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소설과 관련하여 단상을 적어 보았다.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소설 「고리오 영감」을 읽다가 인간은 오해하기 잘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보케르 부인은 하숙집 주인이다. 이 하숙집에 여러 하숙인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고리오 영감’이다. 두 여성이 고리오 영감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하숙인들은 고리오 영감의 정부로 알고 그가 여자 때문에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오해한다. 사실 두 여성은 고리오 영감의 딸들이다. 고리오 영감이 딸이라고 말했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어서다.  


“저 영감 보았지요? 그런 여자들 때문에 저 영감이 망한 게 틀림없어요.”

보케르 부인이 보트랭과 다른 하숙인들에게 말했다.(「고리오 영감」, 64쪽)


보트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한 생각에 빠지면 끝까지 버티지. 어떤 특정한 우물에서 떠온 특정한 물만 마시려들거든. 대개 썩은 물이지. 하지만 그 물을 마시려고 부인과 자식들을 팔고, 자기 영혼까지도 악마에게 팔아버리지. 어떤 사람들에게 이 우물이란 도박, 증권시장, 그림, 곤충 수집, 음악이 될 수도 있지.

다른 사람들의 경우 남자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서 바칠 줄 아는 여자일 때도 있지.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다 제공해도 코웃음칠 거야. 이들은 자기들의 정열을 만족시켜 주는 단 한 명의 여자만을 바라는 거지. 흔히 이 여자는 그런 사람들을 전혀 사랑하지도 않고 학대하면서 작은 만족을 비싸게 팔지. 그런데 말이네! 그런 녀석들은 지칠 줄도 모르고 그 여자에게 마지막 동전 한닢까지 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은 자기 이불을 전당포에 잡힌단 말일세. 고리오 영감은 바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지. 백작 부인은 고리오 영감을 착취하고 있어. (...)”(「고리오 영감」, 65쪽) 


고리오 영감이 남들의 오해를 받듯이 나도 오해를 받곤 한다. 특히 첫인상만으로 나를 예단해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몸이 피로해서 집으로 올 때 택시를 타던 날이었다. 그때 택시 안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택시 기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여러 손님을 태우다 보니 손님 관상을 볼 줄 안다며 얼굴과 목소리만 알아도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 그건 말할 수 없단다. 그 말의 뉘앙스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는데 나를 자기주장이 강하고 깍쟁이인 줄로 아는 것 같았다. 나의 첫인상이 그렇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본 경험이 있어 말해 주었더니, 택시 기사는 미소만 지을 뿐 내 말을 부정하지 않는 걸로 보아 그렇게 본 모양이다. 첫인상으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단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 돈 쓰는 데 인색하지 않으니 깍쟁이가 아니고, 우리 애들한테 ‘무심한 엄마’로 통하고 있으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오해하기 잘한다는 점이다.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불필요한 오해를 쉽게 하고 틀림없다고 여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인간은 오해의 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작 부인이 말한다. 


“자! 라스티냐크 씨, 세상이란 이런 거예요. 세상을 알맞게 다루세요. 당신은 출세하고 싶지요? 내가 돕겠어요. 여성들이 얼마나 깊이 타락했으며, 남자들이 얼마나 볼썽사나운 허영심에 빠져 있는지를 헤아리게 될 거예요. 세상이라는 책은 열심히 읽어보아도 알쏭달쏭한 페이지들이 있어요. (...)”(「고리오 영감」, 109쪽)   


