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에 밥이 슬슬 익어갑니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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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I / 이봄 14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책은 '일상의 멈춤'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댓글을 받았다. 심오한 철학이나 깊은 깨달음, 냉철한 문제의식 등등은 찾아볼 수 없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마스다 미리의 책'을 펼쳐들면 소소한 재미와 공감가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힘겨운 업무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참 공감가는 댓글이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특히 한국인은 '사명감'마저 들 정도로 심각하게 일상을 보내곤 한다. 여유로움은 고사하고 느긋한 모습조차 용납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숨막히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잠깐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냔 말이다. 어느 독자님은 바로 '마스다 미리의 책'이 그랬단다.

나는 '마스다 미리의 책'만 18권 째 읽으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도서관 대출 50권 목표'를 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출도서'를 5권에서 10권으로 늘릴 수가 있다. 기간은 '1년 이내'면 충분했지만, 나는 5개월 안에 달성하고 싶었다. 그래야 '도서관 대출 100권 돌파'를 1년 내에 도달할 수 있을테고, 그럼 대출 권수도 10권에서 20권으로 늘릴 수 있다. 그렇게 넉넉히 늘려놓고서 꾸준히 '기한연장'을 하면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끊기지 않고' 파바박 읽어재끼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26권째이고 남은 기간은 두 달 남짓이다. 그래서 더욱더 전투적(?)으로 읽어재낄 책이 필요했는데, 그게 마침맞게 '마스다 미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후다닥 읽어야만 했던 두 번째 이유로는 '다른 책들'도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고 대기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읽을 책 목록'쯤이야 해마다 매번 늘어나기만 할 뿐이고,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왜냐면 읽기로 했던 책을 읽다가도 '읽을 목록'을 추가하고, 읽기로 했던 책이 '시리즈'인 경우에는 그 '시리즈'조차 다 읽어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에, '읽을 목록'은 매년 해를 넘기고 있어서 지금은 '10여년 전'에 올려놓은 목록을 아직도 못 읽고 거의 폐기수순으로 들어간 목록도 상당하다. 읽을 목록의 책들은 기어코 읽는다면서 왜 폐기수순을 밟고 있느냐고 묻는다면...'그 책'이 어디 짱박혀 있는지 도저히 찾지 못해서 그런다. 분명 있긴 있는 건 같은데, 찾을 수가 없고, 도서관에도 없는 경우가 그렇다. 간혹 출간된 지 10년도 넘은 책들을 '리뷰'하는 까닭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뜬금없는 책을 리뷰하더라도 양해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보니 '마스다 미리의 책들'을 나는 좀처럼 '일상의 멈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의 출퇴근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거의 독파하고, 남은 시간은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펼쳐놓고 읽기 바빴다. 그렇게 하루에도 '2~3권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으니, '멈춤'따윈 내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마스다 미리'에게서 문제의식, 핵심주제, 깊은 관심사 따위를 찾으려 부던히도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며 대가리도 뱅글뱅글 돌리면서 정신없이 읽어재꼈다. 그런 탓에 그간의 리뷰들이 뒤죽박죽 횡설수설한 감이 없지 않아 다분했을 것이다.

이 책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리 씨 댁에 밥이 슬슬 익어 갑니다>도 읽기는 훨씬 전에 다 읽었다. 그런데 리뷰는 좀처럼 쓰지 못했다. 앞서 말한대로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확실하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댓글 중에 '일상의 멈춤'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되었다. 일관된 것이 없는 '일상의 날것'이 잭슨 폴락의 그림 그리는 방식처럼 아무런 규칙도 없이 흩뿌려진 채 널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천장에 길다란 줄을 늘어놓고, 그 줄에 깡통을 매달아놓고, 깡통의 표면엔 구멍을 숭숭 뚫어놓고, 물감을 그 안에 가득 담아놓으면, 자연스레 줄줄 흘러내릴 것이다. 그 아래 커다란 캔버스를 깔아놓고, 매달린 깡통을 방망이로 쳐서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게 흩뿌려진 물감자국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물감이 든 깡통을 마구잡이로 두들기고 난 뒤에는 '작품'만 남겨진 것이다. 문득, 마스다 미리의 책도 그런 방식으로 쓰여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잭슨 폴락이 깡통에 담은 물감에 무슨 '목적'이 담겨 있었을까? 잭슨 폴락이 방망이로 깡통을 두들길 때에 뭔가 심오한 '철학'을 떠올렸을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어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완성한 그림은 '걸작'으로 손꼽힌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철학도 없이 만든 작품인데 말이다. 혹시 마스다 미리의 책도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에 빠져든 것이다.

