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왜 그리 말을 못하는지 답답해 죽겠다.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의사 표시를 잘 못할 뿐만 아니라 우유부단한 경우도 있다. 혹시 이런 게 작가의 의도일까? 시청자들의 속을 태움으로써 시청률을 높일 생각일까? 그 반대로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줌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면 안 될까?

 

 

예를 들어 보겠다.

 

 

부유한 집안의 두 남녀는 결혼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파혼을 한다. 이유는 상대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는 따로 있는데 바로 이혼녀다. 하지만 파혼 당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아니 자신이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혼녀에게 남자를 빼앗길 수 없다며 앙심을 품는다. 세 사람은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혼녀에게 중요한 서류를 훔친 누명을 씌워서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다. 그런데 이혼녀가 누명이 벗겨져서 다시 회사에 근무하게 된다. (특정한 드라마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여러 드라마를 보고 생각나는 대로 써 본 것임.) 

 

 

이럴 때 이런 대사가 오간다.

 

 

A(파혼 당한 여자) : 당신 두 사람을 만나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요. 그 여자가 당신 앞에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예요. 제발 정신 차려요. 당신이 만날 사람은 그 이혼녀가 아니라 나란 말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요? 내가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B(파혼한 남자) : 제발 그만 둬요. 우린 끝났어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해요.

 

 

B남자의 말은 요걸로 끝이다. 어휴~ 답답해. 이런 장면을 봤다면 나처럼 답답해 할 시청자가 많지 않을까.

 

 

그럼 B남자가 어떻게 말해야 나 같은 시청자가 시원할까. 바로 요렇게.

 

 

A(파혼 당한 여자) : 당신 두 사람을 만나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요. 그 여자가 당신 앞에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예요. 제발 정신 차려요. 당신이 만날 사람은 그 이혼녀가 아니라 나란 말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요? 내가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B(파혼한 남자) : 사랑이란 게 그렇게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당신도 알잖아요. 난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 여자를 포기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라고요? 만약 내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아요? 내가 그리워지겠죠. 마찬가지예요. 그 여자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난 그 여자를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겠죠.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면 감정이 더 강렬해지는 법이니까요.

 

 

A(파혼 당한 여자) : (침묵함...)

 

 

B(파혼한 남자) : 그리고 이런 당신을 난 신뢰할 수 없어요. 정이 떨어질 뿐이에요. 그러니 그만둬요. 추해요. 이러면 이럴수록 내가 멀어진다는 걸 왜 모르죠?

 

 

ㅋㅋㅋ 아,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하게 대사를 날려 줘야지~.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한 여자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아내. 어느 카페에서 두 여자는 만난다.

 

 

이럴 때 이런 대사가 오간다.

 

 

A(그 여자) : 이미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해요. 그러니 이혼해 줘요. 그게 당신한테도 좋잖아요.

 

 

B(아내) : (분해서 손을 부들부들 떤다. 그러다가 카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컵의 물을 그 여자에게 끼얹는다. 그러고 나서 반말로 말한다.) 결혼 생활이란 게 사랑만으로 유지되는 건지 아니? 니가 뭘 안다고 감히 나한테 이혼해라 마라 하는 거야? (침묵함...) 나는 절대 이혼 안 해. (아내는 계속해서 분하다.)

 

 

어휴~ 답답해. 이런 장면을 봤다면 나처럼 답답해 할 시청자가 많지 않을까.

 

 

그럼 B아내가 어떻게 말해야 나 같은 시청자가 시원할까. 바로 요렇게.

 

 

A(그 여자) : 이미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해요. 그러니 이혼해 줘요. 그게 당신한테도 좋잖아요.

 

 

B(아내) : 너 같은 여자들 만나러 다니느라 내가 좀 피곤한데 우리 짧게 끝내자. 혹시 우리 남편이 너한테도 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니?

 

 

A(그 여자) : (어리둥절하다. 침묵함...)

 

 

B(아내) : 나한테도 결혼 안 해 주면 죽는다고 해서 진짜인 줄 알고 나 결혼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 사귀는 여자마다 그런 말을 했더군. 그러니까 우리 남편 말을 다 믿지 마. 그리고 우리 남편이 싫증이 좀 많은 편이라 한 여자랑 오래 못 가. 그러니 일 년 이상 사귀고 나서 그때도 두 사람이 지금과 똑같은 마음이면 그때 다시 나한테 연락해. 그때 이혼해 줄게. (일어선다.) 아,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남편한테 확인하려 하면 아마 아니라고 잡아뗄 거다. 그 말을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너의 자유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도 내가 알 바 아니야.

