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의 위대함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 이반 일리치가 죽기 직전의 시간에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독자는 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다. 즉 독자는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도 죽음에 직면한 자의 느낌을 알게 된다. 이런 게 소설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2. 긴장감과 궁금증 때문에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소설 :
악인을 죽여서 살인자가 되어 버린 한 남자가 있다. 비록 살인범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의 편에서 진실이 밝혀질까 봐 독자는 마음을 졸이며 소설을 읽게 된다. 나중엔 범인으로 밝혀질 걸 알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은 지금 밝혀지는 건 아니겠지, 하며 조마조마해진다. 팽팽한 긴장감과 궁금증 때문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꽤 두꺼운 이 소설을 오래전 금방 읽었던 걸 기억한다. 그만큼 독자를 끄는 흡인력이 있다.

 

 

 

 

 

 

 

 

 

 

 

 

 

 

 

 

 

 

 

 

 

 

 

 

 

 

 

 

 

 

다른 이유로 긴장감과 궁금증을 느끼며 읽었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표제작인 ‘대성당’도 특별했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여 의식이 없는 아이가 회복될 것인지 죽을 것인지 궁금하여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음이 따뜻한 작가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소설 같아서,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게 만든 소설이라서 감탄, 감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을 흥미롭게 읽었다. 어떤 소설은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몰라서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이 점이 좋았다.

 

 

 

 

 


3. 내가 쓰고 싶은 글 :
내가 가장 읽고 싶은 글은 문학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글이 아니다. 정보와 지식이 돋보이는 글도 아니다. 대단한 주제를 다루는 글도 아니다. 깊은 사유로 깨달음을 주는 글을 읽고 싶은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4. 자신의 허물은 덮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본다 :
내가 어느 서재에서 다음과 같이 댓글을 쓴 적이 있다.

 

 

“저는 비교적 바른 어린이로 컸어요. 맘에 걸리는 건 내 이득을 위해 비굴할 때가 몇 번인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지우개로 지우고 싶죠. 때로는 재수 없는 아이였어요.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재수 없어 하는 아이, 였어요. 저도 여기까지 성장 소설을 써 봤습니다. 작위적인지 아닌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걸로... 역시 굿~ 밤~ ㅋㅋ”

 

 

과거 속의 나를 잘 살펴보면 남이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는 걸 느끼게 되면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누군가에 대해 관대해진다. 문제는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점이다. 그래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둔 채 남의 허물만 크게 보게 된다. 

 

 

 

 

 

 


5. 어렵게 쓰는 필자, 쉽게 읽는 독자 :
칼럼 한 편을 완성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지친다. 잘 썼든 못 썼든 나로선 최선을 다했으므로 피로를 느낀다. 그런데 내 칼럼을 읽는 독자는 대충 읽을 것이다. 필자가 문단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등을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난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한 번 읽어 보라고 내가 최선을 다한 글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미워한다.(63쪽)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나는 니체처럼 게으름뱅이 독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내 글을 독자가 대충 읽어도 감지덕지할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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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3-03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글은 쓸 때보다 읽을 때 조금 더 빠르게 읽게 되니까요.
손보다 눈이 빠를거예요. 그리고 가끔은, 손보다 눈이 더 게으릅니다.
(뒤의 내용은 저희 외할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라고 해요.)
쓰는 사람만큼 잘 알지는 못해도,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즐겁게 읽을 수는 있어요.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음, 저는 읽는 사람이니까요.
잘읽었습니다.
페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3-04 19:10   좋아요 2 | URL
저도 남들의 글을 읽는 독자가 될 때가 많지요. 그런데 저 역시 꼼꼼하게 읽기보다 빠르게 읽으려고 합니다. 독자와 필자는 다를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래서 니체는 독자를 게으름뱅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어떻게 지내시나요? 마스크를 써도 미세먼지를 먹고 살고 있는 것 같고 집 실내 공기도 좋지 않은 걸 느낍니다. 언제 끝날까요? 이럴 때 비가 내려 주면 참 고마울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기분으로 보내야 하겠지요... 저녁 먹고 책 읽으며 미세먼지를 잊어볼까 합니다.
굿 데이~~.


cyrus 2019-03-04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데, 의도하지 않게 남들을 가르치려는 듯한 글을 쓰게 돼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03-04 19: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요령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화살을 남에게 쏘지 말고 자신에게 쏘며 글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저녁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1.
...............
커다란 친절은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복수심을 일으키며, 작은 선행은 잊혀지지 않는 경우에 좀벌레가 생겨난다.(153쪽)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나의 코멘트 : 커다란 친절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초라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 친절을 베풀더라도 상대방이 잊게 될 정도로만 해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부작용(좀벌레)이 있다는 것.

