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 1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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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 한겨레출판 (2012)

[My Review MMXVIII / 한겨레출판 9번째 리뷰]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선포', 즉 '계엄령'이 떨어졌다. 전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손꼽히던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군대를 동원한 비상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군을 동원할 정도로 심각하고 위태로운 국가위기 상황이 펼쳐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전혀 아니었다. 아니, 위기를 맞이한 이들이 있긴 있었다. 바로 '윤석열 정권의 쿠데타'가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던 내란세력이 줄줄이 탄핵을 당하고, 국정운영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결국 '계엄'이라는 사태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란'으로 꽉 막힌 국정을 뚫어보려 했고, 필요하다면 '외환'까지 일으켜서, 나라야 망하든 말든 저들의 '정권유지'에만 성공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망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심보로, 그야말로 '최후의 발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최후의 발악치고는 꽤나 공을 들여 '내란계획'을 짰고, 최고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집단들을 총동원해서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등 아주 세심한 배려까지 했다. 그리고 최후에 실패했을 경우에도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법조인 카드'를 총동원해서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절대 지지 않는 싸움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모양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파면' 선고를 했는데도, 이에 불복하고, '재집권'을 통한 정권연장을 끝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정말이지 파도 파도 또 나오는 '내란동조세력'들은 끝까지 '정적 죽이기'를 통해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정말 바보들인지 천재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재명 하나만 죽이면 대한민국을 '제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다. 국민들이 정말 그렇게 바보들이고, 계속 속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으니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바로 김태권의 <히틀러의 성공시대(전2권)>(2012)였다. 당시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있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 '극우세력'들이 가스통을 들고 나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지만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극우들을 보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면서 '파시즘(나치즘)'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아졌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는 '극우세력'들이 정말 크게 불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늘 '그 정도'였는데, 그런 극우들의 과격한 행동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많이 늘어난 요즘이 우려스러운 상황이 된 셈이다. 그런데 꼭 100여 년전 '독일사회'도 그랬다. 1920년대 독일사회는 정말이지 너무도 암울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하고 어마무시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만 했던 독일인들은 경제적으로 그야말로 밑바닥을 전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독일에 '미국발 경제대공황(1929)'이 덮치자 그야말로 경제, 민생 초토화가 되고 만다. 그러자 수많은 독일인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꿈꿨고, 마침맞게 등장한 '히틀러'가 딱이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는 독일사회를 더욱더 엉망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홀로코스트'까지 자행하면서 온갖 악질적인 행패를 부리고서 끝내 자결했던 것이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 패악질을 일삼던 히틀러를 독일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죄책감까지 온통 독일국민들의 짊어져야 할 불명예였던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어리석은 전철을 직접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히틀러'가 정당한 방식으로 집권을 한 것일까?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김태권은 이 책에서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이다. 왜냐면 독일사람들이 선거를 통해서 '나치당'을 뽑아준 것은 맞지만, 나치당이 '1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전체 득표수에서 18% 정도밖에 되지 않은 2위에 머물렀다. 오히려 독일인들은 '사회민주주의(사민당)' 정당을 더 선호했던 것이다. 왜냐면 당장 먹고 사는데 힘겨운 마당에 기득권들을 옹호하는 '보수정당'을 뽑아주기보다는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골고루 나눠주려는 '진보정당(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더 많은 표를 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정당득표율 1위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고, 3위는 '공산주의 정당'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뜬금없이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나치당(보수주의 정당??)'을 지지한 것이다. 그 전의 선거 때에는 고작 2.8%의 낮은 득표를 얻어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했던 '듣보잡' 정당이었었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나치당'이 약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반전이 일어난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의 전면에 나서서 인기몰이를 해나간 것이다. 그의 특기였던 '연설'을 거의 매일밤마다 전국순회공연하듯 했다고 한다. TV나 영화 같은 오락거리가 없다시피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밤마다 되풀이되는 '히틀러의 연설'은 꽤나 인기있는 공연을 대신하는 오락거리였던 것이다. 그 연설에서 히틀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격정적인 연설을 이어간다. 그가 한 번 연설할 때마다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빠졌고, 연설 도중에 마신 물도 20병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그의 연설이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출신이 매우 낮아서 '귀족'들이나 '지식인'들의 눈높이로 보면 더러운 협잡꾼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예절이나 예법조차 몰라서 그야말로 '촌뜨기 행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수많은 군중들은 그의 연설에 환호를 보냈다. 만약 환호를 보내지 않거나 비판이나 비난을 한다면 '돌격대(SA)'로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폭력을 당하기 일쑤였단다. 거기다 유명한 선전선동꾼 '괴벨스'의 도움으로 히틀러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갔다.

