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을 아는 것의 힘 정진홍의 사람공부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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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삶 속에서 나 다운 삶을 찾아라!

   “그렇게 10년 동안 5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을 마주했습니다. 때로 그 사람 생각에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그의 삶의 결정적 순간을 나의 삶의 한 순간으로 옮겨와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의 선택과 결정에 그리 어렵지 않게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정말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조금씩 배우고 깨우쳤습니다.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 차이가 지속될 때 비로소 그는 어떤 삶을 살았든 관계없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그의 가치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로 국내 경영계에 ‘인문학 바람’을 몰고 왔던 정진홍이 이제 사람을 이야기한다. ‘인문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는 부제로 <정진홍의 사람공부>라는 책을 폈다. 한눈에 보면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짧은 위인전’이라 해야 할까? 주인공들은 ‘위대한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의 저마다 굵직한 삶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 배우에서 개그맨까지 소설가에서 기업가도 등장한다. 심지어 잘나가는 ‘나가수’의 인순이도 이 책의 주인공이다.  
   “결국 삶이란 사람과의 뒤엉킴이고 사람과의 뒤섞임이며 사람과의 씨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삶을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궤적에 다름 아닙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文, 사史, 철哲의 인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욱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던가? 국내 경영학이 인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역시 ‘사람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소비자와 경쟁자를 보다 더 잘 알고 싶어서, 그리고 내 직원과 나를 알고 싶어서 틈만 나면 그들은 인문서를 펼쳤다.

   얼마 전 삼성그룹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채용키로 하는 등 인문학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그 발단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문학이 경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 “기업이 기술과 가격 차별화만으로 경쟁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며, 인문학이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하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소비자가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열광하는 이유는 첨단기술과 새로운 기능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주커버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페이스북을 만들어냈는데, 개발 초기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해 보자‘는 상상력으로 페이스북을 개발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마크 주커버그의 개발 배경에는 그의 인문학적 통찰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후에도 ‘우리는 기술 회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문학적 상상의 세계를 페이스북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편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지난 iPAD 2의 프레젠테이션에 “애플의 창의적인 IT 제품은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글 역시 올해 신규 채용자 6000명 가운데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채우기로 하는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처럼 ‘인문학 공부’가 CEO나 임직원 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맨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모두가 자연스러운 소통이 될 만큼 인문학적 이해가 충분할 때 비로소 인문학이 통찰력을 발휘해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에 가치를 제공할 만해진다.

   하지만 인문학의 경영 접목에 대한 국내의 현실은 국내 최고경영자(CEO) 다수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정도랄까? 실제 접목사례는 임직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통해 소양을 쌓게 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니 ‘수박 겉핥기’요 그들의 아는 체란 ‘지식의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CEO나 임직원이 아닌 우리, 즉 평범한 일반인을 겨냥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백만원이 훌쩍 넘는 유료 교육 사이트 SERI CEO 에서 ‘정진홍의 감성리더십’ 코너를 진행중인 명강사 정진홍 교수. 그가 강의를 준비하고 공부한 내용들을 종합해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0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약 500명의 사람을 ‘공부했다’고 말한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 자신의 직업에서 궤를 뚫고 있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궤적 속으로 들어가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이다.  

   “결국 사람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내가 나 되기 위한 것입니다. 결코 누군가를 닮고 따라하는 것에 그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대한 경탄만으로 내 인생에 대한 박수를 대신하자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내가 나 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되기 위한 몸부림이 곧 인생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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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남을 보고 배우고 따름’은 곧 ‘내가 나 되기 위해서’라 말한다. 남 사는 것을 보는 과정을 포함하고 그 사람과 관련된 세계를 읽음으로써 배움과 깨달음을 내 안에 이식하고 뿌리내리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체화體化라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차별화‘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는 참으로 모호하다. 저자는 차별화를 ‘남들과 다름’이라고 해석하고 이 의미를 ‘튀는 것’과 비교했다. 즉 튀는 것은 다름을 모방하고 그 차이를 위장할 수 있지만 진정한 다름의 가치와 차이의 의미를 드러내진 못한다. 왜냐하면 ‘다름’이라는 것은 내 속의 것이 우러나서 드러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각각의 사람들의 모습을 공부하고 체화함으로써 자신의 레퍼런스(reference)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레퍼런스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그 사람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총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자신의 레퍼런스만큼 세상을 알고, 보고, 느낀다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키워야 하고 그것은 바로 사람을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공부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공부가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적 지식을 갖췄다면 이를 바탕으로 ‘사람’에 주목하고 다양한 인간군의 삶의 통찰하고 그 엑기스들을 체화하라고 이 책에서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체화란 구체적으로 뭘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수많은 위인들의 전기와 평전들을 읽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성공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런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런 위인들을 마냥 부러워만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아, 왜 나는 이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할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런 ‘성공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두 번째는 훌륭한 인물 모두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공스토리를 접하면서 오늘의 그들이 있게 한 결정적인 ‘무엇’에 주목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또한 ‘성공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위인들에게 자연스레 터득한다. 아울러 ‘오늘의 시련은 성공을 위한 단계일 뿐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습득합니다. 읽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습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체화’인 것이다. 

