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역지사지(2) - 부제 : 자기 중심적 사고
우리는 ‘자연보호’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많아 생겨난 말이다.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은 잘못된 말인 것 같다. 자칫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말은 생각의 그림인 것이니까.
이미 이어령 저, <젊음의 탄생>에서 저자는 ‘자연보호’라는 말은 잘못된 말임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 왔지 언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 왔느냐는 것이다. 자연보호란 말 속에 이미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인 인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사실 자연보호란 말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긴 말이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궁극의 목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인간을 주체로 보고 자연을 객체화시킨 결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에 익숙하다.
일례로 장애인에 대해 비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눈 것인데,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한 결과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백인 중심의 사고가 유색인종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역시 흑인 중심에서 보면 백인은 무색인종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말들에선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드러난다. 즉 강자가 되는 쪽의 말이 널리 사용된다.
자연의 일부인 곤충을 보는 시각에서도 인간 중심적 사고가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매미의 삶에 대한 시각이 그렇다. 매미는 보통 유충으로 6~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낸 뒤에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되어 1~3주 만에 죽는다. 즉 유충으로 길게 살다가 성충이 되어서는 짧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상에서의 짧은 생을 살기 위해 긴 시간을 지루하게 땅속에서 살았다는 것으로 해석해 놓은 여러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매미의 중요한 삶을 땅 위의 삶으로 보는 인간 중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매미에게 있어서 중요한 삶은 이미 땅속에서의 유충으로서의 삶이라고 말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듯이 매미는 땅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체 변이를 염두에 둔다면 매미가 지하에서 살기엔 성충으로보다는 유충으로 사는 게 환경에 적응하기 편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매미가 지상의 짧은 삶을 위해 지하에서 긴 시간을 지루하게 보냈다는 것은 인간의 난센스. 매미의 삶의 전성기는 유충으로서의 삶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 인간도 인생의 전성기는 장년기가 되기 전의 아동기와 청년기가 아닐는지.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이런 인간 중심적 사고가 인간관계에서 자기 중심적 사고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가족이든 친구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상대방의 자기 중심적 사고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남에게 준 혜택은 크게 생각하고 자신이 남으로부터 받은 혜택은 작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친구관계에 있는 갑이란 사람과 을이란 사람이 동업하여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서로 자신이 회사를 위해 한 일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한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갑은 내 자본금이 을의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간 회사이니 내 덕이 크다고 생각하고, 을은 이 회사를 차리자고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것은 자신이라며 자기의 덕을 크게 생각한다. 갑은 자신이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니 자기가 을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생각하고, 을은 회사에 수익을 올릴 중요한 계약을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업을 하면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현상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나는 친구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자동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는데, 한 쪽에선 자신이 점심을 샀으니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이 점심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쪽에선 점심값보다 자신의 자동차 기름값이 더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자신은 상대방에게 많이 베푼 것 같은데, 늘 돌아오는 것은 적게 여겨져서 손해를 본 느낌을 갖는다.
이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자가, 친구가 있어 내가 즐거운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가 있어 내가 외롭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이보다 더 큰 혜택이 어디 있으랴.
자연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고 ‘자연보호’를 외칠 게 아니라 자연의 혜택을 크게 생각해야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해서도 받은 혜택을 크게 생각할 때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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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글을 쓸 적마다, ‘이거 맞나?’, ‘이렇게 단정적으로 써도 되나?’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또 쓴 글을 읽을 적마다 고칠 부분이 자꾸 눈에 띕니다. 완결된 한 편의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위하며 글을 올립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약점은 있게 마련이라고, 다만 우리 인간은 ‘완성’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뿐이라고….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것은 저의 욕심일 뿐, 그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