 

 

(B는 A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거짓말을 한 것임.)

 

 

ㅋㅋㅋ 아,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하게 대사를 날려 줘야지~.

 

 

 

 

 

2.

내가 드라마 작가라면 이렇게 대사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대사를 썼다간 그 드라마가 망하겠지. 밀고 당기는 게 없어 재미가 없을 테니까. 아니다 망할 일은 일어나지 않겠다. 난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나니, 시원하게 날린 대사를 받는 쪽이 아프겠구나 싶다. 또 삼각관계에선 어느 한 쪽은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은 탈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런데 자신이 탈락을 할 것임을 알게 되면 시간을 길게 끌지 말고 어느 순간엔 포기해 버려야 현명하다. 포기하지 못하고 이룰 수 없는 일을 오래 잡고 사는 건 나중엔 후회할 일이 될 뿐이다.  

 

 

탈락하게 되는 사람이 누가 되든지 그에게 응원의 말을 하고 싶다. 그 일로 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라는 말로. 사랑은 또 찾아올 수 있다, 라는 말로. 더 살아 보면 사랑은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라는 말로.

 

 

 

 

 

3.

‘따로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랑이 어디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인가.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자신의 노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 어리석음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심리학자만큼 인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

 

 

 

 

심리학자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경험하며 스스로 터득하여 되는 것이다. 어떤 이론도 심리적 신비를 푸는 열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 심리학자가 되려면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불행을 경험해야 하고, 야만인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세련되어야 하고, 사막에서 살고 있는지 불구덩이에서 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절망해야 한다.

 

- 에밀 시오랑 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221쪽.

 

 

 

 

“심리학자가 되려면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불행을 경험해야 하고, (…) ”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군대에서 충분히 힘든 생활을 했다면 편안한 생활이 뭔지 이해하게 되고, 군대에서 충분히 불행한 생활을 했다면 행복한 생활이 뭔지 이해하게 될 것 같다. 마음의 지옥을 체험한 사람이 마음의 천국을 저절로 이해하듯이.

 

 

사람들은 대체로 실연당할 위기에 처하면 실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실연당해 보는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연당한 경험은 삶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다음의 글이 있다.

 

 

 

 

불행에 단련되어 있는 편이 오히려 불안이나 우연히 발생하는 괴로운 사고를 줄이고, 죽음의 고통을 완화하며, 괴로움을 억제한다.

 

- 에밀 시오랑 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209~210쪽.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불행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위태로워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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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3-1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언니도 드디어 드라마의 세계에 입문하셨군요!ㅋㅋ
사실 드라마의 묘미는 대사 받아치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느 대목에서 싯적이며, 의미있는 대사를 어떤 인물이
구사하게 만드느냐에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주인공급이 하지만요.
그 대사 과잉의 제왕은 아무래도 김수현 작가인 것 같은데 흔히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춰주긴 하지요. ㅋ

그런데 저 에밀 시오랑 굉장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읽어 볼까 하다가
읽다가 우울해지면 좀 힘들 것 같아 말아버렸는데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3-17 15:49   좋아요 0 | URL
ㅋㅋ 입문이라니요?
요즘 재밌는 드라마를 못 만나서 김수현 작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주말드라마만 보고 있어요. 작가의 통찰에 감탄하며 봅니다.

1. 아이의 새엄마로 들어온 여자가 연기를 잘 해서 재밌어요.
외동딸로 자라서 버릇이 없고 형제가 없이 자라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르죠. 또 피아노를 전공해서 인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인지 아이(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지요.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연민을 가지고 볼 줄 모르고 엄마만 찾는다고 못마땅해 하지요. 아이로선 당연한 것인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지라...

2. 버릇 없이 커서(형제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도 없어서) 자신이 화가 났을 때 그것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지요. 형제라도 있었으면 최소한 양보, 자제, 라는 걸 배우고 컸을 텐데요.

