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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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3)

[My Review MMXV / 돌핀북 6번째 리뷰] 6권은 경제편 총정리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살펴보았다. 마르크스는 "경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말하면서, '상부구조'에 있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를 떠받치는 '하부구조'의 핵심이 바로 '경제'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의 핵심주제가 바로 '경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은 '경제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경제편'을 총정리해보자.

이 책에선 경제체제를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초기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로 말이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넓고 얕은 교양'을 얻기 위해서 개념설명을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놨다. 다시 돌아와서, 정부는 '세금'을 통해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약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강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쪽이 좋은 것이냐? 그런 개념이 아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게 된다. 이는 세금은 낮추고 복지도 낮춘다는 뜻이다. 그럼 기업(자본가)은 투자를 늘릴 것이다. 내야 할 세금이 줄어 부담이 덜어지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럼 일자리가 늘어나니 '임금'을 받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고, 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소비활동'도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경제가 호황을 누리게 되니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거대기업일수록 말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많이 늘지 않아 여유자금도 별로 늘지 않는다. 그러다 덜컥 다치거나 병들어서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니 더는 임금을 벌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이 줄어들어 세금이 덜 걷혔으니 복지로 쓸 비용도 덩달아 줄어버렸다. 그래서 저소득층은 복지혜택을 받기 힘들게 된다. 이렇게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빈자들은 더욱 빈자가 되는 사회구조가 되는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진면목'인 셈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의 개입이 강화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세금이 올라가고 복지도 더 많이 챙길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진세'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혜택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복지비용을 늘려서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안정화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수그러들고 '소득격차'가 줄어들어서 사회 갈등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세금을 많이 부담해야 하는 상위 계층에서는 불만이 늘어나게 된다. 어차피 많이 벌어봐야 세금으로 대부분 내야하기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자본가)도 투자를 줄이고 일자리도 덩달아 없어진다. 실업자가 늘어나니 사회복지를 위한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만 된다. 그러나 세금을 걷을 대상이 없어졌다. 일할 의욕을 상실한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이 벌 의지가 사라지니 성장발전 속도가 더디게 된다. 투자가 줄어드니 일자리도 사라져서 소비를 할 수 없게 점점 위축이 된다. 결국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는 있게 되지만, 진실은 '하향평준화'가 되고 만다. 경제는 점점 위축이 되어 파탄이 날 수도 있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후기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결말이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세금도 없고 복지도 없는 '완전경쟁체제'였다. 이때에는 자본가들이 맘껏 경제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독점경쟁체제'로 굳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큰 위기가 찾아왔는데 바로 '경제대공황'이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공급과잉'으로 인해서 벌어진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일자리'를 만들 목적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니 소비여력이 생긴 노동자들이 소비를 늘려나갔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달랐다. '공산주의'로 경제체제를 바꾼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영화'시켜버려서 국고수익으로 100%를 달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복지도 100% 실현시켰다. 자본가들이 소유했던 생산수단(공장)을 정부가 뺐어서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냉전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은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후기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세금'으로 다 뺐어가는데 열심히 일할 의욕이 없게 된 셈이다. 물론 정부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게 '배급(복지)'은 해준다. 단지 넉넉하지 않을 뿐이고, 제때에 주지도 않을 뿐이다. 그러나 국가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셈이기에 공산주의는 폭망하고 말았다. 결국 199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서고 말았다.

