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전, 어느 문화센터에서 수필 강의를 듣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첫 수업 때 신입 수강생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초보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겸손하게 말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최대한 나를 낮추고 싶었던 게 내 의도였다.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기소개'의 인사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겠다는 말은 이미 초보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초보자는 아니지만 초보자의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아마 나는 문학의 초보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미 몇 년 동안 소설, 드라마, 추리소설, 시 등의 강의를 들었고 습작도 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초보자가 아니라는 뜻을 담은 말을 실수로 했을 뿐이다. 그래서 ‘겸손하기도 힘든 거구나’하고 생각했다.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2.

대중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서 팔십 세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새댁은 젊어서 좋겠다. 돈보다 좋은 건 젊음이야.”

 

 

“저, 새댁 아닌데요.”

 

 

“내 눈엔 젊으면 다 새댁으로 보여.”

 

 

그렇겠구나. 노인이 되면 노인이 아닌 사람은 다 젊어 보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노인의 짧은 말에서 어떤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보다 좋은 건 젊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노인은 가난하게 살지 않았거나 지금 가난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것이다. 가난하게 산 사람은 또는 현재 가난한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고생한 사람은 돈이 좋은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젊음은 누구나 한때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돈은 그렇지 않으니까.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3.

누군가가 멋진 가방을 삼십만 원에 샀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멋진 가방을 싸게 잘 샀네.” 또는 “멋진 가방이지만 왜 그렇게 비싸.”

 

 

이런 반응에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방의 가격을 짐작할 수 있다. 삼십만 원보다 훨씬 높은 가격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가방이 싸 보일 수 있고, 삼십만 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의 가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가방이 비싸 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경제적 형편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4.

최근 김어준 저, <닥치고 정치>를 읽었다. BBK, 삼성 기업, 이명박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들 등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그런 것들보다 저자의 남다른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 정치인 ‘조국’에 관한 글이었다.

 

 

 

 

 

(조국은)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이로 칭찬받으며 성장했을 것이고, 그 경쟁에서 항상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직접 나서기까지 했고 또 하고 있으니까. 그런 삶을 통해 자신의 몸에 스며든 애티튜드가 있을 텐데, 그게 그런 문장(그의 글을 말함) 뒤에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버리는 거지. 사실 조국 정도면 스스로 대견해하고도 남지. 그 정도 남자가 어디 흔한가.

 

 

그런데 대중이 정치인 조국에게서 그런 걸 느껴버리면 조국은 조국만의 가치를 급속히 상실하게 된다고. 진보는 자기가 가진 게 당연해선 안 되는 거거든. 누구도 가진 게 당연한 사람은 없는 법이고. 그러니까 조국이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자산 때문에 대중 일반에게 야기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박탈감, 그것까지 감지하고 배려할 정도의 섬세한 대중 감수성, 그게 부족하다. 물론 조국은 억울하겠지. 하지만 어떡해. 가진 게 죄지.(웃음)

 

 

- 김어준 저, <닥치고 정치>에서.

 

 

 

 

‘조국’이란 정치인이 ‘진짜 오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읽힌다’는 글이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애티튜드가 지속적으로 유포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말(또는 글)을 객관화할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표현 방식으로 말하면, 말에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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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댁이시네요~ ㅎㅎ 맞아요. 나이가 들면, 더 젊어보이는 사람들이 애들로 보이죠.
모든 게 상대적이에요. 그쵸? 정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페크pek0501 2012-08-30 13: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샘 님. 모든 게 상대적이에요.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요.
그리고 저, 새댁이에요. ㅋㅋ

마립간 2012-08-2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 글 ; (억울함때문에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12-08-30 13:58   좋아요 0 | URL
아, 마립간 님. 매우 오랜만인 것 같군요. 제가 자주 방문해야 하는 건데...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용기... 제가 요즘 그 용기가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있어요. 용기를 사러 백화점에 가야겠어요. 농담임... 반갑습니다. ^^

프레이야 2012-08-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단어선택, 어조, 억양 등에도 정보가 담겨있지요. 페크님, 저도 가끔 새댁 소리 들어요. 아가씨라고까지ㅋㅋ 나이 드신 분들 눈엔 새파란 청춘으로 보이나 봐요. 아무튼 말을 잘하기란 정말 어려워요.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게 말의 목적이라면 말이죠. ^^

