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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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초에 남편과 자주 싸웠던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이었다. 타인과 한 약속시간은 철저히 지키지만 나 혼자 혹은 가족끼리 어디를 가기로 한 경우에는 늦출 수 있는 최대치까지 늦추곤 했다. 굳이 일찍 나가야 할 필요가 없다거나 꼭 시간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때에는 느긋하게 준비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여행가는 날 싸우면서 출발한 경우도 꽤 많았다. 물론 남편도 나와 똑같은 성격이었다면 싸울 일이 없었겠지만(대신 시간낭비가 심했겠지. 서로 미루다 엄청 늦게 출발했을 테니까.) 남편은 정반대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사사건건 싸웠다. 나중에서야 내 성격 자체가 그런 유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규범에 얽매이는 것 싫어하고 계획같은 거 못 세우는 형 말이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학교 다니면서는 줄곧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내 성격에 그런 면이 있으리라고는 나조차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성격유형검사를 여럿이 함께 했는데 나와 비슷한 성향이 나온 사람들도 학창시절에는 대부분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주변에는 어쩜 그리 모범생이었던 사람들만 있는지. 하도 오래전이라 어렴풋한 향수로만 기억나서인지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엄마와 이야기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말썽부린 일도 없고 부모님 속 썩인 일도 없다. 내 성격유형상 틀에 박힌 걸 무지하게 싫어하는데도 당시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도 그런 모범적인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번 일탈하고 싶어서 자기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욕망을 드러내고자 애쓴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란다. 띠지에 있는 글귀와는 반대로 저자는 여전히 모범적인 남편이요 가장이며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거기서 벗어나 보라고 권유한다. 본인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그냥 살겠다며. 저자는 인터넷 상에서 상당히 많이 회자되는 인물인가 본데 그의 책은 처음 읽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인생 어쩌고 하는 얘기가 귀에 안 들어온다.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들고 이미 나도 인생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고가 잘 안 들어온다. 솔직히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그냥 한번 가볍게 읽고 넘길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나에게는 그렇지만 오히려 저자에게는 이렇게 용기를 내서 가족과 자기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면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었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용기를 못 내니까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많이 감추며 여전히 불편하게 살고 있는가 보다. 원래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의 생각을 토대로 내 삶을 반추해 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아마 끝까지, 그리고 내면까지 모범생이고 특별한 어려움 없이 탄탄한 길을 걸어온 저자의 삶에 대한 삐딱한 질투 때문일 것이다. 선을 넘지 못하면 영역이라도 넓히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조차 안전이 담보되는 영역 내로 한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구란 끝이 없다. 오늘 간절히 바라던 것이 내일 충족되면 모레는 또 다시 새로운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그러한 욕구가 없다면 오히려 삶이 무미건조하고 의욕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솔직히 순수하게 나만을 위한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족이나 아이들을 위한 바람이지 순전히 나에게만 해당되는 바람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이 독립 못한 게 아니라 내가 독립 못 한 게 되어 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어떤 욕망에 대한 면죄부를 얻거나 공감을 얻을 요량으로 선택했다면 오산이다. 저자는 여전히 안전하고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그곳을 넘을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저자가 그 울타리를 넘길 바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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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5-30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줄이 인상적입니다. ^^

봄햇살 2012-06-04 13:54   좋아요 1 | URL
ㅎㅎ 라주미힌님도 공감하시죠?
 
한양 1770년 작은 역사 1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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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이든 지하든 빈틈이 없는 곳, 서울. 지금의 모습만 보아온 우리들로서는 인왕산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던 정선의 마음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압구정과 광나루 그림을 보아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긴 동탄 신도시가 들어오기 전 그 길을 거의 매주 다니면서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던가.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예전 모습을 그려보려 너무 애쓰지 말자. 어차피 계속 변해서 지금의 모습도 몇 백 년 후에는 역사 속에 남을 것이니 말이다.

