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하지만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여
가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 뜨거운 열기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완연한 가을이
차지할 것만 같습니다.

 

 

지금 누구에게는 가깝게 있고, 누구에게는 멀리 있으나
누구나 살면서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겠습니다.
슬픔에는 여러 종류의 위선이 있다고 하네요.

 

 

라 로슈푸코가 쓴 글의 한 대목을 읽어 보겠습니다.

 

 

..........

슬픔에는 여러 종류의 위선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 애도한다는 구실 아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의 호감의 상실을 애석하게 여긴다. 또한 우리의 안락함, 즐거움, 명성이 줄어들어서 운다. 따라서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흘려지는 눈물로 애도된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위선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슬픔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종류의 위선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주려고 애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악의적인 것이다. 이것은 아름답고 영원한 비탄의 영광을 열망하는 어떤 사람들의 슬픔이다.(…)

 

 

또 따른 종류의 눈물이 있는데, 이것은 쉽게 넘쳐흐르고 쉽게 말라 버리는 작은 샘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정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 울고, 동정을 받기 위해서 울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동정하여 울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울며, 끝으로 말하자면, 울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운다.(77~78쪽)

..........

 

 

 

예.

어떻습니까?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이란 책에서 뽑은

글입니다.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한 글 같지 않습니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의 눈물 중 하나를
우리는 경험한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오프닝 멘트였습니다.

 

 

(음악이 나온다.)

 

 

 

 

 

 

 

 

 

 

 

 

 

 

 

 

 

 

 

 

 

 

.....................................

제가 재방송으로 즐겨 듣는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그중 오프닝 멘트를 좋아하기에 저도 흉내를 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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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20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언니는 흉내쟁이어요!ㅋㅋㅋ
사춘기 때 라디오를 거의 끼고 살았는데
DJ를 해 보는 게 꿈인 적도 있었어요.
제가 목소리가 좀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거든요.
게다가 오프닝 멘트가 멋있으면 환상이잖아요.ㅋㅋ
지금은 그 보단 살면서 방송 작가나 한 번 해 볼 걸
뭐하고 살았나 싶어요.ㅠ

페크pek0501 2017-10-20 14:39   좋아요 1 | URL
ㅋㅋ 흉내쟁이, 따라쟁이예요. 이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습니다.

저는 디제이보다 디제이의 멘트를 쓰는 라디오 방송 작가를 해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단 취직하면 그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출연할 사람을 섭외, 아이디어 내기 등 다른 일도 다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미련 끊었어요.

직업이 라디오 작가, 라고 하면 폼나잖아요. ㅋㅋ

스텔라 님은 늦지 않았죠.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목소리가 좋다면 팟캐스트 진행자는 어떠세요? 목소리 좋은 사람이 읽어 주는 글은
더 명문장처럼 생각되더라고요...ㅋ


cyrus 2017-10-2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게 감명을 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버리고, 나중에 뒤통수치는 것은 사기꾼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

페크pek0501 2017-10-21 23:02   좋아요 0 | URL
그렇겠군요. 감명을 주기 위해 연기하는 사람이라면 뒤통수 칠 수 있죠.
뒤통수 치는 사람은 정말 싫죠?
그래서 갑자기 너무 잘해 주는 사람은 의심이 간다는...

고맙습니다. 굿밤 되세요...

 

 


김도언 저, <소설가의 변명>이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두에게 친절한 이는 아무에게도 친절한 것이 아니다.”(116쪽)

 

 

이 말을 이렇게 풀어 본다. 늘 친절한 사람은 마음속으로 친절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도 억지로 참고 친절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식으로 친절한 것이고 어쩌면 그럴 때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의 속마음이 친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기보다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가식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친절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할 수 없겠다.

 

 

이와 관련해 이런 걸 생각해 본다. 무엇이 많다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어머니가 많다는 것은 어머니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자신이 태어나서 열 살까지 길러 준 어머니, 그 이후로 길러 준 어머니. 이렇게 세 어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머니가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겠다. 아버지가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가정이라면 어머니가 여럿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예를 들어 생각해 보면 ‘무엇이 많다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많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고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고민이 하나일 때 진짜 고민인 것이다.

 

 

많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한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만을 사랑할 때 진짜 사랑인 것이다.

 

흐린 날과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하나만 좋아할 때 진짜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 흐린 날과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날씨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날씨가 주는 행복을 잘 아는 사람이다, 라고. 많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여자가 주는 행복을 잘 아는 사람이다, 라고.

 

 

또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 본다. 상대마다(사물마다) 특유의 매력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라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것은 삼갈 일이다. 가령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술을 덜 좋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술도 좋아할 수도 있다. 자식이 없는 대통령은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재산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을 보살펴 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재산에 대한 욕심이 많을 수도 있다.

 

 

‘그 반대도 맞는 경우’에 대해 써 보았다. 무엇을 볼 때 한 가지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기 위해 기록해 놓는다.

 


 

 

 

 

친정에 갖다 놓은 나의 것 :
어떤 책은 다 읽었지만 틈틈이 들춰 보려고,
어떤 책은 다 읽지 않아서,
어떤 책은 리뷰를 쓰려고 갖다 놓은 것이다.

그리고 노트와 넷북.

