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의 아버지 에드워드가 개새끼였네..... 아내인 엘리너에게 하는 행동을 봤을 때도 이미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아들 패트릭에게 한 행동은 정말 인간이하다. 넌덜머리나는 새끼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 대체 언제 죽지? 앞으로의 내용은 모르지만 비명횡사하거나 돈 없이 그지꼴로 죽거나 모두에게 버림받는 인생이 남아있다면 더없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국상류층의 위선과 폭력, 학대, 냉소, 신랄한 풍자 등등의 수식어들로 이 책을 말한다. 하지만 난 이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을 좋아하지는 못할 거 같다.

대화도 한결같이 쓰레기 같다. 인간들이 쓰레기라 그런건가? 작가 자신도 어릴 때 이런 쓰레기 같은 일들은 겪었을 거 같은 생각이 문든 든다.








"거기 그대로 있어." 데이비드가 일어나 노란색과 흰색의 파자마 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패트릭은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흐릿하게, 그리고 곧 좀 더 분명하게 자기가 처한 위치의 굴욕을 인지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에서 바지는 무릎에 뭉쳐 있고, 이상하게 등뼈 꽁무니가 젖어 우려되었다. 패트릭은 피가 나는가보다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칼로 등을 찔렀나 보다 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서 휴지 한 움큼을 가지고 돌아와, 패트릭의 궁둥이 사이로 조금씩 흐르기 시작해서 점점 차가워지는점액을 닦아냈다.
"이제 일어나도 돼." - P113

"중산층 사람들이 니컬러스 당신이 말하듯이 중산
층에서 멀어질 수 있어요?
"그럼요. 빅터가 아주 두드러진 사례죠." 니컬러스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빅터는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여자들은 그러기가 더 쉽죠." 니컬러스는 말을 계속했다. "결혼은 여자를 처량한 환경에서 넓은 세상으로 들어 올려주는 축복이에요." 그리고 브리짓을 흘긋 보았다. "대타가 필요할지 모를 사람들에게 그림엽서나 보내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부류의 호모가 아니라면, 실제로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죠. 아주 매력적이고 박식해야 하기도 하고." 
니컬러스는 빅터를 안심시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 P180

"니컬러스는 물론 전문가지, 몸소 여러 여자를 밑바닥에서 건져 냈으니까." 데이비드가 끼어들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죠." 니컬러스가 동의했다.
"밑바닥에 끌려 들어가서 치른 희생은 훨씬 더 컸지 않은가,니컬러스?" 데이비드는 니컬러스에게 정치적 굴욕을 상기시켰다. "어쨌거나 자네는 밑바닥이 마음이 편한가 보네."
"기가 막히네요, 선생님. 나처럼 그렇게 시궁창에 내려갔다 와 보면 밑바닥은 장밋빛 인생 같아 보인답니다요." 니컬러스가 런던 토박이 사투리를 웃기게 흉내 냈다.
- P181

엘리너는 최고라는 영국인의 예의에 그토록 높은 비율의 노골적 무례함과 검투사의 경기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게 여전히 납득되지 않았다. - P181

 남편이 그 자유를 남용한다는 걸 아는 한편 그
몰인정한 언행에 자기가 간섭하는 게 또한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약점이나 실패를 상기시켜 줄 때면 엘리너는 희생자들의 기분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들을 구해 주고 싶은 욕구와 남편에게 유희를 망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은, 똑같이 강한 욕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 갈등에 몰입하면 할수록 더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틀릴 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P182

브리짓은 무화과를 조금 입에 물고 깨지락거렸다. 앤은 브리짓을 지켜보면서 여자라면 누구든 언제고 자문할 때가 있기 마련인,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라는 해묵은 물음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앤은 브리짓을 어느 동양폭한의 발치에 축 늘어져 있는, 목걸이를 단 노예로 생각해야 할지, 점심에 먹지 않고 남기려는 애플파이를 먹도록 강요당하는 반항적인 여학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93

앤은 니컬러스가 그전보다 더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니컬러스는 기껏 젠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늘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어 보이지 않으려고 늘 젠체하는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자기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검은 늪지대의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데이비드는 바로 그 퇴행한 실패자들 가운데서 고등한 종種일 뿐이었다.

