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을 하나 추가했더니 바쁘다. 글을 써서 올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이웃 서재의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냈다. 이렇게 바쁜 건 싫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바쁨의 장점이다. 어쩌면 그 맛에 바쁨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쁜 일을 끝내고 나서 느끼는 휴식의 달콤함이 나는 좋다. 무지 좋다. 마치 어떤 날 샤워하긴 귀찮지만 샤워를 끝내고 나서 느껴지는 상쾌함이 좋은 것처럼.

 

 

바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글씨가 빼곡히 찬 노트에서 어쩌다 만난 빈 페이지처럼 별다른 일이 없는 빈 시간이다. 물론 빈 시간이 늘 이어진다면 이런 시간이 좋을 리 없다. 바쁜 자만이 빈 시간의 매력을 아는 법이다.

 

 

모처럼 만난 빈 시간에 이 글을 쓴다.

 

 

 


1.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니 밀란 쿤데라는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무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만약 당신이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같은 편에 설 수 있으리라.

 

 

<무의미의 축제>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툭 툭 끊어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게 읽혀진다. 이야기가 주는 흥미는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6쪽.
....................

 

 

명절 스트레스로 추석 뒤에 이혼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는 실제 파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명절이 있는 달의 이혼신청 건수는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높았다”(경향신문, 2014. 09. 18.)고 한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 이것은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명절에 대해 진지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가 어떤 불행한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경우에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도 알고 보면 진지한 태도 때문에 생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명절을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나의 경우, 한가롭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바쁘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바쁠 땐 그만큼 명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마음이 좌지우지하는 정도도 약할 수밖에. 

 

 

커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책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맛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커피를 다 마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에 마음을 빼앗겨서 커피를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명절을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아서 명절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명절을 싫어하듯이 사실 나도 명절이 싫다. 예전엔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대구를 갔다 왔는데 차가 밀려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곤 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KTX 열차를 타고 다닌다. 좌석표를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이고 입석표도 간신히 구해 타는데, 열차 안에서 두 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하는 명절이 즐거울 리 없다. 어디 그뿐이랴.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집에 갈 때까지 일을 한다. 2박 3일 동안 이렇게 보내야 하는 명절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며느리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내 몸이 고단하다고 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며느리인 내가 일을 해야지 누가 한단 말인가? 81세이신 시어머니만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집에 가서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시누이가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엌일에 서툰 남편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쨌든 시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어머니다. 시누이들도 자기 시집의 일을 끝내고 친정에 오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남편은?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돈벌이로 매일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이런 남편을 명절까지 부려먹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며느리로서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음식을 결국 내가 싸가지고 온다. 싸온 음식으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없이 산다. 그러니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시집에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 집에서 음식 만들며 보낼 시간을 시집에서 보낸 것뿐이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불만이 있다면 이 나라의 명절 문화에 불만이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명절이 다가올 즈음 바쁘게 살며 딴 생각에 몰두하기. 그래서 명절을 보낼 때 마치 소나기 한 차례 맞듯 가볍게 지나치기. 이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33쪽.
....................

 

 

중요한 것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 얼굴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내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지 등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이런 중요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들이네.

 

 

다음의 글도 주목해 볼 만하다.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2쪽.
....................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직업이 적합한지 알 수 없다. 뭐든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인데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일들을, 그 많은 직업들을 어떻게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다음의 글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표현한 대목으로 뽑는다.

 

 

....................
역사 속 서로 다른 지점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사람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고 라몽이 자기 이론을 피력했을 때, 알랭은 즉각 자기 여자 친구를 떠올렸는데, 정말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해도 서로 태어난 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의 대화란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그저 뒤얽힌 것일 뿐임을 여자 친구 덕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1쪽.
....................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네.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였다고.

 

 

....................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33쪽.
....................

 

 

 

 

 


 

 

 

 

 

 

 

 

 

 

 

 

 

 

 

 

 

 

2.
오래전 마르셀 프루스트 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권의 책으로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 4권으로 나와 있고, 국일미디어에선 전 11권으로 나와 있다. 프루스트를 알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흥미를 느끼면 그때 프루스트의 저작을 읽어도 될 테니까.
 

 

 

  

  

 

 

 

 

 

 

 

 

 

 

 

 

 

 

3.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프루스트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해 주는 책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분석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서 이런 제목들에 끌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작가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을 보게 된다. 프루스트의 렌즈를 통해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렌즈를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재미가 없다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재밌는 게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책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책은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만 있고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재미에 언젠가는 싫증나고 시시해져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있는데 그중 지혜를 얻는 것을 으뜸으로 치겠다.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말한 글이 있다.

