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다지도 잔인한건지... 아.. 버키..!
대체 이 젊은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글의 화자는 버키 캔터가 감독으로 있었던 챈슬러 놀이터에서 놀던 아널드 메스니코프이다. 그 자신도 버키 선생님과 같은 해에 폴리오를 앓았고, 다행스럽게도 두다리에 보조기를 대고 목발과 지팡이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버키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3. 재회‘에서 화자와 버키 선생님이 1971년 어느 봄날 정오에 우연히 재회하게 되었고, 그 감격스런 만남 이후 일주일에 한번씩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회한과 후회, 죄책감으로 가득찬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버키 선생님이 놀이터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신망과 사랑과 경탄을 받던 시절, 아이들에게 ‘창 던지기‘ 시범을 보여주는 회상 장면이 나오는데 압권이다. 그 아름다운 문장에서 보여주는 그 날의 분위기, 버키 선생님을 향한 아이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 경탄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헤어나오지 못하고 아직 괴로움에 찬 나날을 보내는 버키 선생님의 전성기의 찬란한 한때가 그림처럼 그려져서 가슴이 뭉클했다.








눈을 감은 채 차 뒷좌석에 누워 이제는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도널드를 보자 버키는 아이가 첫날보다 두번째 날 밤에 호수에서 훨씬 자신 있게, 훨씬 균형이 잡힌 동작으로 부드럽게 다이빙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아이가 아주 튼튼했다는 것, 도널드가 할 줄 아는 다이빙을 다 한 다음 제비식 다이빙을 삼십 분 더 가르쳐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또 도널드가 각각의 다이빙을 반복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잘하던 것을 기억했다. - P225

버키가 창을 두드리자 도널드가 눈을 떴다. "너는 괜찮을 거야." 버키가 아이한테 말했고, 블롬백 씨는 차를 몰고 떠났다. 버키가 차를 따라 달려가며 도널드에게 소리쳤다. "며칠만 있으면 다시 같이 다이빙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아이의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고 눈에 담긴 표정은 섬뜩했다- 열에 들뜬 두 눈은 버키의 얼굴을 훑으며 누구도 줄 수 없는 만병통치약을 미친듯이 갈구하고 있었다. - P225

다행히도 캠프 아이들은 아직 아침식사중이었으며, 버키는 캐빈 층계를 달려올라가 도널드의 몸을 싸느라 담요가 사라진 침대를 최대한 단정하게 정돈했다. 그런 다음 포치로 나가 이제 곧 그의 밑에서 일하는 실무진이 모여들 호수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곳에 폴리오를 가져왔겠는가? - P225

폴리오 때문에 신체적으로 불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끈질긴 수치심 때문에 사기도 푹 떨어져 있던 그 긴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 그에게서는 전반적으로 뿌리 깊은 좌절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는 미국에서 폴리오 피해자의 가장 위대한 모범인 FDR와는 정반대로
병에 걸리면서 승리가 아니라 패배에 이르렀다. 
마비와 그뒤에 온 모든 것으로인해 그는 사나이라는 자신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삶의 그쪽 면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대체로 버키는 자신이 성 역할에서 무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남자라면 용감하게 가정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국가적 고난과 투쟁의 시대에 성년에 이른 소년에게는 부끄러운 자기 평가였다. - P246

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그는 어쩌다가1967년 뉴어크 폭동의 중심지에 있게 되기까지 폭동 기간에 거리에서 집 한 채가 불에 타고 근처 지붕에서 총알이 날아왔다ㅡ에이번 근처 바클레이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그들의 작은공동주택 집에서 살았다. 외부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지만 ㅡ한때는 한 번에 세 단씩 즐겁게 뛰어올라가곤 하던 계단이었다ㅡ할머니의 사랑이 가없이 펼쳐졌던 곳, 한 번도 차가워지지 않았던 보살핌의 목소리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에 계속 머물기위해 어떤 계절이든, 얼음이 깔려 있든 미끄럽든 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 P247