한편, 독일과 일본은 또 달랐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경제대공황을 이겨낼 정도의 건강한 경제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독일과 일본도 '시장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식민지)을 빼앗기 위해서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게 군국주의(나치즘)로 '군사화'에 성공한 이들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차례차례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해내는 것 같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패색이 짙어지면서 끝내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로 독일과 일본은 다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거듭나서 빠르게 경제대국 대열에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경제대공황'의 원인인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거쳐 '냉전시대'에 접어들자 후기 자본주의는 활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다시 초기자본주의로 되돌아가자!)'를 받아들여 빠르게 경제회복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전세계는 고심을 하게 되었다. '후기자본주의(케인스)' VS '신자유주의(하이에크)' 중에 어느 쪽이 각 나라에 경제상황에 적합한 경제체제인지 판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장(신자유주의) VS 분배(후기자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느 쪽을 먼저 시행해야 하냐는 것이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로 논쟁을 벌이듯 심각하게 대립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성장(신자유주의)'을 우선적으로 택했다. 어쩌면 단연한 선택이었는데, 경제성장도 하지 않고 나눠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야 노나 먹는 맛도 나는 법이라면서, 일단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성장 과정에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앞서 신자유주의의 단점에 '빈부격차 심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다보니 저소득층을 구제하고 싶어도 '세금'이 태부족했던 것이다. 반대로 베트남 같은 공산권 국가들은 '분배'를 우선시 했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난한 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일단 '성장'이 우선인 것은 어느 정도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더욱 커진 '파이'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노나 주었나? 다시 말해, 성장에 따른 '분배 정책'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분명 경제성장은 이뤘는데 국민 대다수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만성화 되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발 관세위기'까지 몰려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의는 언제쯤 결론을 지을 수 있고, 그 성과는 언제쯤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책은 '정치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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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5 : 자본주의의 역습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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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VIII / 돌핀북 5번째 리뷰] 이 책 참 재밌다. 아마 누가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부를 할 때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기적의 공부법'이 완성되는 것처럼 '경제적 관점'으로 모든 학문을 읽으면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먹고 사는 문제(흔히 '먹사니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는 흘러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풀어놓은 부분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류는 부유해지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딱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잉여생산물'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부자는 유일했다. 바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만이 찐 부자였던 것이다. 단순히 '잉여생산물'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오래도록 부를 소유하고 있을 수 없었다. 흔히 '탈무드 격언'이라고 소개되는 말로 간단히 증명할 수 있다. <배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 물고기를 주는 방법으로도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또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또다시' 물고기를 구걸해야만 할 것이다. 반면에 물고기 잡는 방법을 터득하면 배가 고플 때마다 스스로 배를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잉여생산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한 부를 쌓았다고 할 수 없다. 언젠간 다 소모해버릴 것이고, 운이 나쁘면 한 순간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허나 '생산수단'을 갖고 있으면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생산'해서 만들어 쓰거나 팔거나 어쨌든 '마르지 않는 샘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는 '권력자'뿐이었다. 정치적 우두머리거나 종교적 수장이 되어야 안정적으로 생산수단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시대'가 되면서 권력의 향방은 종교가 무너지고 이성이 빛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자본'을 소유한 사람에게 '생산수단'을 차지할 권리와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자본주의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그 자본주의를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하였다. '초기 자본주의'(애덤 스미스), '후기 자본주의'(케인스), '신자유주의'(하이에크, 시카고학파)로 말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가장 처음 등장한 자본주의로 '정부의 개입이 없고, 세금도 거의 없는 상태'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는 자유가 필요하다'면서 자유롭게 방치한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시장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결국엔 안정을 찾아간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정부의 간섭이 없어야 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해서, 규제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규제 없는 과열 경쟁은 곧 '공급 과잉'을 불렀고, 결국 '경제대공황'으로 시장은 낭패를 보게 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수정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후기 자본주의(수정 자본주의)'다. 케인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며, 땅속 깊은 곳에 돈을 묻어두면 그 돈을 찾으려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움직이게 될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이른바 '뉴딜 정책'이 그런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세금'으로 공공사업을 벌이고, 그렇게 벌인 공공사업으로 실업자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소득'이 생긴 노동자가 소비를 활성화하고,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였기에, 정부는 '세금'을 걷어들이고, 다시 그 세금으로 '복지정책'을 펼쳐서 국민들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면서 자본의 독점을 막자, 그 부작용으로 경기 침체, 장기 불황,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말았다.