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책을 읽으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것엔 동의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책에서 얻은 지혜가 꼭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이 있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석가모니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50쪽.

 

 

 

 

이 글을 당신이 읽었다고 해서 어떤 사람으로 인해 분노가 일어났을 때 ‘아,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는 글을 떠올리고 내가 참는 게 좋아,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서 이 분노를 풀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책에서 지혜를 얻는 것과 그 지혜가 삶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도 있다.

 

 

 

 

이런 열등감의 표출은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 악성 댓글이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이 심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분노와 열등감을 마치 ‘배설’하듯 쏟아낸다. 특히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우월해진 것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자기가 간절히 꿈꾸는 삶을 별 노력 없이 얻은 것 같은 연예인들을 비난하고, 악성 루머를 퍼뜨려 모욕감을 줌으로써 열등감을 줄이려고 한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96쪽.

 

 

 

 

이 글을 평소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읽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을 아는 것과 그 무엇으로 인해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독서광들은 전부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독서광이란 어떤 사람인가. 남들보다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독서광들은 자기들만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그 렌즈란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의 렌즈를 끼고 살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착각을 하고 그 착각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또 우월감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2.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 : 책을 읽으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본다.

 

 

친정에서 만든 만두를 아랫동서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전화가 올 법한데 전화가 없었다. 이상했다. 섭섭해지려 했다. 그 다음날에서야 고맙게 잘 먹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를 기다렸는데 동서에겐 그 전화를 하는 게 급하지 않은 듯했다. 훗날 동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알았다. 동서는 그때의 일로 내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와 관련하여 내가 읽은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필립은 노선생인 무슈 뒤끄로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필립은 노선생이 아픈 것 같아 수업을 쉬게 해 주면서 다음 주의 수업료를 선불로 지불한다. 그런데 노선생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이다.

 

 

 

 

필립은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아량을 베풀었으니 상대방은 무언가 감사의 표현으로 그를 감격시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선생이 선물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뜻밖이었다. 필립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 무슈 뒤끄로가 다시 나타난 것은 대엿새 뒤였다. 전보다 더 비틀거리고 더 허약해졌지만 위중한 상태는 넘긴 것 같았다. (…) 그런데 막 나가려고 하면서, 문간에서 문을 붙든 채 멈춰 섰다.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것처럼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네 돈이 아니었으면 난 굶어 죽었을 걸세. 가진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노선생은 굽신거리듯 정중한 절을 한 다음 돌아갔다. 필립은 목이 메임을 느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169쪽.

 

 

 

 

이 글을 읽고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서 인간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즉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선물을 받는 쪽보다 그것을 주는 쪽이 선물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면 받는 쪽이 그 고마움을 깊이 느끼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 소설 속의 노선생처럼. (내가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인간의 특성을 작가는 이미 통찰했고 그래서 소설에 넣었으리라. )

 

 

그러므로 인간의 이런 특성을 생각하여 앞으로는 내가 뭔가를 베풀었을 경우에 상대가 고마움의 표시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소설 덕분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3. 독서의 다른 효과 : 나의 경우엔 독서에서 얻은 지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독서는 여전히 유익하다. 왜냐하면 독서의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이다. 그리고 이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나는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동안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현대인이라면 가질 수 있는 걱정이나 불안 같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중요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이 책을 읽어서 돈이 생기나 쌀이 생기나?"라고 말한다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글 재능이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게 현명할 것이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또는 다른 취미를 갖든, 취미는 지루한 일상을 잘 견디게 해 주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취미 생활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튼튼해지고 자신의 삶이 튼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블로거들에게 늘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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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서와 삶의 관계가, 학창 시절 성적과 이후의 직업에서의 수입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성적은 졸업 이후 직업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직업에서의 성패는 성적(학업지능)이외에 여러 가지 실용 지능이 관여합니다. 상관 관계는 있지만 함수 관계는 아니고, 이 상관관계도 어느 치에 도달하면 상관 관계가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S곡선 모양이죠.

풍성한 삶에 독서는 필요하지만, 독서 이외에 직접적인 삶 (대인관계, 여행, 예술 활동의 참여 등)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나친 독서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죠.

개인적으로 실용지능보다 학습지능,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에 최적화되어 있는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 '감정의 배설'이란 표현을 써 알라디너의 공분을 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10:34   좋아요 0 | URL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우선 반갑습니다.
아, 그런데 이 좋은 말씀을 님의 페이퍼에 담지 않고 댓글에 남기는 것이
안타깝군요. 이에 대해 한 번 써 보시길 권유하고 싶어요. 결례를 무릅쓰고...

여러 번 느꼈습니다만 님의 댓글은 훌륭합니다. ^^
첫 댓글에 감사... 좋은 하루 되시길...

마립간 2014-02-26 14:06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 제 글은 댓글 길이 이상 길어지만, 횡설수설이 되면서 좋은 내용까지 망치는 스타일이라서...

제게는 글을 잘 쓰는 것이 학습 지능보다 실용 지능에 해당합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22:33   좋아요 0 | URL
그건 겸손이시고요...
마립간 님은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선 적이 많으신 것 같아요. ^^

stella.K 2014-02-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뭐 좀 찾아 볼게 있어서 20년 전 일기를 봤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써 놨더라구요,
책을 안 읽으니 머리가 단단하지 않고 흐물흐물 거리는 것 같다구요.
또 아는 사람의 친구는 좋은 구절이 있으면 메모하고 외웠다가
적절할 때 써 먹는대요.
작가 조성기 역시 그렇게 메모한 걸 가지고 글을 쓸 거라고 그랬고.
전 이 담에 혼자 살게 되면 그동안 못 읽은 책이나 실컷 읽고 싶어요.
지금은 여러 가지 틀에 맞춰 살다보니 걸리는 게 너무 많아요.ㅠ

페크pek0501 2014-02-26 22:37   좋아요 0 | URL
으음, 저는 사회적 성공이 학교 성적순이 아니듯이,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오만함과 편협한 사고를 가지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학자들의 세계가 그렇죠. 책을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열린 의식을 가질 것 같은데 오히려 안 그런 경우가 많아요. 권위적이죠. 자신의 생각이 제일 옳은 줄 알아요. 작가들도 그래요.

