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갈 때마다 고양이를 만난 적이 많았다. 고양이는 골목길에 있는 자기 집 부근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하였다. 고양이의 집은 동네 사람들이 만들어 줬다고 하는데 라면 박스에 천을 깔아 둔 것이었다. 동네 사람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는 잠을 꼭 그 라면 박스 집에서 잔다고 한다. 내 느낌일 뿐이지만 고양이는 자기 집을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놓은 꽉 찬 쓰레기봉투에 생선 찌꺼기라도 들어 있는지 그 쓰레기봉투에서 먹잇감을 찾으려던 고양이와 내 눈이 마주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 고양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데로 가 버리는 시늉을 한다. 그때 고양이는 ‘당신 때문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잖아. 빨리 지나가.’라는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그 고양이를 보면서 개와 다르다고 느꼈는데 고양이는 어딘지 모르게 도도하고 거만한 면이 있어 보였고 그 점이 난 싫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고양이는 눈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리는데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당신한테는 관심 없어.”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끌려는 점이 고양이에게는 없었다. 길에서 살면서도, 자기를 보호해 주는 주인이 없는데도 당당해 보였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데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재건축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사를 가기 시작해서 마침내 친정집이 이사를 가는 날이 왔다. 이미 많은 집이 이사를 가서 동네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날이었다. 친정집의 짐을 실은 트럭이 떠나고 내가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친정집 안을 점검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려는 시간이었다. 골목에서 그 고양이와 내가 딱 마주쳤다. 떠나는 사람은 나였고 남는 것은 고양이였다. 이번엔 고양이가 나와 마주친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고 쳐다보았다. 고양이를 지나서 걷다가 뒤돌아보니 그때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더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그때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떠나는 거야? 동네가 텅 비었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그날 고양이를 남겨 두고 돌아서야 했던 내 발걸음에 속도를 낼 수 없었던 건 도도하게만 보였던 그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고양이의 슬픈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한테도 정이 들었나 봐. 떠나는 당신 뒷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군.”

 

 

살다 보면 당시에는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가벼운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이 이야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그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보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레닌은 옛날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그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하여 박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60~61쪽)

 

사실, 어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그러기 위한 모범으로써 한 마리의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61쪽)

 

이사를 가야 했으므로 어머니와 나는 물루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불쌍한 물루야, 우리가 떠나게 되면 너를 잃고 말겠구나. 집과 짐승을 한꺼번에 다 잃다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물루는 맛있는 고깃덩어리를 얻어 먹곤 했다.(63쪽)

 

- 장 그르니에, <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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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1-17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가 생긴 후여서인지 페크님의 글이 더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8-11-18 14:07   좋아요 1 | URL
예. 제가 그 페이퍼 보고 응원의 댓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잘 크고 있겠지요?

어릴 때부터 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길고양이로 사는 데 익숙한 고양이는 집에서 키우기 힘들 거예요. 답답해 할 것이니까요.

가끔 고양이 사진을 올려 주시면 구경하러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8-11-17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더불어 잘 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언니 글을 읽으니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마당에서 기르던 개가
생각나네요. 여기선 기를 수가 없어 이모한테 맡겼는데
제대로 묵어 놓지 않아 대문 틈을 빠져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대문만 나서면 우리를 찾아 갈 줄 알았겠죠.
녀석도 우리 집에 왔을 때 파양됐다 왔거든요.
우리 집에서 5, 6년 키웠는데 겨우 마음 문 열고 우리와 친하게
살만했을 때 또 파양을 당한 셈이니 그 마음이 어땠겠어요?
이사하고 오랫동안 녀석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ㅠ

페크pek0501 2018-11-18 14:10   좋아요 1 | URL
대문만 나서면 옛 집을 찾을 수 있다고 추측되는 것, 참 슬픈 일이네요.

개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하는데 걱정되네요.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잘 모를
개로선 상처가 클 것 같아요. 사람이라면 이해라도 시킬 수 있지요.
저는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 겁나더라고요.
좋은 주인을 만나서 편안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에휴...

댓글, 고맙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네요. ^^

2018-11-18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8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11-22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오늘도 날씨는 차갑지만, 기분 좋은 일들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11-23 13:26   좋아요 1 | URL
옙~~
서니데이 님도 하루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시길 빌어요.
고맙습니다.
 

 

 


1. 책광이란 말이 있다면 : 현재 사전에서 책광이란 낱말을 찾을 수 없다. 골프광과 낚시광은 찾을 수 있다.  

