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의 말처럼 내 몸은 나아진 게 아니므로 상태가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급속도로 무너지던 내몸을 생각하면 확연히 다르다. 살리가 망가진 내무릎에 지카가 주었던 검은 천을 감싼다. 덕분에걸을 수 있게 된다.
살리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천천히 고요한 소용돌이가 부는 곳으로 향한다.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면 그 아이를 계속 생각해. 네가 원하는 지점이 있잖아. 그럼 데려다줄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고 싶지만 그런 질문은 이제 별 소용없는 것 같아 나는 알겠다고만 대답한다. 살리가 소용돌이 앞에서 나를 놓는다. 소용돌이와 우리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것 같다.
매우 빠르고 거센 소용돌이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 P142

살리가 내게 악수를 요청한다.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존재치고 굉장히 좋았어. 즐거운 추억 줘서 고마워. 좋은 기억 가지고 갈게." - P142

나는 살리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나의 첫인상 ••••••찮았나?"
"그럼! 무척 좋았어."
살리의 악수에 응한다. 랑에게 해줄 말이 많다.
무엇보다 내 첫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걸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다.
소용돌이로 한 발을 뻗는다. 거센 바람 소리가그제야 들린다. 몸은 금방이라도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 같다. 나는 힘주어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 그때 소용돌이 밖에서 살리의 외침이 들린다. 소용돌이와 함께 안으로 흘러 들어온 살리의 목소리가어둡고 시끄러운 이 공간에 가득 퍼진다. - P143

"나 드디어 네가 기억났어. 네가 어떤 로봇이었는지! 너는 전쟁시대에 만들어졌어!"
나는 살리가 당부한 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너는 그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살리는 일을 했어!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을했어! 너는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로봇이었어.
두 팔로! 네팔은 다른로봇팔과달라. 인간을 안았을 때 안정감을 줬어. 너는 그 팔로 인간의 마음을 안았ㅇ니! 고고, 너는 랑을 진심으로 사랑했던거안! 네 마음은 진짜야." - P143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씩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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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묘하게 감동이 있다!


"인간이 왜 사막을 무서워하는 줄 아나?"
버진이 내 말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회피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적당한 지식을 이야기한다.
"생명유지에 사막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때문이지. 물도, 먹이도 없으니까."
"조용해서야." - P59

말을 마친 버진이 옅은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다문다. 주변이 한순간에 적막해진다. 하지만 이곳이 조용하다고 느끼는 건 인간 감각의 한계일뿐, 실제로는 아닐 터였다. 인간의 청각기관이 감지할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쉬지 않고 불어닥치고 있으리라. 모래를 걷는 전갈의 걸음과 새의날갯짓, 대기권에서 타들어가는 유성과 지금도 우리를 스치고 있을 우주의 전파까지. 사막은 시끄럽다. - P59

소란스럽고 가득하지만 인간에게 허용되지않는다. 그건 꼭 토라질 때마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하는 랑의 고집과 닮았다. 나에게 화가 났음을 몸으로 말하던 행위.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그렇다면 이 사막도, 사막인 적 없던 이 땅도 인간에게 화가 났음을 침묵으로써 표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비유를 해본다. - P60

"사막이 조용하다고 느끼는 건 인간의 청각 기능의 한계일 뿐이다."
"그럼 더 무섭지 않겠나?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공간이라니."
"그렇다면 소리가 있다면 무섭지 않나?"
"외롭지 않을 테니."
물도, 식량도 아니라 침묵이 인간을 두렵게 하는 거라면 이 사막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소리가무엇인지 추측한다.
가령 랑의 목소리 같은 것.
고고
나를 부르던 목소리 같은 것. - P60

"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알고 싶어 한다는 것과 설명하고 싶다는 것은같은 의미일까. 그렇다면 나는 알고 싶은 게 맞다.
나는 지카에게, 그리고 랑에게 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고 왜 나 홀로 파괴되지 않고 땅에 묻혀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싶다.
"안다는 게 대체 뭔지, 알고 싶다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자네도 알아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거야. 인간을 본떴으니까." - P68

