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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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기에 일어난 어떤 커다란 사건이(꼭 커다란사건이 아니더라도) 후세 사람들에겐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당시와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그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내지는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며 자기들과 연결짓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불과 몇 십 년 전이라도 '과거'라는 말 대신 훨씬 오래전이라는 느낌이 드는 '옛날'이라는 말을 사용하겠지. 마치 내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피카소나 사르트르가 같은 세기에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세계사나 문화 예술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불과 십 여년 전의 일인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 백화점 붕괴 이야기를 하면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는 듯이... 마치 자기들의 시간 개념상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시간 속에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이것이 내가 피카소와 사르트르가 20세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던 때가 생각난다. 아까도 밝혔듯이 세계사에 거의 무지했기에 소련이 왜 붕괴했는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당시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정확히 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거대한 세계사적인 사건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때 내가 살던 시기와 겹치는 것이 굉장히 뿌듯했다.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만약 그 시기를 학교와 집을 오가며 오로지 공부하기만을 강요당하는 고등학생이었다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시사에 관심을 가져야 논술도 잘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사건이라면 당연히 고등학생들이 알아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것은 몰라도 되는 때였다. 그나마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주관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의 관심과 신기한 기분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그 후의 문제나 동유럽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지도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가 엄청 많이 생겨났다는 것만이 내게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그나마 나라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이 세계의 나라 이름과 수도를 지독히도 외우게 했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전혀 낯선 나라 이름들이 생겨서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구나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의 민족이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는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사회주의 아니던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시기였으니 관심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동유럽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거기에 그런 인종 갈등이 있고 종교 갈등이 있으며 이념 갈등이 있다는 것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 정말 마리와 그 친구들은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고 번성하고... 결국은 몰락하는 과정에 그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았던 나도 이상하고 신기함을 느끼는데 그들은 어땠을까.

 마리와 친구들이 다녔던 학교는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르조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환경에 둘러쌓여 있는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모순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인민을 위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는 사회주의도, 부의 재분배를 통해 모두 잘 살게 만든다는 (수정)자본주의도 결국은 이런 모순을 아직 깨지 못했다. 루마니아인인 아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하며 살까?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고위층 자제'분'들이나 재벌집 자제'분'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려서 심통이 나는 것일까. 글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아직도 내가 반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였다. 기차 타고 다른 나라로 넘어 가고 저녁에 외국에서 약속해서 만나러 가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물론 머리로야 나라가 붙어 있으니까 당연하지...라고 하지만 정서로는 공감이 잘 안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직장이 이웃 나라라서 매일 외국을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우리는 외국 한번 나가려면 오로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물론 배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행기와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할 때만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쯤 기차 타고 외국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어서 그 날이 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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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티마을 봄이네 집 작은도서관 3
이금이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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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어렸을 때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봄이면 토끼풀 꽃으로 목걸이 만들던 일, 여름이면 참외 따다가 물에 동동 띄워 놓고 물놀이 하다가 깨먹던 일, 가을이면 예쁘게 단풍든 산에 둘러 싸여 볏단에 끈 놓았던 일(내 기억으로 거의 유일한 들일이었다.), 겨울이면 커다란 은행나무 언덕에서 비료포대 타던 일... 이 모든 일들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단란한 가정이 있었기에 추억이라는 것도 의미있는 것이리라. 만약 큰돌이네 집으로 새엄마가 오기 전처럼 그런 상황이었다면 시골이 좋은 기억으로 남진 않았겠지. 모르긴 해도 벗어나고픈 곳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을까.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마도 작가가 시골에서 살아 본 경험 때문에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 이금이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비록 책은 모두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강연을 들었으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사는 지역도 같네... 사실 작가를 만난다거나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괜히 공통점을 찾으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밤티마을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 후속 작품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강연을 듣고 읽어서그런지 상황들이 눈에 선하다. 게다가 그림은 또 얼마나 정감이 가던지... 양상용 선생님은 필 받아야만 그림을 그리시기 때문에 작품을 써 놓고도 출간이 늦어졌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칫 동화책에는 그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삽화 수준으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그림은 자체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은 가정의 형태가 많이 변했다. 아니 변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재혼가정 이야기나 한부모 가정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본다. 작가도 그래서 팥쥐 엄마를 끝내 가족으로 편입시켰고 좋은 엄마로 거듭나게 해 준 것이라고 하잖은가. 사실 새엄마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친엄마라고 해도 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단지 애를 키워보니까 내 자식도 미울 때가 있는데 과연 남의 자식을 키운다면 미울 때 얼마나 미울까를 가늠해 보면서 새엄마의 모습을 정형화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에서는 꼬맹이로 나오던 영미가 3학년이 되어 갈등을 겪는 모습이 나온다. 그 나이 때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겠지. 오빠인 큰돌이는 시종일관 의젓하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보살펴서 철이 일찍 들었나보다. 무엇보다 모든 가족들이 행복해져서 내 마음도 편안하다. 현실에서 모델이 되었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지만 책 속에서는 살아계셔서 기뻤다. 다른 부분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면 아예 휴지를 옆에 놓고 읽어야 할 뻔했다.

