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157~158쪽)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157~158쪽)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158쪽) 만약 의무가 아닌 다른 동기로, 이를테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가치가 부족한 행동이다. 비단 내 이익만이 아니라 내 바람, 욕구, 기호, 식욕을 채우려는 모든 시도도 마찬가지다. 칸트는 자신이 ‘끌림 동기’라 부른 것을 의무 동기와 대조해 비교한다. 그러면서 의무 동기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162쪽) 중요한 점은 선행의 동기가 그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야지, 쾌락을 주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63쪽) 아이가 진실을 말한 유일한 이유가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서였거나 실수가 발각되었을 때 부정적 여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면, 그 행동에는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했다면, 아이의 행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이나 만족과는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이 된다. 옳은 이유로 옳은 행동을 했다면, 그때 기분이 좋았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칸트가 말한 이타주의자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돕는 이유가 단지 그 행위에서 느끼는 쾌락 때문이라면, 그 행동엔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 그러나 타인을 도울 의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면, 거기서 쾌락을 느낀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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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2021-02-03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알라딘 들리면 고향처럼 찾는 이 곳 변함없이 정겹습니다.

요즘은 칸트나 공자, 심지어 샌델교수의 정의론도 무색함을 느끼는 건 서글픈 일일까요?
차라리 수많은 인간사를 정리하며 깊이 빠져들었던 사마천의 <회의론>에 동감이 되네요.

차츰 세계가 글로벌리즘으로 경도되는 현상은 결코 이상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몇몇 힘있는
자들의 세계단일화라는 야욕을 이루려는 계획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동기는
선악을 뛰어넘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인륜 파괴적인게 아닐까요?

제가 본류에서 앞서 나갔다면 실례를 용서해 주시길. 꾸우벅.

페크pek0501 2021-02-03 09:06   좋아요 1 | URL
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표면상으로만 정의를 외칠 뿐 실상은 정의롭지 못하지요.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요. 힘 있는 자가 이기심을 맘껏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지요. 자기 자녀를 위한 교수들의 비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힘 있는 자인가, 어느 나라가 힘 있는 나라인가, 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공정함이란 없죠. 그래서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책을 낸 것 같아요.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위의 글은 163쪽의 글이 흥미로워서 옮겨 봤습니다. 의도가 옳아야만 하는 것인지, 의도는 옳지 않았지만 결과만 좋으면 된 것인지 우리의 판단을 요하는 것 같아서요. 저는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이 신문 기사에 나는 게 좋아서 기부했다면 그것도 좋은 일로 봅니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그건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거죠.

댓글, 감사합니다.
 

 

 

 

 

 

 

 

 

 

 

 

 

 

 

 

 

 


『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5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쓸 수 있다.
자신의 애정이나 미움에 따라 상대의 본모습이 바뀐다. 인간의 이성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니 쓸모가 없다.(인간의 이성적 판단조차 믿을 게 못 된다는 뜻.)

 

 

→ 이를 내가 해석해 보았다.
인간은 자기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자를 무조건 좋게 보고, 자기가 미워하는 상대자는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애정이나 미움은 대상의 본모습을 바꿔놓기 쉽다. 자신과 사이가 좋은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안 좋아한다니까.’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의 본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보든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작용할 뿐이다.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리라.

 

 

 

 


 

(58쪽) 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

(61~62쪽) 우리 자신의 이익도 우리를 기분 좋게 눈멀게 하는 신기한 도구이다. 아무리 공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소송에 재판관이 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자애심에 빠지지 않으려고 반대로 그지없이 불공정했던 사람들을 나는 안다. 지극히 정당한 사건에 패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사건을 부탁하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 어쩌다 닿기라도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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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3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2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서 말씀하신 파스칼의 <팡세>을 읽으면서 파스칼이 생각하는 이성과 감성이 각각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인용된 글을 보면, 이들 둘이 혼용된 것 같은데, 파스칼에게 이들의 구분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중략)된 부분에 이를 설명할 내용이 담겨있는지 나중에 찾아봐야 겠습니다.^^:) 저도 <팡세>를 예전에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새로운 구절이 넘쳐나니... ㅜㅜ 참 끝이 없습니다...

