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음악처럼’(87~88쪽)


시작은 그리 아름다운 얘기가 아니다. 열일곱 살에 덜컥 임신한 여학생 얘기니까. 그렇게 만든 남자는 어딘가로 가고 없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자 어머니는 꼴좋다며 딸을 쫓아낸다. 무책임한 아버지는 가출하고 없다. 학생은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혼자 사는 선생님은 자기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에 아름다움이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않다. 노인은 재산을 훔치러 들어왔다며 아이를 구박하고 폭력으로 대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선생님은 시골에 사는 두 노인한테 도움을 청한다. 농사를 짓고 소를 치는 노인 형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순박한 농민을 닮은 그들은 엉겁결에 아이를 받아들인다. 오갈 데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로 학교를 안 다니고 외톨이로 살아서 목장과 농장 일 말고는 아는 게 없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여자와 살아 본 적도 없다. 무슨 얘기든 해서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 아이한테 기껏 한다는 얘기가 곡물과 소에 관한 얘기다. 콩과 소의 가격이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어색한 순간들을 거치면서 그들의 집은 서서히 아이의 집이 되고, 그 아이가 그곳에서 학교를 마저 다니다가 낳은 아이의 집이 된다. 그들은 부모보다 더 부모가 되어 준다. 생물학적 가족이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들어선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살아온 두 노인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소들을 돌보던 그들이 인간을 돌보면서 평생 자신들에게 붙어 있던 외로움을 떨쳐낸다. 그들에게 타자는 지옥이 아니라 구원이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 『플레인송』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레고리오 성가 같은 무반주 종교음악처럼 소박하고 꾸밈없고(플레인) 순수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인지 모른다.




....................

‘무반주 음악처럼’이라는 글의 전문을 옮겼다. 

저자가 모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이고, 책 <따뜻함을 찾아서>에 실린 글이기도 하다.

일간지에서 처음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은 ‘글이 참 아름답구나’였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게다가 읽는 재미도 있었다.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여 인용하면서도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이렇게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걸까? 

감탄하며 읽고 나서 필사해 두었다.


일간지에 매주 연재되는 왕은철 님의 글들을 보면서 

이 글들이 언젠가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책이 나와서 반갑게 구매했다.

여러분도 글을 감상해 보시기를.... 















왕은철, <따뜻함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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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19 18: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왕은철 선생이 역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에세이도 쓰셨나 보네요.

쿳시 전문가로만 알고 있네요 저는.

페크pek0501 2023-12-20 13:01   좋아요 1 | URL
번역가로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죠. 에세이도 몇 권 쓰셨어요.
쿳시뿐만 아니라 찰스 디킨스, 호세이니 등 많은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어요.
따뜻한 겨울 보내십시오.^^

모나리자 2023-12-19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땨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군요. 두 노인들과 아이와 어린 엄마가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사람사는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여유있는 시간 보내시겠네요. 눈구경도 따뜻한 방에서 해야 좋더라구요.ㅎ
편안한 날 보내시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12-20 13:05   좋아요 2 | URL
그렇죠? 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글은 읽고 싶은 책이 생기게 하나 봅니다.
여유가 있어 1월부터 수강할 강좌 하나를 찜해 두었어요.
어제 어머니와 걷기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눈이 오는 바람에 중단했어요. 눈과 비는 실내에서만 환영할 것들이에요. 아, 연말!! 연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잘 지내십시오, 모나리자 님.^^

서곡 2023-12-23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내일이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군요 즐겁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3-12-25 16:58   좋아요 1 | URL
하하~~ 이제야 서곡 님의 댓글을 봤어요.
서곡 님도 즐거운 성탄절과 연말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 서 있고 빈 좌석이 없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뭔가를 펴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예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린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여성처럼 누구나 따끔한 충고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가 가벼운 솜을 무거운 짐으로 잘못 알아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 결과를 낳았듯이, 충고자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충고를 하려고 할 때 우리 대부분은 상대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더라도 듣는 이의 성품에 따라 충고를 고맙게 들을 수도, 불쾌하게 들을 수도 있으니 충고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러분에게 도박에 빠져 있거나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따끔한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가, 따끔한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가?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자. 충고를 해야 한다고 보는 갑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친구가 가서는 안 될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도박에 빠진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재산을 탕진할지 모릅니다. 외도를 하고 있는 친구는 멈추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를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충고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충고가 필요한 이에게 충고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친구와의 사이가 나빠지고 본인이 인심을 잃더라도 방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충고를 하는 것이 참다운 친구입니다"라고.



