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하오˝

화자는 드디어, 첫사랑 소녀 질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병이 나으면 월요일과 금요일에 간식을 먹으러 오라고... 스완과 스완 부인에게 거절을 당했었는데 반전이 일어난 거다. 화자는 이 아니 기쁠소냐 하게 되는 것이고~~
지루한 듯 이어지는 프루스트의 이야기 속에서 포착되는 줄거리라 이름 붙일만한 서사를 발견하게 되니 이것이 집중을 하게 만든다.^^

어머니, 아버지의 교육관도 눈에 띈다.
어릴 때부터 병으로 바깥 활동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아들이니 걱정은 끝이 없었겠지? 이 앞 내용에서는 아버지가 작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인정하면서 자식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하오.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잖소. 지금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취향도 거의 변하지 않을거요. 또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거요.˝(103)

이 당시에 쉽지 않은 일이 아녔나?

화자의 병은 지금으로보면 기관지 천식, 잦은 고열, 폐렴, 폐부종 등의 호흡기 질환으로 생각이 된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포기하지 않고 잠수를 잘 마치게 하기 위해 수영 교사에게 부탁해 ˝멋진 조가비 상자와 산호 가지들을 가져다 주어 내가 그것들을 물바닥에서 스스로 발견했다고 믿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절을 읽다 우리 아이들 수영장 보낼 때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맘이었던 나도 아이들 수영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난 사실 물이 무서워 수영을 배우고 싶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두 아이들을 엄마없이 보내기 두려워 큰 아이가 좀 클때까지 기다렸다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너무도 해맑게, 그리고 쉽게 두려움없이 물에 뜨는 법을 배우고 이런저런 영법을 배우면서 적응해 나갔다. 여름 휴가 때 아이들이 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수영하는 모습보고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물을 무서워하는 엄마 아빠에게서 어떻게 저런 아이들이 나왔지? 하면서 우리 부부 너무 신기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안 잊힌다.




 "사랑하는 친구에게."라고 편지는 말했다. 
"네가 많이 아파 더 이상 샹젤리제에 오지 못한다는 걸 알아. 나 역시 그곳에 환자들이 너무 많아 이제는 거의 가지 않아. 하지만 내 친구들이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간식 먹으러 우리 집에 온단다. 네 몸이 회복되는 대로 방문해 주면 아주 기쁠 거라고 엄마가 전해 달라고 했어. 그럼 우리가 샹젤리제에서 나누던 즐거운 이야기들을 집에서도 다시 나눌 수 있을 거야. 안녕, 내 사랑하는 친구, 네 부모님이 우리 집에 간식 먹으러 자주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내 우정을 전하면서, 
질베르트."

이 글을 읽는 동안 내 신경계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내게 큰 행복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 영혼, 즉 나 자신, 요컨대 주 당사자인 나는 아직 이 소식을 깨닫지 못했다. 행복, 질베르트를 통한 행복이야말로 내가 줄곧 생각해왔던 내 마음을 완전히 차지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에 대해 ‘코사 멘탈레(cosa mentale)‘"라고 했던것 아닌가.  - P134

우리 삶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늘 소망하는 이런 기적이 곳곳에 뿌려져 있다. 이 기적은 어쩌면 며칠 전부터 살아야 할 이유를 완전히 상실한 나를 보고 어머니가 질베르트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부탁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마치 내가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 숨이 막혀 무척이나 하기 싫었던 잠수에 재미를 붙이게 하려고 어머니가 몰래 수영 교사에게 멋진 조가비 상자와 산호 가지들을 가져다주어 내가 그것들을 물 바닥에서 스스로 발견했다고 믿게 했던 것처럼말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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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고자 하는 화자의 꿈이 공식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첫(짝)사랑 질베르트와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안타깝지만 잘된 일이다. 난 스완 부인이 맘에 안든다! 스완도!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가 나를 위한 ‘경력‘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으신 듯했다. 무엇보다도 규칙적인 일상생활로 신경의 충동을 길들이기를 바랐던 어머니에게는 내가 외교관 직을 포기하는 것보다 문학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는 편이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 P103