페크pek0501 2012-08-30 14:0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이 세세하게 잘 설명하셨네요. 말하기 정말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큰 모임 같은 데는 잘 가게 되지 않고 맘에 맞는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져요. 괜한 오해를 받는 게 싫어서 말이죠.
프레이야 님, 오늘 가을 같아요. 비가 오고 서늘해요. 보일러를 켜야 할까요? ㅋㅋ 긴 팔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 거죠? 지금 반바지 차림임...ㅋ
그리고 님도 저처럼 새댁 같은 동안? 히히~~

비로그인 2012-08-2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뱉고 나서 곱씹게 되는 게 말이라니... 곱씹고 나서 내뱉으려면 신경을 아주 많이 써야하려나요. 마음하고 연결되어 있기에 말도 참 어려운 거 같아요. 페크님 단상글은 나중에 책으로 묶어도 좋겠어요 ㅎㅎ

페크pek0501 2012-08-30 14:03   좋아요 0 | URL
책? ...
무슨 그런 말씀을... 요즘 맘에 드는 글을 못 써서 의기소침해 있는 제게 힘을 주시는데요.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2-08-3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공감가는 글이네요(2). 초보자의 마음,이 가장 공감됐습니다. 말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겼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팬으로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해요 페크언니!

페크pek0501 2012-08-30 14:04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이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이 하찮은 글에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얼마나 바쁘실지 짐작이 갑니다.


파란놀 2012-08-3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새내기라고 생각하고 말하면 새내기일 뿐이지요.
남들이 무어라 토를 달건,
스스로 새내기가 되겠다 하는데 남들 말마디 때문에 달라질 삶이란 없어요.

새내기가 아니라서 새내기라 말한다 한들, 새내기가 아니라고 드러낸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새내기이니까 이렇게 말하지요.

아이들은 언제나 "나는 아이인데." 하고 말해요.
아이가 아니라서 아이들이 스스로 '아이'라 말하지는 않겠지요.

페크pek0501 2012-08-30 14:05   좋아요 0 | URL
예, 된장 님. 전달하려는 메시지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초보자라고 말하면 초보자인 거죠. 저는 지금도 ‘늘 처음처럼’의 자세를 좋아합니다.
반가웠어요.
 

 

 

 

1.

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강좌 69>에는 69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중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참견하는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내며, 남의 일에 참견을 하는 사람의 인생은 장밋빛이라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 얼굴은 안 보이고 남의 얼굴만 보이기 때문에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녀는 기차를 탄다. 커다란 짐을 가진 할머니가 손잡이에 매달려서 서 있고 좌석은 만원이었다. 할머니 앞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학생이 시시한 잡지나 대수롭지 않은 뭔가를 펴 들고 열심히 읽고 있다. (…) 그녀는 금방 학생의 이기주의에 기가 막혀서 울분을 터트린다.

 

“뭐에요? 당신은 젊은 학생이면서 이 무거운 짐을 가진 노인이 안 보여요. 빨리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세요.”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 쪽에서 반박했다.

 

“그만 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차 안의 모든 손님은 웃음을 터트리고 그녀는 슬금슬금 다음 역에서 내려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탄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그녀는 또 다른 데에 가서 참견을 한다.

 

 

 

 

대낮부터 연인들이 나무 그늘 벤치에 기대서 넋을 잃고 있다. 이 무슨 추잡한 부도덕한 광경인가! 그녀는 거기 있는 여성들 모두를 동정한다. 그녀들은 모두 속아서 걸려든 새끼양들이다.

 

한 벤치에 가장 비극적인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양가집 규수인 듯 얌전하고 청순한 아가씨였고, 남자는 상고머리에 눈초리가 사나워서 보기에도 건달 같은 청년이었다. 이런 한 쌍은 바로 보고 지나칠 수가 없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서 다가가 말을 건다.

 

“아가씨. 이 남자는 건달이에요. 당신의 인생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 거에요.”

 

그러니까 청년은 눈을 부릅뜨고

 

“어이, 이봐! 못된 아줌마 같으니라구. 내 여자한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라며 빈정대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보기와는 달리 관대한 편이다.

