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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일상이 지루할수록 삶이 팍팍할수록 자꾸 미술관이 가고싶고 그림이 보고싶다.
그림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뭣을 알아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니 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좋은 그림 앞에서 십분이고 한 시간이고 그냥 들여다보며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싶어진다.
우리 옛 그림은 서양 명화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우리 민족 특유의 여유로움과 인간미가 살아있다.
말 없는 풍경 그림 한 점에도 고고하거나 소박하거나 인물을 그린 한 점에도 우리의 존재를 이땅에 이어가게 해준 조상들의 삶과 생각과 문화가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림만 놓고 보아도 좋은 것을 그림에 딱 어울리는 제목과-나는 이 책에 실린 그림 관련한 글도 좋았지만 그 짧은 한 줄의 문구로 그림을 확 잡아내는 제목이 참 좋았다. 어쩜 그리도 어울리게 지었을까 싶을만큼- 그림의 향기에 맞는 짤막하면서도 편안하고 시원시원한 글을 같이 읽으니 무더운 여름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편안히 영화 감상하는 즐거움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그림 예순여덟 점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싣고 있지만 마음 가는대로 눈길 가는대로 손길 가는대로 보고 느끼고 읽어도 좋은 책이다.
그림을 보고 풀어내는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림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더 보이게 되는 점도 좋았지만 잘 쓰지 않아 몰랐던 고운 우리말이 글 속에 녹아들어 그림을 더 곱고 예쁘게 보게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황홀한 사랑의 덧없음을 나비에서 느끼고 낭창낭창 고혹적인 자태의 양귀비와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벌 나비의 춘정이 너무 진해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바람의 화원으로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다시 보는데 그린 이도 그려진 이도 가려진 얼굴 사이 그 미묘한 느낌을 참 잘도 잡아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읊었던 시를 끄집어내었는데 옛그림이 주는 느낌에 딱 어울리는 시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림 한 편 한 편 글과 어우러져 그 향기가 진해진다.
그림에 취하고 글에 취하고 어지러웠던 마음마저 놓아버리게 된다.
이분의 글을 더 읽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았던 그림도 보지 못했던 그림도 새롭게 다가오고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다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덮어도 그림이 떠오르고 글이 입가에 맴돈다.
글 속에서 그림이 피어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