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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빛날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3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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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V / 그린애플 6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순정동화'의 마지막답게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그건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대관식'이었다. 물론 대관식이 열리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늘 그렇듯 엘리자베트 공주에게는 쾌활한 소동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스케일이 크다. 대관식에서 꼭 쓰이는 '성스런 보물들'을 훔쳐가려는 도둑 일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도둑들이 훔쳐가려는 보물은 다름 아닌 '루이16세'가 대관식에서 왕위에 정식으로 등극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샤를마뉴의 왕관'이었다. 무려 4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이었는데, 역대 프랑스 국왕이라면 대관식에서 꼭 그 왕관을 써야만 인정받았단다.

샤를마뉴 대왕이라면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 같지만 '동일인물'이다.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서유럽 전체'를 통일했을 때가 바로 '사를마뉴 대왕' 집권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됭 조약'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3개로 쪼개지면서 '서프랑크 왕국'은 프랑스로,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로 각각 역사 편입을 하면서 '프랑스 역사'에서는 샤를마뉴 대왕로, '독일 역사'에서는 카롤루스 대제로 부른다. 스펠링은 'Charlemagne'다. 흔히 서로마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라고도 많이 알려졌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문이라고 볼 정도로 수많은 게르만족들이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나눠먹었으나, 현재의 프랑스 지역이 일부를 '프랑크족'이 차지하고, 그 지역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메로빙거 왕조'를 열고, 과거 서로마 지역의 대부분을 '카롤루스 대제'가 차지하게 되면서 '서로마제국의 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샤를마뉴 대왕이 죽자 왕국은 셋으로 쪼개졌고,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기에 '서로마제국 황제'라는 명칭도 자연스레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독일 제국이 그 명칭을 이어받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로마제국의 황제다운 강력함은 찾기 힘들었다.

암튼, 프랑스 왕정국가는 이후 대관식에서 '왕홀'과 '정의의 손'이라는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하는 장식물 이외에 '샤를마뉴의 검과 왕관'을 대관식에서 선보이며 더욱더 화려하고 웅장한 대관식을 연출했단다. 현재 '샤를마뉴의 검'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보관중이지만, '샤를마뉴의 왕관'은 도난을 당하거나 파괴되는 수모를 겪다가 루이16세의 대관식 이후 프랑스 혁명 때 잃어버리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단다. 기록에 따르면 루비 16개, 루비를 떠받치는 사파이어 16개, 에메랄드 16개, 총 48개의 보석이 박혀 있고, 왕관 안쪽에는 진주를 덧댄 진홍색 벨벳 모자로 마감을 해서 무게만 해도 무려 4킬로그램에 달했다고 한다. 거의 금 10돈이 3750그램이니, 거의 금 11돈에 해당되는 무게이다. 그걸 반나절 동안이나 진행되는 대관식 내내 쓰고 있었다니 '왕관의 무게'가 정말 장난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물건이니 혁명의 시기에 혼란을 틈타서 사라져버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동화속에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런 중요한 보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친구들과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도난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무사히 친오빠 루이 오귀스트가 '루이16세'로 등극할 수 있게 힘을 모았다. 이를 두고, 동화속에서는 '연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서로의 힘을 모아 함께 책임을 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을 '연대'라고 말했다. 동화속에서는 '어린이'들이 연대를 해서 왕관을 훔쳐가려는 도둑들의 음모를 해결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해서 무사히 대관식을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위기는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이고, 이웃 나라가 고난을 당하면 그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남의 문제'로 치부하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기에 '연대'는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인류가 함께 참여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연대를 하게 되면 못할 일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인 '연대'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건 꼭 전세계인들이 모두 '연대'를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강대국이 벌이는 살육전쟁과 관세전쟁은 또한 어떤가? 연대는커녕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것마냥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찬반 논쟁'은 도를 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민주화이고, 어떤 희생을 치루고 피워낸 '민주주의'인데, 지금 그꼴이 어떤가? 이게 정녕 민주주의란 말인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주는 기본 예절은 어디가고, 서로를 향한 막말과 욕설로도 모자라 '폭력과 위법'을 일삼느냔 말이다. 제발 부끄러운줄 알고 예의를 지키란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쌈박질하는 '남북갈등'에, 진보와 보수의 '남남갈등'까지 더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탄핵갈등'까지 덧붙여서 나라를 아주 망하게 만들려 작정했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딱 한 명이다. 그 한 명만이 '다 죽은 목숨'을 연장시키고, 국민 모두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아서, 저 혼자 잘 살면 땡 잡은 거고, 못 잡아서 죽어도 '개죽음'이 아니라 '본전'이니 막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놀아난 '동조범'들도 마찬가지 속셈이고 말이다. 왜 우리가 이런 죽어 마땅한 한 놈 때문에 나라꼴을 이모양 이꼴로 만들어야만 한단 말인가. 제발 정신 차리고 '딱 한 놈' 잡아족치는 연대를 보여줄 때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우리 함께 빛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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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달릴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2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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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II / 그린애플 5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 제5권에 해당하는 이번 책의 제목은 <나의 길을 달릴래!>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 왕 루이16세의 친동생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16세의 '무능함'만을 부각해서 보았지만, 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속사정까지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리즈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써놓아서, 여자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나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이면'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루이16세'는 어린 여동생의 슬픔과 고통까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오빠이며, 동시에 그런 따뜻한 마음씨로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프랑스 왕국의 백성들에게도 '자애로운 아버지'로 군림하고 싶었던 평범한 임금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격동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던 무능한 임금의 모습도 루이16세의 한계점임은 분명하고 말이다. 만약, 루이16세가 평화로운 시대에 재임을 했더라면 그는 참 태평스런 시대를 누리게 했을 수도 있는 마음씨 따뜻한 임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천방지축인 엘리자베트 공주를 보고 있으면 말이다.