세상이라는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이란 책 역시 열심히 읽어보아도 알쏭달쏭한 페이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타인에 대해 잘 알아도 전부를 알 수는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전부를 알 수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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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는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이라는 원제가 말해 주듯이 놀라운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긴 세월을 홀로 무인도에서 살면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한다. 모험기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작가의 통찰이 엿보이는 구절을 발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글이다.(작가들은 좋은 글을 책의 앞쪽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는 나더러 잘 관찰할 것을 명했다. 즉 인생의 재앙은 상류층과 하류층끼리만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나도 알 것이라 했다. 중산층은 재앙을 제일 적게 겪을 것이며 상류층이나 하류층이 겪는 그 많은 인생무상에 접하지 않을 것이라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했다. 중산층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숱한 병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것과 달리, 상류층은 방탕한 생활과 사치와 낭비에 의해, 하류층은 노동과 생필품 부족과 형편없고 불충분한 식사로 인해 그들이 밟는 생활 방식의 필연적인 결과로 자신들에게 신체적·정신적 병을 몰아온다는 것이었다. 중산층의 생활이 모든 미덕이나 즐거움을 누리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 평화와 풍요는 중산층의 하녀라는 것, 절제와 중용, 평온, 건강, 사교, 기분 좋은 온갖 오락과 바람직한 모든 쾌락이 중산층을 향한 축복이라고 했다.(「로빈슨 크루소」, 7쪽)   


이 글을 읽고 신문에서 쉽게 눈에 띄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소식이 중류층보다 상류층과 더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산층의 생활이 모든 미덕이나 즐거움을 누리기에 안성맞춤”이라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즐거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범인(凡人)은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


 











이문열, 「금시조」


오래전 이문열 작가의 소설 「선택」(1997년 출간)을 읽고 저자가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것에 크게 실망하여 오랫동안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의 반페미니즘은 그 당시 신문에도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 오디오북을 들으려고 책을 고르다가 「금시조」라는 소설집에 담긴 단편 ‘사과와 다섯 병정’을 들어 보게 되었는데, 역시 이문열 작가는 소설을 참 잘 쓰는 작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종이책을 사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어 「금시조」를 구매했다. 「금시조」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 ‘어둠의 그늘’에서 밑줄을 그은 문장 중 뽑아 옮긴다. 미결수로서 감방에 수감되어 있는 ‘나’가 마음속으로 말했다는 글이다. 


그리고 때로는 김광하 씨처럼 나도 기묘한 논리에 빠져들곤 했다. 예를 들어, 창살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모든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향해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당하는 이 고초를 보며 청년들은 성실하게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당신들의 재산은 보호된다. 여기 강간한 동료가 와 있음으로써 당신들의 딸과 아내는 능욕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폭력범이 있으므로 당신들은 부당하게 폭행당하지 않을 것이고, 여기 증뢰자가 있으므로 당신들의 공무원은 부패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이곳에서 고통당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들의 평안과 이익을 위해서이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금시조」, ‘어둠의 그늘’, 126쪽)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은 자가 있을 듯하다. 


『감방에 수감되어 있는 자기네들에게 감사하라니 어이가 없다. 아무튼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말로도 둘러댈 수 있고 못하는 말이 없다. 자기들 때문에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번엔 어떤 말로 합리화할 것인지 궁금하다. 


감방 안에 있는 그들 말고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감방에 수감될 가능성이 높은, 질이 나쁜 사람들이 여기 저기 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단속을 해야 하고, 밖에서는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주의 깊게 살펴야 하고,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으로 인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사느라 편안한 삶을 살 수가 없다. 누구든 제발 남에게 해를 입히는 짓 좀 하지 말아 다오.』라고. 





....................

여담 :

지난 6월에 스미싱 피해를 입을 뻔했다. 택배 기사라고 하면서 한 남성이 내게 전화를 했는데 내 이름으로 삼성 카드가 발급되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카드 발급을 신청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전달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대리 수령인이 따로 있었으며, 전달받을 집 주소도 우리 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사기를 치는 것 같다고 내가 말하자 택배 기사는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한 여성이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온라인 접속을 통해 신고하라면서 자기가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내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접속을 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이 놓이질 않았고, 뭔가 수상한 음모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온라인 접속을 할 줄 모른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극이었다. 두 사람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 속아 내가 사기를 당할 뻔한 것이다. 신기한 것은 택배 기사라는 사람이 내 폰의 번호와 내 생년월일을 말하는데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러분도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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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7-13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겨짚고 뒷담화까는 것은 이때고 그때고 여기고 저기고 남자고 여자고,,,
동서고금 남녀불문 불변의 진리인가 봅니다.