 

 

....................

프루스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3쪽. 

....................

 

 

나는 이것을 변형해 이렇게 써 본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물론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보다 삶을 통해 직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가 더 낫다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역시 아픔을 직접 경험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오하고 더 필수적인 감정의 전 영역을 우리로부터 끌어낸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5쪽. 

....................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천재가 할 수 없는 일을 연인은 할 수 있다는 것. 호의적인 천재에게서 얻는 지혜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에게서 얻는 지혜가 더 깊다는 것.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 고통이 성숙하게 해 준다는 것.

 

 

다음의 글은 우정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프루스트는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어쩌면 그런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그 유대에 접근하기 때문이리라.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183쪽. 
....................

 

 

다음의 글은 사랑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Q :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A : 간통이다.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 말이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질투의 개입은 습관에 의해 망가지는 상황에서 관계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치명적인 동거의 단계를 이미 밟은 누군가를 위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와 살게 되면, 당신은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바라보기를 금세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분리된 원소가 질투에 의해서 재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235~236쪽.
....................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상대가 권태 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질투를 이용하라.’가 되겠다. 무엇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이 되면 그 무엇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니까.  

 

 

 

 

 


 

 

 

 

 

 

 

 

 

 

 

 

 

 

 

 

 

 

4.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읽으면 프루스트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도 밀란 쿤데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본다. 내가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이유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왜 필요할까?

 

 

‘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세종시. 그런데 신문에서 세종시 공무원들의 정신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든데 변변한 편의점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문화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생겼고 더러 자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방송되었던 김수현 극본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새엄마와 어린 의붓딸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자신이 친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왜 새엄마를 불쾌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새엄마 역시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둘 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미울 수밖에 없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있다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대답하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라는 깨달음을 많이 얻을수록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최소한 오해 또는 오판으로 생기는 문제가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어떤 정책을 세울 때도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같다. 세상이란 바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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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9-2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를 읽어보고 싶어요.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네요. 저는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중인데 이게 천천히 두 권씩 나오다 보니 앞에 줄거리를 항상 거의 다 잊어먹을 때쯤 다음 권을 읽게 되는 것이 큰 애로네요. 차라리 전권이 다 나왔을 때 제대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지막 페크님의 이야기,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2 21:25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그 긴 글의 여행을 시작하셨군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고 나면 큰 일을 하나 한 것처럼 뿌듯하지요.
저도 마음속에서 읽으려고 정해 놓은 책이 있는데 전 3권짜리예요. 그 이상은 자신이 없고 3권까지만 읽을 수 있어요.

세상에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눈다면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있는 사람`과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구세주되시겠습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도 시댁에 가서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니 내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페크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군요.

페크pek0501 2014-09-23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부처라고요? 헐... 입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노처녀 시누이는 없나봐요.모두 시댁에 가서 일하는 시누이만 있으니...

페크pek0501 2014-09-26 11:45   좋아요 0 | URL
예, 그래요. 시누이는 누나만 두 분인데 다 결혼하셨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시누이들은 손아래 올케를 예뻐하고 손위 올케는 잘 봐 주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남동생의 아내는 예뻐하고 오빠의 아내는 잘 봐 주지 않는다는 뜻.
우리 누나(형님)들은 저와 동서를 무지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게 느껴져요.
내 동생과 잘 살아줘서 고맙다, 하는 표정이거든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26 17:13   좋아요 0 | URL
페크 님은 시누이를 비롯하여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군요.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페크pek0501 2014-09-28 23:04   좋아요 0 | URL
ㅋㅋ 시댁 식구들이 워낙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세실 2014-09-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 사놓기만 했는데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단순하게 덜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죠.

페크pek0501 2014-09-26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책상 밑에 가득해요. 읽어야 책장에 꽂을 텐데...
그래도 사고 싶은 신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라고 할 만해요.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세실 님은 지혜롭게 자기 관리를 잘해 나갈 스타일 같아요.
님 같은 사람 보면 부럽죠...
 

 


......................................

멀어져 가는 쥘리의 엉덩이가 라몽의 머릿속에 삼 초간 다시 나타나면서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서글픈 구름 한 조각이 스쳐갔다. 그는 빠르게 잔을 비우고 내려놓은 다음 또 한 잔(네 번째 잔)을 들고 부르짖었다. “친구야, 딱 한 가지가 나한테 없다, 좋은 기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8쪽.

.......................................

 

 

 

행복한 삶을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라는 걸 알았네.

 

 

그것은 좋은 기분.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 만큼 큰 부자라고 해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권력과 명예를 가졌다고 해도 이것 하나 없으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네.

 

 

좋은 기분.