 

 

 

 

 


2.
...............
이 세상에 존재한 이후로 인간은 너무도 즐길 줄을 몰랐다. 형제들이여, 이것만이 우리의 원죄다!
우리가 더 잘 즐길 수만 있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거나 고통을 꾸며내려는 생각도 가장 잘 버릴 수가 있는 법이다.(152쪽)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나의 코멘트 :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갑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이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모두가 삶을 즐길 수 있기를.

 

 

 

 

 


3.
...............
참으로 나는 동정을 베풀면서 행복을 느끼는 자비로운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수치심이 없다.
내가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는 동정심 많은 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내가 동정을 해야 할 때라도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서 동정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보기 전에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고 싶다.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 벗들이여!(152쪽)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나의 코멘트 : 동정이 가는 사람을 보면 괴로워해야 하리라. 동정을 베풀면서 뿌듯함을 느낀다면 그건 자신을 위한 일을 했을 뿐이다. 동정을 베푼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남들이 모르게 동정을 베푸는 게 좋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자선기금을 내놓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4.
...............
그리고 벗이 그대에게 악행을 저질렀을 때는 이렇게 말하라. “나는 그대가 내게 한 행동을 용서한다. 하지만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악행을 했다는 것. 이것을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154쪽)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나의 코멘트 : 벗이 내게 악행을 저지른 것은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벗이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자신을 악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벗이 악인이 된 것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5.
니체를 읽고.
...............
밤은 단지 밤인 게 아니다. 오늘과 다른 날을 향해 가는 밤이다. 내일은 좋은 날이 될 것이라고 희망을 품게 하는 밤이다.

 

불행은 단지 불행인 게 아니다. 오늘의 불행과는 다른 것으로 이동하게 하는 불행이다. 어쩌면 불행은 행복을 향해 가는 통로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불행을 겪고 나면 평범한 삶에도 감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훗날 불행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 경이로움은 지나간 시간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 <페크의 노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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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27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를 페로에 대한 이야길 적었는데 웬지 제 페이퍼 주제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ㅎ

페크pek0501 2019-02-28 13:51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니체의 차라투스~를 읽으면 꼭 시집을 읽는 것 같습니다. 비유가 많기도 하거니와, 이건 대체 무슨 뜻으로 쓴 거지? 하고 시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참 보게 만들거든요. 쓰윽 읽고 마는 독서를 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집과 닮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제목 : 타인을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너가 오해했구나,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이런 말을 건넨 경험이 누구나 있음직하다. 한쪽은 상대방의 말을 잘못 받아들여 기분이 좋지 않고 다른 한쪽은 오해가 생긴 것에 사과를 한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안 된 경우다.

 

 

사십 대인 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가면서 내 슬픔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큰 슬픔에 잠겨 있을 고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였다. 혹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큰 충격으로 병이 나신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고인의 어머니가 문상객들을 환한 웃음으로 대하는 걸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상상 밖의 일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죽은 지인이라 안타까움이 더 컸기에 나의 상상으로는 자식의 죽음 앞에 어머니가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삶의 의욕을 잃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나중에 남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어머니는 죽은 딸이 천당에 간 것으로 여긴다는 거였다. 난 그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는 비상식적이고 솔직한 인물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뫼르소다.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식당에서 태연히 점심을 먹는다. 또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서 살인 동기에 대하여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뫼르소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마침내 뫼르소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검사의 말뜻을 헤아리면 이러하다.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는 해수욕을 해서는 안 되고, 이성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희극 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려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며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살인을 한 뫼르소에게 무기 징역이 아니라 사형이 선고되는 게 마땅하다.’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가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며 생활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임에도 한 가지 잣대로 누군가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또는 도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우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기분을 알 수 없으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기분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잠자리가 되어 보아야 하고 개미가 되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을 알려면 타인과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볼 수 있겠는가.