페크pek0501 2025-07-13 13:32   좋아요 0 | URL
오! 잉크냄새 님이 멋진 말을 써 주셨네요. 그래서 친구들이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의 뒷담화를 할까 봐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요.ㅋ^^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7-13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보이스 피싱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는데 진짜 큰일날뻔 하셨네요. 저도 예전에 신청하지도 않은 카드가 발급됐다면서 회신하라는 메시지가 온 적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당할뻔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후로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나 문자 오는 거는 일절 받지 않는 습관이 생겼네요. 진짜 중요한 용건이라면 다시 연락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아무튼 천만 다행입니다.

페크pek0501 2025-07-13 17:16   좋아요 1 | URL
탄탄 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제가 아는 사람도 카드 발급 사기가 있었대요. 이런 사기가 많나 봅니다.
집에 두 애가 다 있는데 이런 문자가 여러 번 오기도 했어요. ˝엄마, 내 폰이 고장났으니 수리비 30만원 좀 부쳐 줘.˝ 애들이 집에 없었다면 써 있는 계좌번호로 제가 송금할 뻔했어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게 되니 무서운 세상입니다. 앞으로도 조심해야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반가웠습니다.^^

카스피 2025-07-14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요즘 스미싱 수법이 정말 진보의 진보를 거듭했네요.마치 무슨 미스터리 소설의 트릭마냥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니 소름이 끼칩니다.만약 저 같았으면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당했을 것 같네요.참 무서운 세상입니다ㅜ.ㅜ

페크pek0501 2025-07-16 12:42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아마 앞으로 더 진보하게 될 거예요. 정신을 바찍 차려야 해요.
지인을 통해 들었는데 지인이 아는 사람은 길에서 누가 폰을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 주었더니 통장에 있는 돈을 다 빼 갔대요. 요즘 온라인 통장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폰을 집에 놓고 나와서 부탁한다며, 길에서 폰을 빌려 달라고 하면, 내가 전화를 해 주겠다 하고 몇 번으로 전화하면 되느냐고 물어야겠습니다.^^

2025-07-15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6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5-07-21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정말 오해하기 잘하는 동물입니다. 정말 그래요. 인상이 크게 좌우합니다.페크님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깍쟁이 같은 오해를 받으시는군요!ㅎㅎ

와~~ 요즘 피싱 사기...정말 고도로 발달하고 있네요. 정말 깜박 잘못하면 사기당할 수 있겠네요...이런 사례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문열이 <선택>으로 욕 엄청드셨죠. 그치만 우리나라에서 소설 제일 잘 쓰는 작가임에는 분명하죠!

페크pek0501 2025-07-22 12:10   좋아요 0 | URL
제가 깍쟁이같이 생겼나 봐요. 깍쟁이처럼 안 보이려면 살이 쪄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정부에서 주는 소비쿠폰도 사기 조심해야 합니다.
<선택>을 읽고 얼마나 실망했던지 그때부터 최근 금시조를 구매하기 전까지 그의 저작을 읽지 않았다니까요. 그러나 소설은 정말 잘 써요. 문학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가임.^^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

이 책에서 뽑아 옮겼다.

 


26. 겉보기 지혜


어떤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합당하지 않다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경멸하고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지혜인 것처럼 보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항상 트집을 잡고 흔히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다. 이에 대해 겔리우스는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문제의 중대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자”라 했다.(116쪽)


겉보기에 지혜로운 듯한 자는 어쩌다가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이러한 자를 등용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지혜를 가장하는 자보다는 어느 정도 아둔한 자를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117쪽) 


116쪽의 겔리우스는 퀴릴라누스를 말함인데 베이컨이 착각해서 잘못 표기한 것이라 한다.(263쪽에 나와 있다.)




