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생 시절에 어느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한 달간 2학년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능숙한 선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교단에 서면 긴장이 되어 표정이 굳어지곤 하였다.

 

 

2주일쯤 지난 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한테 교생인 나에게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대부분의 교생들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마련이어서 나도 내 인기를 확인하게 될 그 편지들을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하나씩 뜯어보던 날, 나는 깜짝 놀라며 실망하였다. 숙제로 제출한 그것들은 나의 바람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내 인상이 차갑다, 냉정해 보인다, 깍쟁이 같다 등의 글을 적었던 것이다. 교사답게 보이는 데에만 치중하다보니 내 얼굴과 말투가 그들에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평가에 어찌나 실망이 되던지 그날 하루 종일 우울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이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그 학생에게 다른 학생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것도 그 학생을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이다. 그 바람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이에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고 얼굴까지 빨개졌다. 능숙한 선생님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한순간에 바보 같은 선생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은 정말 비슷비슷해 보였다. 당혹해 하는 내 모습이 안됐던지 학생들은 하나 둘씩 위로를 해 왔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인기는 조금씩 올라갔다. 내 실수로 인해서 오히려 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가 오르자 자신감이 생겨 덜 긴장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해 줄 수 있었다. 유머와 관련한 이야기와 내 연애 이야기도 해 줬는데, 그들은 무척 재밌어 했다. 이야기를 더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교생실습이 끝날 때쯤, 나와의 작별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로 나는 인기 있는 교생이 되어 있었다. 나의 인기를 증명하는 건 바로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사진과 내게 쓴 편지를 한 권의 앨범에 담아서 내게 주었던 것. 그 선물에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어느 교생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을 받지 못했다. 교생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앨범엔 그 당시 60명쯤 되는 학생들의 사진과 편지가 들어 있다.

 

 

학생들과 친해지기 시작한 건 학생의 이름을 잘못 부른 나의 실수로 인해서다. ‘실수’라는 건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때론 이 나쁜 것이 이로운 일을 만들기도 한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이 밖에도 내가 살면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라는 걸 깨닫게 하는 일이 참 많다. 또 하나 예를 들면 둘째 아이를 낳던 날, 첫 딸에 이어 두 번째도 딸이어서 그땐 무척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매인 것보다 자매로 자식을 둔 게 더 좋다는 생각이다. 그때와 달리 시대가 변해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된 것도 그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자매는 자랄 때도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주위에서 봐 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매는 결혼을 하고 나면 친하게 지내며 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아들보단 딸이 더 부모를 챙긴다는 점에서도 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을 낳아 실망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2.

내가 책을 읽는 즐거움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즐거움,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글을 읽고 새로운 걸 배우는 즐거움. 여기선 전자의 즐거움에 속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깨달은 것과 똑같이 깨달은 이를 책에서 만났다. 바로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책이다.

 

 

먼저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등 열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열 편의 에세이로 중국의 40년 동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자는 1960년에 출생,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라고 했듯이, 독자로 하여금 그의 일상 속의 일화를 들여다보게도 하고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게도 한다.

 

 

독자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이야기

저자(위화)가 중학생이던 시절엔 책이 귀했다. 그래서 책을 돌려 가며 읽었다. 모든 책들이 수천 개의 손을 거쳐서인지 심하게 낡은 상태의 책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책은 앞부분의 10여 쪽 정도가 찢겨 나간 책도 있었다. 그는 책 제목도 몰랐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책을 읽었고, 또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

 

 

..............................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81쪽~82쪽.

 

 

 

그 시대엔 파손된 책으로 독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저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 파손된 소설들이 처음으로 저자의 창작 열정에 불을 붙여서 여러 해가 지나 마침내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으므로 결국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두 번째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인 동시에 공산당의 말단 간부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저자는 간부였던 친구 아버지들이 타도 대상이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아버지에게도 그런 액운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저자의 아버지는 지주 집안의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던 건달이라서 그저 먹고 마시며 노는 것밖에 몰랐으므로 집안은 점점 기울어갔다.

 

 

..............................

이렇게 기울어가던 집안은 1949년에 이르자 2~3백 무 정도 남아 있던 땅마저 전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지주 신분마저 팔아버린 셈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중국 전체가 해방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총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도 전화위복으로 지주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우리 형도 할아버지의 건달 생활에 따른 격세의 수혜자가 되었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16쪽.

 

 

 

할아버지가 건달이어서 집안이 기울어갔던 것은 그 당시엔 분명 나쁜 일이지만, 그 때문에 훗날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세 번째 이야기

저자는 스물두 살 무렵, 한편으로는 치과의사로서 사람들의 이를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중에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직업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

여러 해가 지나 중국의 비평가들은 나의 언어 서술이 매우 간결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되자 미국의 한 문학 교수는 영어로 번역된 나의 언어가 마치 헤밍웨이의 언어 같다고 말했다. 나는 내 농담을 미국으로 수출하여 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헤밍웨이도 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았나보군요.”

농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단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방금 한 농담을 계속하자면 나와 헤밍웨이는 마오쩌둥이 말한 것 중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36쪽~137쪽.

 

 

 

 

****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교생실습 때의 나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나와 저자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임에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위화 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09쪽.

 

 

 

 

3.

프로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 자주 가던 때가 있었다. 특히 9회 말에서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역전의 승리를 거둘 때의 그 짜릿한 통쾌함 때문에 ‘야구는 9회 말부터’ 라는 말을 좋아했다.

 

 

인생이란 스포츠와 같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스포츠가 어느 팀이 이길지를 예측할 수 있지만 점수의 반전이 일어나서 우리의 예측을 뒤엎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스포츠와 닮았다.

 

 

우리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당장엔 알 수 없게 만드는 ‘삶의 반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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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0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 시절과 여고 교실에서의 교생실습에 얽힌 추억담이 너무나 풋풋해서 좋네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을 읽는 내내 엉뚱하게도 '노년에 대하여' 글을 남긴 키케로가 자꾸만 떠올랐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을 두려워하거나 한탄하지만, 키케로는 '노년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인데, 페크님의 이번 글과 나름대로 유사한 점도 있는 것 같아요.ㅎㅎ
* * *
노인의 경우에는 쾌락의 쑤석거림 같은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네.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괴롭힐 수가 없지. 이미 노쇠기에 소포클레스는 아직도 성생활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네.
"이런 맙소사! 거칠고 포악한 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 중이오."
· · · · · ·
노년에, 말하자면 육욕과 야망, 투쟁, 적대감, 그리고 온갖 욕망에 대한 복무 기간이 끝나, 마음이 스스로 만족하는, 이른바 마음이 자기 자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 키케로,『노년에 대하여』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0-10 14:10   좋아요 0 | URL
"정말 연구와 학문이라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다면, 한가한 노년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네."
이 글에 공감합니다. 언젠가는 주름이 많이 생길 날이 올지라도
저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한가한 시간만 있다면 늙음을 서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함께 늙는 일인 것 같아요. 꼭 독서가 아니더라도요.