 

 

일례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서다. 눈사람을 재밌게 만들었던 누구에게는 눈이 즐거운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눈사태로 가족을 잃었던 누구에게는 눈이 끔찍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같은 ‘눈’이지만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타인에게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해 우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만 그래도 납득하기 어려울 땐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섣불리 단정하여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뫼르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가 있을 때 그에 대해 속단하지 말고 차라리 ‘뫼르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원문은 여기로 ⇨ http://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1839

 

 

 

 

 

(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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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4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2-24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어머님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어머니 참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이건 정말 존경의 뜻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또 문상 온 사람들 때문에 더 그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문득 먼저 세상을 떠난 자제분이
생각 나시겠지요. 괜히 제가 다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그래도 하나님 믿는 신앙을 가지고 계시니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정말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저 사람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거 인정하는대도
막상 이해관계에 얽히면 또 다를 수 있거든요.ㅠ

페크pek0501 2019-02-26 22:53   좋아요 0 | URL
신앙의 도움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게 종교의 좋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뫼르소도 어쩌면 죽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이는 죽음을 삶의 고통이 끝나는 시간으로 여길 수 있어요. 죽음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그 어머니 이야기를 넣어 봤습니다. 실화입니다.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어떤 일에 부딪히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9-02-24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을 이해하려다가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싶으면 직접 만나면서 대화를 나눠봐야 해요. ^^

페크pek0501 2019-02-26 22:57   좋아요 0 | URL
종종 오해를 하기도 하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죠.

우리도 어떤 땐 자신을 이해 받지 못해서 뫼르소와 같은 처지에 있게 되기도 할 것 같아요. ‘나를 왜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라고 느껴질 때요.
댓글, 감사합니다.
 

 


1. 만족도 :
대작가라면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대작가답게 높은 이상을 가졌을 것이고 자기가 쓴 작품이 그 높은 이상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 만큼 명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옛 시대의 훌륭한 저작과 자신의 작품을 비교하며 절망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

 

 

 

 

 

 

2. 운발 :
흔히 사람들이 ‘운빨’로 발음하는데 정확한 표기는 ‘운발’이다. 부자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부자가 되는 건 능력도 중요한 변수이지만 더 중요한 건 ‘운’이라고 한다. 똑같이 똑똑하고 똑같이 노력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왜 누구는 흥하고 누구는 망하는가. ‘운’의 차이라고 한다. 또한 똑같이 노력해서 글을 썼는데 왜 누구는 세상에 알려지고 누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가. 이것 역시 ‘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글을 투고했을 때 글 심사위원이나 편집자가 자신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운발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학창 시절에 운이 좋았거나 나빴던 경험이 있지 않나. 난 공부 요령을 잘 몰랐던 중학교 시절에 경험했다. 한 주 동안 중간고사를 치르는 때였을 것이다. 과학 시험을 치는데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노트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반대로 노트 위주로 공부하면 교과서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이게 운이 나빠서인 것이다. 시험 범위 중 앞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 그 앞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되면 운이 좋아서인 것이다. 그런 내게 어머니가 어느 날 말했다. 전부 공부하면 되지 않으냐고. 물론 나도 교과서와 노트를 전부 공부하고 시험 범위 앞부분과 뒷부분을 전부 공부하면 운을 탓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하루에 세 과목씩 시험을 치는데 두 과목을 공부하고 나면 잠잘 시간쯤에 과학 과목이 남아서였다. 잠을 잘 시간에 과학 과목을 공부할 게 남았으니 두세 시간밖에 공부할 수 없다. 잠은 자야 하니까. 그럴 땐 노트 위주와 교과서 위주 중 하나를 선택해 공부해야 하고, 시험 범위의 앞부분과 뒷부분 중 하나를 선택해 공부할 수밖에 없으니 ‘운’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3. 품격 있는 글 :  
내가 쓴 서평이나 칼럼은 깊이 있고 품격 있는 글이 되지 못한다. 노력 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 라는 사람 자체가 깊음이 없는데 어떻게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나, 라는 사람 자체가 품격이 없는데 어떻게 글에 품격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생긴 대로 글을 쓰겠노라.