 

  조선 후기의 문화가 가장 발달했다는 영조시대에 가장 중심부였던 서울 아니 한양의 모습을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보여준다. 지금까지 대개의 책들이 한양하면 으레 임금의 생활 위주로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그야말로 한양의 거의 모든 부분을 보여준다. 그래서 부제를 '작은 역사'라고 했나 보다.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770년 정월 대보름를 맞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 그러나 그것 또한 역사다. 사실 역사라고 하면 대개 임금을 중심으로 한 고위층들의 권력 다툼을 생각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일부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큰 흐름을 이야기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도 있어서 반갑다.

 

  '영조'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탕평책과 사도세자, 노론, 정순왕후다. 그러면서 주로 당쟁의 심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었고 후에 정조도 힘들었으며 정조가 죽은 후 모든 개혁 정책이 원위치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육조 거리의 모습과 성균관에서  생활하던 유생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북촌의 어느 양반집과 남촌의 어느 생원집의 모습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당시만 해도 한강 북쪽에 세도가들이 살고 남쪽은 새로 한양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살아다는 점만 보아도 앞일은 모르는 것이다. 아니 거시적으로 보면 당연히 드러나지만 그 안에 있으면 미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이다. 언제나 신흥세력들이 생기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힘을 얻는 것,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아닐런지.

 

  본문의 내용 중에 '병풍 앞에서 살다가 죽으면 병풍 뒤에 눕는다.'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을까 싶었다. 곳곳의 삶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양반위주의 생활이긴 하다.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림책판형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된다. 내용도 (판형에 비해)풍부하고 그림도 옛 그림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서 1770년으로 잠시 여행하는데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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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작가 이야기 보림 창작 그림책
이광익 외 글.그림 / 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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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지금 내 꿈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순수하게 나를 위한 꿈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찾기가 두렵다. 한창 때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꿈을 꾸겠지만 지금은 '나'가 아니라 '가족'이 먼저 떠오른다.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노후에 편안하고 여유있게 생활하고 싶다 같은, 나 개인이 소망하는 일은 없다. 과연 내가 20대 때에도 그랬던가. 그러진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게 현실인 걸 어쩌랴.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현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래에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한다. 그러니까 아직 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다행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 다섯 명이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꿈'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쓰이지 않나 싶다. 미래지향적인 단어이면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대개 미래를 생각하지만 이혜란의 글을 음미하다 보니 현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현재를 바꾸고자 꿈을 꾸니까. 특히 이혜란 작가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 이유가 뭘까. 글쎄, 어린이 책에서는 다루기 무거운 이야기를 아주 소박하고 조용하게 들려주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 <뒷집 준범이>나 <우리 가족입니다>처럼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느낌 내지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그런 마음으로 사회 곳곳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민희 작가의 이야기는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에서 느껴지는 풍자와 위트가 느껴졌다. 다섯 작가가 들려주는 꿈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도 다를까.

 

  꿈이란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거치고 나서 얻는 출구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내면을 응시하고 얻는 자기만의 힘일 수도 있다. 꿈이 없는 삶의 모습은 어떨까. 어린 아이들도 꿈이 있고 나이 많은 사람도 꿈이 있다. 소박한 희망일 수 있고 원대한 포부일 수도 있다. 또한 거시적인 것도 있고 당장 내일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아주 사소한 꿈이 자리하게 마련이다. 내일은 휴일이니까, 내일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까 혹은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등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대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일기를 쓰라고 하면 매일 똑같은 일이라 쓸 게 없다고 하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말이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게 아이들의 삶인 것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오늘을 보내는 것일까. 음, 바람쐬러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그게 기다려진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나의 작은 꿈은 이것이 되는 건가? 너무 소박하단 생각이 들지만, 현재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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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네 미술관 - 아름다운 우리 그림 우리 문화 상상의집 지식마당 6
강효미 글, 강화경 그림 / 상상의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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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우리 옛그림이 마냥 좋아지기 시작했다. 외국의 거대하고 섬세한 그림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그림은 편안하고 정겹다. 그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겠지.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어떤 것.