충고를 삼가야 한다고 보는 을은 이렇게 말한다. "도박에 빠지거나 외도를 하는 이들은 본인이 떳떳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음을 알지만 그 유혹의 힘이 너무 세서 중단할 수 없는 겁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박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외도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오거나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어야 끝낼 수 있을 뿐, 누구의 충고도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충고를 환영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성과 없이 친구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기 십상이니 충고를 삼가야 합니다"라고.



이번에는 나의 의견을 말하련다. 예전엔 갑의 의견과 같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도박이나 외도뿐만 아니라 어떤 일로도 당사자가 충고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아니면 친구 간에 따끔한 충고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고가 친구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 사람의 안팎을 속속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친구의 안팎을 속속들이 안다고 해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시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간은 대체로 남의 충고에 따르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친구에게 충고를 할 게 아니라 친구에 대한 이해심을 갖는 게 좋을 듯싶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충고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올해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2023 꼰대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꼰대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굳이 안 해도 될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가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조언이나 충고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 수 있다.





.......................................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종이 신문에는 내일 날짜로 게재됩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1215010001786





*********

오늘 올린 글을 끝으로 24개월간의 칼럼 연재가 끝납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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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2-1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여섯 가지로 정리된 이유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 편안한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3-12-14 20:57   좋아요 1 | URL
서곡 님, 감사합니다.
이런 인사를 받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듯합니다. 칼럼 연재가 오늘의 글로 끝나니까 말이죠.
앞으로는 독서와 리뷰 쓰기, 로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서곡 2023-12-14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원섭섭 감개무량하시겠습니다 그간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페크pek0501 2023-12-14 21:08   좋아요 1 | URL
저로선 좋은 경험이었어요. 많이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고, 글을 계속 쓰려면 앞으로 깊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3-12-15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한테 뭔가 말하는 건 많이 생각해야겠네요 아니 안 하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뭔가 말해도 그걸 따르는 사람보다 따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니... 자신이 잘못한 거나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스스로 깨달아야죠 자신한테 따끔한 말 해주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 많지는 않겠습니다

페크 님 그동안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글을 쓰셔서 홀가분하면서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겠네요 쓰던 곳은 아닐지라도 글을 아주 못 쓰는 건 아니니 앞으로도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3-12-15 22:57   좋아요 1 | URL
충고는 해 주고 싶을 때가 있고 누가 충고하면 듣기는 싫고 그럴 것 같네요.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면 다행이지만
잘못하면 사이가 나빠질 수 있으니 신중할 일이에요.
1년만 연재하려던 게 1년 연장 제의를 받고 욕심이 나서 2년동안 하게 됐어요. 근데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다른 신문에 쓰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경인일보가 좋아요. 내년은 쉬겠지만 아마 또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1~2년은 쉴 생각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3-12-15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24개월이 흘렀군요. 처음에 연재하신다고 좋아하시던게 생각나는데 시간이 참 빠른거 같습니다 ㅜㅜ

충고는 참 어려운거 같아요~ 내가 듣기는 싫은데 내가 하고는 싶은? ㅋㅋ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2:59   좋아요 2 | URL
시간이 정말 빠르죠? 그런 말 있잖아요.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 이틀은 길고 2년은 짧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나는 듣기 싫은데 하고 싶은 충고!!!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3-12-15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충고 안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에 찬성입니다.

페크님 24개월 동안 수고 많으셨네요.
귀한 시간들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3:00   좋아요 2 | URL
저도 충고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ㅋㅋ
저에겐 연재가 좋은 경험의 시간이었어요. 자기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도 많이 경험했고요.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12-15 0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년이란 세월동안 칼럼을 쓰는게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는 말 드리고 싶어요
그동야 수고 많으셨어요.

페크pek0501 2023-12-15 23:01   좋아요 3 | URL
4주 1회도 힘든데 1주 1회로 쓰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칼럼 글감 구하기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습니다. 매달 숙제를 매달고 살다가 해방되었으니...
페넬로페 님, 고맙습니다.^^

yamoo 2023-12-15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양질의 글을 써주시는라..^^
2년은 정말 긴 시간인데, 페크 님의 도전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일취월장 하셔서 다음에는 단행본으로 만나뵙기 기대합니다!

