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이 서재의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초창기 때 ‘알라딘 서재’에 대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아주 웃기는 현상이 있어. 방문자가 수백 명이 되는 알라디너는 다른 서재에 기웃거리며 댓글을 남기지 않아. 다만 자기 서재에 몰려드는 댓글에 답글을 쓸 뿐이야. 그는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린 왕의 포즈를 하고 있는 거지. 난 그런 왕이 어쩌다 한번 내 서재에 댓글을 남겨 주면 너무 영광스러워지는 거야.”

 
- 어느 서재에 쓴 나의 댓글을 옮김.
..........

 

 

서재 알라디너로서 활동한 지 8년이 넘었다. 여전히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린 왕들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을 보면 그런 방면으로 ‘능력자’라는 생각을 한다. 유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왕이 되고 싶지는 않다. 자주 글을 올리고 자주 답글을 써야 하는 게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단지 자주 글을 올리는 편에 속하지 않는 내 서재에, 보잘것없는 내 서재에 ‘좋아요’를 눌러 주시고 댓글을 써 주시는 분들에게 각별히 고마움을 느낀다.

 

 

 

 

 

 


2.
..........
저의 경우, 아주 신중해지면 글을 올리지 못하겠더라고요. 대충 살자,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글을 올려요. 글을 올릴 때 자신 없는 글 - 내가 맞게 쓴 건지 잘 모를 때를 말함 - 을 올릴 때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예전에 이러이러하게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은 저러저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라고 쓰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실제로 작가들의 책을 읽어 보면 시간에 따라 생각의 변함이 있더라고요. 생각이 늘 고여 있는 물일 수는 없잖아요.

 

블로거가 되려면 제일의 조건은 이것 같아요. 신중하지 말 것. 다른 말로 바꾸면 소심하지 말 것, 이 되겠습니다. 신중함과 소심함은 동의어로 느껴지곤 합니다. 원래 글쟁이란 창피함을 무릅쓰고 글을 쓰는 자, 라고 봅니다. 창피한데도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단 창피한 게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랄까요?

 

이 댓글 역시,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올리는 바입니다. ㅋ


- 어느 서재에 쓴 나의 댓글을 옮김.
..........

 

 

나는 왜 창피함을 무릅쓰고 글을 쓰며 사는 걸까? 이것에 대한 답을 생각하곤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 쓴 책들이 많은데 그러니 나까지 보탤 필요가 없는 건데 하면서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내 생각을 남들과 단순히 공유하고 싶어서일까, 내가 어떤 멋진 생각을 했음을 뽐내고 싶어서일까, 즐거운 생활을 위해 취미는 있어야 하겠고 그런데 다른 취미는 없고 어쩌다 보니 글이라도 쓰자는 생각을 하게 돼서일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요즘 다른 이유를 찾았다. 근심이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라는 것. 예를 하나 들면 병치레가 잦은 친정어머니가 이번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거라는 것.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쓰기에 집중한 나머지 어떤 상념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게 나는 좋은 것이다. 결국 글을 쓰는 건 나를 위한 것이다. 

 

 

 

 

 

 

홍천의 생태숲

 

 

 

 

 

 


3.
요즘 한약을 먹고 있다.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애쓴다며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한의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지은 약이다. 보약인 셈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랫동서까지 데리고 가서 약을 지었으니 며느리들의 건강을 챙겨 주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며느리한테 병이 생기면 시어머니의 입장에선 당신의 아들이 불행해질 것이니 며느리의 건강을 챙기는 일은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시어머니가 흔치 않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시댁 식구들의 애정이 느껴져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약 얘기를 하면서 “난 다음에 또 태어난다면 우리 시댁으로 또 시집가고 싶어.”라고 말했더니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다음에 또 태어나면 또 니 남편과 결혼하고 싶어?”라고. 이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노노노. 다음엔 다른 남자와 살아봐야지 무슨 소리야? 시댁만 그렇다는 거지.” 모두들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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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07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 글은 유난히 저의 마음을 대변하시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와요. 어쩌면 그리도 꼭 집어내시는지...ㅋㅋ
사람들이 SNS를 하는 건 인정 받고 싶어서라더군요.
정말 그렇구나 싶어요.
이것 땜에 죽는 사람도 있다니 참...
저도 어머니 아플 때 유독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시어머님 정말 속이 깊으시네요.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시댁 어른을 잘 만나는 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복이 많으시네요. 언니는.^^

페크pek0501 2017-09-07 18:46   좋아요 2 | URL
왕이 납시셨네요. ㅋㅋ 제가 여기서 올챙이일 시절에 스텔라 님도 왕에 속했답니다. 님의 서재가 매일 수백 명이 방문하는 서재였으니까요. 그러니 스텔라 님이 제 서재에 첫 댓글을 남기셨을 때, 저는 영광스러웠겠지요.

그 시절, 왕으로 생각되던 분들로 스텔라 님, 로쟈 님, 마태우스 님, 글샘 님, 순오기 님 등이었어요. 참 대단하다 싶었죠.