3.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사회에 전재산을 기부해서 신문에 사진이 나오기도 하는데 아마 그는 과시욕을 즐기고 권위적인 듯해요. 김수현 작가는 이미 통찰한 것이지요. 사회에 전재산을 기부한다고 해서 인품까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4. 재벌집으로 이혼녀가 며느리로 들어가는 게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는지 결혼식 올리자마자 이혼한 남자(준구 역)를 만든 걸 보고 역시 김수현이구나, 했어요. (준구도 재혼이었죠.)

5. 시어머니가 아무리 며느리가 밉더라도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혼시키고 나면 결국 가장 피해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손녀라는 것, 명쾌한 교훈이에요.

6. 김수현 작가의 탁월함은 이혼과 재혼이 많은 요즘, 이혼과 재혼의 가장 피해자인 아이에게 초점을 두고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를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단순함에서 의미심장함을 발견하는 장면이지요.)
아직 이런 드라마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획기적이죠. 감탄! 감탄!

..........................
문학뿐만 아니라 드라마(대중예술이니까)를 포함해 모든 예술은 수학적입니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은 필수라는 점에서요.
(쓰고 보니, 길다...) ㅋㅋ
 

 

 

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때 어떤 글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것을 작가가 한 문장으로 나타낸 글.

이런 글을 쓰다니,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글.

고여 있는 내 생각을 한 번 흔들어 주는 글.

책을 읽다가 읽기를 멈추게 만드는 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글.

밑줄을 긋고 싶게 만드는 글.

어디에다 적어 두고 싶은 글.

생각에 자극을 주는 글.

나도 써 보고 싶은 글.

글감을 주는 글.

외우고 싶은 글.

 

 

위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글 중 하나를 소개한다.

 

 

화가 지망생인 필립이 클러튼에게 “저 말야. 와서 내 그림 좀 봐주지 않겠나? 의견 좀 듣고 싶네.”라고 말하자, 클러튼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그림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겐 중요하네.

 

아냐,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건,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그건 마치 우리 신체의 기능과 같아. 소수만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네. 그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 비평이란 화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세.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화가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04쪽.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05쪽.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여기서 ‘그림’을 ‘글’로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되겠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말이겠다. 이런 글을 읽고 나니, 누군가가 자기 글이 어떤지를 봐 달라고 할 때 곤란해지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방법이 있구나 싶다. 

 

 

....................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건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글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쓰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야. 그건 마치 우리 신체의 기능과 같아. 소수만이 그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쓰네. 쓰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 비평이란 글쓴이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세. 비평이란 객관적인 판단인데, 객관이란 글쓴이와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우리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생각은 시간에 따라 변하므로 확신할 수는 없겠다. 다만 이 순간에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은 게 아닐까 하고. 그러므로 글을 쓴 뒤에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쓴 글을 모아서 책을 낼 필요도 없겠다고.

 

 

글을 쓰면서 얻을 건 이미 다 얻은 게 아닐까 하고.

 

 

여러분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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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는 평론가를 거추장스런 존재로 생각하죠.서머싯 몸도 그랬고요.소설도 못 쓰는 주제에 이러니 저러니 우리를 비평한단 말이냐! 하는 반감입니다.<서밍업>을 보면 몸 특유의 독설로 평론가들을 발가벗겨 놓죠.

페크pek0501 2014-03-15 15:06   좋아요 0 | URL
ㅋㅋ 작가와 평론가가 앙숙인 경우가 많죠.
평론가들은 알고 보면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평론의 분야로 돌린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는 부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듯...
사람의 능력은 각각 다를 뿐이니까요. 창작 쪽으로 역량 있는 소설가도 비평 능력은 없는 경우가 있을 터이니...

좋은 주말 보내시길... ^^
 

 

 

1. 3월이 되었다. 새 달이 시작되어 기분이 좋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흐르는 시간에 대해 저항감을 느꼈다. 나이 드는 게 싫은 거지. 아니 겁나는 거지. 그 이유는 늙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요 정도의 그릇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늙어도 괜찮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점은 애들이 클수록 내 시간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편안함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늙을 수 있다면 할머니가 된들 어떠하랴. 젊기를 바라지 않는다.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2.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벌써 밤이라니, 자기 싫은데.’라고.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본다.

 

 

....................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드디어 하루를 활짝 열어 주는 아침이구나.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네.’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드디어 하루를 닫는 밤이구나. 잠을 자는 휴식은 언제나 달콤하지.’라고.

