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아름답다.
책 속에선 여자들이 모두 ‘그‘로 지칭된다.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살던 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엄마! 엄마에 대한 이야기,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엄마와 이웃들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런 장소가 있지 않을까?
나도 결혼하고 아파트 분양 받고 와서 살던 용인 수지의 복도식 작은 아파트 언니, 동생들...
지금도 보고싶고 생각나는 사람들, 아직 만나는 동생네도 있고... 그 시절이 그리운건 나뿐일까?

근데...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이라니..
어쩜 이런 표현 너무너무너무 멋지잖아.,ㅠ
놓쳐도 되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
이 작품 여자 사람이 쓴거 맞죠?!











그 다세대 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이었고 내가기억하는 건 오직 여자들만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살던 남자는 단 한 명도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었고 아빠였고 아들이었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떠올릴 때마다 여자들만기억난다. 그곳 여자들 모두가 드러커 아줌마처럼 상스럽거나 우리 엄마처럼 외고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법이 없었고넘어온 삶의 고개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행동만 보면 세상사를 다 꿰고 있는 듯했다.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하고, 시어도어 드라이저 (19세기 미국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연주의 소설가로 이민자와 빈곤층의 삶에 주목했다)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잠시 평화로워보이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충격적이고야만스러운 사건들이 터졌고 그 와중에 두세 명의 삶은 상처로 얼룩지고(어쩌면 몰락해버리고) 다시금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또다시 울적한 고요함, 관능만 남은 무기력, 부정이 만들어내는 평정의 나날들이이어졌다.
 나라는 여자애는 그들 한가운데서 자라고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얼굴을 덮은천의 클로로포름을 빨아들이듯 나는 그 여자들을
빨아 들였다. 무려 30년이 흐른 후에야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 P7

세사는 참 예쁘장하고 젊은 새댁이었어. 결혼한 지2년도 안 되었다고 했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럭저럭 착실한남자였거든. 내가 아는 건, 남편을 안 사랑했고 매일 - P9

뻔질나게 외출을 했다는 거. 아마 따로 애인이 있었던모양이야. 엉덩이까지 찰랑찰랑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눈에 확 띄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머릴 싹둑 자르고나타난 거야. 세련된 도시 여자가 되고 싶었나 봐. 남편은 아무 말 없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집에 오더니 깎은머리를 보고 냅다 뺨을 갈겨버린 거야. 너무 아프고어안이 벙벙해서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보일 정도였대.
그러곤 사위를 시켜 한 달 동안 집에 가둬버리라고했다나. 세사는 비상계단을 타고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우리 현관으로 나갔지 뭐. 한 달 동안 매일매일 말이야.
한번은 우리 집 부엌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어.
 ‘세사, 친정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해. 우린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자유가 있다고 세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그러더라. ‘네? 그게 무슨말이에요? 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하라고요?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양반이에요‘" - P10

내가 볼 때 이 아파트의 재미는 우리 집 부엌에도있었고 창문 밖의 다양한 삶에도 있었다. 그 재미란 진정 - P23

흥겹고 즐거운 것이었고 안과 밖의 대조되는 풍경 때문에더 고조되곤 했다. 이 부엌에서 나는 숙제를 한다. 옆에는 늘 엄마가 있고 나는 엄마가 하루를 준비하고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엄마는 살림을 쉽게 척척 해내는 기술이 있고 기운도 넘쳤지만 그걸 지긋지긋해하며 일체 언급하지않는다. 나에게도 집안일일랑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요리, 청소, 다림질을 배운 적이 없다. 엄마는 지루할정도로 능숙한 요리사였고, 맹렬한 청소부였으며, 악령들린 세탁부였다. - P24

엄마와 나는 온종일 그 부엌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는안뜰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사건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진 않았지만 놓치는 것도 없었다. 엄마는 모든 목소리를 들었고, 모든 움직임을 파악했으며, 침대보를 널고 걷는 소리를 들었고, 누가 누구를 부르고 무슨 대화를나누는지 재빨리 입력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엉터리 영어, 누군가의 경솔한 행동, 이쪽에서 나는 빽빽거리는 소리와 저쪽에서 나는 구성진 욕을 듣고 같이 웃곤 했다. 창문 바깥쪽 삶에 대한 엄마의 끊임없는 평가는 내가 처음으로 맛본 지성의 열매라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세간에 떠도는말을 정보로 변형시킬 줄 알았다. 한층 치솟은 목소리를들으면 이렇게 평가하곤 했다. "보나 마나 저 댁 오늘 - P24