그래서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다가 멈춰 보았다. 앞의 에피소드와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고, 스토리 라인이 딱히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도 없다. 어디를 펼치고 들여다보아도 죄다 그랬다.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잭슨 폴락의 그림이 그렇다. 그의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런 규칙도 없고, 철학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폴락의 그림 중 '한 곳'을 집중해서 보면 '전체' 그림과 놀랍게도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어느 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우연'이 아니다. 폴락의 그림 속에서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하면 '폴락의 전체 그림'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마스다 미리의 책'도 그럴까? 어느 한 에피소드에서 '멈춤'을 하고 난 뒤의 느낌과, 다른 에피소드에서 읽기를 '멈추고' 난 뒤의 느낌이 놀랍도록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에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앞선 리뷰 중에 "마스다 미리의 책들에서는 늘 '한결같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써놓은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었다.

마스다 미리는 <사와무라 깡통>과 <치에코 씨 깡통>, <수짱 깡통>, <내 누나 깡통> 등등 다양한 깡통을 매달고서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 가득 담고 방망이로 두들기듯 책들을 써내려간 것 같다. 그래서 수많은 책들의 내용이 늘 '한결같음'의 느낌이 물씬 난다. 물론 '개별적인 차별점'은 작품마다 독특한 특색을 보이지만, 그래도 결국엔 '내용의 유사성'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난하다. 편안하고 차분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애초에 '개그'를 소스처럼 첨가시켰기 때문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불편한 내용'도 있다. 여성독자들의 맘에 쏙 드는 에피소드 같은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남성독자들의 짜증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특유의 애교와 센스로 짜증났던 일을 빠르게 휘발시켜버리곤 한다.

앞으로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조금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읽어보련다. 그래야 '멈춤' 버튼을 눌렀을 때 더 자세히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면 도착지에는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주위의 풍경은 놓치고 마는 법이다. 그 풍경에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가련다. 그렇게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진한 꽃내음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읽을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살짝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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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3 : 폭력의 시대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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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 / 돌핀북 3번째 리뷰] 2권에 이어 3권에선 인류가 겪은 엄청난 폭력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경제대공황을 겪게 된 이유는 '공급과잉의 문제'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상품이 잘 팔려야 경제가 호황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과해서 결국 경쟁이 과열되고, 그로 인해 '시장 개척'과 '상품 가격 인하'라는 수단을 강구하다보니 전세계는 '식민지 쟁탈(시장 개척)'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리하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더 많은 시장 개척을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식민지를 선점한 국가들은 부를 쌓을 수 있었고, 뒤늦게 시장 개척에 나선 국가들은 선점한 국가들에게서 식민지를 빼앗아 와야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다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각국은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치열한 총력전을 벌이게 된다.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력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의 승전국은 독일과 오스만 투르크 등의 패전국을 향해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갚을 길이 없는 독일은 '독재자 히틀러'를 앞세워서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극심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미국은 '경제대호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유럽이 전쟁의 상처로 폐허가 되자 미국의 공장들은 일제히 가동률을 높였고, '미국의 상품'은 유럽과 전세계를 상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192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29년이 되자 상황은 대역전이 되고 말았다. 더이상 물건을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의 공장이라도 된 듯, 엄청나게 생산물량을 높이며 물건을 만들어냈는데, 그 물건들을 더는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유럽도 종전한 지 10년이 지나자 '자력갱생'을 부르짓기 시작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더는 물건을 팔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폭망했고, 수탈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되자 그 많던 공장들이 급속히 문을 닫고 '실업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 때문에 실업 상태가 되자 상품판매는 더욱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는 곧 '경제대공황'을 일으켰고, 그 파급효과는 전세계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에,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해결방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을 비롯한 '자본주의 수정안'을 내놓았다. 즉,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아예 자본주의체제를 폐기해버렸다. 그렇게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하고서는 애초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제대공황'에서도 소련측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자본주의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따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전쟁'을 일으키는 쪽을 선택했다. 왜냐면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어찌되었든 국가 전체가 '총력모드'로 돌변하게 되고 공장을 돌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상품을 찍어내기 시작하니, 경제가 돌아가긴 한다. 물론 전쟁을 치루고 난 뒤의 '뒷감당'은 별도의 몫이 되겠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미치광이들은 그런 걱정 따윈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전쟁(=경제폭망)'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애초에 '부자들'은 전쟁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왜냐면 전쟁은 큰 돈이 필요하고, 독재자들은 큰 돈을 일단 '부자들'에게서 빌려 쓴 뒤에 승리하든, 패배하든 되갚는 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물론 독재자들이 순순히 부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는 않지만 말이다. 허나 '빈자들'은 그나마 가진 것조차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만다. 결국 전쟁은 상위 0.01%를 위해서 그밖의 99.99%의 희생과 파멸을 요구하는 멍청한 짓이다. 그렇기에 전쟁의 승리를 호언장담하는 권력자를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당신만은 '상위 0.01%'안에 속해 있을 거라는 착각도 하지 말길 바라고 말이다.