 

 

 

 

 

 

 

 

..........<후기>.......................
나는 지금 친정에 있고 친정에서 넷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낮잠을 자고 계신다.
애들은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겠다.
발레를 배우러 가는 곳의 토요일 반을 일요일 반으로 바꿨다.
토요일을 즐기기 위해서다.
게으른 토요일 시간의 평온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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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4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7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석 연휴 동안
연휴만으로도 좋았지만,
알맞은 기온만으로도 좋았지만,
거울처럼 맑은 하늘과
거울처럼 맑은 세상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더 좋았습니다.
미세 먼지가 많았던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랬습니다.

 

 

긴 연휴의 마지막날인 오늘입니다.
모두 기분 좋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하루밖에 안 남은 게 아니라
하루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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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09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좋습니다.
하루 남긴했지만 지금부터 슬슬 긴장 모드면
이번 한 주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ㅋ

긴 연휴 잘 보내셨죠?
전 연휴가 넘 길어 후배랑 하루 만나서 논게
그나마 주효했습니다.
그런 날이 없었으면 지루해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ㅠㅋㅋ

페크pek0501 2017-10-10 22:08   좋아요 1 | URL
사진, 푸른 하늘이 좋죠?

예, 연휴 잘 보냈어요. 시원섭섭합니다.
날씨가 좋아 걷기를 많이 했어요.
내일 비가 오고 나면 날씨가 쌀쌀해질지 모릅니다.
곧 고독의 계절 가을이 오겠지요? 우리는 독서의 계절로 맞이합시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7-10-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 말씀처럼 이번 연휴기간에 날씨가 좋았어요.
네. 진짜 하루 더 생긴 기분이예요.
pek0501님, 오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10-10 22:10   좋아요 1 | URL
날씨가 좋아서 더 좋았던 연휴였어요. 오후 다섯시쯤 걷기를 시작, 즐겼습니다.
이번 주는 짧게 느껴지겠지요? 벌써 내일이 수요일.
굿 밤 되시길...
고맙습니다.

세실 2017-10-0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흘이 바람처럼...
한달만 딱 쉬고 싶네용~
아자 아자!
여전히 하늘 참 예뻐요^^

페크pek0501 2017-10-10 22:16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정말 바람처럼 가 버린 연휴 같습니다.
회사 다니는 큰애가 연휴가 끝나는 걸 무척 아쉬워하더군요.
그래도 내일은 벌써 수요일이니 힘내시길...

푸른 하늘을 보며 감탄, 맑은 공기를 느끼며 감탄, 그러면서 걷곤 했어요.
아자 아자! 힘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은빛 2017-10-10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 급한 일 때문에 사무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는데, 진짜 일하기 싫더라구요.
오늘 아침에도 공식적으론 연휴 후 첫 출근인데 정말 나가기 싫었어요.
지금도 밀린 일 때문에 이 시간까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자꾸 머리속엔 딴 생각만 나네요.

아까 저녁 먹고 사무실 들어오면서 동료 활동가에게 말했어요.
˝내 월급 다 줄테니, 누가 내 일 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

나무와 파란 하늘과 구름.
사진이 참 이뻐요!

페크pek0501 2017-10-10 23:13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우리는 한가로워야 한다는 것.

저는 바쁠 때, 유능한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월급은 조금만 주고요. ㅋㅋ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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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에 담겨 있는 아포리즘을 음미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쓰고 나서 여섯 개의 핵심어를 뽑아 번호를 붙여 다시 정리한 것이다. 

 

 


     

1. 글쓰기

 

나는 “예술이 어때야 한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한다. 예술은 그런 당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어떤 것이다. 그리고 당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런 당위에서 집중하는 예술조차 자유롭게 구가되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142쪽)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 소설에 대한 나의 해석이 틀린 게 아닐까 해서 고민한 적이 있는데 이젠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해석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임을, 나의 해석은 정답이나 오답으로 나눠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느낀 점이나 깨달은 점이 어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각자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르고 환경이나 처지가 다른데도 모든 이들이 똑같이 느낀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만 명의 사람들이 만 개의 내용으로 “문학은 이런 것이다!” “예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떠들어대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이며 가장 예술적인 사회의 풍경이 아닐까.(142쪽)

 

 

이 리뷰는 만 개의 리뷰 중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쓰리라. 하지만 가볍게 생각하며 쓴다고 해도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문장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같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154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연구할 때가 있는데 다음의 글을 읽고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49쪽)

 

 

여기서 ‘느린 독서’라 함은 꼼꼼히 읽는 것을 말할 것 같고, ‘고독한 사색’이라 함은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말할 것 같고,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이라 함은 사람의 겉모습을 통해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는 것을 말할 것 같다. 이것을 내가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정보와 지식의 습득 그리고 사고력과 관찰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덧붙일 변수가 있다면 ‘어떤 체험을 했느냐?’, ‘체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느냐,’ ‘어떤 일의 인과 관계를 분석해 본 적이 있느냐?’ 등이 되지 않을까.

 

 

고정된 진리의 말, 정의의 말 같은 건 없다. 의미를 담은 모든 말은 편견이며 우리는 이 순간 어떤 편견이 좀더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가를 유동적으로 고민할 뿐이다. 말은 잡히긴커녕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어려운, 쉬지 않고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과 같다.(129쪽)

 

 

나의 글 역시 나의 편견으로 가득차 있겠다. 내가 옳다고 보는 무엇이 객관적으로 볼 때도 늘 옳은 건 아닐 거라는 걸 안다.

 

 

당대를 올바로 보기란 정말 어렵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134쪽)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다름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점을 유념하여 자신의 생각이 옳음에 대해 강한 확신은 삼갈 일이다.