"한때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 칭했지."
미약한 바람이 불어온다. 모래 폭풍일까. 주위를 살핀다. 다행히 폭풍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신성한 존재였고,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의 등에 몸에 깃든 불씨를 제거하는 그림을 그리며 자랐어. 뭣도 모르는 어린애 한마디로 다음 목적지를 정했고, 내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사후세계에 안전히 안내할 거라고 믿었지.
희망을 얻기 위해서. 나는 그 역할만 하면 됐어. 그래서 아무 말이나 자신 있게 던졌지. 힘이 된다면,
그래서 살아갈 수 있다면 진실따위 다 무슨 소용이겠어? 배도 부르지 않고 목도 축일 수 없는 그까짓 거. 여러 의미로 대단하지 않나? 인간이 망친세상에서 살면서 인간을 믿는다는 게."
- P70

버진의 시선이 지평선 어딘가에 닿는다. 얼굴에주름이 깊어졌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나는 그래서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버진은 내가 보지 못하는 자신의 삶 한편을 들추고 있다. 마모되지 않은기억의 모서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다. 내가 할수 있는 건 그 날카로움에 손끝이 베이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 P70

시간을 달라 부탁하고 나는 차분하게 살리의 말을 정리한다. 그러니까 내게 감정을 판단하고 느낄 교감신경과 뇌가 없더라도 중요한 건 내가 그감정을 학습하고 흉내 낸다는 것이다. 완벽하지않더라도, 그건 감정이다. 결과보다 행위가 중요하듯이, 감정을 느끼는 정확한 지점보다, 감정을따라 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어쩐지 ‘흥분‘되는 것 같다. 그건 나는 할 수 없는 신경계의 변화이지만 흥분한 듯 주먹을 꽉 쥐고, 살리를 마주 보며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내가 느끼는 흥분의 감정일까. 나는 빠짐없이랑의 감정을 느꼈던 걸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믿고 싶다는 걸 믿고 싶다. - P135

"고고, 너는 랑을 만나고 싶은 거지? 간절하게."
나는 망설이다가, 그 단어와 내가 맞는지를 다시 의심하다가, 또 다시 멋대로 재생되는 랑의 영상을 목격한다. 죽은 랑의 얼굴이 떠오른다. 심장이 멈춘 랑의 차가운 몸이 불러도 대답 없던 랑의 평온함이, 그 옆에 서서 한참 동안 랑을 내려다보던 내가 떠오른다. - P140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 하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니야."
나는 무엇이든 좋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말의 첫머리부터 음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포기한다.
"내 힘으로 네 몸의 시간을 느리게 하는 거야.
그럼 망가져도 그 속도가 느릴 거야, 인간이 느끼기에는 무한으로 느낄 만큼. 하지만 분명한 건 멈췄다거나 나은 게 아니야. 너는 계속 계속 망가지다가 어느 순간 시간이 붙잡을 수 없는 영역으로 갈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 번.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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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973년의 아이오와 시티 Iowa City에서 벌어진 어느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도로 위를 달리는 낡은 포드 팔콘 컨버터블 차 안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때는 겨울이고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고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혹한의 날씨에 손마디가 빨갛게 변하고 콧물이 질질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런데 이때 누구라도 목을 길게 빼고 덜거덕거리는 그 차창 안을 애써 들여다봤다면 눈길이 절로 쏠렸을 텐데, 두 사람 중 연장자이자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이는 그 추운 날씨에 깜빡하고양말도 신지 않은 모습이다. 추운 줄도 모른 채 한여름에 어딘가로 놀러가는 고등학생처럼 맨발에 페니 로퍼‘를 신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말이지만 이 연장자는 얼핏 보면 청년으로 착각할 만도 하다. 호리호리한 체격부터 브룩스브라더스"의 트위드 재킷에 플란넬 바지를 받쳐 입은 옷차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까지 청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적어도 주름으로 축 처진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P15

동승자는 체격이 더 크고 우람한 서른다섯 살의 청년이다. 구레나룻을 짧게 기르고, 충치가 있으며, 해지고 팔꿈치 쪽에 구멍까지 난스웨터를 입고 있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그 시각, 두 남자의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주류 매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정문 바로 밖에 점원이 보이고 그의 손에 들린 열쇠가 번득거린다.  - P15