이번에도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다. 단 하루도 얌전히 '공주 수업'을 받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엔 스케일이 더 커졌다. 북아프리아에 위치한 국가, 리비아에서 평화사절단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언급했던 '베르사유 동물원'에 사육하게 될 동물들을 우호를 약속하는 선물로 데리고서 아주 호화롭게 방문했다고 한다. 1775년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리비아는 '해상무역'을 통해서 부를 쌓아 경제적 호황(?)을 맞이했더랬는데, 이게 종종 해적질로 변질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에겐 큰 위협이 되었단다. 이에 루이15세가 프랑스 함대를 출동시켜 리비아의 가장 큰 항구인 트리폴리 항구를 포위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리비아의 파샤(임금)는 프랑스 배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프랑스는 함대를 철수 시켰다. 그리고 1년 뒤, 루이15세가 죽자, 리비아의 파샤는 루이16세와 다시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이때 사절단이 가지고 온 선물이 어마어마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사자, 표범, 낙타, 그리고 아랍의 말까지 프랑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신기한 동물들을 엄청 가지고 왔다고 전한다. 특히, 아랍의 말은 유럽의 말보다 뛰어난 혈통을 갖고 있기에 프랑스 사육사들은 이를 '종마(씨말)'로 삼아 뛰어난 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루이16세는 자신의 대관식에 '리비아 사절단'을 초청하는 것으로 답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자신의 결혼 상대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결혼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 아무도 몰래 친오빠인 '루이16세'를 알현하고, 결혼을 무효로 되돌리려고 대소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유럽의 왕실에서는 '정략결혼'이 일상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이용했고, '결혼'을 통해서 전쟁 직전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일을 계속 이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각국의 왕자와 공주는 살아생전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듯 싶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 누리는 것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싫은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인생을 즐기며(?)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루는 인물도 있겠지만, 그런 '정해진 운명',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연극무대'같은 삶을 저주하는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후자에 가깝고 말이다.

암튼, 엘리자베트가 이번에 결혼할 상대는 포르투갈 왕자다. 하지만 얼굴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혼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당시 프랑스와 앙숙이었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포르투갈을, 프랑스쪽으로 끌어들여 한편으로 삼고 영국을 고립무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영국은 '신교(프로테스탄트)의 국가'이고, 포르투갈은 '구교(로마 가톨릭)의 국가'이지 않은가. 그렇게 같은 종교(로마 가톨릭)인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손을 잡게 되면 영국과의 경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프랑스 공주'와 '포르투갈 왕자'의 결혼은 아주 중요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는 국가적인 이익을 따지는 셈법이고, 엘리자베트 공주 '개인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결정인 셈법이다. 더구나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제 막 '열한 살'이 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결혼 날짜가 2년 뒤라고는 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에서 슬프고 아픈 것이다. 왕실 가문에 태어난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결혼'인데,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왕실 가문의 사람들조차 '정해진 이익을 위해서' 강제로 짝을 맺게 하는 것은 마치...훌륭한 혈통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짝짓기(교배)'를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는 리비아 사절단이 데리고 온 '암말, 에클립스'가 등장한다. 바람처럼 달릴 때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절단이 에클립스를 데리고 온 목적이 억지로 교배를 시켜서 뛰어난 혈통의 말을 낳게 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그렇게 뛰어난 말들이 프랑스에 넘쳐나게 되면 프랑스와 리비아 사이의 평화도 오래도록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엘리자베트의 '정략결혼의 목적'과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물론 아주 좋은 목적이다. 분명 '이익이 되는 결정'이고 말이다. 그런데 에클립스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지 '가축'일 뿐이니 유용하게 써먹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폐기처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왕실의 '가족'으로 온갖 보살핌을 살뜰하게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주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희생(!)시켜 버리는 것으로 결정해버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냔 말이다.