 

 

 

 


2. 독서

 

우리에게 독서가 필요한 이유를 뭐라고 말하면 정확한 답이 될까?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도 굳이 남의 글을 읽거나 의견을 듣는 이유는 내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지, 내 생각과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117쪽)

 

 

내가 독서하는 이유는 첫째, 독서를 통해 지식인이라고 할 만한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 독서를 하는 동안 걱정과 스트레스 등 모든 걸 ‘잊기’ 때문이다. 셋째, 독서가 그냥 ‘재밌기’ 때문이다. 이 셋째 이유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목적이 있더라도 책을 읽는 게 재미가 없다면 그래서 인내를 가져야만 읽을 수 있다면 바쁜 일상을 살며 독서를 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 

 

 

 

 


3. 부모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부모로서 자격 미달’임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고등학생이었던 큰딸이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자고 올 테니 허락을 해 달라고 학교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방을 얻어 혼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였다. 외박을 허락해 달라는 건 처음 있는 일이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당황스러워하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하였다. 고등학생이 외박이라니, 하면서 펄쩍 뛰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폰 문자를 보내며 졸라대서 나중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가 허락하면 외박을 허락할게.’라고. 그런데 그 다음에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빠도 ‘엄마가 허락하면 허락할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에게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똑똑한 친구에게 의견을 물으면 된다는 것. 당장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좋은 답을 줬다. 그 친구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그 어머니가 허락하면 자고 와도 된다고 해 보라는 것이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 어머니가 허락한다면 왠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딸에게 문자를 보내 그대로 전하며 그 어머니의 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이, 그냥 집에 오겠다고 답장을 했다. 그 이유인 즉 그 친구의 어머니는 딸에게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주며 하나의 조건을 내세웠는데 그 조건이란 게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자취방에 절대로 친구를 데리고 오지 말 것.’ 아마도 그 어머니는 딸에게 자취방을 얻어 주면서 자취방에 친구가 들락거리며 모여 놀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여고 시절이란 친구와 함께 있다면 밤을 새워 수다를 떨어도 좋을 그런 시절이 아닌가. 만약 얘기하며 노느라 밤을 새운다든지 잠을 덜 잔다든지 하면 그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있을 게 뻔한 일인데 어떤 부모가 그걸 바라겠는가. 이리하여 나의 똑똑한 친구 덕에 딸의 외박 문제가 깨끗이 종결되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의 의견을 묻곤 한다.

 

 

내가 문제 있는 부모임을 알아채는 결정적인 순간은 ‘나 정도면 괜찮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 때다. 자기 확신 없는 문제는 없다.(15쪽)

 

 

이 글을 읽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로서 자격 미달’을 느낄 때가 많으니 최소한 ‘문제 있는 부모’는 면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 역시 ‘나 정도면 괜찮은 부모’라고 자신할 때가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큰딸이 친구 집에서 자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그때 생각했었다. 이 아이에게도 ‘하고 싶은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난 그저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고 학교 성적에 연연해하는 아이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이가 갑자기 외박 타령을 왜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고 이럴 땐 부모로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애먹었다.

 

 

지금은 아이들에 대해 더 모르겠다. 부모로서 자식은 마냥 어린애로만 보여서 내가 말장난을 치면 둘째딸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수준을 높여 주세요.”라고. 이럴 때 난 섭섭해진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많이 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달라지는 속도를 내가 못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처벌해야 하는 수위로 문제를 일으킨 몇 명의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학원에 가지 않은 것도, 술을 마시게 된 것도, 외박을 한 것도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라고 모든 학부모가 말한다면 도대체 그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나쁜 친구는 누구인가? 그런데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나도 아마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나는 우리 아이를 제대로 정확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이를 보며 종종 되새겨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다.’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부모의 비극이 시작된다.(42쪽)

 

 

티브이 드라마를 통해 욕심 많은 어머니가 자식의 인생을 망쳐 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자식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과 부모가 며느리로 삼고 싶은 여성이 일치하는 않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되고, 자식이 바라는 직업과 부모가 바라는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자기가 자식을 가장 사랑한다고 믿는 부모가 오히려 자식을 불행 속으로 내몰고 마는 형국을 초래한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잘 안다고 믿는 나머지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거의 언제나 ‘내 자식을 위하여’ 자식을 괴롭히고, ‘내 애인을 위하여’ 애인을 괴롭히며, 급기야 ‘내 국민을 위하여’ 국민을 괴롭힌다.(45쪽)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식을 구속하고 간섭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각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자기 자식에겐 좋은 경험만 하게 만들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은 건 부모로서 갖는 당연한 욕심일 터이다. 하지만 양지의 세계와 음지의 세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양자택일이 불가능하다면 부모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란 어떤 것일까? 다음의 글로 정답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48쪽)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은 없다.(35쪽)

 

 

이렇게 말하는 딸이 있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라고. 반면에 우리 부모님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딸이 있다.

 

 

딸은 단지 딸, 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이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150쪽)

 

 

 

 

 


4. 걱정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가게 했는데 같은 반 아이가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은 학부모는 우리 아이도 수학 학원을 추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늘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면 만족이 없고 걱정만 늘어난다.   