책을 보지 않는 친구들이 오히려 가정을 더 잘 꾸리고 현명할 때가 많아요. 잘 관찰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결론은 독서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가 되겠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 더 생각해 보고 정리가 잘 되면 글을 새로 올리겠습니다.

아무개 2014-02-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모두 필요로 한다.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

<버나드 쇼>

제가 자타공인 비관의 달인이랄까요. 어릴적부터 부정적이다 비관적이다라는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많이 들었고. 그때문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는 매우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제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바꾸고 싶고 밉고 뭐 그랬습니다만,
책에서 읽게되는 저런 한마디에
"비관적인게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라고 나름 생각의 전환 같은것을 하게 되는걸 보면
제겐 독서가 도움이 되긴 합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22:38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군요. 비관주의자이시군요.

여러 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니 저로선 공부가 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실 2014-02-2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가 도움이 된다에 한표!
책을 읽음으로서 다양성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저를 충분히 홍보할 수 있으며 업무적으로 기획력에도 도움이 되었답니다. 업무적으로 두려울게 없던걸요.ㅎ

페크pek0501 2014-02-26 22:39   좋아요 0 | URL
으음... 세실 님에겐 그랬을 것 같아요. 도움이 되셨을 거예요.
저도 책을 많이 읽어서 글쓰기 강사가 된 셈이니 직업엔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을 듯...
하지만 독서가 지혜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엔 자신이 없는데요...
더 생각해 볼게요. ^^

잘잘라 2014-02-2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몇 분 동안 제 머릿속이예요.

>>> 바보야? 뜨거운 석탄을 왜 맨손으로 집어? 남에게 던지기 위해 석탄을 집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두꺼운 장갑을 끼던지 집게로 잡으면 되지!
>>> 그래.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 뜻이라고. 화를 내는 건 그 정도로 바보짓이라고.
>>> 오오, 그래? 그렇군.
>>> ......
>>> 하지만, 하지만 말야.
>>> 하지만, 뭐?
>>> 그 석탄이 말이지, 누가 나에게 던진 거라면? 날아온 석탄을, 반사 신경 작용으로 야구공 받듯이 순식간에 탁, 받아 든 것이라면? 그러면 이미 내 손은 화상을 입었잖아. 그럼 그걸 던진 사람한테 가서 따져야 할 것 아니냐고. 치료비를 받아내든 갚아주든 해야할 것 아니냐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게 바보지.
>>> 글쎄.
>>> 글쎄라니!
>>> 어쨌든, 따지는 것 보다 먼저 할 일이 있어. 불 붙은 석탄을 처리하는 일, 데인 손을 치료하는 일. 할 일을 먼저 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다보면 석탄을 던진 사람이 누군지, 왜 던졌는지, 혹시 내가 먼저 던진 석탄은 아니었는지,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시는 페크님의 글, 오늘도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4-02-26 17:27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의 댓글이 재미가 있어 주석을 달면 ;

불 붙은 석탄을 서로 던지고 데이는 것은 '화'가 싸움으로 번지고 상처를 입는 것이고 이후에 싸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대개 동반하죠.

탁닛한 '화'를 보면 화의 긍정적 면 또는 긍정적 면으로 승화를 이야기하는데, 손에 쥔 불붙은 석탄의 뜨거움을 조절해서 주머니 난로처럼 사용한다고 할까요.

페크pek0501 2014-02-26 22:40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 님의 뛰어난 상상력은 오늘도 빛을 발하는군요.
그래서 님의 페이퍼가 저는 재밌습니다.
님의 긴 댓글을 잘 음미해 보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14-02-26 22:41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의 추가 설명도 좋군요.

착한시경 2014-02-2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에 감사드려요~ 제 경우에는 책을 읽는다고 지혜가 생기는건 아닌거 같아요~여전히 정신없고 좌충우돌하고 늘 후회의 연속이죠..그래도 책때문에 행복할때도 많으니,,, 행복한 삶의 조건인건 맞는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2-27 14:17   좋아요 0 | URL
착한시경 님, 빙고...
저도 삶에서 어리석음을 반복하기 때문에 후회가 많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책을 거의 매일 읽다시피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더 똑똑해지지는 않더라는 거죠.
오히려 책을 읽지 않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거죠.
독서와 지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이것 논문으로 쓴 게 없을까요?

hnine 2014-02-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진우 시인의 <독서>라는 시, 혹시 아시는지요.
무릇 모든 독서란 독사 한 마리씩 길들이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지요.
그 시가 떠올랐습니다. 독과 약은 근본적으로 한가지라는 것도요.

페크pek0501 2014-02-27 14:19   좋아요 0 | URL
그 시, 몰라서 검색해 찾아서 읽었어요. 좋군요.
독과 약은 한 가지... 그렇죠.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죠.
좋은 말씀에 감사... ^^

2014-02-27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의 거리여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영역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처럼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45센티미터 미만의 밀접한 거리,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지인의 경우에는 45~12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개인적 거리, 인터뷰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상황에서는 120~37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는 370센티미터를 초과하는 공적인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00~101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여기서 말하는 거리를 ‘마음의 거리’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필요하고 또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밀한 관계라고 한다. 즉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가 되겠다.