아침에 남편하고 싸웠구먼." 한풀 잦아든 목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말한다. "저 집 애가 아프네." 엄마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눈치 싸움에 밝았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틀어졌는지도 대번에 파악했다. 엄마가 그 골목에서 일어나는 세상사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걸 듣고 있으면 인생은 조금 더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지고, 더 흥미로워졌다. 나는 우리 모녀와 창문 밖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곤 했다. - P25

그 부엌, 그 창문, 그 안뜰. 그것은 엄마가 뿌리를 내린대기였고 엄마가 서 있던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는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쳤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당신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했다.
"여편네들이란, 으이구!" 입버릇처럼 말했다. "빨랫줄 앞에 모여가지고 이 집 저집 욕이나 하고."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 P25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 P28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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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남극을 향해

인듀어런스 호의 상륙 예정지는 위해 동쪽의 바셀 만(灣)이었다. 하지만 배가 웨들해의 강한 해류에 휩쓸린다면 그들은 얼음과 더불어 서쪽의 파머 반도로 가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얼음에 둘러싸여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
그건 항해에 나선 섀클턴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12월 5일 아침에 사우스 조지아 섬을 출발한 인듀어런스 호는 이틀 뒤에 처음으로 부빙군을 만났다. 이후 6주 동안 배는 부빙군을 피해 멀리 돌기도 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밀고 나가기도 하며 조심스럽게 남쪽으로 내려갔다. 바다를 무려 250㎢나 뒤덮고 있는 엄청난 부빙군을 만난 적도 있었다. - P29

"얼음에 갇혔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여전히 단단함 길이 열릴 징후가 전혀 없음."
"물길이 다시 막혔음.".
"여전히 단단함."

3주 동안 대원들의 일기는 온통 이런 내용들로 채워졌다. 얼어붙은 부빙군을 바람이 쪼개줄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기대도 더 이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 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부빙군과 함께 표류했다. 섀클턴이 그톡록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기어이 현실로 닥치고 말았던
것이다. - P38

배는 육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그리고 겨울은 점점 더 다가왔다. 남극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과학자와 선원들은 남극 탐험을 함께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남극의 겨울을 함께 보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갔다." 섀클턴은 이렇게 적었다. "여름이 너무 짧았다…… 물개가 사라졌고 새들도 떠났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먼 수평선에 아직 육지가 보였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로 갈 수가 없다."

2월24일, 섀클턴은 항해 중단을 명령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음에 붙박힌 인듀어런스 호는 더 이상 배이기를 포기한 채 대원들의 월동기지가 되었다. 이제 좋건 싫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섀클턴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는 이번 탐험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 그리고 전쟁중인 유럽, 이번에 실패하면 남극 탐험에 나설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게 분명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탐험을 재개할 수도 있겠지만, 섀클턴은 날이 갈수록 그것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P38


조타수인 허버트 허드슨은 가장 가까운 송신기지가 있는 포클랜드로부터 무선 신호를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당시의 무선 기술은 그런 ‘기적‘ 을 허락하지 않았다. 탐험대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38

*3부 침몰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남극 겨울의 으스스한 고요와 기나긴 어둠이 주는 독특한 심리적 영향을 섀클턴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대원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쾌적한 숙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섀클턴은 맥니쉬를 시켜서 갑판 사이에 있는 창고를 선실로 개조했다. 3월 11일에 새로운 숙소로 거처를 옮긴 대원들은 그곳을 ‘리츠(고급 호텔 경영자 시저 리츠의 이름을 딴 것-역주)‘ 라고 불렀다. 대략 1.8mX1.5m 크기의 작은 선실마다 두명이 들어갔으며, 각각의 방에는 ‘빌라봉(물이 새지 않는 곳)‘, ‘앵커리지(은둔처)‘,  ‘세일러스 레스트(선원 휴게실)‘ 와 같은 다양한 이름들이 붙었다.