   "공부란 본래 몸공부입니다. 소림사의 선사들이 참선에 용맹정진하기 위한 몸공부의 일환으로 공부工夫 즉 쿵푸가 탄생했듯 이 모든 공부는 관념의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놀리는 행위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공부가 내 안에서 체화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읽어낸 우리는 크고 작은 모험과 도전을 통해 레퍼런스의 씨앗들을 발아시키고 그것을 내 안에 뿌리내리게 만듭니다. 체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본의 소설가, 특이하게도 그는 매일 아침 달리기로 하루를 열고,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톤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짧은 인생,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나는 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마라톤 풀코스는 20회 이상 완주를 했고, 100킬로미터 울트라 마라톤도 완주하는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이 정도의 정보는 하루키 마니아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정진홍 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하루키는 왜 달리는 것일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는 ‘하루키에게 있어 달리기는 글쓰기와 닮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흔히 우리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 하루키는 마라톤 같은 인생을 어떻게 달릴 것인지 온 몬으로 느끼면서 그 느낌 그대로 세상에 수많은 책을 내놓았거라는게 그의 말이다. 그저 취미로만 보였던 하루키의 달리기가 ‘오늘의 하루키’를 있게 한 무기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루키에게 있어 달리기의 의미를 아는 것, 그래서 나도 그처럼 달려볼까? 시도한다면 이것이 독자인 내게는 체화體化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마천의 <사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이 2000년 전부터 수많은 선현들에 의해 읽힌 <사기>에 비할 바야 못되겠지만 여러므로 닮은 데가 많다. <사기>는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들과 사건의 기록이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역사적인 영웅들이 겪는 고충 들을 담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이야기한 것이 <사기>이다. 사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겪어왔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정진홍의 사람공부>은 저자가 10여 년간 약 500여 명의 인물들을 직간접적으로 연구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65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남과 다름’을 알게 되고, 진정한 나다움을 알게 한다. 읽다보면 ‘현대인에게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고, 독자 개개인은 틀림없이 ‘나만의 체화할 무엇’을 사람공부하면서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한다면 ‘나다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찾을 수 있을까? 난 존 우드John Wood라는 청년을 공부하면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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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너레이션 -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
레이철 보츠먼 & 루 로저스 지음, 이은진 옮김 / 모멘텀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기업들이여,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협동소비를 대비하라!

일본과 하와이 사이, 태평양이 끝나는 지점에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마치 섬처럼 떠다니고 있다. 텍사스 면적의 2배이며, 두께는 30미터 정도로 두껍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쓰레기 섬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바다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쓰레기 더미를 연구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인 찰스 무어는 전체 바다의 약 40퍼센트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면적은 어림잡아 “지구 면적의 1/4”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해외토픽에서 만날 법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에 의하면 2011년 국내의 바다쓰레기 발생추정량을 14만 톤으로 보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지난 해 1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양은 369만8천 톤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어마어마한 양이 그마나 전년인 2009년보다 9.2% 감소한 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평양 거대 쓰레기지대를 비롯한 쓰레기 처리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은 현대 소비지상주의가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무시해왔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것일까? 하고 연구를 한 기록에 의하면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한 명의 아이가 한 명 태어나서 평균 80년을 산다면, 물 250만 리터, 나무 1,000 그루, 가솔린 21,000톤, 강철 220,000 킬로그램, 전기 80만 와트를 쓴다고 한다.


 

   <위 제너레이션>(모멘텀)은 이러한 소비지상주의를 대체할 대안과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알려주는 책이다. 빌려주는 사업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이야기한 책 <메시Mesh>(21세기북스) 같은 맥락에 있는 책인데, 저자는 그보다 한 발 더 앞서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money-code'는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협동소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원제목은 What's mine is yours. ’내 것이 곧 네 것‘ 이다.  