 

그 아가씨는 쌀쌀한 눈으로 힐끗 쳐다보고 나서 남자에게

 

“아무래도 올드미스의 히스테리일 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올드미스라니 말 삼가세요. 나는 결혼한 가정주부예요.”

 

“가정주부라면 댁에 가서 애나 보시지.”

 

이것으로 그녀는 또 다시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다.

 

 

-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이런 예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우리는 때때로 남의 생각과 상관없이 이것(참견)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헛일일지라도 참견에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을 귀찮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고, 더구나 정의감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안전하게 행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

예전에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남에게 함부로 충고를 하는 게 아니라고. 더군다나 그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데도 충고를 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그때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내가 동의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충고로 인해 상대방이 자존심이 상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둘째, 인간은 남의 충고에 따르기보다 어차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여서다. 그러므로 함부로 충고를 해서 괜히 둘의 관계만 나빠질 수 있으니, 남의 인생에 끼어들며 참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잘못 말해서 인심만 잃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절친한 친구가 나쁜 길로 가고 있는데도 충고를 하지 않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것은 인심을 잃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자의 태도가 아닐까. 만약 친구가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를 정도의 춤바람이 났는데도, 친구가 재산을 탕진할 정도의 도박에 빠져 있는데도, 친구가 지나치게 쇼핑에 중독이 되어 있는데도 불난 남의 집 불구경하듯 보기만 해야 할까.

 

 

이렇게 친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의 관계가 나빠지고 인심을 잃더라도 충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친구의 모습일 것 같다. 상대방이 당장에 그 충고를 달갑게 듣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한 번쯤 그 충고가 떠올라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이 같은 말로 충고했다면 충고의 효과는 커질 것이다. 다수의 의견은 옳게 여겨질 때가 많으므로.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에서 읽은 ‘마음껏 참견을 할 것’이라는 에세이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생각을 뒤집어 보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 아니라 창피를 당하고 마는 ‘참견을 잘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니, 내 체온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료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을 본다면 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후기> 참견과 충고에 대한 명언

 

 

부정적인 말 :

지나치게 참견하는 바보는 적보다 더 나쁘다.(크릴로프)

아무도 너 자신보다 더 현명한 충고를 네게 해 줄 수는 없다.(키케로)

자기와 무관한 일에 관해서는 참견하지도 말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마라.(지눌)

친구들의 사회적 약점을 그들에게 충고하지 마라. 그들은 자기 약점을 없앤 뒤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L. P. 스미스)

충고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충고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수록 언제나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법이다.(체스터필드)

 

 

긍정적인 말 :

좋은 충고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에라스무스)

바보마저도 때로는 좋은 충고를 한다.(A. 겔리우스)

나무는 먹줄을 따라야 곧게 되고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여야 거룩해진다.(공자)

가끔 남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그렇게 완전한 사람은 없다.(그라시안)

바보들보다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충고가 더 불필요하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충고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귀치아르디니)

 

 

 

************************

 

내가 갖고 있는 책은 미시마 유키오 저, <부도덕 교육강좌 69>라는 책인데, 이것은 절판된 듯하고 현재 출판되어 있는 것으로 <부도덕 교육강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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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8-1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남에게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남이 자기에게 충고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거죠.

페크pek0501 2012-08-14 12:23   좋아요 0 | URL
늘 고마운 이웃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요.
이 페이퍼는 님 덕분에 쓰게 된 것, 짐작하시죠?
님의 페이퍼에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이름을 보고 어, 내가 그의 책을 읽었는데, 이러면서 책을 찾아보았지요. 이 페이퍼는 “그만 두시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고, 첫째로 이 짐은 솜이에요.”
라는 글에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하하~~ 웃고 나서, 이걸 넣어 글을 쓰면 재밌겠다, 이러면서 쓰게 된 거예요. 참견에 대한 단상을 쓴다면 생각할 거리도 되겠다 싶었고요. 결론은 읽는 사람 각자가 내는 걸로...왜냐하면 저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니까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8-14 14:3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짐작합니다.저는 미시마에게서 풍기는 마초주의가 좋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2-08-15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으하하하! ㅋㅋ

