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있었던 일이다. ATM을 통해 통장 정리를 해 보니 19,900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누가 보낸 돈이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빴다. 통장을 자세히 보니 ‘찾으신 금액 난’에는 0616이라고 씌어 있었고, ‘맡기신 금액 난’에는 19,900이라고 씌어 있었고 ‘거래 내용 난’에는 신한은행이라고 씌어 있었다. 입금된 날짜는 6월 17일이었다.

 

 

 

하나 짚이는 일이 있었다. 6월 16일에 농협 ATM을 사용하고 나오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한은행의 체크카드를 발견했던 일이다. 누군가가 실수로 떨어뜨리고 간 모양이다. 체크카드 주인이 나중에 찾으러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체크카드를 주워서 ATM 위에 놓고 나왔다. 그런데 찜찜했다. 주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체크카드를 발견해서 나쁜 마음을 먹고 사용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일로 속상해 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니 체크카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체크카드를 손에 쥐고 신한은행으로 전화해서 분실 신고를 해 주었다. 신한은행 측에서 체크카드에 씌어 있는 번호를 불러 달라고 해서 불러 주었으니 그 체크카드는 ‘사용 정지’가 될 터였다.

 

 

 

그러니까 의아하게 생각했던 19,900원은 은행 측이든지 카드의 주인 측이든지 둘 중 한쪽이 분실된 체크카드를 신고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내게 송금한 포상금이라고 해석이 되더라는 얘기다. 그 증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한은행이라고 씌어 있던 것(그 분실된 체크카드는 신한은행의 것이었다). 둘째, 암호처럼 0616이라고 씌어 있던 것(분실 신고를 해 준 날이 6월 16일이었다). 그리고 왜 하필 19,900원인가 하는 건 이렇게 해석했다. 그 체크카드의 통장에 199,000원이 들어 있어서 그 10프로의 금액을 산출한 것이라고 말이다. 잃어버린 돈의 액수의 10프로가 포상금으로 생각했던 것.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만약 포상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19,900원을 내게 보내온단 말인가.

 

 

 

그런데 아니었다. 포상금이 아니었다. 모든 정황이 포상금임을 말하고 있는데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어떤 문자를 폰으로 받고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지하철을 탈 때 사용하는 교통카드가 고장 나서 해당 업체에 접수한 적이 있는데 그 교통카드에 담겨 있는 금액과 카드 자체의 값을 합한 금액이 19,900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포상금이 아니라 고장 난 교통카드에 대해 환불 처리가 된 금액이었던 것이다.

 

 

 

모든 정황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할 뿐, 진실이 아닌 경우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해를 하며 사는 것일까. 이런 교훈을 주는 에피소드였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곱씹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좋은 일을 했더니 복을 받더라, 하는 교훈을 주는 에피소드인 줄 알았더니 아   니   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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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9-0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를 읽고 있는데, ... 이 책에 알맞은 에피소드네요.

페크pek0501 2016-09-07 11:08   좋아요 0 | URL
후훗... 그랬나요?
저에게는 잊지 못할 교훈을 주는 일이었어요. 상대가 인정하기 전엔 함부로 오해해서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이소오 2016-09-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무튼 착한일 하셨네요. 복받으실거에요^^

페크pek0501 2016-09-08 16:11   좋아요 0 | URL
옙~~ 감사합니다. 모처럼 착한 일 했어요. ㅋ

stella.K 2016-09-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끔 기분 좋은 착각도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할 텐데
문제는 오래 못 간다는 것이고 착각은 아니함만 못하게 만들어요.
아, 냉정한 현질이여...!ㅠ

페크pek0501 2016-09-08 16:12   좋아요 0 | URL
기분 좋은 착각은 좀 오래하고 싶죠?
깨져서 현실에 돌아올 땐 아쉽긴 하지만요...

오우, 이미지 좋은 걸요? 책 내신 것 홍보 효과도 있습니다요... 다시 한 번 책 출간을 축하드리고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

cyrus 2016-09-0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따로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통장 확인할 때 헷갈려요. ^^;;

페크pek0501 2016-09-08 16:1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래서 꼼꼼히 봐야 할 터인데, 어떤 때는 뒤늦게 보고서, 어 이거 뭐지?, 이런 다니까요.
좋은 하루 됩시다. 미세먼지를 날려 버릴 비가 와서 날씨가 좋습니다.
 

