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부에서 재빨리 흘러나오는 갈색 강물은 상류로 올라왔을 때의 두 배나 되는 속도로 우리를 바다로 데려갔지. 커츠의 생명도 그의 심장에서 재빨리 빠져나와 
거침없는 시간의 바닷속으로 흘러가고 있었어. 지배인은 몹시 차분하더군. 이제 심각한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니 말일세. 그는 포용적이고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어. 그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잘 마무리되었던 것이지. 나는 ‘불건전한 방식‘을 따르는 패거리 중 혼자 남겨지게 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어. 순례자들은 내게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말하자면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걸세. 이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환영들이 침략한 어두운 땅에서 내게 강요된 이 악몽의 선택을, 이 뜻밖의 동반자 관계를 내가 어쩌다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 - P162

커츠가 연설을 펼치더군. 그 목소리! 목소리! 그것은 최후의 순간까지 깊이 울려 퍼졌어. 그 목소리는 커츠의 마음속에 간직된 황량한 어둠을 그 말재주의 장려한 주름 속에 숨길 수 있게 힘을 아끼고 있었던 거야. 아, 그는 몸부림치고 또 몸부림쳤어. 그의 피로한 두뇌의 황무지에는 이제 그림자 같은 이미지들, 그의 꺼지지 않는 고귀하고 고결한 표현력 주위를 아부하듯 도는 부와 명예의 이미지들만 출몰했지. 나의 약혼자, 나의 사업장, 나의 경력, 나의 생각...... 이런 것들이 그가 이따금 감정이 고조될 때 이야기한 주제였어. ... - P162

어느 날 저녁 나는 초를 들고 들어가다 그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여기 어둠 속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깜짝 놀랐네. 촛불은 그의 눈에서 30센티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지. 나는 억지로 ‘아, 말도 안 되는소리 마세요!‘ 하고 중얼거리고는 그의 옆에 얼어붙은 듯이 서서 그를 지켜보았어. - P165

그의 얼굴에 나타난 변화에 필적할 만한 것을 나는 이전에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길 바라네. 아, 나는 감동을 받은 게 아니었어. 매료되었지. 마치 베일이 찢겨 나간 것만 같더군. 나는 그 상아 같은 얼굴에 나타난 침울한 자부심과 무자비한 힘과 비겁한 두려움, 즉 강렬하고 끔찍한 절망을 보았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그 지고의순간에 그는 자신이 경험한 욕망과 유혹과 굴복의 모든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환영을 향해 속삭이듯 외쳤어. 두 번 외쳤는데, 숨결 정도에 지나지 않는 외침이었지.
‘끔찍하구나! 끔찍해!‘ - P165

하지만 보다시피 나는 그때 그곳에서 커츠와 운명
을 같이 하지는 않았ㅇ니. 나는 살아남아서 끝까지 그 악몽을 꾸고, 다시 한번 커츠에 대한 나의 충성을 보이고 있어. 운명이지. 내 운명이야! 인생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것인지. 그것은 하찮은 목적을 위해 무정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놓은 것일 뿐. 인생에서 우리가 기껏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너무 늦게 얻게 되는, 얼마간의지식과 지울 수 없는 일련의 후회뿐이라네. 나는 죽음과 씨름했어. 그것은 더없이 따분한 시합이지. 발아래와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관중이나 환호성이나 영광도 없이, 승리에 대한커다란 욕망이나 패배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없이, 미지근한 회의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에 대한 믿음도 별로 없고 대적자의 권리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없이, 실체가 없는 잿빛 지대에서 치러지는 시합이야. 만일 궁극적 지혜가 그런 형태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생은 우리 중 몇몇이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수께끼인 셈이지. 나는 하마터면 판결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얻을 뻔했지만, 어쩌면 내게아무런 할 말도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굴욕감을 느꼈네. - P167

