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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평점 :
이번에 《월든》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진가를 알고는 있었으나 완독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꼭 완독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게 있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는 일이다. 마치 외딴섬에 유폐되어 있다가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내게 있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사고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일이다. 돌을 던져 보면 우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듯이 글을 보면 글쓴이의 사고력과 통찰력을 헤아릴 수 있다. 사고력과 통찰력을 담고 있는 《월든》 같은 책을 만나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독자로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소로우는 숲 속에 들어가 홀로 생활해 보는 것을 꿈꾸어오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1845년(그의 나이 28세)에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지어 입주했다. “2년 이상을 이 호숫가의 숲 속에 사는 동안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으며, 불후의 명작이 될 《월든》의 핵심 부분을 썼던 것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소로우는 급우들과는 달리 소위 세속적인 성공이란 것에 깊은 회의를 품었다.”(옮긴이의 말, 9쪽)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월든》은 《로빈슨 크루소》 같은 모험기로 읽을 수 있고, 자연 묘사에 있어 서양 문학을 통틀어서 《월든》을 따른 만한 작품은 없을 것이며, 《걸리버 여행기》처럼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다.
소로우는 숲 속에 들어가 살았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138~139쪽)
이제부터 《월든》을 읽으며 내가 밑줄을 그은 글들과 그것들과 관련된 나의 단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61쪽)
왜 우리들의 가구는 아랍인이나 인디언의 가구처럼 소박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62쪽)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소박한 삶’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손수 내린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행복,
자신이 좋아하는 시집에서 시를 골라 노트에 옮겨 적으며 느끼는 행복,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느끼는 행복.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 공부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82~83쪽)
인생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 보며 세상과 부딪혀 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일부 어머니들은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자신이 알바를 하더라도 자녀에게는 알바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공부만 하라고 한다. 나는 대학생 자녀도 방학을 이용하여 알바를 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돈을 버는 일을 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게 되어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고, 지난날에 컴퓨터 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친애하는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되도록 오래오래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농장에 얽매이든 군郡 형무소에 얽매이든, 얽매이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129쪽)
소로우는 우리에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글을 읽으니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들기도 하고, 물질적인 이욕의 노예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더 현대적이고 더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탐구적인 학생은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고 얼마나 오래되었고 간에 항상 고전을 연구할 것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154쪽)
고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소로우의 책 《월든》도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의 책이 위대한 고전이 될 거라고 소로우는 예측했을까?
그러나 봄에는 메기를 낚으러 밤낚시를 오는 마을 사람들이 이따금씩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둠을 미끼로 자신의 마음의 호수에서 더 많은 고기를 낚았던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개 빈 바구니를 들고 곧 물러났으며, ‘세계를 어둠과 나에게’ 남겨놓았기 때문이다.(198쪽)
지금이나 그때나 고기 낚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에 잠기기 위해 낚시터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신기하다.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251쪽)
세속적인 논리와 세속적인 가치만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글이다. 밭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땅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내가 자연과 친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의 낚시와 사냥 덕택이었던 것이다. 낚시와 사냥은 일찌감치 우리를 자연의 경관에게 소개해주고 그 안에 머물도록 해준다. 그러지 않으면 그 나이엔 자연과 별다른 친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어부와 사냥꾼과 나무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들이나 숲 속에서 보내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자연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생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철학자나 시인보다도 자연을 관찰하는 데 더 나은 위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은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316쪽)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이 풀렸다. 취미로 낚시나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왜 하필 생명을 죽이는 걸 취미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물고기 또는 토끼가 잡혀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으니 알 것 같다. 낚시나 사냥은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해 주고,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이 중요한 사실을 소로우가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았던 낚시와 사냥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젊은이가 숲과 친해지고 또 자신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과 친숙해져가는 경로는 대략 그러한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사냥꾼이나 낚시꾼으로서 숲에 간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몸 안에 보다 훌륭한 삶의 씨앗을 지닌 사람이라면, 시인으로서든 박물학자로서든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찾게 되어 총과 낚싯대를 버리게 된다.(319쪽)
어린 시절에 낚시나 사냥을 해 본 경험이 있으면 자연을 사랑하게 될 듯하다. 무엇을 사랑하려면 그것 가까이에 가서 잘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육류 및 차와 커피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것들이 건강에 무슨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아내서가 아니라 어쩐지 마음에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고 일종의 본능인 것이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더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완벽하게 해낸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상상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나름대로 할 만큼은 했다. 자기의 고매한 능력, 시적인 능력을 진정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육식을 특히 삼가고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322쪽)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육식을 특히 삼가고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라는 글은 마치 미래학자가 하는 말 같지 않은가? 요즘 건강하기 위해서는 육류보다 채소를 많이 먹는 게 좋고, 과식하는 것보다 소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나 역시 육류를 많이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육식을 즐기는 이들은 육식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 비해 비만이 되기 쉬워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
우리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도덕적이다. 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순간의 휴전도 없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하프의 소리 속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감명을 주는 것은 이 선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이 하프는 우주의 법칙을 선전하고 돌아다니는 ‘우주보험 주식회사’의 출장 세일즈맨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그만 선행은 우리가 지불하는 유일한 보험료이다. 젊은이는 나이가 들면 무감각해지지만 우주의 법칙은 결코 무감각해지는 일이 없으며 영원히 민감한 사람의 편에 선다.(327~328쪽)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생각이 소로우의 글로 인해 더욱 확고해졌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태껏 발견 못 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472쪽)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소로우가 쓴 시인 듯하다.
