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침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에서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난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수한 언어의 숨결을 쏟아 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자리

 

   언제나 비어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곽재구, <참 맑은 물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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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구영신(送舊迎新)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 정호승의《내 가슴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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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궁금한 이야기Y'라는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보았는데 거기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베르너증후군(조로증)을 앓고 있는 57세의 장인철이라는 분의 이야기다. 베르너증후군은 남들의 하루가 그에게는 3일만큼 노화돼 가고 있는 병인데 23kg의 체중과 시력도 청력도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치아도 하나도 없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장인철씨가 정육점에 가서 한우 3만원어치를 산다. 처음 사보는 고기라고 웃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어느 할머님댁엘 가서 고기를 구워 잡수시라고 전해드리고 냉골인 방바닥을 보고 또 기름차를 불러 23만 5천원어치의 기름을 넣어 드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전 재산은 79만원이다. 그 남은 돈을 가지고 첫번째로 한 일은 낡고 시끄러워 윗집에도 아래집에도 소음 피해를 주었던 세탁기를 새로 바꾸고, 십여 년간 신세만 진 이웃 친구들에게 밥을 사며 8만원을 쓰고 자신을 위해서 생전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는데 20만원을 10만원으로 깎아줘서 10만원을 썼다. 그리고 여직껏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어머니를 40년만에 뵈러 요양원으로 갔다.그리웠던 어머니를 뵙고 나머지 돈을 어머니께 다 드리고 돌아왔다. 며칠후 다시 찾아간 장인철씨에겐 다시 200여만의 돈이 통장에 들어있다. 장인철씨의 버킷리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후원자들이 보내 온 성금이라 한다. 그는 또 그 돈을 들고 다시 나선다. 부모 없이 두 형제만 살고 있는 소년들의 집으로 가서 " 자 나가자"하며 쇼핑몰에 데려가 옷과 게임기를 사주며 그들의 산타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디선가 살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라고 다독여 주었다. 원망보다는 그리움으로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일이 나에게 힘이 됨을 가르쳐 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손가정을 찾아가 4살짜리 손녀에게 새옷을 입혀주고 나머지 돈은 할머니께 드리고 나오는데 그집 할머님이 없는 찬이라도 밥 먹고 가라고 그를 불러 앉혔다. 40년 동안 늘 혼자 밥상을 앞에 두고 밥을 먹었던 인철씨에겐 누구와 함께 밥상을 한 일은 처음이라 했다. 이제 돈을 다 써서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밥만 먹고 이렇게 살면 되니까 괜찮다"고 환히 웃었다. 그의 살 날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저 나눔의 미담일지도 모르지만 평생을 홀로 고통과 소외속에서 살았던 그 분의 이런 마지막 나눔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모든 것을 다 나누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것도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우한 삶에서. 그래서 삶은 어쩌면 둥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게 둥글게~둥글게 둥글게~우리 함께 손을 잡고 모두 모여서. 그래서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구나. 작은 이야기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던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올 한해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잘 만큼 잤었고 먹을 만큼 먹었고 읽고싶을 만큼 읽었고 꼭 해야할 만큼 했으며 꼭 만나고 싶을 만큼 만났었다. 한 마디로 본능대로 살았던 것이다. 아쉽지만 사실이다.

 오늘 장인철씨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생각이 든다.

 2008년에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만이 나왔던 영화 '버킷리스트'나 올 여름 김선아가 나왔던'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버킷리스트가 많았던 것 같은데 내겐 그리 많진 않은 것 같다.

 천성이 나무늘보여서 그리 새롭고 먼 길을 가보고 싶지도 않고 꼭 해보고 싶은 일도 그리 많지 않고 그렇다고 새롭게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참 이렇게 쓰다 보니 정말 비생산적인 인간이자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임에는 분명한데 어쩔 수 없다. 그냥 생긴대로 살아가야지.

 그래도 굳이 생각을 해보니 몇 가지가 있긴 하다. 첫 번째는, 글을 깨우치고 부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쭈욱 이대로 책이랑 즐겁게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쩌다 있는 강의를 마치고 색연필로 밑줄 친 원고를 교환하는 떨리는 기쁨을 나누는 F.S와 Y ,H와 여행을 다녀 오는 일이다. 오랜 시간을 영혼으로 만났지만 함께 여행을 가 본 적은 없네. 사람이 풍경이 되지 않는 어느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흰 포말과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밤새 소주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쓸쓸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지막 친구가 되는 일이다. 정말 희망사항이지만 마지막 소망은 꼭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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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변화


자기 삶의 궤적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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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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