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하지 않고서 강한 규제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로 인한 시장 불균형으로 '자본가'들의 이익을 침해하자 손해를 크게 본 자본가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않아 '경기 침체'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서 '장기 불황'까지 이어지자 '물가 상승'을 동반한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나빠진 경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강조된 것이 바로 '자유로운 시장'이었다. 다시 '초기 자본주의 시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오늘날 '주류 경제체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경기가 활성화된 것은 좋았는데, 돈이 없는 '중소기업'보다는 돈이 많은 '대기업'에게 더욱 유리해지게 되었고, 대기업보다 더 유리해지고 이득을 많이 본 것은 '다국적기업'이었다. 왜냐면 정부의 규제를 철폐하다시피 했고, 세금도 현저히 낮췄기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이들은 '돈 많은 자본가들'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돈 없는 노동자들은 '세금이 낮아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왜냐면 이들은 애초에 낼 세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더 올리기 위해서 '임금인상'은 해주지 않으면서, 수익손실이 날 때 잽싸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인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는 꼼수를 썼다. 그동안에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노동자 해고'를 함부로 하지 못했지만, 비정규직은 그런 규제에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자본가와 노동자는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과연 자본주의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경제이론이 대안을 제시하곤 했는데, 과연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도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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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4 : 보이지 않는 손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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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4 : 보이지 않는 손>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2)

[My Review MMVI / 돌핀북 4번째 리뷰] 드디어 '경제'로 넘어갔다. '역사'파트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하면서 부를 쌓아왔던 세력이 근대를 넘어서면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공급과잉의 문제'를 마주하면서 좌절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특히 '초기 자본주의'에서 중시했던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높이면 시장은 완전 경쟁 체제 안에서 자율적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책에서 이미 배웠다.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경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문제점도 극렬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냐면 애초에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완전 경쟁'이 이루어져서 시장이 알아서 모든 것을 조율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쟁은 공정하게 치뤄지지 않았다. 부를 많이 가진 자들이 '독점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자, '더 많은 부'를 끌어모으기 위해서 '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개떡같이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냐면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은 너무 많고 흔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인권비'는 더 낮출 수 있었고, '노동환경'은 더욱더 악화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소득감소는 곧바로 '소비감소'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일찌감치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탐욕이 '노동시장'을 교란한다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지적은 소위 '가진자'들의 반감을 샀고, 이에 마르크스는 '못 가진자'의 단결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공산주의 선언>이다. 즉, 사회주의 혁명으로 자본가들을 타파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면 참으로 노동자들의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세력들이 등장했다. 바로 '러시아(구 소련)'와 '중국'이다. 이들의 시작으로 '사회주의 혁명'은 널리 퍼졌고, 세계는 요동쳤다. 그 와중에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이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이 이어졌다. 이 책 <채사장의 지대넓얕>에서는 3권까지 이런 내용을 다루었고, 4권에서는 그 이후의 대한민국 현재시대에서 알파와 채사장이 다시 만나면서 '경제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카페 창업'과 맞물려서 돌아간다.

애초에 시작은 '채사장의 지식카페'로부터 비롯되었다. 채사장은 독특한 아이템으로 '지식'을 앞세운 카페테리아를 선보이며 고객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심지어 채사장만이 가진 특별한 지식인 '시간여행'까지 공개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경제지식'을 쌓은 알파가 채사장의 바로 옆에 새로운 카페를 개업하게 된다. 바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앞세워서 '무한 경쟁'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권의 말미에는 알파가 다급하게 채사장의 지식카페를 찾아온다. 왜냐면 새로운 카페가 개업을 했는데, 알파와 채사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자본'을 앞세워서 무한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뒷이야기는 5권에서 이어지겠지만, '무한 경쟁'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윤 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뛰어들기 때문이다.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채사장은 '최소한의 상도덕'을 주장했지만, 알파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로운 창업은 '나쁜 짓(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의 창업으로 인해 채사장의 이익이 줄어들었으니 손해를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채사장과 알파, 그밖에 '또 다른 카페들'이 창업을 이어나가면서 수많은 고객들이 몰려오는 '골목상권'을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난 고객으로 인해서 전체 수요는 더욱 커졌기 때문에 창업으로 인한 '공급과잉'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유독 '특별한 카페'에만 수요가 몰리는 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부의 분배'가 골고루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훨씬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바로 '거대 자본가의 등장'과 함께 모든 수요를 독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사장과 알파의 카페 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 카페의 등장'으로 인해서 알파에게까지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알파는 알바생(직원)까지 해고하기에 이르는데, 이로 인한 문제도 5권에서 다룰 것이다. 