여기에 프랑스 왕실의 교육을 담당한 '수석교사 마르상 부인'의 태도가 한 몫 한다. 그녀는 루이16세부터 엘리자베트까지 왕실 가족의 어린 시절에 아주 '철저한 교육'을 하는 것을 막중한 책임으로 맡고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귀족 가문은 프랑스 역대 부르봉 왕조의 '왕실 담당 가정교사'로 책무를 맞고 있어서 죽을 때까지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을 '프랑스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엘리자베트 공주의 경우를 봐도 알겠지만, 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다. 말끝마다 "프랑스 공주(왕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을 할 뿐이다. 각자의 성향이나 재능에 따라서 '유연한 학습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으로 왕실 가문에 걸맞는 교육이랍시고, '변함없이 엄격한 교육'만을 강요할 따름이다. 그러다 '국익에 우선하는 행사'가 발생하면 아낌없이 '왕실 가족'을 희생양 삼아 '정략결혼'을 밀어붙이고, 그렇게 성사된 결혼으로 얻은 '국익'을 자신의 교육적 커리어 덕분이라고 우쭐거리는 아주 밥맛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교사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사건건 '마르상 수석 교사'와 대립을 하고 수업이 아니라 벌을 받길 자처한다. 물론, 이런 모습도 '학생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어떤가? 왕자와 공주의 삶이 그들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의 화려함만큼이나 부러움의 대상인가? 이렇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삶은 저 넓은 들판에서 맘껏 뛰어놀다가 적당한 때에 도살되어 식탁위에 맛난 요리로 오르는 '육우(고기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에스파냐의 전통, '투우'가 어차피 도살될 소와 함께 펼칠 화려한 퍼포먼스로 육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처럼 '왕실 가문의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도 그런 투우의 화려함과 그닥 다르지 않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떤 소동을 벌였으며,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의 다음 소동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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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랑 춤출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1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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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I / 그린애플 4번째 리뷰]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후속편으로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라는 시리즈로 다시 돌아왔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로 루이16세가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벌어지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간 '순정동화'다. 어릴 적에 소녀들이 주로 읽던 만화를 '순정만화'라고 불렀는데, 이 동화책도 여자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기에 '순정동화'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 동화책에는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트 공주'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30대에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결혼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혁명'이 그녀의 인생을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동화책은 엘리자베트가 10대 어린 시절 베르사유 궁전에서 지내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사건은 동화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진난만', '천방지축'인 말괄량이 공주가 벌이는 요절복통 대소동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지경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다만,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는 '수석 가정교사 마르상 부인' 때문에 불행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번 '뮤직박스 사건'을 계기로 함께 공부하기로 한 친구 '앙젤리크'와 그녀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베트의 새로운 가정교사 '마코 부인' 덕분에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엘리자베트도 상당히 똑똑해졌고, 공주다운 예절도 제법 티 나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곧 이웃나라 왕자와 결혼 약속을 한 언니 '클로틸드 공주'가 무도회 때 출 '춤곡'을 연습하는데, 엘리자베트도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엘리자베트는 춤을 출 수는 없었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동화책은 이처럼 좀처럼 배우기 힘든 '궁중 예법'과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 역사'를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재미난 동화책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도 함께 익힐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던 '동물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동물원은 루이 14세가 손자며느리인 '마리 아델라이드'에게 선물로 주면서 만들어졌는데, 마리 아델라이드는 이 동물원에서 수많은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방문자에게 환영의 뜻으로 물벼락을 내리는 장난도 이때 생겼고 말이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동물원에 관심이 없어 동물원 관리는 엉망이 되었지만, 그래도 새 동물들은 점점 불어났다고 한다. 부실관리를 하는데도 '동물원 식구'는 점점 늘어나자 동물원은 더욱더 망가지게 되었단다. 루이 16세 때는 엉망인 동물원을 '간소하게' 복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동물원의 동물은 그대로 달아나거나 일부는 시민들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일을 겪고도 남아있던 동물은 '파리 식물원'으로 옮겨져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그 당시에 공개되었던 사자의 이름이 바로 '으와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자가 맞다. 그리고 그 사자와 함께 지내던 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죽자 으와카도 활기를 잃고 병들었다고 한다. 현재 '베르사유 동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이후 버려지고 파괴되어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럼 동물원과 궁중의 공통점이 있을까? 오늘날 몇 남지 않은 '왕실 사람들'이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사실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막강하고 화려했던 '왕실 가문'은 현재는 대부분의 권력을 잃어버리고 명목상 '군주의 역할'만 수행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왕실 사람들도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직접 벌어서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국가의 세금으로 '왕실 사람들'이 쓰는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왕자와 공주인데도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년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을 축내던 것을 깎을 수도 없다. 적어도 '체면 유지'는 해야 하기에 엄청난 비용을 청구하고, 그보다 더한 비용을 사용해서 해마다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왕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왕실은 부족한 예산과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왕실의 일상'을 TV에 방송을 하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단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결단이었다는데, 그로 인해 영국 왕실이 전세계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결혼과 이혼 등의 사사로운 일상까지 다 공개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기 일쑤고, 심지어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사망하고 마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동물원'에 갇힌 동물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행복한 걸까? 과거에는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을 보며 '견문'을 넓히는 유익함도 있었고,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을 전세계에서 잡아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일이었기에 '동물원'을 운영하는 것이 곧 '왕권의 파워'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그럴까?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진 '인권'이 소중한 만큼 동물에게도 '동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원래 살던 환경과 아무리 비슷하게 꾸미고, 동물원 사육사가 훌륭하게 돌봐준다 하더라도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은 낯선 환경과 수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증세'를 보이는 동물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험한 야생환경에서 살다가 쾌적하고 편안한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안전하고 풍족하게 관리를 받는 것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밀렵이나 사냥으로 희생을 당할 뻔한 동물을 구해다가 '동물원'에서 보살펴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겠냐는 주장도 있다. 허나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누군가 당신을 안락하고 쾌적한 '요양보호소'에 가둬놓고서 자유를 박탈해버린 것을 두고서 진정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캐어'가 필요한 분이 아니라면 건강하게 뛰놀 수 있는 '야생동물'을 강제로 잡아다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어찌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겠냔 말이다.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고, 인간들이 사는 공간에서는 반드시 '목줄'을 채워야 하고, '인공사료'만 평생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반려동물 또한, '행복'을 논할 수 있느냔 말이다. 물론 '동물권'을 보장하고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는 동물을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명칭을 바꿀 정도로 인식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요즘엔 집밖에서 기르지 않고 '집안'에서 기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많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인간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다. '인간 위주'의 판단이 아닌 '인간과 동물의 공생'이 가능하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한 생명'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사명감으로 길러야만 한다. 쉽게 구매했다가 쉬이 버려도 되는 '장난감'하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정성으로 '동물원 관리'도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친숙한 몇몇 동물을 제외하곤 '야생동물'이 원래 있던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관람할 때에는 동물을 최대한 안심할 수 있도록 예절(?)을 지키며 차분히 관람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당신 집'을 구경하겠다고 찾아와서 시끄럽게 소리지르고 함부로 당신 집의 물건과 당신을 대한다고 생각해보란 말이다.