페크pek0501 2021-02-03 08:33   좋아요 2 | URL
이성과 감성을 상대적 의미로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아마도 파스칼은 인간의 특성은 (동물과 다르게)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성에는 감성에 비해 객관성이 있는 걸로 인간들은 착각하는데 이성조차 엉터리다, 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문제 제기였습니다.ㅋ 독서는 그렇게 꼼꼼히 해야 하는 거죠. 이것과 관련하여 겨울호랑이 님이 새로 알게 된 게 있으시면 나중에라도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3 08:55   좋아요 2 | URL
집에 돌아와 해당 부분을 읽어보니, ‘상상력‘에 대한 팡세의 이야기 중 일부네요. 팡세는 상상력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고, 인간은 이 두 능력을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니, 큰 틀에서 페크님 말씀대로 전개되네요...

˝인간이 이 두 능력(상상력, 이성)을 결합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설사 이 화해에서 훨씬 더 유리한 것은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왜냐하면 둘이 싸우면 상상력이 전적으로 이성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이 상상력을 완전히 정복한 일은 결단코 없다, 차라리 반대의 경우가 일쑤이다.˝(p59)

정리하면, 파스칼은 인간은 두 능력을 결합하여 사용하지만, 구분해 보자면 상상력이 이성보다 인간에게 더 지배력을 행사하며,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효과(애정, 미움) 등에서 보듯 상상력이 인간을 주관한다. 그렇지만, 상상력은 또한 오류와 허위의 주관자(p56), 이보다 약한 이성은 얼마나 나약한 것일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페크님 덕분에 오랫만에 <팡세>를 다시 읽었습니다. 고전은 두고두고 뒤새겨야함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1-02-03 09:17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부분을 읽었습니다.
올린 글은 이성에 대한 글만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이성이란 게 그렇게 나약하고 엉터리라는 게 인상적이어서요.
상상력의 힘도 흥미롭지요. 법관의 옷, 의사의 흰 가운을 보기만 해도 상상력이 발동하여 그 앞에서 주눅 들어 있어 그에 대한 유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재밌어요.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앞으로도 의견을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의 뜰 - 포토 에세이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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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에세이에 칼럼과 수필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어떤 글은 칼럼으로 읽히고 어떤 글은 수필로 읽히는데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나에게 대부분 수필로 읽혔다.

 

 

칼럼과 수필을 구분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본다.

 

 

『어떤 대상이나 현안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249쪽) 이는 수필로 읽힌다. 잊지 않겠다, 라고 다짐하고 있다.

 

 

(어떤 대상이나 현안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쓰면 칼럼으로 읽힌다. 이는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수필과 칼럼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사실 칼럼과 수필을 구분하기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마치 길게 쓴 시를 산문시라고 해서 ‘시’로 볼 수도 있고 ‘산문’으로 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세이를 쓸 때 칼럼과 수필을 꼭 구분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칼럼으로 써야 적합한 글이 있고 수필로 써야 적합한 글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저자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작가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만큼 그의 글은 문학적이고 사색적일 뿐 아니라 운동으로 키운 근육처럼 탄탄하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문장력이 아닌 것이다.

 

 

<엄마의 뜰>은 신변잡기의 열거에 그치는 에세이집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있는 책이다. 

 

 

몸이 아팠다는 글이 내 눈에 유표히 띄었다. 앞으로 오래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챙기면서 글을 쓰길 저자에게 바란다.

 

 

 

......................

참고 사항 :

알라디너인 다크아이즈 님의 책이다.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41쪽) 돌이켜보면 아부지 때문에 한겨울인 청춘이었지만 끝내 아부지 덕에 물오른 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글 쓰는 데서 자유롭지 못할 숙명은 당신이 준 고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애증의 저울추를 번갈아가며 기울게 했던 아부지는 제게 결핍인 동시에 충만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궁색과 잔소리의 향연인 당신의 방식은 한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병약한 부성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130쪽) 누구에게나 양면성은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당연하구요.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 나도 더한 깊이로 상대를 공감하고 배려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심 없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사심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심 없는 절대적 관계가 있다면 페르소나로 자신을 연출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온 지구촌에 그런 세계가 있다면 일상의 행복지수는 한결같은 높이를 지향하겠지요. 하지만 삶은 그런 높은 차원으로 구조화되고 승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그저 인간적인 정서와 반응들로 가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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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1-01-27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필과 칼럼의 구분을 이제야 할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글이 칼럼이군요. 그간에는 둘의 차이를 모르고 읽어온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1-01-27 14:42   좋아요 3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칼럼과 수필의 또 하나의 차이는 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면 칼럼이고, 제기할 수 없다면 수필입니다.
유년의 추억을 쓴 수필이 있다면, 누가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유년의 추억을 썼을 뿐인데 말이죠.
만약 ‘질투하는 이유‘는 이거다, 라고 쓴 칼럼이 있다면(제 책 속에 있는 글입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요.
독자 중엔 질투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다른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신문에 기고한 글을 다 칼럼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신문에서 오피니언 지면에 있는 글을 칼럼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사설도 칼럼의 일종이죠. 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회사의 의견이나 주장을 독자에게 전한다는 점에서요.
댓글, 감사합니다. ^0^

