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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평점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편 -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채사장 / 웨일북 (2020)[2014년 개정판]
[My Review MMXX / 웨일북 1번째 리뷰] 이미 많은 분들이 먼저 읽고 대단한 책이라는 것을 입증한 책이기에 하릴없는 찬사는 각설한다. 벌써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무한편(2024)'이 출간되었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서둘러서 리뷰를 올리고자 한다. 물론 어린이책으로 출간한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도 널리 읽히고 있으니 책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리뷰는 쓰지 않도록 하겠다. 다만 이 책의 근간인 '지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데 평소에도 지대한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하고 싶다. 내가 끝없이 책을 읽고 부지런히 리뷰를 쓰는 까닭이 바로 '지적 대화'를 나누고 싶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런 사람을 매일 만나고 싶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경제'다. 무턱대고 '경제' 운운하니 어려운 내용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무릇 경제란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가 아무리 어려운 말을 써놨어도 결국 '먹고 사는 일'을 써놓았을 뿐이다. 그러니 평소에 '먹고 사는 일'에 관심 좀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경제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적 대화'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그냥 수다 떠는 것 정도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반해서 '지적 대화'라고 하면 숨이 턱 막히고 말문이 닫혀서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기 때문이다. 당췌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못 알아 먹을 것 같은 '지적 대화'를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그런 건 어려운 말도 척척 알아듣는 '전문가'들끼리 하면 되지 않나? 그런 다음에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던가? 아니면 알아듣지 못해도 좋으니 '먹고 사는 데'에 문제만 생기지 않게 해주면 고마울 따름인데...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적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평생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남들 좋은 일만 하는 '선행'을 일삼다 죽을 때가 되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이 세상과 작별할 것이다. 뭐, 대부분 그러고 사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슬슬 열받지 않는가? 조금 똑똑하다고 덜 똑똑한 사람을 무시하고, 가진 것 좀 많다고 없는 사람들 업신여기는 행태가 정말 꼴보기 싫지 않던가 말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덜 똑똑했고, 없이 살았나? 아니아니, 무식하고 가난해도 착하게 살면 사는데 지장이 없게끔 만들어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지기는 했었나? 그렇다면 정말 잘 했다. 맞다. 그렇게 따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따져보아도 세상이 바뀐 적은 없었다고? 세상을 바꾸려면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 바뀔 것 아닌가? 안 그런가? 그렇다면 '지적 대화'를 나눌 정도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지식을 유용하게 써먹길 바란다. 그럼 세상은 바뀌게 된다. 당신에게도 주어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당연한 권리를 유용하게 써먹으면 세상도 결국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지적 대화'의 첫 장을 펼쳐보자.
이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을 끝까지 읽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딱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복잡한 세상을 딱 두 갈래로 갈라놓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세상을 갈라놓았다는 점을 이해하면 아주 좋다. 절미하고 두 갈래의 세상은 바로 '지배자의 세계 vs 피지배자의 세계'다. 뭐라고?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정말 대단하다. 그럼 조금 더 내용을 첨가해서 두 개의 세상을 좀더 구체화 시켜보겠다. '(소수) 지배자의 세계 vs (다수) 피지배자의 세계'다. 뭔가 감이 오는가? 아직이라면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느 쪽의 세계에 속해 있는가? 99.99% '다수'쪽인 '피지배자의 세계'에 속해 있을 것이다. 상위 0.01%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도 않고, 지금 내가 쓴 리뷰를 읽지도 않는다. 그러니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피지배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당신은 역사적 관점으로 '노예/농노/프롤레타리아'의 처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간 역사공부를 좀 해본 사람들은 왕의 관점으로, 영주의 관점으로, 부르주아의 관점으로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서 그런 '소수의 관점'에 올라서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었고/있고/있을 것이라면 그런 역사적 관점에 심취해도 좋다. 그러나 대다수의 99.99%의 사람들은 '노예의 처지/농노의 처지/프롤레타리아(노동자/빈자)의 처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적 관점으로는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에 입각한 경제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공산당(빨갱이?)도 아닌 우리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불온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당신이 '노동자의 위치'에 서 있다면 [초기자본주의/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잘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체제는 역사적으로 왕이나 영주, 부르주아의 신분을 가졌고, 결정적으로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자본'을 많기 가지지 못한 '노동자 계급'이라면 노동자에게 유리한 [후기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인 당신에게 훨씬 더 유리한 경제체제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초기자본주의/공산주의]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극단적으로 좌우 양쪽 끝단으로 치우친 체제이고, 두 체제 모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자유주의/후기(수정)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세 가지 경제체제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참고로 왼쪽의 체제로 갈수록 세금은 낮아지고, 복지도 낮아지며, 오른족의 경제체제로 갈수록 세금이 올라가지만 복지도 높아져서 '못 가진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유럽형)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다음은 정치적 관점이다. 우리는 보수, 아니면 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보수는 '빨간색'이고, 진보는 '파란색'이라는 것도 알아두면 좋다. 그런데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바로 '엘리트주의 vs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말이다. 여기에 앞서 배운 지식을 덧붙여 보자. '(소수의) 엘리트주의 vs (다수의) 민주주의'라고 써놓으면 조금 감이 오는가? 정치적 보수의 성향은 '소수의 엘리트'가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대로 정치적 진보의 성향은 '다수의 국민들'이 서로의 의견을 모아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렇다.