 

 

내가 문학적 향기를 풍기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수필에서 칼럼으로 방향을 틀면서 해결되었다. 수필과 달라서 칼럼은 굳이 문학적 향기를 풍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문학적인 문장을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쓸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4. 요즘 사람들이 식당에서 화를 내지 않는 이유 :
요즘 사람들이 참을성이 많아졌다고 한다. 진짜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뒤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음식이 늦게 나와도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 이유를 알고 나서 참을성이 많아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그 스마트폰 때문에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서 화를 내지 않았던 것. 

 

 

친구를 만나도, 연인을 만나도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들. 좋은 현상일까?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게 좋은 건 아닐 터.

 

 

 

 

 

 

 

5. 부자가 되어서 근심이 많다면 :
<사랑에 관하여>라는 단편집에 ‘검은 수사’라는 소설이 있다. 큰 정원을 가꾸며 사는 (나이 든 남자인) 예고르 세묘니치는 집에 놀러온 (젊은 남자인) 코브린에게 큰 규모의 정원이 나무 하나라도 시들지 않고 항상 아름답게 유지되는 비결은 정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나면 이 큰 정원을 위해서 누가 일을 할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
(...) 난 이렇게 묻고 싶어. 내가 죽으면 이 정원은 어떻게 될까?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런 모습은 나 없이는 단 한 달도 유지되지 못할 걸세. 이 정원이 성공을 거둔 까닭은 엄청나게 크고 일꾼이 많아서가 아니라네. 성공의 진짜 비밀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데 있단 말일세. 알겠나? 내가 이 일을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점 말일세. 날 좀 보게. 난 모든 걸 스스로 한다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지. 접붙이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고, 묘목도 심고, 모든 걸 나 스스로 하네. (...) 그리고 어딘가를 방문해서 한 시간이라도 집을 비울 때면 혹시 정원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불안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 마음에 있다는 거지. 내가 죽으면 누가 그걸 다 돌볼까? 누가 일을 할까? (...)“(‘검은 수사’, 91~92쪽.)

 

-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에서.
...............

 

 

이 단편 소설의 주제는 다른 데에 있다. 하지만 난 주제와 관련없는 것에 주목하였다. 큰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외출을 하면 정원에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불안해하고,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누가 이 정원을 맡아 일을 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걱정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가진 게 많은 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생각하였다. 

 

 

 

 

 

 

 

 

 

 

 

 

 

 

 

 

 

 

 

 

 

 

 

6. 인간은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다 :
<서머셋 몸 작품집>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독자가 예상 못할 반전의 묘미가 있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깔깔 웃게 만드는 대목도 있다. 역시 서머싯 몸은 내 취향과 꼭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나는 그의 영원한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의문이 하나 생긴다. 소설에 반전을 넣어 구성한 것이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닌 듯하다. 인생 자체가 그리고 인간 자체가 놀라운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인간이라고 본다. 그것을 서머싯 몸은 알고 있기에 반전을 넣은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불가해한 존재라는 걸 말해 주기 위해 이런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단편 소설 ‘척척박사’는 잘난 척 잘해서 밉상으로 보이는, ‘척척박사’라고 불리우는 켈라다 씨의 이야기다. 그는 백 달러를 걸고 하는 내기에서 자신이 이겨서 돈을 받을 수 있는데도 남의 부인이 곤란에 빠질까 봐 자신이 진 것으로 하고 돈을 낸다. 남의 입장을 생각해서 백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감수하는 것이다. 그에게 그런 이면이 있을 줄 몰랐던 독자는 그 반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
켈라다 씨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말을 꿀꺽 삼켜 버렸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기를 억제하려는 모습이 거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척척박사’, 23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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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편지’는 남편이 자기 아내가 권총으로 한 남자를 죽였지만 그건 실수라고 여기며 정숙한 아내라고 끝까지 신뢰하였다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는 반전이 숨어 있다. 죽은 그 남자는 자기 아내의 애인이었던 것. 자기 아내가 변심한 애인인 ‘하몬드’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그를 죽인 것이다.