2021-01-2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8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1-28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칼럼과 수필(에세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다크아이즈님의 이번 신간은 에세이같았어요. 칼럼과 수필의 차이가 이의제기에 있다는 것도 참고해보면 좋을 내용이네요. 생각해보니, 신문 오피니언 코너에 실리는 글은 수필 보다는 칼럼이 많을 것 같고요, 에세이는 문학란에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종이신문을 보지 못한지 오래되어서,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페크님, 잘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페크pek0501 2021-01-29 11:00   좋아요 1 | URL
요즘은 시와 소설을 빼면 전부 에세이로 분류하는 것 같아요. 알라딘에서도 그래요.
에세에, 하면 수필이 떠오르긴 해요. 수필은 문학의 영역 안에 있고요. 칼럼은 비문학적이죠. 너무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시간 낭비가 된다고 여기는 장르 같아요.
문학적 형상화를 하지 말고 그냥 네 견해를 직접 써라, 하는 게 칼럼인 것 같아요.
수필은 다르죠. 문학적인 맛이 나야 하죠.
독자가 문학 감상을 하겠어, 하는 게 수필이라면.
독자가 네 생각을 들어 보겠어, 하는 게 칼럼 같아요.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온 듯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희선 2021-01-29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사람’ 으로 작가밖에 될 수 없다는 말은 작가한테 가장 좋은 말이겠습니다 여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 담겨 있겠네요 사람은 다른 사람 삶을 보고 배우기도 하죠 그런 것도 많을 듯합니다

페크 님 일월이 빠르게 흘러가는군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니... 추운 날이지만 따듯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1-01-29 11:03   좋아요 1 | URL
마땅히~~ 라는 표현이 가장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맞습니다. 작가적이라고 느끼며 읽었어요. 저에게 없는 재능이 이 작가에겐 있더군요.

1월도 거의 가고 있고 시간은 종착역 없이 흘러 가기만 하네요.
계획대로 좋은 겨울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에 사시는 라로 님이 내 책을 받았다는 글을 어제 알라딘 서재에 올리셨다. 난 이제 안심이다. 혹시 우편 사고가 나서 내 책이 전달되지 않아 내가 부치지도 않은 책을 부쳤다고 말한 거짓말쟁이가 될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다.

 

 

라로 님의 서재에 내가 지난 10월에 다음과 같은 비밀 댓글을 썼었다.

 

 

..........
페크(pek0501) 2020-10-22 22:23   
라로 님, 오늘 제 책을 미국으로 부쳤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항공편이 없어서 배로 배달되기 때문에 두세 달 걸린답니다. 기가 막힐 일이죠? 그 대신 배달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했어요.
두 달 걸린다면 크리스마스 때쯤 받으시겠고, 만약 석 달이 걸린다면 내년 1월에나 받으실 수 있겠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쩌죠? ㅋㅋ 잊고 계시다가 제 책을 받으시면 좋겠어요.
무사히 책을 받으시기만을 빕니다. ^^ 
..........

 

 

 

 

 

 

 

 

 

 

 

 

 

 

 

 

 

 

책을 보낸 사연은 이러하다.