반가웠습니다.^^

프레이야 2012-10-0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그래그래 끄덕끄덕ᆢ이러며 읽었어요. 완전 공감ㅎㅎ 교생 때의 이야기는 참 훈훈하네요.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게 사람이고 그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는 거 같아요.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세상에 나를 키우지 않은 건 없구나, 열화같았던 내 여름을 함께한 대상을 비롯해 내 지난 어리석음까지도 날 키우는 재료였구나 하는 거에요. 위화의 저 책도 담아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14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 님, 이 책 좋아요. 저는 개인의 일상을 통해 보여 주는 한 나라의 역사 이야기가 재밌더라고요. 이 책이 중국에서는 출판 금지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설은 출판이 되었으나 이 책은 비허구성의 책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역사가 더 애절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전화위복, 이란 말을 제가 좋아합니다. ㅋㅋ

다크아이즈 2012-10-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 책 샀는데, 정말 좋네요. 허삼관매혈기 안 읽었는데 위화의 이 <비허구성 글> 덕분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왜 이리 잘 쓰는 작가들이 많은 걸까요?

페크pek0501 2012-10-10 14:17   좋아요 0 | URL
아, 손님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위화의 책은 처음 읽은 거랍니다. 워낙 명성 있는 작가라서 궁금해서 구입하게 되었어요. 이미 일간지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어서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쓰는 작가, 정말 많아서 기죽으며 읽게 돼요. 그러나 즐거운 기죽음이에요.ㅋㅋ 책을 산 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으니까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10-10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새벽, 제가 이 글에 얼마나 위안을 얻고 가는지 언니는 모르실거예요. ^^

페크pek0501 2012-10-10 14:18   좋아요 0 | URL
아, 달여우 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저도‘삶의 반전’에 위안을 받으며 사니까요.
삶이 수학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숨막히겠습니까.
때로는 꼴찌가 일등이 되는 역전의 기회가 숨어 있는 삶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자주 보아요. 제가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마립간 2012-10-1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2-10-10 14: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립간 님.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이젠 아주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느껴지는데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2-10-10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10-1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글을 읽으니 저도 고 1때 본 교생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등학교 때 교생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프로의식이 있는 선생님처럼 보여서 정말 선생님 같았거든요. 제가 그 선생님을 흉내 내고 싶어나 봐요.ㅋㅋ 말하자면 저의 롤모델이 되었던 거죠.
카스피 님, 오랜 만에 뵈니 반갑군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파란놀 2012-10-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 님이 생각한 '능숙한 교사'란 바로 '긴장된 몸'으로 학생을 마주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모습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내 모습을 바라고 그리는 대로 나타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교사'가 될 까닭이란 없어요. 이제 잘 아실 텐데요, 아이들 앞에서 '능숙한 부모'가 될 까닭도 없어요. 그저 '사랑스러운 어버이'가 되면 즐겁고, 동무들 사이에서도 '서로 사랑스러운 동무'로 지낼 때가 가장 즐거워요. 교사 또한 '서로 사랑스럽게 마주하는 사람(어른)'이라면 가장 즐겁겠지요.

겉(지식)으로는 능숙한 교사(교생)로 아이들 앞에 서려 했지만, 마음속(생각)으로는 아이들하고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운 교사이기를 바랐으니, 나중에 '잘못' 이름 부르는 일을 빚었겠지요. pek0501 님 스스로 학생 때에 느낀 '내가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교사' 모습을 스스로 빚었으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2-10-11 15:27   좋아요 0 | URL
아, 된장 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땐 제가 대학생인 때라 어려서? 그런 거예요.
고등학생들과 나이가 몇 살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선생님답게 보이는 걸 중요시했어요. 또 학교에서도 그렇게 교육시켰고요.
물론 지금은 안 그래요. 요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정하고 재밌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논술 수업 시간이 참 재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제 목표랍니다. 사랑스러운 선생님이면 더 좋겠지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2-10-11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종교를 배우다

 

가이 해리슨 저,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타 종교의 경전을 읽어보지도 않고 자기들의 신앙 체제가 다른 것들보다 월등하다고 믿는 것은 마치 다른 팀과 한 번도 경기를 해 보지 않은 축구팀이 자기들이 대회의 우승자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신에 대한 예배가 넘쳐나는 가장 종교적인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고 폭력적이고 가난하다는 것.

 

 

다른 팀과 경기를 해 보지 않고는 자신의 축구팀의 실력을 알 수 없듯이, 종교 역시 타 종교에 대해 공부해 보지 않고는 자신의 종교가 월등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가장 종교적인 국가들이 사랑과 평화가 있는, 살기 좋은 국가가 되어야 할 텐데, 그 반대로 가장 불안하고 폭력적이고 가난한 국가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몇몇 종교만을 다루지 않는다. 긴 역사 속에서 모든 신은 동등하다며,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한다.

 

 

“물론 세상의 종교들은 좋은 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어두운 점이 지나치게 간과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어린이 교육이나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 여성의 안전과 평등, 그리고 과학의 발전과 같은 것들을 위협하고,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 주장은 반드시 도전받아야만 한다.”(<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

 

 

 

이 책은, 저자가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 50가지를 모아서 그것들을 조목조목 따지고 분석하면서, 그 이유들이란 게 믿을 게 못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 50가지 이유 중엔 신이 나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심판이 두렵기 때문에, 라는 이유도 있다.

 

 

이것을 읽으니 다음의 글이 생각났다.

 

 

“우리는 자식과 부모를 사랑하고, 배우자들에게 충실하며, 친구들에게 진실하고,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우리가 속한 집단에 헌신한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은 사전에 그것들이 어떤 가치와 장점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고민하는 사람은 위의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드러낼 뿐이다. (…) 따라서 신성한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아주 중요하다.”(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우리가 속한 집단(종교 집단도 가능함)에 헌신하는 것은 그것이 올바른지를 논리적으로 따져 봐서가 아니라 직감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이것을 우리는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종교’하면 떠오르는 건 ‘과학’이다. 그 둘의 세계는 서로 반대의 편에 있으므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념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합리적인 설명에 실패할 때, 그러한 명제를 믿기 위하여 서로에게 주는 면허증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의 차이는, 새로운 증거와 주장을 냉정하게 고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가에서 생긴다. 그 구별은 명백하고, 필연적이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심지어 상아탑에서마저 묵살되고 있다.”(<위험한 생각들>)

 

 

 

 

 

 

 

내게 확고한 종교관을 갖게 해 준 책은 A. J. 크로닌 저, <천국의 열쇠>이다. 이것은 프랜치스 치셤 신부의 생애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회고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쪽 문을 택했듯이 새로 오시는 선교사들은 또 다른 쪽의 문을 택했다는 것이 다르지요. (…)”(<천국의 열쇠>)

 

 

치셤 신부는 자신의 종교만을 최고의 위치에 놓지 않고 어느 종교에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있다고 말한다.