27. 우정


벗을 사귀어 얻게 되는 좋은 열매는, 온갖 감정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가득 차고 부풀어 오른 가슴을 편안히 하고 발산해준다는 점이다.(119쪽)


루이 11세도 괴롭도록 말이 없었다. “가슴을 갉아먹지 말라”고 한 피타고라스의 격언도 막연하지만 진실이다. 조금 심한 말이 될지는 모르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는 자는 자신의 가슴을 갉아먹는 식인종이다.(122쪽) 


친구의 좋은 충고를 받기 전에 마음이 잡다한 생각으로 뒤얽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벗과 교류하고 대화함으로써 이지와 분별심이 분명해지고 정돈된다. 자신의 생각을 더욱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고, 더욱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으며, 생각이 말로 표현되었을 때 훨씬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혼자서 하루 종일 궁리하는 것보다 친구와 한 시간 동안 담론하는 편이 낫다.(123쪽)


고민이 생겼을 때 그것에 대해 친구에게 말함으로써 해결된 경험이 있다. 이런 점에서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



 

 

*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기 싫다. 하루를 시작하는 게 귀찮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 싫다. 잠을 청하는 대신 티브이로 시청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더 시청하고 싶다. 앞으로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는 게 반갑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게 반가웠으면 한다. 



**

「하얼빈」을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실패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실패함.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완독하여 리뷰를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역시 실패함. 리뷰를 쓰는 것이 나는 힘들다. 그러니 책을 낸 알라디너들이여, 내가 그대들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말지어다. 



***  

주 1회의 강좌를 함께 수강했던 문우와 나는 여름 학기 3개월간의 강좌를 수강하지 않기로 했다. 더우니까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땀이 나고 나가면서도 또 땀이 난다. 지치기 쉬운 여름 동안 스케줄을 하나 빼고 나니 맘이 편하다. 그런데 그 문우가 주 1회 함께 글을 쓰자고 제안해 왔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찬성했다. 그래서 둘이 요일을 정해서 매주 노트북을 갖고 한 카페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하면 각자 따로 앉아 글을 몇 시간 쓰다가 집에 가기 전에 둘이 한자리에 앉아 수다 떨다가 헤어지는 것인데, 이미 해 본 경험이 있다. 한 명이라도 뜻이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문학과 철학에 관한 강좌를 1년 5개월 동안 수강했다. 강좌는 시간을 꼭 지켜야 해서 부담스러웠다. 지각하는 날이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그것에 비해 우리 둘이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없다. 낮 12시 전후로 아무 때나 글을 쓰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면 되니까. 


카페에서 주 1회 글을 쓰기로 한 건 내게 어떤 큰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다. 강좌를 들으러 가는 날, 운동하기 위해 발레를 하러 가는 날, 독서 모임에 가는 날, 스터디 모임에 가는 날, 장 보러 가는 날, 반찬 만들러 친정에 가는 날, 집안일을 하는 날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으면 내가 한가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기분 좋다. 한가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 카페에 글 쓰러 가는 가장 큰 이유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은 바쁘게 사는 내가 내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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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0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런 일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니 좋네요. ㅎㅎ 저는 불가능입니다. 일단 정해진 날에 글을 쓰는게 힘들어요. 워낙에 기분 내키는대로 하는 편이라.... 그래도 카페에 앉아 각자 글을 쓰고, 쓴 글을 같이 읽으며 얘기나누는 페크님이 눈앞에 그려져서 아름답네요. ^^

페크pek0501 2025-07-03 12:42   좋아요 0 | URL
정해진 날에 글을 쓰는 게 힘드셔도... 그래도 바람돌이 님은 리뷰를 잘 쓰시잖아요.
저는 리뷰보단 내 맘대로 생활칼럼을 쓰는 게 덜 어렵습니다. 제 노트북엔 미완성의 글이 담긴 폴더가 많이 있어서 언제라도 글을 쓸 수가 있답니다.
맞습니다. 글을 쓰고 나선 둘이 각자 쓴 글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책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눈답니다. 아름답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7-02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너무 더워서 강의 수강 대신 스터디 하시는군요. 일주일 동안 정해진 모임이나 약속, 일정이 많으셔서 바쁘실 것 같은데 여름 더운 시기에는 그렇게 하시는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주 폭염이 되어서인지, 오늘은 저도 가까운 도서관이나 카페 가서 한시간쯤 있다 오고 싶었어요. 다녀오면 기분전환도 되고 좋긴 한데, 너무 더워서 나가기 귀찮아서 포기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5-07-03 12:45   좋아요 1 | URL
함께 글쓰기가 스터디라고도 볼 수 있죠. 일정이 많으면 시간은 잘 간답니다.
이 여름도 금방 가길 기대해요. 벌써 7월이니 여름의 반은 지나가지 않았나요. 이달과 8월 중순까지만 보내면 늦여름이 올 겁니다. 늦더위는 마지막 시기라 생각되어 참을 만합니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냉방 시설로 시원할 거예요.^^