소비지상주의의 대안, 협동소비

   요즘 들어 협업 즉 코웍co-work이라는 용어가 경제학자, 비즈니스 분석가, 트렌드 연구가, 마케터, 기업가들에게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공유, 물물교환, 대여, 바꿔 쓰기 등 새로운 소비 습관을 다루는 기사 역시 심심찮게 뉴스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유서비스인 집카Zipcar의 회원이 된다거나, 옥션이나 이베이를 통해 중고 물건을 팔거나 교환하고,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아름다운 가게 등에 기는 하는 것처럼 개개인이 커뮤니티 집단을 이뤄서 공유하고 소비하는 활동을 이 책에서는 ‘협동소비’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기업은 결코 제품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먼저 바뀌어야 할 대상은 소비자다. 어차피 쓰레기가 될 제품, 사는데 열중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들을 쓰는 것에 소비자들이 눈뜨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협업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 철학자, 비즈니스 분석가, 트렌드 스포터, 마케터, 기업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유행어가 되었다. 공유, 물물교환, 대여, 바꿔 쓰기 등 새로운 소비 습관을 다루는 기사도 부쩍 늘었다. 그리고 이런 기사 제목에는 ‘함께’를 뜻하는 접두어 ‘co'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엑스세대와 와이세대를 위한 코하우징‘,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코워킹‘, ’카우치서핑: 단순한 숙소 이야기가 아니다‘, ’코뮌을 위한 소셜 네트워킹‘, ’글로벌 집단주의 사회가 온다‘, ’함께 살아가기, 코뮌의 현대식 해법‘, ’공유의 비극을 넘어‘ 와 같은 표제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트렌드를 살펴보면 일련의 행동과 개인의 경험, 사회 이론, 사업 사례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사회 및 경제 현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바로 협력, 집단처럼 하나로 합치고 공유하는 활동이 협업과 커뮤니티라는 매력적이고 소중한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현상을 협동소비라고 부른다.“ 

  책을 읽다가 보면 지난 IMF 시절 우리가 펼쳤던 ‘아나바다 운동', 즉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P2P 대출, 도구 교환, 토지 공유, 의류 교환, 장난감 공유, 사무실 공유, 코하우징, 코워킹, 공용자전거 및 자동차, 카셰어링 등 전 세계적으로 협동소비를 통해 제품의 이용 효율도 높이고, 쓰레기도 줄이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도 줄어서 궁극적으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례들은 소유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인 협동소비가 이 책이 말한 대로 ‘다음 10년을 지배할 머니 코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기술과 P2P 커뮤니티를 통해 재정립된 전통적인 나눔, 물물교환, 대여, 거래, 임대, 증여, 맞바꾸기, 즉 협동소비를 매일같이 하고 있다. 협동소비 덕분에 사람들은 단순한 소유의 개념을 초월하여 제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때 어떤 놀라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돈과 공간과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친구도 사귀고 적극적인 시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 그리드, 리얼타임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구시대적 방식인 과잉소비를 뛰어넘고, 공용자전거처럼 공동이용에 기반을 둔 획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 시스템은 이용 효율을 높이고 쓰레기를 줄이는 한편,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도록 자극하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에서 비롯된 잉여물을 없앰으로써 환경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찰스 리드비터가 쓴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We Think>의 내용을 빌려 ‘20세기 과잉소비 시대에 신용과 광고, 소유물이 우리를 규정했다면, 21세기 협동소비 시대에는 평판과 커뮤니티, 그리고 어디에 접속할 수 있고, 어떻게 공유하고, 무엇을 기부하느냐가 우리를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소비는 과학기술과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바, 이런 상호작용은 나누는 것을 즐거워하고 제2의 천성으로 여기는 인간의 습성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협력이 꼭 개인주의를 훼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해준다. 실제로 댓글을 달고 파일과 사진, 동영상을 공유하고 지식을 나누면서 온라인에서 이미 협동소비가 시작된 셈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협동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네 가지 요인

  협동소비의 사례는 규모와 성숙도, 목적에 따라 아주 다양하지만, 근본 원리만큼은 비슷하다. 바로 임계질량, 유후생산력, 공공재에 대한 인식, 타인 간의 신뢰가 그것이다.

   임계질량은 사회학 용어로, 한 시스템이 자립자족하는 데 필요한 전환점을 설명할 때 쓴다. 이 개념은 핵연쇄 반응부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터치 스크린의 스마트폰을 대중이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에서 임계질량에 이르는 지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명명했다.

임계질량은 협동소비의 핵심이다. 즉 협동소비가 전통적인 소비 행위와 경쟁을 하려면 소비자가 협동소비로 만족할 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계질량은 그 수가 무조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 시스템은 성공이다. 

   자동차나 자전거는 타는 시간보다 차고에 방치되는 시간이 더 길다. 이는 전동드릴과 같은 도구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이 평생 동안 전동드릴을 이용하는 시간이 6~13분 정도라 한다. 그런데 미국 가정의 절반이 전동드릴을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결론은 미국 전역에서 약 5천만 개의 전동드릴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쓰지 않고 놔둔 전동드릴 5천만 개의 잠재력이 바로 ‘유휴생산력’이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유휴생산력을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는 하루 22시간 정도 놀고 있고, 잠옷은 입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충동구매로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나 DVD 등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전체 소유물의 80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유휴생산력은 자전거와 자동차, 드릴 같이 물리적인 제품뿐만 아니라 시간, 기술, 전기 같은 무형 자산과도 관련이 있다. 

