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유형지에서 (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형지에서’를 읽고 - 확신의 위험성을 보여 준 인물


소설 <유형지에서>에는 두 유형의 인물이 나온다. 한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장교)이고, 한 사람은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탐험가)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전자이다.


장교는 판사로서 유형지에 임명되어 왔으며 사형 집행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는 탐험가에게 사형 집행의 기계를 보여 주며 이것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뾰족한 바늘이 죄수의 몸을 찌르게 되어 있는 사형 집행기다. 죄수는 이 기계 안에서 12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받다가 죽게 되는데, 바로 이 잔인한 사형 방식을 찬미하고 집착하는 사람이 장교인 것이다.


죄수는 근무를 태만히 했다는 죄로 이곳에 끌려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보초를 서는 새벽 두시에 잠이 들었다는 것과, 이를 본 상관이 자신의 승마용 채찍으로 얼굴을 후려갈기자 상관에게 잘못을 빌기는커녕 오히려 대들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죄수에게 변호할 기회는 절대 주어지지 않으며 장교의 독단적인 판결로 사형이 집행된다.


장교는 말한다. “저는 판사로서 하나의 원칙을 세워 놓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범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범죄는 단지 범죄일 뿐이라는 장교의 이런 고정관념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장교는 작은 실수를 저지른 죄수가 사형을 당하는 게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조차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죄수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지 않는 불공평함에 대해서도, 사형 방식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나쁘다는 것을 판단할 줄 모른다.


이곳의 사형 집행기는 구사령관이 발명한 것인데, 이 기계의 제작과정에 참여한 장교는 이것에 대해 유별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구사령관이 죽고 새로 부임한 신임 사령관이 이 사형 집행기를 없애고 싶어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 기계 장치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탐험가에겐 그럴 만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 부탁을 탐험가가 거절하자 장교는 죄수를 석방하고는 자신이 직접 기계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장교를 지탱해 주던 그 신념이, 그렇게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재판 과정이, 그리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그 기계 장치가 이제 아무에게도 존중 받지 못하고 쓰레기 취급을 당할 처지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기계는 고장이 났는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상하게 작동하여 장교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게 하더니, 결국 장교를 고통스럽게 죽게 한다.


장교는 자신의 죽음을 용기 있게 선택할 만큼, 자신의 신념에 대한 실천력이 훌륭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다. 그가 가진 신념은 그릇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은 역사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일을 지배하던 히틀러는 국민들에게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면서 다른 민족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는 일을 국민들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잘못된 판단은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그의 독재가 가능할 수 있었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도 오판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의 오판이 생기는 일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어 참으로 위험하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 전달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저널리스트의 한 편의 글이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얼마든지 다수의 ‘잘못된 생각’을 양산해 낼 수 있다.


사실 옳게 판단하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다. 이 소설에서처럼 죄수에게 긴 시간의 고통을 주는 처형제도는 비난할 일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잘 판단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사형제도 폐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범죄억제의 효과를 중요시한다면 사형제도를 실시해야겠지만, 인간의 생명권을 중요시한다면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또 주택가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찬반의 의견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범죄가 감소한다는 이유로 CCTV를 설치하는 것에 찬성할 수도 있지만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누구나 자신이 여러 번의 착오를 경험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도 자신의 현재의 생각은 늘 옳다고 여기기 쉽다. 이럴 때 우리의 모습은 이 소설 속 장교의 어리석은 모습과 닮아 있을 것이다.


수전 손택은 <문학은 자유다>라는 저서에서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견해에 대해 확신하는 자세보다는 차라리 견해가 뚜렷하지 못해 어떤 것이 나은지 고민하는 자세가 오히려 신중할 수 있다는 수전 손택의 말에 동의한다. 고민한다는 것은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일 테니까.



소설 속 장교처럼 확신의 위험성은 우리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음을 상기할 때 옳은 판단의 중요성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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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신념이 틀릴 수도 있지만 자기 신념이 없다면 일에 부딪혔을 때마다 흔들리겠지요.그런 이유로 옳건 그르건 자기 신념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높은 점수를 줍니다.위 글을 읽어보니 객관적 시각의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최선의 신념을 갖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글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09-12-3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 왔군요, 반갑습니다. 맞아요, 객관적 시각. 그러니까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고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죠. 다음에 들어오면 제가 쓴 <확신이 어리석은 이유>라는 칼럼을 읽어보시길... 새해 행운 가득하세요.

