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러일 전쟁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마쓰가에 기요아키(松)는 가장 친한 친구 혼다 시게쿠니(本多繁邦)에게 그때가 잘 기억나느냐고 물어봤지만, 시게쿠니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제등 행렬을 보러 문 앞까지 따라 나간 일을 어렴풋이 기억할 따름이었다.  - P7

 그 전쟁이 끝나던 해 둘 다 열한 살이었으니 좀 더 선명히 기억할 법도 하다고 기요아키는 생각했다. 의기양양하게 그때를 떠벌리는 급우는 아마도 어른들에게 얻어들은 것을 고스란히 받아 옮겨서는, 저에게는 있는둥 마는 둥 한 기억을 꾸며 내고 있을 뿐이었다. - P7

마쓰가에 가문에서는 기요아키의 숙부 둘이 그때 전사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두 아들 덕에 유족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그 돈은 쓰지 않고 제단에 그대로 올려 둔다. - P7

세피아 잉크로 인쇄된 그 사진은 여느 잡다한 전쟁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 구도가 이상할 정도로 회화적인데 수천 명의병사가 어떻게 봐도 그림 속 인물처럼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는 데다, 맨나무로 만든 중앙의 높은 묘표(墓標) 하나에 모든효과가 집중되어 있다. - P8

멀리 보이는 풍경은 희미한 형태의 완만한 산들로 왼편으로는 너르고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을 펼치며 서서히 높아지지만, 오른쪽 저편은 성기고 작은 수풀과 함께 흙먼지 낀 지평선 쪽으로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산 대신에 차츰 오른쪽으로 높아지는 가로수들 사이로 노란 하늘을 내비치고 있다. - P8

가까이에는 도합 여섯 그루의 무척이나 키 큰 나무들이 저마다 균형을 지키며 딱 좋을 만큼 간격을 두고 치솟아 있다.수종(樹種)은 모르지만 우뚝이
 서서 우듬지의 우거진 나뭇잎을 비장하게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P8

화면의 정중앙에 맨나무 묘표와 흰 천을 
휘날리는 제단,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꽃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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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가울 수가..! 여기서 올리브 키터리지의 소식을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올리브는 여전히 메이플트리 아파트에서 이저벨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다. 아직 살아있다. 그게 왜 이리 눈물
나게 감사하고 반가운 건지...

루시와 윌리엄은 팬데믹 기간 중에 메인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록다운 상태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문장들 하나하나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
혹 가족 중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고 있다. 소설이니까 이런 정도라면 이걸 재밌다고 해야하는데 그런 마음은 안들고 이 상황이 마치 실제인 듯 느껴져서 만일 누구 하나라도 안좋은 일이 생긴다면 기분이 너무 다운될 거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가 얼마나 큰 두려움 속에 빠져 있었는지 생생히 기억나서 스트라우트의 문장이 더 와닿는다.






그리고 샬린에게 내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어떤 식으로요?" 그래서 나는,
음. 뭔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샬린은 귀기울여 듣는 것처럼 고개를 내 쪽으로 약간 숙였고, 이어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아요."
"당신도요?"
"네, 나도 그래요. 그리고 나는 혼자 살고 다른 사람을 볼 기회가 정말로 많지 않아서, 심지어 더 걱정스러워요." - P240

그래서 우리는 그것, 정신이 흐려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나누었고, 이어 메이플트리 아파트에서 그녀가 청소를 해준그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부인은 정말로 안됐어요." 샬린이 말했다.
 "그녀에게 이저벨이라는 친구가 있지만, 이저벨은 다리 건너로 가야 해서, 이제 올리브는 실의에 빠진 것 같아요." - P240

"다리 건너라니, 무슨 뜻이에요?" 내가 물었고, 샬린은 그곳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다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라고 설명했다. 거기는 요양원과 비슷하고, 그리로 가려면 말 그대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고. 그래서 그 상황을 ‘다리 건너로 간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 P240

"이저벨은 왜 다리를 건너가야 해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샬린은 이저벨이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고, 재활치료원에서 나왔을 때는 다시 혼자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슬픈 일이죠." 샬린이 말했다. - P241

우리는 아주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고, 이어 샬린이 말했다. "하지만 올리브가 날마다 그녀를 보러 가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올리브가 이저벨의 방으로 가서 매일 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읽어준대요."
"오, 대단하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샬린이 말했다. "그렇죠."
우리는 그날로부터 두번째 금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 P241

나는 당시에 내가 늙었다고, 윌리엄은 심지어 더 늙었다고 느꼈다. 우리의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고, 윌리엄이 먼저 죽을 것이라는, 그러고 나면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라는 생생한 두려움을 느꼈다. - P245

나도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이 타운 출신 사람들보다 분명 더 부유하다는 것을 알아볼 만큼
 이제는 세상을 충분히 경험했는데, 그런데도 그들은 여기 와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돈이란 것이 이런 종류의 일에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물론 전에도 알았지만- 드는 것이다. - P248

나는 내가 봐서는 안 되는 개인적인 공포를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윌리엄이나 심지어 밥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여인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고통. 그녀의 공포. 우리가 뭔가를 기억한다는 건, 심지어 더이상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기억한다는 건 흥미롭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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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있었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루시 바턴 시리즈 세 권(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 무엇이든 가능하다)을 다 읽었으므로 나는 약간 새삼스러운데 또 새로운 기분이다. 이런 시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편과 이어지듯 시작할 줄
알았는데 .. 아니어도 좋고 또 새롭다!
시작부터 재밌다.




하나
1

다른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것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과학자고, 그것이 오는 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먼저 보았다는 것,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 P11

윌리엄은 내 첫 남편이다. 우리는 결혼해서 이십 년을 같이 살았고, 또 그만큼 오래 이혼한 채로 지냈다. 우리는 친구 같고, 나는 그를 이따금 만났다. 우리 둘 다, 우리가 결혼하고 처음 살았던 뉴욕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두번째) 남편이 죽고 그의 (세
번째) 아나가 그를 떠났기 때문에, 지난해에 나는
그를 좀 더 자주 만났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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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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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편만큼의 사나움은 사라진 그의 글에서 세월을 실감하게 되는데... 거기서 우러난 내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뉴욕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비비언 고닉이고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있지만 이 사람의 글은 남아서 나도 재독, 삼독 하고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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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어떤 문장을 보고 전율을 느끼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선사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면 실로 그 문장은 평소 당신이 간직하고 있던 생각을 완벽하게 대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의 이 문장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다.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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