   공적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개개인은 경제 이론과 자유 시장에서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까?’ 하는 문제로 가장 빈번하게 토론되고 있는 주제다. 미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은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이익만을 쫓는 개개인에 의해 남용되거나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공유지의 비극’의 주요골자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목초지를 상상해 보라. 그 땅에 가축을 풀어놓은 목동은 넓은 목초지에 더 많은 가축을 풀어놓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리고 다른 목동도 ... 그러다 공유지를 함께 쓰던 합리적인 목동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거기에 비극이 있다. ”

 

  쉽게 말해 사람들은 일부러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 집단의 이익 혹은 장기적인 이익에 도움이 안 되는데도 너무 많은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딘은 공동의 자유는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공유지의 비극’은 통하지 않는다. 플리커에 사진을 올리고, 위키피디아와 오픈 스트리트 맵, 퍼블릭 뉴스에 기사를 올리기 위해서 즉, 커뮤니티에 가입해 디지털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은 ‘공공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무료 저작권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공유와 협업을 장려하는 한편, 창작자가 허락하지 않는 사항은 계속해서 사용을 규제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처럼 협동소비는 대중매체나 언론 기사를 뛰어넘어 해결책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의 움직임까지도 활용하여 삶의 다른 영역에도 이 원칙들을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대부분의 협동소비 시장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신뢰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예전의 과잉소비 세계에서는 중간 상인이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생산과 소비 사이에 다리가 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협동소비 시장에서는 이런 형태의 중간 상인이 필요 없다. 대신 두 사람이 만나는 플랫폼과 두 사람(타인간)의 신뢰가 필요할 뿐이다. 자동차 함께 타기도 그렇고, 이베이나 옥션과 같은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교환하거나 기부할 때도 물건을 내놓은 사람이 설명한 대로 신뢰해야 참여할 수 있다. 플랫폼이 할 일은 두 사람이 거래에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수단과 환경을 조성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무역과 커뮤니티를 잇는 절충안을 만든다. 

   한편 협동소비가 소비지상주의의 대안이라고 해서 기업이나 제품, 소비에 반대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계속 쇼핑하고, 기업은 계속해서 팔아야 한다. 그러나 소비하는 방식과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잉 개인주의 문화에서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가늠했다면, 협업과 공유를 기반으로 더 올바른 소비를 하는 사회로 소비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제는 커뮤니티가 브랜드다

   지금껏 우리는 애플, 나이키,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에 집착했다. 왜냐하면 이런 브랜드들이 우리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같은 이유로 다양한 공유와 협업을 통해 떠오르는 협동소비 브랜드에 마음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협동소비 시대에 브랜드의 역할이 죽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브랜드를 구축하고 관리하고 퍼뜨리는 방식은 변했다.

   플리커, 스카이프, 페이스북 등 협동소비 브랜드 중 새로 부상하는 많은 브랜드가 Web 2.0이라는 인터넷 환경을 따른다. 커뮤니티에 권한을 부여하고(인터넷을 이용해 소비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한다), 광고가 아니라 커뮤니티가 브랜드를 만들어간다.

   에릭 퀼먼은 <소셜노믹스>라는 책에서 “단지 14 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광고 회사를 신뢰하는 반면, 78 퍼센트의 소비자가 같은 소비자의 추천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제 브랜드의 진짜 주인은 소비자들의 모임인 커뮤니티인 것이다. 

위 제너레이션, 협동소비의 진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빨래방 브레인워시는 보통 빨래방과 다르다. 브레인워시는 카페, 특별 할인 시간대, 라이브 음악, 핀볼 기계,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숙제를 할 공간’ 등을 제공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최신 음악이 흐르고, 벽에는 파격적이고 멋진 미술품이 걸려 있고, 친절한 직원들이 시중을 든다. 어둡고 우중충한 대부분의 빨래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레인워시’가 한마디로 대박을 치고 있다. 이 브레인워시는 협동소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신개념의 빨래방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단 하나의 통찰력 ‘고객들이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브레인워시는 ‘깨끗한 옷, 재미, 친구, 적절한 요금, 환경에 대한 책임’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브레인워시는 소비자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개인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고 더 지속가능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에 부응하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꿨다.

저자는 브레인워시처럼 협동소비는 사익을 좇는 소비자들을 아주 잘 대접해서 그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뭔가 다른 일, 또는 옳은 일을 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소비는 끊임없이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뒤틀린 활동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고자 기부하고 협력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협력하고 나누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된다. 협동소비는 소비자들에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에 대한 책임과 충돌하지 않고도 충족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소비자들이 비용 절감, 교제, 편의, 사회의식 고양, 환경보호라는 한결같고 명확한 동기를 가지고 협동소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한 가지 더 주목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평판’이다. 평판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인적인 보상인데,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와 피드백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평판은 높아진다. 이러한 평판 자본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화폐라며 지금 ‘제 2의 화폐’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평판은 심리적 보상이나 심리적 화폐의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평판 자본이라 불리는 실제 화폐의 역할도 한다. ... 평판 자본은 이제 아주 중요해졌다. 평판 자체가 제 2의 화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화폐는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라고 외친다. 앤디 홉스좀이 <차세대 혁신은 작은 것에 달렸다>에서 말한 대로 ‘온라인 평판 시스템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개인들 간의 신뢰를 평가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자 현대 경제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다음 10년을 지배할 새로운 시장