 

 

“특히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누군가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102쪽)고 한다. “존 그레이는『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들의 이런 특성을 ‘고무줄’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은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곁에 있는 연인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달아나려고 하고, 고무줄의 탄성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102쪽)

 

 

이런 남자의 특성을 모르는 여자는 오해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레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남녀가 겪는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여자는 느닷없이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102쪽) “실제로 애정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남자친구나 남편이 거리를 두려 할 때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을 대화로 풀어 보려고 할수록 남자는 더 멀리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103쪽)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거리란 몇 미터일까.”(105쪽)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나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나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조절’이겠다. 서로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 싸움이 나고 관계가 나빠질 수 있으므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온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감정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풍선을 사이에 둔 사람과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관계를 이해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부부 사이에서나 연인 사이에서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나 두 사람 사이에 풍선 하나 끼여 있는 모습으로 서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으면 풍선은 터지고 만다. 두 사람이 아주 떨어져 있으면 풍선은 날아가고 만다. 풍선이 터지거나 날아가지 않게 하려면 두 사람은 알맞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의 거리일 것이다.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2.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 또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작년 내 체중이 5.5킬로가 빠졌다.(현재 3킬로만 회복되었다.) 체중이 빠지고 나니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빈혈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싫은 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살이 찌기 위해 밥을 열심히 먹기로 하고 식사의 양을 늘렸다. 그랬더니 소화 불량에 걸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많이 먹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 했다. 식사량 ‘조절’이 중요하다.

 

 

정신의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짐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차 있을 터였다. 걱정과 불안을 없애야 했다. 그것들을 없애서 정신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글쓰기’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인 셈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 정신엔 좋은 반면, 몸엔 부작용이 생겼다. 정신은 즐거워지되 몸은 고단해서 감기몸살이 났던 것. 글을 쓰되 감기몸살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글을 써야 했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쓸 시간이 모자란다. 글을 많이 쓰면 책을 읽을 시간이 모자란다. ‘7 대 3’으로 할까, ‘6 대 4’로 할까 생각하다가 ‘5 대 5’로 하기로 했다. 책을 두 시간 읽었다면 글을 두 시간 쓰기로 한 것이다. 시간 ‘조절’이 중요하다.

 

 

샤워를 할 때조차 물이 뜨거워서도 안 되고 차가워서도 안 된다. 적당한 온도의 따뜻한 물이어야 한다. 물 ‘조절’이 중요하다.

 

 

요즘 같은 겨울엔 실내의 온도 조절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습하지 않은 습도를 유지해야 건강에 좋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내가 ‘조절’을 중요시하는 순간, ‘조절’은 예전과 다르게 새로운 가치의 색채를 띤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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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1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거리 조절이 필요하지만, 그 거리라는 것이 (대개 4 범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분류내에서도) 각각이라는 것.

부부를 포함한 가족과 같은 사이에서는 대화를 통해 거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지만, 직장 상사와 같은 갑을의 관게에서는 을이 갑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 자율성이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포함해서 인간 관계의 거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을이 홀로 부담해야 하고.

직장 상사의 위치에 사회를 대입해도 같은 논리가 가능해, 사회에 대해 을에 위치에 있을 경우, 그마나 대화가 있는 사람보다 더 어려울 수 있지요.

내가 지금을 포함한 평생 잘 조절해야 할 것은 감정을 포함한 mentality - 죽을 때가 안 될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2-19 20:21   좋아요 0 | URL
갑과 을의 관계라... 사회와의 관계라...
님의 댓글은 훌륭하네요. 그 생각은 못했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2014-02-19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9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2-1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나이들수록 중용의 가치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살이 그렇게나 많이 빠지셔서 어쩐답니까?
저에겐 복음일텐데, 저는 그렇게 살이 안 빠져요.
저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햇빛을 보며 운동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렇게 안 되요.ㅠㅠ

페크pek0501 2014-02-19 20:27   좋아요 0 | URL
작년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전후로 살이 금방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회복은 더디네요.
복음이라고요? ㅋㅋ
적당하게 보기 좋은 몸매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마르거나 찌거나죠.

햇빛 보며 걷는 것, 요즘 많이 합니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빼고요. ^^

비로그인 2014-02-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살이 빠져요. 어떤 계기로 급속도로 빠지진 않고 매일 100g씩? 꾸준히요, 살 빼려고 운동하는 것도 먹는 걸 줄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빠지네요. 거울을 봐도 생기가 없고 눈 밑은 자글자글해지는 게..(페크님의 '조절'에 관한 훌륭한 페이퍼에 하소연만 늘어놓고 있네요^^;;)

저는 '알라딘 접속시간'을 잘 조절해야 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2-21 08:16   좋아요 0 | URL
견디셔 님.
누군가에겐 살이 빠지는 게 좋고 누군가에겐 살이 찌는 게 좋은데 다 자기 맘대로 안 된다는 게,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저도 컴퓨터 켜기를 주2회로 해야 겠다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실천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그래요. ㅋㅋ

잘잘라 2014-02-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 조절이요. 자전거 타고 다닌다고 산 자전거, 등산 다닌다고 산 등산복, 민요 배운다고 산 장구(장인이 만드신 거라 비싸게 주고 산.. ㅎㅎ), 서예 배운다고 산 서예도구.... 이 모두가 요즘 새로 배우기 시작한 분식점 창업 요리에 밀려나 있는 모습을 보자니 더 이상의 의욕은 안되겠다 싶어요.

페크pek0501 2014-02-21 08:17   좋아요 0 | URL
분식점 창업 요리, 그거 멋지네요.
님은 우울할, 그리고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으니 행복하신 분입니다.

세실 2014-02-2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지막 한줄, 매력적이예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카리스마 있어요~
전 식욕 조절이 필요합니다. 밥 먹고 간식이 왜 땡기며, 저녁에 소식하고는 한밤중에 가래떡이 왠말입니까!!!!! 최대의 적입니다. ㅎ

페크pek0501 2014-02-21 08:18   좋아요 0 | URL
저도 맛있게 먹는 것, 몇 가지 있어요. 그것도 행복이지요.

마지막 한 줄... 그 한 줄이 이 시시한 페이퍼를 조금 살려 놓았다고 평가하는 바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2-2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생활에서도 친근하게 군다면서 어느 선을 넘어가면 무례함이 되기 쉽죠.적당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거리조절에 실패하면 인간관계가 어긋나니까요.