....................

 

 

좋은 쪽으로 반복해서 생각하면 실지로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는 사람이 나중엔 거짓말인 줄 모르고 실지로 참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아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런 걸 알면서도 나는 내일 아침에도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법이니까.

 

 

 

 

 

 

3. 이처럼 인간은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좋은 글이 많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해 버린다면 이 책을 읽은 효과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 따로국밥처럼 내 마음 따로, 이 책의 내용 따로 분리해서 읽지 말아야겠다고. 이 책의 내용을 흡수하여 머릿속에 확실하게 입력해 놔야겠다고.

 

 

이런 생각으로 다음의 문장에 밑줄을 쳤다.

 

 

자존감을 가질 것.

 

 

강한 자존감은 당신이 전쟁에서 포로가 됐을 때 비굴해지지 않도록 해 줄 것이고, 세상에 맞서 싸울 때 당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_버트런드 러셀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1등이 아니어도, 빼어난 외모를 갖추지 못했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다면 건강한 자존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34~35쪽.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 것.

 

 

너무 착하게 굴려고 하거나, 너무 정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느라 진을 빼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_도미니크 로로, 『지극히 적게』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79쪽.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준다는 것.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은 치유될 수 있다.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주고, 생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며 , 우리를 재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딱지가 벗겨져야 새살이 돋는다. _마크 마토우세크, 『상처와 마주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09쪽. 

 

 

작가에게 필요하다는 통찰력. 그런데 고통이 통찰력을 준다는 것.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비바람을 견딘 잡초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글을 더 잘 쓰겠군.

 

 

 

고통은 통찰력을 준다니까 큰 고통을 겪게 되면 저축을 한 셈 치자.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또 ‘이런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앞으로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더라도 두 번째는 쉬울 거야.’ 하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이런 게 저축인 것이다.

 

 

 

 

 

 

4. 최근에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었다. 그래서 운동하러 밖에 나가지 못했다. 되도록 시장이나 슈퍼에 가는 것을 삼갔다. 햇볕을 쬐지 못했다. 실내 환기를 하지 못했다. 창문을 열고 청소하지 못했다. 이불을 털지 못했다. 음식 냄새가 날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마른 빨래들을 개킬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더러운 공기 때문에 사는 게 참 불편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미세먼지로 인해 내 삶에서 맑은 날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 하나 추가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좋은 일일까.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는 톨스토이의 말.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가치 있게 사는 도구로 상처를 이용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49쪽.

 

 

톨스토이의 말을 날씨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겠다.

 

 

‘인간에게는 더러운 공기가 있는 날이 필요하다. 더러운 공기가 없다면 맑은 공기를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더러운 공기가 있기에 맑은 날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해도 좋으니 미세먼지가 없으면 좋겠다. 공기가 언제나 맑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쁨을 느끼는 날’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날’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도 행복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쪽이다.

 

 

맑은 공기를 내뿜는 공장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날은 오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스마트 폰과 같은 기기의 발명 대신 건강에 이로운 발명을 기다린다.

 

 

 

 

 

 

5. 신간을 다 구입해 볼 순 없지만 어떤 책이 출간되었는지,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책인지, 어떤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 책인지 정도는 알고 지낸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책 정보를 얻는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좋은 평가를 받아서가 아니고 깨달음이 담겨 있어서도 아니고 재미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구입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 만족했다. 

 

 

 

 

 

 

 

 

 

 

 

 

 

 

 

 

 

 

 

 

 

6. 지나간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행복한 줄 몰랐다. 지나간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왜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여겨지는 것일까.

 

 

서머싯 몸은 그것을 이미 간파해서 이런 글을 썼다.

 

 

마침내 그는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석 달 동안 그는 오직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15쪽.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

 

 

 

 

 

 

7. 알라딘의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밖에 나가 엠피쓰리로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9년이 되어 간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미세먼지가 있는 날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내의 자전거로 운동을 한다. 운동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이 두 가지에 습관의 노예가 된 것이다. 이런 노예라면 되어도 좋지 않은가.

 

 

사제는 흡연을 혐오스러운 습관이라 생각해서, 사람이 습관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틈만 나면 말했다. 자신은 오후에 차 마시는 일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먹은 모양이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30~231쪽.