이런 히틀러에게 접근한 세력이 바로 독일의 '보수진영'이다. 그들은 패전 이후 인기가 추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해도 '절대적인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면서 온갖 이권을 다 챙기고 일반 국민들을 수탈해갔었는데, 그 결과가 패전이었지 않았느냔 말이다. 인기가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가 필요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얼굴마담(간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히틀러도 보수진영이 필요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듣보잡'이었던 히틀러가 독일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폭력적인 선동을 일으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감옥에 수감된 경력까지 있었다. 이런 위험인물을 정상적인 독일국민들이 지지할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에서 히틀러는 좋은 '도구'였다. 보수진영이 집권할 때까지만 내세웠다가 '허수아비'나 '바지 사장'으로 써먹다가 필요없으면 내버리면 될 어리숙한(?)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수진영의 기득권층의 눈높이에서 히틀러는 그저 '만만한 상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 본인은 '야심가'였다. 히틀러도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높은 사회적 지위'나 '부유한 경제적 계층'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돈이 꽤나 많이 드는 일이었기에 그랬다. 그래서 히틀러는 보수진영을 철저히 이용하려 했다. 자신의 부족한 '인지도'를 끌어올리 수 있도록 '보수진영(특히, 언론기관)'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였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히틀러는 일약 '대스타'로 떠올랐고, 독일 전역에 '히틀러'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수진영의 덕을 보면서 정권을 차지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두들겨 부수었다. 특히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은 죽여도 되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을 '(독일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흑색선전을 끊임없이 만들어 배포했다. 경제대공황으로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자 '돈 많은 유대인들'은 가장 공격 받기 좋은 대상이 되었다. 히틀러는 그들에게 그런 대우를 해도 괜찮다는 사상을 계속 주입시키고 널리 퍼뜨렸다. 가뜩이나 경제 혼란에 휩싸인 독일사회에서 '분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을 친절하게 정해주기까지 하는 '나치당'에 감사인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독일사회는 병들어 갔다.

윤석열 내란세력이 '음모론'에 심취해서 거짓선동을 한 것을 두고서 '히틀러와 나치부역자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심한 걸까? 하지만 헌재의 파면선고 이후에도 '윤석열 일당들'이 하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저들이 하는 행태는 모두 '정당한 행정적/사법적 절차'를 따르고 있어서 더욱 괘씸할 뿐이다. 절차상의 헛점을 파고들어서 저들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고, 정적들 제거할 때에는 시시비비도 가리기 전에 신속하게 처리해버리는 꼼수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염치를 모르는 철면피들이다. 더욱 괘씸한 것은 이런 철면피 짓을 저지르는 일당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 '엘리트'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똑똑한 사람들이 저런 짓거리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되려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멍청한 거라면서, 자신들의 행위 일체를 '계몽의 일환'이라고 일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을 깨우치라는 것인가? 정작 깨우치고 나면 '윤석열 일당'이 파렴치한 족속들이라는 것을 낱낱이 알게 될텐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이제 웬만한 국민들은 진짜 나쁜놈이 누구인지 다 안다. 그런데 그런 나쁜놈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왜냐면 그런 나쁜놈들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권을 누리도록 해줘야만 하고, 자유를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저런 나쁜놈들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했더라도 말이다. 그런 행위조차 관대하게(?) 포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저런 똘끼 충만한 이들은 늘 있어왔고, 그들의 수가 10~20% 내외일 경우엔 크게 문제될 일도 없다. 그 옛날 여의도 한복판에 LPG 가스통을 어깨에 둘러매고 나왔을 때도 별문제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40~50%에 육박하니 크게 문제가 되고 만 것이다. 윤석열과 전광훈, 전한길 같은 애들이 선전선동을 하니 '서부지법 폭동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마터면 '민주주의'가 완전히 궤멸될 뻔했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 윤석열은 끌어내렸고, 사태는 점점 진정되고 있다. 그렇게 판을 치던 극우세력들의 난동도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다.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안정세는 더욱더 높아지는 추세인 것이 정말 다행이다. 이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대법원 파기환송'이라는 사법부의 만행만 저지 시키는데 힘을 모으면, 저들의 최후는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제 국민들이 보여줘야 한다. 극우세력은 딱 10%가 적당하다. 그걸 어찌해보겠다고 '국민의힘 정당'에서는 끝까지 붙들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에 불과하다. 제발 정신 못 차렸으면 좋겠다. 이참에 싹 쓸어버리게 말이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지켜낼 마음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끄떡 없다. 이제 다시 전세계의 모범이 되는 나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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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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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3
추공 지음, 이백 그림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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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3>  추공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9)