그로부터 벌써 8년이 지났다는 걸 생각하니 참 시간이 빠르다 싶습니다.

stella.K 2017-09-07 18:57   좋아요 3 | URL
헉, 제가 언니 서재에 첫 댓글러였습니까?
몰랐네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좀 더 읽직 알아 뵙는 건데...
그래서 언니가 저를 예뻐라 하시는거구나.ㅋㅋ

하긴 첫 대글자를 잊지 못하죠.
저도 저의 서재 첫 방명자가 있었는데
kimji라는 분이셨어요.
오래 전에 활동을 중단하셨지만.
그런데 그분이 이후에 별로 제 서재에 댓글을 안 남기셔서
뜨악하니 멀어졌습니다. 전 안 그러죠? 열열히 남기잖아요.ㅎㅎ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네요.
지금은 북풀 땜에 조회수가 높지 않아요.
두자릿수죠. 어떤 땐 한 자리인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아예 투데이를 확인 안하려고 막아놨잖아요.
물론 알라딘 서재 가면 확인할 수 있지만.ㅠ

벌써 8년이군요.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7-09-07 19:06   좋아요 3 | URL
처음 왕의 댓글을 받은 것은 글샘 님이셨어요. 아마 그 다음이 순오기 님이셨을 듯하네요.
스텔라 님은 제가 주로 방문하고 제가 주로 댓글을 썼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서로 왕래하며 댓글을 쓰게 되었죠.

어쨌든 스텔라 님은 왕이셨습니다. 제 눈엔... ㅋ

(참고로, 북플로 제 글을 읽는 건 방문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으니 방문자 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본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북플로 들어가 보는 것도 방문자 수에 포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stella.K 2017-09-07 19:07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언니....
오늘 완전히 저를 들었다 놨다 하시는군요. 어떻게...ㅋㅋㅋㅋㅠㅠ
암튼 전 언니를 사랑합니다.^^

페크pek0501 2017-09-07 19:08   좋아요 1 | URL
미 투...(하트 뿅뿅)

qualia 2017-09-07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pek0501 님, 정말 좋은 생각,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큰 공감을 주니까요. 위 stella.K 님 생각도 정말 제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주신 듯하네요.

페크pek0501 2017-09-07 19:03   좋아요 1 | URL
와와와... 반갑습니다. 글쟁이들의 생각이란 게 다 비슷한 모양이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cyrus 2017-09-07 1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글에 인용된 첫 번째 댓글,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작년부터 인맥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친구 수 많아봤자 별 의미가 없고 셀럽, 인기 블로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페크pek0501 2017-09-09 18:22   좋아요 0 | URL
인맥 다이어트라, 처음 듣습니다. 재밌는 말이에요.
블로그에서뿐만 아니라 저는 이미 친구 수도 줄였답니다.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열 명 미만으로 만들었어요.
친구 수 많은 것보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서너 명만 있는 게 좋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더군요.

그런데 cyrus 님 정도면 인기 블로거입니다. ㅋ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7-09-07 2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8년 되셨다고 하시면 그동안 좋은 글을 많이 쓰셨겠네요. 저는 중간의 어디쯤 부터 읽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계속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블로그를 하면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고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pek0501님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17-09-09 18:24   좋아요 1 | URL
8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훌쩍 가 버린 느낌이에요. 세월을 화살로 비유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앞으로 8년도 훌쩍 가 버릴 것 같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AgalmA 2017-09-07 21: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와서 소통을 부르짖으며 다른 서재 댓글 엄청 남겨서 제가 얻은 게 뭐였나 생각하면.... 트러블과 마음상함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쌍방의 과실도 있겠으나 암튼 그래서 요즘은 예전의 반도 남기지 못하게/않게 됐어요. 댓글로 생각지 못한 유익한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겠지만 시간적으로도 에너지적으로도 책 읽는 게 더 유익할 지도 모르겠단 잠정적 결론. 아마 다른 분들도 대개 이렇지 않나 하는데요. 속깊게 길게 대화하는 이웃들이 다들 편중되어 있죠.
그러나 가끔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 때는 정말 기쁘죠. 저도 알맹이 있는 댓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요.
요즘 저는 서재에 수다성 글을 많이 쓰는 편인데 이웃에게 정보가 될 만한 글이면 올린다는 제 나름의 방침이 있습니다ㅎ
누가 내 서재 얼마 오고 나가고 신경쓰지 않고 마이웨이~하시면 더 맘이 편하지 않을까요^^?

페크pek0501 2017-09-09 18:31   좋아요 2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말도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는데 문자는 더 그럴 거고,
각자 생각이 다르니 마음이 상할 수 있겠죠. 저도 어떤 때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댓글을 쓴 것 같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 쓰일 때가 있더라고요.