암튼, 공급과잉의 문제로 자본주의가 크게 위기를 맞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세계는 '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의 양쪽으로 갈라서서 대결양상을 벌이는 '냉전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은 종식되고, 자본주의가 독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펼쳐졌다. 3권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벌어지는 문제들은 4권 이후에 다루고 있다.

또 한 번, 정리를 하자면,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 와 '공급과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였다. 또한 중세 이후,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몇몇 부자들만이 부를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정부(국가)는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사회문제가 불거지자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빈자,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부자들을 향해 폭력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빼앗아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그러나 100% 완벽한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수단을 '국유화'한 결과, 선의의 경쟁력은 하락하였고 생산성은 폭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풍요로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공산주의의 실험'은 모두가 똑같이 가난을 경험하는 '실패'를 낳고 말았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승리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해서 끝없이 독주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과연 자본주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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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4 - 완결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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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CIX / 문학동네 24번째 리뷰] 그간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몰입해서 읽어보았다. <내 누나 시리즈>를 시작으로 <수짱 시리즈>, <사와무라 씨 시리즈>, <주말엔 숲으로>, 그리고 <치에코 씨 시리즈>까지 국내에 번역된 만화책의 상당수를 읽은 것 같다. '에세이' 책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쎄..읽기 시작한 김에 독파해보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마스다 미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냥 '여자들의 평범한 수다'를 다루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말속에 뼈'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도 아니면,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여성작가'의 주제의식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부쩍 의심이 들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마스다 미리' 작가에 대한 호불호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크게 실망한 것은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내가 좋아라하는 내용의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딱히 일본작가의 책을 선호하는 편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안 읽은 것도 아니고 시오노 나나미, 다치바나 다카시 작가의 책들은 '전작(全作)'을 거의 다 읽었을 정도이고 웬만한 책들은 '소장'까지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 꽂힌 작가'는 어김없이 송두리째 다 읽어 재끼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습성 덕분에 이번엔 '마스다 미리'가 걸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작가든 이만큼 읽어재끼면 '이런 류의 작가구나'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스다 미리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냥 여성 특유의 잡담인 것 같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수다속에 뭔가 철학적 사유를 담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사회문제에 대한 나름의 '깊은 고찰'을 담아 놓은 것도 같은데, 그런 꼬투리를 잡고서 뭔가를 써보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계속 그녀의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뭔가 '친숙한 느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얼핏 들곤 한다. 어쩌면 초식도 아니고, 육식도 아닌 '잡식성'과 일맥상통한 내 리뷰의 성향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한 우물만 파면 그래도 뭔가 '깊이'라도 자랑할 만할텐데, 수십가지 종류의 책들을 두루두루 읽고 써온 탓에 이도저도 아닌 '잡탕맛 리뷰'에 그치고 마는 품이 딱 그런 느낌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풀리긴 하다. '도플갱어 전설'처럼 나 자신과 꼭 닮은 것을 마주하면 긍정적인 느낌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앞서는 것과 같은 이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마스다 미리의 책'을 아주 좋아할 수 없다.