페크pek0501 2014-02-23 09: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
그러고 보면 모든 것에 조절이 중요하네요. ^^

다크아이즈 2014-02-2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거리든, 시공간적 거리든 꼭 필요한 거 맞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너무 엎어지면> 깨지게 되어 있어요. 적당한 선, 적정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지요. 이런 페이퍼 보면서 또 다지고 다지는 거지요.스스로를^^*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2-24 13: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 거리들이 필요한 거죠.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고딩 딸만 해도 (고 어린 것이) 그렇더라고요.
적당한 거리,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죠.

서울은 미세먼지 사흘째예요. 목요일에 비가 오면서 끝난다니깐 운동도 못하고 집에 갇혀 지내야 되네요. 그동안 공기 맑은 날도 큰 혜택이었음을 깨달아요.
좋은 하루 되시길요... ^^
 

 

 

1.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은 금물 : 내 경험에 따르면,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졌던 어떤 일이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중대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먼 훗날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이 될 거야.' 하고 나를 안심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에 의해 사랑을 거부당하고 무시당한 경험은 우리의 자존감에 깊은 충격과 상처를 입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열등감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깨졌다는 사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온갖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늪에 빠져서 가라앉을지, 아니면 나뭇가지를 잡고 빠져나올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138쪽)

 

우리는 그저 몇 번 사랑에 실패했을 뿐이다.(139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우리는 그저 몇 번 사랑에 실패했을 뿐이다.(139쪽) 인생이 끝난 게 아니고.

 

 

그러므로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2. 고민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 : 누구나 고민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고민이란 게 알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생각하여 집중하는 일이므로.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는지?

 

 

고민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

고민을 쪼개서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것.

고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

 

 

이 네 가지 중에서 내가 말하려는 답이 있다.

 

 

바로 이것.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

 

 

이 답과 똑같은 명언을 책에서 보고 잠깐 동안 내 눈이 멎은 적이 있다. 딱 맞는 말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게 고민이 있어 누군가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고민은 아니었지만 해결하지 않는 한, 내 머릿속에서 떠날 것 같지 않던 성가신 고민이었다. 마음이 찜찜했다. 상대가 내 고민을 해결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고민에 공감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고민을 듣고 난 뒤 상대가 해 준 답변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내 고민에 공감해 줬을 뿐 아니라 조언해 줌으로써 고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많이 고마웠다. 고민을 털어 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민의 무게와 부피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다. 하지만 찜찜했던 내 마음이 사라져 버렸으니 마치 고민이 해결된 것처럼 느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믿는 사람에게 고민을 얘기함으로써 고민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이런 명언을 보고 내 눈이 멎었던 거였다. 

 

 

“고민을 가볍게 하는 가장 훌륭한 치료법은 믿는 사람에게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르즈 헐파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3. 그냥 ‘생각’일 뿐 : 가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남들이 알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걸 상상할 때가 있다. 또 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에 공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재밌는 내용이 될 것 같다.

 

 

만약 얼굴에 그 사람의 생각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상대방을 시시하게 보는 얼굴이나 상대방을 경멸하는 얼굴이 되는 일이 있을 땐 어떻게 될까. 아마 우리는 편히 살 수가 없을 게다. 그러므로 누구도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책임을 질 일도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저렇다 판단해선 안 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러버리는 거야.”

 

 

- 프란세스크 미랄례스, 카레 산토스 저, <일요일의 카페>에서.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4. 누구나 할 말이 있다 : 어떤 잘잘못을 따지는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참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는 법이니까.

 

 

딸들이 다툴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중재자로 나서는데 한쪽의 얘기만 들으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각자의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매번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쪽이 그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걸 절감한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큰애가 티브이를 보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애가 티브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큰애가,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왜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면 작은애는, 이제까지 언니가 맘대로 티브이를 봤으니까 이젠 내가 봐야겠다고 응수한다. 언니는,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으니 리모컨의 사용 권한은 내게 있다고 따진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입장인 큰애는 리모컨의 사용 권한이 아직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티브이를 보지 않던 작은애는 여태껏 언니가 티브이를 봤으니 이제부터는 자기가 봐야 공평하므로 리모컨의 사용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럴 땐 서로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5. 역지사지의 자세 : 이처럼 세상일에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겠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에서도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세상 사람이 다 유리한 입장(처지)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란 뜻이겠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6. 생각만으로도 나쁜 일과 좋은 일 :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공포감을 주는 협박 편지 한 통의 생각만으로도 지옥에 빠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생각의 노예’가 아니던가.

 

 

이런 예를 들어 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런 일에도 공포를 느낄 것 같다.)

 

 

“당신이 현관문 앞에 있는 신문을 매일 아침에 집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어느 날은 그 신문 속에 똥이 묻어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의 편지를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면 나는 신문을 집어 들 때마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며 긴장할 것이다. 신문 속에 똥이 있다면, 침대에서 신문을 펼쳐 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 똥이 이불에 묻게 되잖아. 이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나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만으로도 나는 불행에 빠져 버릴 수 있다. 물론 이건 나쁜 일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예절이 필요한 거란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오후 4시에 누군가가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3시부터 행복해질 수 있듯이, 직장인들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금요일 저녁부터 행복해질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생각’이 선사하는 행복이겠지.

 

 

도 생각만으로도 불행해지는 일이 있고,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일이 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불행해진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겪었던 힘들었던 일들을 또 겪어야 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큰애가 취직이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학비가 들지 않고 오히려 돈을 벌어 오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이지만 참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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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5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2-1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있을때면 차근차근 생각합니다. 고민을 쪼개보는거죠. 그리고 제가 유리한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답니다~~~

현재에 충실하기도 참 중요한듯요^^

페크pek0501 2014-02-15 14:26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저와 비슷하시네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상담 역할을 합니다.
시 쓰는 친구라서 감성과 감각이 발달되어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랍니다.
저의 모자란 점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저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해 주는 친구라서 좋습니다.