매일 체크하는 건 아니지만 방문자 수를 보는 게 저는 재밌습니다. 그것에 대해 스트레스 전혀 없습니다. 차라리 방문 수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일상의 고민이 하나도 없으면 좋겠어요. 난 오로지 블로그가 내 고민이야,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방문자 수가 그날 내 글을 읽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부정확한 게 싫어서 정확함을 기하기 위해 북플로 글을 읽는 사람도 포함시켰으면 했습니다. 물론 방문자 수가 많아지면 적은 것보다 좋지요.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노라, 마이웨이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7-09-08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9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9-08 0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 ^^ 구구절절 공감 표시를 눌러도 된다면 그러고 싶은 얘기들입니다 .
댓글로 말하면 저 만큼 많이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말을 거는 사람도 없지 싶은데요 .ㅎㅎㅎ
막상 제 방은 늘 거의 비어있기 마련 ^^
그래도 늘 짧은 글이어도 있을때마다 좋아요 ㅡ 쿡! 눌러 주시는 분들 덕에 그렇게 떠드는게 힘들지 않았네요 .
단 ,제가 먼저 걸지 않으면 제게 말을 걸어 오는 분들은 지극히 제한적이란 것 ..!!

그러나 , 알라딘 , 북플의 이웃님들은 제게 소중한 가족입니다 . ^^
쓸데없이 떠들어도 항상 귀기울여 주신 pek0501 님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7-09-09 18:37   좋아요 2 | URL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장소 님의 방이 비어 있지 않던데요. ㅋ
˝알라딘 , 북플의 이웃님들은 제게 소중한 가족입니다˝와 같은 말씀은
마음이 아름다운 분만이 하실 수 있는 거랍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앞으로 쭉~ 왕래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AgalmA 2017-09-09 18:57   좋아요 2 | URL
저는 어쩌다 그볶음자리님 스토커가 되어서...만나면 반갑다고 댓글러~~🎼
그장소님과 이야기하는 재미에 빠지면 도끼 썩는 줄 모르는데 그게 무섭죠ㅎㅎ

역시 댓글이 많을라면 얘기거리 많은 걸 가득 쏟아내든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 정을 많이 풀어야 되는 듯~

페크pek0501 2017-09-09 19:05   좋아요 2 | URL
발품을 팔아야 하는 건 맞습니다. 짝짝짝~~~.
그것이 덕을 쌓는 일이기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응원의 뜻이니까요.
저도 시간이 날 때 여기저기 다니며 댓글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AgalmA 2017-09-09 19:28   좋아요 2 | URL
그런데 댓글도 마음이 동할 정도여야 글이 써지지 않나요?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을 주고받는 게 적어도 님과 제 목적은 아니잖아요.
암튼 pek0501님은 소통에 대해 아직도 많이 열려 있으신 거 같아 보기 좋네요. 좋은 대화 거리도 상대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점점. 위 본문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왕의 선언문 같은 양식이거나 자기 정신분석 해달라는 요청서 같은 글이 넘쳐나서.

[그장소] 2017-09-09 20:16   좋아요 2 | URL
pek0501 님 말씀에 갑자기 마음이 더없이 아름다워지려고 하잖아요~^^
바탕이 아름다운 마음은 아닌데 , 그러려고 ~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뿐이지 , ㅎㅎㅎ
그러니 앞으로도 쭉 그런 마음 가꿀 수 있게 마음 가두리가 되어주세요 . ^^

[그장소] 2017-09-09 20: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 ~^^ 낮동안 좋은 하루셨나요?ㅎㅎㅎ
맞아요 . 맞아 . 댓글을 주고 받는 게 마음 자체를 주고 받는 것이기도 하고 , 그러면서 책의 정보도 생각도 , 일상도 점차 주고받게 되는거 같아요 . 나누는 것이랄까요 ?

글구 창졸지간에 볶음자리 스토커에 썩는 줄 모르는 도끼자루 역 까지 동시다발성 1인 다역극의 주역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닷~~^^ㅋ

여기에 , 또 제겐 AgalmA 님도 계시고 pek0501 님도 계셔서 운도 좋고 , 복도 많지 그럽니다~^^

페크pek0501 2017-09-13 11:37   좋아요 2 | URL
AgalmA 님도, 그장소 님도 계셔서 저는 인복 많은 사람이올시다. 으하~~

이 청명한 계절를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끽하는 하루가 됩시다.

두 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7-09-13 11:45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역시 고맙습니다~^^pek0501 님 !!♡
 

 

 


..........
사람은 대개 보고 듣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믿는다. 믿는다는 건 실은 욕망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교양인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말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극복될 수 있다는 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실은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81쪽)

 

 


행복은 경쟁이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 경쟁에서 뒤쳐져 불행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나 경쟁에서 이겨 행복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나 불행하긴 매한가지다.(89쪽)

 

 

 

자기를 성찰한다는 건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 것.
남 생각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건
결국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해체하는 것이다.(109쪽)

 

 


모든 운동엔 두 가지 필수적인 덕목이 있다. 첫째는 자기가 하는 운동에 대한 분명한 ‘자부’이고, 둘째는 자기가 하는 운동이 운동의 일부라는 ‘겸손’이다. 자부가 없는 운동은 비루해지고, 겸손이 없는 운동은 빗나간다.(109쪽)

 

 


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에서.
..........