리츠는 따뜻했으며 아늑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크린, 와일드, 마츤, 워슬리는 리츠보다 훨씬 추운 일반 선원용 선실에 머물렀다. 섀클턴 역시 선장실에 그
대로 남았는데, 그곳은 인듀어런스 호에서 가장 추운 곳이었다. - P50

5월 1일, 태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앞으로 4개월 동안은 해를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대원들의 바깥 활동이 중단되면서 온갖 종류의 오락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새로운놀이를 하나 만들 때면 리츠 전체가 온통 시끌벅적하게 변하곤 했다. 5월말엔 모든 대원들이 겨울의 광기에 굴복하여 머리를 바짝 깎으며 야단법석을 떨었고, 헐리는 그 순간을사진에 담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극의 겨울밤은 대원들로 하여금 이 거친 세계로 모험을 떠난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얼어붙은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은 동화처럼 신비로웠고, 밤하늘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밝은 빛을 내뿜었다. 가끔은수평선 위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대원들의 일기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모습을 찾아볼수 있다. 매일매일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이 스트레스를 주긴 했지만 특별히 문제가될 만한 마찰이나 불화는 없었다. "서로 관심 분야가 다르고 대원 대부분의 개성이 뚜렷하며 생활방식도 달랐지만, 우리 모두는 이곳에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오들리는 일기에 적었다.
- P53

섀클턴은 규율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그의 말이 ‘명령‘ 이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늘 정했으며, 의복을 비롯한 모든 물품을 선발대나 고급 대원들보다 일반 대원들에게 먼저 배분했다. "일반 대원의 물품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라고 워슬리는 일기에 적었다. - P54

"배가 견딜 수 없을 거야, 선장."
작은 선실 안을 왔다갔다하던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아. 몇 개월이 될 수도 있고,
몇 주가 될 수도 있고, 단 며칠이 될 수도 있어.....…."

워슬리는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언젠가 이 배를 정말로 버려야 하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어쩌면 섀클턴보다도 훨씬 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섀클턴은 조만간 다가올 사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와일드 역시 같은 생각을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회의를 끝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 P58

그날 저녁, 갑판에 있던 몇몇 선원들이 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어디선가 황제 펭귄 8 마리가 배를 향해 조용히 다가왔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황제 펭귄들이 함께 몰려다니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다. 잠시 배를 바라보던 펭귄들은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섬뜩하고 기분 나쁜 소리로 길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불길한 통곡 소리였다." 워슬리는 이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치 펭귄들이 인듀어런스 호를 위해 장송곡을 부르는 것 같았다.
"저 소리 들었나?" 대원들 가운데 가장 미신적인 맥리오드가 낙담한 표정으로 맥클린에게 말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긴 틀렸어." - P75

10월 27일 오후 4시. 온종일 거세게 밀어닥치던 압력이 마침내 최고조에 달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며 쓰러지는 순간, 거대한 얼음이 키와 선미재를 맹수처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갑판이 부서져 나가고 용골이 쪼개졌다. 바닷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고, 마침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배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 P75

오후 5시, 섀클턴은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개들을 대피시키고 모든 물품들을 얼음 위로 내렸다. 갑판 위에서 있던 섀클턴은 떨어져 나간 엔진이 바닥에 구르는 것을 기관실 위창을 통해 말없이 지켜보았다.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섀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기록했다. "뱃사람에게 배는 바다에 떠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명을 지르고 부서지고 온 몸에 지독한상처를 입으면서, 인듀어런스 호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헐리는 이미 물에 잠긴 리츠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온갖소리들로 뒤범벅이 된 아수라장 속에서도 휴게실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리고 있었다. - P76

섀클턴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그는 인듀어런스 호의 푸른 함기를 높이 들어올렸고, 얼음 위의 대원들은 다들 그 깃발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인듀어런스 호의 붉은 비상등이 마지막 인사처럼 조용히 깜박거렸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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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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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케이틀린 오코넬은 30 년 이상 코끼리 연구에 매진한 코끼리 연구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도 그래서 코끼리인 경우가 많지만 1장부터 10장까지 읽다보면 코끼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종이 등장을 한다. 코끼리, 홍학, 늑대, 사자, 얼룩말, 그리고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야생 조류 등의 행동 양식이나 행동 패턴들이 우리 인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놀라곤 한다. 