아마 세실 님도 저보다 젊지만 가까이 산다면 저에게 좋은 조언을 해 주실 분 같아요. 사회생활로 다져진 탁월한 마음 다스리기, 가 님에겐 있을 듯해요. ㅋ

다크아이즈 2014-02-1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요, 그 생각이 들키지 않는다는 건 행운이요,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될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페르소나 없는 삶이라면 당혹스럽고 낭패스럽잖아요. 덕분에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페크pek0501 2014-02-15 14:28   좋아요 0 | URL
페르소나... 이 뜻을 몰라서 검색해 봤어요.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뜻을 모르는 낱말이 어찌나 많은지요.

님의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답니다.
우리 파이팅!!!!!!!!!!!!!!!!!!!!!!!!!!

노이에자이트 2014-02-1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내 편을 안 들어주고 그래? 하고 성질부리는 인간에겐 역지사지니 뭐니 아무리 권해봐도 소용없습니다.자기 잘못은 생각도 않고 내 편만 들어달라는데...참...

페크pek0501 2014-02-18 13: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겨요. 그래서 인간이 귀엽잖아요.
그런 사람에겐 역지사지가 안 통하죠. ^^

 

 

 

1. 육체적 관계에 대한 두 생각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는 부부다. 또 C라는 남자와 D라는 여자는 부부다. 그런데 B라는 여자와 C라는 남자가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나 버렸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속의 이야기이다.

 

 

재밌는 것은 두 남녀 B와 C가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A(남편)는 B(아내)에게 C라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를 묻는다. 둘이 연애를 했더라도 그것만은 없기를 바랐다. 이에 B(아내)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대답을 회피하고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죄지은 얼굴을 한다. (그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과 상관없이 여기선 이 장면에 대해서만 말함.)

 

 

반대로 D(아내)는 C(남편)가 B라는 여자와 호텔에 들어간 적이 있으나 그때 육체적 관계는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절망하며 두 사람이 사랑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건 정신적 외도였으니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하며 이혼을 결심한다.

 

 

A라는 남자에겐 바람피운 아내가 육체적 관계가 없어야 불행 중 다행인 일이 되는데, D라는 여자에겐 바람피운 남편이 육체적 관계가 있어야 불행 중 다행인 일이 된다. 왜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또 A는 두 사람의 육체적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B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어떤 것이 누구에겐 중요하고 누구에겐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도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이 드라마를 보다가 니체가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생각났다.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해석에 사로잡히고, 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시점에서만 사물을 보게 된다. 요컨대 해석 또는 해석에 기인한 가치 판단이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는 것이다.

 

 

-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은이), <초역 니체의 말>에서.

 

 

 

이것을 니체는 다음과 같이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렌즈처럼 앵글에 비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투과시키지 않는다. 가령 석양에 물든 산자락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도 자연의 풍광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는 마음을 비우고 본다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바라보는 대상 위에 영혼의 얇은 막을 무의식적으로 덮어씌운다. 그 얇은 막이란 어느 사이엔가 성격이 되어버린 습관적인 감각, 찰나의 기분, 다양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풍경 위에 이러한 막을 얹고, 막 너머를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은이), <초역 니체의 말 2>에서.

 

 

 

 

 

            

 

 

 

 

 

 

 

 

 

 

 

 

 

 

 

 

2. 명절에 대한 두 생각

 

 

즐겁지 않은 명절이었다.

지난 주 설날 연휴에 3박 4일 동안 대구에 있는 시집에 머물다 왔다. 명절로 인한 ‘민족 대이동’ 속에서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것 자체도 고단한 일인데, 시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잠을 자야 하는 밤이 되기 전까지 발 뻗고 쉴 여유가 없이 바빴다. 집에 돌아오니 몸살기가 있었다. 며칠을 앓았다. 명절 후유증인 셈이다. 명절로 인해 며느리만 고단한 게 아니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고단해 한다. 아이들도 고단해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이란 말인가.

 

 

즐거운 명절이었다.

지난 주 설날 연휴에 3박 4일 동안 대구에 있는 시집에 머물다 왔다. 명절로 인한 ‘민족 대이동’ 속에서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것 자체는 고단한 일이지만 명절이 아니라면 따로 시간을 내서 시집에 갈 기회를 만들기 쉽지 않으니 명절이 필요한 것 같다. 명절의 즐거움은 역시 모든 가족과 친척이 모이는 데 있다. 며느리들은 며느리들끼리 수다로 즐겁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만나서 즐겁고 아이들은 사촌들을 만나서 즐겁다. 반갑게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음식을 맛있게 먹으라고 권한다. 모두가 유쾌하게 하하하 웃는 시간이 많은 날.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명절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즐겁지 않은 명절일 수도, 즐거운 명절일 수도 있는 것은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위에 옮겨 놓은 니체의 글을 다시 읽는다.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니체의 글을 기억해 두기로 한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기 때문에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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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2-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따말 보고 있어요. 작가가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자칫 단세포적으로 육체 관계가 있었냐 없었냐고 따지는데
사랑은 그 보다 훨씬 집요하고 이면적인게 많다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아요.
6자 대면 하던 날 보면서 작가의 일, 작가의 신음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어떻게 이 6 사람의 관계를 잘 풀어내느냐가 관건일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잘 풀어내는 것 같더군요. 마무리는 어떻게 될지 주목해서 보고 있어요.흐흐

페크pek0501 2014-02-10 14:16   좋아요 0 | URL
그 작가가 <사랑의 전쟁>을 쓴 작가라 하더군요. 역시 역량 있어요.

이 드라마의 훌륭한 점은 피해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고통도 잘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승리자는 없고 패배자만 있을 뿐이라는 교훈을 주죠.
부부가 화해해 가는 과정을 그리게 될 것 같아요.