 

 

사전에 이와 같이 나와 있다.

 

 

골프광 : 골프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낚시광 : 낚시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그렇다면 책광의 뜻은 이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광 : 책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그렇다면 나는 책광이 맞다. 책광이란 말이 있다면 말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해도 매일 읽는 사람이니까.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만약 앞으로 책광이란 말이 사전에 등재되는 날이 온다면 책광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 페크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기억해 주시라.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지만 작년에도 책광이란 말을 내 글에 쓴 것 같다. 어쩌면 재작년에도 썼을지 모르겠다.

 

 

 

 

 

 

 

2. 사고 싶은 책이 언제나 있다 : 사고 싶은 책이 언제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가, 아닌가? 책값이 많이 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지만 책으로 인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행복한 일이 맞겠다.

 

 

요즘 나는 양면성에 주목하고 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에 새삼 신기함을 느낀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나는 먹성이 좋은 편이 아니고 입이 짧아 먹는 걸 매우 즐거워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내게 장점이 있으니 살이 찌지 않아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고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점이다.

 

 

밥맛이 없을 때가 가끔 있다. 최근에도 며칠 동안 밥맛이 없어 밥을 조금 먹고 살이 빠질까 봐 단감을 먹는 걸로 보충했다. 밥맛이 없어도 단감은 맛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밥맛이 없는 게 혹시 병이 있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만약 밥맛이 없는 게 어떤 병 때문이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밥 먹기 싫었던 경험이 많은 걸 설명할 길이 없다.

 

 

위로가 되었던 건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즐거움을 모른다는 사람을 두 명 발견한 점이다.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난 그들보다 낫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경험이 많고 먹는 즐거움을 나는 안다. 다만 밥맛이 없을 때가 있을 뿐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내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적은 대신 책을 읽는 즐거움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3. 내가 밑줄을 그은 글 : 책을 읽으면 밑줄을 긋고 싶은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 ‘이 책을 사 놓기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글에 밑줄을 그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자원활동가들이 진도, 안산, 목포로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똑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기력하다. 죄책감이 든다.”

 

그 사람들의 무기력이나 죄의식은 패자의 감정이었을까. 아니다. 지난 5년, 세월호 유가족 같은 극한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이런 시민들의 거대한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가 만들어낸 치유적 공기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었다고 느꼈다.

 

마침내 세월호를 육지로 끌어올린 힘도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들이 만들어낸 분노가 근본 동력이었을 것이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91쪽.
...............

 

 

→ 자원활동가들의 무력감과 죄의식이 ‘아무 소용없음.’이 아니었다는 것.

 

 

 

이런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가 이집트와의 전쟁에 승리했을 때, 승전국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는 패전국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토스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패전국의 왕을 길거리에 세워두고, 그의 딸이 하녀로 전락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했다. 이 광경을 보고 모든 이집트인들이 슬퍼했으나 정작 왕은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곧이어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은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포로 행렬 속을 걸어가는 늙고 초라한 한 남자가 자기의 오랜 시종임을 알아본 순간, 왕은 주먹으로 머리를 치며 극도의 슬픔을 표현했다.

 

 

이것은 그리스 시대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5세기에 쓴 《역사》의 3권 14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특별히 발터 벤야민의 글 <이야기꾼〉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이 글을 내보이고는 한다. 왕은 왜 그랬을까? 그의 마지막 슬픔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 오래전에 몽테뉴는 이렇게 해석했다. “왕은 이미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조금만 그 양이 늘었어도 댐이 무너질 판이었다.” (《서사·기억·비평의 자리》, 길, 2012, 428쪽, 이하 동일) 딸과 아들까지는 잘 눌러 참았는데 시종을 보자 그 슬픔이 흘러넘쳤다는 것. (...)

 

 

이제 벤야민 자신의 해석을 들어볼 차례다.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 예컨대 별안간 부모의 초상을 치르게 된 사람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관에 놓인 부모의 낡고 오래된 신발 한 짝을 보고 비로소 주저앉아 통곡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것일까. 아마 그런 것이리라. 벤야민은 자신의 해석까지 소개하고 덧붙이기를, 헤로도토스가 왕의 심경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라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나는 벤야민의 말을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 어떤 계기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확인해보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야기 속 노인은 ‘시종’이 아니라 왕의 ‘친구’였다. 왕 자신의 해명도 이미 이야기 안에 있었다. “제 집안의 불행은 울고불고하기에는 너무나 크옵니다. 하지만 제 친구의 고통은 울어줄 만하옵니다.”(천병희 옮김, 숲, 2009, 281쪽) 그렇다면 우리는 벤야민에게 속은 것인가? 아니, 오히려 그가 소개한 해석들로 우리는 슬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이런 것이 슬픔에 대한 공부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9~32쪽.
...............