 

  며칠 전에 간송에 관한 책을 읽으며 흠뻑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펼치면 나오는 <몽유도원도>를 보니 간송이 그 그림을 놓친 게 어찌나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간송이라면 분명 그 그림의 가치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현재 일본에 있는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

 

  이 책은 그렇게 다른 그림을 보기도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황묘농접도>에 나오는 고양이와 제비나비가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림을 보여주는데, 고양이가 어찌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원래의 그림과는 별개로 이야기가 있는 부분에 옛 그림속 인물들이 고양이에게 물을 주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을 훔쳐보다가 고양이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표적인 그림들을 모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낯설지 않다. 게다가 그러한 그림들은 여러 책에서 자세한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어서 그런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여기에 있는 간략한 설명이 흡족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이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 특히 고양이와 나비가 직접 돌아다니며 그림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부분은 혼자 감상만 하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느낌마저 든다.

 

  창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그림을 보는 것 같은 표지 그림과 은은한 바탕 종이, 그리고 고양이가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성에 빠져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헌데 겉표지를 열면 나오는 속지 그림이 어딘가 이상하다. 처음엔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듯 가만히 보고 있는데 그제야 그 이상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바로 옛그림의 액자가 어색하다는 점이었다. 원래 우리 그림은 표구를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림 작가가 의도적으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듯 느껴지도록 일부러 이런 액자로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안에 있는 그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나만의 고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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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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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막에서 만난다는 신기루를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앞쪽에 비가 왔거나 물이 흘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이 멀쩡해서 의아해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다.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보는 신기루조차 신기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모르긴 해도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더욱 신기하겠지. 아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신기한 게 아니라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찾던 오아시스가 눈앞에 나타나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면 얼마나 힘빠질까.

 

  몽골 여행 이야기로 시작하는 앞부분을 읽자마자 든 생각, 이금이 작가가 몽골에 다녀왔구나!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 해도 작가의 경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까.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왔는데 우연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어찌나 몰입해서 읽었던지, 책 속 인물들과 다시 한번 캄보디아 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내가 몽골을 다녀왔더라면 이 책 또한 엄청 몰입해서 읽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몽골은 가보질 못했다. 대신 다음에 몽골을 간다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원래 모녀는 웬수와 친구의 경계를 넘나드는가 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딸은 나중에 큰 힘이 된다는데, 과연 내 딸도 그럴지. 아니, 그 보다 앞서 나는 우리 엄마에게 그런 딸인지 자문해 본다. 솔직히 무뚝뚝한 성격이라 전화도 잘 안하고 사근사근 대화도 잘 안하니 그런 딸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엄마의 대화 상대가 그래도 아들인 남동생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여하튼 엄마와 나도 한때는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인 딸도 나와 엄청 싸운다. 솔직히 다인이와 다인이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와 엄마의 싸움이 그랬고 지금의 나와 딸의 싸움이 또한 그렇다. 그러니까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예민하게 군다는 얘기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엄마와 그것을 못 견뎌하는 오빠를 보며 한편으론 엄마의 그런 관심이 자기에게서 비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시샘하는 복잡한 감정의 딸 다인이가 함께 몽골을 여행하며 겪는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다인이는 엄마 친구들을 보며 엄마의 학창 시절을 추측해 보기도 하고 엄마도 한때는 소녀였다는 점을 기억해 낸다. 사실 딸에게 엄마는 언제나 엄마일 뿐이지 엄마에게도 꿈 많았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며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는 하지만 엄마에 대입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되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앞부분은 다인이의 시점이고 뒷부분은 다인이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렇다고 동일한 시기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을 이야기하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둘의 생각의 차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사소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렇게 자식에게 올인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편이 낫겠다. 물론 그렇다고 엄마의 그런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런 생활에 동의하지 못하기에. 그래도 고비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와 빠듯하게 돌아가는 생활의 덧없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한 엄마의 변화에 약간 숨통이 트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자 공부며 추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인이 엄마는 빨리 자퇴를 해서 좋은 대학 가길 원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쩜 그렇게 우리집과 반대인지. 이런 책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 것은 나는 적어도 다인이 엄마처럼 아이들을 몰아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신경을 안 쓴다고 오히려 불만이다. 세상은 참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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