 

 

조금 전에 잠을 자러 침대에 누웠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을 때만 해도 졸려서 잠이 오겠구나, 했는데 막상 잠을 자려니까 잠이 오지 않는 거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커피를 마신 거였다. 커피를 마시고 잠을 청하다니. 쯔쯔... 아, 나도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구나. 생각 없이 그냥.

 

 

그러고 보니 나도 습관의 노예라고 할 만한 게 꽤 있네.

 

 

(그런데 습관의 노예, 라는 말을 서머싯 몸(1874년 출생)이 자기 작품에 이미 써 놨잖아. 어마! 그렇게 오래된 말이었나.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8. 나는 어릴 땐 수줍음이 많아서 '제발 나에게 관심 좀 갖지 말아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고모가 놀러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예뻐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줍음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수줍음이 남아 있어서인지 지금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옷을 살 때도 튀지 않는 옷을 고른다. 이런 내가 블로그에 공개적인 글을 쓰다니 아이러니다. 나의 성향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는 내 삶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9. 남의 서재에 들어가 글을 읽다 보면 어느 한 쪽으로 깊게 들어가서 쓴 글이 있다. 그런 글은 자신이 경험하기 전엔 쓸 수 없는 글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의 글이 되기 쉽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뭘 먹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가 아니라 ‘뭘 읽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재능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겠지만. 

 

 

 

 

 

 

10. 얼마 전, 한 권의 책에 대해 페이퍼로 쓴 어떤 알라디너의 글을 보고 감탄해서 초면?인데도 댓글을 남겼다. 책 한 권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었는데, 내가 “추천을 백 번쯤 누르고 싶은 글이지만 한 번만 누르고 갑니다. ^^”라는 댓글을 남겼던 것. 책의 저자를 비판하면서도 겸손의 미덕이 느껴지는 그의 글이 아주 맘에 들어 세 번 읽었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글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 마음의 자세가 고스란히 글에 담기기 때문이다.

 

 

가끔 글의 그 정직함 때문에 글 쓰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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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3-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알라딘에 글 쓴지가 벌써 5년이 되셨나요?
저하고는 인연이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ㅋ
9번에 관해서는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유독 정말 공감을 많이하며 읽게되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정말 마음의 옷을 벗고 정직해지고 싶어지죠. 언니의 말씀에 동감이어요.
또 그만큼 그런 책을 골라낼 줄 아는 감식안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ㅠ
저 마지막 글월에 동감하는데 그래서 글 쓰기는 제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요.;;

페크pek0501 2014-03-07 12:09   좋아요 0 | URL
저, 이제 신참 아니에요. ㅋㅋ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아마도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에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을 거예요. 그런 작품으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결론도 가능하죠.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독서의 편식이 어떤 면에서 좋다고 봐요. 전문성을 갖출 수 있으니까. 어떤 한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많이 읽었다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강점이 될 수 있단 뜻이에요.

10번에서 글의 정직함... 어떤 글은 아름다움이나 착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글쓴이의 오만함이 담겨 있더라고요. 물론 자신은 모를 거예요.
그래서 글쓰기가 두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나의 어떤 면을 독자는 알게 되는 그 정직함 때문에
글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가 될 것 같아요. ㅋ

세실 2014-03-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운동을 한지 9년.....좋은 습관 가지셨네요.
노는 날 늦은 오전에 운동 나가면 참 좋던데...저녁엔 혼자 운동하기에는 좀 무서워요.
저는 중3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뒤...그때부터 좋을거 같아요. 자유시간이 많아질테니....
어제 퇴근하는데 몸이 참 무겁더라구요. 졸립기도 하고.... 하루 1시간 40분의 운전이 막 피곤해지는 목욜이었습니다. 그럴땐, 전업주부가 참 부러워요. 자고 싶을때 잘 수 있고, 쉬고 싶을때 쉴 수 있는.....퇴직해야 그 시간이 가능하겠지요. 아...비루하여라~~
올해가 가기전에 님이랑 꼭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3-07 12:13   좋아요 0 | URL
걷는 운동은 제가 소화 불량에 잘 걸려서 의사와 상담하니까 몸을 많이 흔들어 주라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필요에 의해 시작한 게 습관이 된 거죠.

