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중, -선암사-
저녁에 오랜만에 친구가 불쑥 왔다. 김장김치와 참기름과 초코렛을 가지고. 언제 방문해도 그저 반가운 사람이기에 거실에서 책을 나누고 하프문 베타가 너무 예쁘다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밥을 먹기 위해 나와서 산 마지막에 있는 주막 보리밥집에서 보리밥과 주꾸미볶음과 서울막걸리 반병을 나누어 먹고..거리에 있는 붕어빵을 사서 들려 보내며 성탄 무렵의 해후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사랑하는 친구의 신랑이 붕어빵을 미스강(함께 모시고 사는 장모님의 성함이 강분조님이신데 사위는 늘 '미스강'이라 부른다~^^)과 함께 너무 잘 먹었다며..바로 이 詩를 낭송했다. 약간 살짝 당황하였지만 너무 멋진 목소리에 잘 들으니 시인이 따로 없더라. 언젠가 자신이 너무 어려울 때 어느 신문에서 이 詩를 읽고서 참 위로가 되었는데..내가 자신의 부인에게 선물한 시집에서 이 詩를 발견하고 다시 읽어 보니 더욱 기가 막히게 좋더라면서. 참. 좋은 詩란 이런 것일 것이다. 아무런 문학적 취향이 없는 남자들이라도 거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났던 대한민국의 가장에게도 힘과 위로가 되었고 그 시간을 한참 지나서도 여전히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와 낭송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문득 '詩는 힘이 세다'라는 진실과, 사소한 거리의 밀가루빵인 초겨울의 붕어빵과 詩를 생각하며 무척 감사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