 


1. 여러 각도로 생각하자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의 좋은 점은 다른 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와 바람’이란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본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매번 이 이야기의 메시지가 다르게 읽혔다.

 

 

....................
‘해와 바람’
어느 날, 바람이 해를 찾아왔어요. "이봐, 이 세상에서 누가 힘이 제일 센지 알아? 바로 나라고."
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기만 했어요.
"어허, 못 믿겠나보지? 그럼 우리 둘이 내기를 해 볼까?" 그 때, 한 나그네가 들판을 지나갔어요.
"저 사람의 외투를 벗기면 이기는 걸로 하자." 바람이 먼저 입김을 세게 불었어요. 후우욱~~~
나그네는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자 외투를 단단히 붙잡았어요. 바람은 약이 올라 입김을 더 세게 불었어요.
나그네는 외투를 더 단단히 붙잡았어요. 바람이 아무리 세게 입김을 불어도 외투는 벗겨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해가 나섰어요. "호호. 자, 내가 하는 걸 잘 봐." 해는 방긋 웃으며 따뜻한 햇빛을 비추었어요.
나그네는 햇빛이 비추자 단추를 하나씩 풀었어요. 해는 뜨겁게 햇빛을 비추었어요. 나그네는 너무 더워서 외투를 벗었어요.
해는 더 뜨겁게 쨍쨍 내리쬐었어요. 마침내 나그네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졌어요.
해가 바람에게 말했어요. "이봐, 힘이 세다고 잘난 척하면 못써."
바람은 너무 부끄러워서 멀리 달아나 버렸어요.[출처] 이솝이야기
....................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읽을 적마다 달라져서 신기했다. 내가 느낀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메시지1) 자만심은 금물이다.
메시지2)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
메시지3) 생각과 실제는 다르다.
메시지4) 이기고 지는 건 힘에 달린 게 아니라 지혜에 달렸다.
메시지5)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 다르다.(만약 외투를 벗기면 이기는 걸로 하지 않고 외투를 입게 하면 이기는 걸로 내기를 했다면 바람이 이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 보니 또 다른 메시지가 느껴졌다.

 

 

메시지6)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이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여섯 가지 중 어떤 메시지가 맞는지를 묻는다면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다. 메시지든 느낌이든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이 글의 메시지가 뭐냐고요? 정답은 없어요.”라고. 여섯 개의 메시지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여섯까지나 생각해 내다니 대단한 걸요.”라고.

 

 

 

 

 

 

 

 

 

 

 

 

 

 

 

 

 

 

 

여러 각도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틀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함으로써 지혜로워지는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힘든 일들,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황들을 순간순간 헤쳐 나가려면, 우리는 끝없이 유연해야 하고 어떤 이론이나 특정한 생각의 틀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21쪽)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서.

 

 

그래서 일관성 있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올바른 교육을 이루려면 삶을 전체로서 이해해야 하고, 그러자면 일관성이 아니라 똑바로 참되게directly and truly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관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어떤 틀을 따르는 탓에 판에 박힌 생각을 하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19쪽)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서.

 

 

 

 

 

 

 

2. 학교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삶을 배우는 곳이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남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그러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인간이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고 끝입니다.(20쪽)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서.  

 

 

학교가 단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곳이라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해도 될 것이다.(부모가 좋은 교사가 될 능력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나의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기회를 잃는 것이 된다. 상대로부터 무시당했을 때의 기분이 어떠한지, 왜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지, 우정이 무엇인지, 시기심이 날 땐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열등감이 생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협력이 필요한지,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삶’을 배우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고 여러 정보를 모아 그 상관관계를 배우는 일일 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의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20쪽)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 없이는 우리가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안고 있는 문제들은 더 심각해지고 확대될 것입니다.(21쪽)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서.