카스피 2025-07-03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카페에서 글 쓰는 모임을 하신다니 넘 부럽습니다^^

페크pek0501 2025-07-03 12:47   좋아요 0 | URL
아, 제가 바다가 보이는 사진을 넣어서 오해하실 만했네요. 제가 가려는 카페는 바다가 보이지 않아요. 서울에 살거든요. 저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사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5-07-10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3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딸에게


“엄마 어디야?”

네가 초등하교 5학년인 열두 살이었을 때 내가 너에게서 가장 많이 받았던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엄마 어디야?”였다. 내가 시장에 가거나 친구 모임에 가서 집에 없는 날이면 너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없음을 알고 그런 문자를 내게 보내곤 했다. 내가 어디에 있다고 말하면 너는 “언제 와?” 하는 문자를 보내고 나를 기다렸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도 네가 5학년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너의 주된 관심은 엄마였으니 엄마가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했을 터. 그래서 핸드폰을 갖게 되자 내게 그런 문자를 보냈으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내 눈에 애기였다. 언제 커서 집에 엄마가 없어도 찾지 않을까, 언제 커서 나로부터 독립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네가 중학생이 되고부터 돌변하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내가 외출을 해도 “엄마 어디야?”라는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애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중학생 소녀가 된 듯했다. 그때 난 너에게도 너의 세계가 생긴 거라고, 드디어 엄마와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세계를 가진 거라고 여겼다. 


너에게 라디오를 듣는 취미가 생긴 것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디오가 친구가 되어 주니 엄마의 외출로 불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중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을 사귄 것도 한몫했겠다. 이제 엄마의 존재는 너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되었다. 이 사실이 기뻤다. 결혼한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부담을 갖고 있기에 아이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돌아보면 엄마를 찾던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너를 찾으니 말이다. 밤이 되면 너의 귀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일이 언제 끝나니?”, “언제 와?” 하고 내가 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우리 모녀 관계에서 기다렸던 자는 기다리게 하는 자가 되고, 기다리게 했던 자는 기다리는 자가 되었다.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엄마 타령이나 하던 아이가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게다가 노력 끝에 절실히 바라던 한 전문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너에게 용돈을 주었던 내가 오히려 너에게 용돈을 받고 있는 요즘 자식을 키우는 보람을 느낀다. 자식을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사는 너는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하여 너는 내게 고마운 딸이다. 


너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너를 항상 응원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파이팅!  

                        

                                                                 2025년 5월 27일 엄마가.




........................

한 달 전쯤 딸에게 내가 쓴 편지 내용이다.  

딸 생일날에 생일을 축하한다며 축하금을 주었는데 딸은 받지 않겠다며 

그 대신 자신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쓰게 된 것이다.  

노트북으로 쓰기 시작하여 편지지에 옮겨 적고 편지 봉투에 넣어 딸에게 전했다.

참고로 남편도 똑같은 부탁을 받아서 딸에게 편지를 써서 주었다.

딸은 힘들 때마다 남편과 내가 준 편지를 읽겠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이런 글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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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5-06-23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뭉클해요. 따님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아름다운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Vanessa 2025-06-24 01:38   좋아요 1 | URL
ㅇㅇ

페크pek0501 2025-06-24 12:29   좋아요 1 | URL
문나잇 님. 아름다운 글이라니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십니다. 자식을 키워 본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올린 글일 뿐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0   좋아요 0 | URL
Vanessa 님. 댓글 한 표,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5-06-23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돈 대신 편지를 부탁하다니 너무 사랑스럽네요. 페크님 편지도 감동적입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1   좋아요 0 | URL
감동적이라는 표현, 참 기분 좋네요. 별로 감동적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독서괭 님의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카스피 2025-06-24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님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네요^^