그는 비극을 죄로 바꾸어야만 했다. 벌어진 일에서 필연성을 찾아야만 했다.
유행병이 생겼고 그에게는 그것을 설명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는 왜냐고 물어야만 한다. 왜? 왜? 그것이 의미 없고, 우연이고,터무니없고, 비극적이라는 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이 급격히 증식하는 바이러스라는 말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대신 그는, 이 순교자는, 왜에 미친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더 깊은 원인을 찾으며, 그 왜를 하느님이나 그 자신 안에서 발견하거나, 아니면 신비하게도, 불가사의하게도, 그 둘이 무시무시하게 합쳐져 생겨난 단일한 파괴자에게서 찾는다. 그가 그의 삶을 시들게 해버린 고통들을 쌓아가는 것에 내가 아무리 공감한다 해도, 그것은 어리석은 오만, 의지나 욕망의 오만이 아니라 환상적이고 유치하고 종교적인 해석의 오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전에도 들어보았고 이제 버키 캔터처럼 대단히
품위 있는 사람으로부터도 들을 만큼 들었다.
- P266

"나는 애들을 돕고 싶었고 애들이 강해지게 하고 싶었어." 그가 마침내 말했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돌이킬 수 없는 해만 입히고 말았지." 그 생각 때문에 그는, 그 자신은 해를 입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 사람임에도, 수십 년 동안 말없이 고통을 겪어왔다. 그는 이 땅에서 수치스럽게 
칠천 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그 순간을 돌아보았다.  - P272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자신만의 상황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 또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모든 것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 힘으로는 그가 자기 삶의 끔찍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몰아낼 수도 없고 그와 그 사건의 관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없었다. - P274

....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할 수 없다. 그가 하는 어떤 일도 그가 안에 품은 이상에는 이를수 없다. 그는 자신의 책임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절대 모른다.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선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구인 남편을 얻는 것을 막는 데서 가장 큰 승리감을 맛보며,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인
하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된다. - P274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조심성을 발휘하여 안전을 위해어느 시점에는 누구도 운동장으로 뛰쳐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선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이 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었으며, 그 진지함은 이 일에 대한 그의 헌신의 표현이었다. - P279

이윽고 그는 창을 던졌다. 그가 공중에서 창을 놓을 때 우리는그의 모든 근육이 불거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힘을 쓰느라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을 토했다(그뒤로 며칠 동안 우리 모두그 소리를 흉내내며 돌아다녔다). 그것은 그의 본질을 표현하는 소리였다-최고를 향해 노력하는 적나라한 함성. 창이 그의 손에서 날아오르는 순간 그는 균형을 잡으려고, 자신이 스파이크로 흙에 새겨놓은 파울라인을 넘지 않으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창이 운동장 위에서 높이 큰 호의 궤적을 그리는것을 계속 지켜보았다. 우리 누구도 바로 우리 눈앞에서 운동선수의 움직임이 그렇게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P279

창은 50야드 선을 넘어 계속, 계속 날아가 상대편의 30야드 라인을 한참 지나갔으며, 이윽고 아래로 내려가다 땅에 부딪히자 뾰족한 금속 끝이 날아오던 힘에 밀려 예각으로 땅을 파고들며 자루가 부르르 떨렸다. - P279

우리는 큰 소리로 환호하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창이 그리는 모든 궤도는 캔터 선생님의 유연한 근육에서 나왔다. 그의 몸 - 발, 다리, 엉덩이, 몸통, 팔, 어깨, 심지어 굵은 그루터기 같은 짧고 단단한 목까지-이 조화롭게 움직여 창을 날리는 동력이 된것이다. 우리 놀이터 감독이 양식을 찾아다니던 평원에서 잡아먹기 위해 사냥을 하고 손아귀의 힘으로 야생을 길들이는 원시인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경외심을 느낀적이 없었다. 그를 통해 우리 소년들은 동네의 작은 이야기를 떠나 우리 옛 남성의 역사적 서사시에 진입했다. - P280