참, '순정동화'라고 소개를 하고서는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엘리자베트가 쿠키라는 이름의 '퍼그' 강아지를 선물로 받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의 시종인 '모리스 드 퐁텐' 귀족이 지난 번 옷장에 갇힌 사건에 대한 앙심을 품고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귀여운 강아지를 납치해서 동물원에 갇힌 사자우리에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는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지만 '공주 신분'답지 않은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르상 부인'의 감시와 눈길을 피해서 귀여운 강아지 구출 작전이 펼쳐진다. 쾌걸 공주가 아름다운 궁전에서 벌이는 대소동의 결말은 어떻게 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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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반달 그림책
김영경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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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 / 반달(킨더랜드) 2번째 리뷰] '그림책'을 읽을 땐 글자(텍스트) 위주가 아닌 '그림' 위주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텍스트'가 많은 그림책일지라도 글자를 쫓아가지 말고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아주 작은 차이부터 살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줄글'로 된 이야기책에서 '행간'에 감춰진 참뜻을 찾아내는 훈련과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라면 더욱더 '그림, 본연의 맛'에 심취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모든 그림책이 그렇진 않지만 '표지' 또한 그림책의 일부인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엔 '표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아이에게 앞표지를 먼저 보여주지 말고 뒷표지부터 찬찬히 뜸을 들이다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 보아도 좋다. "앞표지에는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이런 질문을 '발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란 뜻인데, '정답'은 없다. 그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생각을 '표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의 표현력에 따라 엄청난 감동이 피어나기도 한다.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림책만 뚫어져라 노려보는 아이도 있고 말이다. 정말 천차만별이니 '정답'을 강요하지는 않길 바란다. 자주 그런 '발문'을 던지다보면 아이는 어느새 '표현력의 왕'이 되어 주체할 수 없이 표현하게 될테니 절대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물론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내 경험으로는 '독서지도 1년동안' 수업중에 단 한마디로 하지 않던 아이가 2년째 접어드는 순간에 봇물 터지듯 쫑알거리는데, 그 순간의 감동이란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수업은 '방문수업'이라서 어머님이 거실에서 볼일을 보시다 종종 아이의 방을 몰래 훔쳐보곤 했는데, 아이가 쫑알쫑알 입을 여는 그 순간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어버리셨다. 내심 표현은 안 했지만, 내 수업방식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비싼 수업료를 냈는데 아이는 멀뚱멀뚱 눈만 깜빡거리다가 수업을 마치길 1년이니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했을까? 그렇게 오랜만에 입을 연 아이는 그 다음 수업부터 '청산유수'였다. 언제 그렇게 표현력 훈련을 한 것인지 그동안 내가 수업중에 했던 말투까지 흉내내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말문이 터지니 글쓰기도 덩달아 실력 발휘를 하여 앉은 자리에서 두 바닥을 쓱쓱 써내려가곤 했다. 그러니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가 할 법한 대답'을 연상하며, '아이가 했으면 좋을 올바른 대답'을 떠올리며 '좋은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 결국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아이가 이끌어 간다. 한 아이는 자그마한 벽돌을 쌓아 '자기만의 성'을 쌓아나가고, 다른 한 아이는 그 성밖에서 '벽돌을 쌓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성을 쌓던 아이는 성벽이 올라갈수록 점점 덩치가 커진다. 성밖에 있던 아이는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아이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두 아이 가운데 '성을 쌓고', '성장하는' 아이를 좋은 아이, 올바른 아이, 훌륭한 아이로 결론 내릴 것이다. 반면에 성밖에서 빈둥거리는 아이는 그 반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성벽을 높이 쌓던 훌륭한(?) 아이가 그만 성안에 갇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자신이 쌓은 성벽을 어쩌지 못하고 그만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갇힌 덩치 큰 아이는 지쳤는지 심심해선지 성벽에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늘어뜨린 성안의 아이 손가락을 가만히 건드리는 성밖의 아이에 시선이 간다.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드디어 성밖의 아이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성안에 갇힌 아이는 성밖에 있는 조그만 아이를 벽 너머로 바라본다. 그러자 성밖의 아이는 한 손에 든 '작은 꽃'을 번쩍 들어서 보여준다.