 

 

사람은 걱정이 일상화하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잊는 속성이 있다. 걱정하는 습관만 남아, 걱정을 걱정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걱정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지배한다.(27쪽)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해 봤으리라. 걱정이 하나 있어서 그게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더니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생기니까 앞의 걱정은 대수롭지 않은 게 되어 버리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 누군가가 나에 대해 험담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분이 나빠 그날 밤잠을 설쳤는데 그 다음날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동안 앞의 험담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게 되어 버린다. 큰 걱정이 작은 걱정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걱정이 있을 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걱정을 상상해 보면 효과가 있을까?

 

 

 

 

 


5. 전쟁

 

이봐, 전쟁이 나면 총이니 폭탄이니 핵이니 이런 걸로 인해 몸을 다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죽게 돼. 왜 그런지 알아? 고혈압 환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자네 알지? 이런 환자들은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해 주는 고혈압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병원 건물이 파괴되고 의약품 보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게. 어찌 되겠는가? 고혈압 환자들은 결국 죽겠지? 또 우울증 약을 매일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우울증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게. 특히 불안증이 심한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꼭 먹어야만 하는 약을 구할 수 없어 불안증이 더 심해지고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만큼 끔찍한 일을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네. 내가 다치지 않아도 말이야, 가족이나 친척이 또는 이웃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다쳤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계속 전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얼마나 괴롭겠나? 그래서 난 전쟁이 나면 살아남아서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폭파되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수시로 들으며 불행하게 살기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네.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라네. 전쟁 없이 늘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 중에는 평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큰 욕심을 부리며 사소한 일로 고민하며 괴로움을 하소연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발생하면 그때 가서 평화롭던 시간들을 그리워한다네. 왜 진작 평화에 대한 감사를 할 줄 모르냔 말이야. 지금 하늘을 보니 맑고 푸르며 햇살은 눈부셔서 전깃줄에 걸쳐 있는 거미줄마저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난 티브이 뉴스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쳐 피 흘리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가엾게 여겨지면서 우리가 전쟁을 겪지 않으며 사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네.

 

 

오늘 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이 내일 전쟁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149쪽)

 

 

 

 

 


6. 감사

 

다음의 글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7쪽)

 

 

 

 

 

 

 

 

 

 

 


....................................................................

* 맺는말

 

(아포리즘의 뜻 :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른다.)   

 

 

이 책은 아포리즘으로 채워져 있다. 아포리즘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압축성 있는 글이기에 마치 시를 읽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제맛이 난다. 쓰윽 한 번 훑듯이 읽는다면, 그래서 무엇을 읽었는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독서가 될 것이다. 실패한 독서가 되지 않고 성공한 독서가 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땐 최소한 몇 장을 넘겨야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책은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로 가득차 있어서 빨리 읽는 게 아까워 느린 독서를 했다. 이 책을 커피로 말하면 벌컥벌컥 마시는 냉커피가 아니라 호호 불며 마시는 뜨거운 커피였다. 이 책을 친구로 말하면 쉽게 사귀고 빠른 시간에 가까워진 새 친구가 아니라 어렵게 사귀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 가까워진 오래된 친구였다.

 

 

저자는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면 생각의 문부터 열어라.”(121쪽)라고 말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건 결국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해체하는 것이다.”(109쪽)라고 말한다. 저자가 걸은 사유의 길을 따라가노라면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문에 이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저자가 낸 책 중에서 정수만 모아 놓은 책이 아닐까 여겨질 만큼 만족스럽기도 했다. 

 

 

내가 읽은 아포리즘의 책 중에서 몇 년 뒤에 또 읽어도 좋을 책을 꼽는다면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역 니체의 말 2>,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등이다. 그리고 한 권 더 추가한다면 바로 이 책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이다. 나처럼 아포리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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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27 1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 상대방의 리뷰를 읽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 김규항 씨가 말한 것처럼 내 생각을 발전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장바구니를 채우기 위해서죠. ^^

페크pek0501 2017-09-27 18:44   좋아요 0 | URL
으음~~. 맞는 말씀 같습니다. 신간인 경우 저도 남의 리뷰를 읽고 나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시길...

hnine 2017-09-27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한줄 한줄 마음에 쏙쏙 들어올수가 있나요.
리뷰든 그냥 페이퍼든,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내려놓은지 오래이고요 (^^), 다만 정직하게 쓰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이거 다른 사람 의견과 너무 엇나가는거 아닌가, 나만 좋다고 느낀거 아닌가, 나만 별로라고 느낀거 아닌가, 자꾸 신경쓰이고요. 그래서 정직하게 쓰다보면 그 작품의 포인트를 놓쳐 형편없는, 나중에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요 ( 제 경우 허클베리핀, 톰소여 같은 것들이 그 예).
따님의 이야기는 저도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요구에 대해서는 일단 안된다고 하는게 제 원래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일단 된다고 할때가 많아요. 제가 너그러워져서가 아니고 어차피 말을 안들을테니까요 ㅋㅋ

페크pek0501 2017-09-29 15:51   좋아요 1 | URL
나인 님,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내 글이 너무 주관적인 글이 아닌가, 편견이 담긴 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답니다. 나인 님도 그렇다니 반가운 걸요. ㅋ

이젠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남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나만 느꼈다면 그래서 작가도 놀랐다면 그거야말로 독창성이 있는 게 아닌가, 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우리 이렇게 생각하는 걸로 합시다.)ㅋ

맞아요. 저는 어차피 말을 안 들을 거면 모르는 척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귀가가 늦을 경우 잠든 척한답니다. 잠들어서 너를 못 혼냈다는 느낌을 주려고요.