 "그냥 둬요." 하고 아버지가 소리치셨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하오.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잖소. 지금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취향도 거의 변하지 않을거요. 또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거요." 이런 아버지의 말씀이 준 자유 덕분에 앞으로의 내 삶이 행복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그날 저녁 이 말은 내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언제나 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다정한 몸짓을 접할 때면 아버지의 수염 난 붉은 뺨에 입을 맞추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단지 아버지의 마음을 언짢게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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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끝을 봐야겠다. 반납일도 연장하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그런데...
가사노동은 꼭 공적노동으로만 편입되어야 하는가?
가사노동이 사적노동이란 것은 맞지만, 그것도 여성들에게 선택이 되어야하는거 아닐까. 직업으로 인정되면 안되는 것인가? 공동식당, 빨래방, 청소, 바느질이 경제활동으로 재편되어야 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에 기반한 이러한 투쟁방향은 나와 노선이 다른거 같다. 아무튼 나는 끝까지 내가 선택하고 싶다.

가사노동 임금지급 운동에 대하여
가사노동은 사용가치인가 교환가치인가? 현대에는 대체적으로 가치를 생산한다는 입장인가보다. 나도 가사노동해서 임금을 지급받고 싶은거다. 그런데 누구에게서? 자본가들에게서? 국가에서? 남편한테서?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착취당한걸수도 있는데 사회적 재생산에 기여한 나의 노동은 누구에게서 혹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나 알 수 없지만, 이 노동에서 살아있는 한, 내가 원하는 한 해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생산수단이 사회화되면 개별 가족은 사회의 경제적 단위이기를 멈춘다. 사적인 가사업무는 사회적 산업으로 전환된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아동 돌봄과 교육은 공적 업무가 된다."
 비록 이 지점을 이론적으로 더 진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엥겔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사노동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묶여 있는 사회적 노동 중 일부라는 점을 인식했다. 더욱이 그는 공산주의 사회의 목표 중 하나로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꼽는다.
그리고 이런 전망을 물질적인 힘으로 만들어낸 러시아 혁명만큼 이 이론을 실천적으로 잘 검증한 사례가 있는가?  - P174

1919년 8월, 볼셰비키당의 여성 투사들이 제노텔[여성부]을 설립했다. 제노텔은 여성 노동자·농민 · 주부로 구성됐고, 내전의 고난을 겪는 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특별 활동을 수행하고자 했다.
1920년 11월 임신중지가 합법화됐고 동성애가 비범죄화됐으며, 혼외 자녀의 평등한 권리도 인정됐다.

 이 기간은 치열한 논쟁과 실험으로 가득 찼고, 여성해방 · 성해방 · 개인적인 관계의 변화 등이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의 필수 요소로 여겨진 시절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무급 재생산 노동과 총체적인 생산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탈바꿈시켜야했다.
이 목표를 염두에 두고 국립 어린이집·유치원 · 공동 식당 ·빨래방 등 가사노동을 사회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제안됐다. 그 목표는 각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최대한 줄이면서, 이런 업무가 사회적 생산의 새로운 부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3.1 만세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1919년은 투쟁의 시기였어.
- P175

미국 역사학자 골드먼이 설명하듯이, "가사노동은 공적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다. 무수히 많은 개별 여성이 각자의 가정에서 무급으로 수행한 업무를 공동 식당, 빨래방,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유급 노동자들이넘겨받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콜론타이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모든 집안일이 제거될 것이고, 소비는 가족 내 개인적인 활동이기를 멈출 것이다. 사적인 주방은 공적인 대형 식당으로 대체될 것이다. 광업, 금속 가공업,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바느질, 청소, 세탁이 경제활동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네사 아르망 역시 ‘가내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1918년 열린 여성노동자농민대회에서 그는 여성 노동자가 공장과 집에서 이중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현실을 규탄했다. 레닌 또한 "실질적인 여성해방‘을 이루려면 법적 평등만이 아니라 가사노동을 사회화된 노동으로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여러 번 지작했다. - P176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목표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인 한, 동시에 그것은 자본을 지속시키는 데 충분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확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로부터 질문이 제기된다. 사회적 재생산의 의미가 무급 가사노동으로 제한되는 걸 피하려고 하면서, 이제는 그 의미가 너무 확장되는 건 아닌가? 그 경계선이 다소 모호해진 게 아닌가?
예컨대 아루짜는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 노동자의 일을사회적 재생산 노동에 포함시킨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가정으로 - P177

음식을 배달하는 플랫폼 노동자, 술집과 식당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도 여기에 포함해야 한다. 게다가 가족을 위해 식료품을 구매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슈퍼마켓 계산원을 포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면 그 식료품을 운송하는 노동자는?
 우리는 이렇게 생활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일련의 직무를 계속 포함해 나갈 수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확인했듯이 세상에 그런 직무는 아주 많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의미가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면, 도리어 설명력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또한 이는 폭넓은 사회적 재생산 범주에 속한 다양한 유형의 노동에 내재한 질적 차이를 다소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 P178

이상의 논의에 따를 때,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본의 통제에 종속돼 있지는 않다. 파울라 바렐라는 다음과 같이 옳게 설명한다.

