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왜 공화당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나~5장 족쇄를 찬 다수˝

2020년 재선 투표결과 패배를 거부하고 유권자들을 독려하여 사상 초유의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을 일으킨 트럼프와 미국 공화당의 행태를 알 수 있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을 어김으로써 민주주의를 한걸음 더 퇴보하게 만드는 트럼프와 공화당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원칙, 패배를 깨끗이 인정해야 한다는 기본원칙, 정치적으로 손해가 날 때에도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관계를 끊는다는 민주주의 행동의 세번째 원칙도 어겼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와 공화당의 노선은 바뀌지 않았다.

5장 족쇄를 찬 다수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이 꼭 옳은 선택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에 반하여 힘없는 소수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원칙(반다수결주의 원칙)이 얼마나 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인지를 알게 되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선거 결과를 부정한 트럼프와 측근들
앞서 우리는 민주적인 정당이 따라야 할 세 가지 기본 원칙을살펴봤다. 민주적인 정당은 승패를 떠나 공정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동원하는 방안을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화당은 어땠는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원칙은 없다. 선거에서 패했을 때, 정당은 경쟁자의 승리를 인정하고, 조직을 재편하고, 잃어버린 다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한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P175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선거 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훼손되었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선 토론을 포함해서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이 패한다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P176

2016년 보통선거에서 패한 이후로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불법적으로 투표한 사람들의 수백만 표를 제외한다면 나는 투표에서 이겼다." 또한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두자트럼프는 사기를 주장했다. " - P176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선거 결과를 부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020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이번 선거를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정 선거뿐입니다." 트럼프는 가을선거 운동 기간 내내 그 주장을 되풀이했다.
- P176

2020년 11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선거 패배에 대한 인정을 거부했다. 선거 당일 늦은 밤, 투표 집계 결과가조 바이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미국 사회에 대한 사기이며(・・・) 우리는 선거에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 
이 선거는 우리나라에 대한 거대한 사기다" "트럼프는 자문들의 만류에도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2개월 동안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으며, 수십 명의 주지사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 주 의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선거 결과를조작하거나 무효화하도록 압박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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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왜 공화당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나








재건주의가 막을 내리고 한 세기가 흐른 1963년 11월, 린든 존Lyndon Johnson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의회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평등한 권리에 대해 충분히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백 년, 혹은 더 오랫동안 논의했습니다. 이제 다음장을 써 내려갈 시간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법전에 기록해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 P137

아이러니하게도 존슨의 민주당은 남부 보수 진영을 넘어선 자유주의 계파와 더불어 시민권을 옹호하는 정당이 되었다. 재건시대가 미국의 "두 번째 건국"이라면, 시민권법(1964)과 투표권법(1965)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법원의 판결과 개혁의 노력은다인종 민주주의를 위한 탄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 "세 번째 건국"이었다. - P137

도널드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엎으려는 시도를 감행하기 한 달 전, 공화당 핵심 상원 의원인 마이크 리Mike Lee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이렇게 의문을 던졌다. "자유와 평화, 번영과는 달리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트위터에다가는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인류가 살아가는 세상이더 번영하길 기원한다. 그러나 계급 민주주의가 이를 가로막을것이다." - P139

미국의 공화당은 수십 년간 영국의 보수당이나 캐나다의 보수당, 혹은 독일의 기독민주당처럼 주류 중도 우파 정당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 - P139

전 세계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는 전 세계 주요 정당들을 대상으로 매년 "반자유주의 illiberalism" 점수를 발표한다. 이 점수는 다원주의와 시민권, 야당에 대한 관용, 정치적 폭력에 대한 거부와 같은 민주주의규범으로부터 정당이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 P139

서유럽 지역 보수 정당들 대부분 점수가 아주 낮다. 이 말은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가 아주 강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공화당도 그랬다. 적어도 1990년대 말까지는 말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공화당의
반자유주의 점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2020년에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기준으로 미국의 공화당은이제 "일반적인 중도 우파 여당보다 튀르키예의 정의개발당 Adaletve Kalkinma Partisi, AKP 이나 헝가리의 피데스와 같은 독재 정당과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 P140

왜 공화당은 다른 길로 나아갔던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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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1》
세계 제2차 대전의 전환점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종군기자로 참전한 경험이 이 책 전반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전쟁의 실상이 문장마다 가득하다.
전쟁조차도 아름답고 웅장하게 만들어버린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을 읽는 기쁨을 맘껏 누리고 있다.