조수석의 연장자 존 치버John Cheever 는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 『왑샷 가문 몰락기』, 『불릿파크』등을 비롯해 여러 편의 경이롭고도 독특한 작품을 써낸 작가다. 이제 61세인 그는 지난 5월에 확장성 심근증으로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간 바 있으며, 알코올로 인해 심장에까지심각한 무리가 간 건강 악화 징후를 보였다.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사흘 후에는 진전섬망" 증상을 보이며 심한 난동을 피우는 통에 가죽구속이 입혀지기도 했다. 아이오와 주에서 얻은 일자리, 즉 이름난작가 수업의 기간제 교수 자리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일종의 통행권이었을 테지만 일이 계획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당시의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와 방 한칸짜리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독신남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 P16

운전석의 청년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는 그곳에서 막 교편을잡은 신참 교수다. 그의 교수실은 치버의 교수실과 판박이며 치버의방 바로 아래쪽에 있다. 두 방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까지 똑같다. 카버 역시 캘리포니아 주에 아내와 10대의 자식들을 놔둔 채 홀로 이곳에 와 있다. 그는 오로지 작가의 꿈을 붙잡고 평생을 살아왔으나,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오기도 했다. 술에 빠진 지는 이미 오래되어 음주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와중에도 용케 두 권의 시집을 써냈는가 하면, 꽤 많은 소설을 써서 그중 여러 편을 변변찮은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 P17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들은 대체로 사회학적이거나 과학적인 경향보다는 상징적 경향에 치우쳐서 알코올중독 이론을 제시하는 편이다.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 대해 평하면서, 술이 "그 자신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죽이는 무기이자
"좀처럼 죽지 않는 끈질긴 벌레"가 되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시인 존베리먼의 유작 소설 『회복Recovery』의 서문에서 솔 벨로Saul Bellow"는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영감에는 죽음의 위협이 동반되어 있었다.
그 자신이 기다리고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라고 썼듯, 그는 산산이 무너질 터였다. 술은 안정제였다. 그것도 생명력을 갉아먹는 안정제였다." - P25

나는 그런 작품과 글을 다양하게 읽어나가던 중, 특별한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작가들은 물리적, 혹은 일련의 반복적 패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이자 동지였고, 멘토이자 제자이자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술로 끈끈하게맺어진 골치 아픈 관계의 사례는 아이오와의 레이먼드 카버와 존 치버 외에도 여럿 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1920년대 파리의 여러 카페에서 함께 술어 젖어 살았는가 하면, 시인 존 베리먼은 딜런 토머스의 임종 순간 누구보다도 먼저 그의 침대 맡을 지켜주었다. - P26

언뜻 들으면 비극적 삶 같고 방탕하거나 무절제한 사람의 삶 같지만 이 여섯 남자,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존 치버, 존 베리먼, 레이먼드 카버는 역사를 통틀어 명저로꼽히는 몇몇 작품을 탄생시킨 인물들이다. 소설가 제이 매키너JayMcInerney가 치버에 대한 논평에서 밝혔다시피 "성적으로 문제 있던 알코올중독자는 지금껏 수천 명에 이르지만 그중 딱 한사람만이 『세이디 힐의 가택 침입자The Housebreaker of Shady Hill』와 『진의 슬픔The Sorrows ofGin을 써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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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이 책의 결론은 에필로그에 친절히 정리가 되어있다. 나도 마지막 정리를 해 놓자.
인류사의 시작은 아프리카 흑인으로부터였지만 오늘날 그들은 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 받는 문명이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작가는 한 마디로 말한다. ˝각 대륙 사람들이 경험한 장기간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까닭은 그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 차이‘ 때문이었다고.˝(580쪽)
다시 세분하여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차이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모든 차이점을 나열할 수는 없으므로 네 가지 정도의 중요한 차이점만 열거해 본다.(581쪽~584쪽)