커츠가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내가 단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세. 그에게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거든. 그는 그것을 말했네. 내 스스로 삶의 가장자리 너머를 슬쩍 들여다본이후로, 촛불의 불꽃은 볼 수 없어도 온 우주를 아우를 만큼광대하고 어둠 속에서 뛰는 모든 심장을 꿰뚫어 볼 수 있을만큼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그는 한 마디로 요약했지. 판결을 내렸어!
‘끔찍하구나!‘ 그는 비범한 사람이었네. 어쨌든 그것은 어떤 신념의 표현이었네. ...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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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나는 나무 아래로 들어섰어. 잠시 그늘 아래서 거닐 생각이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자마자마치 어떤 ‘지옥‘의 음울한 동심원* 안으로 들어선 것만 같은기분이 들더군. 가까이 있는 급류에서 멈추지 않고 한결같이곤두박질치며 들려오는 소음이 바람 한 점 없고 나뭇잎 하나움직이지 않는 수풀의 애절한 정적을 신비한 소리로 가득 채웠는데, 맹렬한 속도로 하늘에 쏘아 올려진 지구의 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리게 된 것만 같았지.

*동심원: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이
동심원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사탄이 있다고 썼다. - P40

검은 형체들은 나무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고, 나무 몸통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거나 땅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어둑한 빛 속에서 반쯤은 모습을 드러내고 반쯤은 그늘에 지워진 채 고통과 포기와 절망을 나타내는 모든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어. 절벽에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나더니 발아래 흙이 살짝 흔들리더군. 작업이 진행 중이었네. 작업 말일세! 그리고 그곳은 작업을 거드는 몇몇 사람이 현장에서 물러나 죽으러 오는 장소였던 거지. - P40

그들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어. 그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었네. 그들은 적이나 범죄자도 아니었고, 이제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도 아니었어.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누워 있는 질병과 굶주림의 검은 그림자일 뿐이었지. - P41

합법적인 기간제 계약이라는 명목하에 온갖 구석진 해안에서 끌려와 편치 않은 환경에 내던져진 채 낯선 음식을 먹다가 병들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나면 기어 나와 쉴 수 있게 허락되었던 거야. 이 빈사 상태의 형체들은 공기처럼 자유로웠고, 거의 공기처럼 희박했어. 나무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 P41

그러다가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니 내 손 바로 옆에 얼굴이 하나 보였어. 뼈만 남은 형체가한쪽 어깨를 나무에 기댄 채 길게 드러누워 눈꺼풀을 천천히들어 올리고는 움푹 꺼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거대하고 공허하면서도 보이는 게 없는 듯한 흰자위가 안구 깊숙한 곳에서 깜박거리더니 서서히 꺼져갔다네.  - P41

그 남자는 젊어보였어. 거의 소년이었지. 하지만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들의나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가. 나는 그 선량한 스웨덴 선장의 배에서 얻어 주머니에 넣어둔 비스킷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손가락이 천천히오므라들더니 그것을 쥐더군. 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다른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어.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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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쌍돛대 유람선 넬리호는 돛을 전혀 펄럭이지 않은 채 닻 쪽으로 움직이다가 정지했다. 이미 밀물이 들어와 있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는데, 배는 하류 쪽으로 내려갈 예정이었으므로 정박한 후 조수가 바뀌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P7

바다로 통하는 템스강의 직선 수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의 시작점처럼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앞바다에서 바다와 하늘은 이음매도 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빛나는 공간 속에서 조수를 따라 흘러온 바지선들의 그을린 돛은 니스 칠을 한 스프리트*를 반짝이며 뾰족하게 솟은 붉은 캔버스 천의 무리를 이룬 채 정지해 있는 듯 보였다. 안개가 깔린 낮은 강기슭은 바다로 평평히 뻗어가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스프리트: 돛을 펴는데 쓰는 작은 園材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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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웃으면서 앉았다.
"그러니까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그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다고 칩시다."
그는 계속했다.
"그래서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현자입니까? 아니면 철학자입니까?"
"아니요,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전파해야 한다고 봐요.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니까요."
"나는 선생님이 인생을 이해하고 고통을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일에 대해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살면서 고통을 당한 적이 있어요? 혹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십니까? 어렸을 때 혹시 맞은 적 있나요?"
"아니요, 부모님은 체벌을 혐오하셨습니다." - P248