페크pek0501 2025-06-24 12:33   좋아요 0 | URL
어떤 점이 딸을 잘 키운 거라고 느끼신 걸까요?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노력하며 사는 일꾼이라서?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딸이라서? 어느 포인트에서 느끼셨을지 잘 모르겠어염. 카스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희선 2025-06-24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페크 님한테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멋지네요 그런 말 듣고 편지 못 쓴다고 하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페크 님은 쓰셨군요 어릴 때 따님이 어땠는지도 기억하시고... 따님도 잊은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해마다 편지를 쓰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6-24 12:36   좋아요 0 | URL
희선 님은 편지 얘기에 느낌이 남다르실 듯합니다. 처음엔 편지 쓰기 싫다고 그냥 돈으로 받으라 했지요. 글이란 게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이지 꼭 해야 하는 숙제 같으면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꼭 편지를 받고 싶다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래도 우리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 술술 써졌어요. 해마다 쓰는 건 못 하겠고, 몇 년에 한 번쯤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6-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따님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었네요.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그 마음도, 그리고 이에 편지를 써주신 두 분의 마음과 결행도 참 아름답습니다. 편지 내용도 감동이구요ㅠㅠ
시간에 따라 표현하는 법은 달라졌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돈독함을 저도 느끼게 되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어버이날에 부모가 애들한테 편지나 카드를 받는 일이 있어도 애들한테 편지 쓰는 부모는 흔치 않을 겁니다. 딸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어요. 요즘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이유가 아마 딸이 더 효도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잉크냄새 2025-06-24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에게 평생을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 생겼네요.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0 | URL
아, 소중한 보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6-2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쓰신 편지도 좋지만, 힘들때 부모님이 쓰신 편지를 읽겠다는 따님도 참 좋아보여요.
편지 쓰는 일들이 없지 않지만, 부모님께 쓰는 일은 적고, 반대로 부모님이 남겨주신 일들도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화목한 가정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페크님, 날씨가 계속 더워진다고 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7 11:19   좋아요 1 | URL
힘들 때 부모의 편지를 읽겠다는 것, 저도 우리엄마한테 말해 보지 않은 거네요.ㅋㅋ
주위를 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화목한 것 같아요.
아직은 밤잠을 잘 때 추워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자기에 요즘 날씨가 좋다고 느낍니다. 낮에 더운 것쯤은 견딜 만합니다. 이 정도의 더위로 여름이 진행되길 바란다면 헛 꿈, 이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26쪽)

⇨ 그를 이해할 수 없으니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공감하면 악덕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생길 텐데.



녀는 고리오 씨에 대해 품었던 친근감보다 더욱 강하게 그를 미워해야겠다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증오는 고리오 씨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깨진 희망에 비례했다.(34쪽)

⇨ 이처럼 감정이란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러하다. A 님이 B 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C 님이 B 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B 님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되는가? 인간은 이치에 맞지 않는 데가 있는 존재다.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34쪽)

⇨ 애정을 숨길 수는 있어도 증오는 숨기기 어려운 법. 증오를 느낄 때 인내가 필요하기에 어렵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으로 인해 멈추지 않는 증오 때문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쩨쩨하니까 남도 쩨쩨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35쪽)

⇨ 남들도 자신과 똑같이 쩨쩨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자기만 쩨쩨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간은 어려운 일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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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2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언젠가 위 내시경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검사를 마치고 나서 의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질문할 사항을 미리 종이에 적어 가지고 갔다. 걷기 운동을 할 때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 것도 건강에 좋은지, 커피가 위에 나쁘다고 들었는데 하루에 몇 잔까지 괜찮은지 등을 물었다. 내 물음에 의사는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군요.”라고 덧붙였다. 이 말, 맘에 들었다. “건강염려증이 있으시군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상대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는 게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아 걷기 운동을 하고 발레를 하는 것이다. 