 

 

지금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좋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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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추석을 보내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시집에 갔다 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이, 시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내 마음이 다르다. 들어갈 땐 ‘명절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단하겠구나.’ 하는 마음이고, 나올 땐 ‘시집 식구들과 헤어지기가 섭섭하구나.’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2박 3일 뒤에 헤어질 때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로 했다. 시집에 들어갈 때 ‘시집 식구들과 헤어질 땐 섭섭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서 기분이 얼마나 다른지...

 

 

 

 

 

 

2.
2박 3일은 시집에서, 어제 하루는 친정에서 보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딸 노릇하랴, 며느리 노릇하랴 바빴다. 명절이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두 번이니까 할 만한 거지. 어제로 추석 연휴가 끝났다. 힘든 숙제 하나 끝낸 기분이랄까.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행복하다. 행복해 죽겠다.

 

 

 

 

 

 

3.
어울리지 않게 내가 맏며느리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딱 철없는 막내며느리가 어울리는데... 내가 맏며느리라고 하면 친구들이 웃는다. 그 웃음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랫동서가 시집온 그해, 부엌일에 서툴러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렇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

 

만약 동서가 미웠다면 “안 가르쳐 줘.”라고 내가 답했겠지만 심성이 고운 예쁜 동서라서 친절히 답해 줬다.

 

“자넨 나물이나 다듬고 있어.”

 

그런데 말이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라는 대사를 내가 읊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랫동서 자리가 나는 부럽다.

 

나는 맏며느리보단 막내며느리가 좋고, 대장보단 졸병이 좋고, 회장보단 비서가 좋은 사람이다. 재력가 회장은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 휴식 시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장이 시킨 일만 하면 되니까 머리가 복잡할 리 없다. 재력가 회장은 회사가 망하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기도 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사가 망하면 다른 데 취직해 버리면 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윗자리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랫자리가 좋다. 부담 없는 자리, 안전한 자리가 좋다. 그게 내게 맞는다. 옛날 왕의 가족으로 예를 들면 나는 왕이 되기보단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뭐하러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하는 왕의 자리를 탐내나, 하는 생각이다.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면서 술이나 마시고 시나 읊으며 사는 게 좋지, 하는 생각이다. 권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땀이 싫다.

 

 

 

 

 

 

4.
추석 전날, 남자 셋이 당구를 친다. 한 남자가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남자 1 : 미안한데 나 먼저 가 봐야겠다. 마누라는 집에서 일만 하는데 늦게 들어가면 화내지 싶다. 그리고 자형들이 와 있대.


남자 2 : 니는 마누라도 있노? (남자 2는 이혼했음.)


남자 3 : 니는 자형도 있노? (남자 3의 누나는 이혼했음.)


남자 2 : 먼저 갈 거면 마누라도 있고 자형도 있는 행복한 놈이 돈 내고 가라.


남자 1 : 하하~~ 알았다.

 

여기서 ‘남자 1’이 내 남편이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들려준 이 얘기에 우리 시집 식구들 모두 웃었다. (근데 이거 웃어도 되는 일인가?)

 

 

 

 

 

 

5.
이번 늦여름은 유난히 길다.
낮엔 덥고 아침저녁으론 선선한 늦여름. 
낮의 더움이 저녁엔 물러나는 이 계절이 나는 좋다.
곧 ‘기다리고 섰는 가을’이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을 완전히 밀어내리라.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이 꼼짝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는 늦여름과 작별해야 한다.
아마 작별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어느새 우린 가을 속에 있겠다.
곧 그런 날이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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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9-1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가족끼리도 유대감을 갖기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자신의 아들은 누구의 사위가 됨을, 자신의 딸은 누구의 며느리가 됨을 이성적으로 알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죠. '시누이 가족이 곧 도착하니, 만나고 가라는 ...'

페크pek0501 2014-09-10 16:44   좋아요 0 | URL
하하~~ 딸이 온다며 며느리를 잡아 둔다... 그 며느리도 친정에선 딸인데 말이죠.
사위가 집안일을 하면 흐뭇하고 아들이 집안일을 하면 속상한 어머니들의 심리도 재밌지 않습니까?

hnine 2014-09-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전날 음식 만드느라 앉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묻더라고요. "나는 뭘 하면 되나?"
남편 얼굴 쳐다보지도 않고 목소리 깔고 대답했지요. "찾아서 해" ㅋㅋ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는 말, 딱 그 기분이예요. 전 힘들고 길 막힌다고 친정에도 안갔어요. 다음주 일요일에 간답니다. 이해해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고맙지요.
저도 막내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맏며느리랍니다 ^^