부모 노릇 하기가 쉽지 않아요. 나이는 늘어가는데 지혜는 늘지 않는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AgalmA 2017-09-29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책이 주로 하는 말은 ‘정답은 없다‘와 ‘내가 한 말과 방법을 모두 잊고 당신의 길을 찾아라‘죠. 저도 동의.
아이 키우기에 관한 방책은 일종의 집단지성이군요ㅎ

페크pek0501 2017-09-29 15:54   좋아요 1 | URL
너만의 길을 가라... 그렇죠.
그렇다고 해도 이 책 저 책 보는 건 저로선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이 키우기에 대해선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는 법‘과 같은 강의를 들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에요. 아니면 그런 책을 보든지요.

고맙습니다.

stella.K 2017-09-28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오독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에 또 한 번 읽어봐야 합니다.
그럼 화들짝 놀랄지도 몰라요.
어머, 그런 뜻이었어?
얼굴이 화끈 거릴지도 모르죠.
그래도 오독할 자유가 있어 괜찮습니다.
말씀마따나 소설에 정답은 없는 거죠.

이책 좋은가 봅니다.
몇 페이지 안 되는데도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페크pek0501 2017-09-29 15:57   좋아요 2 | URL
오독할 자유, 표현이 좋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독이란 게 없는 거죠. 내가 그런 뜻으로 읽었다는데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완전 자유죠.

원래 예술이란 게 해석의 다양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잖아요. 무엇을 느끼든 오답은 없는 거예요.
우리, 자신의 해석에 대해 소심해지지 말자고요.

예, 이 책 참 좋습니다. 탁월한 구입을 한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시길...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7-10-02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은 길이에 상관없이 좋겠지만, 짧은 글에서는 의미가 압축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추석연휴가 되어 인사드리러 왔어요.
pek0501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10-07 10:2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렇게 추석 인사를 남겨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ㅋ
나를 위해 누군가가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남은 연휴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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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단편집보다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 장편 소설을 선호한다. 그런데 열 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나니 이런 단편집이라면 얼마든지 애독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만큼 모든 단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 책에 담겨 있는 열 편의 단편 중 다섯 편만 선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다섯 편의 선택은 나의 독서 취향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이 리뷰를 읽는 이들이 다섯 편의 소개만으로도 체호프 단편의 진가를 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1. ‘베짱이’ :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은 작품

 

여자의 이름은 올가 이바노브나, 남편은 이름은 드이모프. 올가 이바노브나는 22살에, 드이모프는 31살에 결혼식을 마치고 살림을 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노래하고 피아노 연주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연극 동호회에 참여했는데, 이 모든 일들은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재능의 발현이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명한 사람들과 재빨리 사귀고 가까운 사이가 되는 일에서만큼 그녀의 재능이 돋보이는 경우는 없었다.(40쪽)

 

 

그녀는 예술을 사랑하고 화가, 작가 등의 유명한 사람들을 숭배하고 그들을 사귀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남편 드이모프는 예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자연과학과 의학에 매달리며 산다. 그녀는 남편이 예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심각한 결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잘생긴 화가 청년의 사랑 고백을 받게 되고 불륜의 사랑을 키우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에 집착하게 된 그녀는 나중에 화가 청년이 변심했음을 알게 되어 괴로워한다.

 

 

한편 남편 드이모프는 아내의 불륜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마도 한겨울 무렵부터는 드이모프도 자신이 속고 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자기 양심이 찔리기라도 한 듯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으며 그녀와 마주치고도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 아내와 단둘이 남는 경우를 되도록 피하기 위해 그는 동료인 코로스텔료프를 점심 식사에 자주 데려왔다. (···) 두 사람이 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로지 올가 이바노브나로 하여금 침묵할 수 있도록, 즉 거짓말을 안 해도 되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61~62쪽)

 

 

남편이 화가 청년과 불륜 관계에 빠져 있는 그녀를 눈감아 주고 있는데도 그녀는 변심한 화가 청년에게 매달리며 사랑을 구걸한다.

 

 

화실에서 그를 못 보게 되는 날에는, 만약 오늘 그가 그녀에게로 오지 않으면 당장 독약을 마시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겁이 난 그는 결국 그녀에게로 갔으며, 남아서 식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불손한 말을 해댔고 그녀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대꾸했다.(63~64쪽)

 

 

불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폭군이며 원수여서 주위에 누가 있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그녀는 화가 청년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짐작하고 질투와 분노,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침실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 드이모프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이렇게 조그맣게 말한다.

 

 

“그렇게 울지 마, 여보······. 왜 그래? 그냥 조용히 있어야 돼. 이 일은······.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 알잖아.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길 수 없어.”(64쪽)

 

 

어느 날 저녁 남편은 그녀에게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됐다며 일반 병리학 강의를 맡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쁨을 아내와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일반 병리학이 뭔지도 몰랐고 다만 극장에 갈 채비를 할 뿐이었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 드이모프는 심한 두통을 앓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병원에서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던 그녀는 불륜 관계를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이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남편이 불쌍해졌다.

 

 

자신에 대한 그의 끝없는 사랑, 그의 젊은 생명, 심지어 그가 이미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은 이 짝 잃은 침대까지도 불쌍했다. 그리고 그의 한결같은 수줍고 얌전한 미소가 떠올랐다.(71쪽)

 

 

올가 이바노브나는 침실에 앉아서 이것은 남편을 속인 죄로 신이 자신을 벌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73쪽)

 

 

올가 이바노브나는 그와 함께 했던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참으로 얼마나 비범하고 드문 인간인지, 자기가 알았던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를 문득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모든 동료 의사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상기하고 그들 모두가 그에게서 장래의 저명인사를 보았으리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했다.(78쪽.)