 

 

............... 
”(...) 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왈칵 분노가 치밀어 권총을 집어 들고 쏘았어요. 하몬드가 뭐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맞았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인 비틀비틀 베란다로 도망했습니다만 저는 쫓아가서 또 한 방을 쏘았어요. 그가 거꾸러졌어요. 저는 그이 바로 위에서 한 발 또 한 발 연거푸 쏘아대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에 권총이 딸각딸각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탄환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편지’, 95~96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 

 

 

모두가 정숙한 여인으로 알고 있는 한 여자가 자신이 썼던 편지가 살인의 증거물로 밝혀지자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이중성을 작가는 꿰뚫고 있는 듯하다.

 

 

 

 

 

 

 

 

 

 

 

 

 

 

 

 

 

 

 

 

 

 

 

 

7.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임종할 때를 생각해 보기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전에 읽었다. 사실 읽지 않은 줄 알았는데 읽은 게 확실했다. 내 ‘독서 목록 노트’에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돼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이번에 오디오북을 구매해 폰으로 들었다. 죽음에 임박한 한 남자의 독백이 처절한 절규로 들리면서 나도 언젠가는 맞게 될 그 시간이 두렵게 느껴졌다.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설이다. 갖고 있는 책을 찾아보니 내가 그은 밑줄이 많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왜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지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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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건 무엇을 뜻하지? 왜?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일 리가 없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끔찍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나는 왜 죽어야 하지? 게다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지? 뭔가가 잘못됐어!“(‘이반 일리치의 죽음’, 270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

 

 

이반 일리치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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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말대로, 이반 일리치의 육체적 고통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이것이 그의 주된 고통이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75쪽.)

 

”내 인생 전체가 정말로 잘못되었다면 어떡하지?“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과 가족에 대한 모든 약속도, 사교적 관계는 물론 직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75~276쪽.)

 

그는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또한 그걸 돌이킬 수도 없다는 자각을 가진 채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지?“(‘이반 일리치의 죽음’, 276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

 

 

마침내 그는 죽는다.

 

 

...............
”끝났습니다!“ 곁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들었고, 영혼 속에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죽음도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은 더 이상 없는 거야.“
그는 숨을 들이키다가, 깊은 호흡 중에 갑자기 멈추고, 몸을 쭉 뻗었다. 그리고 죽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80~281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아무리 신분이 높다고 해도, 아무리 오만하다고 해도 죽을 때엔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고독이 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죽음과 투쟁을 벌이면서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절박한 순간이 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다가 모든 고통이 끝나는 지점에 ‘죽음’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치러야 할 ‘죽음’이 우리 미래에 분명히 있다. 누구나 직면하게 될 ‘죽음’이.

 

 

그러니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하고 가엾은 존재인가.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임종할 때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8. 자신에 대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나니 칼럼 하나가 생각난다. ‘2월의 졸업생들에게’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자기 삶에 대한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 찾아온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 용기와 도전을 가지고 살라는 것. 그 내용을 옮겨 본다.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 그런데 부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으로만 점철된 이야기라고 꼭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담도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남아 있는 그 큰 도전의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제 막 그 큰 이야기의 첫 장을 탈고한 여러분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2018. 2. 11)(‘2월의 졸업생들에게’, 115~116쪽)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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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스토리텔링을 하라 :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긴 틀렸군, 하고 생각하며 이메일을 보기 위해 내 이메일함에 들어갔다. 마침 친구가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그것을 반갑게 읽고 답장을 썼다. 나의 근황을 전하고 요즘 생각한 것들에 대해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답장을 쓰고 나니 글이 꽤 길었다. 쓰려고 해도 써지지 않던 글이 친구에게 말하듯 쓰는 이메일은 길게 써지는 게 아닌가. 그때 깨달았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을.

 

 

뒤로 글감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이메일함에 들어가서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이메일을 살펴보곤 한다.