마립간 2014-02-0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도에 관해서 ; 제 대학 친구 중에는 남자는 외도가 가능?한데, 여자는 불가능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가능을 대체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남자의 외도는 육체적이며 사랑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에 원래의 가정이 깨지지 않지만, 여자의 외도는 정신적 사랑 없이는 육체적 관계로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설령 육체적 관계로 아직 가지 않았어도) 반드시 가정이 깨진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반론은 경제적 독립 여건에 따라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용서하지 않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는 두가지 요인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페크pek0501 2014-02-10 14:23   좋아요 0 | URL
친구 분의 생각이 대체로 맞는다고 봅니다. 5프로 정도의 예외를 두고요. (예외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제 생각엔 여자의 외도로 가정이 깨지는 이유는,
1. 여자는 남자에 비해 사랑에 올인하기 때문.(사랑이 전부이기 때문.)
2.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건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
3. 여자는 남자에 비해 순결 의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 즉 외도를 저지른 자신을 받아 줄 남편이 없다는 생각 때문.
4. 여자는 독립할 수 없는 경제적 문제 때문.
등으로 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더 연구해 볼 만한 글감입니다.

착한시경 2014-02-0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열개를 누르고 싶은 맘인데요,,, 페크님의 글에 공감하고 당장 책을 사고 싶어졌어요~좋은 일과 나쁜 일은 정해진게 아니니까...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해요~ 점심먹고 시간이 좀 나서 혼장 카페에 커피마시러 왔는데,,,아~ 넘 시끄러워서 집중이 어렵네요ㅠ.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4-02-10 14:25   좋아요 0 | URL
착한시경 님. 니체의 책은 사셔도 후회하지 않을 듯싶어요. 저는 반복해 읽고 있어요.
이왕이면 자신에게 정신적 평온을 주는 방향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혼자 카페에 가시다니... 멋지군요. 저희 집 가까이에 노트북 가지고 가도 되는 카페가 있는데, 한 번 가야지 하면서 한 번도 못 갔어요.
이런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듯싶어요. 처음만 어렵겠지만.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2-08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는 한혜진의 외모를 보고 어떻게 해석할까요?

페크pek0501 2014-02-10 14:2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니체의 여성관은 어땠는지...
뭐 니체도 남자아니겠어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한혜진 님, 이 드라마에서 예쁘게 나오죠.
예쁜 줄 몰랐는데... ㅋ

노이에자이트 2014-02-1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여성관...여성혐오증으로 유명하죠.그런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비슷하고요...루 살로메와 니체의 관계가 유명하잖아요...세기의 로맨스라는데, 그건 과장되었고, 세계적인 지식인 남녀의 연애도 별 볼일 없더라고요.

그런데 페크 님이 본 책엔 루 살로메와 사귄 이야기는 없던가요?

페크pek0501 2014-02-11 12:57   좋아요 0 | URL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탐독했다고 하더군요.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한 사건도 유명하죠.

살로메에게 두 번이나 청혼했으나 거절당하고 훗날 살로메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글을 읽었어요. 나중에 니체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지요.
저라면 탁월한 니체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을 것 같은데... ㅋ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이 맑은 날씨라 좋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노이에자이트 2014-02-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인사 중에선 실생활에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마음좋다는 소리는 못들을 사람들이 쑤두룩하더군요.니체도 마찬가지...니체는 여자들과 사이가 안 좋은데다 여동생과는 사이가 각별했다는데 그 여자가 니체의 여자관계에까지 사사건건 간섭했죠.아마 니체가 결혼했어도 그 여동생이 엄청나게 시누이 노릇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그너 여자관계도 골치 아프고...여하튼 실생활에서는 남편감으로 빵점인 남자들이죠.

페크pek0501 2014-02-13 13:39   좋아요 0 | URL
특히 예술가들은 그런 것 같아요. 배우자로 선택하기엔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일단 독특한 인간형으로 이해해야 할 듯싶어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많고(다른 직업에 비해서)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듯...
또 그게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괴팍스러운 데가 있는... ㅋ

다크아이즈 2014-02-1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공감 누르고 저 책 보관함에 담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이끌어내는 단상 능력도 신선합니다.
저는 뭐, 시댁 문화에 대해선 그리 힘든 게 없어도 저리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 편.
그럼에도 페크언니님의 따땃한 마음씀에 공감을 누르는 바입니다.
저 책 사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2-13 13:43   좋아요 0 | URL
아마 팜 님도 좋아하실 책인 듯싶어요
제가 따뜻한 게 느껴지는 글인가요?
그저 좋게 봐 주시는 님 덕분인 것 같아요.

책을 사고 읽고 나서 맘에 들어 반복해 읽고 싶은 책이 많지 않은데
니체의 이 책 두 권이 저는 아주 맘에 들어요.
정리가 잘 된 문장을 보는 재미, 그리고 시적인 문장을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
 

 

 

1. 설날이라 3박 4일 동안 시댁(대구)에서 머물다가 왔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행복하다. 하지만 아직 피곤함이 다 풀리지 않은 듯. (그래서 즉흥적으로 대충 이 글을 쓴다. 빨리 쓰고 쉬어야 하니까. 아, 친정에 가야 한다.)

 

 

 

 

 

2. 내가 결혼할 당시, 우리 시어머님의 연세가 55살이었다. 27살의 새색시인 나는 시어머니를 할머니로 생각했다. 이미 7살의 외손자가 있었기에 할머니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또 외모도 할머니로 보였다. 그래서 시댁에 갈 때 시어머님에게 드릴 선물로 할머니가 입는 스웨터(흰 색에 흰 색의 털이 달린 것)를 사 갔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꼬부랑 할머니나 입는 옷이었던 것.

 

 

큰시누이 : 이렇게 할머니 옷을 사 오면 우짜노. 엄마가 어떻게 입노?

싸가지 없는 새색시 : 어머님이 할머니 맞잖아요.

 

 

큰시누이의 말은 어머니가 할머니가 아닌데 어떻게 그 스웨터를 입으시냐는 거였다.