 

 

“(…) 어떤 것인가 하면 확고한 믿음만 가지면 결코 지옥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그렇지요. 불교도든 회교도든, 또한 도교를 믿든……선교사를 죽인 후 그 고기를 먹어 버렸다는 식인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부끄럽지 않게끔 자신의 삶에 성실한 자세를 갖는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지요. 최후의 심판 때에 결코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노라 대답하는 사람들에게도 진노의 채찍을 내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아마 ‘여기를 보아라, 네가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나와 천국이 있지 않느냐. 자, 들어오너라’하고 말씀하시겠지요.”((<천국의 열쇠>)

 

 

이 글을 읽고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런 내용이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을 참 오래 전에 읽었는데도(2000년에 읽었다) 지금도 이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그만큼 내 마음속에 깊게 각인된 소설이어서다. 주인공 치셤 신부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가질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

 

 

 

 

 

2. 기도의 효과

 

일 년에 몇 번쯤 절에 간다. 지난 5월의 석가탄신일에도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갔다 왔다. 절에서 기도할 땐 나의 가족은 물론 친정 식구들과 시집 식구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비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기도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기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만약 그들 중 누구라도 큰 병에 걸린다면 내가 편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문병을 가야 하고, 약값에 보태 쓰라며 얼마의 돈을 건네야 하고, 안부를 묻는 전화를 자주 해야 하고, 환자로 인한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가 아프지 말고 무탈하게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서로의 삶에 폐를 끼치기 없기’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이기심으로 기도를 한다고 해도 기도는 아름다운 것이다. 기도란 인간의 가장 겸손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가 아니라 ‘운명아 도와 줘, 나 여기 있어’와 같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가장 낮은 마음으로 엎드려 비는 것이니까. 나의 경우에 기도의 제일의 효과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기도한 내용에 대해 최선을 다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절에 갔다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3. 종교와의 거리

 

종교에 너무 깊게 빠진 광신도들이 인생을 망치게 된 신문 기사를 접할 때가 있다. 종교에 대한 믿음도 지나치면 독이 되나 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나쁜 쪽으로 왜곡하여 읽는 독자에겐 그 책이 독이 될 수 있듯이,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는 종교인들 중에서 타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종교인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광신도가 되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믿음은, 공자가 말한 것과 같이 “(정도가)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과유불급:過猶不及)”고 생각한다. 좋은 종교라고 할지라도 종교에 지나치게 빠진 사람에겐 이로운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종교가 이로운 종교인가, 해로운 종교인가 하는 것은 그 종교를 믿는 신도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거리, 여기서 중요한 건 ‘거리’이다.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필요로 하지 않던가.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부부 간에도 그렇고, 연인 간에도 그렇듯이, 종교와 신도와의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생각도 습관처럼 굳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고 편견의 노예가 된다. 어떤 것에 대해 머릿속에 박혀 버린 생각을 지우고 좀처럼 새로운 생각을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이런 우리에게 때에 따라선 자신의 생각(종교에 대한 생각)을 수정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지성인다운 태도가 아니겠는가. 지성인에 대해 러셀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실 단지 자신의 의견을 취한다고 해서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식인이란 이러저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 - 1935>)

 

 

‘교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종교도 한 가지만 보지 말고 다른 종교를 비교하며 종합적으로 보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4. 좋은 인생이란

 

며칠 전 <탈무드>라는 책에서 ‘인생의 비결’이란 글을 읽었다.

 

 

한 사나이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목청 높여 소리쳤다.

“여러분, 인생의 비결을 팝니다! 필요하신 분 없으십니까?”

사나이의 외침에 사람들이 인생의 비결을 사기 위해 너나없이 모여들어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 틈에는 랍비도 몇 사람 끼여 있었다.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사나이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디 인생의 비결을 사 가십시오. 인생을 보람 있고 참 되게 사는 비결은 바로 여러분의 혀를 주의하는 겁니다.”(<탈무드>)

 

 

좋은 인생의 비결은 혀를 주의하는 것. 이 말은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표독스레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그에겐 평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무심코 흘린 말도 그럴 수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인생인가.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로 인해 누군가를 불행에 빠뜨리지 않는 게 좋은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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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9-25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잘 살아가면 '좋은 삶'이에요. 혀이든 무엇이든 모두 스스로 잘 살아가느냐를 말하는 대목이에요.

종교와 과학은 갈래가 다르다 하지만, 밑바탕은 둘 모두 같아요. 믿음이 종교가 되고, 삶이 과학이 되면, 종교와 과학은 모두 권력과 독재가 되지요. 종교가 언제 어디에서 왜 생겼고, 과학이 언제부터 진보와 발전을 대변하는가 하는 뿌리를 헤아리면, 둘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속내가 똑같은 줄 깨달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란, 어른 누구나 모두 하느님이란 뜻이에요. 다만, 어른이 되며 스스로 사회 제도권에 스스로 톱니바퀴 되어 들어가니, 어른은 스스로 하느님인 줄 잊거나 내버린 셈이에요.

모든 사람이 서로 같은 하느님인 줄 아는 일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비틀어서 '지옥과 구원과 기도'를 만든 제도권 권력이 종교예요. 종교인이 스스로를 깨닫는다면, 이이는 이녁 종교조차 얼마나 허울이고 껍데기인 줄 알아차릴 수 있어요. 곧, 천주교이든 개신교이든 불교이든 겉옷을 벗고 알맹이를 찾아서 홀가분해지겠지요.

...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니, 잘 헤아리며 느껴 보셔요 ...

페크pek0501 2012-09-25 13:14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잘 헤아리며 느껴 볼게요. ^^
이렇게 길게 쓰는 것,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제가 댓글을 써 보니까 , 어려운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댓글을 소중히 받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프레이야 2012-09-2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은인생관에 끄덕끄덕하며 혀단속, 생각단속,마음단속 잘하며 살아겠구나 새삼 느껴요. 러셀의 인용구 마지막 문장도 새깁니다. 믿되, 내믿음을 의심하라, 이 정도 뜻이 될까요. 기도의 본성에 대한 말씀에도 공감해요. 낮게 엎드린 절박한 마음이 기도겠지요. 진정한 기도를 잊고 산 것 같아요. 오늘밤엔 잠시라도 나만의 기도를 하고 그런 마음으로 잠을 청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2-09-26 15:00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백 퍼센트의 확신은 금물이라는 것이죠.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자만하지 않게 살 수 있을 듯해요.