"우리 아버지는 잔인하게 저를 때렸습니다.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공무원 생활을 지겹도록 오래 한 끔찍한 사람인데 코는 길고 목은노란 사람이었죠. 아버지 얘기는 이만 하고 이제 선생님 얘기를 하죠. 평생 그 누구도 선생님을 건드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겁을 주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아서 선생님은 황소처럼 건강하단 말입니다. 아버지의 보호 하에 자라서 부모님 돈으로 공부도 하고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20년 이상 무상으로 제공되는 아파트에 살았고, 난방도 전기도 하인도 있는 데다 일도 하고 싶은만큼 해도 되고, 심지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단 말입니다. .. - P248

... 게다가 선생님은 날 때부터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그 무엇도 선생님을 걱정시키지 못하고 그 어떤 변화도 없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일은 준의사를 포함한 다른 개새끼들한테 맡기고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돈을 모으고 책을 읽으면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상한 상념에 빠지거나 (이반 드미트리치는 의사의 빨간 코를 보며 말했다) 술이나마셨죠. 
한 마디로 말해 선생님은 삶을 본 적이 없고 인생을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이라는 것을 접해본 사람이죠. 선생님이 고통을 경멸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놀라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걱정과 삶, 고통, 죽음에 대해 내외적으로 경멸하는 것이나 삶을 이해하는 것과 진정한 행복과 같은 모든 것이 러시아의 게으름뱅이에게 가장 적합한 철학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상황을 본다 칩시다. 뭣하러 참견한단 말입니까? 어차피 둘 다 언젠가는 죽을 거고 때리는 사람이 실은 아내를 때리면서 자기 스스로를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요? 술독에 빠져 사는것은 어리석고 보기 좋지 않지만, 술을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는단 말입니다. 어떤 여편네가 오는데 이가 아프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통증은 통증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것이고, 누구나살면서 병에 걸리기 마련인 데다 우리 모두는 결국 뒈지는데요. 그러니 여편네한테 내가 사색에 잠겨서 보드카 마시는 걸 방해 놓을생각 말고 꺼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 P249

... 젊은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얻으려고 한다 칩시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
답하기 전에 생각을 좀 할 텐데 선생님은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거나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식의 준비된 대답을 해준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물론 해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 철창에 갇혀서 고통당하는데 이 상황은 아주 좋은 데다 합리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병실과 따뜻하고 쾌적한 선생님의 서재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달리 하는 일도 없고, 양심에 거리낌도 없으며, 자신을 현자라고 느낄 수도 있는 이 얼마나 편리한 철학이란 말입니까... 아니요, 선생님, 이것은 철학도 사유도, 폭넓은 사고도 아니며 게으름이고 고행 수도이며, 불분명한 의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입니다... 맞아요. 바로 그거죠!" - P250

이반 드미트리치는 또다시 화를 내며 말했다.
"고통을 경멸한다지만 손가락이 문틈에 끼이면 분명 목청껏 소리를 지를 걸요!"
"그건 겪어봐야 알겠죠."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온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선생님의 몸에 마비가 오거나 어떤 바보나 뻔뻔한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위를 이용해서 선생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는데도 그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선생님으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조언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실까요?"
"독특한 발상이군요." - P250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흘러내리는 듯한 달빛이 쇠창살안으로 들어왔고 바닥에는 그물 모양을 한 그림자가 보였다. 무서웠다.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또 맞을까봐 두려움에 숨죽이며 누워있었다. 마치 낫을 든 누군가가 낫으로 그의 가슴과 창자를 찌르고 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통증으로 인해 베개를 깨물고 이를 악물었다. 혼란속에서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섭고 괴로운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지금 달빛을 받아서 검은 그림자 같은 형상을 한이 사람들은 이 같은 통증을 수년째 매일 겪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는 20년이 넘도록 이러한 사실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그는 고통을 몰랐고, 통증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니 그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니키타처럼 거칠고 완고한 그의 양심은 가책을 느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한을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소리치며 니키타를 죽이고 호보토프와 감독관과 준의사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속히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슴속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두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운과 셔츠의 가슴 부분을 잡아당겨서 찢고는 의식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 P286

다음날 아침 그는 두통과 이명을 느꼈고 온몸이 아
팠다. 어제 자신이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부끄럽지는 않았다. 어제는 겁이 나서 달빛조차 두렵긴 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다. 
이를테면 철학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가진 불만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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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로서는 절대 알지 못했을 작품을 읽게 된 거다. 참 감사한 일이다!