 

 

ㅋㅋ 지금 생각하면 나, 참 철없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시어머니는 그 스웨터를 입지 않으신다. 아직도 자신이 꼬부랑 할머니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지금 시어머니의 연세는 81이시다. 

 

 

 

 

 

3. 설날 연휴가 끝난 뒤, 내가 어느 서재에 들어가 댓글을 남겼더니 이런 답글이 있었다.

 

 

 

pek0501 : 헨리의 트랩을 듣고 있어요.

일요일 밤의 즐겁지 않음을 음악으로 푸시기를...

 

어느 알라디너 분 : 헨리의 트랩이 뭐지, 하고 유튜브 검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취향이 젊으셔요. ㅋ

 

 

 

취향이 젊으시다니...

그럼 내가 젊지 않다는 말이잖아. (빠바방...) ㅋ

내가 나이가 많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깔깔깔... 웃었다. (그러니깐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둠.)

 

 

나는 내가 아직도 젊다고 착각하고 산다. (우리 시어머니와 똑같다.) 그 착각의 거울을 쨍그랑 깨지게 해 준 그분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착각은 깨져야 할 것 아닌가. 어디에선가 망신당하기 전에.

 

 

 

 

 

4.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있다.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서 내 또래가 있다는 것. 나와 동갑이신 분도 있고, 두 살 위인 분도 있고, 한 살 아래인 분도 있다는 것. (그런데 한 살 아래인 분이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서 억울했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 하는 생각으로. 반대로 내가 한 살 적으면 나도 언니라고 불러 보는 건데, 하는 생각으로. 이 나이가 되면 상대보다 내가 젊어서 언니라고 부르는 게 좋다. 이게 늙었단 증거겠지. 젊음을 밝힌다는 건 그만큼 늙었다는 증거니까.)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시는 분들 중에선 나보다 4~5살이 적은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분들은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 줘서 고맙다. 나를 존중해 주는 느낌이 드니까.

 

 

 

 

 

5. 요즘 헨리의 ‘트랩’을 즐겨 듣는다. 나는 좋은 음악이 있으면 반복해서 듣는 버릇이 있어서 아마 이 노래도 3백 번쯤 듣게 될 것 같다. 아이의 아이패드로 듣기도 하고 유에스비에 저장해 놓고 내 넷북으로 듣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작은애가 아이패드로 ‘랜덤으로 듣기’를 설정해 놓고 음악을 듣곤 하는데 그것이 내게까지 들려와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자꾸 듣다 보니 좋아졌던 것. 그러니 내 음악 취향이나 수준은 자연히 그 애와 같아진다. 결론은 내 음악 수준은 고딩 수준이라는 것이다.

 

 

 

 

 

6. 그런데 음악만 고딩 수준인 게 아니라 요즘 내가 말하는 수준도 고딩 수준인 게 문제다. 가끔 작은애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수준 좀 높여. 난 이제 초등학생이 아니야.”

“(할 말 없음.) 빠바방...”

 

 

아이가 컸긴 컸나 보다. 엄마 수준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내 수준을 높이는 게 하나의 과제다. 이 해에 높일 수 있을까? 갑자기 어떻게?

 

 

 

 

 

 

<후기>....................................

 

‘시댁’이 아니라 ‘시집’이라고 써야 맞는데 그냥 ‘시댁’으로 썼다.

‘그분들이‘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써야 맞는데 그냥 ‘그분들이’로 썼다.

이렇게 글에서 높임말을 써야 하지 않는 이유는 독자가 왕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통령께서 미국 순방길에 오르셨다.’가 아니라

‘대통령이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가 맞다.

 

난 어떤 원칙은 알면서도 무시하고 쓴다. (예의를 위해서이니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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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4-02-0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 재밌게 읽었어요~
싸가지 없는 새색시...ㅋㅋ 55세시면 아주 젊은 시어머님이신데, 할머니가 입는 스웨터를 사다드리면 않입으시겠죠..ㅋㅋ 81세시라도 스스로는 할머니라 생각 안하실겁니다..ㅎㅎ

트랩의 노래는 모르겠고....전 지금도 익스트림계열의 음악을 듣습니다. 가요는 신해철이 마왕이 된 이후부턴 안듣고요..ㅎ 고교시절에서 대학시절까지 줄창 헤비메탈 듣다가 시쿤둥해져서 클래식을 들었는데, 몇 년 전부터 하드한 음악의 끝인 익스트림 계열을 듣습니다. 메탈의 끝은 클래식과 만나는 가 봅니다..ㅎ

글세요....전 나이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서재 활동하는데 나이와 호칭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있네요. 초등학생에게도 배울점이 있으니까요..ㅎ

페크pek0501 2014-02-04 11:53   좋아요 0 | URL
그냥 부담 없이 쓴 글인데 댓글이 많이 달려서 놀랐어요. ㅋ
누구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꼭 기억해 둘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외모가 많이 젊어졌다는 점이에요. 우리 큰시누이가 현재 57세신데, 늙어 보이지 않아요. 아마 노인이라는 말도 이젠 70세부터 써야 할 듯싶네요. 그건 좋은 현상이라 생각해요. 요즘 노인들은 예전에 비해 정신도 젊어졌어요.

나이에 대한 님의 의견은 좋군요. 동의하겠습니다.


착한시경 2014-02-0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공감하며 읽었어요~전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 100% 공감하며찔찔 울었는데~그때 제가 나이먹었구나 했어요~ 재밌었지만 맘이 짠하더라구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회한만 남고~ 그냥 우울해지고... 그렇더라구요~

페크pek0501 2014-02-04 11:54   좋아요 0 | URL
우울 우울 하시지 말고 명랑 명랑 하시길...