기도, 저도 잊고 살아요. 다급할 때만 기도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ㅋ 절에 자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질 않네요.
절에 들어서면 우선 절 입구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져요. 나무들이 많아 맑은 공기가 느껴지고 자비의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절이 멀어서 좀 가까운 곳을 알아 두려 하고 있어요.
반가웠어요, 프레이야 님. 추석 잘 보내세요.

oren 2012-09-2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아주 가벼운 필치로 사뿐사뿐 써내려간 글이어서 읽기가 참 좋네요. '서양종교'에 관해서라면 이미 그 핵심적 존립기반인 '신의 존재증명'에 관한 수많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믿음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류의 생각을 '계속 지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페크님께서 인용해 주신 러셀의 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페크pek0501 2012-09-26 15:01   좋아요 0 | URL

“'종교'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아주 가벼운 필치로 사뿐사뿐 써내려간 글이어서 ...”
- 이런 호평을 해 주시다니요. 고맙습니다. 그냥 아는 데까지 쓴 것이라, 더 많이 알았다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은 딱 자신이 아는 만큼만 쓰는 것 같아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oren 2012-09-2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몇몇 책에서도 '종교'에 관한 '인상적인' 구절들을 참 많이 발견했는데 몇 가지만 덧붙여 보고 싶네요.

* * *

"불교 체계는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은, 모든 시간 이전에 있었고 모든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창조한 유일한 신적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런 이념은 불교에 전혀 생소하며 불교 서적에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흔적도 없다."(238쪽)

"중국에서는 마호메트 교도도 기독교도도 신성의 이론적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중국어 낱말도 찾지 못했다. ······ 물질로부터 독립적이고 물질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으로서 신, 영혼, 정신이라는 단어들은 중국어에는 전혀 없다. ······ 이런 사유 과정은 언어 자체와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창세기의 첫 구절을 광범위하게 고쳐 쓰지 않는다면 실제로 중국어가 되도록 중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 바로 그래서 스톤턴 경은 1848년에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서 신이라는 단어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출판했다.(240쪽)

-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中에서

* * * * *

그것이 그래도 더 이전에 알려졌더라면!

말하자면 칸트가 왔고, 이미 60년보다 더 이전에 『순수이성비판』이 저술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독교의 세기 동안 신의 현존을 위해 세워졌고, 세 개로만 가능한 증명방식(존재론적, 우주론적, 자연신학적 신 존재 증명)으로 소급되는 모든 증거들은 절대로 요구되는 것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그 결과 누구도 칸트의 주장에 대해 결정적인 반박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 결과로 신의 현존에 대한 증거들이 완전히 신용을 잃었고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 일은 자명한 것이어서, 그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이런, 이런! 그것이 그래도 더 이전에 알려졌더라면! 그랬다면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그 증명을 위해 애쓰지 않았을 것이고, 칸트는 그것을 이성비판의 모든 무게로 부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157쪽)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페크pek0501 2012-09-26 15:04   좋아요 0 | URL
쇼펜하우어의 '종교'에 관한 구절들을 옮겨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좀 어렵군요. 으음~~ 쇼펜하우어의 저작은 세 권 읽었는데, 이런 구절은 보지 못한 것 같군요.
<쇼펜하우어 인생론>이란 책이 가장 맘에 들어 곁에 두고 애독하고 있답니다. 제게 글감을 많이 주는 책이랍니다.

추석 잘 보내시고 자주 글 올리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최근에 올리신 멋진 사진들 잘 보았답니다. 추천만 누르고 왔답니다. 9번째 추천은 저예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9-2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에서도 치셤의 신앙관 선교관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등장하잖아요.기득권을 가진 성직자뿐 아니라 인습화된 신앙에 물든 일반신자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 겁니다.

페크pek0501 2012-09-27 09:47   좋아요 0 | URL
아, 님도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을 (제 독서목록을 보니까) 2000년 7월에 읽었더라고요. 줄거리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 치셤 신부의 훌륭한 말만 기억이 나요. 인품이 훌륭하다고 할까요. 그런 곳에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어요. 하서출판의 책으로 읽었는데 이곳 알라딘에선 책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오래되어서인가 봐요. 이 책에 반해 크로닌의 다른 책을 읽은 게 <성채>인데 이 책도 좋았어요. 크로닌의 전집을 사고 싶을 정도로 팬입니다.

제게 드라마 작법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 제1장의 제목이 '드라마는 갈등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드라마뿐만 아니라 소설도 마찬가지겠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작가란 갈등을 제시하고 그 갈등을 풀어 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겠죠.

반가웠어요. ㅋ

2012-10-0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7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쓴 글 - 제목은 ‘억울함’

 

............................................................

 

 

 

억울함

 

 

나는 잠이 없는 편이라 졸음을 귀하게 여긴다. 오늘 아침 식구들이 다 나간 조용한 시간에 졸음이 느껴졌다.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더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침대가 차갑게 느껴져 이불을 덮어도 추웠고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도 움직이기 귀찮아서, 또 잠이 달아날까 봐 화장실에 갔다 와야 하는데, (침대에 깔려 있는)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야 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는 옆으로 누워 웅크린 채로 5분쯤인가 잠들었다. 그리고 잠이 깨졌다. 깨어나서 길게 편히 자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오고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켜고 다시 누웠다. 이제 잠만 자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들지 않았다. 결국 몇 번 뒤척이다가 잠들기를 포기하며 일어나고 말았다. 잠깐 잠들었다가 깼을 때 불편한 대로 그냥 다시 잠을 청할 걸 그랬다 싶었다. 괜히 몸을 움직여 화장실에 갔다 오고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켰나 보다 싶었다. 이럴 때, 참 억울한 느낌이 든다. 푹 자고 싶었는데,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깊게 빠져들 것 같았던 ‘달콤한 잠’을 놓친 기분….

 

 

그때의 억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내 돈을 떼어먹고 도망친 빚쟁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놓쳤을 때의 기분.

오랜만에 깨끗이 세차했는데 그날 비가 세차게 쫙쫙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

내가 산 로또 복권이 거액으로 당첨된 복권의 번호와 한 자리 수만 다른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릴 곳을 1초 차이로 놓치고 건너편으로 가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타야 할 때의 기분.