 

 

→ 이 글을 나는 다른 경로를 통해 여러 번 접했고 이 책에서 다시 접했다. 반가웠다. ‘해석의 다양성’은 문학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멋진 책을 갖고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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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11-10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책 다 저한테 있는데요 앞의 책을 먼저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어야 할텐데용. 책광이란 말은 제가 증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 이택광이란 분이 있어요. 관계는 없지만 택광, 책광 발음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페크pek0501 2018-11-10 18:11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을 책광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제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말이에요.

증인이 되어 주신다니 제 마음 든든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

서니데이 2018-11-16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혜신 작가의 책 저도 읽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과 어렵지 않게 쓰여진 것이 좋았어요.
페크님, 내일 아침은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11-17 13:41   좋아요 1 | URL
아,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완독 못했어요. 조금 읽어 보니 술술 읽히는 책인 것 같아서 마음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책에 빠져 있어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날씨가 추워졌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이런 날 많이 걸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야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토요일입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녹색평론 통권 163호 - 2018년 11월~12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나, 한때 꿈이 많았으나 현재는 책광으로만 살고 있는 것 같다.

책광이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책광인 것만 해도 행복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복 하나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책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이 많았으므로.

 

앞으로도 많을 것이므로.

 

 

 

 

...............
나, 한때 부자였다. 꿈의 부자, 게으른 몽상가, 그 푸른 스무 살 시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이 되고 싶었던가. 내가 지나온 지난 이십 년은 그 많던 꿈들을 버려 온 시간이었다. 클랙션 대신 트럼펫을 부는, 대륙을 횡단하는 트레일러 운전사, 자전거를 타고 노을진 논길을 달려오는 시골학교 선생, 산림 감시원, 태평양을 횡단하는 요트 운송 요원, 실크로드 도보 여행, 칠레 종단 열차 여행, 마다카스카르 총독… . 나는 꿈을 꾸었으나, 꿈은 나를 꿈꾸아 주지 않았다. 시와 영화 보기, 그리고 ‘단순한 삶, 깊은 생각.’ 이것이 마지막 남은 나의 꿈이다.(94~95쪽)
- 이문재,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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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11-06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취향저격인데요?

페크pek0501 2018-11-07 18: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람마다 독서 취향이 다 다르죠.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한쪽으로 몰려 있다 보니
두 가지 책에서 중복되는 글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저자의 주장이란 게 비슷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신형철 저자는 너무 글을 잘 써서 신간이 나와 샀습니다.
녹색평론은 격월간지인데 계속 사 보려고 생각하는 책입니다. 미투 운동처럼 녹색 운동도 해야 하는 지점에 이른 것 같거든요.

데미안 님의 닉네임 좋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굿 밤 되세요.

데미안 2018-11-07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긴 이유를 빼놓고 단도직입만 했는데역시 저랑 같은 의견이세요!!!
저의 긴말은 페크님의 답글로 대신합니다. 저는 훈훈함만 남기고 갈게요!!

페크pek0501 2018-11-10 14:52   좋아요 0 | URL
훈훈함을 잘 접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서 공기가 맑았던 날에 찍은 하늘 사진을 올린다.  

 

 

 


2018년 11월 6일
제목 : 닮고 싶은 사람

 

 


돌아가신 아버지는 겁이 없으셨다.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겁이 많으시다. 예를 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랑니 문제로 치과를 찾았다가 의사가 사랑니를 빼야 한다고 하면 두 사람의 대응이 다르다. 아버지는 의사에게 사랑니 빼는 정도는 하나도 겁이 안 난다는 목소리로 이왕 온 김에 두 개를 빼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의사에게 걱정과 불안이 섞인 목소리로 안 빼면 안 되느냐고 물으신다.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하신다. 생각이나 행동이 비슷하다고 하신다. 그러나 병원에서 겁을 먹는 건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며 내 표정은 경직되고 만다.

 

 

그래서인지 겁이 없는 사람이 나는 좋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는 좋다. 심각함을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사람을 닮고 싶다.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심각한 생각에 잠긴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 마음이 괴롭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찜찜한 기분으로 살았던 경험이 내게 얼마나 많았던지.