헛소리는 이쯤하고, 어느 덧, <치에코 씨 시리즈>도 완결편을 독파했다. 딱히 소감을 말하자면, 심히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결혼생활을 한다면 '사쿠짱과 치에코 씨'처럼 알콩달콩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치에코 씨처럼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배우자 자랑'만 늘어놓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험담으로 시작하지만 다 듣고 나면, 은근 자랑질만 실컷 한 셈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나는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굳은 신념을 내세우는 선배들도 많이 보았지만, 그들도 결국엔 마누라 자랑, 자식 자랑을 하는 모습으로 귀결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러움 덕분이었는지 '사쿠짱의 현명함'과 '치에코 씨의 귀여움'이 정말이지 보기에 좋았다.

물론, 간혹 투닥거리는 모습이나 눈물을 찔끔거리고, '만약에~'라는 이야기로 시도때도 없이 귀찮게 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질색하긴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하트 뿅뿅'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가의 배려(?) 덕분에 질식할 것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씁쓸했다. 치에코 씨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좀 거북했다. 물론 치에코 씨는 그런 죽음의 이야기에서조차 "내가 먼저 죽더라도 사쿠짱은 오래 살어"라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꺼낸 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처럼 불쑥불쑥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40대 부부에게는 그닥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함과 동시에 '빈집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로봇도우미가 등장할 정도라고 하니,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치에코 씨가 말하는 '죽음'은 그런 류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에코 씨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맞이하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니, 사쿠짱은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은 그런 슬픔이나 아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니 그냥 내가 먼저 죽는 것을 택하련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에코 씨의 말속에는 뼈가 없다. 그저 듣는 사람을 황당케 하거나 당혹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은 좋은데, 남편의 물건까지 싹쓸어서 다 갖다 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좀 그랬다. 내 성격이 물건을 잘 쌓아놓고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먼지를 켜켜이 쌓은채 자리보전하고 있다. 그런데 사쿠짱은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저 물건 하나마다 '추억'을 간직하고,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무엇보다 '메모'를 대신하는 실용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데 치에코 씨는 그런 것을 결코 용납치 않았다. 집안에 물건이 쌓이는 꼴은 절대로 못 봐준다는 식으로 보이는 족족 다 갖다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돈 씀씀이도 헤픈 편이다.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남기질 않으니 '적은 쓰임새'가 필요할 때에도 쇼핑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푼돈'으로 나가는 비용조차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목돈'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잘 실천하려면 '정리정돈'을 잘하면 된다. 그런데 치에코 씨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보다 무조건 '버리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 이건 사쿠짱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치에코 씨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보다 읽기에 수월했다. <수짱 시리즈>처럼 '40대 독신여성'이 주인공을 내세워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40대 부부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직 '두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끌어가다보니 '시댁과 처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언급도 없어서 고민이 덜했고 말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으로 마스다 미리를 만나게 될까? 일단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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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짝 심리학 - 현대 심리학의 초석을 다진 3인의 천재들 한빛비즈 교양툰 7
이한나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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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CVIII / 한빛비즈 168번째 리뷰] 올해 '국제고'에 아쉽게 탈락한 학생이 여고에 진학하면서 '뇌신경'과 '정신분석'에 깊은 관심을 두길래, 기분전환 겸 권한 책이 바로 이 책 <할짝 심리학>이었다. 사실 '심리학'책이긴 하지만 정신분석의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3인이 바로 '프로이트, 융, 아들러'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지그문트의 '무의식의 세계'에 관한 이론은 현재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고, 융의 '페르소나'도 마찬가지로 무의식 속에 비친 자신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아들러의 '열등감 이론'은 <미움 받을 용기>와 더불어서 다시금 회자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심리치료의 새장을 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3인의 천재들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할짝 심리학>은 정말 최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신분석'은 새롭게 등장한 '뇌과학'과 접목되면서 '철학적인 접근법'이 무색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프로이트'의 견해는 정말이지 단군할아버지(?) 취급을 받고 있고, '융'의 이론은 너무 난해해서 기피 대상이며, '아들러'도 전혀 뇌과학에 어울리지 않기에 '현대정신분석'의 개념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상행동을 하는 원인이 과거에는 '마음'에 있다고 믿었는데, 현재에는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조차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에 따라서 발병(?)