어느 깊은 산속의 여행지에서 한 잔의 커피밖에 없는데, 그것을 한 모금 마셔보지도 못하고 실수로 땅에 다 쏟았을 때의 기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끝)

 

 

 

 

 

.......................................................

<추신>

 

이 글의 제목을 잘못 지은 것 같다. 제목을 '잃어버린 잠' 또는 '오늘 아침에 놓친 것'이라고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요한 건 아니라서 고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건 나에게만 중요한 문제이리라. 남에겐 하찮게 잃히는 글이라도 글쓴이에겐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이므로. 글이란 그 글을 쓴 사람의 자식과 같은 존재이므로. (이 말을, 글 쓰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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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9-2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누구한테 하소연도 할 수 없는 그런 억울함이 엄습할 때가 참 많은 거 같아요.
제 경우엔 지리산 정상 혹은 설악산 정상 등지를 힘겹게 올라간 뒤에, 동반자들과 함께 '술 한잔' 나눌려고 폼 잡다가, 술병이 바람에 속절없이 자빠질 때가 제일 억울하더라구요. 땅에 스며든 술을 건져올릴 방법도 없고, 어디 술을 사러 나설 수도 없구요. 오늘도 지인들과 2차로 '술 한잔'을 더하는 자리에서, 딸랑 남은 와인 한병이 쓰러질까 조마조마 했다는... 운동도 하고 1,2차에 걸친 술자리도 가졌던 만큼 쏟아지는 잠을 청하러 이만 가봐야겠어요. 졸음을 참았던 '오늘밤'이 내일 아침에 더이상 억울하지 않게요.

페크pek0501 2012-09-20 13:31   좋아요 0 | URL
"술병이 바람에 속절없이 자빠질 때" - 제가 듣기만 해도 억울한 일인 걸요.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치지 않으셨나요. 아, 피 같은 술이!!!...

ㄱ님을 따라서 짧게 써 본 것인데, 저로선 문장 연습 또는 글감 얻기 연습인 페이퍼예요. 그러니 글의 수준을 가늠하진 마시어요. 또 방문해 주시니 (1,2차 술 자리도 갖고 바쁘실 텐데...) 황송합니다요. 고맙습니다.
 

 

 

1.

친구와 경쟁자 : 나는 친구의 성공을 배 아파하지 않는 쪽인데, 그것은 내가 착해서라기보다 내 경쟁자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오히려 친구라면 잘난 친구가 많았으면 좋겠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교수, 작가 등의 직업을 가진 잘난 친구가 많다면 그것도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쟤 주위엔 변변한 친구 하나 없어.”라고 하는 것보단 “쟤 주위엔 똑똑한 친구들이 아주 많아.”라고 하는 게 폼이 나 보이잖아.

 

 

글 쓰는 친구들도 몇 있고, 그중 모 일간지 신춘문예의 후보까지 올랐던 친구도 있는데, 난 그 친구들 중에서 누구라도 꼭 신춘문예 당선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일종의 허영심인지 모르겠다. 훌륭한 친구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

 

 

설령 허영심이라 할지라도 친구에 대해 시기심을 갖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다. 시기심을 갖는 순간부터 친구 간의 우정은 깨지는 것이므로.

 

 

내 경쟁자는 친구가 아니고 나 자신이다.(이거, 어디서 읽은 것을 내가 따라하는 것 같다.) 친구를 뛰어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뛰어넘고 싶으니까.

 

 

 

 

 

2.

좋은 리뷰 : 아무래도 이곳이 책과 관계되는 곳의 블로그인지라 책 내용과 관련한 글을 많이 쓰게 된다. 그래서 좋은 리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좋은 리뷰란 어떤 것일까. 필자의 개성과 새로운 시각이 담겨 있는 글이라고 알고 있다. 리뷰가 단순히 책의 내용만 소개해선 안 된다. 아무리 책의 내용을 잘 소개했다고 해도 개성 있는 새로운 시각이 없다면 좋은 리뷰가 될 수 없다.

 

 

리뷰를 잘 쓰려면 우선 책을 꼼꼼히 읽고, 깊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에게 감동 받을 만큼 매료된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이런 책에 대해 리뷰를 쓸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 자신이 감동 받지 않은 책에 대해 감동 있는 리뷰를 쓸 순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아주 비판적으로 읽은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어쨌든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 좋다는 것이다.

 

 

한 달에 열 편의 리뷰를 쓰기보단 두세 편의 리뷰를 쓰는 것이 리뷰를 더 잘 쓸 수 있다. 열 권의 책을 읽을 에너지와 시간이라면 차라리 두세 권만 선택해서 여러 번 읽고 깊은 글의 리뷰를 쓰는 게 좋다는 것이다. 리뷰를 쓸 때 염두에 둘 것은 ‘책의 핵심을 읽고, 깨닫고, 현실에 적용해 보기’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문장을 쓸 때가 있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이 부분을 한 줄짜리의 문장으로 간단히 처리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 문장을 중심문장으로 만들어서 한 문단을 만드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길게 늘어지고, 깊게 뼛속까지 들어가 써서 자신의 깊은 안목을 보여 주는 게 좋다.

 

   

좋은 글이란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필자의 깊은 안목을 드러낸 글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으므로, 인간과 세상을 알기 위해 책을 많이 읽으며 공부하는 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며 이 말에 밑줄을 그었다.

 

 

 

 

 

3.

글을 왜 쓰는가 :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싶은, 그러니까 글을 쓰는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와 나만이 아는 비밀을 보여 주고 싶은 욕구, 이 두 가지가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비밀이란 부분에서 매번 실패한다. 삶을 통찰한 비밀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담은 글을 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아서 매력적인 작업이라고 여긴다. 매력적이라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

 

 

 

 

 

 

4.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는 일 :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그 한계점을 뛰어넘고 누군가는 그 한계점에서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제자리걸음인 상태에 머물며 글을 쓸 것이다.

 

 

“자기 자신의 성취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수준 낮은 예술가들뿐이다.”(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수준 높은 예술가들도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해 만족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점점 신중해진다. 그러다 보니 글을 많이 쓰지 못하게 된다.

 

 

 

 

 

 

5.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가 조언하는 것 :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알아본다.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궁금해서다. 모두 사 볼 수는 없지만 대충 책의 내용만이라도 알아 두는 편이다. 그러다가 찾은 책이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이다. 이 책이 조언하는 것을 정리해 보았다.

 

 

 

 

 

 

 

 

 

 

 

 

 

 

 

 

 

 

5-1. 자기 멋대로 써라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어깨에 힘을 빼고 자기 멋대로 쓰라고 한다.