"가정이 정말 말 그대로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면, 여기에서도 상품 생산의 논리가 똑같이 지배할 것이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쓸 만하게 팔릴 수 있도록, 즉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관해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에도 이 상품은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실업률이 높을 때도 아이들은 계속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고, 옷을 입혀야 한다.
의심할 바 없이 그 노동은 더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조건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에서는 과잉 공급 때문에 ‘해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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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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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올리브가 타자기로 친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고 하는 문장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을 채우던 수 많은 삶의 기억들을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도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다시, 올리브>가 나에게는 그랬다.  너무 많은 기억들이 짧은 며칠 사이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 모든 기억을 갈무리해서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하지만 뭐 어떤가 모든 기억을, 그리고 드는 생각을 모두 말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가 이내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마음 속으로 갈무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론 지금 드는 생각들을 조금만 남겨 두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드는 거다. 올리브가 타자기에 자신의 기억들 쳐서 쌓아두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기억들이 밀려와 머리로는 기억을 떠올리느라 바쁘고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순간순간 발견한다.

  올리브는 '헨리'와 '잭'이라는 두 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는데, 나도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살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홀로 살아간다면 남편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욕을 하면서 원망을 할지, 홀가분해 할지, 그도 아니면 깊은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다. 배우자의 죽음이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라고 하던데 난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은 조금 충격?이기도 했다.  어떤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알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올리브는 혼자가 되면서 헨리와 잭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거 같았다.  먼저 가버린 남편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리워했다 미워했다 그런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지만 잘 견뎌 내고 있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다 그런건 아니란 걸 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느끼기에 올리브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성숙한 하나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처음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 툴툴거리면서 솔직한 것이 좋은건 줄 아는거야? 싶기도 했고 - 하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인거 같다.  주위 사람들을 잘 살필 줄 알고 딱 알맞게 위로를 전하고 별 말 아닌데 멋진 말도 하면서 아주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남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아서,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이 너무너무 무서울텐데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채워나가는 모습에서 나의 시간들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해도 올리브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지 알 수 없고,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올리브의 삶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로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관계이다.  올리브가 생각하기에 아들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첫 결혼에서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부터인거 같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사람에 대해 싫은 감정이 어떻게 감춰질 수 있을까!  내가 올리브라도 그건 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라는 여자를 좋아할 수 없을지라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참 다행스러웠던건 헨리도 그렇고 잭도 그렇고 그 두 남편이 정말 나쁜 남편들이 아니어서(사실 헨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정말 나쁜 아버지가 아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딸에게 아버지는 항상 비열했다는 말을 듣는 아버지이자 남편(로저 라킨, '도움' 에서 수잰의 말), 딸을 범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편들, 남자들을 어찌할 수 없어 고통받는 아내와 자녀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어찌나 빈번히 등장하던지 . . .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인생은 너무 슬프고 가슴이 미어질 거 같은데 하지만 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곁에 올리버! 우리의 올리버가 잠시 그 곁에 머물러 무심한 듯 따뜻한 위로를 건넬 때 한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또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올리버의 고향 메인 주의 크로스비와 셜리폴스가 정말 실재하는 도시이고 장소인 듯 미국 지도를 찾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으로 여러번 느꼈다.   

 