이 글을 읽으니 이런 명언이 떠오른다. “사람은 우주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그 어느 별보다도 먼 것이다.”(체스터턴)
이 명언은 차라리 우주에 대해 알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소로우 역시 우리 마음속에서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데 힘쓰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고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실로 바라건대 당시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473쪽)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아는 자는 없으리라.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될 때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던가. 예를 들면 이러하다. A씨는 유치원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B 씨는 본인이 화를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나서야 본인에 대해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C 씨는 나이 60세에 친구를 따라 가서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직접 해 보고 나서 그 일을 본인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일을 취미로 삼게 되었다. 만약 직접 해 보지 않았다면 본인에게 그런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터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인간은 자기의 재능을 다 발견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이 본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아는 자는 명철한 사람이다.
나는 실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477쪽)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자기 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고,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자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481쪽)
남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삶을 살지 말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삶을 살라는 것.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482쪽)
행복하지 않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본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482쪽)
남과 비교하지 말고 각자가 적합한 방식으로 살라는 것.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485쪽)
욕심을 부리지 말고 간소하게 살라는 것.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고전’이란 부제가 붙은 《월든》은 밑줄을 긋지 않은 페이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치게 만들었다. 소로우는 문장 구사력이 좋은 데다 음미할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글을 써서, 읽는 동안 내내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월든》이 나의 애독서의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게 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위대한 예술가는 예언자적인 통찰력을 갖는다고 볼 때 소로우 역시 위대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자기 계발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1817년에 태어난 소로우가 쓴 《월든》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독자적인 삶을 살라는 등의 메시지를 말함이다. 이런 메시지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이들이 나처럼 이 책을 좋아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묘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이나 소로우가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독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역작이다. 특히 필사하면서 문장력을 키울 목적을 가진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소로우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문장가의 글을 보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호수는 안개의 잠옷을 벗고 여기저기 부드러운 잔물결이나 잔잔한 수면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으며, 안개는 무슨 밤의 비밀회의를 막 끝낸 유령들처럼 살금살금 숲의 모든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슬마저도, 산허리에서 그러듯이 여느 곳보다 더 늦게까지 나뭇잎에 맺혀 있는 것 같았다.(133쪽)
아침은 언제나 나의 생활을 자연 그 자체처럼 소박하고 순결하게 지키라는 초대장과도 같았다.(136쪽)
나는 이런 글에 매료되곤 했다.
소로우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대목도 있다.
나는 먼저 1피트 깊이의 눈을 치운 다음 다시 1피트 두께의 얼음을 깨서 발아래 호수의 창문을 연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며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것 같은 부드러운 광선이 사방에 퍼져 있으며, 바닥에는 여름이나 마찬가지로 밝은 모래가 깔려 있다. 호박색의 저녁노을이 질 때와 같은 영원한 물결 없는 고요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다. 그 고요는 이곳에 사는 거주자들의 침착하고 평온한 기질에도 상응하는 것이리라.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421~422쪽)
소로우의 외침으로 이 리뷰를 마무리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141쪽)
....................
<후기>
1.
18개의 장으로 구성된 《월든》에서 가장 좋았던 것으로 세 개의 장만 뽑는다면 다음과 같다.
1장) 숲 생활의 경제학(15~124쪽)
11장) 보다 높은 법칙들(315~333쪽)
18장) 맺는말(471~493쪽)
2.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소로우가 가족을 부양할 처지에 있었어도 《월든》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홀로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 동안 사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훌륭한 《월든》이 탄생할 수 없었으리라.
3.
《월든》을 읽다 보면 소로우가 체포되어 투옥을 당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에 대한 설명을 각주에서 읽을 수 있다.
“흑인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했던 소로우는 항의의 표시로 세금 납부를 거부했으며, 그 결과 감옥에 가게 된다.(친척 한 사람이 몰래 세금을 대납했기 때문에 그는 다음날로 풀려 나왔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글로 발표했는데, 이 글은 후일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각주, 258쪽)
이와 관련해 유머 감각이 넘치는 소로우의 글을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효과가 있든 없든 무력으로 저항을 할 수도 있었고, 사회에 대해 ‘미친 듯이 날뛸’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차라리 사회가 나에 대해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포자기적인 것은 그쪽 편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다음 날로 석방이 되었다.(259쪽)
그러고 보니 소로우는 자연 예찬론자이면서 사회 개혁가이기도 하고 유머인이었다.
참고로 소로우의 저서 중 하나로 《시민 불복종》이란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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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올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이 되었습니다.
Goodbye 2023!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