페크pek0501 2023-12-15 23:03   좋아요 1 | URL
보다 좋은 글을 써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에요.
정말 저로선 도전이었어요. 연재 덕분에 책 반 권 분량의 글을 썼습니다.ㅋㅋ
야무 님, 고맙습니다.^^

cyrus 2023-12-15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했습니다. 페크님의 글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지면이 또 생길 거라 믿습니다. 내년에도 건필하세요. ^^

페크pek0501 2023-12-15 23:04   좋아요 1 | URL
글이 빛을 발한다는 표현, 참 좋네요. cyrus 님, 고맙습니다. 님도 건필하십시오.^^

stella.K 2023-12-15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의 예는 정말 웃겨요. ㅎㅎ
근데 이 자리 양보가 참 어렵더군요.
얼마 전, 사람 많은 버스를 타게 됐는데 전 그저 빈 자리가 없나 둘러 봤을 뿐인데
어느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를 양보해서 좀 민망했어요. 금방 내릴 거라서 슬쩍 일어나는 거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고 바로 제 옆에 서서 가길래 어찌나 민망하던지.ㅋㅋ
근데 충고에 대해선 저도 언니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감이긴 한데 그래도 전 제 친구가 도박이나 외도를 한다면
충고를 할 것 같아요. 그건 윤리와 도덕의 문제고 나중에 왜 나한테 따끔하게 야단쳐 주지 않았냐고
친구 맞냐고 원망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친구가 좋은 삶을 살 길 바란다면
때론 담대하게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그 친구가 나중에 어떤 삶을 살지 너무 보이잖아요.
그런 거 외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냥 지켜봐 줘야죠.ㅋ

24개월 쉽지 않죠. 수고 많으셨어요. 아쉬운 마음은 접으시고 자유를 만끽하시길.^^ .

페크pek0501 2023-12-15 23:09   좋아요 2 | URL
웃긴 이야기를 스텔라 님이 언급해 주시네요. 저는 저 이야기를 책에서 보고 막 웃었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는 진지한데 - 금각사에서 보듯이 - 에세이는 정말 웃깁니다. 알라딘에 딱 맞는 책이 없어 못 넣었어요. 오래된 책이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저는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양보할 때 내리는 척하고 다른 문 앞으로 가 서 있어요.ㅋ
스텔라 님의 의견도 일리 있어요. 친구를 위해 충고하는 게 좋다는 의견, 나올 법합니다. 칼럼의 특징 상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지라 저는 안 하는 쪽을 택해 썼어요.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잘 안 고쳐지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충고를 수렴할 사람은 스스로 상의를 해 와요. 그럴 땐 솔직히 말해 줄 수 있겠지요.

어느 새 24개월이 흘렀을까요? 저도 너무 시간이 빠른 것 같아 놀랍기도 하답니다.
아쉬움보단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스텔라 님, 긴 댓글 고맙습니다.^^

2023-12-15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5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2023-12-15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4개월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하셨군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페크님.^^
처음 도입부 글을 읽다가 기억이 떠올랐어요. 일본여행 때 전철 안에서 양보할라치면 사양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노인의 대국 답게 정말 건강하고 허리도 꼿꼿하시고요. 미시마 유키오의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있었다니
읽고 싶어지네요.
오랫동안 글을 연재하셨으니 다른 곳에서 또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ㅎ
아무튼 시원섭섭하실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자유도 맛보시길요.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3-12-16 12:21   좋아요 2 | URL
24개월 동안 두 번의 공포를 경험했어요. 마감날은 다가오는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어찌나 무섭던지 이젠 더 하라고 해도 못하겠더라고요. 또 연재를 하더라도 1~2년간의 재충전 시간을 가진 후에나 가능할 듯요.
제가 더 유능했더라면 더 연재를 할 수 있는 건데...ㅋㅋ 이 부분은 좀 아쉬워요.
벌써 연말 인사를 나눌 시간이 왔군요. 이달 중순이 넘었으니까요.
모나리자 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12-15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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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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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7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6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7 1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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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12-16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마지막 칼럼 기고네요. 고생한 만큼 성장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곧 연말인데 당분간 푹 쉬세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3-12-17 10:55   좋아요 1 | URL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죠. 망신당할까 봐 최선을 다해 쓰긴 했어요. 내가 이렇게 집중형 노력파인가, 처음 알았어요. 자신 없는 일을 벌여 놓으면 인간은 노력하게 되어 있나 봅니다.
당분간 쉴 생각이에요. 쉬면서 책이나 읽으며... 맛있는 거 많이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빵이 항상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나 자연 가운데에서 어떤 너그러움을 깨닫는 것은, 그리고 순수하고 영웅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더욱이 그것은 우리가 우리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도 우리의 굳은 관절을 풀어 주고 우리로 하여금 유연성과 탄력성을 지니게 한다.(249쪽)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토지를 재산으로 보거나 재산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누구나 벗어나지 못하는 천한 습성 때문에 자연의 경관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었으며, 농부는 그 누구보다도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농부는 자연을 약탈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다.(250쪽)