 

 

 

 

제가 밑줄을 그은 글 중에서 뽑아 옮겼습니다.
멋진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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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8-29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이라고 하시는만큼 좋은 책이겠지만, pek0501님이 고르신 내용도 참 좋습니다.
오늘은 비가 그치고 조용한 것 같아요. 시원하고 기분좋은 하루되세요.^^

페크pek0501 2017-08-30 13:19   좋아요 1 | URL
옙, 감사합니다.
아포리즘의 글은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음미하는 재미가 있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에디터D 2017-09-0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구매할까 고민중이에요.ㅎㅎ

페크pek0501 2017-09-04 15: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 이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이런 류의 책은 구매하여 자주 들춰 보는 걸 저는 좋아합니다.
아포리즘은 한번 쓱 읽고 말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
누군가에게 홀린 사람은 자기를 홀린 것이 그 사람의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이지,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홀림당한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 이승우 저, <사랑의 생애>, 72쪽.
..........
 

 

 

이번 달에 <사랑의 생애>를 완독했다. 위의 글을 읽다가 내가 대학 일년생이었던 과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 앞 다방에서 친구들과 넷이 모여 앉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 얘기를 나눴던 어느 시간 속이다. 우리는 그때 남학생과 미팅을 몇 번 했던 터라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 때였다.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것 즉 미팅을 할 때 우리 눈에 어떤 남학생이 멋있게 보이는 건지 우린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 건지 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러니까 미팅 파트너의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이다. 외모인가? 학벌인가? 성격인가? 목소리인가? 집안인가?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만장일치로 명쾌하게 내린 그때의 결론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것은 상대의 빼어난 외모도 아니고, 좋은 학벌도 아니고, 호감 가는 성격도 아니고, 성우와 같은 목소리도 아니고, 든든한 백이 있거나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그저 상대가 풍기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고 단정을 지었다. 다시 말해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가 좋으면 우리가 끌리는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우리 나이 고작 스물이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던 풋풋한 스물.

 

 

지금 생각하면 우리를 끌리게 하는 것이 상대의 ‘분위기’인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같은 조건의 두 사람 중에서 잘생긴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은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 이유를 ‘분위기’로 설명할 땐 제법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 상대의 외모, 학벌, 성격, 목소리, 집안, 눈빛, 어떤 태도, 어떤 재주, 말솜씨, 지성미, 야성미 등 여러 변수 중 그 어떤 것에 유독 끌리는 게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는 그것들의 총합이 남들보다 월등하여 끌리는 경우도 있겠다. 반대로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 끌리는 경우도 있겠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의 매력을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가 좋아.”라고 말할 경우다. 어쩌면 ‘어쩐지’라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매력을 나타내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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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9 1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분위기.
그런데 그 나이 땐 분위기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잘 생겼냐, 못 생겼냐부터 따지지 않나요? ㅎ
암튼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어요.
지금은 우리의 자식들이 그럴 차례니 격세지감 입니다.ㅠ

오늘은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이불도 끌어 덮고 자고.
어떻게 날씨가 이럴 수 있는지 그 또한 신기할 정돕니다.
작년 이맘 때도 더워서 헥헥댔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페크pek0501 2017-08-30 12:46   좋아요 2 | URL
분위기가 좋은 남자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만, 저도 미혼 시절 땐 외모 많이 따졌지요.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양. 요즘 우리 딸들이 외모 따지는 걸 보니 한심하더군요. 중요한 건 외면이 아니라 내면인데 말이죠.

제가 터득한 바에 따르면 못생긴 사람도 재주 없는 사람도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누가 발견하느냐에 따라 연애가 시작되지요. 이걸 실험으로 외국에서 증명한 일도 있어요. 직장에서 한쌍씩 묶어서 일을 시켰더니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거예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꽤 높은 퍼센트였어요.
배우들이 남녀 주인공을 맡으면 결혼에 골인하는 것도 그래서일 거라는 추측입니다.

날씨가 어제는 춥기까지 해서 이렇게 여름이 훌쩍 떠날 수 있는 건가, 의아해 했다는...

오늘도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습니다. 저녁이면 시원해질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2017-08-29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30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실보다는 만화에서 주로 나오는 상황인데, 상대가 불쌍하게 느껴져서 결혼해주는 동정혼이라는 게 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반 고흐가 가난하고 병든 시엔과 결혼하고 싶었던 이유를 동정혼의 의미로 봤습니다.