한다고 밑밥을 깔고서 연구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이상 '초기 정신분석학의 연구성과'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걸까? 어차피 '뇌를 연구해야지', 마음(무의식)을 연구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마치 '윈도우 10'이 나왔는데, 'MS-DOS'를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쓸모없는 공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전'을 읽는 까닭이 무엇인가? 낡고 오래된 책들에서 얻는 것이 '최신 지식'이 아닐진데 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지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최신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 넣은들 써먹을 줄 모르는 멍청이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의 저서를 읽고 깨달음을 얻는 까닭은 인류가 보편적인 지식을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 얻은 '신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도가 철지난 애덤 스미스와 케인즈를 연구하고, 자본주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마르크스를 연구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경제상황에는 스미스나 케인즈, 마르크스 등과 같은 과거의 경제학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그 당시 '경제상황'과 오늘날의 '경제상황'이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꾸준히 예전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언급하는 까닭은 그들의 연구에서 분명히 참고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정신분석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프로이트, 융, 아들러는 오늘날의 '뇌과학'을 전혀 몰랐으니 뇌가 아닌 '마음'을 연구했던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어서 '이상한 증상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원을 찾으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할짝 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최고의 책이 분명하다. 물론 겉핥기식으로 간단하게 언급하는 정도의 웹툰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높이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이공계열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종종 이 책을 추천하곤 한다. 그럼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그가 만든 이론만큼은 참으로 독창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정신이상자들의 행동에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란 접근은 그들에게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은 확실한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의 정신분석의학의 기준으로 보자면,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20세기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인물로 '프로이트'는 단연 최고로 꼽는다. 특히 그의 '무의식의 세계(꿈의 해석)'를 다룬 이론정립은 대단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결코 '긍정적인 반응'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왜냐면 프로이트는 '유아성욕', '변태성욕', '근친성욕' 등등 점잖은 사람들은 입에 담기에도 곤란한 성(性)스런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욕구로 가득한 '원초아(이드)'가 무의식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데, '자아(에고)'는 의식의 세계에 지내고 있기 때문에 깨어있을 때에는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들었을 때 우리는 이 무의식의 세계와 조우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데, 그게 바로 '꿈'이란 것이다. 그 꿈에서 우리는 '욕망'을 해소하고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면 망측한 꿈을 꾸었다고 자책을 하고 다시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초자아(슈퍼에고)'다. 그런데 정신이상자는 무의식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던 성욕구(욕망)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초자아의 각성으로 적절한 다스림을 받지 못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게 된 상태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던 것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는 환자의 '꿈'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허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환호와 비난이 뒤섞인 반응을 낳았다. '성적 욕망'에 굶주리고 있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프로테스탄트(청교도)적인 갑갑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성(섹스)'을 통해서 욕망해소의 출구를 활짝 열어주어서 환영받았던 반면, 유럽의 학계에서는 가뜩이나 권위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던 차에 프로이트의 성욕구 이론을 환영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반-프로이트 파'를 이끌고서 프로이트의 이론마저 깡그리 폐기처분하려 했지만, 프로이트가 창시한 '무의식 이론'은 날이 갈수록 참신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기에 '뇌과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최고 권위자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칼 구스타프 융이 등장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제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친-프로이트' 성향을 감추지 않았는데, 그도 역시 '무의식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의식'의 존재를 똑같이 지향했던 탓에 융은 프로이트에게 1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존경과 격려를 주고 받는 사이로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그런 둘 사이를 갈라서게 한 원인은 바로 프로이트의 성욕구 이론과는 완전 딴판인 '도덕군자'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똑같이 '무의식'이라는 상자 이론을 내세웠는데,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프로이트는 '19금 야동, 야설'이 난무했고, 융은 '건실하고 바른 생활만 하는 도덕군자'가 들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융의 견해로 봤을 때, 프로이트는 저질스런 변태영감이 주책을 떤다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분석심리학'을 새롭게 창시할 정도였다.

