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성은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이른바 임진왜란을 통해 얻은 축성술로 1601부터 1607까지 7년에 걸쳐 쌓은 성이다. 본인 보무도 당당하게 입성하던 날, 성내에는 환호하는 인파대신 축성 400년 기념 어쩌고 하는 플랜카드만 쓸쓸히 펄럭이고 있었다.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성중 하나라고 한다.
성내에 수령 수백년 넘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 놀랐다. 일본의 성이라는 것이 성 하나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성내가 굉장히 넓다는 데 또 놀랐다. 말하자면 지방영주가 사는 일종의 궁전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이묘인 성주가 기거하는 곳을 천수각(텐슈카쿠)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역사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전통과 긍지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구마모토 성의 천수각>
7년간에 걸친 조선전쟁에서 히데요시의 명을 받들어 열심히 싸운 사람은 가등이었다. 소서행장(코니시 유키나가)은 전쟁이 속히 끝나기만을 바라 기만적인 화친을 추진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는 험악했고, 전쟁의 실상을 모르는 히데요시는 오히려 가등을 본국으로 소환하여 문책했지만 조선전쟁에서 히데요시의 충신은 가등이었다.
히데요시가 죽고, 조선전쟁이 끝나고......그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등은 도쿠가와의 동군에 합류하여 히데요시의 총신 미츠나리가 총대장인 서군에 참전한 코니시와 대결하게 된다. 전쟁은 동군의 압승으로 끝나고 코니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는 기세를 몰아 결국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제거하고 천하를 손에 넣게 된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열심히 빚어놓은 "천하"라는 떡을 꿀꺽한 사람은 도쿠가와였다. 세상사가 그런 것이다. 가등이 끝까지 히데요시의 충신이었던 것은 아니다.
<구마모토성 입구에 있는 가등의 동상>
<구마모토 성내 전시실에 보관되어 있는 가등의 군선(전쟁때 쓰는 부채)>
<구마모토성 내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 귀부인들이 타던 가마>
<밤의 구마모토(웅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