페크pek0501 2017-08-30 12:50   좋아요 1 | URL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남자들이 있어요. 예전에 그런 이유로 제임스딘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눈물을 흘리면 안아 주고 싶게 만들죠.
남자들도 여자들의 눈물에 약한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사랑은 저마다의 빛깔이 다 있어서 다 다른 감정으로 사랑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뭐다, 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qualia 2017-08-29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홀린 사람은 자기를 홀린 것이 그 사람의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이지,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는 아닌 것이다. 홀림당한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 이승우 저, <사랑의 생애>, 72쪽.

→ 저는 pek0501 님께서 인용해주신 소설가 이승우의 윗글을 읽고, 인공지능(AI)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궁극적으로 인공으로 만든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확신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결국 의식을 소유할 수는 없을 것이란 얘깁니다(적어도 근미래 2045년 안팎까지는). 기껏해야 유사 의식이나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 소유에 그치리라 봅니다. 인공지능이 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한, 결국 인간을 모든 점에서 능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소설가 이승우의 위 얘기를 중심으로 함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두 사람 F와 M이 있다고 합시다. F가 M한테 홀렸어요. 근데 F가 M한테 홀리기 위해선 반드시 F와 M 사이에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이 오고가야만 하죠. 즉 F가 M한테 홀렸다는 사실은 F와 M 사이에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감각적 자극과 반응 없이는 그 어떤 의식 작용(예컨대 홀림이라는 의식 작용)도 발생할 수 없다는 인과의 기본 사실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소설가 이승우는 F의 홀림이라는 의식적·심리적 변화를 초래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F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즉 당사자 F는 그 감각적 자극과 반응의 구체적 명세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게 소설가 이승우가 윗글에서 얘기하는 요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소설가 이승우의 위 얘기를 분석적 차원에서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F의 홀림을 야기한 감각적 자극(과 반응)의 후보로서 소설가 이승우가 윗글에서 예시한 것을 함 도식적으로 나타내 보죠.

①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것에 실려 있는 어떤 것
②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
③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

윗글에서 소설가 이승우는 홀림을 야기한 것은, 좀 더 정확히 말해 홀림을 야기한 감각적 인과 요소는 ①과 ②이지 ③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①, ②, ③ 각각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더 세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은 홀림을 야기한 것이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시각적 자극(물)에 ‘실려 있는’ 어떤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이게 과연 무엇일까요?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것은 더 고차적인 시각적 자극일까요? 즉 더 미묘하고 더 섬세하고 고차적인 통합적 유형의 시각일까요? 그런 유형의 시각이 있을까요? 아니면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것은 시각적 자극 이외의 다른 유형의 자극인 것일까요? 위 짧은 인용문만 가지고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시각적 자극에 실려 있는 어떤 것이라고 했으니까, 시각적 자극이 아닌 다른 유형의 자극이라고까진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걸 부정하면 위 문장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순의 악순환에 빠지는 무의미한 문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각 자극과 다른 여러 유형의 자극이 융합되거나 통합된 형태의 복합 자극일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해서 우리가 논의를 명료하게 진행하기 위해 일단은 ①을 얼굴선, 몸매, 눈빛 같은 일차적이고 개별적인 시각 자극을 중심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유형의 자극들과 융합되거나 통합된 형태의 복합적 시각 자극, 즉 좀 더 미묘하고 섬세하고 고차적인 통합적인 유형의 시각 자극이라고 합의해 보죠. 다음으로 ②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기운’은 더욱더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감각적 자극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촉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직설적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일종의 문학적 표현이랄 수 있는데요. 그래도 감각적 자극의 측면에서 분석을 해보면 단순히 일차적인 시·청·촉·후·미각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에 묻어서 함께 느껴져오는 어떤 감각의 총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즉 뭐라고 딱 꼬집어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감각의 총체를 기운이라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도 기운이라는 말에 현혹돼 감각이라는 근본적 인과 요소를 배제하면 애초에 말이 성립되지 않는 무한퇴행에 빠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③은 말 그대로 ‘얼굴선이나 몸매나 눈빛 자체’라고 했으니까 일차적인 시각 자극을 직접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우리가 혼란스러움 없이 곧바로 동의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봅니다. 이제까지의 분석을 종합·정리·요약해 말하자면, 소설가 이승우의 얘기는 결국 홀림이라는 의식적 변화 즉 심리적 사건을 야기한 것은 일차적인 감각으로서의 개별적 시·청·촉·후·미각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것은 개별적 시·청·촉·후·미각들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좀 더 고차적인 것으로 통합된 감각의 총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가 이승우는 나아가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다. (···) 따라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홀림에 대한 이런 명제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해 보죠.

