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와 초콜릿 전쟁 - 초콜릿 값 내리기 7일 대작전, 개정판 더불어 사는 지구 20
미셸 멀더 글, 김루시아 옮김 / 초록개구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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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aggie and the Chocolate War

  부제 - 초콜릿 값 내리기 7일 대작전

  작가 - 미셸 멀더

 

 

  2차 대전이 끝난 1947년 캐나다. 아직 전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아, 거의 모든 물건이 귀하기만 하다. 거기다 계속해서 물가는 인상만 하지, 내려갈 줄을 모른다. 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둔 매기네 집도 식량을 아끼려고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커튼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형편이다. 그러던 중, 매기는 가장 친한 친구인 조세핀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아빠 가게에서 배달 일을 시작한다. 형제가 많아서 언제나 나누어먹는 게 익숙한 그녀만을 위한 초콜릿을 사기로 생각한 것.

 

  그런데 정부에서 5센트 하던 초콜릿 가격을 8센트로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가격이 올라가면 생일선물을 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항의를 하기로 결심한다. 피켓을 만들어 구호를 외치고, 가게 앞에서 8센트에 초콜릿을 사지 말자고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한다. 매기 아버지가 하는 가게도 시위운동의 목표가 되면서, 조세핀과 매기의 사이가 어색해진다. 급기야 아이들은 의회에 쳐들어가기로 결정한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책 표지는 물론이고 안쪽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5센트 초콜릿을 원해요.’, ‘8센트 초콜릿을 사지 마세요.’, ‘이 나라가 원하는 것은 5센트짜리 초콜릿.’ 등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아이들은 모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서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려고 피켓 시위를 하는 꼬마들이라니. 그것도 어른들이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그 시위는 불손한 무리들이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신문 기사를 접한 어른들의 제지로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아이들은 무슨 시위냐고 공부하라고 꾸지람을 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격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정부에서 초콜릿 가격을 내리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몇몇 가게들이 재고품은 5센트에 팔거나 어른들에게서 기금을 모아 부족한 3센트를 채웠다고 간략하게 나와 있다.

 

  비록 아이들이 의회에 쳐들어가서 초콜릿 가격 인상 반대 구호를 외치는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자기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말을 경청했다. 나이, 성별, 그리고 피부색 등등으로 상대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차선책을 강구하려고 노력을 했다.

 

  게다가 아이들끼리도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친구들이 시위하는 곳은 바로 자기 집 가게 앞. 매기는 가게가 잘 안되어 슬퍼할 부모님을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초콜릿 가격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게 일을 돕는 것이 자기들을 배신하는 행위라 생각하는 다른 친구들, 특히 조세핀의 오해도 풀어야 한다. 아이들은 고민을 하고 화도 내보지만, 결국에는 대화와 서로에 대한 배려로 극복해나간다.

 

  의견을 정확히 말하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귀담아 듣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이게 바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책에서 인권이 어쩌고 국민의 기본권이 저렇고 시험 대비용으로 줄줄 외우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의 아이들이 부러웠다. 비록 생활은 궁핍하지만, 자기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참으로 좋아보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땠을까? 나부터 고등학생인 둘째 조카 녀석은 공부하라고 윽박지르고, 열 살인 막내 조카는 쪼그만 게 뭘 아냐고 책이나 읽으라고 하지 않을까?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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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소리를 들어라 8세에서 88세까지 읽는 철학 동화 시리즈 5
데이비드 허친스 지음, 박상현 옮김, 바비 곰버트 그림, 박영욱 해설 / 바다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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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istening to the Volcano

  작가 - 데이비드 허친스

  그림 - 바비 곰버트

  해설 - 박영욱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철학 동화 시리즈이다. 동화가 원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책이긴 하지만, 철학이? 그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다.

 

  어휘는 어렵지 않았다. 공유, 직관, 신념이나 창조 같은 단어들이 나왔지만, 그 뜻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열 살 난 조카에게 이게 무슨 뜻같냐고 물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하지만 저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다. 그러니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했다.

 

  주인공 마일로가 사는 마을은 사람들이 말한 낱말이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말풍선이 구체화가 되는 신기한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온순하고 예의가 바르기에, 그 말풍선들은 담장이나 화분 정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평화로운 이 마을에 큰일이 일어난다. 잠들어있던 화산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해서 생겨난 낱말들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고 만다.