큰돌이가 영미에게 엄마랑 같이 살아서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은 마치 작가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같이 읽을 우리 어른들에게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앞 일에 대해 즐거운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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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아요 (부모용 독서가이드 제공) - 장독대 그림책 3
엘비나 데 루이터 지음, 김라합 옮김, 마리엘레 보넨캄프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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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간색을 좋아한다. 그러기에 이 책을 보았을 때 빨간 표지에 중간에 여자 아이가 뒷짐 지고 서 있는 모습과 하얀 글씨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깔끔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넘겼다가 다시 표지를 보며 누가 지었을까 보았다. 마치 수묵담채화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그림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까지 보태졌으니 오해를 할 수밖에. 그러나 수묵화는 아니다. 작가도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라 네덜란드 사람이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여자 아이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있다. 아니... 표정은 시무룩한 것은 아니지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보다 커요.''라는 글에서 아이의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꼈기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모든 부분은 흑백인데 아이의 볼만 발그스름하다.

문득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크리스마스 거리를 구경시켜 주러 나갔다. 엄마는 열심히 아이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갈 뿐이고. 그러다가 아이가 무엇을 떨어트려서 엄마가 줍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의 발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만 보이더라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자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들의 얼굴은 까마득히 올려다보이고 다리만 보일 때 아이는 얼마나 위축되었을까...

또래보다 키가 작으면 아이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많은 걱정을 한다. 특히 요즘은 키가 커야 일단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시절이니 더하겠지. 책 속의 아이도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한다. 오죽하면 엄마가 나무에 물 주는 것을 보고 샤워기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기까지 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자라지 않는 키를 보며 힘들어한다. 어른들이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해 줘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주 작은 아기를 보고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비로소 자신이 아주 작았다가 지금처럼 커졌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클 것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아이는 환한 얼굴로 만세를 부른다. 고민에서 해방된 표정이다. 아이는 이제서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래보다 키가 작아서 걱정인 아이들이 읽으면 자신감을 얻지 않을까. 주위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낱 위로로밖에 생각되지 않겠지만 책 속의 아이처럼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위로가 아닌 사실이 되어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키가 작든 크든 자신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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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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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무려 30분 씩이나... 먼저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은 순전히 엄마의 순진한 바람이다. 아이는 일찍 일어나서 전날 미리 챙겨 놓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는다. 가끔은 잘 안 묶인다며 신경질도 내 가면서... 그렇게 몸단장 하는데 그 30분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내 딸이지만 나와 성격이 전혀 딴판이라 어떨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가끔은 내게 충고도 한다. 옷 좀 신경써서 입으라는.