첫 번째 차이: 가축화,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 간 차이다. 식량생산이야말로 잉여 식량을 축적하고, 중앙집권화한 사회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요소인데, 대규모 식량 생산은 가축화된 동물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야생 동,식물의 가축화 동물화는 소수에 불과했고, 후보종의 수도 대륙 간 불균형이 심했다. 그것은 각 대륙의 면적의 차이, 홍적세 말기에 일어난 멸종의 차이 때문이었다. 특히 유라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북 아메리카가 특히 더 심했다.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는 유라시아 대륙의 유난히 조건이 좋은 지역들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점을 가진 유라시아 대륙의 문물은 다른 대륙으로의 확산과 이동을 야기하였고, 이점을 가진 사회는 결국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회를 정복하거나 멸종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차이: 바로 확산과 이동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고, 이것 역시 대륙마다 달랐다. 확산과 이동의 속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빨랐는데, 그것은 유라시아의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며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도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가축과 농작물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고 따라서 위도가 매우 중요하므로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기술의 확산에서도 그 논리는 성립한다.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는 기술 확산의 속도가 유라시아보다 현저히 느렸다. 그것은 이 대륙들의 주요 축이 남북 방향이었으며 생태적, 지리적으로 장애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차이: 각 대륙 ‘내부‘에서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차이가 있었다. 어떤 대륙은 다른 대륙보다 더 많이 고립되어 있고, 따라서 대륙간 확산의 난이도 역시 달라졌다. 지난 6000년 동안 유라시아로부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확산이 가장 쉬웠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복잡한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확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위도 지방에서는 드넓은 대양, 고위도 지방에서는 수렵 채집 생활에나 알맞은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 의해 유라시아와 격리 되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차이: 각 대륙의 면적과 전체 인구 규모의 차이이다. 면적이 넓거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도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의 수도 많으며,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다는 것이다. 발명과 혁신에서 뒤진 민족이나 사회는 다른 집단에 의하여 제거되거나 정복이 될 것이 분명한데, 아프리카 피그미족을 비롯해 농경민들에 의해 교체된 수렵 채집민 사회가 그러한 예이다.



중국은 농경, 문자, 발명품, 인구 등에서 앞서 나갔지만 오늘 날 유럽에 뒤지게 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유럽의 만성적 분열이 오히려 발명과 발견, 혁신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콜럼버스가 다섯 번째 시도에서 수백 명이 넘는 유럽의 군주 가운데 한 명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은 바로 유럽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당시 유럽이 통일 되어 있었다면 여러 왕들에게 가서 호소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분열에서 비롯한 이러한 결과는 중국의 통일이 빚어낸 결과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해외 항해에 있어 콜럼버스의 배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황제)의 결정에 의해 중단이 결정되면 다시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14세기에는 정교한 수력 방적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단되었고, 시계 제작 기술에서도 선도적인 입장이었지만 전폐하였으며, 결국 15 세기말 이후에는 기계장치나 기술 전반에서 후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중국은 문자에 있어서도 하나의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2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가 되었다. 중국의 만성적인 통일이 오히려 기술의 발전과 세계의 정복에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특별 증보면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에서는 냉철한 논쟁을 하지 못하도록 정보를 막고 있는 일본의 고고학계의 현재를 볼 수 있었고, 일본인들의 조상인 조몬, 아이누, 야요이 문화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의미가 있었다. 야요이 문화는 한국인으로부터 영향 받은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지만 일본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나름 이해도 된다^^


끝까지 읽고 나니 오랜만에 공부를 잘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있다. 이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제 다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읽어 보겠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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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4-2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균,쇠>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덕분에 재독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사피엔스>는 부분 부분만 읽어서 완독을 못한 것 같은데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진득하니 읽어봐야겠습니다.

은하수 2023-04-24 15: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언가 큰발을 내디딘것 같은 뿌듯함이 있어요. 흥미진진하게 읽혔어요. 어쩜 글이 흡인력 있게 잘 써진건지 감탄하며 읽었어요. 재독해도 재밌게 읽을수 있을듯 해요. 저도 응원합니다<사피엔스> 완독이요!

호시우행 2023-04-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어요. 총균쇠는 한번 읽기로 끝내기엔 아쉽지요.

은하수 2023-04-24 19:0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다음에 또 읽어도 새로운 느낌 받을거 같아요^^
 

랑의 엔진이 꺼졌다.
아니, 심장이다. 인간은 엔진을 심장이라 부른다. 두꺼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고작 사람 주먹만 한데 발끝까지 피를 보낼 정도로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주기적으로 연료를 교체해야 되는 나와달리랑은 외부에서 피를 교체해야 할 필요도, 심장에 기름칠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태어나는 것과 만들어지는 건 그렇게 다르다. 태어난다는 건 목적 없이세상으로 배출되어 왜 태어났는지를 계속 찾아야하는 것이기에, 오로지 그것뿐이기에 그 해답을 찾는 시간만큼 심장의 시계태엽은 딱 한 번 감겼지만 만들어진다는건 분명한 목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 P9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이 존재하는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목적을 다할 때까지 망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은 계속 엔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랑이 말했다. 그 말은 목적을 다하면 꺼버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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