 

 

그저께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사촌 여동생(고모의 딸)을 만났다. 나보다 일곱 살이 아래다. 몇 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 치료로 고생을 했던 동생이었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반갑게 손을 잡았다. 예전에 통통했던 몸이 말라 있어서 걱정되었지만 동생이 기분 상할까 봐 살이 빠진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고모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동생이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해서 일부러 살을 뺐다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싶었다. 몸매 관리를 하고 산다는 것은 유방암을 이겨 냈다는 뜻이니까.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된 것에 응원을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갔다. 살을 너무 빼면 안 된다고 운동량을 줄이라고 말한 것이다. 살을 많이 빼다가 다른 병을 얻을까 걱정되어서다. 어쨌든 병을 이겨 낸 동생은 표정이 밝아 보기 좋았다.

 

 

앞으로 겁쟁이인 내가 어떤 병이 생기든 본받을 사람이 생겨서 좋다. 그 사촌 동생의 정신을 닮고 싶어서 좋다. 닮고 싶은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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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1-06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면 강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닥치면 뭐든 하게 된다란 말이 있나 봅니다.
저는 겁이 많은 편인데 언니 같은 생각을하면 좋은데
오히려 나도 저렇게 아프면 어쩌지?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더라구요.ㅠ
암튼 사촌 동생 건강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페크pek0501 2018-11-06 15:34   좋아요 1 | URL
환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태평하게 사는 걸 보면 위안이 됩니다.
언젠가는 나도 병을 얻게 될 터이고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보면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같거든요.

지금 70세 넘은 노인들을 보면 거의 병을 가지고 있고 약 복용으로 장수하는 것 같아요. 예를 하나 들면 옛날 같으면 혈압이 높아서 오래 못 살았을 테지만 지금은 혈압 약 복용으로 건강하게 살지요. 당뇨병도 마찬가지예요.

사촌 동생이 얼마나 날씬해졌는지 깜짝 놀랐어요. 인간의 의지는 그처럼 놀랍습니다.
우리 건강하게 살되 병을 얻더라도 태평하게 살자고요. 이 장수시대는 다 그렇다, 이런 생각으로요... ㅋ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서니데이 2018-11-06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에 안전안내문자가 왔어요. 내일 수도권에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종일 날씨가 흐리고, 바깥이 비올 것 같았는데, 미세먼지 때문이었나봐요.
사촌동생분이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가셔서 다행입니다.
페크님도 건강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11-07 18:40   좋아요 0 | URL
사촌동생처럼 병이 있어도 씩씩하게 태평하게 사는 모습 보면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나도 병 얻으면 그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어서요. 롤모델을 본 것처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세먼지가 많아 불편했어요. 그토록 흔했던 맑은 공기가 그리웠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즐겁게 사시실...
고맙습니다.






오후즈음 2018-11-06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분이시네요. 어떤 상황속에서 자신을 일으키는 힘을 갖는다는것. 본받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18-11-07 18:4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그래요. 나이는 저보다 아래인 동생이지만 존경스럽죠.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일으키는 힘. 저도 갖고 싶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2018년 10월 31일
제목 : 청소

 

 
예전에 매일 청소하고 살았지. 하루라도 청소를 안 하면 큰일나는 줄 알았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었던 거지. 그래서 뭐가 남았나? 내 몸만 상했던 거지. 그 결과 오늘날 내가 약골이 되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거야.

 

 

요즘은 내가 그때처럼 어리석지 않아서 며칠에 한 번씩 청소를 하지. 주 2회 청소를 할 때가 많고 청소를 미루다 보면 어떤 때는 5일에 한 번 청소를 해. 그러자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어. 방바닥과 거실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나뒹구니까 남편과 작은애가 청소를 하네. 난 먼지가 보여도 머리카락이 보여도 불편한 줄 모르겠는데 그동안 나의 수고로 깨끗한 집에서 살았던 식구들이 더러움을 참지 못하나 봐.

 

 

이제 약골의 몸인 나는 빠지고 식구들이 청소를 해야 한다고 봐. 과거 긴 시간 동안 내가 뼛골 빠지게 청소해서 청결한 집에서 살았던 식구들이 앞으로 수고를 해야 되는 게 맞는다고 봐. 내 마음이 통했는지 자연스럽게 난 청소 당번에서 제외되었어. 나한테 보답할 기회를 식구들에게 주기로 한 거지.