 

 

저명인사들을 좋아하며 그들을 쫓아다녔던 그녀였는데 그녀 가까이에 있던 남편이야말로 장래의 저명인사였다는 것. 그러나 그녀가 그 사실를 이해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다른 예술가들과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고 한 남자와 불륜 관계에 빠졌다가 버림받고 뒤늦게야 남편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 과거를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그녀. 그러나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어 일반 병리학 강의를 맡게 될지 모를,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였던 남편은 병원에서 디프테리아 감염되어 결국 죽고 만다.

 

 

남편이 이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녀는 그의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드이모프, 드이모프, 제발!”(79쪽)

 

 

이 이야기는 안타까움이 여운으로 남게 되는 이야기여서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베짱이처럼 놀기만 하다가 뒤늦게 깨달은 그녀의 불행에서 보듯이 깨달음은 늦을 때가 많은 법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이에 있는 보석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중 하나일 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쓴 소설이라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 작가는 절친한 친구와 한동안 불화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2. ‘베로치카’ :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불가사의한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

 

아그뇨프가 베라의 단추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단순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지 않거나 아름다움에 둔감한 차가운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하고 시적인 그 무엇이었다.(94쪽)

 

 

그러한 그녀(베라)가 막상 사랑을 고백하자 그 남자(아그뇨프)는 반기기보다 난처해한다.

 

 

무엇보다도 난처한 것은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상황이었다. 대놓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마음속을 아무리 헤집어보아도 사랑의 불씨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05쪽)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런 것이라고 작가는 쓴다.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109쪽)

 

 

‘베로치카’을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을 정리해 봤다.

 

 

‘베로치카’라는 소설에서 여자의 사랑 고백을 들은 남자는 평소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서도 사랑 고백을 반기지 않는다. 그 남자는 그녀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가 늘 자신이 수동적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영혼이 무기력하기 때문인지,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할 만큼 무능력하기 때문인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란 자기 마음조차 잘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존재다.)

 

 

내가 보기엔 그 남자가 그녀와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어떤 하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절실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열정’이고 ‘뜨거움’이다. 연애를 하려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맹렬한 기세가 필요하다. '잊고 있다가 당신을 만나면 좋아요.'라고 상대에 대해 생각할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워서 괴로워요. 꼭 만나야겠어요.'라고 상대에 대해 생각할 정도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이런 맹렬한 기세가 있어야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만약 그립지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러나 만나면 좋은 그런 상대라면, 연애는 시작되기 어렵고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연애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연애란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연애란 상대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가 많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 첫눈이 온 날, 첫눈이 왔다고 상대가 불러내면 반갑게 나가야 된다. 귀찮아서 안 나간다고 하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 상대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 무조건 병문안을 가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먼 병원일지라도 병문안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 상대와 만나기로 약속한 휴일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고 싶어도 그 약속을 깨면 안 된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간다.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가면 그때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사과를 하고 한쪽에선 화를 내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가 서로에게 싫증이 나고, 그러다가 냉전의 시간이 오고, 그러다가 어느 한쪽에선 연인에게 시달리는 상태에 이르고. 그다음엔 증오와 이별.

 

 

늘 상대가 좋고 늘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를 참을 수 없고 자존심이 상하는 걸 참을 수 없는 게 인간인지라, 싫증이 나는 게 인간인지라 첫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되는 것이고 수많은 연인들이 오래 사귀고도 헤어지는 것.

 

 

그러니 귀찮음을 감수할 자신이 있을 만큼 뜨거운 마음을 가질 때에만 연애를 할 일이다. 괜히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심심풀이로 연애를 시작해서 상대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할 일이다. 이 소설의 남자처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3. ‘관리의 죽음’ :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공감하며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

 

회계원인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레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버렸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에 주위를 둘러본 그는 당황스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노인은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아요,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는 “제발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저…… 저도 모르게!”라고 다시 사과를 했고 장군은 “아, 앉으세요 제발! 공연 좀 봅시다!”라고 말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또 한번 장군에게 사과를 했고, 장군은 벌써 잊어버렸다고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떨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여겨져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에게 재채기에 대한 해명을 하러 찾아갔다. 장군은 접견실에서 청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 사과의 말을 했고 장군은 그 바쁜 와중에 또 계속되는 그의 사과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군은 “여보세요, 날 놀리자는 겁니까, 뭡니까!”하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다음날에도 장군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다. 자신은 잊어버렸다고 말했는데도 필요 이상 반복되는 사과에 화가 난 장군은 급기야 소리를 빽 질렀다. “꺼져!!”라고. 이 말을 듣자 두려움에 질린 그는 속삭이듯 “뭐라고요?” 하고 물었고, 장군은 발을 구르며 되풀이 말했다. “꺼지라니까!!” 이 말을 들은 그는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A.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회계원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내가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당신은 장군에게 한 번만 사과하고 말면 될 텐데 왜 여러 번 사과해서 장군을 짜증이 나게 했습니까?

 

회계원 : 저는 장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침을 튀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와서 침을 튀기게 되었다고 정확히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뜻이 사과할 때마다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러 번 사과를 하게 되었던 거죠.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그 사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계원 : 그런 작은 일로 제가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군이 “꺼져!”라고 말을 하는 순간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한 번 더 “꺼지라니까!”라고 말하자 제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고 공포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정신을 잃었나 본데 그게 죽음이었습니다.