프레이야 2012-08-1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고가 필요한 때도 있지만 섣부른 충고가 화를 초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말이 생각나요.
충고를 받아들일 마음이나 자세가 되어있고 스스로 충고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먼저 섣불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구요.ㅎㅎ

페크pek0501 2012-08-14 12: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섣불리 충고할 필요가 없어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상대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느낌, 생각을 갖게 되는지도 제삼자는 알 수 없잖아요.(인생을 바꿔 살아보지 않는 한...) 그리고 이건 극단적인 생각인데 우울증에 걸려 괴롭게 살기보단 춤바람이 나서 즐겁게 사는 낫다고 봐요.(요건 아주 극단적인 비교...ㅋ)

반가운 프레이야 님, 오늘 날씨는 그리 덥지 않을 것 같아요. 새벽에 침대 옆 커튼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더라고요. 제법 공기도 찼고요. 이제 다시 뜨거운 커피가 당기는 시간이 온 거죠.(너무 더울 땐 냉커피를 마셨어요.) 물론 아직 낮은 덥겠죠. 고 정도야 견딜 수 있죠. 입추와 말복이 다 지났으니 우린 이제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거니까, 무더위로 인한 고생은 끝~~ 인 거 맞죠?

마녀고양이 2012-08-1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언니 오랜만이셔요...
잼난 페이퍼라서 열심히 읽었어요.... 아하하.

춤바람이 나거나 엄청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충고를 해주는 것은 좋은거 같아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충고를 해주느냐의 문제가 있겠죠. 특히 남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자기 기준으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과연 남을 위해서 해주는 것일까 동기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순수한 의도일지라도, 상대가 왜 그렇게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헤아려주는 것도 필요한거 같구요.... 그리고 프야 언니의 말씀처럼 스스로 충고를 원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저는 이제 충고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옆에서 아무리 안타깝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제가 해결해줄 성질이 아니니까요. 전, 도저히 제가 견딜 수 없을거 같은 사람이라면 그냥 멀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게 도움을 제대로 청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이면, 당연히 돕구요....

정말 긴 여름이었어요.... 건강하게 잘 지내셨어염? ^^~~

페크pek0501 2012-08-14 12:29   좋아요 0 | URL
이게 누구십니까? 마녀고양이 님이 닉네임을 새로 바꾸셨군요. 어쨌든 반가워요. 저는 닉네임을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겠어요. 안 그래도 지명도가 낮은데, 더 낮아질까 봐... 그래서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까 봐... 그래서 배경도 못 바꾸고 있다는...ㅋㅋ

님이 말씀하신 대로 어떤 방식으로 충고를 해주느냐의 문제, 이게 중요하죠. 말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죠. 어떤 화법으로 얘기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내용으로 얘기하는가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겠죠.

너무 오랜만이에요. 무지 반갑다는~~~~ 또 봐요.~~~~

파란놀 2012-08-15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 님 이 책은 참 오래되었고,
참 수없이 되풀이해서 나왔어요.

책이름이 '부도덕' 교육강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글쓴이 마음이나 그무렵(1960년대) 일본이
얼마나 껍데기가 가득했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미시마 유키오 님은 1960년대 일본 사회를
비판(또는 조롱)하려고 이 책을 썼어요.

이 책이 아직까지 한국에서 끝없이 다시 나온다는 얘기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형편없다는 소리일 테지요.

페크pek0501 2012-08-15 16:1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된장 님. 이번 무더위에 아이들이 땀띠는 나지 않았는지요?
오늘 서울은 비가 많이 오네요. 모처럼 시원한 날씨예요.

작가의 할 일이 원래 세상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세상을 모색해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책을,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게 해 주는 데에 유익한 책으로 봅니다.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일에 대해 이 책에서처럼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서 정반대의 해석을 해 본다면 기분전환이 될 것도 같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2-08-2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독에서 연합군의 군정이 끝나고 집권한 아데나워(독일은 의원내각제)는 1963년까지 장기집권합니다.이 시기 아데나워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을 내세워 과거사 반성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았죠.그 전 연합군 군정 시절에도 소련을 제외한 연합군은 나치잔당들을 비호했습니다.그래서 하인리히 뵐이 한탄한 겁니다.