  

 1장 인사 의례부터 마지막 장(10장) 여행 의례까지의 모든 의례들이 사실은 동물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행동 양식이 아니라 인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단지 우리가 동물들의 행동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고도 아무 의미없는 행동일 것이라고 치부하고 그저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불과 몇 분 전, 아니면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난 동료 사이인데 몇 년 만에 만나는 사이이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고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코끼리들의 모습을 읽으면서부터 동물들의 세계로 훅 빨려들어가듯 계속 책을 읽게 된다. 읽으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을 덤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인간 세상을 읽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의 '차례'를 살펴보면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1장 인사가 중요한 이유_인사 의례, 2장 집단이 발휘하는 힘_집단 의례, 3장 색다른 매력 뽐내기 _ 구애 의례, 4장 보석, 꽃, 죽은 새 선물 _ 선물의례, 5장 으르렁거리며 전하고 싶은 말 _ 소리 의례, 6장 자세, 몸짓, 표정의 무게 _ 무언 의례, 7장 놀이로 배우는 생존 기술 _ 놀이 의례, 8장 함께 애도하면서 치유하기 _ 애도 의례, 9장 새로운 시작과 자연의 리듬 _ 회복 의례, 10장 우리 자신을 되찾는 여행 _ 여행 의례


  각각의 장에서 의례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집단의 의미있는 모든 '생활양식'을 '의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의례를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의례를 넓은 의미로 종교, 숭배, 영적인 관습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정확한 절차에 따라 자주 되풀이하는 공적인 행동은 모두 의례다. 차례대로 이어지는 행동들도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의례는 요가의 태양 예배 자세를 반복하며 매일 연습하는 일처럼 간단할 수도 있고, 금요일 저녁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일처럼 복잡할 수도 있다. 침팬지의 돌 던지기처럼 평범한 행동에 의미가 깃들면 의례가 된다. 각각의 행동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전체가 되면 의미를 얻는다."(27)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평소에 행하는 의미있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넓은 의미의 '의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사 의례가 될 수 있고, "신입생 환영회나 신병 훈련소 입소 같은 의례"도 극심한 불안과 공포심을 동반하지만 집단 의례가 될 수 있다. 웃음이 나지만... 서로의 매력을 어필하고 구혼을 하고 결혼에 이르는 의식적 무의식적 과정도 일종의 의례가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교우 관계를 넓히는 일련의 과정들도 의례에 포함이 될 것이고 경,조사에 참여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들도 당연히 의례가 된다.


  코끼리의 장례식 의례도 책의 제목이니만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우리 인간이 행하는 장례식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깊은 애도의 의례를 보여주고 있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동물 무리에 탄저병이 돌았을 때 죽은 친척을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와 한동안 머물다 가기도 하고, 야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는 동물원의 코끼리는 죽은 동료의 옆에서 서로 번갈아 지키며 흙으로 덮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자들은 죽은 코끼리 앞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코끼리들의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코끼리들이 죽은 친척을 찾아가는 행위는 인간의 장례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여정은 때때로 충돌을 겪게 된다.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들은 먹이와 물을 찾아 생존을 위한 여행을 한다. 인간도 경작지를 늘려 수확물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동물과 강을 공유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기도 하고 개체 수가 급감하기도 한다. 다행히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작가가 처음 코끼리의 개체 수를 조사하던 30 년 전과 비교해보면 서식지는 별 차이가 없지만 개체 수는 훨씬 늘어나고 있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울타리 등이 설치되어 충돌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였다. 또 국립 공원으로 지정이 되면서 많은 동물이 멸종 위기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동물의 수가 줄어들고 동물이 없다면 우리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중요하듯 동물들의 의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삶을 지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을 가진 우리 "인간의 책임감은 특별히 중요"하다는 작가의 설명은 시의적절하다.