 

 


B.
이번엔 장군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왜 당신은 회계원이 거듭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꺼져!”라고 화를 냈습니까?

 

장군 : 사과를 한 번 했으면 됐지 자꾸 사과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누구나 불쾌한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잖아요. 그런데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찾아와서 그 일을 상기시키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업무 중 그가 나타나 사과를 할 땐 피곤하게 느껴지고 지치고 짜증이 무척 나더군요.

 

 


C.
공연장에서 재채기가 나와 버린 일로 한 남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즉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내가 느낀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인간은 자기가 손해 본 것을 상기시키는 말에 위로를 받기보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
- 공포를 느끼는 상상력이란 자신을 죽이기도 할 만큼 위력이 세다는 것.
- 마음의 병을 앓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할 만큼 마음이란 신비롭다는 것.
-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
-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
-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 이토록 어이없는 일이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 (공연을 보면서) 지금은 행복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일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 즉 행복이란 건 (재채기라는) 작은 일로도 얼마든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게 행복이라는 것. 

 

 

난 ‘마음의 기적’을 믿는다. 여러 번 그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평소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컴퓨터를 사용할 땐 쉬는 시간을 갖는 편인데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쉬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컴퓨터로 작업해야 한다. 이상한 것은 급한 일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해야 할 땐 안구건조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논문을 쓰던 시절엔 이런 적도 있었다. 마감이 임박한 논문을 아침부터 하루 종일 쓰고 또 밤 12시부터 밤새워 새벽 6시까지 썼는데 눈이 전혀 피로하지 않고 몸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한 내 해석은 이러하다. ‘논문 마감 때라서 논문을 꼭 끝내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을 가졌더니 기적이 일어나더라는 것.’ 이것을 나는 ‘마음의 기적’이라고 명명하겠다.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이렇게 강한 마음으로 극복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약한 마음으로 병을 얻기도 한다. ‘관리의 죽음’이란 소설에서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마음의 병으로 인해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어느 관리자의 이야기를 쓴 체호프는 ‘인간’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로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그 옛날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4. ‘주교’ :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씁쓸하게 그린 작품

 

‘주교’는 실제로 매우 쇠약해진 작가가 자신에게 머지않아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썼다고 해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살았던 주교가 죽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주교가 죽고 난 뒤 태평한 세상의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의 글로 알 수 있다.

 

 

예하가 돌아가신 것이다.
다음날은 부활절이었다. 이 도시에는 마흔두 개의 교회와 여섯 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니 기쁨의 종소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도시 위로 쉼없이 울리면서 대기를 진동시켰다. 새들은 노래 부르고 태양은 화창하게 내리쬐었다. 장이 벌어진 광장에서는 그네를 타네 손풍금을 울리네 하며 왁자지껄했고 손풍금 소리와 술 취한 이들의 주정이 요란했다. (...)
한 달 뒤에 새 대리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그때는 이미 아무도 표트르 예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전히 그를 잊어버렸다.(185~186쪽)

 

 

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인생이 끝났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흘러갔고 죽은 사람은 잊혀지고 만다는 것. 이 글을 읽고 내가 그랬듯이,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이 글을 인상 깊게 읽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의 글을 옮겼다.

 

 

우리 중 누가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계속 즐겁게 계속 태평하게 돌아갈 것이다.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또는 내가 죽는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은 눈부실 것이다. 

 

 

 

 

 

 


5. ‘내기’ : 한 인간의 모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

 

이런 어처구니없는 ‘내기’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당신이 독방에 오 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이백만 루블을 걸겠소.”라는 은행가의 제안에 젊은 변호사는 이렇게 답한다. “오 년이 아니라 십오 년을 조건으로 내기에 응하겠소.”라고. 그리하여 십오 년 동안 독방에서 지내면 이백만 루블을 받게 되는 ‘내기’가 시작된다.

 

 

변호사는 은행가의 집 정원에 지어진 바깥채 중 하나에서 엄중한 감시 속에 감금되도록 결정됐다. 또한 그에게는 십오 년 동안 바깥채의 문턱을 넘을 권리,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권리, 그리고 편지나 신문을 받아볼 권리를 박탈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악기를 지니고 있거나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허용되었다. (···) 책이든, 악보든, 술이든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메모지에 쓰기만 하면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지만 반드시 창문을 통해야만 했다.(137쪽)

 

 

혼자 감금된 변호사는 사 년만에 육백여 권의 심오한 서적을 섭렵했고 복음서를 읽는 데 일 년을 허비했다.

 

 

유폐되고 나서 마지막 이 년 동안 수인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읽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바이런과 셰익스피어를 요구했다. 종종 그로부터 화학, 의학 교과서, 장편소설, 철학이나 신학 논문 따위를 동시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메모가 오기도 했다. 그의 독서열은, 바다 위에 널린 난파선의 잔해들 속에서 헤엄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매달리는 한 인간을 연상시켰다!(139~140쪽)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과연 그는 15년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둘째, 여러 종류의 많은 책들을 읽고 나서 최후에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는 15년 동안의 독방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이백만 루블이라는 거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15년이 되는 날의 바로 전날에 발견된, 그가 종이에 쓴 글이 있었다. 그는 자고 있었고 은행가는 그가 쓴 글을 읽게 된다. 

 

 

은행가는 책상에서 종이를 집어들고 읽어 내려갔다.