 

 

...............
평소 무심코 읽던 신문 칼럼을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시라. 의외로 많은 필자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거나 남에게서 들은 에피소드를 많이 활용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글의 생생한 실감을 살리는 건 물론 재미있게 만드는 데엔 그런 이야기만큼 좋은 게 없다.(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

 

 

나도 칼럼을 쓸 때 내가 겪은 일을 넣어 쓸 때가 많다. 그러면 글이 술술 풀린다. 내 경험을 쓰는 거니까. 내가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것, 즉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넣는 경우도 많다. 재밌는 이야기이면서 그 속에 교훈이 담겨 있다면 최상이다.  
 


...............
스토리의 힘을 말해주는 최고의 증거는 여러 심리학자가 이른바 ‘스토리 편향story bias’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스토리 편향은 이야기가 진실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복잡한 설명과 단순한 설명 중에서 단순한 설명이 더 참일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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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 ‘폭스뉴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스토리 만들기’였다고 한다. 글쓰기를 너무 근엄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는 게 좋다고 이 책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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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장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글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겠다는 자세를 가져보라.(124~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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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특수성과 보편성을 갖는 글 :
대식가는 음식의 ‘질’보다 ‘양’에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난 음식의 질보다 양이 중요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이 먹을 수 있는 똑같은 조건이라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리라. 대식가라고 할지라도 음식의 양도 중요하지만 음식의 질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맛있음’이 곧 음식의 ‘질’을 의미하겠다.

 

 

그렇다면 글에 있어서 ‘질’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질 높은 글이 좋은 글이고 질 낮은 글이 좋지 않은 글이다. 내가 칼럼을 쓸 때 새로운 관점으로 쓸 것을 지향하는데, 이것은 당연한 걸 쓰지 않기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써서 특수성을 가진 글이 될 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특수성만을 가지면 안 된다. 글에는 보편성도 있어야 한다. 남들이 공감할 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성과 보편성, 이 두 가지를 담은 글이라면 빼어난 글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담은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 이것이 글을 쓸 때 나의 고민거리다.

 

 

새로운 관점으로 쓴 글을 보고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걸 당신이 글로 썼네.“라고 하면 그 글은 특수성(개성)을 가진 글이 된다. ”그런데 읽고 보니 당신의 글에 공감이 가네.“라고 하면 보편성을 가진 글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질 높은 글이다. 

 

 

 

 

 

 

 

 

 

 

 

 

 

 

 


.....................................
그저께 눈이 왔다.


지금은 대부분 눈이 녹았지만 아직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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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17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잡담인 페이퍼라서 그런지, 친구에게 편지쓰는 느낌이나 일기 쓰는 느낌으로 쓸 때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잘 써야한다는 생각이 조금 덜 들어서 조금은 편안한 느낌이 되는 것 같아요.
페크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잘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9-02-18 10:54   좋아요 2 | URL
반가운 서니데이 님!
친구에게 쓰는 편지 같은 글이 좋은 것 같아요.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수필이 그렇다는군요. 친구에게서 온 편지 같은 글처럼 친근감 있게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거죠.
아마 님의 글도 그래서 친근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에요.
간이역 같은 2월이 벌써 반 이상 지났네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9-02-18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부터 느꼈던 건데, 저는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신경 쓰지 않고,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쓰려고 해요. ^^

페크pek0501 2019-02-18 22:17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생각입니다.
발전을 지향하기보다 즐거움을 지향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폴더 하나가 맘대로글, 입니다. 그야말로 맘대로 써 보자, 는 뜻에서요.
항상 제가 저에게 하는 주문이 있죠. 어깨에 힘을 좀 빼. ㅋㅋㅋ
굿밤 되세요.



stella.K 2019-02-18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잘 쓰면 소원이 없겠어요.
글 잘 써서 까까 사 먹어야 하는데...ㅠ

페크pek0501 2019-02-18 22:20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이 까까 사 먹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하긴 저도 아직까지 떡볶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딸과 함께 분식점을 다닐 때도 있어요. ㅋ

그런데 책까지 내신 분이 책도 안 내 본 저에게 하실 말씀은 아닌 걸로 아옵니다.
굿밤 되시길... 늘 고맙습니다.
 