저는 케이티엑스 타고 오면서 영화석에 앉아서 <피끓는 청춘>이란 영화를 봤는데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아 잠이나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의외로 재밌었어요. 우리의 정신은 늙지 않나 봐요. 고교생들의 이야기인데 몰입해 봤어요.
제가 나잇값울 못하는지도... ㅋㅋ

stella.K 2014-02-0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헨리의 트랩이 뭐예요? 노래 이름인가?
그러게요. 저도 그 나이 때 그 나이가 참 많은 줄 알았어요.
저는 나이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이젠 그 나이도 별로 많은 게 아니구나 싶어요.
저도 언니라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다 싶어요.^^

페크pek0501 2014-02-04 11:55   좋아요 0 | URL
헨리의 트랩을 모르시다니... 님은 저보다 젊으시면서... ㅋ
저도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분이 있는데 제 친구들 중에서 두 살 많은 이들이 있어서 (족보가 헷갈려서) 참았어요. ㅋ



심야책방 2014-02-03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할머니는 연세가 94세이신데도 (뙇!) 할머니(처럼 보이는) 옷은 안 입으세요. ㅡㅡ^

페크pek0501 2014-02-04 11:57   좋아요 0 | URL
와우~~ 94세에도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저의 미래 모습 같아요.
반가웠습니다. ^^

순오기 2014-02-0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시어머님은 내 나이에 며느리를 맞으셨고, 이미 할머니도 되셨었군요.ㅠ
우리 나이는 잊어버리고 살자고요.^^
명절에 시댁과 친정순례는 공식이거늘, 저는 명절에 친정을 한번도 안 갔어요.ㅠ
그렇다고 먼저 다녀오거나 후에 가지도 않고...이런 것도 버릇 들기 나름인 듯....

페크pek0501 2014-02-04 11:58   좋아요 0 | URL
글쎄, 그렇더라고요.
예, 우리 나이는 잊어요. 전 잊을 수 있어요.
이곳에 순오기 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든든해염. ^^


잘잘라 2014-02-0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옷을 입고 다녔는데 요즘은 저도 엄마가 물려주는 옷은 절대 사절이예요. 글쎄 엄마 옷을 입어두 어색한 맛이 하나두 없구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다니.. 도대체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흑흑

페크pek0501 2014-02-04 11:59   좋아요 0 | URL
그거 좋은 글감이군요. 어색한 맛이 하나도 없다니...
저도 그렇겠지요? 아직 엄마의 옷을 입은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예요. ㅋ

다락방 2014-02-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헨리의 트랩이라뇨! 저 한동안 그노래에 미쳐가지고 유튜브에서 찾아 내내 듣고 다녔습니다.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피쳐링해주는 태민의 춤을 보는게 좋아서요. 태민이가 춤을 너무 잘추는 거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 이런 애가 다있지, 감동에 겨워 영상을 두고두고 돌려보고, 그러다 태민이가 춤추는 다른 영상까지....하하하하하하하하.

마침 이 페이퍼도 봤겠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헨리의 트랩 한 번 들어야겠습니다. 으흐흐흐


아, 이건 완전히 다른 의견인데 전 '언니'란 호칭을 개인적으로 싫어해요. 제가 언니라고 부르기도, 누가 저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요. '오빠'란 호칭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페크님은 언니란 호칭에서 존중을 느끼신다니, 아 그럴수도 있구나 싶어 살짝 놀랬습니다. 뜬금없이 나에겐 끔찍했던 교회가 누군가에겐 인생의 구원이 되었었던 얘기도 하고 싶고...그렇지만 너무 길어지니 패쓰합니다. 하핫

페크pek0501 2014-02-04 12:03   좋아요 0 | URL
아, 님은 노래보다 춤이 좋으셨군요. 어쨌든 같은 노래의 팬이라니 반갑습니다.
저는 이 노래의 음악성에 감동 받았어요. 어쩌면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하면서 말이죠. 지금도 노래 들으며 쓰고 있답니다. 광팬이에요.

저는 여자 형제가 없어서인지 언니, 라고 부르면 대체로 좋습니다.
사촌들이 불러 주곤 하는데 잘 만나질 못하니 그 호칭이 익숙하진 않아요.
언니보단 조금 더 좋은 게 선배님이나 후배님으로 부르는 것... ㅋ
교회에 대한 생각은 저와 비슷할 듯싶네요.

(참고로, 저는 님이 저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냥 페크 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습니다.) ^^

비로그인 2014-02-0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안녕하세요..
저는 취향의 문제는 아니나, 얼마전 피씨방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욕을 너무 심하게 해대며 떠나가라 떠들길래 한마디 했더니, 어떤 아이가
"아줌마..가 왠 참견이세요?" 하길래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ㅠㅠ

아이들도 아니고 고등학교 학생이 아줌마라니.. ㅠㅠ
전 더군다나 시집도 못갔는데 ㅠㅠ

페크pek0501 2014-02-04 12: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님은 고등학생이라는 말씀입니까?

(닉네임이 좋군요.^^)

노이에자이트 2014-02-0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늘 그렇지만 다른 이들 댓글과 다른 내용을 담아보겠습니다.

독자가 왕이기 때문에...맞습니다.방송인들이 선배니 형이니 언니니 형수니 하는 말을 쓰지 않고 누구누구 씨로 통일해야 하는 건 시청자들을 더 웃사람으로 보기 때문이지요.하지만 요즘은 이런 방송예절이 사라졌습니다.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 토크 쇼나 시상식 진행자들까지 사적인 호칭을 남용하더군요.

페크pek0501 2014-02-06 1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 님은 모르시는 게 뭐죠? ㅋ

노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방송에선 시청자가 왕입니다. 그러니 사적인 호칭은 금물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씨 자를 붙이기보다(씨는 윗사람에겐 쓸 수 없는 말이어서)
님 자를 붙이는 것으로 통일했으면 합니다. 아무개 님, 이렇게요.

님의 댓글은 유익한 댓글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

노이에자이트 2014-02-0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요.나이는 예전에 이미 알았고...

2014-02-06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6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6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7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