  오늘도 남편은 다락방 올라가서 열심히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밴드 활동도 꾼준하고. 주 중과 주말 동호회 가서 테니스도 열심히 치면서 동네 사람들도 잘 사귀고 있는 거 같다. 이 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말하길 아파트를 버리고 전원주택 이사 와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악기를 맘껏 불어도 된다는 거... 퇴근해서 얼른 집에 오고 싶단 생각이 든다는 거, 집에 오면 작지만 작은 텃밭을 일굴 생각에 신이 난다는 거, 갓 따온 채소들을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장점들 중에 하나라는 거. 음. . .  겨울은 추워서 좀 고생이긴 해도 어떻게든 추위에 적응하려고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며 아직은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하고 나도 남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 남는 시간에 넷플릭스 시청은 - 주로 액션, 스릴러를 본다. 알아서 계속 추천해준다. 근데 나중에 보면 본건데 아니라고 우기며 또 본다 ㅎㅎ 오늘 본 주지훈 주연의 암수살인 안봤다고 박박 우긴다 - 남편의 새로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물론 나도 역시 이미 예상했던 바와 같이 아주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간 집은 너무도 조용해서 안하려고 들면 정말 하루 종일  남편 퇴근 전까지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한편으론 너무 감사하다가도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리는 날은  남편과 둘이 살아갈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무서워지는 거다. 바쁘게 살 땐 시간아 제발 빨리빨리 가라 하던 생각들이 시간이 많아지고 몸도 편해지니 이젠 우리 둘 앞에 남겨진 시간이 너무 무섭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로선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사실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올리브> 읽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의 하루하루는 돌아온 봄을 한껏 즐기는 것으로 가득하다. 손바닥 정원에 심을 화살나무도 몇 그루 들이고 블루베리 나무도 한 주 더 들이고. 어수선하던 정원에 파쇄석 깔고 벽돌로 둘러 놓아서 단정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엌 옆 데크에 흙 덜 떨어지라고 텃밭에 디딤돌도 깔아서 텃밭도 아주 깔끔해졌다.  곧 올라올 새싹과 꽃봉오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가꿔갈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집이 너무 사랑스럽다.  올리브가 헨리와 살았던 집을 부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다.  아까워라!!!  



  마지막 장인 '친구'에서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또 다른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의 이저벨이 올리브가 살고 있는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에 입주를 하였다. 난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흠... 이름을 보니 그럴 거 같더라니...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서 서로 도우며 나누는 교감은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이라는 이 두려운 현실에서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는 공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으며 특히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은 노인들만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빈번한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올리버와 이저벨이 인생의 거의 끝에 이르러 보여주는 진한 우정의 시간들이 더 간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1년 4개월.  나도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올리브가 이저벨과 기꺼이 친구가 되려고 애섰듯이 나도 선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궁금하면... 나도 올리브처럼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음의 공포가 나를 붙잡으러 오는 그 시간까지 노력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보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 남편과 <암수살인>을 보고 낮에 불려서 삶아 두었던 곤드레 들기름에 묻혀 곤드레밥 해서 채끝살 구워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다.  올리버가 타자기로 자신의 기억을 글로 한 자, 한 자 토닥토닥 기록했듯이 - 이것도 기록으로 남겨야 해. 이제 올리브가 너무 좋아졌다는 것^^* -나도 오늘의 일을 다소 장황하지만 글로 남겨본다.  오늘이 .... 훗날 돌아보면 간절히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나지 않을 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로 이렇게 남겨 놓았으니 잊혀진다 해도 나의 기억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억 위에 기억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쌓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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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8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가 너무 좋은데 그건 좋은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조용하고 가만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시는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는 아직 올리브 만큼의 나이를 먹진 않았지만 나이를 먹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올리브에게 닥친 일이 다 제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공동주택에서 이저벨과 서로 괜찮은지 수시로 들여다보는 일은 저에게도 앞으로 필요한 일인것 같았고요.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다소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것 같았는데 <다시, 올리브>에서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진 것 같더라고요. 그것은 세월과 나이가 그리고 그동안 쌓인 경험들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겠죠.

좋은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은데 좋은 책을 읽고 쓴 리뷰를 읽는 것도 참 좋으네요.
:)

은하수 2023-03-28 09:39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을 읽으니 정말 온 인생을 다 돌아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네요. 다락방님께서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올리브의 변화하는 모습도 좋았고.. 나이 먹었다고 누구나 저리 늙어가는건 아니란거 너무 잘 알잖아요. 아집만 느는 사람도 많단거.. 근데 어떻게 저렇게 나이들수 있는건지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친구로 만난 이저벨은 저에게 시사하는바가 컸어요
서로의 돌봄을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간절히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앞으로 닥칠 시간들이 무섭지만은 않을거 같아요.