   저자는 오늘날은 우리의 소비 시스템을 둘러싸고 ‘낙관적이고 중대한 변화의 시기’라고 말했다. 바로 공유와 협업을 기반으로한 ‘협동소비 시스템’을 말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커뮤니티, 개인의 정체성, 인정,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 등으로부터 비롯된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사익私益의 시대에서 공익公益의 시대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올 협동소비의 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기업가와 CEO는 앞으로 재화의 재분배 및 교환을 위한 사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일례로 자동차 회사들도 앞으로는 ‘운송수단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기동성을 제공하는 회사’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중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개선하고 원하는 대로 바꿔주는 서비스 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 불고 있는 ‘자동차 튜닝’ 열풍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자동차 튜닝 열풍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일본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이미 자동차 튜닝 산업으로 정착되어 수출 효자상품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의 사정은 다르다. 자동차 개조에 대한 법규와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워서 법에 의하면 국내에 자동차 튜닝을 한 자동차 거의가 ‘불법 개조차’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법률이 ‘안전’이 아닌 ‘자동차 개조 반대’를 위한 법률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래는 지금 나의 비즈니스에 공유하고 재분배,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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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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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근거 없는 긍정을 부정하라! 

   미국이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달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14조 달러가 넘는 빚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미국의 국가채무한도 증액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 국민들은 분수에 넘치게 소비하면서 국제 경제를 좀먹는 기생충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도 미국은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이렇다 할 내부 위기와 외부의 위협 없이 사회적으로 이토록 진보와 번영을 구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던 최강대국 미국이 아니던가? 과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살펴보면 그간 사실이 덮어진 것일 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시에는 빌 클린턴도 조지 부시도 거의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했으며, 비관론과 절망과 의심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풀어내야 할 현안들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앞에서 관료들은 불안과 침체의 가능성을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상처는 언젠가 곪아 큰 병이 되는 법. 그 후 닷컴 붕괴가 일어났고, 이듬해에 9.11 사태가 터졌다.

   세인들은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공황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틀렸다. 우리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처럼 금융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사실은 거대한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구도 잔치의 흥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외면했었다. 오늘날 미국 아니 전 세계는 수십 년 동안 스스로 훈련해온 근거 없는 긍정주의에 빠져 불편한 소식에 귀를 닫고 살았던 벌罰을 톡톡히 받고 있다. 
   다가올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를 묵살한 대가를 받고 있는 나라는 비단 미국뿐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도 오래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무시했었고, 우리나라 역시 구제역 전국 확산이나 우면산 산사태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늦장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 

 

   <긍정의 배신 bright sided>(부키)은 자유시장경제의 신념 체계의 긍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십 년 전 미국의 주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뒤 전 세계로 퍼져 신자유주의 사회의 관습과 미덕처럼 굳어져버린 긍정주의의 원리와 폐해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저자의 집필 동기는 어느 날 자신에게 찾아온 유방암 판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방암 환자 대부분이 유방암에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들은 유방암을 치료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성적性的 자신감도 떨어지는 등의 고통을 호소해도 부족한데, 오히려 “암은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멋진 일이었다.”고 말한 고환암 생존자 랜스 암스트롱처럼 유방암을 ‘신이 준 선물’처럼 여기는 듯 말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충격을 받았다.

‘유방암이 축복’이라니...모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안가 환자들이 웃음 띤 얼굴로 암을 수용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긍정적인 태도’가 회복을 위한 필수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유방암 문화에서는 생존이 전적으로 태도에 달렸다고 믿고 있었다. 환자들의 긍정적인 태도는 면역체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8년간 받은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에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처럼 긍정적 사고 역시 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자는 긍정주의라는 이 ‘대책 없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전반에 걸쳐 확산되어 현실을 부정하고, 불행에 즐겁게 극복하고, 닥친 운명에 대해 오직 자신을 비난하라고 말한다는 점을 심히 우려했다.

   또한 자기계발서, 기업의 동기 유발 프로그램, 초대형 교회의 복음 설교사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빈틈없이 촘촘한 그물망을 짜 가면서 거대한 산업으로까지 발전했음을 목격했다. 전통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는 대학마저 ‘긍정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할 정도이니 두 말하면 입 아픈 현실이다.  

   특히 자기계발서와 동기 유발 강사들 그리고 기업들의 커넥션을 밝힌 후반부는 인상적이다. 미국에서 1,000만부가 팔렸고, 국내에서도 한 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알고 보면 ‘직장에서 쫓겨나도 남 탓 말고 입 다물고 재빨리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라’는 기업의 다운사이징 선전을 위한 내용이었다. 