물론 '해결책'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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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3 : 폭력의 시대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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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 / 돌핀북 3번째 리뷰] 2권에 이어 3권에선 인류가 겪은 엄청난 폭력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경제대공황을 겪게 된 이유는 '공급과잉의 문제'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상품이 잘 팔려야 경제가 호황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과해서 결국 경쟁이 과열되고, 그로 인해 '시장 개척'과 '상품 가격 인하'라는 수단을 강구하다보니 전세계는 '식민지 쟁탈(시장 개척)'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리하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더 많은 시장 개척을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식민지를 선점한 국가들은 부를 쌓을 수 있었고, 뒤늦게 시장 개척에 나선 국가들은 선점한 국가들에게서 식민지를 빼앗아 와야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다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각국은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치열한 총력전을 벌이게 된다.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력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의 승전국은 독일과 오스만 투르크 등의 패전국을 향해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갚을 길이 없는 독일은 '독재자 히틀러'를 앞세워서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극심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미국은 '경제대호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유럽이 전쟁의 상처로 폐허가 되자 미국의 공장들은 일제히 가동률을 높였고, '미국의 상품'은 유럽과 전세계를 상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192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29년이 되자 상황은 대역전이 되고 말았다. 더이상 물건을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의 공장이라도 된 듯, 엄청나게 생산물량을 높이며 물건을 만들어냈는데, 그 물건들을 더는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유럽도 종전한 지 10년이 지나자 '자력갱생'을 부르짓기 시작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더는 물건을 팔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폭망했고, 수탈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되자 그 많던 공장들이 급속히 문을 닫고 '실업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 때문에 실업 상태가 되자 상품판매는 더욱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는 곧 '경제대공황'을 일으켰고, 그 파급효과는 전세계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에,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해결방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뉴딜정책'을 비롯한 '자본주의 수정안'을 내놓았다. 즉,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아예 자본주의체제를 폐기해버렸다. 그렇게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하고서는 애초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제대공황'에서도 소련측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자본주의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따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전쟁'을 일으키는 쪽을 선택했다. 왜냐면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어찌되었든 국가 전체가 '총력모드'로 돌변하게 되고 공장을 돌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서 상품을 찍어내기 시작하니, 경제가 돌아가긴 한다. 물론 전쟁을 치루고 난 뒤의 '뒷감당'은 별도의 몫이 되겠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미치광이들은 그런 걱정 따윈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전쟁(=경제폭망)'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애초에 '부자들'은 전쟁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왜냐면 전쟁은 큰 돈이 필요하고, 독재자들은 큰 돈을 일단 '부자들'에게서 빌려 쓴 뒤에 승리하든, 패배하든 되갚는 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물론 독재자들이 순순히 부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는 않지만 말이다. 허나 '빈자들'은 그나마 가진 것조차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만다. 결국 전쟁은 상위 0.01%를 위해서 그밖의 99.99%의 희생과 파멸을 요구하는 멍청한 짓이다. 그렇기에 전쟁의 승리를 호언장담하는 권력자를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당신만은 '상위 0.01%'안에 속해 있을 거라는 착각도 하지 말길 바라고 말이다.

암튼, 공급과잉의 문제로 자본주의가 크게 위기를 맞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세계는 '자본주의 vs 공산주의'의 양쪽으로 갈라서서 대결양상을 벌이는 '냉전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은 종식되고, 자본주의가 독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펼쳐졌다. 3권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벌어지는 문제들은 4권 이후에 다루고 있다.

또 한 번, 정리를 하자면,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 와 '공급과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였다. 또한 중세 이후,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몇몇 부자들만이 부를 독점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정부(국가)는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사회문제가 불거지자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빈자,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부자들을 향해 폭력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빼앗아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그러나 100% 완벽한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수단을 '국유화'한 결과, 선의의 경쟁력은 하락하였고 생산성은 폭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풍요로운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공산주의의 실험'은 모두가 똑같이 가난을 경험하는 '실패'를 낳고 말았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승리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해서 끝없이 독주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과연 자본주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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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10 - 세계의 화약고 서남아시아 분쟁 벌거벗은 세계사 10