우리가 흔히 잊기 쉬운 것은, 태양은 인간의 경작지와 대초원과 삼림지대를 차별 없이 똑같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태양의 광선을 똑같이 반사하거나 흡수한다. 인간의 경작지는 태양이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 내려다보는 멋진 풍경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태양의 눈에 이 지구는 두루두루 잘 가꾸어진 하나의 정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양의 빛과 열의 혜택을 이에 상응하는 믿음과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250~251쪽)


이 콩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밀의 이삭이 농부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겠으며, 그 낟알만이 밀대가 생산하는 모든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사가 실패하는 일이 있겠는가?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일진대, 잡초가 무성한 것도 실은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251쪽)


⇨ 세속적인 논리와 세속적인 가치만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글들이다. 밭은 농작물을 수확하는 땅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2.

태양의 따스함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는 가을의 어느 맑은 날에 언덕 위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물 위에 비친 하늘과 나무들의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수면 위에 끊임없이 그려지는 동그라미 모양의 파문을 관찰하는 것은 마음이 무척 차분해지는 일이다. 이 넓은 수면에는 동요가 있더라도 그것은 이처럼 곧 잠잠해지며 가라앉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물이 가득한 항아리를 흔들어놓으면 그 물이 출렁대지만 가장자리에 닿으면서 결국엔 수면 전체가 다시 잠잠해지는 것과 같다.(282~283쪽)


⇨ 태양의 따스함을 우리도 고맙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던가. 


나의 경험. 무더운 여름날 가족과 함께 놀러간 계곡에서였다.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난 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물에 젖은 몸이 떨리도록 추웠다. 그때 갑자기 구름을 헤가르고 태양이 나타나더니 햇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태양의 따스함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 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어떤 폭풍이나 먼지도 그 깨끗한 표면을 흐리게 할 수는 없다. 호수의 거울에 나타난 불순물은 그 속에 가라앉거나 태양의 아지랑이 같은 솔이, 그 너무나도 가벼운 마른걸레가 쓸어주고 털어준다.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283~284쪽)


⇨ 월든 호수는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고, 그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구절 같다. 




4.

내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자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는 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고는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배가 떠가도록 맡겨놓으면 몇 시간이고 후에 배가 기슭에 닿는 바람에 몽상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일어서서 운명의 여신들이 나를 어떤 물가로 밀어 보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시절은 게으름 부리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이던 때였다.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들을 그런 식으로 보내기 위하여 오전 나절에 몰래 빠져나오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288쪽)


⇨ 나도 소로우처럼 호수 한가운데로 보트를 저어가서 산들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보트 안에 길게 누워 몽상에 잠기는 경험을 하고 싶네. 자연에 몸을 맡기고 누워 있으면 기분이 어떠할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소로우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법한데, 자연과 함께 산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5.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290~291쪽)


⇨ 글의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소로우가 쓴 시인 듯.




6.