   무언가를 진실로 강력히 원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로 미국에서 찍어내자마자 380만부를 찍었고 한국에서도 올해의 책이 될 만큼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역시 긍정 이데올로기 전도사인 오프라 윈프리가 띄운 작품이었다. 저자가 들여다 본 긍정주의 돋보기 속에는 자기계발의 선구자 나폴레온 힐도 세일즈맨의 우상 지그 지글러도, 심지어 긍정신학의 선구자 조엘 오스틴도 긍정주의 나팔수였다. 무엇보다 저자가 근거 없는 ‘긍정주의’를 가장 우려한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 미국 기업(글로벌 기업) 때문이었다. 

   “긍정적 사고를 가장 환영한 것은 미국 기업계였다. 긍정적인 사고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기업들은 그 산업의 으뜸 고객으로 부상해 마음의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좋은 뉴스를 게걸스럽게 소비했다. 혜택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어난 반면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21세기의 노동자들에게 긍정주의는 유용한 메시지였다. 동시에 고위 경영자들에게는 해방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저자는 근거도 없고 대책도 없는 이 맹랑한 ‘긍정주의’의 대안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기감정과 환상으로 채색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행복과 죽음의 확실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현실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항상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하고 운전하는 운전자의 마음과 같은 ‘방어적 비관주의’다.  

   고개를 돌려 국내를 보니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지금 한국은 가계부채가 1,000 조 원에 육박하고 2011년 3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9%를 상회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인 2050년대에는 10명 중 4명이 노인인구로 채워질 위기에 빠진 고령화 사회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지금은 정부에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그대, 아직 긍정의 마음으로 기도중인가?” 되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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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미래를 말하다 -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제작위원회 엮음, 정문주 옮김 / 소프트뱅크커머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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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미래를 말하다 - 소프트뱅크, 마켓3.0을 준비하다  

  

   1981년 늦은 여름, 일본의 한 젊은 사업가 회사를 설립하고 달랑 아르바이트생 2명인 직원들 앞에 두고 귤 상자 위에 올라서서 30년 후 회사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제부터는 정보혁명이다! 컴퓨터를 사용해서 컴퓨터의 능력으로 마이크로 컴퓨터에 디지털사회, 디지털의 정보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보혁명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을 일으켰다. 우리 회사는 정보혁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것이다!"

   그 연설이 있고 난 후 직원들은 회사를 그만둬 버렸다. ‘사장이 미친놈이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귤 상자 위에 올라서서 한 1시간 동안 연설한 내용도 잊지 않고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지켜왔다.

   무모한 청년 기업가의 이름은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사의 이름은 소프트뱅크로 현재 전 세계 800여개 인터넷 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오늘날 일본에서 NTT와 NTT도코모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127개 사의 인터넷 기업과 제휴를 맺어가며 2억 3천만 달러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다.

   손정의는 대표적인 전략가이자 실천가이다. 그는 20대 초 회사를 설립하면서 ‘인생 50년 계획‘ 이라는 이름으로 20 대, 30 대, 40 대, 50 대, 60 대, 5 가지 단계의 라이프 플랜을 만들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그것을 지켜오고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 대, 이름을 알린다. -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다.

30 대, 자금을 모은다. - 자금은 1000 억 2000 억으로 셀 수 있는 규모라야 한다.

40 대, 큰 승부를 건다. - 1조 엔, 2조 엔으로 셀 수 있는 규모의 승부를 한다.

50 대, 어느 정도 사업을 키워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시킨다. - 여생을 위한 인생모델 포함

60 대, 다음 경영진에게 바톤터치를 한다. 

 

 

   <손정의 미래를 말하다>는 손정의 인생 50년 계획 중 네 번째인 50대에 해야 할 일, 즉 자신의 사업체인 소프트뱅크의 비즈니스 모델의 완성을 담은 책이다. 지난 2010년 6월 25일 손정의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30년 비전’을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것으로 손정의는 이 연설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로 평가했다. 

   ‘신 30년 비전’은 창업자만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것이 아니라 소프트뱅크그룹의 2만 명 직원이 1년 동안 각각의 의견을 제시하고, 진지하게 논의한 결과물이어서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또한 소비자이자 팬인 수많은 트위터러들의 지혜와, 사내외에서 나온 의견들을 모아 정리했다. 

신 30년 비전의 핵심은 첫째는 이념, 즉 무엇을 위해 사업을 하는가,

둘째는 비전, 즉 30년 후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디에 주력할 것인가,

셋째는 전략, 소프트뱅크는 어떤 식으로 비전을 실현시킬 것인가로 나뉜다.

   소프트뱅크의 이념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인터넷 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추구하는 철학은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뱅크는 상장회사이기에 신제품도 만들고, 비용 경쟁도 해야 하고, 수익도 올려야겠지만, 그렇게 숫자를 늘리는 일에 열정을 바친다면 인생은 무의미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회사를 통해 단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이 목숨을 바쳐서 할 일이란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의 최대 슬픔인 고독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반면 인생의 기쁨은 더욱 크게 하는 것, 그것이 자신과 소프트뱅크가 나아갈 바라고 강조했다. 