페크pek0501 2014-09-11 11:22   좋아요 0 | URL
아, 남편 님이 참 좋은 남편이시네요.
숙제를 마친 기분... 님도 공감하시는군요. 속이 다 시원해지더라고요.ㅋㅋ
아마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실 거예요. 며느리들보다 더 힘든 사람이 시어머니들일 것 같아요. 며느리가 오기 전까지 장을 다 봐 놓고 웬만한 것은 다 손질해 놓으시니까 명절 때마다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정말 어깨가 가벼운 막내며느리이고 싶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9-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남과 맏며느리는 아무래도 권리보단 책임이 더 무겁죠.사장이나 왕은 책임보다 권리가 더 많고요.그래서 맏며느리 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진 않지만 사장이나 왕은 서로 하려고 박터지게 싸우지 않습니까.

페크pek0501 2014-09-11 11:25   좋아요 0 | URL
하하~~ 재밌게 쓰셨습니다. 맞는 말씀 같네요.
맏며느리들은 어깨가 무겁답니다. 그래서 맏며느리가 아닌 사람을 부러워하죠.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으로 일하고 왔습니다.^^
저는 맏며느리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세실 2014-09-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남이 싫어 둘째랑 결혼했는데 시댁 옆집에 사는 덕분에 장남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랑이 집에 고장난거 고쳐드리기, 벌초할때 진두지휘하기. 저는 일주일에 한번 찾아 뵙기, 명절에 수시로 들락거리기....
다행히 아직은 두분 건강하셔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합니다.
시골 도서관장은.....좋은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4-09-12 15:05   좋아요 0 | URL
으음~ 세실 님은 착한 며느님일 듯...
저랑 반대네요. 님은 둘째면서 맏며느리처럼 사시고
저는 맏며느리인데 둘째처럼 살고... 동서와 나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지방에 사시는 어머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해요. 어머님과 가까이 사는 두 누나들이 어머님을 보살피고 있는 형편이죠.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도 누나들이 수고를 한답니다. 그래서 미안하죠.

도서관장님 자리는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여요. 오너는 아니니까 망할 염려가 없고 권위와 명예는 님의 손에 쥐고 있는 것 같고... ㅋㅋ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회장직보단 비서직을 좋아하지만 비서보단 회장과 친하게 지내길 좋아한답니다. 큭큭 ...

오늘 꼭 참석하라는 세미나가 있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갔다 왔는데 어찌나 멀던지 올 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집에 와 씻고 나니 상쾌해지네요. 세실 님을 보니 더욱... ^^

마태우스 2014-09-1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랫사람으로 사는 게 좋아요 윗사람의 자질이 제겐 없더라고요. 시댁식구와 헤어지는 게 서운할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전 남자라서 그런 걸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댁은 힘든 거 아닌가요. 음식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피곤한... 제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요. 암튼 힘 내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화이팅.

페크pek0501 2014-09-17 10:32   좋아요 0 | URL
으음~~ 언제부턴가 제가 친구들을 만나면 쫄병이 되어 있더라고요.
뭐든 하자는 대로 하고요, 좀처럼 의견을 잘 내지 않아요. 분명히 예전엔 안 그랬는데 말이죠.
저는 시댁 식구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해요. 며느리들을 잘 배려해 주는 시댁인데, 그것에 비해 며느리 역할을 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 님은 여자 세계를 많이 아시는 것 같아염...
저도 파이팅!!!!!!!!!!
 

 

 

오늘 아침, 침대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침대 옆에 있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펼치니까 이런 글이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네.

 

 

....................

“ (…) 어떤 여자가 맞은편에서 오는데 마치 세상에 저 혼자인 것처럼 왼쪽도 오른쪽도 안 보고 그대로 전진하는 거야. 둘이 부딪쳐. 자, 이제 진실의 순간이야. 상대방한테 욕을 퍼부을 사람이 누구고, 미안하다고 할 사람이 누굴까? 전형적인 상황이야.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드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경우 너라면 사과할 것 같아 아니면 비난할 것 같아?”


“나라면 분명 사과하겠지.”


“아이고, 이 친구야, 너도 사과쟁이 부대에 속한다는 거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런데 착각이야.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57~58쪽.

....................

 

 

 

사과를 하는 건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히는 것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자기한테 욕을 퍼붓게 만드는 것이란다.

 

 

이 글을 읽으니 말에 담긴 속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말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어떤 뜻이 담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본다. 오랜만에 만난 두 남자. 이런 대화가 오간다.

 

 

A : 오랜만이야. 언제 만나 소주나 한잔 하지.
B:너는 아직도 소주냐? (웃으며) 우리 나이가 몇인데...

