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문학 외에 역사, 사회과학, 총류 등으로 분류되는 책들을 읽다가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니
심적으로 몹시 편안하다.
헤밍웨이 소설은 오래 전에 여러 권 읽었었다.
한 작가의 책을 한번에 몰아서 읽고 나면 다시 그 작가의 책을 읽게 되기까지 시간이 길어진다.
이상하게 다시 들게 되지가 않는다.
헤밍웨이의 책을 읽은 것도 너무 오래 전이지만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단편이어서 선뜻 구매를 할 수 있었다.
책을 펼치면 헤밍웨이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이 먼저 나온다. 읽어보니 내가 작가는 아닐지라도
공감이 된다. 최상의 경우일지라도...
˝글을 쓴다는 것은 최상의 경우일지라도 고독한 삶입니다. 작가들을 위한 조직체는 작가의 고독을
덜어 줍니다만, 그것이 작가의 창작을 진작시켜 줄지는 의문입니다. (중략) 작가는 혼자서 작업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그가 훌륭한 작가라면 그는
날마다 영원성 또는 영원성의 부재를 직면해야 합니다.˝
전체 142쪽의 아주 작은 책인데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깨끗하고 밝은 곳‘, ‘살인자들‘, ‘병사의 집‘, ‘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 등의 단편인데 앞의 세 편은 10-20여 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이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오래 전 읽었지만 역시 기억나지는 않았는데 읽다보니 읽었다는 것을
알겠더라는...
크레브스는 길 건너편을 지나다니는 아가씨들이 마음에들었다. 프랑스나 독일 아가씨들보다 그들의 모습이 한결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여자들이 사는 세계는 자신이 사는 세계와 달랐다. 그는 아가씨 중 한 사람과 사귀고 싶었다. 그러나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다. 아가씨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귀찮게 말을 걸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어느 한 아가씨를 몹시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을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부질없고 가치 없는 짓이었다. 일이 다시 잘되어 나가고 있는 지금에야 더더욱 쓸데없는 짓이었다. -‘병사의 집‘ 중에서 - P38
이제 모든 게 끝났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그에겐 그것을 끝맺을 기회가 영영 없을 것이다. 술한잔 마시는 것을두고 시비를 하다가 이렇게 끝나 버릴 것이었다. 오른쪽 다리에 괴저(壞疽)가 발생한 뒤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고통과 더불어 공포감까지도 사라져, 지금 느끼는 것이라곤오직 격심한 피로감과 이렇게 끝나는 것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호기심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죽음은 강박 관넘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심한 피로감이 죽음을 이렇게 쉬운것으로 만들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 P51
잠시 뒤 비행기의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굉장히 많이 쏟아져 마치 폭포 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곳을 빠져나오자 콤프턴은 뒤를돌아보면서 싱긋 웃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전 세계처럼 폭이 넓은 데다 거대하고 높이 솟아 있으며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반짝이는 킬리만자로의 네모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지금 가는 곳이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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