 


1.
작년 5월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보다가 칼럼 모집에 관한 글이 내 눈에 띄었다. 다른 장르였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터였는데 내가 관심을 갖는 칼럼이었기에 그곳에 전화를 했다. 블로그에 실렸던 글을 투고해도 괜찮으냐고 문의하였다. 그랬더니 된다고 한다. 게다가 서평이든 칼럼이든 다 투고해도 된다고 한다. 어머나! 그렇다면 투고할 글이 많이 있지, 하는 생각에 약간 흥분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 중 몇 편 골라 투고하면 되니까. 그날 바로 이메일로 내 글 몇 편을 보냈다. 그리고 내 글이 2주일 안에 실리게 될 거라는 이메일 답장을 받았다.

 

 

2018년 5월 29일에 내가 쓴 서평이 처음 그곳에 게재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행운이었다. 그 뒤 서평과 칼럼이 게재되어 총 여섯 편의 글이 게재되었다. 내가 쓴 6편의 글이 게재되는 것도 기뻤는데 내 글이 실린 책을 보내 주기도 하였다. 내 글이 있는 페이지를 펼치니 내 이름 뒤에 ‘한국예총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이 달렸다. 이 직함은 내게 무척 소중하였다.

 

 

 

 

 

 

2.
행운은 이어졌다. 한국예총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칼럼니스트’로 상을 받게 되었다. 각 부문별 한 명씩 수상자를 선정하여 총 다섯 명이 수상하게 되어 있는데 '서평' 부문 수상자로 내가 뽑힌 것이다. 2019년 1월 26일 시상식에 참석해서 상장을 받아 왔다.

 

 

 

 

내가 상장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3.
행운은 또 이어졌다.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는 ‘메이벅스’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는데, 글을 올리면 현금화가 가능한 ‘메이벅스 토큰’을 준다. 댓글을 쓰거나 받기만 해도 그것을 준다. 알라딘으로 말하면 적립금을 주는 것이다. 지난 11월부터 ‘메이벅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올린 글이 ‘파이낸스투데이’라는 인터넷 신문에도 게재되었다. 메이벅스에 올린 글들 중에서 (어떤 선정 기준에 따라) 뽑은 글은 ‘파이낸스투데이’에 게재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하여 ‘메이벅스’와 ‘파이낸스투데이’ 두 군데에 내 글이 올려져 이중으로 적립금을 받게 되었다. 모아진 적립금으로 컵라면 한 박스와 천혜향 한 박스를 구입했다.

 

 

 

 

 

 

 

 

 

 

 

 

 

 

 

4.
이게 다 기막히게 좋은 꿈이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강물에서 혼자 헤엄을 치는 꿈을 꾼 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강물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을 치는 꿈이었고 꿈속에서 무척 행복하였다. 물이 시원해서 기분 좋았고 헤엄치기가 잘 되고 재밌어서 기분 좋았다. 그렇게 행복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

제 인생에서 행운이 연속으로 따르는 게 처음 있는 일입니다.
늘 근심을 달고 산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저를
하늘이 위로해 주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행운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용기를 내어) 올립니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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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5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2-15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립니다.
맑은 강물, 혼자 헤엄. 듣기만 해도 좋은 예감이 드는 꿈이네요.
꾸준히 해오던 일에 이렇게 보상이 주어지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지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쓰세요~

페크pek0501 2019-02-15 13: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상장을 받은 그날 바로 상장과 함께 소식을 올렸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올릴까 말까로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네요. 아니, 안 올릴 생각이 많았네요. 그러다가... 오늘 ㅋ
이렇게 축하해 주시니 소식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쑥스럽긴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는 자가 좀 뻔뻔해져야 될 것 같아서 오늘 일부러 용기를 내 봤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믿고 가 보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님도 함께 동참하시길...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니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stella.K 2019-02-15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렇게 된 거군요.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언니한테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잘 됐습니다. 축하해요.
올해도 쭈~욱 황금복덩이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9-02-15 21:18   좋아요 0 | URL
제 운빨(운발)이 아직 남아 있다면 스텔라 님에게도 뻗어나가길 빌겠습니다.