열차는 호수를 보기 위하여 멈추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러나 기사관사와 화부과 제동수制動手 그리고 정기승차권을 가지고 있어 이 호수를 자주 지나는 승객들은 호수를 보았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상상을 해본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 평온과 순수의 표본 같은 호수를 보았다는 것을 그 기관사는(적어도 그의 본성은) 밤에도 잊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 번밖에 보지 않더라도 이 호수의 모습은 혼잡한 보스턴의 거리들과 기관차의 검댕을 씻어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호수를 ‘신의 안약眼藥’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다.(291쪽)


⇨ 소로우는 평온과 순수의 표본 같은 호수를 보았던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본다고 한다. 비록 호수를 한 번밖에 보지 않은 이들도 호수의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정화해 줄 것이라고 한다. 소로우에게 있어 월든 호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는 특별한 호수다.


 


7.

화이트 호수와 월든 호수는 지상의 커다란 수정이며 빛의 호수들이다. 만약 이들이 영원히 응결되고, 훔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들이라면 아마 제왕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보석으로 쓰기 위하여 노예들이 캐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수들이 액체 상태인 데다 그 양이 풍부하며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영원히 확보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코히누르의 다이아몬드’를 뒤쫓는다.(299쪽)


⇨ 이 글을 읽으면 호수가 크고 값진 보석으로 느껴진다. 


소로우는 화이트 호수를 월든 호수의 쌍둥이 동생(297쪽)이라고 생각한다. 




8.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300쪽)


⇨ 소로우는 자연만한 천국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

"자연 묘사에 있어 미국 문학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을 통틀어서도 《월든》을 따를 만한 작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 및 주위 숲의 모습, 또 그 속에 사는 온갖 동식물이 참으로 생생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옮긴이의 말,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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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14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네요.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데, 하루 종일 흐립니다.
사진 속의 시간은 가을 같아보여요. 따뜻하고 청명한 날의 느낌이 듭니다.
주말부터 추워진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12-14 18:17   좋아요 2 | URL
사진 속의 시간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간 속, 인 듯합니다. 11월에 찍어 둔 것 같아요.
오늘 비가 와서 공기가 맑은 점은 좋더라고요.
또 추워지겠지요.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부근.



1.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58~59쪽)


⇨ 이 글은 오늘날의 ‘하우스 푸어’(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만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를 연상시킨다. 무리하게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의 경우 ‘하우스 푸어’가 되기도 한다.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2.

그러면 가난한 소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일부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에서는 미개인보다 나은 처지에 놓이게 된 반면에, 그와 똑같은 비율의 다른 사람들은 미개인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졌음이 판명될 것이다. 한 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계급의 궁핍한 생활로 균형이 맞추어진다. 한편에 궁전이 있으면 다른 편에는 빈민 구제 시설과 ‘말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59~60쪽)


⇨ ‘이십 대 팔십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80프로의 빈곤층과 20프로의 부유층으로 사회가 양분된다는 것으로, 상위 20프로가 전체 부의 80프로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이십 대 팔십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소로우가 살았던 시대에도 빈부 격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이집트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 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은 마늘을 먹으면서 연명했으며 죽은 후에는 격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묻혔을 것이다. 궁전의 처마돌림띠를 손질하던 석공은 밤이면 아마 인디언의 천막집보다 못한 오두막으로 돌아가리라. 문명국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여럿 있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 대다수의 사정이 미개인의 사정보다 나으리라고 보는 견해는 옳지 못하다. 나는 지금 영락零落한 부유층이 아니라 영락한 빈민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60쪽)


⇨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는 것은 오해이며, 피라미드를 짓는 데 동원된 건 노예가 아닌 임금 노동자들이라고 한다.(매일경제 2023-03-23) 임금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피라미드 공사를 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적지 않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4.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61쪽)


⇨ 자기가 갖고 싶은 집이 어떤 집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고 남을 따라 해서 집을 장만하느라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과 비교하여 자신도 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을 듯하다.  




5.

세상에는 남의 말이란 통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때때로 이들은 나에게 채식만 하면서 살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기 위해(왜냐하면 핵심은 신념이니까.) 대못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노라고 대답해주곤 한다. 그 사람들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01~102쪽)


⇨ 대못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대답한 소로우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유머인인 듯. 