*영화 <해양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에 나오는 선사시대 괴물 - P193

엘리너의 짓밟힌 표정에도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다만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패트릭 생각이 나자, 앤의 냉담한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똑같은 결론을 내리게하는 자극제가 될 뿐이었다. 앤은 이 사람들과 더 이상 어떤 관계도 갖고 싶지 않다는 것, 빅터는 일찍 가는 것을 당황스러워하겠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앤은 빅터를 쳐다보고, 눈썹을 추켜올리고 문 쪽을 향하는 눈짓을 했다. 인상을 찌푸릴 줄알았던 빅터는 웬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치 후추를 갈아넣을까요, 라는 말에 그러라는 듯이. 앤은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엘리너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안됐지만 우리는 이만 가 봐야겠어. 긴 하루였어. 자기도 분명 피곤할 거야" 하고 말했다.
"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에 진도 좀 나가야 해서요." 빅터가 단호히 말하고, 의자에서 무거운 듯 몸을 일으켰다. - P194

빅터는 잠든 보초를 깨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식당 문을 살살 닫았다. 빅터가 앤을 보고 웃자 앤도 마주 웃었다. 그들은 멜로즈 부부 집을 떠나는 게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불현듯 깨달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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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패트릭)에게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아버진 대체 어떤 사람이지? 엄지와 검지로 양쪽 귀를 잡고 아이를 들어올리고 아이가 아파하거나 말거나 그걸 교육이라고 생각하다니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진 인간이면 이렇게 되는 건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여기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해, 패트릭은 생각했다. 발작처럼 복받치는 가슴을 가다듬지 못해 숨을 들이쉴 때 목이 메었다. 그것은 마치 스웨터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목둘레로 뺀다는 걸 잘못해서 소매에 쑤셔 넣다가 온통 꼬이게 되었을 때, 머리를 빼지 못하고 숨을 잘 쉴 수 없었던 때와도 같았다. - P45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패트릭은 생각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 P45

겨울철에는 물웅덩이가 얼어 표면 아래 기포들이 갇힌 것을볼 수 있었다. 공기가 얼음에 잠겨 나오지 못하고 밑에 붙들려있는 것이다. 패트릭은 그게 싫었다. 그건 너무 불공평했다. 그래서 항상 얼음을 깨뜨려 기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 P45

여기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해, 패트릭은 생각했다. 그러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아무도 찾지못하면 어떻게 될까?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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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중 <만에서At the Bay>

˝아, 남자들이란!˝
스탠리가 출근 전에 하는 꼬락서니라니.. 온 집안 여자들을 다 들먹이면서 귀찮게 한다. 돈 벌어 오는게 무슨 그리 유세를 떨 일이라고...
아내 린다, 처제 베럴, 장모님과 세 딸들, 거기에 물론 하녀인 앨리스까지 모두 자신의 종처럼 부리며 군림하려 든다. 하지만 이 집 여자들은 은근히 그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못들은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스탠리 놀려먹기를 즐긴다.^^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의 평화로운 하루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베럴은 식탁에 앉아 차를 따라주었다.
"고마워!"
스탠리가 한 모금 마시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 설탕을 안 넣었잖아."
"아, 미안해요."
그러고도 베럴은 설탕을 타주는 게 아니라 설탕통만 밀어주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스탠리는 스스로 설탕을 타며 푸른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스탠리는 처제를 흘깃 쳐다보고 등받이에 기댔다.
"별일 없지? 응?"
스탠리는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척 물었다.
베럴이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으로는 접시를 돌리고 있었다.
"없어요." 
베럴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스탠리에게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 아. 그렇겠지. 그냥 처제가 좀....." - P290

"장모님, 빵 한 쪽 잘라주세요. 합승마치가 올 때까지 십이분 남았어요. 제 신발은 하녀한테 닦으라고 줬나요?"
"그래. 준비 다 돼 있어."
페어필드 부인은 아주 차분했다. - P292

