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평점 :
작가 케이틀린 오코넬은 30 년 이상 코끼리 연구에 매진한 코끼리 연구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도 그래서 코끼리인 경우가 많지만 1장부터 10장까지 읽다보면 코끼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종이 등장을 한다. 코끼리, 홍학, 늑대, 사자, 얼룩말, 그리고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야생 조류 등의 행동 양식이나 행동 패턴들이 우리 인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놀라곤 한다.
1장 인사 의례부터 마지막 장(10장) 여행 의례까지의 모든 의례들이 사실은 동물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행동 양식이 아니라 인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동물들의 행동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고도 아무 의미없는 행동일 것이라고 치부하고 그저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불과 몇 분 전, 아니면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난 동료 사이인데 몇 년 만에 만나는 사이이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고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코끼리들의 모습을 읽으면서부터 동물들의 세계로 훅 빨려들어가듯 계속 책을 읽게 된다. 읽으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을 덤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인간 세상을 읽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의 '차례'를 살펴보면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1장 인사가 중요한 이유_인사 의례, 2장 집단이 발휘하는 힘_집단 의례, 3장 색다른 매력 뽐내기 _ 구애 의례, 4장 보석, 꽃, 죽은 새 선물 _ 선물의례, 5장 으르렁거리며 전하고 싶은 말 _ 소리 의례, 6장 자세, 몸짓, 표정의 무게 _ 무언 의례, 7장 놀이로 배우는 생존 기술 _ 놀이 의례, 8장 함께 애도하면서 치유하기 _ 애도 의례, 9장 새로운 시작과 자연의 리듬 _ 회복 의례, 10장 우리 자신을 되찾는 여행 _ 여행 의례
각각의 장에서 의례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집단의 의미있는 모든 '생활양식'을 '의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의례를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의례를 넓은 의미로 종교, 숭배, 영적인 관습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정확한 절차에 따라 자주 되풀이하는 공적인 행동은 모두 의례다. 차례대로 이어지는 행동들도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의례는 요가의 태양 예배 자세를 반복하며 매일 연습하는 일처럼 간단할 수도 있고, 금요일 저녁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일처럼 복잡할 수도 있다. 침팬지의 돌 던지기처럼 평범한 행동에 의미가 깃들면 의례가 된다. 각각의 행동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전체가 되면 의미를 얻는다."(27)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평소에 행하는 의미있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넓은 의미의 '의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사 의례가 될 수 있고, "신입생 환영회나 신병 훈련소 입소 같은 의례"도 극심한 불안과 공포심을 동반하지만 집단 의례가 될 수 있다. 웃음이 나지만... 서로의 매력을 어필하고 구혼을 하고 결혼에 이르는 의식적 무의식적 과정도 일종의 의례가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교우 관계를 넓히는 일련의 과정들도 의례에 포함이 될 것이고 경,조사에 참여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들도 당연히 의례가 된다.
코끼리의 장례식 의례도 책의 제목이니만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우리 인간이 행하는 장례식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깊은 애도의 의례를 보여주고 있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동물 무리에 탄저병이 돌았을 때 죽은 친척을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와 한동안 머물다 가기도 하고, 야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는 동물원의 코끼리는 죽은 동료의 옆에서 서로 번갈아 지키며 흙으로 덮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자들은 죽은 코끼리 앞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코끼리들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코끼리들이 죽은 친척을 찾아가는 행위는 인간의 장례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여정은 때때로 충돌을 겪게 된다.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들은 먹이와 물을 찾아 생존을 위한 여행을 한다. 인간도 경작지를 늘려 수확물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동물과 강을 공유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기도 하고 개체 수가 급감하기도 한다. 다행히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작가가 처음 코끼리의 개체 수를 조사하던 30 년 전과 비교해보면 서식지는 별 차이가 없지만 개체 수는 훨씬 늘어나고 있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울타리 등이 설치되어 충돌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였다. 또 국립 공원으로 지정이 되면서 많은 동물이 멸종 위기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동물의 수가 줄어들고 동물이 없다면 우리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중요하듯 동물들의 의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삶을 지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을 가진 우리 "인간의 책임감은 특별히 중요"하다는 작가의 설명은 시의적절하다.
"인간은 코끼리, 고래, 늑대를 비롯한 의식이 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적어도, 인간이 유전자의 50퍼센트를 바나나와 공유한다는 사실보다는 명백하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힘이 있다. 이 행성 위의 서식지와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력은 허리케인과 홍수, 들불, 질병에서 볼 수 있듯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의 책임감은 특별히 중요해졌다. 자연 재해든 인재든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동물과 서식지를 구하기로 결심하면 우리 자신도 구원할 수 있다."(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