 

 

지식은 지혜가 아니며 지혜는 책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상의 일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학교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지혜는 자아를 극복할 때 생깁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배움보다 더 중요합니다. 마음을 정보로 빈틈없이 채우는 것으로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고, 우리 자신과 주변의 영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낮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잘 지켜볼 때,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혜는 두려움과 억압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이해할 때 생깁니다.(95~96쪽)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서. 
 


사실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인간관계란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는다면 상처를 줄 일도, 상처를 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내면 깊은 곳의 탐구를 지향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가 어떤 성공보다도 실패를 우위에 두고, 무의식중에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실패는 언제나 본질적인 것인 까닭에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신이 우리를 보듯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게끔 해 준다. 반면에 성공은 우리 자신 속에, 모든 것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29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이 글을 읽고 내면 깊은 곳의 탐구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소설가’를 떠올렸고, 왜 소설가들이 불행한 인생을 사는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쓰는지 그 까닭을 짐작했다.

 

 

비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는 식물원의 화초처럼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위태로워 보인다. 미성숙해서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고 극복하지 못해 좌절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을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임을, 인간을 깨닫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임을 알기에 실패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게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넓은 시각으로 보게 함으로써 인생을 알게 한다. 부잣집에서 철부지로 자란 소년은 세상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고, 가난한 집에서 고생하며 자란 소년은 저절로 세상 물정에 밝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그 답을 찾게 된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실패가 주는 가르침)이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키워라.’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답이다.

 

 

선생이 자기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고 학교에 따지러 오는 학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준비물을 여러 번 갖고 오지 않아 선생이 따끔하게 혼낸 게 이유였다고 한다. 내 생각엔 때론 상처가 되는 말을 듣기도 하면서 커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보약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물론 아이에게 조금도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건 부모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아픔을 모르고 자란 그 아이가 나중에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면 그땐 어쩔 것인가. 그때마다 부모가 자식을 따라다니며 보호해 줄 것인가. 앞으로 녹록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갈 아이이기 때문에 실패와 아픔을 겪으며 자신을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왜 간과하는가.

 

 

이런 차원에서 생각할 때 자식을 과보호하는 학부모나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도 공부를 잘 시킬 수 있다고 믿는 학부모는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학교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친구들과 충돌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는 일도 일어나는 학교는 자신을 단련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다.

 

 

 

 

 

 

 

3. 상처를 받는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

 

 

 

 

 

 

 

 

 

 

 

 

 

 

 

 

 

 

 

전쟁 때문에 부모 없이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두 소년이 있다. 두 소년은 형제다. 두 형제는 먹을 것이 귀한 할머니 집에서 노동을 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그 둘을 예뻐하지 않았다. 그 둘은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고 잘 견뎌 내기 위해 몸을 단련시키는 훈련을 한다. 그 훈련이란 서로의 뺨을 갈기고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세게, 더 세게 때렸다. 우리는 불꽃 위로 손을 스쳐 갔다. 우리는 허벅지, 팔, 가슴 등을 칼로 찔러 상처를 낸 뒤 그 위에 알콜을 부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말했다.
- 하나도 안 아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는 정말 감각이 없어졌다. (...)
우리는 이제 울지 않는다.(19쪽)
- 아고타 크리스토프,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에서. 

 

 

그 두 형제는 몸을 단련시키는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단련시키는 훈련도 한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했다.
-개자식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녀의 새끼들! 망할 자식들!
또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멍청이들! 부랑배들! 조무래기들! 고집불통들! 더러운 놈들! 돼지새끼들! (...) 살인자의 종자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눈이 따갑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우리는 더 이상 얼굴을 붉히거나 떨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
하나가 말한다.
-더러운 놈! 똥 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23~24쪽)
- 아고타 크리스토프,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에서. 

 

 

이런 반복된 훈련으로 두 형제는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큰딸에게 짝사랑을 해 보기도 하고, 실연을 당해 보기도 하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슬픔을 겪으면서 정신이 성숙해진다고 믿어서다. 또 실패와 아픔의 경험은 앞으로 시련이 닥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정신적 재산‘을 가진 것과 같다고 믿어서다. ’그런 큰일도 겪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웬만한 나쁜 일쯤은 잘 극복하리라고 본다. 