6.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는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바를 도와주라. 비록 그것이 당신이 보여주는 모범이며, 그 모범이 그 사람들이 따르기 힘든 것일지라도 말이다. 만일 돈을 주려거든 그 돈으로 무엇을 해줄 것이며, 돈을 그냥 내주지는 말라. 우리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가난한 사람은 누더기에 지저분하고 괴상망측한 꼴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그들이 춥거나 배고픈 것은 아닐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이 어느 정도는 그의 취향 때문이지 단지 불운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준다면 그는 그 돈으로 누더기를 더 장만할 가능성이 크다.(116~117쪽)


세상에는 도끼로 악의 뿌리를 내려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악의 가지를 치는 사람은 천 명이 있다고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주는 사람은 자기의 생활 방식을 통해서 그가 없애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불행을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조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사람은 노예 한 명을 판 대금으로 노예 아홉 명에게 일요일 하루만의 자유를 사주는 경건한 노예 농장 주인과도 같은 것이다.(117쪽)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집 부엌에 고용함으로써 친절을 베푼다. 부엌일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더 친절한 처사가 아닐까? 여러분은 수입의 1할을 자선사업에 바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수입의 9할을 바쳐 자선사업을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117쪽)


자선은 인류가 평가를 충분히 해주는 유일한 미덕이다. 아니, 그것은 지나친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이다.(118쪽)


⇨ ‘월든’을 읽다 보면 난해하여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자선이나 박애 정신을 언급한 내용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박애 정신’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월든’에서는 ‘자선 사업’으로 해석해 놓았다.) 소로우는 왜 ‘자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자선으로 인한 문제점을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늘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1) 남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2) 남에게 의존함으로써 독립된 삶을 살 수가 없다. 

3) 갑을 관계를 형성하여 자존감이 떨어진다. 

4) 주체적 자세를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이 내 생각을 펼쳐 볼 수 있었던 것은 소로우의 글 덕분이다. 소로우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7.

그리하여 나는 나의 청빈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잠시 동안이나마 부자가 된 경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농장의 경치만은 그대로 소유하기로 했으며, 그 후에도 손수레를 사용하는 일이 없이 해마다 경치의 소득을 거두어왔다. 경치에 관해서라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며,

세상에 내 권리를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127쪽)


⇨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 신선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때 그 순간 ‘아름다운 풍경의 주인은 나다’라고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면 그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리라. 




8.

‘아침 공기’에 대하여 쓴 글을 보자.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 전에 벌써 병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210쪽)


⇨ ‘아침 공기’에 대해 쓴 이 글만 봐도 소로우의 탁월한 문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침 공기’에 대해 우리가 글을 쓴다면 소로우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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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좋네요. 광화문은 언제 나가봤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ㅠ
월든이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못 읽겠다고 엄살일까요? ㅋ

페크pek0501 2023-12-05 20:31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만에 광화문역에 갔네요.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고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가 봅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소로우가 정확하게 쓰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난해한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문장이 너무 좋아 일독을 권할 만하답니다. 필사할 책을 찾는 분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시처럼 외우고 싶은 구절이 많습니다.^^

서니데이 2023-12-05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pek0501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12-05 20:33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벌써 12월입니다. 올해는 더욱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 듯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행복한 12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3-12-05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5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5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5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6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12-05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든...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이책저책에서 인용되기도 하고 그래서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아직 못읽었네요. 페크님 페이퍼 읽으니 얼른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페크pek0501 2023-12-06 11:52   좋아요 1 | URL
반가운 은오 님! 저도 월든을 처음 읽은 것이(알라딘 서재 기록에 따르면) 2011년이었는데 그때 완독을 하지 못해서 이번에 완독을 해 보려 합니다. 좋은 문장이 많아 읽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만, 필사하기 좋은 책 같아요. 은오 님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네요.^^

yamoo 2023-12-06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걸 보니 확실히 다시 봐야할 듯합니다. 월든 읽기의 동기를 부여해준 페크님에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그나저나 저도 스텔라님처럼 사진이 매우 좋습니다. 운치도 있고....광화문은 올해 꽤 많이 갔어요. 세종미술 축제때문에 근처를 4번 갔어요..ㅎㅎ광화문역 부근이라고 사진찍은 저곳은 어딘지 매우 궁금합니다..