11
연기와 화염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유리되고 굉음으로 귀가 먹먹해진 병사의 직관이 참모부가 지도 앞에서 도출한 전투의 전체적 결말에 대한 판단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 P59

놀라운 변화와 함께 전투는 전환의 순간을 맞는다. 공격하던 병사가 마침내 목표 지점에 다다라 멍한 상태에서 주위를 돌아보다가, 자신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오던 이들이 더이상 보이지 않음을, 그동안 내내 혼자이고 나약하고 바보 같아 보이기만 했던 적병이 이제는 다수이며 따라서 자신이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 P60

그 상황 속에 있는 이에게는 너무도 분명한 이 전환의 순간, 멀리서 이를 보고 예견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알 수도,설명할 수도 없는 이 순간에 지각에 깊은 변화가 일어난다. 
용감하고 현명한 ‘우리‘는 소심하고 허약한 ‘나‘로 바뀌고, 운 나쁜 사냥감으로만 여겨지던 적은 끔찍하고 위협적인, 뭉쳐진 ‘그들‘로 변모하는 것이다. - P60

성공적으로 저항을 제압하며 나아온 이 병사에게 그때껏 전투의 모든 사건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포탄의 폭발도, 기관총 연발사격도 그랬다. 이제 저자가 엄폐물 뒤에서 총을 쏘네, 지금 달아나는구나, 달아나지 않을 수 없지. 그는 혼자이고,기관총과 단절되어 있고,
 그의 옆에서 역시나 단절된 채 총을 쏘는 병사와도 단절되어 있으니까.  - P60

하지만 나, 나는 우리지, 나는 거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보병대 전체야, 나는 나를 지지하는 포병부대야, 나, 나는 나를 지지하는 전차들이야, 나는 우리 공동의 전투를 비춰주는 조명탄이야. 그랬는데 이제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나는 혼자가 되고, 서로 분리되어 나약하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 적의 소총과 기관총과 대포의 화염이라는 무시무시한 단합체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하나가 된 적은 이미 무적이다. 살아남을 길은 달아나는 것, 머리를 감추고 어깨와 이마와 턱을 가린 채 내달리는 것밖에 없다. - P60

한편 밤의 어둠 속에서 기습을 당해 무력감과
 고립감만을 느끼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을 파괴한 적의 단합체를 분쇄하고 자신들만의 단합체를, 승리의 힘을 품은 자신들 고유의 단합체를 느끼기시작한다.
종종 전쟁을 예술이라 부를 권리를 부여하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변환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 고립과 단합의 감각 속에, 고립의 의식으로부터 단합의 의식으로 향하는 이 변환 속에 중대들과 대대들이 감행하는 야간 돌격만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군 전체와 국민 모두의 승패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 P61

전투의 참가자들에게 거의 완전히 잊히는 하나의 감각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 감각이다. 새해맞이 무도회에서 아침까지 춤을 춘 소녀는 그 시간이 빨리 갔는지 아니면 천천히 흘렀는지 묻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한다. 또 실리셀부르그 정치범 감옥에 스물다섯해 동안 감금되었던 사람의 소회는 어떤가. "감옥에서영원을 보낸 것 같네. 하지만 동시에 몇주 잠깐 살았던 것도 같아."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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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지 위에 안개가 자욱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늘어선 고압전선들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땅은 새벽녘의 습기로 축축했고, 붉은 신호등이 켜질 때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불그레한 얼룩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수용소의 숨결이 느껴졌다. 수용소를 향해 뻗어 있는 전깃줄과 도로, 철로의 선들이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었다. 이곳은 직선들로 가득한 공간, 대지와 가을 하늘과 안개를 자르는 직사각형과 평행사변형의 공간이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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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의 아버지 에드워드가 개새끼였네..... 아내인 엘리너에게 하는 행동을 봤을 때도 이미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아들 패트릭에게 한 행동은 정말 인간이하다. 넌덜머리나는 새끼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 대체 언제 죽지? 앞으로의 내용은 모르지만 비명횡사하거나 돈 없이 그지꼴로 죽거나 모두에게 버림받는 인생이 남아있다면 더없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국상류층의 위선과 폭력, 학대, 냉소, 신랄한 풍자 등등의 수식어들로 이 책을 말한다. 하지만 난 이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을 좋아하지는 못할 거 같다.

대화도 한결같이 쓰레기 같다. 인간들이 쓰레기라 그런건가? 작가 자신도 어릴 때 이런 쓰레기 같은 일들은 겪었을 거 같은 생각이 문든 든다.