④ 홀림은 이성적 판단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⑤ 홀림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홀림의 의식적 속성을 얘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홀림을 야기한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고차적인 통합적 감각의 총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홀림 자체의 의식적·감정적 측면까지 이성적 접근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죠. 다시 말해 소설가 이승우는 홀림의 감각적 인과 관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감각적 인과 관계에 따라 발생한 홀림이라는 의식적 사건의 본질은 이성적(과학적)으론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저 홀림이라는 독특한 느낌이나 감각질(qualia)을 느낄 수 있을 뿐이란 것이죠. 이것은 pek0501 님께서 위에서 얘기한 분위기(일종의 mood)라는 개념에도 거의 동일하게 해당되는 얘기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위에서 말한 인공지능의 한계와 직결되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공지능(AI)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인공으로 만든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의식과 관련해선 기껏해야 유사 의식이나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 소유에 그칠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근본적으로 계산(computation, 연산, 전산)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전자전산적 체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의식의 본질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산은 궁극적으로 의식을 실현(realization, implementation, instantiation, 구현, 예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해서 홀림이라는 본질적으로 의식적인 사건을 인공지능은 파악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으리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pek0501 님의 윗글 중 맨 마지막 단락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맺도록 하죠.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의 매력을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가 좋아.”라고 말할 경우다. 어쩌면 ‘어쩐지’라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매력을 나타내는 것인지 모른다.》

과연 인공지능 AI가 위와 같은 의식적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요? 물론 제가 판단하기에도 근미래(적어도 2045년까지)의 인공지능 로봇은 완벽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어떤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를 완벽한 말솜씨로 우리한테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의 본질은 유사 지능 혹은 시뮬레이션 지능(simulated intelligence, simulation of intelligence)이거나 유사 의식 혹은 시뮬레이션 의식(simulated consciousness, simulation of consciousness)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은 튜링 테스트를 충분히 통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튜링 테스트로는 근본적으로 의식의 소유 여부를 판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뇌의 내부 나아가 의식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선 튜링 테스트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애초에 의식 내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설정한 테스트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페크pek0501 2017-08-30 12:56   좋아요 1 | URL
qualia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좋은 글은 댓글로 남기기 아깝지 않나요? 저 같으면 쓰다가 길어지면 페이퍼로 올리게 될 때가 있어요. 님도 페이퍼로 올려 보시길 강추합니다.
님의 댓글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듯이 언젠가는 로봇을 하나씩 갖고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로봇에게 감정을 심게 됩니다. 그랬더니 나의 로봇과 내 딸의 로봇이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인간을 위해 복종하며 살아야 하나?‘그러면서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방법도 알고 있어서 다른 데에 취직을 합니다.
나중엔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며 인간들과 싸우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하하~~ 제 상상입니다. 님의 댓글을 읽다가 생각난 걸 써 봤어요.
긴 댓글,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특히 저녁에) 걷는 걸 좋아합니다.
님도 좋은 늦여름을 만끽하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한수철 2017-08-29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는 제 기준에는 실패한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끝까지 읽지 않은 유일한 이승우의 소설이니까요.ㅎㅎㅎ 고루했어연.
농담입니다.
그나저나

이 소설은 남녀의 연애를 뭔가 ‘의고적‘으로 다뤘지요. 즉,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기준에는 그렇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이십 대 남녀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몇 페이지 읽다가 집어던질 거라는 데 전재산을 걸고자 합니다.

아무튼

stellak 님의 댓글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댓글은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아무 전제도 없이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라면 댓글을 달아 주기 너무나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지랖이라면 실례했습니다. 어쨌거나

이승우의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는 좀 별로였다는 생각입니다. 뭐,

그냥 그렇다고요.^^

qualia 2017-08-30 20:47   좋아요 1 | URL
아무튼

stellak 님의 댓글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댓글은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아무 전제도 없이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라면 댓글을 달아 주기 너무나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지랖이라면 실례했습니다.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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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아요. ‘기상천외’는 너무 과한 칭찬의 말씀의 말씀인 것 같고요. 약간 맥락이 벗어난 느낌은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저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나 감정(emotion, feeling, affect)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요즈음, 인공지능의 의식 소유 여부 논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라딘 블로그 동네에서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동네에서도 인공지능의 의식 소유 여부 논제에 대한 (댓)글들을 꽤 많이 써올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관심이 아주 고조돼 있던 참이었죠. 근데 딱 pek0501 님의 윗글을 읽게 된 거예요.

pek0501 님의 윗글은 우리 인간 의식의 핵심적인 속성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pek0501 님께서 인용해주신 소설가 이승우의 ‘홀림’에 대한 단상뿐만 아니라 pek0501 님의 ‘분위기’에 대한 사유는 인간 의식 혹은 감정의 고유한 속성(property, attribute)이 어떤 것인지, 그런 속성들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독자적 실체인지, 과연 인공지능이나 미래의 앤드로이드 로봇들은 그런 의식이나 감정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식/감정은 지능(intelligence)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같은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논제들을 논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안성맞춤인 글이라는 것이죠.