그 작은 꽃을 건내받은 성안의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성벽 안에는 '작은 꽃'이 머물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아이는 그 '작은 꽃'을 둘만한 장소를 물색하느라 이 벽돌, 저 벽돌을 들춰보지만 결국 찾지 못해 슬퍼진다. 왜냐면 작은 꽃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안의 아이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작은 꽃'이 시들기 전에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성안의 아이는 '작은 꽃'을 살리기 위해서 성벽을 넘어 작은 꽃이 살만한 들판을 찾았고, 그곳은 성밖에 있던 아이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둘은 '작은 꽃'을 들판에 옮겨 심었다. 작은 꽃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고, 두 아이는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옮겨 심은 '작은 꽃'은 어느새 자라서 커다란 해바라기꽃이 된다. 줄기와 잎이 무럭무럭 자라서 덩치 큰 아이만큼 자라자 덩치 큰 아이는 자기가 쌓아올린 성벽을 다시 돌아본다. 그 성벽은 이제 한 쪽 벽이 무너져서 망가져버렸다. '작은 꽃'을 살리기 위해 무리하게 벽을 넘다가 망가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덩치 큰 아이는 속상해하지 않고 무너진 벽돌을 허물어버리고 다시 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밖에서' 말이다. 그렇게 성밖에서 벽을 허무는 동안 덩치 큰 아이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성벽이 낮아지자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낮아진 성벽 위에 다시 벽돌을 쌓아올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두 아이가 힘을 합쳐서 함께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래의 모양과는 달랐다. 처음에 쌓은 성벽은 '지붕'이 없는 형태였는데, 다시 쌓아올린 성은 '지붕'의 형태를 띄면서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그리고 차이점은 또 있었다. 첫 번째로 쌓아올린 성벽은 굳게 '닫힌 문'었는데, 두 번째로 쌓아올린 성벽은 온전하게 '집 모양'을 띄면서 닫혔던 문이 점점 활짝 '열린 문'의 형태를 띤다. 그렇게 성을 완성하고나니 두 아이는 '크기'가 같아졌다. 그리고 성의 꼭대기에는 '작은 꽃'도 심어놓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지붕 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림책은 끝을 맺는다.

그림책에서 '교훈'이 떠오르는가?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해졌는가? 사실 그림책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도 없다. 그래서 그림책은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아주 훌륭한 교재다. 그런데 섣부른 어른들은 '그림책'속에서 한 가지 교훈과 주제를 찾아내곤 '벽돌처럼' 굳게 닫아버린다. 이 그림책의 주제는 앞으로 '이것이다'라면서 뿌듯해 한다. 너무 독단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하긴 '텍스트'로 가득찬 책들에서도 '정답'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기 일쑤인데, '텍스트'가 없는 책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하나의 그림책에서 열 개의 교훈을 얻으면 '10배의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고, 백 개의 주제를 찾아내면 '100배의 가치'를 얻은 셈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꼴랑 '1개의 가치'를 고집하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림책 100권을 읽어 봤자. 고작 100개의 '정답'밖에 찾지 못하는 바보들이다. 그림책 한 권에서 100개의 상상력을 얻어낸 아이들은 100권의 그림책을 읽으면서 '1만 가지의 교훈과 주제'를 찾아낸 천재들인 셈이다. 당신의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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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푸른수염의 일곱아내 - 우리가 꼭 읽어야할 명작소설 우리가 꼭 읽어야할 명작소설 14
아나톨 프랑스 / 그림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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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 / 그림책 1번째 리뷰] 이 책을 쓴 지은이부터 먼저 소개해야 겠다. 1921년 <펭귄의 섬>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다. 이렇게 글쓴이의 '권위'부터 소개하는 까닭은 이 글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나도 '푸른 수염'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처음 들은 바니까 말이다. 더구나 아나톨 프랑스는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며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에 저항한 인사이기도 하다. 이런 아나톨 프랑스가 '살인광 푸른 수염'을 변호하기 위해서 글을 남겼단다. 내용을 살펴 보자.