[My Review MMXVII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3번째 리뷰] 서서히 드러나는 '시스템의 실체'와 더불어서 국내를 넘어선 '국외의 위협'이 점차 조여오고 있다. 성진우가 '레벨'을 서둘러서 올려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성진우, 본인은 이런 실체를 완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성진우의 본능적 욕구를 '시스템'이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은 그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짐작만 할 뿐이지만, 성진우의 아버지, 성일환이 생환한 것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 틀림없다. 다만, 당장은 성진우의 레벨업이 시급하다.

그렇지만 성진우의 현재 레벨이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니다. 지난 '악마성'에서 쌓은 경험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아직 76층까지밖에 클리어하지 못한 수준이지만, 성진우는 이미 'S급 헌터'의 능력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호 길드의 백윤호보다, 헌터스 길드의 최종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S급 헌터는 헌터스 부길드 마스터 차해인 정도일 것이다. 헌터 협회의 고건희 회장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는 이미 고령을 넘어섰기 때문에 지니고 있는 마력은 높더라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체력이 못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는 성진우일 것이다. 그런데도 성진우의 등급은 E급이다. 재심사가 절실하다.

등급 심사는 이미 경험해봤기에 절차상의 어려움은 없다. 다만, '각성 후 각성'을 하는 헌터가 매우 희귀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런데 성진우는 '끝없는 레벨업'이 가능한 헌터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케이스다. 이걸 세상 사람들에게 논란이 되지 않게 '등급 재조정'을 받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바로 이것이 큰 문제다. 아직까지 전세계에서도 '유일한 경우의 특수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마냥 환영받을 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끝없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지만, '절대 강자'가 되는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적'이 된다는 것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어디 국내 뿐일까. 전세계적으로도 작게는 견제의 대상이 될 것이고, 크게는 '적대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이 매순간 끊이질 않게 될 것이다. 절대 강자, No.1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절대 강자는 절대적으로 가만 냅두질 않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진우는 '등급 재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레벨업' 때문이지만, 반드시 올려야만 '악마성 공략'을 마칠 수 있고, '공략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생명의 신수'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신수'로는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익면증'으로 잠들어 있는 어머니를 고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다. 성진우는 그걸 구해서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마음이라서 '레벨업'은 꼭 해야만 할 일이다. 그래서 성진우는 자신의 능력치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여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성진우의 레벨업은 '다가올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포석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가장 큰 섬, 제주도에서의 위협이 점점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열렸던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던전 브레이크'가 되어 버렸고, 그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개미형 마수'에 의해 제주도가 초토화되고 대한민국 S급 헌터마저 희생을 당했고, 그 바람에 더는 제주도에서 주민들이 살 수 없는 마수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섬이라서 바다를 헤엄칠 수 없는 개미형 마수가 섬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으나, 최근에 진화에 성공한 개미형 마수들이 인근 섬에 출몰하며 마을에 상륙해서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일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에 속한 섬마을까지 피해를 입게 되자, 일본에서도 '제주도 레이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헌터들이 '제주도 공략'에 실패했던 3차례의 레이드를 그동안 면밀히 관찰하고 상세한 분석까지 마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몹쓸 계략까지 세우고 있었다. 한국의 헌터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테니, 그걸 '미끼'로 삼아 일본의 헌터들에게 도움을 받게 만들고서,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려고 하는데, 그 요구라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매우 치욕스런 일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몹쓸 계략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의 사건 경과는 다음 권에서 펼쳐지겠지만, 이제 성진우가 쌓아올린 레벨업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껏 감춰졌던 '시스템의 비밀'도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성진우가 '악마성 클리어'를 하는 도중에 만나게 된 라디르 가문의 악마 소녀 에실에 의해서 그 비밀이 조금씩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아이스엘프, 바루카'나 '하이오크 마법사, 카르갈간'에게서도 조금 귀띔을 받긴 했다. 하지만 에실에게서 알게 된 '시스템의 비밀'은 이세계에서 온 존재들이 엄청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성진우가 네크로멘서의 능력'을 얻어 끝없는 레벨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연 이것이 향후에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 것인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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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블루 컬렉션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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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 김남주 / 열린책들 (2017) [원제 : Les Catilinaire (1997년) ]