 

 

 

 

 

 

 

4.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전중환 저, <본성이 답이다>라는 책에서는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협력을 꽃피우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착한 일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자연스럽게 회피할 기회를 주지 마라.(163쪽) 예를 들면, 연말에 대형 할인점 앞에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돈이 쌓이도록 하고 싶다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지키고 있는 문이 아니라 다른 출입문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

 

 

둘째, 구성원이 협력과 배신 가운데 무얼 택했는지 남들의 눈에 잘 띄게 하라.(163~164쪽) 남들이 내가 무얼 택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무임승차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셋째, 다른 사람들이 이미 협력하고 있음을 주지시켜라.(164쪽) 만약 호텔 객실의 수건을 재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싶다면 환경 보호에 동참해 달라는 이성적 호소보다 ‘이 방에 머무른 손님들의 75퍼센트가 수건을 재사용했다.’라는 정보 제공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것은 사회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행한 실험의 결과다.)

 

 

결국 좋은 세상이 되는 것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와 의도적인 노력,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
위의 네 가지를 쓰고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 여러 각도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2. 지식만이 아니라 삶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3.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상처를 받는 훈련으로 노력하고
4.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

 

 

‘노력’이 우리 인생에서 빠질 수 없음이로다.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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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31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도 `해와 구름` 우화를 재해석한 적이 있었어요. 요즘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를 읽고 있어요. 그림형제 동화 완역본인데 분량이 엄청 두꺼워요. ^^

페크pek0501 2016-09-02 13:23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몰랐어요. 해와 구름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궁금하군요.
저도 동화책을 많이 구입했답니다. 거기서 글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림형제 동화를 저도 읽었는데 완역본은 아니에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유익한 게 담겨 있고 흥미로운 데가 있어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6-08-3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나서 돌아서서 잊히는 게 있으면 어떤건 다시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책 ㅡ그런책이 좋은것 같아요..명작이 그런거겠죠?

페크pek0501 2016-09-02 13:20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 반갑습니다.
명작이 그렇죠. 읽고 났는데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것.
또 읽어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운 것.
명작이 지루한 것도 많지만 의외로 재밌으면서 명작인 게 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날씨가 참 좋습니다. 늦여름이죠.

[그장소] 2016-09-02 16:52   좋아요 0 | URL
변화무쌍 날씨 즐기는 중 ㅡ ㅎㅎㅎ
pek0501님도 명작의 시간 보내고 계실거라고 믿을게요!^^

페크pek0501 2016-09-03 09:47   좋아요 1 | URL
변화무쌍한 토요일. 저는 친척 결혼식에 가야 한답니다.
매주 행사가 있네요. 이런 날은 책이나 보면서 뒹굴고 싶은데 말이죠.
반 팔 옷을 입어야 할지, 긴 팔 옷을 입어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주는
선선한 날씨입니다, 오늘은....

댓글 고맙습니다. 명작의 시간을 보내시길...

[그장소] 2016-09-03 20:21   좋아요 0 | URL
반소매에 가붓한 가디건 하나 . 파시미나 같은 걸로도 좋겠네요 . ^^
낮과밤이 애매한 시기죠 ..아무래도.

페크pek0501 2016-09-07 10:31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굿모닝?
어제는 더웠는데 오늘은 좀 덜 더우려나요? 그래도 요즘은 저녁이 되면 시원해져서
좋습니다. 아직 긴 팔 옷을 못 입겠어요. 긴 팔 옷을 입는 시간이 되면
지금보다 더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냅시다... ^^고맙습니다.

yamoo 2016-09-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는 책을 여러번 읽는 이유는, 그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판하기 위해서죠. 이 책의 한계는 어디인가...하구요. <물질과 기억>의 경우는 3번 읽어도 잘 모르겠더이다..번역때문에..ㅜㅜ

2. 학교는 삶을 배우는 공간이다....라는 페크 님의 말씀, 백번 동감입니다!