제1장에서는 전래민담 <푸른 수염>에 관한 '비교신화학'적 가설을 설명한 내용인데,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다. 단지 전설로 내려오는 내용들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면서, 만약 그러한 내용들이 모두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역사를 '태양 신화'에 빗대어 추증하는 이들의 썰에 따르면 '나폴레옹'이란 자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비유하며 비꼬고 있다. 이처럼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설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오직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야기 한 것만을 가지고서 '가설'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로 서두를 꺼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한 결론은 다름 아닌 '푸른 수염'에 대해서 악의적인 비난을 퍼부은 샤를 페로의 저의가 무엇인지 파헤쳐 보겠다는 비장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어찌 하여 샤를 페로는 '푸른 수염'에 대해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한으로 그려낸 것인지 의심부터 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아나톨 프랑스는 1650년 경, 베르나르 드 몬테규라는 이름의 부유한 귀족이 '꽁삐엔뉴'와 '삐에르퐁' 중간에 있는 영지에서 살고 있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내민다. 이곳에서 몬테규라는 귀족은 그 시절의 시골 영주답게 하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주일에는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추며 검소한 생활을 즐겼다고 전한다. '고딕 시기'에 지어진 그의 성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고딕형식의 성들은 대개 '창문'이 작다. 두꺼운 기둥이 성의 무게를 지지하는 건축양식이기에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창문이 세로로 길고 폭이 좁은 형태다. 그나마 벽면에만 '자연창'을 내었을 뿐, 내부의 방으로 들어가면 '창문'도 없이 어두컴컴하고 오직 '촛불'에 의지해서 어둠을 밝히는 구조였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복도 끝 한켠에 그 유명한 '작은 방'이라 불리는 방이 있었을 거란다. 샤를 페로는 유독 이 방에 집착했고 말이다. 이 방에 '가엾은 공주들'이 시체가 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느냐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시콜콜 알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마저 '기록'이 없다면 아무런 상상을 하더라도 거리킴조차 없을 것이다. 그 상상이 좋은 상상인지, 나쁜 상상인지도 말이다.

암튼 그 고딕 성의 주인인 시골 영주를 마을 사람들은 '푸른 수염'으로 불렀단다. 수염의 빛깔이 워낙 칠흑같이 검어서 '푸른 빛'이 돌 정도였기에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염을 제외하고 몬테규 씨의 체격은 통통한데다 키가 크고 어깨도 넓고 혈색 좋은 호남형이었다고 전한다. 수려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몹시 '수줍음'이 많았는데, 이게 여자와 사귀기 힘든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푸른 수염은 파티 때마다 귀부인들을 사랑했고, 호감도 많이 받았지만, 여성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죽기보다 힘들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서, 심할 때는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수줍음이 그에게 결정적인 불행을 안겨 준 것이다. 얌전하고 정숙한 여성과 인연을 맺기 힘들게 만들었고, 오히려 뻔뻔스럽고 게걸스런 여성들에게만 유혹을 당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도 귀족이었기에 결혼을 해야만 했다. 첫 번째 아내는 '꼬레트 파싸쥬'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곰'을 재주넘게 하여 돈을 벌던 여성이었는데, 얌전한 성격의 드 몬테규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단다. 하지만 성향이 다르면 그것 또한 매력이라고 했던가. 드 몬테규(이하 '푸른 수염')는 첫 번째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워낙 활달한 성격의 아내는 얌전한 성격의 푸른 수염과는 잘 맞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를 느낀 그녀는 그 '작은 방'에 떠돌이 시절에 키우던 '곰'을 가두어 두고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 '작은 방'의 문이 열린 틈으로 곰이 달아나자 아내도 함께 달아나버렸다. 아내를 잃어버린 슬픔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끝내 찾지를 못했단다.

도망 간 아내를 잊지 못한 '푸른 수염'은 우연히 꽁삐엔뉴 형사 재판관의 딸, 쟌느 드 라 끄로슈와 춤을 추게 되는데,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푸른 수염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더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도 승낙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것 같았지만, 푸른 수염의 두 번째 아내는 '술고래'였다. 성안의 술이란 술을 몽땅 퍼마시고도 모자라서 더 많은 술을 사마시기 시작하자 '푸른 수염'도 더는 참지 못하고 아내의 음주벽을 고치려고 술에 '개박하'를 넣었는데, 술에 취한 아내는 독약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푸른 수염의 배를 칼로 찔러대기도 했단다. 그런 일이 있어도 꾹 참았던 푸른 수염은 아내를 그저 방치하고 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내가 '작은 방(한때 곰이 머물던 그 방)'에 들어가자 정신착란을 일으키고서는 "살인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작은 방을 뛰쳐나갔다가 호수에 빠져 죽었단다. 이를 계기로 '작은 방'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방의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기괴한 그림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게 되었다. 암튼 그 '작은 방'은 '공주들의 방'이란 명칭과 달리 귀여운 구석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두 명의 아내를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영지의 농부, 트레넬의 딸, 지곤느와 결혼을 한다. 신분 차이가 있었던 만큼 결혼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의 몸에선 양파 냄새가 났고, 사팔뜨기에 다리 마저 저는 불구였다. 그것만 빼고는 참한 색시이긴 했는데, 귀족 영주와 결혼을 한 것을 계기로 '사치'에 눈을 뜨고서는 끝없는 탐욕을 부리기 시작했단다. 푸른 수염은 귀족치고는 검소한 생활을 해왔던 터라 아내의 사치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그래도 푸른 수염은 아내가 만족할 만큼 풍족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도록 도와줬단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칠 줄 몰랐고, 급기야 '왕의 정부'가 되겠다면서 사교계에 진출하고, 궁정에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했으나 그곳이 어디라고 '사팔뜨기에 절름발이 시골 아낙'을 받아주겠는가. 결국 푸른 수염의 아내는 '왕의 정부'가 되지 못한 원한을 품고 병에 걸렸고, 그만 죽고 말았다.