최호정 그림, 이현희 글, 박현도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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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 / 아울북 31번째 리뷰] 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유럽'을 기준으로 잡고서 부르는 지역명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치우친 '유럽국가'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광활한 아시아국가들을 구분하는데, '중동 아시아', '극동 아시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서구 유럽국가들이 이런 명칭을 아무런 편견 없이 쓰고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사실 '문명화'에 앞장선 서양에 비해서 '비문명화'된 동양 국가를 낮잡아 부르는데에서 기원한 명칭이기에 '같은 아시아국가'끼리 그런 저열한 명칭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에서처럼 '서남아시아'라고 고쳐서 부르는 것이 좀더 객관화된 지역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나은 명칭으로 고쳐부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워낙 이들 지역이 '분쟁'이 심했던 곳이기에 '편견'도 없고,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말에서 '살람(평화)'이라는 말을 따와서 '살람 아시아'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을 중심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610년 메카의 상인이었던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전파했는데,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뭉친 부족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고 오랫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1932년 '사우드 가문'이 아랍 부족을 통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탄생했고, 38년에 대규모 유정이 발견되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았다. 한편, 이라크는 고대 4대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곳에 자리잡았다.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8세기부터 14세기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중심지였고, 16세기부터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대전 후 1932년에 독립했다. 그러다 1979년에 대통령이 된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차지해서 '서남아시아 패권'을 잡으려고 이란과 쿠웨이트를 연달아 침공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2003년에 사담 후세인이 사망하면서 정권이 무너졌고, 이후 미국의 간섭과 이슬람 교파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현재까지 이라크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1935년에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세력이 나라를 다스렸으나 1930년대 '서구식 근대화 정책'을 펼쳐서 자유로운 나라로 꽃을 피웠으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며 혼란이 가중되다가 1979년 이슬람교 성직자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이 일어나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현재까지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패전을 하자 승전국이었던 영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가 1932년쯤에 '신생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이들 지역이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까닭은 바로 '석유'라는 자원이 많이 매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32년쯤에 그 유정이 동이 난듯 싶자 영국은 선심을 쓰듯 '독립국'으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빼앗길 자원을 다 빼긴 상태로 독립을 이루는 것은 허울 뿐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영토가 사막지형인 탓에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미국의 도움'으로 새로운 유정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삼아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빠르게 '부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바로 'OPEC(석유수출국기구) 설립'으로 말이다.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서 '산유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석유 수입국'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석유에너지'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위치에서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유정을 연달아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급성장은 '미국'에게도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세계는 '대영제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가 벌어졌을 때 미국이 치고 들어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석유를 거래할 때 반드시 '미국 달러'만으로 거래를 한다는 조건을 성사시키자 전세계는 빠르게 '미국 달러화'를 구하려 애를 썼고, 이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석유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고, 그 에너지를 사려면 '미국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 화폐를 '기축통화화'시켜서 좋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전한 국방력을 미국의 도움으로 안정화시키는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OPEC 설립'을 해서 석유생산량을 통제하려 하자, 미국은 'IEA(국제에너지기구) 설립'으로 대응하며 석유수입국끼리 도움을 주고 받거나 '대체에너지'를 만드는데 협력을 이끌며 '산유국의 농간'을 견제하는 주도하는 역할을 맞게 된다. 이래저래 미국은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며 세계 초강대국 국가로 한층 성장하게 된다.

한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바로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유대인들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머나먼 고대 유대국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수천 년동안 수많은 유목민들이 떠돌며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특성상 이곳에서는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이다. 그 문제의 발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게 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선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아랍 고위 관료에 접근해서 아랍이 영국을 도우면 '팔레스타인 건국'을 도와주겠다는 '후세인 맥마흔 서한'을 교환한다. 하지만 아랍의 도움으로도 전황이 바뀌지 않자 1917년에 이스라엘과 접촉해서 똑같은 제안을 한다. 이를 '벨푸어 선언'이라고 한다. 그리고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아랍쪽과 이스라엘쪽이 동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영국은 난감해진다. 왜냐면 영국은 이미 프랑스와도 조약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땅을 나눠갖기로 비밀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이크스 피코 협정'이라고 하는데, 일단 영국은 이 협정대로 프랑스는 '시리아'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이라크)'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누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을까? 바로 '돈 많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은 거액을 돈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였고, 유대인의 땅이 생겼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전세계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땅'으로 몰려든 것이다.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으나 영국이 '사기(!)'를 친 셈이고, 푼돈에 눈이 먼 땅주인들은 '유대인의 돈'이 탐이 나서 마구마구 팔아재꼈던 것이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에 항의를 했고 영국은 잠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이번에는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반발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곧 분쟁지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분쟁보다 더 혹독한 전쟁이 치뤄지면서 엄청난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연합(UN)에 넘겨졌고, 국제연합은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집트는 아랍 연합국들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1차, 2차, 3차, 4차 중동전쟁(1948~1973)'이다. 