이 책 표지를 보자 퍼뜩 딸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 이 책을 읽으라고 해야겠군. 뭐... 얇기도 하니 금방 읽겠지. 그런데 요즘 시험기간이라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기에 내가 먼저 읽었다. 책은 무지하게 얇은데 '반올림'책이네. 그럼 청소년들이 읽는 건데...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에구... 딸 아이가 안 읽기를 잘 했다. 책 두께로 읽을 대상을 결정하는 무식을 범했다. 괜히 반올림책이 아닌 것이다. 내용이 상당히 수준이 있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도 아무리 독서력 좋은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행동들이 아직은 이런 걸 몰랐으면 하는 '순진한' 엄마의 바람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아니 뭔가 냄새를 풍긴다. 대단히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사실 딸에게 권한 이유도 옷이라는 것은 도구(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목을 보면 딱 그 의도였으니까. 내용도 별반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옷장을 열고 옷을 고르거나 진열된 옷 속에서 내게 맞는 옷을 고르는 행위가, 어쩌면 그 중에 어느 한 옷이 나를 고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작가는 교묘하고 천연덕스럽게 속삭인다. 마치 주인공에게 속삭이는 '그 녀석'처럼... 작가는 어쩜 이리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젊은 세대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이 특이하게도 별명으로 불린다. 그들의 이름이 더이상은 의미 없다는 뜻인가. 여하튼 재미있고 신선하기도 했는데 워낙 두 글자 이름에 익숙해져서인지 무지하게 헷갈렸다. 각각의 특징에 맞게 지어진 별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뒤엉키기 일쑤였다. 단언컨대 청소년 독자들은 절대 헷갈리거나 뒤엉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세대 차이라는 것인가보다.

이 책은 '나'를 중심으로 하지만 결코 주인공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의미있게 시작을 했는데 뒤에 가서는 결론으로 갑자기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세일러문 놀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당한 것도 그동안 가졌던 잔잔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어떤 마음을 지속하는데 방해를 했다.

청소년들이, 특히 옷과 치장하는데 목숨 거는 아이들이 읽으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딸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 압권이다.
"아, 글쎄, 옷이 나를 입었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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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 나의 고전 읽기 5
박치현 지음, 존 로크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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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삼권분립에 대해서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저 앵무새처럼 입법, 사법, 행정만을 외웠었지.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며 왜 그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왜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었다. 단지 독립적이라는 사법권이 정치와 권력 앞에서 무너지거나 권력에 빌붙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진작에 읽었어야 했던 책인데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통치론>을 읽고 저자가 서평을 쓰듯이 풀어 놓은 책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원전을 읽었다면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첫 부분에서는 로크의 삶을 다루고 있어서 그가 <통치론>을 쓰게 된 배경이라던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단순히 그 작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았던 삶과 시대적 배경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훨씬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견해에 공감하는지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 적어도 인신의 자유는 보장된다. 그러나 이 책을 썼을 당시만 해도 이런 생각 자체가 엄청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노예무역이 당연시 되고 있던 시대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이 보기에는 로크의 이 책이 얼마나 위협적인 책이었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면서 작금의 어떤 사태가 오버랩된다.(출총제와 종부세라고 말 못한다.) 위협을 무릅쓰고 이 책을 출간하였기에 인류는 한 걸을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시대적인 차이로 인해 지금의 현실과 안 맞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로크에게 떠밀 수는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한 것인 만큼 읽는 이가 보정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국가에 대해서, 그 의미에 대해서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로크가 명쾌하게 정의해 놓은 글을 보니까 '아!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전제정치 시대가 아니며 독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로크가 주장했던 것들을 너무 당연시 했었나보다. 특히 다수결의 원리와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에 대한 설명을 보니 지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고 놀랐다. 여기서 발전되어 나간 것이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국가와 권력에 대한 것이라니... 다만 로크는 지나치게 자본주의를 강조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그쪽만 너무 발전시킨 '덕분에' 여러가지 폐해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말이다. 이 또한 로크의 논리적 허점을 악용한 후세 사람들로 인한 결과니까 그에게 뭐라 할 수는 없겠다.

<통치론> 원문을 중간중간 삽입하여 해석해 놓았기에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간혹 원문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임에도 다시 설명을 해 놓아서 반복된다는 느낌과, 우리와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공감이 잘 안된 부분이 조금 있긴 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뒷부분에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현대사(최근)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조건 통치론을 신봉하거나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과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어서 덜 괴로웠다.(극단으로 가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괴롭다.)

로크가 이 책을 썼을 때가 1690년경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이다. 이 시대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렇게 논문과 책으로까지 펴내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왜 서구의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더 발달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50여 년이 조금 넘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의 이 후진적인 정치제도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경제제도도 언젠가는 성숙기에 접어들리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 날이 언제쯤 될까나...

아! 그리고 마지막 뒷표지의 저자 소개가 재미있었다. '집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없었던 관계로' 저자(박치현)다운 표현이다. 저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고 나면 느껴지는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소개글이라서 웃음이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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