함 생각해보세요. 과연 인공지능이, 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앤드로이드가 저런 홀림과 분위기라는 미묘하고도 독특한, 그 신비로운 의식의 풍요로운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단지 기계에 불과하고, 단지 계산이라는 디지털 연산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저런 인간 고유의 감정과 느낌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자신의 내적 의식 세계의 풍경을, 감정의 섬세한 갈피갈피를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 언어로써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pek0501 님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교 앞 다방에서 친구들과 옛 추억에 대해 즐겁게 얘기를 나누면서, 미팅 상대 남학생들한테 느꼈던 첫인상을 재미있게 풀어놓으면서 품평회를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고 ‘마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과연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 끌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의식 소유 여부에 대한 논제를 다루는 데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입니다. 위와 같은 질문들로부터 인공지능과 로봇의 의식 소유 여부에 대한 논의와 탐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의식과 지능 개념에 대한 논자들의 철학적·과학적 입장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 일반이나 지식인 사회에 인공지능에 대한 논제가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흥미를 끄는 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런 무성한 논의들이 있음에도 위와 같은 기본적·본질적인 물음들에 대한 논의와 천착은 그닥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고 제 의견을 써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pek0501 님께 속으로 아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아주 짧게 소설가 이승우의 ‘홀림’에 대한 단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올리려고 했던 것이었죠. 사실 소설가 이승우의 윗글은 매우 애매모호하고 매우 비일관적인 논리의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가의 단상이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문학가의 저런 문학적인 글을 논리적 분석의 잣대로 평가하고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는 ‘우물에 숭늉’이나 연목구어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소설가 이승우의 위 단상은 pek0501 님의 윗글이 그렇듯이 우리 인간 의식의 고유성을 너무나 깊고도 적실하게 드러내는 아주 훌륭한 사례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인간 추월을 확실한 미래 사실로 맹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확신 혹은 맹신 중 지식(knowledge)이나 지능(intelligence) 분야의 인간 추월 주장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 봅니다. 하지만 의식에 관한 한 인공지능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해서 인공지능이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완전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 적어도 최소한 특이점 도래 예측 시점인 2045년 이전까지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이런 근미래를 넘어 중미래 2099년까지도 인공지능·로봇·앤드로이드 등의 의식 소유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21세기 초 현대 인간의 기대수명을 편의상 100년이라고 한다면, 이 기대수명을 훨씬 넘어서는 150년 이상의 원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실효적·실질적·현실적 의미가 그닥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구체적 시간 설정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SF 영화적 공상과 환상을 펼치는 것은 미래 예측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서 구체적 미래 시점을 밝히지 않고 인공지능·로봇·앤드로이드가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식으로 막연한 AI 종말론, AI 비관론을 아무런 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것은 그 의미나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논증은 그럴 듯하게 제시하지 못하는/않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근거 없는 억측과 강변이 대세인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 철학자·과학자들 중에는 아주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죠. 해서 저는 인공지능의 완전 인간 추월을 주장하시는 분들한테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 인류를 멸종시키고 지구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과연 저런 기본적·근본적 물음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런 물음에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없다면 그들의 AI 종말론, AI 비관론 주장은 허구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결론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생각에서 제가 위 댓글을 써올렸다는 것이죠. 해서 (앞뒤 맥락을 모르는) 어떤 분들한테는 한수철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약간 기상천외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번에도 쓰다 보니까 또 이렇게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처음 올린 시각 : 2017-08-30 11:47]
[수정해 올린 시각 : 2017-08-30 12:53]
[다시 일부 수정 증보해 올린 시각 : 2017-08-30 20:46]

페크pek0501 2017-08-30 13:03   좋아요 1 | URL
한수철 님.
‘사랑의 생애‘는 저도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사서 본 것을 후회할 정도예요.
오래전에 읽었던 <생의 이면>이 훨씬 좋았어요. 팬이라서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읽어서인지 실망하며 읽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독한 것은 술술 읽혀서이고 끝에가서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문장 반복과 의미 반복이 많은 것도 흠입니다.
왜 같은 저자의 소설인데 어떤 것은 매력적으로 읽히고 어떤 것은 시시하게 읽힐까요?
저는 저자가 매력적인 사람은 글도 매력적으로 쓸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보니 제 생각이 틀렸지 뭡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유익한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작가의 연애 또는 사랑에 대한 분석이니까, 한 사람의 관점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물론 이것만 읽으면 안 되고 여러 책을 두루 봐야 제대로 연애 또는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08-30 13:13   좋아요 0 | URL
qualia 님,