"거기 그대로 있어." 데이비드가 일어나 노란색과 흰색의 파자마 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패트릭은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흐릿하게, 그리고 곧 좀 더 분명하게 자기가 처한 위치의 굴욕을 인지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에서 바지는 무릎에 뭉쳐 있고, 이상하게 등뼈 꽁무니가 젖어 우려되었다. 패트릭은 피가 나는가보다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칼로 등을 찔렀나 보다 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서 휴지 한 움큼을 가지고 돌아와, 패트릭의 궁둥이 사이로 조금씩 흐르기 시작해서 점점 차가워지는점액을 닦아냈다.
"이제 일어나도 돼." - P113

"중산층 사람들이 니컬러스 당신이 말하듯이 중산
층에서 멀어질 수 있어요?
"그럼요. 빅터가 아주 두드러진 사례죠." 니컬러스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빅터는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여자들은 그러기가 더 쉽죠." 니컬러스는 말을 계속했다. "결혼은 여자를 처량한 환경에서 넓은 세상으로 들어 올려주는 축복이에요." 그리고 브리짓을 흘긋 보았다. "대타가 필요할지 모를 사람들에게 그림엽서나 보내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부류의 호모가 아니라면, 실제로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죠. 아주 매력적이고 박식해야 하기도 하고." 
니컬러스는 빅터를 안심시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 P180

"니컬러스는 물론 전문가지, 몸소 여러 여자를 밑바닥에서 건져 냈으니까." 데이비드가 끼어들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죠." 니컬러스가 동의했다.
"밑바닥에 끌려 들어가서 치른 희생은 훨씬 더 컸지 않은가,니컬러스?" 데이비드는 니컬러스에게 정치적 굴욕을 상기시켰다. "어쨌거나 자네는 밑바닥이 마음이 편한가 보네."
"기가 막히네요, 선생님. 나처럼 그렇게 시궁창에 내려갔다 와 보면 밑바닥은 장밋빛 인생 같아 보인답니다요." 니컬러스가 런던 토박이 사투리를 웃기게 흉내 냈다.
- P181

엘리너는 최고라는 영국인의 예의에 그토록 높은 비율의 노골적 무례함과 검투사의 경기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게 여전히 납득되지 않았다. - P181

 남편이 그 자유를 남용한다는 걸 아는 한편 그
몰인정한 언행에 자기가 간섭하는 게 또한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약점이나 실패를 상기시켜 줄 때면 엘리너는 희생자들의 기분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들을 구해 주고 싶은 욕구와 남편에게 유희를 망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은, 똑같이 강한 욕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 갈등에 몰입하면 할수록 더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틀릴 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P182

브리짓은 무화과를 조금 입에 물고 깨지락거렸다. 앤은 브리짓을 지켜보면서 여자라면 누구든 언제고 자문할 때가 있기 마련인,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라는 해묵은 물음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앤은 브리짓을 어느 동양폭한의 발치에 축 늘어져 있는, 목걸이를 단 노예로 생각해야 할지, 점심에 먹지 않고 남기려는 애플파이를 먹도록 강요당하는 반항적인 여학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93

앤은 니컬러스가 그전보다 더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니컬러스는 기껏 젠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늘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어 보이지 않으려고 늘 젠체하는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자기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검은 늪지대의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데이비드는 바로 그 퇴행한 실패자들 가운데서 고등한 종種일 뿐이었다.

*영화 <해양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에 나오는 선사시대 괴물 - P193

엘리너의 짓밟힌 표정에도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다만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패트릭 생각이 나자, 앤의 냉담한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똑같은 결론을 내리게하는 자극제가 될 뿐이었다. 앤은 이 사람들과 더 이상 어떤 관계도 갖고 싶지 않다는 것, 빅터는 일찍 가는 것을 당황스러워하겠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앤은 빅터를 쳐다보고, 눈썹을 추켜올리고 문 쪽을 향하는 눈짓을 했다. 인상을 찌푸릴 줄알았던 빅터는 웬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치 후추를 갈아넣을까요, 라는 말에 그러라는 듯이. 앤은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엘리너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안됐지만 우리는 이만 가 봐야겠어. 긴 하루였어. 자기도 분명 피곤할 거야" 하고 말했다.
"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에 진도 좀 나가야 해서요." 빅터가 단호히 말하고, 의자에서 무거운 듯 몸을 일으켰다. - P194

빅터는 잠든 보초를 깨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식당 문을 살살 닫았다. 빅터가 앤을 보고 웃자 앤도 마주 웃었다. 그들은 멜로즈 부부 집을 떠나는 게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불현듯 깨달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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