페크pek0501 2023-12-07 15:21   좋아요 0 | URL
동기 부여...ㅋㅋ 시를 좋아하거나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이 책이 인기 있을 거예요.
좋은 문장을 찾아 밑줄을 치는 즐거움으로 읽고 있어요.
광화문에 오랜만에 갔는데 저도 세종문화회관쪽이나 교보문고에만 들렀지 저기는 처음 갔어요. 서울 도심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선했는데, 알아보니 거기가 광화문 부근에 있는 경희궁, 이라 합니다.^^

모나리자 2023-12-06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월든>을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역시 소로의 문장은 되새김하며 읽을 때 공감하게 됩니다.
자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부분은 그런 내용의 책이 나온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마음 공부를 하면서 들은 바로는, 특히 아프리카 빈민국에 원조를 한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가난한 것은 부정적이고 결핍의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주의 진동에 공명하듯이 그렇게 공명하기 때문에 여전히 가난하다고요. 그러니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잡는 방법을 알려 줄 때 잘 살게 된다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지요.
저도 좋은 책 만나면 페이퍼를 한번 작성해봐야겠습니다. 그냥 밑줄긋기만 하고 끝내는 것보다
다시 읽기, 곰곰히 생각하는 글쓰기가 될 것 같은데요.ㅎ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3-12-07 15:24   좋아요 1 | URL
<월든>을 반 이상 읽었어요. 빈민국 사람들에 대한 시선, 그렇군요. 모나리자 님 덕분에 새 시각을 배웁니다.
예. 밑줄긋기도 공부가 되지만 글에 대한 단상 쓰기,를 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꼭 관련이 없더라도 연상되는 것들을 쓰면 뭐든 쓰게 되니까요. 저는 글감이 없는 게 고민인지라... 제 머릿속에서 뭘 뽑아야 하는지 모르는지라
발췌와 단상 쓰기의 방식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모나리자 님도 편안한 날들 보내십시오.^^

2023-12-0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8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고통받기 때문이다.(63쪽)


우리가 사소한 일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서 고통받기 때문이며, 신을 안다고 말하는 자 중에 신을 사랑하는 자가 극히 적은 이유는 형식과 진실의 거리가 비교도 안 될 만큼 멀기 때문이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63쪽)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63~64쪽)






2.

대구에 사는 두 시누이(남편의 누나들)가 김장 김치를 보내왔다. 매년 이맘때면 김장 김치를 보내 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배달 온 택배 상자 안에서 봉지들을 꺼내 놓고 보니 김치 종류가 많고 양도 많았다. 배추김치, 무김치, 갓김치, 게다가 무말랭이까지 있었다. 


친정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려고 따로 덜어 놓았다. 


김장 김치가 있으니 겨울나기 준비를 해 놓은 듯 마음이 든든하다. 


두 형님의 음식 솜씨가 좋으니 얼마나 맛있을까? 이것저것 맛을 보면서 행복했다. 


두 형님의 정성 어린 손길이 그대로 느껴졌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라 했는데, 물 한 모금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듯 나는 김장 김치로 행복을 느꼈다. 


여기까지 나를 감동시킨 ‘김장 김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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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03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그렇겠어요. 행복은 나눌 때 커진다더니.
보기에도 맛있어 보입니다. 든든하고 행복하시겠어요.^^

페크pek0501 2023-12-05 16:0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기 그릇에 담아 둔 것의 두 배가 왔답니다. 어머니와 나누어 가졌어요.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김치 덕분에 새 반찬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반찬 걱정을 반은 덜은 셈입니다.^^

scott 2023-12-03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한 김치 나눔의 사랑 페크님의 가족은 따숩!^^

페크pek0501 2023-12-05 16:01   좋아요 1 | URL
스콧 님,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스콧 님의 댓글이 더 떠숩!^^

yamoo 2023-12-04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마음이 든든한 김치 나눔이네요! 행복을 주는 김치는 더욱 맛있을 거 같다는...ㅎㅎ

페크pek0501 2023-12-05 16:01   좋아요 1 | URL
산 김치도 맛있지만 정말 행복을 느끼게 하는 김치의 맛은 더욱 맛있네요.^^

희선 2023-12-06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시누이님이 김장 김치를 보내주시다니 고마운 일이군요 페크 님 겨울 준비 잘 하셨네요 두 분이 같은 곳에 사시는 건지... 두 분 다 페크 님을 생각해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페크 님 2023년 서재 달인 되신 거 축하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3-12-06 11:57   좋아요 0 | URL
예, 두 분 형님이 가까운 곳에 사셔서 시어머님집에 모여서 함께 김장을 했답니다.
희선 님도 서재의 달인, 에 선정되신 것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