   현편 30년 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의 무한대의 저장공간이 생기고 무한대의 클라우드와 초고속 네트워크가 생기고, 오늘날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로서 사람들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꿀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스스로 학습하는 두뇌형 컴퓨터의 출현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컴퓨터가 지식과 지혜마저도 얻게 되는, 그리고 멈출 수 없을 정도까지 진화한다는 상상은 틀림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성을 가진 컴퓨터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에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프트뱅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비전은 감정을 지닌 컴퓨터 즉 초지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변화에 맞춰 기업이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략에 있어 기업의 체질부터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소프트뱅크를 중앙집권화가 아닌 자율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기업으로 만들고, 내부의 많은 회사가 각각 연계하면서도 별도의 회사이름을 쓰고 별도의 리더를 가지는 체계로 구성했다. 그렇게 되면 의사결정과정이 신속해지면서도 서로간에 시너지 효과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800개 산하 기업들을 30년 후에는 5,000 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정의가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세워 직접 미래의 후계자들을 위해 리더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앞으로 300년 동안 소프트뱅크 그룹을 존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준비라고 강조했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책<마켓 3.0>에서 미래의 시장은 ‘빈곤과 빈익빈 부익부, 환경 파괴와 같은 현실적 문제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치(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살아남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3.0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마케팅을 넘어서 소비자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마케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보혁명으로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하겠다는 소프트뱅크의 ’신 30년 비전‘이야말로 마켓 3.0을 대비한 비전이 아닐까 싶다.

   손정의는 지난 6월 20일 한국을 방문해 같은 내용으로 강연을 했고, 그 동영상은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화려한 라스베가스 쇼라고 한다면, 손정의의 그것은 어느 기업가의 솔직한 ‘고해성사’일 것이다. 손정의는 넋을 놓게 하는 화려한 수사적 표현보다는 스토리 안에 개인사는 물론 기업을 이끌면서 굉장히 힘들었던 역경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청중으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냈다. 특히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려준 할머니를 이야기한 대목인 ‘할머니, 할머니’는 압권이다.(실제 강연에서 손정의는 이 대목을 울면서 이야기했다. 유투브에서 볼 수 있다)

   CEO로서 자신의 고민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꿈과 비전을 공유하려한 손정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창조 산업이 각광받는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 손정의는 지난 6월 20일 한국을 찾았을 때 그는 기자간담회를 대신해 소프트뱅크의 '신 30년 비전‘에 대해 강연한 자리에서 3개월 전, 동북아 대지진이 있고 난 후 손정의는 인생관에 변화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기업의 비전이 아닌 기업인으로서 사람과 회사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창업 이후 최대 이익을 내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런, 대립되는 상황에서 내가 내 기업만 잘 꾸려 나가면 될 것인가? 아니라고 손정의는 판단했다.

   그래서 “정보혁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는 소프트뱅크의 이념에 부합하는 분야를 찾았으니 바로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다. 그는 자연에너지협의회(Renewable Energy Governor’s Alliance)를 설립하기로 결심, 일본에 있는 47개 광역자치단체 있는데, 그 중 34개 현 지사들을 설득해서 자연에너지 협의회에 참석 동의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손정의는 소프트뱅크가 대지진 이후의 일본인(소비자)를 당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기업의 이윤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그의 행보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이 리뷰는 출판전문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기획회의>(302호)에 실린 원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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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싼 값에 산 당신, 퇴직금이 대신 내줬다!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은 5000원, 홈플러스 착한 생닭은 1000원, 지름 45㎝짜리 이마트 피자는 1만1500원, 두께 8㎝짜리 GS수퍼 위대한 버거는 7990원.... 이렇게 피자와 통닭을 시작으로 불붙기 시작한 대형 마트들의 가격 경쟁에서부터 파격 반값으로 급성장한 소셜커머스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말 그대로 ’가격 파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런 마당에 <가격 파괴의 저주>(민음사)라니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 같은 제목이다.  

   현실에서 보면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제목이지만 직접 들여다보면 가격파괴에 대한 숨은 진실을 그 무엇보다 잘 이야기한 책이다.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고든 레어드가 쓴 책, 원제목은 The price of a bargain, 풀어보면 가격할인(바겐세일)의 (진짜)가격 정도 되겠다.    

   요즘은 IMF 시절 못지않게 가격 할인이 범람해서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오히려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수록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과연 값싼 제품이 정말 소비자에게도 좋기만 할까?

   저자 고든 레어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값싼 물건에 대한 소비자의 탐닉은 21세기에 발생하는 모든 위기의 근원이다”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싼 것 좋아하다가는 결국 큰 코 다친다.”고 소비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경쟁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다. 요즘은 할인했다 하면 거의 대부분이 ‘반값’, 그래서 ‘과연 이 가격으로 팔고도 남을까?’ 사면서도 걱정될 정도다. 소비자들은 이들 덕분에 정말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횡재한 기분이다.