 

.................................................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는데, 굵다. 그 굵은 줄기를 보며 굵어야 할 것은 똥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벅지도 굵어야 하고, 뚝심도 굵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굵어야 할 것이 있다 / 가진 것 없는 몸뚱이 똥발이 굵어야 한다”라고 시부렁거렸다.

 

낙서처럼 화장실에서 재미로 쓴 ‘똥발’ 이야기를 보여줬더니, 남들이 ‘시’라고 불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 낙서가 문학상을 받고, 시집으로 출판되니 황당했다. 남들이 나를 ‘시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직업이 노동자에서 시인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똥인지 시인지 모르고 지껄일 때는 승승장구했다.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시집을 펴낸 뒤로 거의 세 해 동안 한 편의 시도 쓸 수가 없었다. 막상 시인이라고 불리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시인으로서 시를 쓰려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맘을 바꿨다.

 

‘뭐 있나. 그냥 내 멋대로 쓰자. 언젠 시가 뭔 줄 알고 썼나.’

 

아, 놀랍게도 그 뒤로 시가 써졌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2. 너 자신을 써라

 

예전에 문학 강의를 들었던 곳에서 어느 교수님은,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의 항문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자유롭게 써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겠다. 그 얘기를 들은 나의 반응은 ‘어떻게 항문을 보여, 말도 안돼’였다. 원래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 주는 작품이 진짜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내 사생활이 노출되는 글을 올리고 나면, 며칠 뒤 그걸 다 지우고 싶어진다. 나는 항문은커녕 나의 새다리조차 보이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쓸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나 앞으로 글을 쓸 때 대담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무식한 용감’을 발휘하고도 뻔뻔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너 자신을 써라!”

 

내가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마라. 자신의 글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미치지 마라.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적으면, 막혔던 글 보따리가 터진다. 쓸 이야기는 자신의 몸 안에 잔뜩 있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3. 쉬운 것부터 써라

 

이 책에 따르면, 누구한테나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쯤 있으니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하듯 적으면 글이 된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쓰되, 쉬운 것부터 쓰라고 한다.

 

.................................................

 

남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우선 내 이야기부터 쓰자. 나를 쓰되 어렵게 시작하지 말자. 오늘 있었던 일이어도 좋다. 문득 떠오르는 옛 애인 이야기도 괜찮다. 뭐든지 떠오르는 대로 써라. 오늘부터 하루에 30분, 아니 단 3분이라도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종이에 적자. 퇴근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내 하루를 올려도 좋다.

 

뭐라도 써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것 아닌가.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5-4. 글 잘 쓰는 비결

 

글 잘 쓰는 비결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

 

책에 좋은 내용이 담긴 글들을 함께 실었습니다. 잘못 쓴 글을 고치는 것보다 좋은 글을 많이 만나는 게 글쓰기에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법이 어떻고, 이건 비문이고, 이건 잘못된 표현이고, 빨간 줄을 친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생각, 좋은 표현을 익힐 때 좋은 글, 살아있는 글이 나옵니다.

 

..................................................오도엽 저, <속 시원한 글쓰기>에서.

 

 

 

 

좋은 내용이 담긴 글들을 함께 실었다고 하니까, 이 책에 관심 갖는 글쟁이들이 많겠다. 나도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의 그 첫째로 ‘좋은 글을 반복해서 많이 읽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후기>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초보자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초보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맞다.ㅋ)

 

자, 이제부터 나도 어깨에 힘을 빼고 내 멋대로 쓰기, 남 얘기 말고 나 자신에 대해 쓰기, 쉬운 것부터 쓰기, 좋은 글을 많이 읽기 등을 실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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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동감이에요. 최근 강영숙 소설 라이팅클럽을 읽었는데요, 이 페이퍼 결론에 닿아있어요. 재미났어요. 권해드리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9-16 13:33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 님.
책 추천, 고맙습니다. 부지런히 읽으시는군요.^^

한 친구가 제게 전화를 자주 해 줘서 고마운 마음에 이메일을 보냈어요.
챙겨 줘서 고맙다고요. 그랬더니 제게 전화를 한 이유가 두 가지라며 답장을
보내 왔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비밀이고(공개하기가 부끄러워서 ㅋ), 두 번째 이유가 저의 맑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지게 한 대요.
으음~~ 이 나이에 맑다는 말을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프레이야 님에게서 느끼는 것도 비슷해요. 님의 가을 하늘 같이 맑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님의 닉네임에서도 느껴져요. 프~레~이~야... 맑은 느낌...^^

파란놀 2012-09-1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안 써진다면, 예전에도 안 써졌다는 뜻이에요.
내 마음은 언제나 첫마음이 오늘 마음이고 모레나 글피 마음이에요.
첫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없다고 느껴요.
오늘 살아가는 마음이 곧 첫마음이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을 잘 누리면서 좋아하고,
이 삶을 글로 쓰면 되겠지요.

페크pek0501 2012-09-19 13:31   좋아요 0 | URL
반가운 된장 님.
그러고 보니 글이 잘 써져서 기분 좋았던 날이 생각 안 나네요.
그런데 님의 말씀은 고차원적인 말씀이라 쉽게 와 닿질 않네요. 전 조금만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 뜻을 모른답니다. ㅋㅋ하지만 좋은 말씀이라는 건 감으로 느껴지니까, 곱씹어 보겠습니다.
이 환절기에 아이들 감기는 들지 않았나요? 저는 아이들 키울 때 감기에 잘 걸려서 환절기가 싫었답니다.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더라고요.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또 뵈요. ^^

루쉰P 2012-09-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여전히 페크님만의 향기를 내 보이시며 글을 쓰시네여 ㅋ 페크님의 리뷰를 읽을 때마다 도움이 많이 돼 참으로 좋아요 ㅋ 글을 읽고 곰곰이 생각한다고 할까여? 전 여전히 삶의 쳇바퀴에서 돌고 돌고 있어여 나가야 하는데 말만 하고 있어여 ㅋ

페크pek0501 2012-09-19 13:35   좋아요 0 | URL
루쉰 님, 매우 오랜만이라 반가워 기절?하겠네요.
아직도 잠수 중이신 거예요? 너무 긴 경향이 있어요. 저도 6월에 쉬기 시작해 서재활동을 7주 동안 쉰 적이 있었답니다.
어떤 일이든 휴식은 필요하죠. 하지만 루쉰 님은 좀 길어요. 그만 나타나세요.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글을 올리세요.‘저, 바쁩니다.’이런 글이라도요.
‘글이 안 써져요’하는 글이라도요. 근황을 알려 주세요. 이제 나타나셨으니 앞으로 오래 잠수하지 않으시겠죠?