[My Review MMXVI / 열린책들 22번째 리뷰] 노통브의 소설의 시작은 대동소이하다. 그 시작은 늘 '장광설'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의 나열', '대화의 연속'으로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기 일쑤다. 그런데 그게 중반을 넘어가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직은 '전체'를 알 수 없지만 '부분'을 드러내놓고서는 독자들을 향해 '전체'를 짐작해보라는 일종의 '암시' 내지 '복선'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게 노통브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런데 이것도 '세기말'에나 통할 법한 방식이지 요즘 독자들에게는 도통 먹히질 않을 낡은 방식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요즘 트랜드는 '결말'부터 다 보여주고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것도 조금은 철 지난 방식이라서, 쩝.. 암튼, 노통브의 소설이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을 받고 '있는중'이라는 점만 밝힌다.

<오후 네 시>는 노통브의 소설중에서도 초창기 소설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네 번째 소설'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읽는맛'이 살아있는 소설들 중에 하나인데,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읽으니, 조금은 식상한 패턴으로 전개되는 느낌만 받고 말았다. 처음 읽었을 땐, '공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서스펜스마저 생생하게 느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을 땐 '소설의 후반부'가 전혀 기억나질 않아서 '처음 읽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그만큼 그 당시에도 인상적인 소설은 아니었다는 것이 언뜻 기억났을 정도였다. 요컨대 '반전'이 좀 약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줄거리도 좀 밋밋하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반부는 '자장가'를 낭독하는 것처럼 잔잔하다. 65세 동갑의 노부부가 바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남은 여생을 호젓한 시골에서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이사를 간 곳의 첫인상은 너무도 좋았으나,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불쑥 찾아오는 이웃 때문에 점점 불쾌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노부부는 불쾌한 방문객을 피해서 일부러 '오후 네 시'에 집을 비우고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쌀쌀한 날씨에 무리하게 바깥 활동을 한 뒤에 아내가 감기에 걸리자 꼼짝하지 못하고 침실에 눕고, 남편은 간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오후 네 시가 되자 문짝이 떨어져나갈 듯이 심하게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나자 어쩔 수 없이 불쾌한 이웃의 방문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남편은 꾀를 내었다. 차라리 불쾌한 방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저녁 초대'를 하자고 말이다. 그래서 하루의 어정쩡한 시간인 '오후 4시~6시'가 아닌 '저녁 8시 이후'의 시간에 초대를 하고서 면박을 주면 '불쾌한 방문'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걸게 된다. 물론 저녁초대에 걸맞게 '부부동반'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비이성적인 남편'과는 달리 '이성적인 아내'의 판단으로 더는 이웃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과 함께 말이다. 노부부는 불쾌한 이웃을 위해 정성껏 저녁 준비를 한다. '최후의 만찬'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노부부의 희망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불쾌한 방문을 일삼는 남자의 아내는 '혹'이라는 표현도 무색할 정도이고, '암덩어리'에 가까운 '낭종'같은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격을 받은 노부부는 그럼에도 예의를 다해 저녁을 대접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초대해주셔서 고맙다'거나 '성찬을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렇게나 많이 쳐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당신 부부가 퍽이나 대단하구려"라는 빈정거리는 말들 뿐이었다. 더구나 네 사람 분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들 부부가 거의 다 쳐먹으면서도 '사치스런 생활이 부끄럽지 않냐'는 둥의 무례한 말도 서슴지 않고 말이다. 그나마 초대받은 부인이 말 한마디 없이 얌전했는데, 그토록 얌전했던 까닭은 살이 너무 쪄서 얼굴에서 눈코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고,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이 "쿠웨엑~"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제 노부부는 더는 참을 수 없게 된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진 늙은 남편은 불면의 밤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밤, 우연찮게 시끄럽고 불이 켜진 불쾌한 남자의 차고를 살펴보다가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데 그 남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를 하고 구조를 하게 된다. 다행히 그 남자의 생명은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문뜩 그 소식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더구나 남편의 보살핌이 없으면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괴물(?) 같은 아내를 대신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부터 노통브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다시 말해, 노통브의 본색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이 소설의 원제를 뒤치면 '카틸리나리우스 음모(기원전 63년 로마 집정관 카틸리나의 쿠데타)' 정도가 될 것이다. 이를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음모론' 정도로 뒤칠 수 있겠지만, 무턱대로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음모론을 거론하는 것이 어색하기에 '오후 네 시'쯤으로 제목을 정했을 거라 짐작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핵심인 '음모'에 대한 예상을 한국의 독자 대부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음모'에 관한 배경지식이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늙은 남편'이 보이는 말과 행동의 유일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과연 늙은 남편이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음모란 무엇일까? 원제를 보고도 알 수 없는 독자들도 소설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늙은 남편의 말과 행동이 점점 바뀌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통브는 이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게 또 묘한 느낌을 준다.