   이같은 국내 대형마트들의 가격할인경쟁은 올초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지나칠 만큼 과열 양상을 보이지만 그 시작은 '가격 거품빼기' 였다. 대형마트가 보기에 피자나 치킨 등을 판매해온 기존의 업체들이 판매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보고 그 거품을 제거해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경제위기 이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뉴스였다. 이들의 마케팅에 대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고, 뒤늦게 뛰어든 다른 업체에서도 치킨이나 햄버거 심지어는 자전거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할인제품의 수량이 한정적이어서 그것을 사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줄을 선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샀고, 심지어 자전거 같은 경우는 급하게 제품을 찾다보니 조립불량과 상표권 침해 논란이 있는 제품을 수입해 전량 리콜 하는 일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주변 상권에서 치킨과 피자를 팔았던 영세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원성을 샀다. 



  이와 같은 사정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만 하더라도 집값이 올라 서류상으로 재산이 크게 불어나자 카드를 마구 그으며 소비해 개인저축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미국 소비자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값싼 제품을 사려다가 난리가 났다. 

   2008년 블랙 프라이데이(본격적인 추수감사절 명절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첫 번째 금요일), 북미 지역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7200만명이 쇼핑에 나섰는데, 그 중 뉴욕 롱아일랜드의 월마트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던 엄청난 인구의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경비원 1명이 문자 그대로 고객들에게 밟혀 죽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는 새벽부터 줄 서다 열 받은 소비자들이 총격전을 벌여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것이 ‘가격 파괴의 저주’가 아니고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원인으로 세계화를 들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평평한 세계’를 주장하며 세계화는 대세이고, 세계화 과정을 통해 값싼 제품을 손쉽게 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했다. 소비자 역시 예전보다 싼 가격에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세계화가 주는 혜택’으로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왔다. 

   하지만 제품 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같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했고, 돈을 버는 노동자는 중국 노동자들과 같이 값싼 노동력 국민들이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과 노동자의 숫자만큼 국내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이는 제조업을 살펴도 마찬가지다. Everyday low price (매일 낮은 가격)을 모토로 싼 제품만 찾아 전 세계를 뒤지는 월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 재래시장이나 영세상인들은 폐점을 해버려 결국 지역 상권이 붕괴되어 버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소비자가 되어 값싼 제품을 탐닉할 때, 일자리는 잠식을 당하는 셈이고, 결국 실업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가격이 싼 제품만 찾는 행위가 결국 나와 내 이웃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당장 먹기는 곳감이 달다’고 우리는 오늘 저녁에도 마트에 가면 싼 제품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격 파괴는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 

   할인점과 대형 마트의 가격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 값싼 에너지, 값싼 운송 시스템 덕분이었다. 저자는 세계화의 상징인 월마트의 가격파괴 시스템은 결국 유가와 중국으로 인해 브레이크에 걸릴 거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에너지 고갈이다. 장기적으로 세계가 에너지 부족에 직면할 것은 불가피한데, 글로벌 경제는 운송에 의지하므로 유가 상승으로 운송비도 상승해서 월마트와 같은 대형마트의 저가 정책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한 만년 생산자일 줄 알았던 중국인들이 소비자로 전환되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선부론을 계기로 부분적으로 자본주의를 채택하며 세계 가장 싼 제품을 만들어낸 중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10% 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달러를 긁어 모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소비자가 되어 돈을 쓰는 세력도 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 근로자들의 생산임금이 올라가고, 원자재가와 유가가 급등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평균 가격은 2007년 상승세로 돌아서고 말았다. 세계 초저가 생산품 제조국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놀라운 현실은 많은 서구 경제에서 보호할 만한 생산 역량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안보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무역 관계가 흔들리고 국가의제가 달라지며, 또 팍스 아메리카나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가 아는 ‘세계화의 종말’일 것이다.” 

   ‘저가만을 쫓는 소비자’가 대세인 시장에 대해 이 책의 저자가 내다보는 미래는 우울하다. 머지않아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 조상들처럼 절약이 미덕이고, 빚을 경계하는 태도가 주류(主流)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결책으로 우리 속담인싼 게 비지떡”에서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비지떡은 두부가 될 물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다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고 빈대떡처럼 부친 떡으로 값이 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치처럼 꼭 있어야 할 음식도 아니고, 별 맛도 없는 이 비지떡을 값이 싸다는 이유 만으로 한꺼번에 왕창 사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양도 많고, 맛도 없어 다 먹지 못해서 남겼다가 결국 하루 지나 금방 쉬어서 못 먹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필요한 물건을 자기의 소득 안에서 여러 가지를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라는 뜻을 의미한다. 

   ‘언제나 최저가’를 지향하고, 싼 것만 찾는 소비생활을 하다보면 정체불명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되거나, 혹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제 3국의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거나, 사랑하는 자녀에게 재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짝퉁 장난감을 선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서 더 싸게 살까?’를 걱정하는 ‘저가의 노예’가 되지 말고, 과연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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