그는 그날 오후 여러 번 창을 던졌는데, 모든 
던지기가 매끄럽고 강력했으며, 그때마다 외침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고, 매번 던질 때마다 창은 그전보다 몇 야드 더 먼 곳에 떨어져 우리를 기쁘게 했다. 창을 높이 들고 달리다 창을 든 팔을 몸 뒤쪽으로 쭉 당기고, 이어 그 팔을 앞으로 쑥 내밀며 어깨위 높은 곳에서 창을 놓을 때ㅡ 뭔가 폭발하는 것처럼 창을 놓을때 ㅡ그는 우리에게 무적으로 보였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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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가 자리에 누워 자신은 배제된 전쟁에 나가 프랑스에서싸우고 있는 데이브와 제이크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동안 비가 캐빈 지붕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그는 어젯밤 바로 이 침대에서 잔 뒤 징집병으로 전쟁에 나간 어브 슐랭어를 생각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싸움에 끼지 않아 목숨을 보전하게 된것, 유혈을 피한 것-다른 사람 같으면 혜택이라고 생각할지도모르는 것들을 그는 고통으로 여겼다. 할아버지는 그를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로 키웠고, 언제나 튼튼한 몸으로 자신이 옳은 것을 방어하는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훈련시켰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기의 투쟁, 선과 악 사이의 세계적 갈등과 마주하여 아주 작은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P176

그러나 그에게는 싸워야 할 전쟁, 놀이터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주어졌고, 그는 그 전쟁에서 부대를 버리고 마샤에게로, 인디언 힐의 안전으로 탈영했다.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싸우지 못한다 해도 뉴어크에 남아 위험에 처한 아이들과 더불어그들의 폴리오 공포와 싸울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이 없는 이 피난처에 와 있었다. 뉴어크를 떠나 좁은 비포장도로의 머나먼 끝에 있어 세상으로부터 감춰져 있고, 숲으로 위장되어 공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외딴 산꼭대기의 여름 캠프로 왔다ㅡ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아이들과 논다. 그것도 행복하게! 하지만 행복을 느낄수록 수치심도 강해졌다. - P176

 이곳에서 그는 하루가 끝나면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가 평화롭고 고요하게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그가 집 근처 동네에서 날뛰는 살인마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이곳에는 데이브와 제이크가 가지지 못한, 챈슬러 놀이터의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뉴어크의 모든 사람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그를 살아가게 해줄 양심이 없었다. - P177

하지만 섬에서 보낸 저녁이 행복하지 않게 끝난 터이니 마샤는 그가 뉴어크로 돌아가는 것을 공격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징벌‘을 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그가 내일 짐을 싸서 떠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줄까?  - P178

 나는 여기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의 발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흠뻑 젖은 풀이 짓이겨지며 내는 절벅절벅 소리에도 기운이 솟아올랐다. 다 여기 있어! 평화! 사랑! 건강! 아름다움! 아이들! 일! 여기 그대로 남는 것 외에 달리 어쩐단 말인가? - P181

"할머니, 유진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몇 가지 소식이 있어. 그래서 
캠프로 전화를 한거야.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네가 바로 알고 싶어할 것같아서 좋은 소식은 아니야, 유진. 그렇지 않으면 장거리전화를 하지도 않았겠지. 비극이 또 생겼어. 개런직 부인이 몇 분 전에 엘리자베스에서 전화를 했더구나. 너하고 얘기를 하려고."
"제이크로군요." 버키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제이크가 죽었어."
"어떻게요? 어떻게?"
"프랑스에서 전투중에."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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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르베르쉬르우아즈에서 세트까지
ㅡ정오의 태양 아래 깃드는 고독 中.
‘휘몰아치는 외로움과 광휘의 여정ㅡ반 고흐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아를,파리,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긴 겨울 여행의 끝을 암스테르담으로 결정한 것은
반 고흐를 비롯해 몇몇 그곳 출신 화가들의 족적을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20대의 끝을 향해가던 어느 여름밤 나는 파리에서 반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1853~1890의 <해바라기>(1889)를 보기 위해 야간열차를 탔었다. 파리-암스테르담 간 열차의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나는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밤이 다하도록 열렬하게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달려가고자 결심하는 순간마다 ‘바로 그것!‘이었던, 그러나 정작 달려가면서, 또 달려가 마주서서는 ‘진정 그것!‘인가를 회의하던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  - P264