그런데 '정치에 사회를' 덧붙이면 정치적 보수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소수의 엘리트가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기는 '독재'로 치닫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반대로 정치적 진보의 성향이 극단적이 되면 '집단주의'가 성행하고, 급기야 다수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집단적 광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개인적인 독재'는 참 많이 경험했지만, 큰 문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독재자'를 물리치는 방식으로 해결을 보여주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전체주의'는 달랐다. 집단적 광기가 '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그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적 보수와 진보, 어느쪽이든 양쪽 끝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성향'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치든, 사회든 '균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너무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경계를 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중도'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다.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중도'라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아빠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딱 중간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마초아빠도 문제고, 모든 남성은 '예비강간범이다'라면서 극단적 혐오심을 뿜뿜하는 꼴통엄마도 문제지만, 마초아빠와 꼴통엄마의 딱 중간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결국 보수와 진보, 둘 중 어느 한쪽의 성향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쪽을 번갈아가며 지지하는 줏대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잘 고려해서 한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지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의 마지막은 윤리적 관점을 선보였다. 어려운 건 다 뺐다. '의무론 vs 목적론'이다. 둘 중 하나만 딱 고르면 된다. 의무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결과'보다는 이미 주어진 의무와 도덕 법칙을 준수하는 것을 중시하는 윤리관이다. 그래서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무던히도 강조한다. 반면에 목적론은, '행위의 결과'가 행복과 쾌락이라는 이익을 발생시킨다면 그 행위를 윤리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으로, 궁극적으로 보면 '전체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적 관점'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노동자인 당신은 어느 쪽을 선호해야 바람직할까? 당신이 (다수의) 노동자 관점을 지니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후기자본주의/사회주의'를, 정치적으로 '진보/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 '집단주의'를, 그리고 윤리적으로 '목적론(공리주의)'를 선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물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노동자인 당신이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 '의무론'을 지지하며 다수의 이득보다 '개인의 이익'에 더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고 해도 그건 당신의 선택이니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당신은 '엄청난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성향이 아무리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쪽이라하더라도, 당신이 속한 세계가 '세금 많이 거둬서 복지혜택 많이 받아야' 겨우 먹고 살만한 쪽이라면, 어느 쪽을 지지하고 선호해야 바람직한지 앞에서 다뤄봤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알뜰살뜰 돈을 모아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엄청난 자산가'가 될 것이 틀림없다면, 그런 선택이 후회될 리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계층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로또를 연달아 10번쯤 당첨되면 가능해질까? 주식과 코인 투자에서 초대박에, '따상'을 거듭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가능해질 수가 없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속에서는 이미 한 발 앞서간 자본가를 따라잡을 '개미'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퍼개미'라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지는 앞서 설명한 개념을 잘 파악해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속해 있는 세계가 유리한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동자'인데 '왕과 영주와 부르주아의 역사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자.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사회주의'만이 옳고, '진보 정치'만이 맞고, '다수의 이익'을 선호하고, '목적론적인 공리주의'만이 정답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선택에 '정답'은 없다. 어느 쪽이 내게 더 '유리한지/불리한지'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내게 불리한 선택이더라도 기꺼이 희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도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지 않던가. 그럼에도 '지적 대화'를 나눌 정도의 지식을 쌓았다면, 이제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단추를 스스로 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답'을 찾았다면, 그건 이 책을 '잘못' 읽은게 분명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판단이 섰다면 정말 제대로 읽은 셈이다. 그런 당신과 '지적 대화'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