제가 학생들을 십 몇 년을 가르치면서 전업주부들이 부러웠다는 거죠.
얼마나 팔자가 좋으면 자신이 돈을 벌지도 않고 돈을 쓰기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건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그랬다는 거죠.

저는 매일 출퇴근도 아니고 그것도 오후 수업만 맡아 할 생각이기 때문에(앞으로 쭈욱~) 전업주부가 누릴 수 있는 아침잠의 자유 같은 것이 있어요.
어느 학교에서 토요일 오전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사양할 거예요. 일찍 나가는 게 왜 그리 싫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올해에 님과 꼭 커피 마시고 싶어염. ^^
 

 

 

1.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저자, 내가 기대하는 책의 저자이다. 아니, 이미 팬이 많아서 애독자들이 기대하는 저자의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개정판이다.)

 

 

 

.....................

내 생각에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물음’을 키워주는 책이다. (…)

 

그래도 산다는 일이 때때로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쓰린 마음에 소금이 뿌려져 그야말로 소금밭이 되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움큼의 투명한 소금이야말로 가혹한 비바람과 격렬한 태양 아래서 마술적으로 응결된 것, 아니 단련된 것. 사각형의 책들을 순례하면서, 나는 사는 일을 경쾌하게 긍정하는 연습을 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그 질문의 뿌리는 어디일까. 가끔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저자의 말’ 중에서.

.....................

 

 

 

“내 생각에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물음’을 키워주는 책이다.”

 

 

 

맞는 말이다. 답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다. 글쓴이가 다수의 독자들보다 더 현명한 답을, 가장 현명한 답을 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답을 독자에게 맡기는 편이다. ‘단상(81)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될까, 안 될까’라는 글도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독자 스스로 판단하라고 맡기고 내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글을 끝냈다.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므로.

 

 

 

 

 

 

 

 

 

 

 

 

 

 

 

이명원 저,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책 읽는 것이 업이고, 취미이고, 즐거움’인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이명원이 선택해 읽은 80여 권에 대한 감상을 엮은 독서 에세이.

까칠한 비평가의 고품격 독서 에세이.

김애란, 김훈, 이문열, 이외수, 황석영에 속 시원한 돌직구를 날리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

 

 

 

이 책의 소제목들이다.

 

 

 

낙서의 아이러니

괴물은 보이지 않는다

아, 포장마차

아버지와 『진보정치』

누이 콤플렉스, 어떤 글쓰기의 기원

내 안의 소금밭

주마간산 책읽기의 묘미

시적 비전과 산문적 폭력

기묘한 아이러니를 가진 흥미로운 에세이

문체와 성정

네 꿈을 펼쳐라

‘파리 올레’를 걷는 사색자

뻐근한 슬픔, 성숙한 소설

발로 차주고 싶은 아쿠타가와상

상처로 빚어진 언어의 연금술_J형에게

심청의 섹스문화 탐사기

가족 파시즘

팍팍한 삶, 뻐근한 감동

잘 만들어진 고통

 

 

 

 

이 소제목들이 맘에 든다. 어떤 글일지 궁금할 만큼.

특히 밑줄을 친 소제목들은, 내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맘에 드네.

 

 

 

이런 제목으로 바꾸어 쓰고 싶기도 하네. 

 

 

 

<내 안의 소금밭>을 <내 안의 콩밭>으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것. 내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다는 뜻.)

<발로 차주고 싶은 아쿠타가와상>을 <발로 차주고 싶은 문학상>으로.

<팍팍한 삶, 뻐근한 감동>을 <뻐근한 삶, 뻐근한 감동>으로.

<잘 만들어진 고통>을 <잘 만들어진 불행>으로.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을 넣어서 쓴 에세이겠다. 아마 글 한 편에 책 한 권의 이야기를 넣었겠다.

 

 

 

 

 

2.

이와 비슷한 형식의 책이 있다. 글 한 편에 영화 한 편의 이야기를 넣어서 쓴 에세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다. 정이현 저, <풍선>이다. 

 

 

 

 

 

 

 

 

 

 

 

 

 

 

정이현 저, <풍선>

 

 

 

 

.....................