허나 구스타프 융의 이론도 오래가진 못했다.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점잖은 융 이론의 기품은 환영받기에 충분했지만, 그의 분석은 너무나도 난해했기에 융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조차 헷갈려 할 정도로 '방대한 분석'을 해놓은 것이다. 오죽 했으면 100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100가지 치료법을 제시했다고 비난을 했을까. 융의 이론은 너무 난해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너무 세분화하고 개별화 시켜놓은 '분석의 방대함'이 가장 큰 난제였다. 더구나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는 비슷비슷한 사례를 하나로 묶지 못한 것은 가장 큰 단점이다. 그나마 '페르소나(가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자아)' 이론의 매력으로 인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은 점은 인상 깊다. 헤르만 헤세와 BTS(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융의 매력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점이 흥미롭다.

반면에 알프레드 아들러는 비교적 최근에 각광을 받은 심리학 이론가다.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쓴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아들러'에 대한 열광적인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이론은 '열등감'이 핵심이다. 이는 아들러 자신의 경험이기도 했다. 아들러에게는 '잘난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님의 이름이 '지그문트'였기에 애초부터 '프로이트 학문'은 기피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세운 이론의 기조가 바로 '열등감'이었다. 잘난 형님에 비해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아들러는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질병'을 평생 달고 살았고, '교통사고'까지 2차례나 당할 정도로 불운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교수'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열등감' 덕분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아들러는 바른 생활의 남자였다. 잘난 형님에게 비교당하며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삐뚫어지고 삐딱해질 법도 한데, 아들러는 심한 '열등감'에 빠져서 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나쁜 상황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더욱더 맹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들러'를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러의 이론을 보면 매사에 '긍정적인 모습'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끝내 불행을 극복하고 성공에 다다를 수 있었던 까닭도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러의 이론도 곧 한계에 부딪힌다. 그의 이론으로 본다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죄다 열등감에 사로잡혔어야 하는데, 어릴 적부터 승승장구하며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열등감이 충만한데도 하는 일마다 실패한 사람들은 더욱더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심리학은 '프로이트'가 개척한 정신분석을 기초로 탄생했다. 비록 최근에는 '뇌과학'의 발달과 함께 과거의 업적들이 크게 인용되지 않는 경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기초 없는 학문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뇌과학이 모든 것을 다 밝혀내지 못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학문의 성향상 다시 기초를 더듬을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와 융이 창시한 '무의식의 세계'와 아들러가 창시한 '열등감 이론'도 다시금 크게 기여하는 시대가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심리학적 관심을 기울이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일독하면 기분전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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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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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CVII / 한끼 1번째 리뷰]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성인을 위한 책과는 달리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삼은 책들은 책을 읽는 '즐거움과 유익함'을 균형잡고서 출간되어야 하기 때문에 좀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학년별 구별법'으로 1학년(초등1학년)부터 12학년(고등3학년)까지 세세히 구분해서 책을 출간해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왜냐면 분명 '7학년 수준'으로 출간했는데도 중등1학년이 읽기에도 어려워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초등4학년이 휘릭 읽고서 감상평까지 쓱쓱 써내는 면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의 수준별 편차가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어린이책(초등권장도서)'과 '청소년책(중고등권장도서)'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애매한 구분법에 따르지 않고 '성인도서'가 아닌 책을 모두 '어린이책'으로 이름 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0세부터 19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자기만의 도서'를 찾아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수준별 독서'를 하기 위한 전략은 필요하다. 아이들이 독서에 푹 빠지는 경험은 대개 '처음으로 읽는 책'의 호불호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에도 이십대 후반에 우연히 접한 <로마인이야기 2권>(시오노 나나미)을 읽고서 '1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하였고, 향후 20여년 동안 꾸준히 독서를 습관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직업도 바꿔서 '독서논술교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껏 활동하고 있다. 이런 계기가 어린이들에게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처음 읽는 책'이 자기 수준에 딱 맞고, 자신의 취향에도 딱 맞아 떨어지게 되면, 그 뒤부터는 하지 말라고 뜯어 말려도 하기 마련이다. 그 다음에는 '징검다리 책들'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책이 필요한데, 처음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던 책들이 '중간단계' 없이 너무 난해한 책으로 건너뛰게 되면 책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정한 수준의 책들로 차근차근 실력을 다질 수 있게 '난이도 조절'이 잘 된 책들이 필요한 까닭이다. 흔히 '청소년책'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바로 그런 책들이 되어야 한다.