좋은 리뷰 읽는 재미에 제가 하루종일 여길 들락날락... 도장을 수십번 찍는다니까요^^
오늘도 즐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당~~

책읽는나무 2023-03-28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와 똑같은 삶은 아녀도 은하수님의 지금의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제가 가장 바라는 삶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바랐던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그 바람이 실현되어 있을까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 젊은 시절 내가 바랐던 노년의 모습이 아닌 늙은 모습이 되어 있더라도 그저 삶을 관조하는 너그러운 할머니가 되어 있음 좋겠다! 그리고 키터리지처럼 잘 걷는 노인이 되어 있음 좋겠다! 늘 그 생각을 했네요.
암튼 은하수님의 생활도 응원합니다^^
참고로 저도 암수살인을 봤어요ㅋㅋㅋ

은하수 2023-03-28 22:49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꾸시더라구요. 저도 40대 중반까지도 전원에서의 삶은 생각도 안했었거든요^^ 전 지금의 제 생활이 만족스러운데 지금처럼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살아갈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책과 함께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요. 올리브처럼 점점 성숙해가는 삶이면 더없이 좋겠지요~~
나무님 바람도 응원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스릴러 별로 안좋아해서 보다가 잘 피하거든요 그래서 세세한 부분 기억을 못하니까 줄거리를 줄줄 말을 못하겠는데 암튼 마지막에 어찌어찌 되는거 아니냐구 했더니 자긴 본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이없어서리..ㅠ 혼자선 절대 못보는데 난 대체 어떤 남자랑 본걸까요???
 

이 책 읽어나가는 동안 올리브가 점점 더 좋아진다. 어쩜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건지...!
문장들이 가슴에 와서 콱콱 박힌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너무 잘돼서 문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소제목은 <시인>이어서 미국의 계관시인이 된 앤드리아 르리외가 중심이긴한데 난 올리브의 이야기를 기억에 남기고 싶다. 이런건 남겨야 해!



그녀가 말했다. 
"음, 덕분에 같이 아침을 먹을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여자가 깜짝 놀라며 올리브를 쳐다보았다.
  "어머….…" 그녀가 말했다.
  "어머, 키터리지 선생님, 가지 마세요. 커피 좀더 드세요. 아, 커피가 없네요. 커피 드실래요?"
"이제 커피는 안 마셔."올리브가 말했다. 
"몸에 잘 안 받는 것같아서. 하지만 너는 마시고 싶으면 더 마시렴. 네가 마시는 등안 같이 있어줄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종업원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금방 나타나 앤드리아에게 아주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따라드릴게요."
그 여자가 웃으면서 - 웃으면서! - 앤드리아게 말했다. 그리고 커피를 따랐다.
 "나이가 들면" 종업원 여가 가고 나서 올리브가 앤드리아에게 말했다.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 P324

앤드리아가 궁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게 어떻게 자유를 주는지 말씀해주세요."
"음." 올리브는 약간 당황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알 수없었다.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 순간 올리브의 마음을 관통한 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너는 솔직하구나. - P325

올리브가 말했다.
 "내가 그걸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다보면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건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야.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거지" - 올리브는 아까 커피를 가져온 여자가 있는 쪽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가 더이상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엉덩이가 큰 종업원에게 투명인간이 되는 거지. 그런데 그게 자유를 줘." 
그녀는 앤드리아의 얼굴을 계속 살폈는데, 뭔가와 싸우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 P325

찬란한 가을이었다. 잎은 나무에 매달려 그 색깔이 연중 어느때보다 선명했다. 사람들은 서로 그런 말을 주고받았고, 사실이그랬다. 태양이 날마다 그 모든 것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밤에는 대체로 비가 오고 추웠으며, 낮은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따뜻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반짝거렸고, 노란색과 빨간색과 오렌지색과 연분홍색이 만으로 뻗은 길을 지나가는 모든 운전자들에게 찬란한 빛깔을 뽐냈다. 올리브는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 P335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현관 벽장에 잭의 코트와 스웨터가 그대로 있었다. 그것 또한 다른 점이었다. 헨리의 옷은 그가 죽자마자 재빨리 없앴다. 심지어 요양원에 있을 때 이미 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날 신었던 새 신발, 그가 다시는 신지 못한 그 신발. 그녀는 그것을 번개처럼 빠르게 없앴다. 낙타털 색깔의 스웨이드 구두였는데, 신발끈에 조금도 때가 묻지 않았었다. - P336

하지만 잭의 옷은 간직했다. 옷장 문을 열면 그 냄새가 여전히 희미하게 풍겨왔다. 그들이 처음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을때 그가 입은 카디건-진녹색, 팔꿈치에 가죽을 덧댄 것이었다 - 도 가지고 있었고, 처음으로 심각하게 싸웠을 때 그가 입은카디건- 푸른색에 삼각 문양이 있었다 -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 P336