페크pek0501 2009-12-3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일주일만에 들어와 글 한 편 올렸는데, 오늘은 두 번이나 들어왔네요. 오늘밤 12시가 되면 2010년이 시작됩니다. 한 해를 이렇게 또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 듭니다. 이제 나이가 드는 것에도 무감각해질 정도로 무뎌지고, 한 편으론 나이 드는 게 좋기까지 합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군요. 조금씩 진화해 가는 즐거움으로 살고 싶은데... 진화하는 삶인지, 퇴화하는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블로그가 생겼다는 것, 수십 편의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한 일간지로부터 칼럼 연재의 제의를 받았다는 것으로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려 합니다. 내년엔 어떤 일이 생길지...

pek0501 2010-01-06 20:1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자유가 확보된다는 것이죠. 아이가 초등학생땐 엄마를 찾더니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찾질 않습니다. 예전엔 외출시 아이가 학교에서 오기 전에 귀가했어야 했다면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그래서 예전보다 편한 마음으로 외출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만큼 아이의 중학생 생활이 바쁘다는 얘기이고, 자기의 세계가 생겼다는 것이겠죠. '아이의 성장'은 곧 '엄마의 자유'입니다. 육아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할 때 늙어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전출처 : 페크pek0501님의 "단상(2) 삶의 해석의 차이 "

답장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저도 블로그의 리뷰들을 묶어 독서칼럼집이라는 책을 낼 생각이어서 파란여우님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게다가 저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분이어서 매우 반가웠어요. 부디 블로거가 책을 내면 성공한다는 선례를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저같은 사람들이 덕을 볼 수 있게요.ㅋ 사실 전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데다 유능하지도 못해 이렇게 후다닥 책을 내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5년간을 후다닥이란 표현을 써서 미안합니다.ㅋ 유능해 보여 좋습니다. 어쨌든 책 출판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기쁜 소식이 많이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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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 삶의 해석의 차이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이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텐데’ 하면서도 좀처럼 운동하게 되질 않았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워낙 운동에 취미가 없어서다. 학창시절에도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어느 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날이 많아지게 되어 급기야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위장에 큰 이상은 없으나 소화능력이 약하다는 것. 의사는 몸을 많이 움직이라며 방치하면 큰 병을 키울 수도 있다고 조언하였다.



의사의 이런 말에 걱정이 되기도 했고, 소화가 되지 않아 배가 더부룩하고 답답한 느낌이 심해져서 기분이 좋질 않았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그때부터 난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매일 걷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걷고 나면 소화불량 증세가 없어졌다. 이것이 지금껏 매일 한 시간씩 산책을 하게 된 이유다. 이젠 걷고 싶을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나는 산책을 하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름다운 하늘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햇살의 따사로움을 온몸에 받으며 만끽하기도 한다. 평소 소화가 잘 되었다면 산책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 뻔했다. 이런 즐거움은 ‘소화불량’이 내게 준 선물인 셈이다.



우리의 삶을 잘 관찰해 보면 이렇게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이것을 간과하며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삶의 해석의 차이에 기인하는데, 매사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다음의 글처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려고 한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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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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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 새 달력, 그 열두 장의 의미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그 어떤 물품도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다. 만약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편이 출근시 아내에게, “여보, 회사일이 바빠 오늘 야근을 해야 하니 세 시간만 살 수 있는 돈을 줘. 그러면 야근하지 않고 일찍 퇴근할 수 있어.”라고 말할지 모른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등교시 어머니에게, “엄마, 오늘도 시험공부를 하느라고 밤을 새야 할 것 같은데, 네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주세요. 다른 친구들도 시간을 다 사 놓았단 말이에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럴 경우,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에게 시간을 사 줄 수 없는 것을 가장 속상하게 생각하겠다. 이런 세상에 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때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면 ‘시간’을 사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바쁜 때였다. 정말 시간이 금이었다.


어제 2010년의 새 달력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 달력 속 열두 장의 365일이라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본금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자본금을 어떻게 써서 어떤 결과를 얻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 자신의 몫이다.



시간은 인간의 삶의 좌표를 바꿔 놓는 힘이 있다. 훗날 어떤 이는 보람과 만족으로 살게 만들고, 어떤 이는 후회와 탄식으로 살게 만드는 것, 그것은 ‘시간’이다. 새 달력을 보며 그 열두 장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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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님의 "출간기념회"

파란여우님, 책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전 28일자 조선일보 북스면에 실린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닉네임을 보니 제가 들어온 적이 있는 블로그여서 반갑더군요. 앞으로 좋은 소식 많이 있길 바랍니다. 저도 같은 블로거로서 파란여우님이 블로거의 파워를 보여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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