 

 

 

  그러던 중, 마일로가 생각한 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드문 일이지만, 간혹 생각까지 구체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말주변이 별로 없고 어리고 수줍음이 많지만, 마일로의 생각들은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기회를 준다. 비록 그는 부끄러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차분히 토론을 한다. 그리고 낱말들은 구체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주의 깊게 들으라는 말을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풀어서 보여주다니!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남의 의견도 들어라!’라고 할 때는 그냥 잔소리 같고 ‘자기들이나 잘 할 것이지.’라는 반발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자연스럽게, 강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구나.’라고 공감을 하게 만든다.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지! 얘기를 들어봐야지! 뭐하는 짓이야!’라고 소리치게 만든다.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흥분하면 진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한다.

 

  이게 바로 동화의 힘이고, 좋은 책의 맛이다!

 

  전에는 추리 소설을 잘 쓰는 사람들의 뇌구조가 궁금했는데, 요즘은 동화 작가들의 뇌구조와 마음이 궁금하다.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어떤 시각으로 타인을 보면 이런 근사한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뒤에 해설이 더 어려웠다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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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의 비밀 우리 문화 속 수수께끼 1
김종대 지음, 이부록 그림 / 사파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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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종대

  그림 - 이부록

 

 

  제목에 ‘~의 비밀’이라고 적혀있지만, 어린이용 탐정 소설은 아니다. ‘비밀’하면 추리가 떠오르는 동물적인 반사 신경은 제쳐두자. 이 책은 우리 역사나 전래 동화 내지는 옛날 풍습에 자주 나오는 숫자 3에 대해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다른 나라 문화는 자세히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우리 문화에는 ‘3’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책에도 나오지만, ‘삼족오’라든지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 또는 ‘삼짇날’, ‘삼재’ 그리고 동화에서 특히 많이 나오는 삼형제까지.

 

 

 

  이 책은 ‘3’이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에 대해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옛사람들은 ‘3’을 완전한 숫자로 봤기에, 1이나 2보다 더 중요시 했다. 음과 양이 결합한 수가 바로 ‘3’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그렇구나!’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구나.

 

  우리는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행운의 7이라든지 불길한 13일의 금요일은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서양의 것이다. 3이나 불운의 4같은 것은 동양의 것이고 말이다. 그 중에서 4는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3’만이 우리 문화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3’과 관련된 한국의 전래 동화나 풍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삼족구라든지 삼두매라는 건, 고백하자면 여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덧붙이자면 가믄장아기가 셋째 딸이라는 것과 그녀가 결혼한 사람이 셋째 아들이라는 것까지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관계도 까지 대충 읊을 수 있으면서, 정작 한국의 전통 신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다음에는 한국 전통 신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 내가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도 있고, 말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독특한 그림이다. 어지럽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풍부한 색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섬세하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불명확하게 그리기도 하고. 상당히 개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이 동화책의 큰 장점은 다양한 그림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그림은 신기하기만 했다. 한 사람이 그린 것인데, 글에 적절하게 변화를 주었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런데 조카는 삼족구 그림이 좀 무섭다고 했다. (바로 위에 있는 그림) 얘가 무서운 걸 잘 못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긴 벡터맨인지 파워 레인저인지 그런 거 볼 때 악당 괴물 무리가 나타나면 같이 있어달라고 차마 말은 못하고, 손을 꼭 잡고 고모도 보고 싶으면 봐도 괜찮다고 할 정도니. 쯧쯧쯧, 고모는 피와 살점이 튀기는 영화도 잘 보는데……. 아, 이건 자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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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신비한 문자이야기 어린이지식박물관 1
캐럴 도너휴 지음, 윤희순 옮김 / 박물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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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캐럴 도너휴, 이길재

 

 

  영어라면 마하의 속도로 도망치는 막내 조카는 흔히 묻곤 한다. “고모, 영어는 누가 만들었어?” 아무래도 칭찬하거나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한 것이겠지. 옛날 사람들이라고 대답은 해줬지만, 전혀 마음에 드는 표정이 아니다. 그건 나도 안다고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들었다고 확실히 기록에 나오지만, 영어나 한자는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여러 사람이 세대를 거쳐서 발전시켰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대답은 호기심이 왕성한 꼬맹이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한다. ‘고모도 모르는 구나?’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골라봤는데, 흐음.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것도 글자냐고 대박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재미있다는 얘기겠지.