'야성의 첫째 아내', '술고래인 둘째 아내', '사치스런 셋째 아내'까지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상심이 컸지만, 기병 사관의 딸, 블랑슈 드 지보메에게 딱 걸렸다. 그녀는 매우 재치있는 여성이었다는데, 그 재치가 '현모양처'로 이어지진 못했고, 푸른 수염을 '기만'하는데로 기똥차게 굴러갔던 모양이다. 그녀는 결혼한 뒤에 '푸른 수염의 영지' 인근에 있는 귀족이란 귀족은 모두 꾀어서 정을 통했단다. 한마디로 '불륜녀'인 셈인데 푸른 수염이 너무 어리숙한 것이 그녀의 불륜을 더욱 부추기는 축에 끼었다. 심지어 남편인 푸른 수염의 면전에서도 대놓고 바라을 피웠는데, 푸른 수염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색조차 하지 않고서 아내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인데, 엉뚱하게도 남편에게 밟힌 것이 아니라 '다른 내연남'에게 걸리게 되었다. 네 번째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방이 그 '작은 방'이었는데, 어느 날에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다른 내연남이 발견하고서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칼로 찔렀는데, 그만 푸른 수염의 아내가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네 번째 아내까지 비명에 죽자 푸른 수염은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백약이 아무 소용이 없자 의사는 마지막 처방으로 '젊은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떠난다. 사랑으로 얻은 병은 사랑으로 치료하라는 처방이었던 셈이다. 그때 마침 떠오른 여자가 사촌 누이인 '앙젤 드 라 가랑딘느'였다는데, 그녀가 마침 '어리석은 여자'라는 점이 푸른 수염에게 안심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착한 여자였던 '라 가랑딘느'는 예쁜 외모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예쁜데 어리숙한 그녀를 온 마을의 방탕한 귀족남자들이 찝쩍거린 것이다. 그렇게 예쁘다고 칭찬하고서 성안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입술을 훔치고,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까지 빼앗겨 버린 이야기를 속도 없이 남편인 '푸른 수염'에게까지 털어놓는 순박함(?)이 푸른 수염을 더 마음 아프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푸른 수염은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내에게 '정신' 차리라고 뺨을 몇 차례 때린 것이 소문이 퍼져 푸른 수염이 아내를 폭행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고 잘못 알려지게 되는 시초가 되었단다. 한편, 순진한 아내는 남편인 푸른 수염이 오리 사냥을 나간 동안 인형의 치마를 깁고 있었는데, 마침 성을 지나가던 수도사가 앙큼한 마음을 품고서 예쁘고 순진한 부인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영주님의 양말을 숲속에서 깁고 있다면서 부인에게 전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단다. 그렇게 아내를 꾀어낸 수도사는 그녀를 당나귀에 태우고 떠났는데, 그 뒤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찌어찌 여섯 번째 아내는 '아리스 드 퐁딸셍'이란 이름의 고아 처녀였단다. 그녀는 욕심 많은 후견인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긴 채 수도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마을 친구들이 중매를 서서 '푸른 수염'과 결혼을 한 것이다. 얼떨결에 한 중매결혼이긴 했지만, 여섯 번째 부인은 꽤나 미인이었다고 한다. 푸른 수염은 다섯 아내를 상처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새로 맞이한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려 했지만, 아리스는 남편이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작은 방(공주들의 방)'으로 들어가 몇 날 며칠을 홀로 지냈단다. 그래서 푸른 수염은 여섯 번째 아내와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자신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푸른 수염은 여섯 아내를 모두 잃어버렸다.