저의 향기라... 기분 좋은 표현인데요. 고맙습니다. 제 표현에 의하면, 매일 그 타령을 하고 있답니다. 어쨌든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거, 진심인 것 아시죠?

oren 2012-09-1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선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시지만, 저는 요즘 '댓글'조차 잘 써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요. ㅎㅎ

그런데 가끔씩은 누구나 자기 자신도 모르게 슬럼프와 비슷한 어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상들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향은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일텐데, 어떨 땐 그런 슬럼프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기나긴 시간동안 지속될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암튼 페크님의 글 속 조언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모처럼 댓글 남겨봅니다.

페크pek0501 2012-09-19 13:37   좋아요 0 | URL
오늘 반가운 분들만 만나네요. 오렌 님은 또 얼마나 오랜만이십니까.
잘 지내고 계시나요? 댓글 쓰는 것, 저도 어려워요. 그래서 마음으론 서재의 지인들에게 추석 전에 한 바퀴 돌면서 명절 잘 보내라고 인사댓글을 써야지, 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는...

오렌 님과 처음 알게 된 게 작년 9월 이맘 때가 아닌가 싶어요.(제 기억이 맞다면요.) 그런데 시간이 한 바퀴 뺑 돌아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
빠른 시간이 끔찍하지 않습니까.
또 뵙기를... 반가웠습니다.
 

 

 

1. 당신은 외향적인 사람인가, 내향적인 사람인가

 

 

 

 

 

 

 

 

 

 

 

 

 

 

 

수전 케인 저, <콰이어트 Quiet>

 

 

 

오늘날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을 우대한다. 교육 또한 외향적인 사람으로 키워 내려는 방향으로 설정된다. 학교에서의 수업 시간에도 발표를 못하는 학생보단 발표를 잘하는 학생을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소극적인 내향형인 학생보단 적극적인 외향형의 학생을 선호하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외향형의 사회인을 우대한다. 우리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셈이다. 이것은 내향적인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위축된 내향적인 사람들을 찬양하는 책이 있다. 수전 케인 저, <콰이어트 Quiet>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내향성의 장점을 부각시켜 오히려 세상을 바꾼 건 내향적인 기질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저자 자신도 내향성을 가졌다면서, 내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을 가진 것이지를 강조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높고, 통찰력이 깊다고 한다.

 

 

 

“우리 삶은 성별이나 인종에 따라 달라지듯이 성격으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성격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내향성-외향성 스펙트럼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친구와 짝을 선택하고, 대화를 풀어나가고, 차이를 해소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신이 내향성의 사람이냐, 외향성의 사람이냐 하는 사실은 중요해진다.

 

 

 

“전형적인 외향인은 숙고보다는 행동을, 의심보다는 확신을 좋아하고, 조심하기보다는 위험을 무릅쓴다. 틀릴 위험이 있을 때조차 빠른 판단을 선호한다. 팀으로 일할 때 능률이 높아지고 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 수다스러운 사람들은 더 똑똑하고, 잘생기고, 재미있고, 바람직한 친구로 평가된다.” 그런 반면에, “내향성은 (그 친척뻘인 섬세함, 진지함, 수줍음과 함께) 이류로 여겨지고 있는 성격 특성으로, 실망스러운 일 아니면 병적인 것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저자는 ‘외향성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일은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 예술, 발명품 등 수많은 것들이 조용하고 이지적인 사람들에게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향적인 사람들이 없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 상대성의 법칙, W. B. 예이츠의 <재림>, 쇼팽의 <녹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피터 팬,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 (…) 구글, 해리포터” 등.

 

 

 

(내가 가장 주목해서 본 것은 이 부분이다.) 이것들을 보면,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기죽어 지낼 필요가 없겠다.

 

 

 

“200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라면 절대로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2천 명, 아니 200만 명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한다.”는 건 기억해 둘 만하다.

 

 

 

 

 

2.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누었던 카를 융

 

 

 

일찍이 카를 융은 인성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눴다.

 

 

 

 

 

 

 

 

 

 

 

 

 

 

 

 

 

에드워드 암스트롱 베넷 저, <한 권으로 읽는 융>

 

 

 

이 책에 따르면 “외향성은 에너지가 주로 바깥으로 분출하며 의식의 내용이 주로 외부 대상으로 향하는 것을 가리킨다. 내향성은 의식의 내용이 개인의 내부에 있는 주체를 향한다. 정신적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이 바뀌면 그 효과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똑같은 대상을 두고서도 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으며 견해도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순수한 유형이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1백 퍼센트 외향적인 속성을 지닌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내향성이 완벽하게 쇠퇴해 버린 사람 같은 경우는 없는 것이다. 다만 두 범주의 서술적인 타당성을 널리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카를 융은 “모든 개인들은 외향성과 내향성의 메커니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중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우세한가에 따라 유형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일반적인 태도의 유형인 외향성과 내향성은 각기 사고 ‧ 감정 ‧ 감각 ‧ 직관의 기능을 지닌 네 가지 묶음으로 세분된다. 따라서 이것들이 조합되어 모두 여덟 가지의 요소가 생겨난다. 즉 외향적인 사고 ‧ 감정 ‧ 감각 ‧ 직관과, 내향적인 사고 ‧ 감정 ‧ 감각 ‧ 직관이 그것이다. 융의 경험에 따르면 그 네 가지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고를 통해 관찰하는 대상의 의미나 목적을 알고 그것에 대한 관념을 구성한다. 감정은 그 대상이 우리에게 지니는 가치를 알게 해 준다. 감각은 시각 ‧ 촉각 등의 감각기관으로 얻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직관은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간관념을 갖게 해 준다.”

 

 

 

 

 

3.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

 

 

 

 

 

 

 

 

 

 

 

 

 

 

 

 

톰 버틀러보던 저,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이 책은 심리학의 명저 50권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한스) 아이젠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유형을 명랑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냉정하거나, 침울한 네 부류로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에 내향성자와 외향성자를 구분한 카를 융에게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한스 아이젠크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이렇게 구분해 놓았다.

 

 

 

외향성

- 외향성자의 뇌는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내향성자의 것보다 흥분성이 약하다.

- 내적 경향성이 약하며, 외적 자극 및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삶의 느낌을 얻는다.

- 객관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되, 사건에 대한 인식적 고뇌는 덜한 편이다.

- 대체로 명랑하고 낙천적이나, 침착하지 못하고 모험을 즐기며 신뢰성이 부족하다.

 

 

내향성

- 내향성자의 뇌는 쉽게 흥분하는 탓에 감정적인 상처를 잘 받으며, 내면적인 삶을 강렬히 지향한다.