그 까닭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노부부의 남편이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원인은 '불쾌한 이웃 남자' 때문이다. 그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불쾌함을 넘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이며, 점점 심해지는 신경쇠약 증세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을 유일하게 존경하는 '여제자의 방문'조차 완벽하게 망쳐놓아 다시는 방문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러서 좌절했기 때문이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스런 손녀딸처럼 예뻐했던 제자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노부부의 남편은 기꺼이 '하이드 씨'로 변신하길 원했다. 물론 '지킬 박사'로 되돌아오면 자책할 정도로 양심은 남아 있었지만, '하이드 씨'가 되어 저질러지는 일까지 막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시 말해, 죄책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고도 쾌감에 전율하며 웃을 수 있는 하이드 씨가 되는 것을 살포시 방치했던 것이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노부부의 아내에게는 물론, 그 불쾌한 이웃의 아내에게까지도 말이다. 다시 지킬 박사로 되돌아왔을 때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걸까?

이 소설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가해자'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또한 여실히 나열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까지도 '공범'으로 만들고 만다. 소설속의 등장인물은 아무도 모르지만 '독자'인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말이다. 뭐, 이를 두고 노통브를 '천재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입방아를 떨곤 하지만, 나는 그런 '공범' 따윈 되고 싶지 않다. 왜 독자를 애꿎게 범죄자를 옹호하고 범죄에 동조하게 만드냔 말이다. 참으로 발칙하기 짝이 없다. 그런 발칙한 작가를 '천재' 운운하는 것도 웃기다.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분명히 밝힌다. 난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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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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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3)

[My Review MMXV / 돌핀북 6번째 리뷰] 6권은 경제편 총정리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살펴보았다. 마르크스는 "경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말하면서, '상부구조'에 있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를 떠받치는 '하부구조'의 핵심이 바로 '경제'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의 핵심주제가 바로 '경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은 '경제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경제편'을 총정리해보자.