이 책 <센트 아일랜드>(김유정)도 그런 '청소년책'으로 분류하는 책이다. 향수를 제조하는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하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지원자들이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 책의 한 문장을 꼽자면,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내 몸에 벤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다. 어린 시절에 이와 같은 '확실하고 구체적인 꿈'을 가진 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는 꽤나 많이 회자되었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삼은 '자기계발서'가 공전의 대히트를 치기도 했으니, 바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와 <꿈꾸는 다락방>(이지성)이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간식 '마시멜로'를 지금 당장 먹어도 좋지만, 30분 동안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 더'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을 하고, 이를 통과한 어린이를 20년 뒤에 추적조사 했더니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크게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더라는 내용의 책이다. 반면에 30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어치운 어린이의 미래는 그다지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는 반전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고작 30분을 참고 견디는 힘의 유무가 '성공하는 자세'를 갖춘 것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다는 책으로 많은 호평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물론 '통계적'인 결론일 뿐, 정확한 근거가 있는 내용은 아니다. 30분을 참고 기다린 어린이 중에도 '성공'에 끼지 못한 삶이 있었고, 30분을 참지 않고 먹어버린 어린이 중에도 크게 '성공'해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삶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힘들고 어려운 일에 닥쳤더라도 '참고 극복해내고'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삶을 습관으로 들이는 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자세라는 점일 것이다.

한편, <꿈꾸는 다락방>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공식이 존재하고, 막연하게 꿈을 꾸는 것이 아닌 '생생하게' 꿈을 꾸고, 꿈을 위해 '헌신적으로' 실현시킬 노력이 더해지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내용을 담았다. 굉장히 당연한 소리인데, 실질적으로 이를 이루는 사람이 적은 까닭은 꿈을 꾸는 것보다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꾸는 사람에게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계속 주입하려 든다. 마치 '인디언의 기우제'를 연상시키는 방법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역시나 대박을 터뜨린 자기계발서가 되었다.

그럼 <센트 아일랜드>에서 꿈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 소설의 주인공 이다린은 '센트 그룹의 연구원'이 되는 것을 꿈꾼다. 어릴 적부터 향기에 민감한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은 '센트 그룹'밖에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반대가 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센트 그룹'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었고, 불의의 사고로 실명을 하였고, 그 때문에 좋아했던 향수제조의 꿈도 포기하고 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래서 '불의의 사고'가 있었던 센트 그룹에 입사를 원하는 자신의 딸이 혹시라도 엄마와 같은 일을 당할까봐서 우려스러워했기 때문에 반대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린의 꿈'은 너무도 간절했다. 다린의 재능도 '센트 그룹의 일원'이 되는 것이 딱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다린은 엄마 몰래 '인턴십 과정'에 지원서를 넣었고, 1차 합격이 되어서 '최종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센트 그룹' 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그룹 내부에서 엄마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불의의 사고'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과정중에 '일종의 음모'가 파헤쳐지고, 이를 막으려는 세력이 '다린의 불합격'을 조장하는 일이 벌어지는 스펙타클 서스펜스 스릴러...쿨럭쿨럭..암튼 그런 스릴 넘치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지만, '청소년책'이라서 그런지 그런 '음모론'은 최대한 자제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뭐, 엉뚱한 곳에서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사건을 딴쪽에서 터지고 말지만 말이다. 암튼 '꿈꾸는 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서 좋았다. 살짝 교훈적이라서 밍숭맹숭한 느낌도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다린의 꿈이 여기서 완성된 것 같지는 않다. 영화속 '엔딩크리딧' 뒤에 등장하는 '쿠키영상'이 있는 것처럼 이 소설책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풀풀 풍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속작'의 여부를 확인해봤는데, 아직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뒷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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