3번은 잘 모르겠고, 4번은 동의할 수 없네요. 4번의 책은 좀...협력을 꽃피우기 위해서 저런 인위적인 방법을 써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런 방법은 다른 책에서도 본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좀 거시기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 저 책을 한 번쯤 거들떠 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몰랐던 책인데, 책 소개 감사합니다!ㅎ

페크pek0501 2016-09-03 09: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1. 그러시군요. 저는 책을 여러 번 읽는 이유가 좋은 글은 머릿속에 완전히 입력하고 싶어서예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은 읽을 당시 여러 번 읽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패스, 입니다.

2. 의외로 공부는 집에서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학교를 과소평가해서인 것 같아요.

3. 상처 받는 훈련이 필요함은 제 경험을 통해서 동의하게 되었어요.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때 처음엔 무척 힘들더군요. 그런데 같은 일로 두 번째 시련이 올 땐 극복하기가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악성 댓글 같은 것. 또는 병원에 가는 것.

4. 협력을 꽃피우기 위해서 저는 인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기적인 인간이 될지 몰라요. 선과 악을 다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선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믿어요. 예를 들면... 기부금을 내는 부자의 명단을 방송에서 크게 공개하고 그 이름들을 돌에 새긴다고 가정할 때 기부금을 내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고 기부금을 내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런 쪽으로 진화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부자가 기부금을 내는 건 당연한 습관이다, 뭐 이런 거죠.
그 기부금으로 가난한 이들이 수혜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고요.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고 좋은 일엔 마구 칭찬을 해 줘서 좋은 일을 하게끔 북돋아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야무 님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어요. 인위적, 이라는 것에는 좀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님의 고견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야무 님의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떤 것을 드러내는 글을 좋아합니다.
날씨가 참 좋은 날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긴 댓글,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기대를... 합니다... ㅋ
 

 

 

오늘 본 하늘이다.

 

 

 

 

 

 

 

 

 

 

 

 

 

 

 

긴 시간 동안 폭염에 시달렸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무척 상쾌하게 느껴졌다.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음악을 감상하듯 하늘과 바람을 감상했다.

아마 폭염이 없었다면 하늘과 바람에 무심했을 것이다.

 

 

 


인생에는 어느 정도의 낭비가 필요하다. 헛된 일도 해보지 않으면 유익한 일도 할 수 없어진다.(134쪽)
- 시오노 나나미, <생각의 궤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 봐야 알찬 하루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것.
나쁜 날씨를 겪어 봐야 좋은 날씨를 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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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2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와 오늘 진짜 청명한 가을 날씨였습니다. 그제 비오고 날씨가 갑자기 완연한 가을로 변했습니다. 확실히 날씨가 미쳤네요..^^;; 어제는 정말 구름 한점 없더이다~ㅎ

페크pek0501 2016-08-28 23:52   좋아요 0 | URL
오늘도 덥지 않고 날씨가 좋았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늦여름인 것 같아요. 저녁엔 서늘해서 긴 팔 옷을 입고 싶을 정도였어요. 폭염을 이겨낸 자의 흐뭇한 미소로 늦여름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후훗... 님도 짧은 늦여름을 즐기시길...

마립간 2016-08-28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하늘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 되나 생각했습니다.

흐음, 시간이 흘러갔네요. 또 ...

페크pek0501 2016-08-28 23:53   좋아요 0 | URL
그렇죠... 폭염 속에서도 시간은 정지하지 않고 흐르고 있었던 것이죠. 곧 연말이 올 것이고 우리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죠.

stella.K 2016-08-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흐려요.
아직까지 한 번도 상륙하지 않았다는 태풍의 영향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피해만 없다면 태풍 하나 정도는 와 줘야 한다고도 하던데 말이죠.
어쨌든 덥지 않으니 살 것 같다 싶긴 하지만 곧 여름도 가겠지 싶어요.