‘이런 사랑도 있다’라는 <밀양>의 메인카피가 일종의 사기라는 쑥덕임을 들었다. 흥행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겠으나, 영화의 주제는 종교적 구원과 용서에 대한 것이지, 포스터 사진이 풍기는 이미지처럼 남녀 간의 은밀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아니, 이게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러브스토리란 말인가. 동시에 마주 보고 동시에 입 맞추고 동시에 충만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완강한 등을 보며 비틀비틀 가야 하는 사랑, 보답받지 못해도 애걸할 수 없는, 그런 사랑도 사랑이다. <밀양>은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질문하는 영화인 한편,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도시 밀양의 속물 김종찬이라는 남자의 고통스러운 사랑을 묵묵히 응시하는 영화다.

 

종찬의 감정이 일종의 허영에서 출발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서울에서 온 신애는 컬러링조차 세련된, 분명 밀양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존재이니까. 그러나 그 여자가 겪어내는 무시무시한 고난을 내내 함께하고, 그 처절한 내면을 어떻게든 쓰다듬어 주려 안간힘 다하는 종찬의 사랑은, 어떤 순간 스스로의 중력으로 허영의 벽을 뚫고 우뚝 선다.

 

- 정이현 저, <풍선>, 38~39쪽.

.....................

 

 

 

이 정도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을 수 있는 능력, 훌륭하다. 나도 <밀양>이란 영화를 봤기에 작가의 감상에 동의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

이 두 권의 책으로 글 쓰는 방식을 배워야지.

글의 내용만큼이나 글의 형식도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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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3-03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한 비평가의 고품격 독서 에세이'에 확 끌립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라는 제목도 묘한 매력이 있어요^^ 소금은 이효석 문학관 뒤뜰의 메밀꽃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4-03-0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댓글을 쓰시다니...
저는 6시 30분에 일어나 고딩의 새벽밥을 차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고품격 에세이... 저자가 읽은 책과 생활 이야기를 어떻게 버무렸는지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듯...

오늘 네이버 양에게 알아봤더니 날씨 맑음, 이래요.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란 거죠. 미세먼지로 일주일을 고생했더니(실내 환기도 못하고) 별 게 다 기쁘네요. ㅋ
햇볕 쐬며 한 시간 이상 걸을 예정이에요. 님도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햇볕 많이 쐬세요. ^^
감사...

아이리시스 2014-03-04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님은 제 글 없는 2월에 절 찾아준(!) 아니다, 다른 분들도 찾아오긴 오셨는데 댓글없이 그냥 가셨던것 뿐이겠죠? 어쨌거나 절 찾아주시고 안부까지 물어주신 유일한 분이세요. 저 다녀갑니다..

글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는 말씀 새기며..^-^
저는 이제 칼국수 먹으러 갑니다. TV앞에서 죽순이노릇도 좀 하고..

페크pek0501 2014-03-06 13:52   좋아요 0 | URL
호호~~ 제가 그렇게 기특한 일을 했군요. 아이 님이 보고 싶어나 봐요.
아, 칼국수 맛있겠다. 어제 저는 저녁으로 김밥을 만들어 먹었지요.
식구들이 맛있게 먹었다는 후문입니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젊은 남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 어디서 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다만 그가 친절한 미소를 띠고 내게 말하던 모습만 생각났다. 몇 분 뒤에 그를 어디서 봤는지가 기억났다. 동네 백화점의 지하에 있는 작은 여행사에서였다. 기차표를 예매하러 갔을 때 그가 나를 상담해 준 직원이었던 것.

 

 

 

어째서 그를 만난 장소라든지 그의 직업은 생각나지 않고 미소 띠고 내게 말했던 그 이미지만 생각나는 것일까. 유아들은 눈으로 보는 것 모두를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이미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에겐 이미지로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 어떤 사람을 어디서 본 것 같을 때 마치 카메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며 그 이미지만 기억나는 것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니 잘 삐지는 사람은 손해다. 누군가의 뇌리에 삐진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으므로.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손해다. 누군가의 뇌리에 화가 난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으므로. 분명히 그들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을 텐데 그 장점이 그 각인된 이미지에 가려 버리는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당신은 지인들로부터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

나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을까?

떨리네.

앞으로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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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3-0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따뜻하고 정갈한 이미지이실듯^^
느낌 아니까~~~

페크pek0501 2014-03-02 12:44   좋아요 0 | URL
어머, 그렇게 좋게 봐 주시면 어떡해요?
제가 기분이 무지 좋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