  "인간은 코끼리, 고래, 늑대를 비롯한 의식이 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적어도, 인간이 유전자의 50퍼센트를 바나나와 공유한다는 사실보다는 명백하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힘이 있다. 이 행성 위의 서식지와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력은 허리케인과 홍수, 들불, 질병에서 볼 수 있듯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의 책임감은 특별히 중요해졌다. 자연 재해든 인재든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동물과 서식지를 구하기로 결심하면 우리 자신도 구원할 수 있다."(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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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은하수 2023-03-13 18: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무척 설렜어요
그래서 얼른 사고 싶은 책도 질렀구요~~
서니데이님께서도 남은 시간 좋은 시간 되세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
BBC가 선정한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탐험가.
최고의 리더십 모델...

˝만일 당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
섀클런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찬사가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미션 성공이 아닌 인간 승리의 기록이 펼쳐질 것 같다.




1부 영웅시대

선장 프랭크 워슬리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남극의 한겨울인 7월. 기나긴 극지의밤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 34 도였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사방으로 펼쳐진 아득한 얼음뿐이었다. 사람들은 말을 멈추고 맹렬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얼음이 울부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워슬리와 다른 두 사람은 그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작은 배도 얼음소리에 놀라 온 몸을 떨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시작된 수백만 톤의 얼음 압력이 배를 향해 밀려올 때면 배의 구석구석이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굳는 듯했다.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거의 끝이 온 것 같군・・・・・・ 배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거야. 선장,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아. 몇 개월이 될 수도 있고, 몇 주가 될 수도 있고, 단 며칠이 될 수도 있어……."

1915년. 그 말을 한 사람은 당시 가장 유명한 극지 탐험가들 중 한 명인 어니스트 섀클턴경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부대장인 프랭크 와일드였다. 그들이 타고 온 ‘인듀어런스‘ 호는 남위 74 도인 웨들해의 얼어붙은 바다 한가운데 갇혀 있었다. - P15

섀클턴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가 되리라는 것을.
훗날 세상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것은 이 실패한 ‘인듀어런스 탐험‘이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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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는 사람의 9월 - 흙

그리고 흙에서 받는 만큼 더욱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도알게 될 겁니다. 석회를 섞어 잘 뭉치지 않고 비옥하게 만들어주고, 따끈한 퇴비를 섞어 누그러뜨리고, 재를 섞어 가볍게 해 - P108

주고 바람이 잘 통하고 별을 흠뻑 받도록 해 줍니다. 그러면굳은 진흙이 고요히 숨을 쉬듯 풀어지고 바스러집니다. 가래으로 찍으면 놀랄 만큼 순순하게 부서지지요. 손에 쥐면 따뜻하고 빚으면 모양도 잘 만들어집니다. 길이 든 것이지요. 딱딱하게 굳은 진흙을 한두번길들였다면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겁니다. 이제 흙은 포슬포슬하고 촉촉하게,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게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엄지와 검지로 흙을 집어 비벼보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흙에 무슨 씨앗을 심을까 하는 생각마저 사라질 겁니다. 이 검고 포슬포슬한 흙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팬지나 당근이 우거진 화단만큼 아름답지 않습니까? 흙이라는 이 고귀하고 박애주의적인 걸작을 차지하게 될 식물이 심지어 부럽지 않습니까? - P109

*정원 가꾸는 사람의 시월 - 가을의 아름다움

하지만 허락해 주신다면 가을의 가장 겸허한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밭이 없고 수레에 사탕무를 실어 태산처럼 쌓지도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에 퇴비를 뿌려 보신 적이 있나요? 한 수레 가득 퇴비를 실어와서 땅에 내려 두면, 퇴비더미에서 뜨끈뜨끈하게 김이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그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눈과 코로 품질을 가늠한 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겁니다.
"훌륭해요, 퇴비가 아주 좋습니다."
"좋긴 한데, 좀 가볍네요." 이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지푸라기밖에 없잖습니까." 투덜거리기도 하지요. "똥이너무 적어요."
"꺼져 버려, 이 보슬보슬하고 귀한 퇴비더미를 멀리 빙 돌아가면서 코를 막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훌륭한 퇴비가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화단에 필요한 만큼 퇴비를 주고 나면, 이 땅에 선한 일을 행한 듯한, 어쩐지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니까요.

~~그렇죠 그렇죠 백번 옳은 말씀이십니다. 카렐 님! ㅎㅎ
그 정도 냄새쯤이야 정원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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