페크pek0501 2016-08-28 23:55   좋아요 0 | URL
여름이 떠나갈 것이고 우리는 시원섭섭할 거예요. 여름을 보내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년 여름이 온다는 것은 걱정이 되네요. 점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태풍이 오기 시작하면서 곧 가을이 오겠죠. 흠흠... 나이만 먹는 것 같아요. ㅋ
 

 

1.
블로그를 가진 블로거는 하나의 직무를 가지게 된다. 어떤 직무인가? ‘글을 올린 지가 너무 오래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문자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횟수가 많아지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글을 올린다. 아니다. 누군가가 댓글을 쓴 것을 발견하고서 급히 글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올린다. 아니다. 지금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비 오는 여름밤이 좋아 시시한 글이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올린다. 아니다. 사실은 지금 듣고 있는 노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 레논의 Imagine을 듣고 있어서인지도...

 

 

이 노래를 들으니 학교 앞 어떤 다방에서 리포트를 쓰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존 레논, 소나기, 여름밤, 추억 그리고 블로그.

 

 

어울리는 조합인가 아닌가? 

 

 

 

 

 

 

2.
엄밀하게 말하면 깨달은 자는 없습니다.
오직 깨달은 순간들만 존재합니다.
- 스즈키 순류

 

 

엄밀하게 말하면 행복한 자는 없습니다.
오직 행복한 순간들만 존재합니다.
- pek0501

 

 

 

 

 

 

3.

소설을 쓰겠다고 하다가 몇 년이 지나 소설을 포기하고 문학 평론을 공부하기로 했다는 작가 지망생에게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소설이 안 되니깐 이제 평론이래.” 이 말을 듣고 본인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웃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 선생님이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기 좋아하게 된 나를 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글이 안 되니깐 이제 사진이래.”

 

 

 

 

어떤 절에 있는 연꽃. 꽃보다도 넓은 잎사귀가 맘에 들어 사진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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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8-2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ㅋ 누군가의 댓글을 보고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올라와요 ㅋㅋㅋ
사진에 찍힌 저 뜨거운 햇살이 느껴지네요 와우 사진 굳 ㅎ

페크pek0501 2016-08-25 21: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보고 글을 올려야겠단 제 생각에 공감하시다니 반가워요. 그렇더라고요.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는 분도 있는데 글을 올려야지, 이렇게 돼요.

비가 왔나 봅니다. 창문이 젖은 것을 보니 시원한 느낌이 드네요. 여름이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해요.

사진, 잎사귀가 정말 잘생겼죠? ㅋ

댓글 고맙습니다.


cyrus 2016-08-2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백 기간이 길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면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8-25 21:21   좋아요 0 | URL
흠흠... 자꾸 공백 기간이 생깁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날씨도 덥고 해서 열심히 살기가 싫은 모양이에요. 게으름의 의자에서 책만 보며 살고 싶은 모양이에요.

이곳 알라딘에서 좋은 분들 많이 알게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stella.K 2016-08-2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그제 소나기 오니까 좋긴하더라구요.
일본은 물난린데 우린 가뭄이고. 고르지도 못해요.
평론도 쉽짆않죠. 아, 글 쓰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ㅠ

페크pek0501 2016-08-25 21:24   좋아요 0 | URL
오늘 저녁도 소나기가 왔어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비 올 줄 알았지요.
홍수도 문제, 가뭄도 문제... 적정선이 늘 문제군요.
평론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죠.
흠흠... 저도 글쓰기가 어려워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고 있잖아요.

좀 무식해져야겠어요. 무식해서 용감한 사람이 되자, 이러면서... ㅋㅋ
고마워유.^^
 

 

 


1. 2016년 7월 XX일

시보다 시작노트가 좋은 경우가 많아요. 시 쓸 때는 시작노트 쓰듯이 하라는 말도 있지요. 쓴다는 의식이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부자연스러운 말을 하게 돼요. 피아니스트의 뒷모습을 보면 어떤 소리가 날지 알 수 있다고 하지요. 골프나 테니스에서처럼 시도 어깨에 힘이 빠져야 ‘원 샷’으로 갈 수 있어요.(129쪽) - 이성복 저, <무한화서>에서.

 

 

나도 쓴다고 의식하지 않고 어깨에 힘을 빼고 써 보려고 했다.

 

 

시에서 철학은 숨어 있어야 해요. 독자한데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태도는 시와는 거리가 멀어요. 시는 한 수 배우겠다는 거예요. 심각한 폼 잡지 말고, 잡생각과 헛소리에 의지하세요. 그러면 철학도 따라와요.(128쪽) - 이성복 저, <무한화서>에서.