프레이야 2019-02-15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크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꿈 좋은 일 주욱 이어가시길요~

페크pek0501 2019-02-15 21:19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님에게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2019년이 되길 바랍니다.

태인 2019-02-15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정말 대단하셔요!

페크pek0501 2019-02-15 22:39   좋아요 0 | URL
아, 대단한 것은 아니랍니다. 꿈이 좋았어요. 꿈이 좋으면 아무도 막지 못하나 봐요.글 심사 위원이 제 글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게 운빨(운발)이겠지요.ㅋ
축하 댓글, 감사합니다. 굿밤 되세요.

서니데이 2019-02-15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수상축하드립니다. 좋은 소식 전해주셔서 참 기쁩니다.
행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일들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더 많은 기회를 통해서 페크님이 쓰신 칼럼이 좋은 느낌으로 더 많이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2-16 22:35   좋아요 1 | URL
기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의 경우가 글 쓰는 분들에게 희망적으로 읽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무슨 큰 문학상처럼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ㅋ)

서니데이 님, 토욜밤, 굿밤 되세요.

psyche 2019-02-16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이건 행운이라기보다 실력이 있으셨던 거죠. 거기에 운이 조금 양념을 친 정도. 앞으로도 쭉 좋은 일이 이러나가길 기원합니다.

페크pek0501 2019-02-16 22:37   좋아요 0 | URL
저도 실력에 조금 양념을 친 거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운발이 셌던 것 같습니다. 제 글을 뽑아 준 심사위원을 만난 게 운발 아니겠습니까?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사할 뿐이죠.
축하 댓글, 감사합니다.

사과나비🍎 2019-02-16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9-02-16 22:38   좋아요 1 | URL
황송합니다. 빨리 새 글 올려서 저 글을 가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써 놓은 글이 없다는... ㅋ
댓글, 감사합니다.

사과나비🍎 2019-02-18 23:01   좋아요 1 | URL
^^* 겸손하신 페크님~^^* 그나저나 페크님 사진으로 살짝 보이시지만, 아름다운 분이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9-02-19 13:01   좋아요 1 | URL
하하~~ 아름다운 분 아니고 아름다운 분이고 싶은 사람입니다. 다음에 태어날 땐 예쁘게 생긴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오늘 눈이 많이 왔어요. 겨울을 만끽하시길요...
댓글, 감사합니다.

사과나비🍎 2019-02-25 21:58   좋아요 1 | URL
제가 답글을 안 달았었네요~^^;
아름다운 분이 확실하리라 굳게 믿겠습니다~^^*
페크님도 언제나 즐독하시고요~
행복이 가득하시기 바랄게요~^^*

페크pek0501 2019-02-26 23:36   좋아요 1 | URL
예, 예, 예... ㅋ

하늘바람 2019-02-16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정말 읽을수록 멋지다는 감탄이 절로 납니다

페크pek0501 2019-02-16 22:3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좋아하는 낱말 ‘감탄‘... 듣기만 해도... 황송합니다.
꿈 덕을 아주 크게 보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19-02-16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올 해도 더 좋은 글로 많은 상을 받으시길 응원합니다!ㅎ

페크pek0501 2019-02-16 22:41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은 상을 받고 싶지만 해가 바뀌어 2019년이 되었으니 운수도 바뀌겠죠. 이제부터 마음을 비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인사, 꾸우벅~~)

강나루 2019-02-17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글을 쓰세요
올해도 행복이 찾아올거에요

페크pek0501 2019-02-17 20:37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되니까
올해는 그냥 건강한 한 해를 보내는 걸로 욕심 조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나루 님도 행복한 한 해가 꼭 되십시오.

cyrus 2019-02-18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2번 소식은 운이 아니라 그동안 오랫동안 이어진 페크님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입니다. 행운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겸손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페크pek0501 2019-02-18 22:07   좋아요 0 | URL
ㅋㅋ 황송하군요. 그런데 정말 운이었어요. 칼럼 모집이 제 눈에 띈 것부터가 운이지요. 제 글을 알아 봐 주는 편집자를 만난 것도 운이지요.ㅋ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