 

 

라로 님이 내 책이 읽고 싶어 전자책으로 주문하고 싶은데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는냐고 물었고 나는 출판사에 알아보겠다고 했다. 출판사에 알아보니 전자책으로 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로 말씀드렸더니 아쉬워하셨다. 이 얘기를 큰애와 밥 먹다가 무심코 했더니 큰애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엄마가 부쳐 줘. 엄마 책을 읽고 싶다잖아. 나 같으면 부쳐 주겠다.” 내가 “비행기로 부쳐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드는데.”라고 했더니 큰애가 말했다. “그까짓 것 얼마나 든다고.”

 

 

사실 라로 님에게 내 책을 부치게 된 데에 큰애가 일조했다. 내가 큰애에게 말을 하지 않았으면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에겐 책을 주고 누구에겐 안 주고 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여겨 어떤 원칙을 세워 뽑은 알라디너들에게만 책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책을 부칠 세 가지의 이유를 찾아냈다. 라로 님이 미국에 산다는 것. 내 책을 읽고 싶다는 것. 서로 댓글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 이 세 가지의 이유라면 책을 드릴 만하지 않은가.

 

 

고맙게도 작은애가 외출할 일이 있으니 자기가 우체국에서 부치겠다고 해서 맡겼다.

 

 

다음은 작은애가 라로 님에게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고 받은 영수증이다. 코로나19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배편으로 내 책을 싣고 미국에 가게 되어 받은 영수증의 인증 숏인 것이다. 

 

 

 

 

 

 

 

라로 님이 내 책을 읽을 때 지루하지 않기를,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잘생긴 겨울나무. 며칠 전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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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23 1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결국 3개월이 걸려 도달했군요. 큰 따님 멋짐ㅋㅋ

페크pek0501 2021-01-23 12:03   좋아요 4 | URL
아하!!! 들켰다. 사실 큰딸이 저보다 좀 똑똑하답니다.
우리 부부는 그애를 보고 누굴 닮아 저렇게 똑똑하지? 그래요.
나 아닌데, 이러면 남편도, 나도 아닌데... 이런 답니다. 돌연변이의 탄생이에요.
댓글, 감사합니다.

scott 2021-01-23 1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다 건너 간 페크님 책에 사랑을 실어 보내고 코로나 시대에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네요 페크님 책은 이제 미쿡에서도 읽혀지고 있음( ˘ �˘)♥

페크pek0501 2021-01-23 12:04   좋아요 5 | URL
글쎄말이에요. 미쿡에서도 읽히니 영광이지 뭐예요.
지구는 하나... 실감하네요.

2021-01-23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1-23 15: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을 받을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하신 분이 큰따님이고 그 책을 우체국에서 수고스럽게 보내주신 분은 작은 따님!!! 따님들 덕분에 미국에 사는 라로가 책을 받을 수 있었네요!! 두 분께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

페크pek0501 2021-01-23 23:08   좋아요 1 | URL
예. 애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딸들이 착하답니다. 요즘은 자기들이 컸다고 저를 감히? 보호해 주려는 경향을 보여요. 제가 좀 약해 보이나 봐요. ㅋ

그때 라로 님이 제 책에 관심 표명을 해 주시고 읽고 싶어 하셔서 제가 얼마나 기분 좋고 고마웠다고요. 라로 님은 그때 이미 제게 귀한 선물을 주신 겁니다. 우리 아이들도 아마 그래서 책 보냄에 일조한 것 같아요. 우리 엄마 책에 관심을 보이신 귀한 분이라서요...ㅋ

큰 기대 없이 첫 책인 점을 감안해서 읽으시면 좋겠어요. 라로 님 덕분에 그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저를 즐겁게 해 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

scott 2021-01-23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따님들 멋지게 해외 배송 심부름 하고 라로님은 석달 가까이 기다려서 페크님 편지와 함께 받으셨고 페크님 책은 바다건너 미국땅까지 뻗어나갔으요 만쉐 ๑>ᴗ< ๑

페크pek0501 2021-01-23 23:10   좋아요 1 | URL
글쎄 말이에요. 제 책이 출세했지 뭡니까. 저도 가 보지 못한 미국을 가 보고 말이죠. 속 터지게? 느려서 그렇지 배로 보내는 맛도 괜찮네요. 잊고 있다가 받았다는 소식을 받는 재미가 있었어요. 라로 님도 잊고 있다가 받은 재미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스콧 님, 감솨합니다. ^^**^^

붕붕툐툐 2021-01-23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훈훈하고 멋진 이야기~ 모두가 주인공~😄😄😄