**

티브이를 통해 ‘이혼숙련캠프’를 시청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부부 사이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부부 간 말을 조심해서 한다면 싸우는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게 말하는 배우자에게 싸움을 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곱게 하려면 언어를 다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프란츠 카프카가 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것으로, 부자지간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다. 실제로 카프카는 아버지와 불화하여 고통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혹독한 말과 판단으로 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닌 막강한 힘에 대해 마치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구시더군요. 저도 아버지에게 말로 상처를 입힌 적이 물론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말하는 순간에 벌써 제 자신도 괴롭다는 것을 알았고, 하던 말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내뱉었을 뿐이었어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후회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말로 끝없이 남을 공격해 댔고, 말하는 중에나 말해 버린 후에나 그 누구도 마음에 걸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카프카, 53쪽)


아버지의 말씀은 세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판단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고, 그 부분에서 아버지는 결국 당신의 의도를 완전히 망친 셈입니다.(카프카, 53쪽)


화자인 아들은 아버지의 언어 사용을 통해서 아버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식을 동물 사료라고 부르며, 집짐승같은 가정부가 요리를 망쳐 버렸다고 하셨어요.(카프카, 54쪽)


이 한 줄의 글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인격을 말해 주는 법이니까. 음식이 맛없다고 해서 가정부를 집짐승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라니.




****
















38. 인간의 본성


사람의 본성은 사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꾸밈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격앙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문제, 낯선 사태에 임하여서도 잘 나타난다. 습관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베이컨, 174) 






지난 주 가족이 함께 2박 3일간 바다가 보이는 곳에 머물렀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바다가 있는 사진이 가장 맘에 들었다.

가는 곳마다 바다의 모습이 달랐고 바다의 색깔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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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0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 여행을 갔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ㅠ
프사도 그렇게 벽지도 그렇고 완전 여름이네요.딱 요맘 때가 좋죠. 초여름.
이제 2주후면 장마 걱정해야 하고 장마 지나면 더위 걱정해야 하고,
더위 지나면 태풍 걱정해야하고. 줄줄이네요.
물론 그렇다고 꼭 걱정만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 인상이 중요하듯 언상도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해요.
인상은 좋은데 언어가 박색이면 안 어울리잖아요. 인상이 안 좋아도 언어를 잘 쓰면
밉지가 않고. 그런 거죠.
칼럼은 다시 쓰고 계신가요?^^

페크pek0501 2025-06-05 10:37   좋아요 1 | URL
여행한 지가 오래되셨군요. 스텔라 님은 맘만 먹으면 여행 갈 수 있지요.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시는 거죠. 저는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행을 즐기는 분들 보면 저도 부럽습니다. 맛집 다니며 사 먹는 건 여행 중 큰 기쁨이더군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게 좋더라고요. 3일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이틀을 쉬었네요. 이젠 체력이 안 따라줍니다.ㅋㅋ 장마, 폭염, 태풍... 근심의 그림자는 늘 있죠.
친구를 사귈 때도 말을 곱게 하는 이가 좋죠. 모든 인간관계가 그럴 거라고 봐요.
칼럼은 조금밖에 쓰질 못했어요.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레이스 2025-06-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선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넘 슬펐어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읽었어요. 저는 판결, 이란 제목으로 봤는데 같은 작품일 겁니다. 아버지가 사형을 선고하자 아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끝나는 걸로 기억합니다. 충격적인 소설이었어요. 아버지는 체격이 좋고 권위적, 가부장적인 듯하고 아들은 마르고 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작가가 될 재목임을 못 알아보고 뭐든 못마땅해한거죠. 아버지가 아들의 개성을 존중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버지가 엄격하면 무조건 아들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인 거죠.^^

꼬마요정 2025-06-05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가까이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 말을 막 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죠ㅠㅠ 카프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 아버지는 자신에게 막말하는 사람 못 견뎠을 거 같아요…

바다가 정말 이쁩니다. 이제 여름이로군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6   좋아요 2 | URL
그래서 가족 간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가깝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위인이죠.
여행 가서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찍는데 건질 것은 꼭 바다가 있는 풍경이더라고요.
꼬마 요정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잉크냄새 2025-06-05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과 염려의 경계는 불안과 집착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06 12:19   좋아요 0 | URL
평상시엔 태평하게 살다가 몸의 이상 증세가 느껴지면 불안과 집착이 생겨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땐 건강염려증이 있는 상태 같아요. 큰 병에 걸려 고통받고 사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희선 2025-06-07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람한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지 않나 싶어요 가까워서 그런 거겠군요 식구도 남이기는 한데, 그걸 생각하면 조금 조심할지도... 부모한테 상처 받은 건 평생 잊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