 

내일 열두시에 나는 자유를 얻고 사람들과 교류할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방을 떠나 태양을 보기에 앞서 나는 그대들에게 몇 마디 해줄 필요를 느낀다. 순수한 양심에 따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신 앞에 맹세코, 나는 자유와 생명과 건강을, 그리고 그대들의 책 속에서 지상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경멸한다고 그대들에게 단언하는 바이다.
십오 년 동안 나는 속세의 삶을 면밀하게 연구했다. (···) 그대들의 책은 나에게 지혜를 가져다주었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 것들이 나의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다. 내가 그대들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
또한 나는 그대들의 모든 책을 경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이다. 그대들이 아무리 오만하고 현명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죽음은 그대들을 마루 밑의 쥐새끼들처럼 지상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그대들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추악한 것을 미(美)로 받아들이고 있다. (···)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한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이백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그 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위해 나는 약속한 기한이 다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여기에서 나갈 것이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는 바이다······.

 

이것을 다 읽은 은행가는 책상 위에 종이를 내려놓았다.(143~145쪽)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책을 많이 읽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고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성공은 사실 성공이 아니고 하나의 실패를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른다.’라고. 예를 들면 기혼자인 한 중년 여성이 어느 분야에서 명성을 떨칠 만큼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거기에는 최소한 하나의 실패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그 성공을 거두기 위해 혼자서 노력하고 애쓴 시간들 속에는 가족이 없었을 테니까. 남편과 함께할 시간도, 자식들과 함께할 시간도 모두 성공을 위한 노력의 시간에 바쳤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한 분야에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그녀가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녀의 가정은 실패한 가정이라고.

 

 

짐작하건대 세상의 이치를 꿰뚫을 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성공과 실패가 헷갈리고 행복과 불행이 헷갈릴 것 같다. 성공은 다른 실패를 의미하고 행복은 다른 불행을 의미할 것 같다. 커 보였던 성공과 실패의 격차가, 커 보였던 행복과 불행의 격차가 좁혀져서 나중엔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이, 행복과 불행의 경계선이 희미해져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공한 삶과 행복한 삶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성공과 행복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공할수록 고독해질지 모르는 일임을, 그리고 중요한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라는 것임을 새삼 생각한다.  
 

 

 

 

 


* 맺는말

 

나의 경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로 지내던 사람은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나중에 은혜를 갚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 이유는 뭘까? 어떤 소설에 따르면 더부살이로 지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에게 동정 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여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오히려 분노가 끓어오른다는 것. 인간에 대한 이런 발견이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만약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게 되리라.

 

 

아모스 오즈는 “소설을 읽는 건 누군가의 집 거실, 아이들의 방처럼 친밀한 공간에 초대받는 것 같은 일이다. 문학은 적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설에서 주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본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주제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제란 그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 보면 드러나기 마련인 어떤 것에 불과하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저렇구나.’ 하면서 인간을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 사니까 또는 그런 행동을 하니까 ‘인생이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면서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체호프의 다른 단편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그만큼 체호프는 나를 매료시킨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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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13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 ‘관리의 죽음‘ 관련해
세사르 바예호 시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가 있죠. 이건 우리가 가장 숨길 수 없는 부분이죠. 이 시 전편을 읽어 보시면 그럼에도 사람을 보듬는 바예호의 의지가 무척 감동적이랍니다.

4. ‘주교‘ 관련
카프카 ‘변신‘ 끝이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들이 소풍가잖아요ㅎ;
역시나 위에서 제가 언급한 세사르 바예호 시에서 나오는 대목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의 무정함을 깊이 아는 본능인 것도 같고요. 그걸 이해하고 삶을 긍정의 대상으로 볼 지 부정의 대상으로 볼 지도 각자의 몫이겠죠. 부정으로 작동한 게 5. ‘내가‘의 결말인 듯.

페크pek0501 2017-09-13 22:21   좋아요 0 | URL
댓글의 3번. 멋지군요. 제 글과 관련된 글을 쓸 줄 아시는 님의 센스...

댓글의 4번도 멋지군요. 저도 카프카의 <변신>에서 소풍 가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성장한 딸의 모습에 시집 갈 때가 되었다며 흐뭇하게 보는 부모의 시선에 대한 문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제가 리뷰로 올린 적 있는 소설이라 기억하는 것 같아요.

무플 면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굿 밤 되세요.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10-2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 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7-10-21 23:0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있네요... ㅋ

2017-11-05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5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사야겠는데, 당장 읽을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여 읽을게 넘쳐서 ㅎ

페크pek0501 2018-06-09 22:3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읽을 게 넘쳐도 아마 이 책은 금방 읽으실겁니다. 지루하지가 않고
재밌거든요.
강추합니다. 체호프를 좋아하시게 될 것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근데 리뷰쓰는데 엄청 시간 들이신 것 같아요 역쉬 페크님!

페크pek0501 2018-06-09 22:34   좋아요 1 | URL
10편의 단편 중 5편을 골라 썼는데도 글이 길어졌어요.
글이 긴 건 기술 부족 때문입니다. ㅋ
저로 하여금 할 말이 많게 하는 책은 대체로 저에게 좋은 책입니다.
좋은 토요일 밤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6-09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주문했는데 그 놈만 안 오고 딴 놈들만 왔네요 기대하고 기다리게 만드네요 ㅎ

페크pek0501 2018-06-10 13:06   좋아요 1 | URL
기대하고 기다릴 때가 행복한 시간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