페크pek0501 2021-01-23 23:12   좋아요 1 | URL
잘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 여기에 댓글 쓰신 분들 모두 훈훈함에 일조하신 멋진 분들이십니당.😄😄😄 댓글 쓰신 분들도 주인공입니당~~

서니데이 2021-01-23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로 보내면 시간이 많이 걸려도 운송비는 조금 낫다고 들었는데도 상당히 많이 나오네요. 페크님은 따님이 배송대행하셨네요. 저라면 외국에 보내는 것은 방법도 잘 모르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못했을것 같아요.
먼곳인데 잘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페크pek0501 2021-01-23 23:17   좋아요 2 | URL
비행기 비용은 더 많이 든답니다. 배라서 그래도 저렴한 거예요. 미쿡 아닙니까. 비행기로도 한참 가는데 느린 배로는 얼마나 한참 가겠어요. 그러니 배삯이 들만 하지요. 그래도 그 정도면 부담 없이 보낼 만해요. 아마 가벼운 책이라서 그렇지 무게가 나가면 비용도 올라갈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집 주소도 다 영어로 쓰는 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아이가 우체국에서 주소를 영어로 다시 썼다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알아 놔야겠어요. 폰으로 검색하면 영어로 다 나오긴 하지만...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은근 걱정했어요. 너무 길게 걸려 책이 분실될까 봐서요.
좋은 토욜밤입니다. 잘 보내세요.

희선 2021-01-24 0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행기는 안 가도 배가 가서 다행이네요 그것도 없었다면 못 보내거나 나중에 보내야 했을 테니... 물건 싣고 가는 배는 있군요 예전에도 비행기가 아닌 배로 보낼 수 있었겠지요 여러 달이어도 사고 없이 잘 가서 다행입니다 오래 걸리면 잘 갈까 걱정스럽잖아요 옛날에도 다른 나라로 우편물 보내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네요 그때 잘 가고 받기도 했겠습니다 왜 옛날이 생각나는지... 배로 보내서 그런가 봅니다

멋진 일이네요 페크 님 책을 보고 싶어하는 분한테 보내주시고 그 일을 따님 두 분이 다 도와주시다니... 어떤 일이든 여러 사람 힘이 드는 거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1-01-24 13:35   좋아요 2 | URL
예. 배로 간다고 해서 그땐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비행기 운항이 다시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부치러 가면 빨리 배달되는 거였어요. 근데 그때는 비행기가 다시 언제 운항하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배를 선택했답니다. 우체국에 있는 아이와 제가 통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제가 배로 부치라고 했어요.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이 되었네요.ㅋ
오늘은 덜 추운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1-24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3달이 걸린 책이라니... 너무 소중하잖아요. ^^

페크pek0501 2021-01-25 14:35   좋아요 0 | URL
성질 급한 사람은 속터질 일이지만...ㅋ 잊었다가 받는 기분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잊었다가 라로 님이 받으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반갑더라고요. ^^
 
좁은 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6
앙드레 지드 지음, 동성식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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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겐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그런 목사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눈이 먼 소녀를 자기 집에 데려와서 키우게 된다.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소녀는 목사의 집에서 교육을 받으며 하나씩 배워 나간다. 목사와 목사의 아들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삼각관계로 얽힌다. 소녀는 성장하게 되고 개안 수술을 받아 세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목사가 일기 형식으로 쓴 것이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이다.

 

 

과연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목사일까, 목사의 아들일까? 시력을 되찾은 그녀가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세상을 보게 되어 이전보다 행복해질까? 행복해진다면 명작이 아닐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전원교향곡>을 읽는 동안 자주 밑줄을 그었고 그 내용에 푹 빠져들곤 했다. 나를 열독하게 만드는, 이렇게 마음에 스며드는 소설을 만난 게 반가웠다. 예전에도 읽은 적 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제야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재독의 가치를 느끼며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놀라고 감탄했다. 

 

 

내가 밑줄을 그은 문장 중 몇 개 골라 옮기고 그것과 관련한 내 생각을 달아 보는 것으로 리뷰를 쓰고자 한다. 