- 민감한 내적 감각을 지닌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정신적 부담을 주는 지나친 사회적 상호작용을 피한다. 혹은 풍요로운 내면의 삶으로 인해 과도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 매사를 강렬하고 집중적으로 경험하며, 삶에 대해 깊이 고뇌하는 경향이 있다.

- 대체로 진지하고 차분하고 염세적이며, 자존감이 약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브릭스 마이어스는 오늘날처럼 외향성 위주의 사회에서는 보조 수단으로 내향성을 계발하지 못한 외향성자보다, 외향성을 계발하지 못한 내향성자들이 훨씬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에서 ‘4가지 선호 성향’을 보니 흥미롭다.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ST_감각과 사고가 결합한 경우

SF_감각과 감정이 결합한 경우

NF_직관과 감정이 결합한 경우

NT_직관과 사고가 결합한 경우

 

 

 

네 가지 유형

 

 

1) ST(감각/사고) 유형의 사람들은 감각으로 확인되는 기본적인 사실을 추종한다. 실용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직종은 외과의사, 법률가, 회계사, 엔지니어 등 객관적 분석을 요하는 직종이다.

 

 

2) SF(감각/감정) 유형의 사람 역시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지만, 사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결론을 내린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인간적인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 예를 들어 간호나 교육, 봉사, 판매, ‘웃으면서 하는 서비스직’에 잘 맞다.

 

 

3) NF(직관/감정) 유형의 사람들도 따뜻하고 친절한 성향을 지녔지만, 눈앞의 상황이나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실의 변화 가능성이나 미래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하여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일을 선호한다. 교사나 성직자, 광고인이나 상담가, 심리학자, 작가, 학자 등이 그것이다.

 

 

4) NT(직관/사고) 유형의 사람들도 미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들은 합리적 분석으로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차이가 있다. 독창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분야에 주로 종사하며, 과학, 컴퓨터, 수학, 금융 등의 과학적인 직종에 잘 맞다.

 

 

 

“감각, 직관, 사고, 감정 중에 무엇을 선호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특정 가치와 요구, 습관, 특성 등을 결정한다.”

 

 

 

 

 

* 중요한 것은...

 

외향형과 내향형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우월한 것인지 가릴 수는 없다. 위의 네 가지의 유형도 마찬가지다. 그저 성향의 차이일 뿐이니까. 어떤 것이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니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고, 독약도 잘 쓰면 양약이 될 수 있다. 그저 자신의 특성을 잘 살려 장점으로 만든다면 좋을 것이다.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선 이런 유형도 필요하고 저런 유형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이 좋고 나쁨의 ‘차별’을 하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겠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실성과 노력이 아니겠는가.

 

 

 

 

 

** 나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내향성 쪽에 가까운 것 같다. 특히 다음의 글에 공감이 간다.

 

 

 

“민감한 내적 감각을 지닌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정신적 부담을 주는 지나친 사회적 상호작용을 피한다. 혹은 풍요로운 내면의 삶으로 인해 과도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네 가지의 유형 중에서 (직관/감정) 유형에 속하는 것 같다. 이 유형의 직업을 보니 성직자만 제외하곤 교사, 광고인, 상담가, 심리학자, 작가, 학자 등, 내가 다 좋아하는 직업들이기 때문이다.

 

 

 

“(직관/감정) 유형의 사람들도 따뜻하고 친절한 성향을 지녔지만, 눈앞의 상황이나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실의 변화 가능성이나 미래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하여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일을 선호한다. 교사나 성직자, 광고인이나 상담가, 심리학자, 작가, 학자 등이 그것이다.”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하는 걸 먼저 보고 나서 거기에 알맞은 직업을 보는 게 맞는 순서인데, 나는 직업을 먼저 보고 내가 (직관/감정) 유형의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본다. 어떤 직업을 좋아하는가 또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하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할 테니까.

 

 

 

당신은 어느 유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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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0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향성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외향적인 면이 보강되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많답니다. 반반이면 좋을텐데요.ㅎㅎ

페크pek0501 2012-09-07 14:32   좋아요 0 | URL
반반... 그거 좋겠는데요. 동의하겠습니다.ㅋ

2012-09-07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7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2-09-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향적인 사람의 특징들은 어떤게 있는지요? 저는 자신이 헷갈려서요. 사실 저는 단연코 내향성인게 맞는데, 또 까불고 장난도 잘 치거든요....하지만 발표 못하고, 조리있지 못하고, 나서지 못하고, 사람들 만나는게 별로 안좋아요..

페크pek0501 2012-09-13 13:07   좋아요 0 | URL
아, 반갑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향적인 사람의 특징은 위의 페이퍼에 나와 있고요,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ㅋㅋ

제가 아는 대로 말하면, 사람마다 두 가지 성향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어떤 쪽에 더 치우치는지의 문제라는 거지요. 저의 경우에도 어떤 때는 외향성이, 어떤 땐 내향성이 나타나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날은 명랑하고 어떤 날은 우울하지만 대체로 뭐뭐한 편... 이런 게 아닐까요. 외향성과 내향성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하나 예를 들면, -(이건 지금 생각난 건데...) 만약 직장인이 4일의 휴가를 얻었다고 할 때 그 4일 동안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여러 약속을 만들면 외향성의 사람이고, 그냥 4일 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음악이나 책으로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면 내향성의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아는 건 요기까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여 이와 같은 질문에 정확하고 완전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부중이랍니다.ㅋ)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2-09-1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내향적인 사람이어요! 성격 고치려고 무지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지금도 수줍음 무지 타고, 웬만하면 손 안들어요. 회의 때도 한마디도 안하구요. 근데 세상을 바꾸는 게 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건, 음, 제 삶을 돌아보면 잘 모르겠어요. 300명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건 맞습니다 호호

페크pek0501 2012-09-13 13:0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을 TV에서 봤는데, 내향성이 맞는 것 같더군요. 그 이유는 (부끄러울 실테니)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ㅋㅋ 그런데 외향성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승진 건도 그렇고 한마디로 사회생활을 잘 하시는 이상적인 성향을 가지셨을 거라고 추정하는 바입니다. 호호~~

테레사 2012-09-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펙님 고맙습니다....이렇게 상세하고 친절하시다니..근데 펙님의 예를 보니 전 확실히 내향적인 사람이네요...

페크pek0501 2012-09-25 13:24   좋아요 0 | URL
ㅋㅋ 그 예에 따르면 저도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지만 모처럼의 휴가는 집에서
방~콕~ 하고 싶을 것 같아요.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음악 듣고 티브이
보고 책 보고 그렇게 보내고 싶을 것 같아요.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