2012-08-22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8-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얹혀 사는 똑똑한 남자가 집주인한테 꼬박꼬박 참견해서 미움을 사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도 미움 받으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참견질을 아예 그만둬버려요. 그랬더니 집주인이 왜 말해줘야 될걸 안 말해주냐고 버럭 성질을 내더라는. 참견에도 중용의 덕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아니면 차라리 참견 시원하게 해버리든가 아예 묵인하든가,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끼어들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순간이 제일 괴롭더라구요 ㅠ ㅠ

ps. 방명록에 흔적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페크님. 저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랍니다. 못될 거에요 아마. 가끔 완벽주의자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튀어나오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글도 지우고 글씨도 지웠다 다시 쓰고. 사소한 일에 이렇게 반응을 한답니다. 아무튼 다시 오니 좋네요. 이런 글도 보고!

페크pek0501 2012-08-23 13:36   좋아요 0 | URL
1. "참견에도 중용의 덕이 필요..." - 좋은 의견이에요. 그런데 어떤 일이든 그 중용의 자리가 어디쯤인가가 어려워요.

2. 님은 완벽주의의 성향이 있는 게 맞습니다.(제가 보건대)ㅋ

3. 여름무더위와 함께 사라지셨다가 가을바람과 함께 나타나신 건가요. (오늘 날씨 흐리고 바람 불고 좀 서늘해요. 창문 닫았어요.)

4. 반가웠습니다.
 

 

 

 

7월 29일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을 이곳에 올리고 나서 그 다음날 밤에 읽어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아주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우선 첫 문단과 끝 문단의 연결성이 없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과 첫 문단의 연결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단에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글을 넣어서 첫 문단과 끝 문단이 연결되게 하였고, 제목과 첫 문단도 연결되게 하였습니다.

 

 

문단의 구성을 다르게 한 부분도 있고, 없앤 문장도 있습니다.

 

 

제가 잘못 쓴 것을 눈치채고도 침묵해 주신 분들에게, 또 그걸 알면서도 추천을 눌러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비교해 보시라는 뜻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1. 처음에 올린 글입니다................................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이나 지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런 좋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2. 위의 글을 고쳐서 다시 올린 글입니다.............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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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7-3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갈 테고,
힘이 센 사람은 살아남겠지요

페크pek0501 2012-07-31 16:02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합니다.
이 더운 여름날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그곳은 산바람, 강바람이 불어서 시원할 것 같지만요. 피서가 따로 필요없을 것 같지만요.^^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태우스 2012-08-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치기 전 글을 못봤는데요 아래로 내려가서 글을 봐도 이상하단 느낌을 받지 못하겠어요. 역시 전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 지난주부터 무섭게 더웠는데 오늘은 제법 바람이 부네요. 기다리면 더위는 간다,는 평범한 교훈을 느꼇습니다. 안톤 슈냑, 정말 오랜만에들어보는 이름이네요. 국어책에서 봤던 그 슈냑을 페이퍼에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글구 전, 이건 제 자랑 같지만, 늘 미안함을 느끼고 있어요. 제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있다면 저보다 훨씬 더 많은 훌륭한 일을 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08 14:53   좋아요 0 | URL

1. 남의 글을 분석적으로 보는 건 힘든 것 같아요. 저도 남의 글에서 잘못된 부분을 잘 못찾아 내요. 내 글은, 틀린 게 뭐 없나, 하면서 집중력 있게 보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2. 저는 님이 일간지 연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감탄해요. 저라면 글감이 없는 날도 있을 것 같은데요. 경의를 표합니다. 님이 쓰신 글 중, 남의 글을 인용한 이 부분이 참 재밌어요. (왜 현실에 써먹지도 못할 어려운 수학을 배우는가?)에 대한 답변...

"호어스트라는 독일 작가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에서 우리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직장 상사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쓸데없는 일을 시켰을 때, 우리는 수학도 배웠는데 뭐, 이러면서 그 하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다고. 수학을 배우는 이유 중 가장 공감 가는 답변이 아닐까?"

아, 그래서 우리가 그 옛날 수학시간에 그 어려운 미적분을 배웠던 거군요. 멋진 인용이에요.