페크 님 바다 보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6-10 20:34   좋아요 1 | URL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조심을 하지 않아 상처받는 일이 있지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쩌면 가장 불친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 겨울바다도 좋지만 여름바다도 좋더군요.^^

서니데이 2025-06-0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휴가 다녀오셨군요. 너무 덥기 전에 여름 휴가도 다녀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더운 시기에 나가면 기분 전환은 될 수 있지만 어디든 너무 더워서 에어컨 냉방 되는 실내가 더 좋은 것 같아서요.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가 잘 나오면 안도하게 되는데, 그래도 질문하고 싶을 때가 있을거예요. 건강염려증으로 보이는 건 조금 걱정인데, 미리 필요한 내용을 준비해가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6월이 되면서 날씨가 이제 여름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해요. 서울도 거의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더운 날이 되었다고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10 20:38   좋아요 1 | URL
아주 더운 여름보다 5~6월의 여행이 좋더라고요. 폭염일 때는 집콕, 이 가장 좋아요. 저는 암이 가장 무서워요. 고통을 죽는 날까지 치러야 하거든요. 차라리 전쟁이 나서 죽게 된다면 암보다 덜 무서울 것 같아요.
오늘도 더웠답니다. 저녁이 되니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 여름 저녁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어요. 여름도 매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5-06-17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말 날씨가 많이 덥고, 이번주는 비가 오고 습도가 높더니 다시 더워지네요.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비가 조금 더 자주 올 것 같아요. 일찍 더운 것 같은데, 한주 사이에 더 많이 더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저녁엔 덜 더워서 창문 닫고 편안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0 11: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잘 지내시겠죠? 저는 여름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닙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닌데 몸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기운도 없고요. 요즘 낮엔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것이 참 좋네요. 일단 밤잠을 더위로 설치지는 않으니까요.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yamoo 2025-06-20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장에서도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그걸 듣는 사람들도 별로 문제제기를 안하구요...가족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는데, 가족이라고해서 막말을 하는 부모나 부부가 많은 듯해요.

그나저나 저 바닷가 풍경...넘 멋지네요. 어딘가욤? 국내면 여름 휴가 때 가볼 의향이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20 11:50   좋아요 0 | URL
그게 잘못된 거라고 인지할 줄 알면 막말을 하지 않겠지요.
특히 친숙한 가족간이기에 말조심이 필요합니다.
바닷가. 부산입니다. 부산 해운대를 추천합니다!!!

yamoo 2025-06-20 14:24   좋아요 1 | URL
헐~~~ 해운대군요!! 해운대는 총 4번 갔는데...다른 시각에서 본 뷰라 새롭게 보입니다요!!

페크pek0501 2025-06-22 10:51   좋아요 0 | URL
사진은 각도, 가 중요하죠. 각도에 따라 다른 풍경이 되어요.
위의 사진 두 장은 우리가 투숙했던 호텔방 (12층이던가?) 높은 층에서 찍은 거랍니다.
1) 땅과 바다와 하늘을 삼등분한 사진,
2) 베란다의 의자를 찍은 사진.
어디를 놀러 가도 바다가 있는 풍경 사진이 가장 맘에 듭니다.^^

모나리자 2025-06-2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 색깔이 그림에 나오는 풍경 같아요~~
저도 내일 바다에 놀러갑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갔던 작은 해수욕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네요.
카프카의 아버지와의 불화는 유명하지요. 카프카가 문득 읽고 싶어집니다.^^
주말 잘 지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6-22 10:57   좋아요 0 | URL
모나리자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여름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있어 휴식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아프지는 않은데 목소리가 변하더군요. 무리하면 더 병이 날 것 같아 조심하고 있어요.
바다로 놀러 가시는군요. 좋겠습니다. 바다 사진 많이 찍으시고 눈에 많이 담아 오시길... 아이들이 크고 나니 해수욕장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천탕, 수영장 같은 곳에 갑니다. 카프카를 읽으면 마음이 아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