 

 

대충대충 살기로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네. 진작 그럴 걸.

 

 

 

 

 

 


................................................
10월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극히 사적인 일기를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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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0-31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도저히 방안에서 움직이기 불가능하면 청소를 해요ㅜ.ㅜ

페크pek0501 2018-10-31 15:49   좋아요 0 | URL
과장법이 심하십니다요.
저도 과장해서 말하면, 청소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 1초도 아깝습니다. ㅋㅋ

한수철 2018-10-31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보편타당한 귀결입니다. ;)

페크pek0501 2018-10-31 15: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 알 수 있답니다. 뭐가 중요한지 몰랐던 것이죠. 지금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청소 면에서만 조금 똑똑해졌습니다.

한수철 님, 오랜만의 댓글이십니다. 댓글 쓰기에 서로 격조한 것 같습니다.
좋은 가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진심인 것 아시리라 믿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8-10-31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8-10-31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ㅋㅋㅋㅋㅋ
이심전심의 뜻으로 접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18-10-31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꼬마였을 때 저의 엄니는 아침 저녁으로
청소를 하셨죠. 초등학교 갓 들어가서는 막 시키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하루 두 번의 청소는 무리더군요.
맞아요. 사람이 중요하지 청소가 중요하진 않아요.^^

카알벨루치 2018-10-31 15:21   좋아요 2 | URL
애들 생기니깐 청소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는...

페크pek0501 2018-10-31 15:53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하루 두 번은 너무 많아요. 청소하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습니다.
저는 청소하고 나면 지쳐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집니다.
사람이 중요해요. 우리 대충대충 하고 삽니다. ㅋ

페크pek0501 2018-10-31 15:56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 님, 애들이 커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애들한테 자기 방 청소를 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청소 안 해주니까 자기 스스로 청소하더라고요.


겨울호랑이 2018-10-31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그렇군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그래서 집에서 주로 제가 청소를 하는 것 같습니다.ㅋㅋ

카알벨루치 2018-10-31 15:21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 화이팅 ㅋㅋ

페크pek0501 2018-10-31 15:58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 웃기십니다. 하하~~
그렇죠. 저처럼 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편하게 사는 것이죠.
저도 체력이 고갈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만약 몸이 쌩쌩하다면 지금도 열심히 청소기 돌리고 걸레로 닦고 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 생각하면 몸 쌩쌩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병이나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댓글,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8-10-31 15:58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 님, 파이팅!!!!!!!!!!!!!!!!

카알벨루치 2018-10-31 16:00   좋아요 1 | URL
페크님 저희 아내한테 이야기좀 해주세요! 매일 청소하는 여인이랑 살고 있습니다 ㅜㅜ

페크pek0501 2018-10-31 16:02   좋아요 2 | URL
흠흠~~~ 저는 청소하는 배우자와 산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카알벨루치 님이 복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겨울호랑이 2018-10-31 16:09   좋아요 2 | URL
^^:) 사실 제가 청소하는 것이 자기 만족 성격이 강해서 아직은 별 무리 없이 청소하고 있습니다. 일단 정돈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성격이 되어 놓아서요.ㅋ 운동 삼아 즐거울 정도로 설렁설렁 하려고 합니다.ㅋ 카알벨루치님께서도 아내분 설득 화이팅입니다.ㅋㅋ

페크pek0501 2018-10-31 16:12   좋아요 0 | URL
저도 파이팅입니다!!!!!!!!!!!!!!!!!!!!!!!!!

서니데이 2018-10-31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페이퍼의 첫번째 사진을 보면서 방이 정말 깨끗할 것 같았어요.
페크님의 대충대충과 저의 대충대충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페크님, 오늘은 10월 마지막 날이예요. 좋은 한 달 보내셨나요.
내일부터는 더 좋은 일 가득한 11월 되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18-11-03 13:09   좋아요 1 | URL
제가 정리정돈은 잘합니다. 늘어 놓고 사는 걸 싫어해서 보기 싫은 걸 다 서랍 안에 넣습니다. 그래서 집안이 깨끗해 보이지만 서랍 안을 열어보면 엉망입니다. ㅋ

대충대충에도 차이가 있겠군요. 어쨌든 전 엉터리로 살고 있어요. 예전에 비해 훨씬...

서니데이 님의 댓글에는 고운 심성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더욱 기분 좋게 하는 댓글입니다. 매일 소중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