 

 

『“(중략) 나는 베르길리우스의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시구 다음에, 우리가 배운 ‘자신의 행복을 안다면’보다도, 차라리 ‘그들의 불행을 모른다면’이라는 구절을 붙였으면 해. 불행을 모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232쪽)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중 ‘전원교향곡’에서.

 

→ 만약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면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불행한 점을 모른다면 불행한 사람으로 살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남과 비교하여 자기가 남보다 못한 그 차이로 인해 불행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땅은 새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름다운가요? 사람들은 왜 그걸 더 말해 주지 않을까요? 목사님은 왜 제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세요? 제가 그걸 보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고 저를 괴롭히게 될까 봐 그러세요?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제가 새들의 노래를 얼마나 잘 알아듣는다고요. 새들이 말하는 걸 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르트뤼드,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너만큼 새들의 노래를 잘 듣지 못한단다.”』(238쪽)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중 ‘전원교향곡’에서.

 

→ 맹인이 아닌 우리는 새소리가 들려 와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맹인은 눈에 보이는 게 없어 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서 새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눈 뜬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모른단다.” 하고 나는 마침내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곧 부르짖었다.
“그렇지만 보지 못하는 저는 듣는 행복을 알아요.”
그녀는 내게 바짝 다가와서 어린 아이들처럼 내 팔에 꼭 매달려 걷고 있었다.
“목사님, 제가 얼마나 행복한 줄 아세요? 목사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절대 아니에요. 절 좀 보세요. 거짓말을 할 때는 얼굴에 나타나지 않아요? 저는 목소리만 듣고서도 그런 걸 아주 잘 알아요.』(244~245쪽)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중 ‘전원교향곡’에서.

 

→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비해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모른다. 귀로 들을 수 있음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하나 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가 없는 신체 기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듣는 행복을 아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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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1-1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앙드레지드의 전원교향곡 책 이야기를 읽다가, 어? 우리 나라 오래전에 나온 영화 중에 그런 내용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검색해보았는데, 1974년에 나온 <청녀>라는 작품이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을 원작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그 영화 오래되어서 제목도 잘 모르고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은 첫번째 문단의 내용 보고 생각났습니다.

페크pek0501 2021-01-19 12:44   좋아요 1 | URL
원작으로 재구성할 만한 작품 같아요. 일단 재미가 있거든요. 고전 중에 재미없는 건 정말 재미없잖아요. 이건 흥미롭게 전개된답니다.
개안 수술로 눈이 뜬 그녀가 목사의 외모를 보고 실망했나 봐요. 이런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제 추측이에요.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사랑한 사람은 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요. 목사는 늙었거든요. 이에 반해 목사의 아들은 멋진 청년으로 자랐거든요. 안 그래도 목사는 그녀가 수술로 눈을 뜨게 된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낀답니다. 늙은 자기를 보고 실망할까 봐요.
멋진 하루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21-01-19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도 딱히 자신이 소리를 듣지 못해서 힘든 게 없었는데, 부모가 그걸 못 봐서 인공와우 수술을 시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것 때문에 아이는 이런저런 시끄러운 소리를 듣게 돼요 인공와우는 실제 귀로 듣는 것과는 다른 듯해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면 그걸 아주 힘들어하지만,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사람은 그걸 힘들어하지 않는 듯합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모르는 걸 알기도 해요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보이지 않아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들리지 않아서 듣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비장애인 눈으로만 보면 안 될 텐데 그럴 때가 더 많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1-01-19 12:48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라면 생활에 익숙해져서 불편을 모르는 것 같아요. 성장해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행을 느끼는데 이것도 잘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 책에서 보니깐 장애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애가 없으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죠.
좋은 하루가 되시길...댓글, 감사합니다.


2021-01-22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3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1-02-02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좁은 문]은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전원교향곡]은 읽은 적이 없네요.
이 책을 사서 [좁은 문]도 다시 읽고, [전원교향곡]도 읽어봐야겠어요.
언제나 시간과 우선순위가 문제군요.
소개글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1-02-03 09:49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두 작품을 재독할 생각으로 구매한 책이었는데 좁은 문보다 전원교향곡이 더 마음에 닿았어요. 예전에 읽었을 땐 잘 몰랐는데 마치 처음 읽는 것 같더라고요. 일기체 형식이라 친근하게 읽혀요. 재독을 강추합니다.
언제나 필요한 건 시간이지요. ㅋㅋ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