3. 저는 더위를 타는 편이 아니고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 아니라서 여름을 좋아하는데, 이번 여름은 35도가 넘는 무더운 날이 계속되면서, 여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바꾸게 됐어요. '30도가 넘지 않는 여름날을 좋아한다'로...
그래서 곧 올 늦여름을 좋하합니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 남은 더위, 잘 견디자고요. ^^

4. 반가웠습니다.ㅋㅋ
 

 

 

 

 

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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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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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7-2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의 '의자놀이'란 책이 곧 발간될 예정인데요...
의자는 정해져있고, 사람은 더 많은 경우,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추하게 싸우는 모습... 그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꾸어야 사람은 살 건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30 14:00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글샘님! 역시 정보맨이시군요.
공지영 작가의 책은 단편은 몇 편, 그리고 장편은 네 권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꾼다, 멋진데요.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생계의 문제 때문에 비관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죠.
우리 딸들이 살 미래가 걱정이 되어요. 미래 전망이 밝았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12-07-2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자의 슬픔, 저 싯구도 생각나고
다시 들춰보고 싶어져요, 페크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외에도 많지요. 그럼에도 기쁨을 찾아야겠구요.
무지하게 더워요. 버티다가 결국 에어컨 켰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2-07-30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남이 쓴 페이퍼 읽다가 제가 읽었던 시가 나오면 다시 들춰 본답니다.
정말 덥죠? 저는 아이들이 툭하면 에어컨을 켜서 아예 리모컨을 감춰 두었답니다.
에어컨이 천장에 부착되어 있어서 그 리모컨이 없으면 켤 수 없거든요. 그래도 바람이 있는 날이면 맞바람 쳐서 시원한 편인데, 청소를 한다든지 해서 움직이면 참 더워요.
아주 더운 날엔 저도 켤 수밖에 없어요.ㅋㅋ 그래도 전 여름이 좋아할 꼬예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7-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자가 부리는 횡포는 보통 사람들은 경험하기 힘들죠.보통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끼리 벌이는 아귀다툼이 더 익숙하죠.평범한 사람들의 잔인성!

페크pek0501 2012-07-30 14:04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의‘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인간은 무지함으로써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인간의 사악함을 인정하는 편이에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 반대편엔 천사 같은 얼굴이 있어요. 동전의 앞뒤처럼 다 갖고 있는 게 인간이란 생각이에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는 거죠. 그저 인간은 거기서 거기...ㅋㅋ
반가웠습니다.
 

 

 

 

이 세상은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클래식을 눈을 감고 느긋하게 귀로 감상하듯이 뭐든 천천히 하면서 그것을 음미하며 살고 싶은데, 그랬다간 뒤처진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빨리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 나는 ‘느림’을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여기리라. 세상은 부지런을 떠는 사람에게만 승리의 자리를 내주는 것 같다.

 

 

가끔 지금의 세상을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세상은 앞서고 나는 그것을 힘겹게 뒤따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들 앞에선 버겁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세상과 더불어 내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촌스러우니까, 싸 보이니까. 그건 또 싫으니까.

 

 

며칠 전, 친구들과 빕스(VIPS)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이런 곳에 갔을 땐 어색해서 맛있는 음식이었을 텐데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이젠 이런 곳에서 식사하면서 자연스러운 척할 줄 알게 되었고, 맛있게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 그래도 부자연스럽다. 한 끼의 식사 값이 비싸서.

 

 

집에 셋톱 박스, 인터넷 전화, 인터넷 공유기 등 세 가지를 설치했다. 이 세 가지를 같은 회사의 것으로 설치하면 설치비가 싸고 사용료도 싸다. 또 시간을 놓쳐서 시청하지 못한 방송 프로그램을 나중에 시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를 알면서도 어찌 설치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난 기계와 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서 처음엔 망설였다. 그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싫었다. 물론 배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제2의 빕스나 제2의 셋톱 박스가 얼마든지 생겨날 것이다. 생겨날 때마다 빨리 친숙해지는 게 바로 변화해 가는 세상을 따라가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하지만 부지런을 떨기 싫은 나는 새로운 것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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