그날 <해바라기>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단지 나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았다는 것일 뿐,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 거금을 들여서 야간열차를 타고 하루 이틀을 바친단 말인가. 때로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타인들에게서 간혹 거북하게 느꼈던 지적인 허영이나 무모함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더 크게 발휘된 결과는 아니었는지 씁쓸하게 반추하곤 했다. - P264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때의 지적인 허영과무모함 또한 내 지난 삶의 소중한 자산이어서, 치열하고도 숭고한 순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지속적으로 그렸고, 암스테르담 이후 나는 파리, 런던, 뉴욕, 뮌헨 등 발길 닿는 데마다 그의 <해바라기>를 찾았다. 무수히 떠나기를 꿈꾸면서 겪었던 마음의 황홀한 떨림,
<해바라기>를 향해 달려가던 그 뜨거웠던 여름 이후, 나는 시간만 나면,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전 세계를 떠도는 이방인이 되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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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에 새긴 이름, 영원의 노래-페르 라셰즈 묘지
中 ‘공간기록자의 벽에 깃든 생生ㅡ조르주 페렉‘을 읽는다. ‘공간기록자‘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가이긴 하지... 페렉의 작품을 읽고 나면 ˝그들과 함께 파리에 오래 산 것처럼 거리와 골목, 계단과 문, 벽과 창문, 창문과 창문 밖 풍경까지 세밀하게 알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고 그들의 묘를 찾아 기록한 함정임 작가도 공간 기록자이며, 한편으론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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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캔터 선생님은 그들에게 산책을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먼저 에이번 애비뉴의 드러그스토어에 들러 소다파운틴에서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샀다. 그는 회전하는 선풍기 아래 스툴을골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데, 지금 그에게 요구되는 일은 놀이터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다가오는 모든 요구를 이행한 완강한 식료품점 주인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샤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의 일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포코노 산맥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더 형편없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 P95

"문제는 계속 애들이 공놀이를 하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네. 폴리오에 걸린 두 아이. 두 형제의 어머니가 그랬지요. 저도 그 어머니가 히스테리 상태였다는 건 압니다. 절망감 때문에저를 비난했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아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의사도 그런 일을 만나게 되지.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우리가 폴리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아. 어디 가나 애들은 여름 내내 밖에서 열심히 놀지만 유행병이 돌 때도 병에 걸리는 애들 비율은 아주 낮아. 또 그것 때문에 심하게 아픈 애들 비율도 아주 낮고, 또 죽는 애들 비율도 아주 낮지. 사망 원인은 호흡기 마비인데, 이건 상대적으로 아주 드문 거야. 두통을 앓는 아이들이 모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 P106

 그래서 위험을 과장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던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자네는 죄책감을 느낄 게 전혀 없어. 가끔은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럴 이유가 없어." 그는 파이프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 근거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질병에 관한 경험도 훨씬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네는 알아야 하네. 의사로서 이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일세. 주로 애들만 공격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위력적인 병, 이건 어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자네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고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네가 자네의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되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 P109

... 이것은 라디오에서 흔히 듣거나 신문에서 흔히 읽는 비인격적인 수, 집을 찾거나 사람의 나이를 기록하거나 신발 가격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잔혹한 병의 진전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수, 뉴어크의 열여섯 개 병동에서는 그 충격이라는 면에서 진짜 전쟁의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수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수였다.
이 또한 진짜 전쟁, 살육과 폐허와 파괴와 저주의 전쟁, 전쟁 고유의 파괴력을 가진 전쟁-뉴어크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P135

"뭐?" 오개러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응? 당연히 선택할 수 있지.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바로 선택하는 거라고 해. 자네는 지금 폴리오한테서 도망치는 거야.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폴리오가 발생하니까 일 같은 건 난모르겠다. 약속 같은 건 난 모르겠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미친듯이 달아나는 거야. 자네가 하는 건 그저 달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캔서, 자네 같은 세계 챔피언급 근육질의 사나이가 말이야.
자네는 기회주의자야, 캔서,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지만, 그거면 될 듯하네." 그러더니 마치 그 말이 한 남자에게 오명을 씌울 수있는 모든 불명예스러운 본능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혐오감을 담아 되풀이했다. "기회주의자." - P141

...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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