이 책에선 경제체제를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초기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로 말이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넓고 얕은 교양'을 얻기 위해서 개념설명을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놨다. 다시 돌아와서, 정부는 '세금'을 통해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약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강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쪽이 좋은 것이냐? 그런 개념이 아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게 된다. 이는 세금은 낮추고 복지도 낮춘다는 뜻이다. 그럼 기업(자본가)은 투자를 늘릴 것이다. 내야 할 세금이 줄어 부담이 덜어지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럼 일자리가 늘어나니 '임금'을 받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고, 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소비활동'도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경제가 호황을 누리게 되니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거대기업일수록 말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많이 늘지 않아 여유자금도 별로 늘지 않는다. 그러다 덜컥 다치거나 병들어서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니 더는 임금을 벌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이 줄어들어 세금이 덜 걷혔으니 복지로 쓸 비용도 덩달아 줄어버렸다. 그래서 저소득층은 복지혜택을 받기 힘들게 된다. 이렇게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빈자들은 더욱 빈자가 되는 사회구조가 되는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진면목'인 셈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의 개입이 강화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세금이 올라가고 복지도 더 많이 챙길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진세'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혜택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복지비용을 늘려서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안정화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수그러들고 '소득격차'가 줄어들어서 사회 갈등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세금을 많이 부담해야 하는 상위 계층에서는 불만이 늘어나게 된다. 어차피 많이 벌어봐야 세금으로 대부분 내야하기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자본가)도 투자를 줄이고 일자리도 덩달아 없어진다. 실업자가 늘어나니 사회복지를 위한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만 된다. 그러나 세금을 걷을 대상이 없어졌다. 일할 의욕을 상실한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이 벌 의지가 사라지니 성장발전 속도가 더디게 된다. 투자가 줄어드니 일자리도 사라져서 소비를 할 수 없게 점점 위축이 된다. 결국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는 있게 되지만, 진실은 '하향평준화'가 되고 만다. 경제는 점점 위축이 되어 파탄이 날 수도 있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후기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결말이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세금도 없고 복지도 없는 '완전경쟁체제'였다. 이때에는 자본가들이 맘껏 경제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독점경쟁체제'로 굳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큰 위기가 찾아왔는데 바로 '경제대공황'이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공급과잉'으로 인해서 벌어진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일자리'를 만들 목적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니 소비여력이 생긴 노동자들이 소비를 늘려나갔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달랐다. '공산주의'로 경제체제를 바꾼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영화'시켜버려서 국고수익으로 100%를 달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복지도 100% 실현시켰다. 자본가들이 소유했던 생산수단(공장)을 정부가 뺐어서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냉전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은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후기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세금'으로 다 뺐어가는데 열심히 일할 의욕이 없게 된 셈이다. 물론 정부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게 '배급(복지)'은 해준다. 단지 넉넉하지 않을 뿐이고, 제때에 주지도 않을 뿐이다. 그러나 국가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셈이기에 공산주의는 폭망하고 말았다. 결국 199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서고 말았다.

한편, 독일과 일본은 또 달랐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경제대공황을 이겨낼 정도의 건강한 경제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독일과 일본도 '시장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식민지)을 빼앗기 위해서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게 군국주의(나치즘)로 '군사화'에 성공한 이들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차례차례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해내는 것 같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패색이 짙어지면서 끝내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로 독일과 일본은 다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거듭나서 빠르게 경제대국 대열에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경제대공황'의 원인인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거쳐 '냉전시대'에 접어들자 후기 자본주의는 활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다시 초기자본주의로 되돌아가자!)'를 받아들여 빠르게 경제회복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전세계는 고심을 하게 되었다. '후기자본주의(케인스)' VS '신자유주의(하이에크)' 중에 어느 쪽이 각 나라에 경제상황에 적합한 경제체제인지 판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장(신자유주의) VS 분배(후기자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느 쪽을 먼저 시행해야 하냐는 것이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로 논쟁을 벌이듯 심각하게 대립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성장(신자유주의)'을 우선적으로 택했다. 어쩌면 단연한 선택이었는데, 경제성장도 하지 않고 나눠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야 노나 먹는 맛도 나는 법이라면서, 일단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성장 과정에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앞서 신자유주의의 단점에 '빈부격차 심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다보니 저소득층을 구제하고 싶어도 '세금'이 태부족했던 것이다. 반대로 베트남 같은 공산권 국가들은 '분배'를 우선시 했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난한 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일단 '성장'이 우선인 것은 어느 정도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더욱 커진 '파이'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노나 주었나? 다시 말해, 성장에 따른 '분배 정책'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분명 경제성장은 이뤘는데 국민 대다수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만성화 되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발 관세위기'까지 몰려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의는 언제쯤 결론을 지을 수 있고, 그 성과는 언제쯤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책은 '정치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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