 

 

나도 심각한 폼 잡지 않고 잡생각과 헛소리에 의지하여 써 보려고 했다.

 

 

사진으로 말하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폼 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은 스냅 사진 같은 글이 좋다는 것이지. 문제는 멋진 스냅 사진을 찍기 힘들 듯이, 멋진 스냅 문장을 쓰기 힘들다는 것이지.

 

 

 

 

 

 

2. 2016년 7월 XX일

중복이 지났으니 여름의 반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축구 경기로 말하면 전반전이 끝났고 후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여름은 빠르게 흘러갈 것이므로 아무리 더워도 지낼 만하겠다. 지금이 ‘5월 말’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앞으로 몇 달을 더운 날씨 속에서 지내야 하잖아. 지금이 ‘7월 말’인 게 얼마나 좋은가. 

 

 

그만 뜨거워라, 더워 죽겠다, 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살면 안 된다. 더 뜨거워라, 그래야 벼가 잘 익어서 내가 일 년 동안 맛있는 밥을 먹을 수가 있는 거다, 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살아야 하는 것. 

 

 

얼마든지 더워도 좋다고 생각하겠다. 왜냐하면 난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끝낼 적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잊을 테니까. 이러면서 무더운 여름을 보낼 테니까.

 

 

 

 

 

 

3. 2016년 8월 X일

어제 소나기가 내려 좋았다. 땅의 열기를 식혀 줄 것 같아서, 더운 공기를 식혀 줄 것 같아서, 먼지가 씻어질 것 같아서. 꼭 그렇지 않더라도 여름의 소나기는 서늘한 환상을 갖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창문을 통해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 것을 보니 여름의 지루함이 반 토막 나는 것만 같아 좋았다. 유쾌했다. 무더운 날씨가 아니었다면 맛보지 못할 유쾌함이었다.

 

 

 

 

 

 

4. 2016년 8월 X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자녀의 교육비나 자녀의 성형 수술(쌍꺼풀 수술 같은) 비용은 투자라고 생각하며 아끼지 않으면서 혹시 자신에게 투자하는 비용은 아끼며 사는 건 아닐까?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다가 너무 더워서 쉬고 있다. 더워서 쉬는 건지 돈이 아까워서 쉬는 건지 잘 모르겠다. 겸사겸사해서겠다. 요즘은 집에서 마스크 시트로 대신한다. 간편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마사지 효과를 내니 좋다. 어제도 얼굴에 마스크 시트 한 장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20분 뒤에 떼면 끝이다. 내가 이렇게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함. 늙기 싫어서 발악을 하고 있음.

 

 

내면 가꾸기를 위한 투자로 책값을 치른다면, 외면 가꾸기를 위한 투자로 마사지 비용을 쓰는 거지. 인생에서 가장 소홀하기 쉽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지, 책값은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는 비용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마사지 10회분 비용을 선불로 내고 나면 잘한 일인지 고민하게 된단 말이야.

 

 

아, 내가 반성할 게 있다. 예전에 대중목욕탕에서 오이 마사지를 전신에 받는 여성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오이를 아깝게 왜 먹지 않고 몸에 바르는 거야?, 하면서) 흉을 본 적이 있는데 취소한다. 취소, 취소. 내가 그땐 뭘 몰라서 그랬던 거야.

 

 

내가 흉을 보거나 비난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나도 언젠가 따라하며 살게 된다는 것. 값진 깨달음일세. 인간의 어리석음.