이제 그 유명한 <푸른 수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도니 드 레스프와스'란 미망인이 아들들을 데리고 푸른 수염의 영지(레기예트 성)에서 십 리쯤 떨어진 '라 모트 지롱' 관에 이사 왔다. 그녀는 호화스런 생활을 했으며 근처의 귀족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기도 했단다. 이 미망인에겐 두 명의 딸도 있었는데, 첫째는 혼기를 넘긴 교활한 여자, 안느였고, 둘째는 결혼적령기로 겉으론 순진해보이지만 속으론 조숙한 여자, 쟌느였다. 두 아들은 용기병과 근위기병이었는데, 풍채 좋고 미남자였지만, 성격은 개차반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용기병은 모두 '불량배'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근위기병도 검은 옷을 입은 '흑근위기병'이었는데 역시나 평판이 나빴다. 이런 평판은 당시 '기록'에도 남을 정도였기에 어느 정도 사실임을 입증할 것이다. 암튼 이 미망인 부인은 '푸른 수염'에게 눈독을 들였고, 그가 돈이 많다는 사실도 금새 알아챌 수 있었다. 미망인으로 '돈줄'이 궁한 형편이었고, 주위의 사채업자들의 압류 협박도 심심찮게 받았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부류에게 '푸른 수염'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이제 여섯 아내를 잃어버린 푸른 수염은 맹수들에게 둘러 싸인 형편이 되었다. 과연 벗어날 수 있었을까? 일단 '결혼'부터 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활한 언니가 성공했을까? 조숙한 동생이 성공했을까? 아무래도 검소하고 순박한 '푸른 수염'에겐 교활한 여성보다 조숙하지만 내숭을 보이는 여성에게 홀렸을 가능성이 높다. 뭐, 싱싱하고 어린 여성에게 더 끌렸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둘 중 어떤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더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두 딸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과연 푸른 수염의 재산이 탕진할 정도로 많은지 적은지 말이다. 그래서 요란한 잔치를 벌였다. 그렇게 8일 동안이나 물쓰듯 펑펑 재산을 써버렸는데도 푸른 수염은 끄떡이 없었다. 잔치를 벌이는 동안 난삽한 놀이까지 벌이니 푸른 수염과 쟌느 사이에는 어느새 썸을 넘어선 연인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래 뜸을 들이고서 푸른 수염은 청혼을 하니 쟌느는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내숭을 선보이며, 미망인은 둘이 서로 좋아서 죽으니 결혼승낙은 어쩔 수 없다면서 허락해준다.

결혼식이 끝나자 푸른 수염은 신부측에게 엄청난 선물을 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푸른 수염도 한 달간은 아주 행복했으리라. 하지만 교활한 아내는 남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남편의 성안에 '내연남'인 젊은 귀족까지 끌여들였다. 푸른 수염에게는 그를 '젖형제'라고 소개하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낸 형제같은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것이다. 암튼 한 달이 지나자 푸른 수염은 중요한 사업차 긴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이때 고용한 사람이 다름 아닌 '샤를 페로'라고 한다. 푸른 수염은 사촌인 우따르드의 유산을 받기 위해 멀리 행차해야만 했던 것이다. 떠나기에 앞서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친한 동무들을 초대해서 마음껏 놀이를 하시오" 그리고 아내에게 집안의 열쇠를 건내주면서 "이 열쇠꾸러미는 당신이 이 집안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것이오. 다만, 이 작은 열쇠로 열 수 있는 '작은 방(공주들의 방)'만은 열지 마시오. 그곳은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나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 방이기도 하오. 그러니 제발 그 방에 들어가선 안 되오.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오"라고 샤를 페로는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여 샤를 페로는 남편의 말을 어기고 '작은 방'에 들어갔던 아내가 '그 방'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고, 그 증거로 작은 열쇠에 묻은 핏자국이 그 증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일곱 번째 아내가 '작은 방'에서 내연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샤를 페로는 푸른 수염을 악랄한 살인광으로 몰아갔지만, 샤를 페로 이외의 다른 '전기 작가'들은 푸른 수염에게 대해서 상반된 성향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 수염은 예정보다 일찍 일정을 끝마치고 돌아왔고, 마침맞게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했으며, 이를 계기로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은 푸른 수염을 '악랄하고 미친 살인자'로 만들어서 살해 해버렸다. 그리고 이에 관여한 샤를 페로는 자신의 목격담으로 <푸른 수염>을 저술하고서 '일곱 번째 아내'의 기적의 생환과 정황 증거를 제공한 셈이다. 앞서 여섯 명의 아내가 그처럼 행했을 때에도 아무런 '살해'를 하지 않은 푸른 수염이 유독 '일곱 번째 아내'에게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정황은 누가 보더라도 믿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푸른 수염>에게 이처럼 모욕적인 오명을 뒤집어 씌울 수 있었던 까닭은 이 마지막 살해가 '목격자'가 있었다는데 유효했다. 더구나 그 목격자가 아주 유명한 저술가인 '샤를 페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푸른 수염은 죽고, 그의 유산을 이어받을 상속자가 없었으므로, 그의 재산은 모두 그의 아내 '쟌느'의 몫이 되었다. 일부는 언니 안느의 결혼 지참금으로, 일부는 두 오빠의 장교의 지위를 얻는데로, 나머지는 쟌느의 내연남이었던 '슈발리에 드 라 메르류스'와 결혼하는데 사용했고, 그는 부자가 되자 아주 성실한 신사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는 것으로 아나톨 프랑스의 책은 마무리 된다.

이상은 '푸른 수염'에 대한 오류와 편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푸른 수염 이야기'에 대한 변주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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