˝근데 저는 pek0501 님의 윗글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나 감정(emotion, feeling, affect)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기계에 불과하고, 단지 계산이라는 디지털 연산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저런 인간 고유의 감정과 느낌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자신의 내적 의식 세계의 풍경을, 감정의 섬세한 갈피갈피를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 언어로써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 이것에 희망을 겁니다. 로봇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순 있어도 인간을 못 따라오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감정의 영역.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긴 댓글을 쉽게 쓰시는 분들은 저로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좋은 댓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ualia 2017-08-31 21:16   좋아요 1 | URL
pek0501 님, 한수철 님, 촌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은 아주 오래전에 읽어본 것 같은데요. 좀 철학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에서 이승우의 소설이 꽤 읽힌다는 보도도 있었죠. 사실 위에 pek0501 님께서 위에 인용해주신 이승우의 ‘홀림/홀림당함’에 대한 단상은 분석적 잣대로 봤을 때는 매우 불투명한 문장이라고 봅니다. 제가 위 댓글들에서 나름대로 분석은 해봤습니다만, 어떤 일관적 논리성을 포착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소설가, 시인들의 단상 혹은 에세이에 그런 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소설가나 시인들은 더욱더 그런 논리적 일관성을 벗어나 달아나야겠지요. 혹은 넘어서거나 추월해야 할 겁니다. 저 자신 또한 너무 했던 얘기 또 하고 중언부언하고 동어반복하고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 단계 더 올라서거나 한 단계 더 파고들어야 할 텐데요. 아무튼 그런 (미래의) 계기를 주신 pek0501 님과 한수철 님께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17-09-04 15:31   좋아요 0 | URL
qualia 님, 감사합니다.

청명한 하늘을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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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지났고 말복도 지났고 뜨거움도 지났다.
끝났다 여름은.

잔향만 남아 앞으로 며칠 더울 순 있어도...


그러니 실컷 봐 두자.
더위 때문에 지쳐서 놓친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이 풍경도 곧 지나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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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8-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지 멋집니다.

페크pek0501 2017-08-19 22:12   좋아요 0 | URL
라로 님, 그렇죠?
홍천에 있는 생태숲입니다.
꽃 피는 봄의 풍경도 예쁘지만 저는 푸름이 가득한 여름이 더 예쁘다고 느낍니다.
사진 찍으면서 즐거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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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가 지나쳐갈 때 아주 어린 흑인 하나가 몸을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여준 표정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적대감이나 경멸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시무룩하지도 않았으며 호기심마저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수줍은 흑인의 표정이었다. 대단히 깊은 존경이 담긴 표정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이 가여운 소년은 프랑스 시민이라는 이유로 숲에서 끌려 나와 군대 주둔지에서 바닥을 문지르고 매독에 걸리면서도 백인 앞에서 정말 존경심을 느낀다. 백인이 그의 주인이라고 배웠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흑인 부대가 행군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느 백인이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더 속일 수 있을까?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 <천천히, 스미는>, 147~148쪽, 조지오웰이 쓴 ‘마라케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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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코멘트 :

역사가 말해 준다. 잘못된 것은 언젠가는 바로잡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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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경로석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이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이 힘겹게 서 있어도 경로석이 아니므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대중교통에서 모든 좌석은 당연히 경로석이다.

 

-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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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코멘트 :

나의 고정 관념을 깨는 글이다. 난 왜 이런 글을 쓸 생각을 못했을까. 경로석이든 아니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당연한 것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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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때로는 자기 자신과도 다르다.

 

- <장언과 성찰>,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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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코멘트 :
내가 나답지 않을 때가 있듯이, 당신도 당신답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만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갑질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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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6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7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7-08-18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흑인소년 이야기, 팍 꽂히네요
수줍은 존경이 담긴 표정 ㅡ사진전을 둘러 보면 그런 모습 볼 때가 있는데 그들의 선량한 눈빛이 속이는 자를 향한 총구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진 못했어요~

페크pek0501 2017-08-18 22:48   좋아요 0 | URL
다크 님, 오랜만의 출현이시네요.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표현을 저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지라 이런 게 바로 작가의 문장 기술이구나 생각했어요. 조지오웰은 문장력이 별로 좋지 않다고 평가 받는 작가인데도 말이죠.
같은 뜻을 담은 내용이라도 표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데 요즘 저는 책 읽으면서 그 맛을 찾는 걸 즐기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신지 2017-08-18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더 속일 수 있을까? 그들이 총구를 반대쪽으로 돌릴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저도 요즘은 매사에 작용이 있으면, 응당 반작용이 있겠구나 싶은데, 조지오웰의 인용문, 강렬하네요. 그러고보니 항상 보관함에 있었으면서, 조지오웰 책은 아직 보지 못했네요.~

페크pek0501 2017-08-18 22:51   좋아요 1 | URL
신지 님, 안녕하세요?
조지오웰은 <1984년>같은 소설도 좋았지만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좋더라고요.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작가 같아요.
저도 조지오웰의 책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즐거운 불금은 보내지 있지 못하지만 금요일 밤은 참 좋습니다.
굿 밤 되세요.

한수철 2017-08-1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마지막 코멘트는 아주 뛰어난 아포리즘이네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댓글 남겨 봅니다. 뭐, 기분이 라이트한 금요일 오전이라서요.ㅎㅎ

페크pek0501 2017-08-18 22:54   좋아요 0 | URL
아포리즘... ㅋㅋ 그런 글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런 글 좀 써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영광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랜만에 옛 친구 세 분이 다녀가셨네요.
잊지 않고 찾아 주시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주 좀 보고 삽시다.(저부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