1
이 반석 위에서
잘난 체하는 건 좋지 않지만, 애초의 내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았다. 
중서부의 외진 곳에 있는한 야외 행사장에서 사흘 동안 정상급의 크리스천 밴드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이 모이는 행사였다.  - P11

오르는 길은 멀고 가팔랐다. 꼭대기에는 뒷마당의 데크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데크는 계곡 쪽으로 삐져나와 그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전망을 제공했다. 아이들이 마치 여우원숭이들처럼 난간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양해를 구하며 가장자리까지 다가갔다. 바로 밑은절벽이었다. 어두울 무렵이었는데, 갑자기 더 어두워지더니아주 캄캄해졌다. 무대 양쪽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 P70

핀으로 뚫은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것 같은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어렸을 때 우리도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에서 이런 촛불 의식을 하곤 했다.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부터 불을 밝히고, 점점 가운데로 번져 들어오는 것이다. 촛불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지는데, 그 효과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마지막에 가면 절반의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이 들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면서 마치 누군가가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딱 그랬다. - P71

구름이 걷히면서 밝은 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의 나무들에는 온통 반딧불이 천지였고, 내 앞과 저 멀리아래에는 타오르는 촛불들의 작은 불꽃 수만 개가 카펫처럼펼쳐져 있었다. 나는 점멸하는 불빛들로 가득한 어둠의 영토안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 P71

물론 나는 뉘른베르크*를 떠올렸다. 하지만 거기 있었던 동안의 대부분은 데리어스, 제이크, 조시, 법, 리터, 그리고 피위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이들, 내가 사랑하게 된 이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데리어스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말은 내가 여기에 쓴 내용 가운데 가장 진실한 말일 것이다. 그들은 미쳤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했다.

*뉘른베르크: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도시이자 독일 중앙부에 위치한 도시라 나치가 전당대회 개최지로 활용했다. 대형 군중 집
회들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 P71

그리고 나로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그 일의 완전무결한 숭고함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것과, 만약 그것이 진실이었을 때 그걸 믿을 수 있을 정도로당신이 견고하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저 아래 계곡에서 빛나고 있는 불빛들 가운데 여섯 개는 그들의 것이었다. - P72

2
연기 속에 잠긴 두 발
1995년 4월 21일 아침, 내 형 워드(엘스워드의 애칭)는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한 차고에서 마이크를 입에 갖다댔고, "죽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말 그대로, 감전당했다.  - P74

형과 형네 밴드 무비고어스는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테네시에서 콘서트를 하기 위해 시카고에서 오는 길이었고, 리허설을 위해 렉싱턴에 하루 머물렀다. 형은 불과 이틀 전에 내게전화를 걸어 혹시 콘서트에서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만났을 때 내게 들려줬던 신곡을 불러달라고 했다. 우리의 휴가는 늘 같은 식으로 끝났다.
둘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각자 만든 새 곡들을 서로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형제끼리 화음을 맞추다보면 생물학적으로 뭔가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 P74

내가 신청한 이즈 잇올 오버 Is It All Over>는 무비고어스의 전형적인 곡들과는 좀 달랐다. 그 곡은 밴드가 자신들의주특기로 발전시킨 중독성 강한 팝록에 비하면 단순하고 진지했다. 이 변화는 다른 밴드 멤버들에게 여전히 익숙하지않았고, 워드가 첫 소절 "다 끝난 건가? 난 신문을 훑어보고 있어 / 그 여자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을 부르면서 밴드를 이끌어나가던 순간, 갑자기 전기가 흘러 형의몸을 관통했다.  - P75

전기는 형이 쥐고 있던 마이크를 자석화시켜작지만 강력한 미사일처럼 형의 가슴에 달라붙게 하고, 기타의 첫 번째 줄과 프랫을 형의 손바닥에 화인처럼 찍어놓고,형의 심장을 멈춰 세웠다. 형은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갔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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