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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둥둥둥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쫓아 오래고 긴 여행을 떠났었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많이 주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듯도 하다. 터기 민요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하루키상은 이 책의 모두에서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여온 것이다...'고 여행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눈먼 점쟁이나 신탁을 받은 무녀같은 이바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멋있고 매력있는 말이자 유혹의 언사다. 머릿속에 벌이 잉잉거리는 것처럼, 어떨 때는 정말 가슴속에선가 어디에선가에서 환청같은 북소리가 둥둥둥 들려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그런 시기가 있다. 어떤 이는 그 북소리 장단에 맞춰 짐을 챙기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굳이 못 들은 척 외면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북소리외에 떠남의 또 다른 이유로 하루키상은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을 들고 있다. 십진법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항상 20, 30, 40 등 똑 떨어지는 나이에 민감하다. 최영미와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30세에 집착했고, 공자같은 성현도 나이대별로 도달해야 할 어떤 지경를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같은 필부들 또한 그 똑떨어지는 나이가 되면 그 나이에 맞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초조와 불안에 허둥거리는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어떤 나이가 되면 무언가 곧 이루어 질 것만 같은 헛된 기대와 비전을 품게도 된다. 누군들 모르겠나.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마흔이 아니라 여든이 되었다고 해도 그 무엇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오래된 문화유산이나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을 섭렵하는 일반 여행기와는 다르다. 하루키 자신의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다. 머릿속에 붕붕거리는 두 마리 벌에 대한 이야기나, 여행중에 겪었던 소소한 감상들, 혹은 알게되었던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사소하고 별 중요할 것도 없는 그런 일상사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만이 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다. 여행중에 쓴 소설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과 부를 동시에 얻었으니 정녕코 복받은 사람 아닌가.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어디선가 희미하게 북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하지만 새장에 갇힌 새나 한가지니 언젠들 떠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