 

  이 책은 고대 문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최초의 알파벳, 로마의 알파벳, 중국의 한자 그리고 한국의 한글. 그뿐만 아니라 예전 중세 시대의 수도사들이 했던 일들, 예를 들면 책 베껴 쓰기, 색칠하기와 문양 그려 넣기도 한 챕터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과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서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리고 독자에게 상상할 기회도 같이 준다. 만약에 수메르 인이었다면 어떻게 설형 문자를 배우고 어떻게 사용했을지 가정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흙판 위에다 글을 쓰기에 빨리 하지 않으면 흙이 굳어서 못 쓸 수도 있고,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받아 혼나는 친구 이야기 등등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실감나게 그 당시 상황을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림과 사진이 많아서, ‘이런 거였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넘긴다. 내가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 학교에서 세계사 시간에 설형 문자라든지 상형 문자에 대해 배울 때는 사진이나 그림이 없어서 그냥 달달 외우기만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와-’하고 탄성만 지르고 있다. 이런 책을 부교재로 하면, 공부 시간이 더 재미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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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에서 나온 소인들 웅진책마을 42
정 위엔지에 지음, 심봉희 옮김, 윤정주 그림 / 웅진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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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정 위엔지에

  그림 - 윤정주

 

 

  중국 작가가 지은 동화책이다. 이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루시시와 피피루를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책을 여러 권 썼다고 한다.

 

  손님이 오신 일요일 저녁, 고기 통조림을 따던 루시시는 놀라고 만다. 통 안에 성냥개비만큼 작은 사람이 다섯 명이나 들어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오빠 피피루가 가져왔던 다른 애완동물처럼 버려질까 겁이 난 루시시는 그들을 몰래 자기 방에 숨긴다. 고기가 없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부모는 자신들의 모범생인 딸을 의심한다.

 

  말썽꾸러기 피피루는 여동생이 혼나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둘은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한편, 루시시는 학교에서 졸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면서, 졸지에 우등생에서 열등생이 되어버리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이 왜 이 모양이냐고 혀를 찼다.

 

  피피루와 루시시의 부모는 자신들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르고 싶다고 가져온 동물들을 더럽다고 매정하게 버릴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피피루처럼 몰래 숨기면서 기르거나 반항하는 것. 아니면 루시시처럼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부모의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뿐인가. 그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주입식 교육에 맞지 않거나 이해가 조금 느릴 수도 있는데, 자신들의 속도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열등생이라 낙인찍어 관심도 주지 않는다. 열등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에서 손님이 오자, 열등생들은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까지 한다. 도대체 이런 교육자들이 어디 있을까?

 

  문득 나도 다른 사람들을 이런 잣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장점이 있어도 찾아보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아닐까? 이미 마음속에 어떻다고 결정을 내려버리면 다시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대상을 트집 잡을 구실만 눈에 불을 켜고 보는 것은 아닐까?

 

  한번 아니라고 인식을 하면, 그 감정을 떨쳐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편견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편견을 가지고 다른 이를 보는 사람은 의식을 못하겠지만, 그런 시선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 지 책은 보여주고 있다.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지고 모든 것에 부정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부정적이고 자신감없는 어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결국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느냐는, 주위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자 갖고 있는 개성을 파악한 소인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소인들에게서 공부법을 배운 열등생들이 우등생들을 넘어서는 과정은 재미있고 눈물겨웠다. 피피루가 우수한 성적을 받자, 선생님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주위에 둘러서서 감시를 하는 재시험 장면은 화가 날 정도였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것보다는 그 상대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마다 자라오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말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알수록, 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견과 선입견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아이답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누가 만든걸까? 아이들 탓만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태어나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 결과가 한정지어졌거나 똑같은 시뮬레이션 육성 게임의 아바타는 아니다. 그렇기에 연구하고 관찰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모 자식사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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