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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ㅣ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평점 :
보통 사막에서 만난다는 신기루를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앞쪽에 비가 왔거나 물이 흘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이 멀쩡해서 의아해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다.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보는 신기루조차 신기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모르긴 해도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더욱 신기하겠지. 아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신기한 게 아니라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찾던 오아시스가 눈앞에 나타나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면 얼마나 힘빠질까.
몽골 여행 이야기로 시작하는 앞부분을 읽자마자 든 생각, 이금이 작가가 몽골에 다녀왔구나!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 해도 작가의 경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까.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왔는데 우연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어찌나 몰입해서 읽었던지, 책 속 인물들과 다시 한번 캄보디아 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내가 몽골을 다녀왔더라면 이 책 또한 엄청 몰입해서 읽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몽골은 가보질 못했다. 대신 다음에 몽골을 간다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원래 모녀는 웬수와 친구의 경계를 넘나드는가 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딸은 나중에 큰 힘이 된다는데, 과연 내 딸도 그럴지. 아니, 그 보다 앞서 나는 우리 엄마에게 그런 딸인지 자문해 본다. 솔직히 무뚝뚝한 성격이라 전화도 잘 안하고 사근사근 대화도 잘 안하니 그런 딸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엄마의 대화 상대가 그래도 아들인 남동생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여하튼 엄마와 나도 한때는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인 딸도 나와 엄청 싸운다. 솔직히 다인이와 다인이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와 엄마의 싸움이 그랬고 지금의 나와 딸의 싸움이 또한 그렇다. 그러니까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예민하게 군다는 얘기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엄마와 그것을 못 견뎌하는 오빠를 보며 한편으론 엄마의 그런 관심이 자기에게서 비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시샘하는 복잡한 감정의 딸 다인이가 함께 몽골을 여행하며 겪는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다인이는 엄마 친구들을 보며 엄마의 학창 시절을 추측해 보기도 하고 엄마도 한때는 소녀였다는 점을 기억해 낸다. 사실 딸에게 엄마는 언제나 엄마일 뿐이지 엄마에게도 꿈 많았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며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는 하지만 엄마에 대입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되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앞부분은 다인이의 시점이고 뒷부분은 다인이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렇다고 동일한 시기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을 이야기하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둘의 생각의 차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사소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렇게 자식에게 올인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편이 낫겠다. 물론 그렇다고 엄마의 그런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런 생활에 동의하지 못하기에. 그래도 고비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와 빠듯하게 돌아가는 생활의 덧없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한 엄마의 변화에 약간 숨통이 트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자 공부며 추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인이 엄마는 빨리 자퇴를 해서 좋은 대학 가길 원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쩜 그렇게 우리집과 반대인지. 이런 책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 것은 나는 적어도 다인이 엄마처럼 아이들을 몰아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신경을 안 쓴다고 오히려 불만이다. 세상은 참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