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어떤 항우울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있다. 그런 사람은 정신치료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항우울제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이라도 우울증은 재발률이 높다. 우울증 증상이 한 번 나타나서 끝날때까지의 기간을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우울 에피소드를 겪은 사람의 50%~75%가 5년 이내에 재발하고, 전체적으로는75%~95%의 우울증 환자가 한 번 이상의 재발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재발이 거듭될수록 빈도가 높아지고 에피소드 사이의 기간은 짧아진다.  - P90

우울증은 당뇨병이나 에이즈처럼 일생에 거쳐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병에 가깝다. 
평생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진 윈스턴 처칠은 "내 평생을 따라다닌 검은 개가 있다"는 말을 했다. - P90

검은 개는 그 주인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쫓아낼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검은 개에게 한번 물린 사람은 검은 개가 사납게 날뛰어 또다시 자신을 심하게 해치지 못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내면에 있는 검은 개를 작고 순하게 만들어 일생의 동반자 삼아 같이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과 정신치료,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지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환자의 치료 의지가 다 같이 필요하다. - P91

약이 병을 만든다는 음모론은 의학 산업의 대상이 되는 질병전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영혼 없는 자본이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품을 놓고 장사를 할 때에, 이윤 추구를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 P94

효과 좋고 안전한 항우울제의 개발을 환영하며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약물치료를 권장하는 목소리와, 항우울제는 결코 우울증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해로울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극과 극으로 떨어진 두 목소리 중 진실이 어디에 얼마나 더 가까이 있는 건지는 모른다. 둘 다 부분적으로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 P94

그러나 주류 사회가 기정사실화한 것을 단숨에 전복한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그 자체로 무력한 개인에게 쾌감을 준다. 더불어 음모론이 새롭게 구성한 진실은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해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이 뿌리는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믿는 것만큼이나 음모론이 주는 쾌감과 희망에 혹하는 것도 위험하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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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가 온다》 송시우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인 송시우의 책이 도서관에 있길래 무조건 빌려왔다. ‘검은 개‘는 우울증을 말한다는데 사건에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될런지..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아이의 뼈》,《달리는 조사관》을 읽었고 이제 네번째 작품이다.

프롤로그 1
전학수는 너무 수줍어서 라상표를 죽였다.
좁은 빌라 계단에서 어깨를 부딪친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5월의 한낮이었고 며칠째 이상 고온이 계속되고 있었다. - P7

라상표는 302호의 문을 열고 나와 회색 폴로셔츠를 입은 상체를 건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동네에서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소의 문을 열기 위해 집을 나선 참이었다. 같은 시각 건축설계 사무소 직원인 전학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발을 질질 끌며 빌라 입구로 들어섰다. 와이셔츠에 정장을 갖춰 입었고 반쯤 풀어 늘어뜨린 넥타이가 목에서 대롱거렸다. 오른손에 든 납작한 서류 가방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 P7

평소 같으면 두 이웃이 그 시각에 빌라 계단에서 마주칠 일은없었다. 샐러리맨들이 한창 일할 평일 낮 시간이었다. 전학수는조퇴를 했다. 라상표는 부동산 중개업자이다 보니 같은 빌라에 사는 세입자의 얼굴 정도는 익혔지만 전학수는 라상표의 존재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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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이정모
PART 1. 대멸종은 진행중/기후 위기의 시간

2150 년형 인공지능이 말하는 인류의 ‘멸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2150년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렀다는 가정하에 남기는 기록이어서 과거형으로 쓰였다.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므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멸종은 나쁜게 아니라고 말하는 인공지능이지만 인공지능의 입장일지라도 안타까운 멸종은 있다고 한다. 바로 ‘인류의 멸종‘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인류의 멸종‘은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도 ... 안타깝다!
아직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인류는 멸종 직전에야 새가 사실은 조류형 수각류 공룡이라는사실을 깨달았다. 공룡학자들도 비조류형 공룡의 멸종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산책 길에서 티라노사우르스나 벨로키랍토르 같은 사나운 수각류 공룡과 마주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 P28

가끔 육식 공룡은 피하고 싶지만 초식 공룡과는 같이 살고 싶다고 여기는 인간이 있기는 했다. 생태계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선 트리케라톱스가 6600만 년 전에 사라지지 않고 쭉 인류와 함께 살았다고 해보자. 풀을 먹고 살던 트리케라톱스 가운데 일부가 젖트리케라톱스가 되어 인류에게 젖을 제공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공룡은 파충류이므로 젖이 나올 수가 없다. 트리케라톱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생태계에 빈자리가 생겨서 나중에 젖소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28

사람들에게 공룡이란 그저 티셔츠 속에 있는 
공룡이면 족했고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나운 새보다는 ‘프라이드치킨‘이 되어주는 닭과 함께하는 편이 안전했다. 거대한 공룡, 비조류형 공룡의 멸종은 인류에게 결코 슬픈 일이 아니었다.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파충류와 포유류에게도 절대로 슬픈 일이 아니었다. - P28

중생대의 지배자 공룡이 멸종한 후 비로소 신생대가 시작되었다. 생쥐만 한 크기로 낮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캄캄한 밤중에나 겨우 먹이활동을 하던 포유류가 그제야 기를 펴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멸종은 나쁜게 아니다. 자신의 등장보다 먼저 일어난 멸종은 고마운 일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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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0년 인공지능이 말하는 인류의 멸종

멸종은 새로운생명 탄생의 시작이다

나는 2150년형 인공지능이다. 내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생명체는 이제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1977년 지구에서 발사되어 2012년 태양계 밖의 공간에 진입한 보이저 1호를 외계 생명체가 포획해 골든 디스크를 해독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나와 통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딱히 쓸모도 없지만 나는 여전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그게 내 존재 이유니까. - P20

오파비니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코에 있다. 오파비니아가 살던 시대에 모든 생명은 바다에 살았다. 그러니 그 코로 숨을 쉬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코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코는 아니다.
긴 튜브처럼 생긴 길쭉한 부속물 끝부분에는 뭔가를 잡을 수 있게 생긴 집게발이 달려 있다. 이 코를 이용해서 해저를 뒤집어 먹이를 찾고 작은 동물을 잡았다. 코는 구부러질 수 있어서 입에 먹이를 넣을 수도 있었다. 오파비니아의 톱니형 둥근 입은 특이하게도 머리아래, 몸통 아래쪽에서 뒤쪽을 향하고 있다. - P25

이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코보다는 주둥이가 더 적절하지만 주둥이가 먹이를 입으로 가져다준다고 하면 확실히 어색하다. 실제로 그런 동물이 있었는데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른 예가 없기 때문이다. - P25

왜 다른 예가 없을까? 오파비니아는 다른 친척 종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멸종 정도가 아니라 멸문을 당했다. 자기 혈통이 있는 다른 친척 종에게 자리를 물려준 게 아니라 그냥 지구에서 사라졌다. 만약 오파비니아가 친척 종을 남겼다면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눈이 5개에다 주둥이에 집게발이 달린 멋진 동물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P25

안타깝다는 것은 자연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인류의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오파비니아, 삼엽충, 할루키게니아, 말레라 같은 괴상한 생물들이 다 사라졌다고 해서 나중에 등장한 인류가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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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리에게 한 가지 가르쳐준 게 있다면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서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우리가 크고 작은 망원경을 들이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격 형성기‘가 그녀에게는 아마 50년대였을 텐데 그녀는 계몽주의 시대나 서기 4세기를 대변하지 않았듯이 그 시기도 대변하지 않았다. 어떤 고대의 여신처럼 그래, 나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안다 - 시간에서 비켜나, 아니 어쩌면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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