 

 

 

 

 

 

5. 2016년 8월 X일

일기를 쓸 때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할 때가 있다. 실천이 안 되면 또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한다. 내가 결심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오늘 알았네. 어떤 책에서 읽어 알았네. ‘결심이라는 집에서는 다들 잠을 잘 잔다.‘라는 페르시아 속담이 있다고 하네. 어떤 일을 할지 말지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는 뜻이란다. 나도 그 홀가분함을 느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그거였군. 영화를 보면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아무도 모르게 상대에게 복수하여 완전범죄로 끝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꼭 상대에게 미리 말한단 말이야. “내가 당신을 가만둘 것 같아? 당신을 가만 두지 않겠어.” 이렇게 말함으로써 복수하기로 결심하며 홀가분함과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지. 복수 계획에 대해 선언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지. 선언은 곧 결심인 것. 일단 중요한 건 선언하고 싶다는 자기 마음이거든. 그 결과 나중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용의자로 지목이 되더라도 말이야. 난 이런 인간 심리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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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08-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ㅎ 마사지 정기권 끊고 나면 내가 미쳤나 싶고... 책은 그거보다 더 사대면서 말이죠... 근데 마사지 받으면 기분 좋기는 해요 ㅋㅋ

페크pek0501 2016-08-11 11:31   좋아요 0 | URL
비연 님, 오랜만이십니다. 반갑습니다.
마사지는 받을 때는 좋은데 거기에 가기까지가 귀찮아요. 요즘처럼 더울 때는 더욱...

십 몇 년 동안 책을 산 돈을 얼굴에 투자했다면 으음... 지금쯤 피부에서 광이 날 것 같아요. ㅋㅋ

순오기 2016-08-09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에서 거금을 지불하고 맛사지 받는 건 아까워서 못하고, 윤동주 생가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두배나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페크pek0501 2016-08-11 11:32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도 그러시군요. 우리 알라디너들의 공통점은 책값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저도 책 사는 데 드는 돈은 열 권을 한꺼번에 사도 아깝지 않아요. ㅋㅋ
반가웠습니다.

세실 2016-08-0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마사지 끊어 놓고 안가는 1인 여기 또 있어요. 마사지 받을때 끈적거리는 느낌도 싫고, 매주 가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환절기때 푸석거리면 가려구요.
전 오늘 미운 직원 있어...그 직원의 행적을 하나하나 적고 있어요. 뭐하려고? 적으면서 털어 내려구요~~~ ㅎㅎ

페크pek0501 2016-08-11 11:37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저는 마사지 받고 나서 끈적거리는 느낌을 좋아해요. 그래서 촉촉하게 해 달라고 한답니다.
매주 가는 건 좀 그렇고 9월부턴 격주로 다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효과는 있겠지, 하면서 말이죠.
지인 중에 젊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비결이 글쎄 마사지 3년쯤인가 받은 거였어요. 그래서 충격... 그때부터 등록하고 다녔어요.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 거죠.
한 주는 마사지 받고 한 주는 마스트 시트 하고 그러면 매주 하는 게 되겠죠?
열심히 해서 세실 님 만날 때 님의 미모와 큰 차이가 안 나게 해야 할 텐데... 요런 생각으로 하겠습니다.

ㅋㅋ 씨유...

yamoo 2016-08-2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다음 주만 지나면 고비는 넘길것이다...샹~ 이 말을 3주째 듣고 있네요...마른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질 않나! 이거 거의 맨날 기상청 욕하며 지내고 있어요~ 분명 기상청 슈퍼컴터 들여오면서 비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4. 마사지 받으러 다니시는군요! 페크님은 왠지 그런 데에는 관심이 도통 없을 거 같은데 말이죠..ㅎ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말고 다른 분야에 투자할 시 그 비용이 매우 커보인다는 게...아마도 기회비용이론에서 파생된 심리이론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욤^^;;

5. 글게요...영화 보면 꼭 복수를 하기전 그런 멘트를 날리더이다~~ 그냥 지나쳤는데, 페크 님이 예리하게 환기해 주셨네요.^^

페크pek0501 2016-08-22 20:56   좋아요 0 | URL
2. 날씨가 미쳤구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미쳤구나, 그러고 있어요.ㅋ

4. 페크는 외모 가꾸기엔 관심이 없고 책에만 관심이 있다, 이거지요? 하하~~

기회비용이론을 접수합니다. 좋은 설명이십니다.

5. 실제상황, 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지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재현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인데 그거 보면 범죄자가 꼭 복수하겠다는 멘트를 날리더군요.
실제로 그렇게 하더라는...

꼼꼼한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