총 4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며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점령하자, 이집트는 서둘러 이스라엘과 협정에 들어가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 조약'을 맺고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다. 이 조약은 아랍국가들의 반발을 샀고, 이집트 국민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염원(시온주의)이 워낙 강했고, 유대인들의 돈도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은 당시 강대국들의 승인을 빠르게 받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더욱더 확고해져만 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사람'들도 가만 있진 않았다. 반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조직 되어 '제1차 인티파다'를 이끌었다. 팔레스타인사람들도 자신들의 '국가건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희생이 커지자 미국은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재를 하기로 했고,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는 쾌거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슬로 협정'을 무효화 선언을 하고 팔레스타인은 '제2차 인티파다'를 선보이며, 더 강력한 시위를 하는 '하마스'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강경 투쟁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분리 장벽'을 건설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팔레스타인 고립'을 형성했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가자 전쟁'을 치루며 절대 양보없는 전쟁을 서슴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인종청소(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다시 앞서 '석유에너지'를 둘러싼 이권다툼을 되돌아가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탐욕으로 인한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이 발발한다. 미국이 주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대한 유정을 발굴한데 이어 '서남아시아' 각 지역에서 연달아 '석유 유정'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이란'이 차지하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고, 이를 탐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더 큰 화근이었다. 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란의 침체된 경제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혼란이 막 수습되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빈틈을 절호의 기회로 여긴 후세인은 '석유 에너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이란을 침공했고, 두 나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7일만에 후세인은 원하던 지역을 차지하자 '종전 선언'을 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고, 지리한 전쟁이 이어져 무려 8년간이나 대치를 했다. 여기에 미국은 대놓고 이라크를 편들어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석유 에너지'를 빼앗겠다는 계산을 하게 되는데,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자, 결국 후세인은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산유국'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엄청난 무기를 사들여 '소모전'을 펼쳐기에 전쟁이 끝날 때즈음에는 두 나라 모두 경제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한다. 원래 쿠웨이트가 자신들의 땅이었다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라크 소유라고 우긴 것이다. 이에 반발한 쿠웨이트는 다른 나라들에게 도와달라 호소를 했고, 역시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발빠르게 '세계 경찰'이라는 이유를 들며 '다국적군'을 모아서 '제1차 걸프전쟁'을 시작한다. 이로써 이라크는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전쟁은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손쉬운 승리였고, 이라크는 이 전쟁을 계기로 망신창이가 된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남아시아 지역'의 석유 에너지를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제2차 걸프전쟁'을 일으키는데,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지만, 이라크 국민만 '제거(!)'했을 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다. 결국 이 전쟁은 미국의 더러운 욕심만 재확인하는 불명예스런 전쟁이었음이 밝혀졌다. 1차 걸프전은 '9·11 사태'라는 비극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2차 걸프전은 애초에 명분조차 없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서남아시아의 비극'은 석유에너지가 가져온 행운과 불행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지켜보면서 국제관계가 냉험한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엄청난 석유에너지 자원을 확보하여 전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었으나, 강력한 힘을 얻으면 그 주위에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 견제를 하며 '끊임없이 힘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펼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진짜 강대국은 이런 전략에서 결코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결국 '힘의 균형'을 이루어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약소국은 결국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러 저리 강대국들의 욕망대로 휘둘리다가 '자신의 힘'마저 빼앗기고 설움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해서 그 힘을 '폭력적'으로 활용하려고 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력들이 힘을 규합해서 쳐들어오고 그 힘조차 빼앗아버릴 '명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을 과시하려 들지 말고 적절히 휘둘러서 상대가 감히 덤빌 수 없게 만들어야 진짜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강대국'을 뛰어 넘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싸움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지위권을 확보하고, 그 새로운 규칙을 지지받을 수 있게 여러 '강대국'들과 연대하는 유연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이런 '규칙'을 그나마 활용할 수 있었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두 나라만이 서구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온전한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위는 '석유에너지' 자원의 풍요로움으로 누리는 지위이고, 이를 대체할 에너지가 나타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서남아시아 분쟁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재 '문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인 한류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K-팝'을 시작으로 'K-드라마영화', 'K-음식', 'K-관광', 'K-문화' 등등 점점 그 폭과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 10위권, 국방력 6위권에 랭커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어느새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트너십 국가대열에 낑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강대국들이 만들 '규칙'에 어쩔 수 없이 따르던 지위에서, 강대국들만의 유리한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지지하게 만드는 연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단 말이다. 이는 한국에서 '해주지 않으면' 전세계 여러 나라가 곤란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쳐하게 되는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한국이 만든 것'이면 더 좋고 더 재밌다는 나름의 공식이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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