올리브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잭은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결혼합시다. 올리브, 당신이 헨리하고 살던 집을 팔고 여기로 옮겨요. 나하고 결혼해줘요, 올리브."
"왜요?" 그녀가 물었다.
그가 한쪽 입가가 올라가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내가 당신을사랑하니까." 그가 말했다. 
"내가 당신을 지독히 사랑하니까."
"왜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이 올리브니까."
"방금은 내가 너무 올리브 같다면서요."
"올리브 쉿. 그만 입다물고, 나하고 결혼합시다." - P337

잭이 잠을 자다 그녀 옆에서 죽었을 때, 공포가 큰 바다처럼 올리브를 덮쳤다. 그녀는 하루하루 겁에 질려 지냈다. 돌아와,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오, 제발 제발 제발 돌아와! 그들이 함께한 여덟 해가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해괴하게도-그녀는 이따금 잭을 진짜 남편으로 생각했다. 헨리는 첫번째 남편이고, 잭은 진짜 남편이었다. 해괴한 생각이었고, 그게 사실일 리도 없었다. - P337

잠시 뒤 올리브가 물었다. 
"네 삶은 어떠니, 베티?"
베티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제 삶요?" 더 많은 눈물이 베티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오, 아시잖아요." 그녀가 티슈를 허공에서살짝 흔들었다. "형편없죠."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리브가 말했다.
 "음, 말해봐. 듣고 싶구나."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
올리브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음. 그건 네 삶이야. 중요한 거라고."
- P420

그들은 손주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올리브가 이저벨에게 왜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손자 이야기를 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저벨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처럼 턱에 손을 갖다댔다.
 "음, 손주들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겐 지루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이저벨은 이쯤에서 한숨을 쉬고 올리브의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또 손자를 그리 잘 알지는 못해요. 사실 올리브, 에이미는 나한테 잘해주지만 아이오와에 살고, 나는 이따금 자식이 그렇게 멀리에 가서 산다는 건 정말로 뭔가로부터 떨어져 있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 경우에 그 뭔가는 내가 아닐까 하고요." - P450

그제야 올리브는 크리스토퍼가 왜 뉴욕에 사는지를 어느 면에서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녀가 천천히 말했고, 고통이 그녀 안에서 그물을 짜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올리브는 에이미를 생각했다. 약간 차갑게 느껴졌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에이미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가깝지는 않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손자를 사랑해요."
이저벨이 말했다. 
"오, 사랑해요. 하지만 그애는 정말로 내 삶의 일부는 아니에요." - P450

올리브는 창가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벌새 한 마리가 격자 울타리로 날아왔고, 이어 박새가왔다. 올리브는 이거벨이 한 말을 한참생각해본 뒤 조심스럽게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바보같이 들렸다. 여든여섯 살 먹은 여자의 목소리로 불러보는 그 이름. 게다가 올리브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안 돼, 이건 안 되겠어.

그리고 한편으로 올리브는 이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을 느꼈다. 이저벨은 여전히 어머니를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고 있었지만, 올리브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앉아서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뒤 일어서서 말했다.
 "쳇, 됐다 그래."
 하지만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 P456

그리고 헨리를 생각했다. 젊은 날 헨리의 눈에 깃들어 있던 다정한 눈빛, 그 다정함은 그가 뇌졸중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잭을, 그의 영리한 미소를 생각했고 크리스토퍼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그건 행운이었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녀를 왜 사랑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사랑했다. 그리고 아들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그녀는 의자에서 조금 뒤척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P459

그래서 그녀는 앉아서 하늘과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내려.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심은 지 딱 한 해가 지났을 쀼인데도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장미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우와, 피어난꽃 뒤로 또 한 봉오리가 막 피어나려 하는 게 아닌가! 오, 그것을 바라보니 행복해졌다. 새로 맺은 싱싱한 봉오리의 모습. 그리고그녀는 뒤로 기대앉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놀라움과 두려움의 감정이 되돌아왔다.

그것은 올 것이다.
"그래, 그래."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거기 꽤 오래, 심지어 정말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 P460

마침내 올리브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일어섰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의자에 앉았고,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 타자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타자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방금 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올리브는 지팡이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할 시간이었다.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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