스탠리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장모님, 신발 좀 갖다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처제, 식사 다 했으면 대문으로 가서 마차 좀 잡아줘. 이자벨, 엄마한테 가서 모자 어디에 뒀는지 물어봐. 잠깐만, 너희들 내 지팡이 가지고 놀았니?" - P292

하녀 앨리스까지도 불려 나왔다.
"혹시 지팡이를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쓰진 않았겠지?"
스탠리는 린다가 누워 있는 침실로 달려갔다.
"정말 이상하군. 내 물건은 하나도 제 자리에 붙어 있지를 않아.
이제 내 지팡이까지 치워버렸어!"
"지팡이, 여보? 어떤 지팡이?"
린다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건가? - P293

... ... 무심한 여자들 같으니! 남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건 당연하고, 지팡이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려 들다니. 켈리가 말들 위로 채찍을 휘둘렀다. - P294

"다녀오세요, 형부."
베럴이 다정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인사하기는 쉽지! 베럴은 손을 눈가에 대고 햇살을 가리며 한가히 서 있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스탠리도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탠리는 베럴이 돌아서서 가볍게 깡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탠리가 가버려서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 P295

실제로 그랬다. 거실로 달려 들어오며 베럴이 외쳤다.
"갔어!"
린다도 방에서 소리쳤다.
"베럴! 스탠리 갔어?"
페어필드 부인이 무명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나왔다.
"갔어?"
"갔어요!"
아, 이 편안함. 그 사람이 집에 없을 때는 얼마나 다른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달라졌다. 비밀이라도 나눈 듯 다정하고 정겨운 목소리였다. 베럴이 식탁으로 갔다. - P294

"어머니, 차 한잔 드세요. 아직 따뜻해요."
베럴은 이렇게라도 이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싶었다. 방해할 남자가 없으니. 이 완벽한 하루가 그들의 것이었다.
"아니, 됐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기를 위로 들어올리며 
"우르르르까꿍!" 하는 모습이 페어필드 부인도 같은 심정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닭장에서 나온 병아리들처럼 방목장으로 달려나갔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하녀 앨리스도 같은 기분이 되어 아껴 써야 할 물탱크의 물을 아낌없이 써댔다.
"아, 남자들이란!"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찻주전자를 물통에 넣고 더 이상 공기방울이 올라오지 않는데도 그대로 잡고 있었다. 찻주전자가 남자라서 익사라도 시키려는 듯이.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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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 P163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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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7.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 P163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현대성의 시민들,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들, 전쟁터에 직접 가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그 참상을 세세히 말하는 데 정통한 사람들은 진실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비웃도록 단련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좀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온갖 일을 다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위험에서 멀리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실제로 전쟁 지역에 가서 증인이 되어 왔던 사람들의 노력을 ‘전쟁 관광‘이라고 비웃는 행위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전쟁 사진을 일종의 가식으로서 보는 논의들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 P164

이런 정서를 지닌 사람들은 전쟁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천박하거나 저급한 흥미라고, 즉 상업적인 병적행위라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 P164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 거리에 나와 있는 사진작가는 [사진에 담으려고 자신이 좇고 있는 민간인들만큼이나 살해될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이 훌륭한 기사거리를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당시의 포위 현장을 보도하려는 용기를 냈고, 그러기를 갈망했던 것도 아니었다. - P165

사라예보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던 사진작가들 중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전투가 지속되던 와중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사라예보 주민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참화가 사진으로 기록되기를 원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 P165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이때 그는 몇 년 전 자신이 소말리아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함께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 P165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 행위의] 또 다른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라예보 주민들의 분노에는
인종주의의 기미가 엿보였다. 그들은 보스니아인들이 유럽인이라는 점을 이방인 친구들에게 쉴새없이 지적해댔다. 그렇지만 이 전시회에 체첸이나 코소보, 또는 그밖에 다른 나라들의 민간인들이 겪은 잔악 행위의 사진이 포함됐더라도 사라예보 주민들은 반발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 P166

9.
... ...이 사진 속의 죽은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살아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를 꼭 들려줘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해준다 해도]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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