이 되었다. 상상으로 그려낸 공항의 이미지와 실제 공항의 모습이 놀랍게도 마치 공항을 실제로 보고 썼던 것처럼 서로 교차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친구의 작품을 읽고 작품 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메고 와 셔터를 눌러주는 그 마음, 또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감동을 위해 친구의 작품집을 짠~~ 하고 캐리어에 챙겨 넣어온 그 마음... 작가의 친구 예진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하다. 입가에 내내 미소가 머문다.


<탐페레 공항>은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단편집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내 방엔 없는데 다락방 서가에 있으려나...




택시가 탐페레 공항 앞에 도착했고, 기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머무를 거냐고 물었다. 오래 기다려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30분이라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공항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 P209

공항이라기보다는 버스터미널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규모의 1층 건물. 마침내, 내 눈앞에 탐페레 공항이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 소설 쓰기의 매력에 빠졌을무렵 미완성의 한글파일을 열어두고 구글맵으로 이리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보고 또 봤던, 그 공항이.
공항 앞 주차장에는 오가는 차량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평생 꽤 많은 공항을 다녀봤고 이것보다 더작은 공항에 가본 적도 한두 번은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공항에 와본 건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예 없었다. 나와 예진이, 그리고 공항 앞 나무 벤치에 앉아 대기 중인 택시기사뿐이었다. - P209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이걸 이고 지고 왔지."
예진이가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DSLR 카메라를 꺼냈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대체 이 무거운 걸 왜 가져왔느냐 묻자,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 앞에서 나를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DSLR로 제대로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 P210

"작가님, 여기 서봐요."
나는 예진이가 시키는 대로 공항 건물 앞에 섰고 예진이가 셔터를 눌렀다. 나도 예진이의 카메라를 건네받아 예진이를 찍어주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소설 속 진ㅇ면이랑 완전히 똑같아졋ㅇㅅ다. - P210

‘나 진짜 탐페레 공항에 와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누구에게인지 모를 자랑을했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 조금 더 걸어 입구로 다가갔다. 비행기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자동문이 양옆으로움직이며 스르륵 열렸다. 드디어 탐페레 공항 안으로들어설 수 있었다. 전면의 벽이 전부 유리였고 그 너머밝은 하늘과 활주로가 보였다. 안쪽 역시, 정말 작다! - P211

소설을 쓸 당시에는 건물의 외관만 구글맵으로 참고했을 뿐, 공항 내부는 내가 상상해서 묘사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려보았던 것과 정말 비슷했다.
백야의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통유리창, 보안검색대등 출입국 수속 시설 등을 제외하면 카페 겸 레스토랑하나와 키오스크 몇 대가 전부였다.
그 모든 것들이 닫혀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마저 소설과 똑같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느라 새벽 시간에 도착했다는 설정이라서 아무도 없는 공항을 묘사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서 있는 이곳 역시 소설 속 탐페레 공항처럼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 건물 전체에 직원이며 손님이며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치 이곳은 소설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항 혹은 촬영용 세트장 같았다. - P211

내가 예진이의 말을 곱씹는 동안 예진이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또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짠, 이것도 가져왔지."
"미치겠다."
웃음이 터졌다.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이 실린 내소설집까지 야무지게 챙겨온 거였다. 예진이의 짐이 오버차지될 뻔한 이유가 다 있었다. 같은 계획형이라지만 체력이 있는 계획형과 없는 계획형의 짐 싸기 방식은 조금 달랐다. 체력이 있는 쪽은 잠시라도 필요한건 일단 다 싸가고 본다. 체력이 부족한 쪽은 무거운 짐, 부피가 큰 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해 보이는 건 다 챙기되 실제로 쓸 만큼만 계산해서 챙겨온다. - P213

그런데 예진이는 이미 읽은 책, 읽지도 않을 책을 단지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챙겨왔다. 게다가 인터넷서점에서 사은품으로 준 책 표지를 입힌 무지 노트는 왜 챙겨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노트는 대체 왜.....?"
"음, 나 여기다가 일기? 같은 거? 쓸까 하고......."
그 말을 할 때 예진이 얼굴에 떠오른 머쓱한 미소가 말해주듯, 당연히 일기는 단 한 자도 쓰지 않았고, 무거운 무지 노트는 그 상태 그대로 새것인 채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하는 예진이의 표정과 그걸 귀여워하고 아끼는 내 마음을 꼭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싶다고 생각했다. - P214

넌 일기 같은 거 쓰지 마. 내가 써줄게.
나도 일기를 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겨줄게.
나만의 방식으로,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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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세번째 단편인 <셰리>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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