 

 

B가 별 뜻 없이 한 말처럼 말했지만 A는 기분이 상한다. 그 말에서 속뜻이 저절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소주냐? 우리 나이가 몇인데... 이젠 몸을 생각해서 양주 같은 고급 술을 마셔야지.”라는 말로 A는 들었다. 그것은 B가 소주를 먹는 사람들을 자기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구분하고 자기는 그런 부류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로 B가 평소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가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른 예.

 

 

“당신이 좋아지면 어떡하죠? 그러니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요.”

 

 

이 말엔 상대가 좋아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좋아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앞으로 당신이 싫어지면 어떡하죠?”

 

 

이 말엔 상대가 싫어지고 있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싫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을 못한다.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이 글은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만 좋고 그동안 써 온 글은 좋지 않다는 뜻.

 

 

“이 글도 좋네요.”

 

 

이 말은 이 글도 좋고 그동안 써 온 글도 좋다는 뜻.

 

 

내가 어느 댓글에서 “오늘 비가 와서 참 좋아요.”라고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이 말은 내가 비 피해로 인해 생기는 수재민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나타낸 듯싶어서다. 그래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아, 어려운 말말말!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말을 하기도 글을 쓰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후기)......................................

 

- 우연히 책을 펼쳐 밀란 쿤데라의 글을 본 오늘, 그 글로 인해 글 하나 올리네.
- 난 사과쟁이가 아닌 사람보다 사과쟁이인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도 사과쟁이로 살고 싶네.
- 매일 새벽 1시 넘어 자고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야 하는 생활로 잠이 부족하네.
- 몸은 잠을 자고 싶다는데 몸이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정신이 이끄는 대로 글을 썼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네.
- 난 눈 오는 풍경보다 비 오는 풍경이 더 좋네. 앞의 글에서 비가 와서 좋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해 놓고... 그래도 이 말을 해야겠네. ‘오늘 비 한번 참 품격 있게 와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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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9-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 비교적 사회문화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겠지요. 영어 잘 못하는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That's too bad.' 대신 'I am sorry.'라고 하였다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법판결을 받은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의 말씀, 사실 여부는 모르겠고.) 비슷한 경우로 의료 분쟁의 경우 의사의 사과는 100%, 의사 책임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도의적 사과까지 하지 못했죠.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서양보다 동양, 우리나라에서 암시적인 언어를 많이 쓰니, 공감능력이 없는 남자는 여자들에게 핀잔을 받게 마련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04 13:42   좋아요 0 | URL
좋은 예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걸 알았더라면 좀 영양가 있는 글이 되는 건데 하는 생각... 이 듭니다. ㅋ

그래서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면 서로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겁니다. 목소리가 작으면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니 매너 좋은 운전자가 되긴 틀린 거죠. 이런 문화권에선...

공감 능력이 없는 남자...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센스가 부족한 건 사실 같아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조심하지 않으면 큰 다툼이 일어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명절!

페크pek0501 2014-09-04 13:43   좋아요 0 | URL
촌철살인이에요. 하하~~
저도 조심해야 돼요. 시댁에서 3일간...

마립간 2014-09-04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소드 한 가지가 더 생각나는군요. 미국의 한국동포 직장맘이었는데, 직장일을 끝나고 돌아와보니, 아이가 사고로 죽어있었습니다. 직장일을 하느라고 아이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 '내가 아이를 죽였어'라고 혼잣말을 하였는데, 이 혼잣말이 나중에 재판에서 살인의 유죄 증거가 되었죠. (아이를 혼자 놔두는 것은 아동학대죄이지만, 살인죄는 아닌데.) 한국 동포들이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함께 탄원서를 보냈지만 인정되지 않았죠.

페크pek0501 2014-09-04 13:46   좋아요 0 | URL
안타까운 일이군요. 언어습관이 인생을 망칠 수도 있군요.
저도 얼마나 실수를 많이 하는지, 말을 하고 나서 '아, 그건 실언이었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글은 수정하면 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수정하기 어려우니
신중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음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크아이즈 2014-09-04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보니까 생각나요. 몸을 이기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그 내공이 부럽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정신이 아닌 몸으로 글을 쓴다는 걸 느꼈어요.
꼭 써야 할 글이 있어서 붙들고 있으면 정신이 몸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필히 횡설수설하게 되더라구요. 그럴 땐 미련없이 관두고 쓰러져야 합니다. 몸이 글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약하기 그지 없는 제 정신력을 탓하곤 하지요.

말도 조심, 몸 언어도 조심... (나쁜) 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 게 아니며,(좋은) 말 한다고 다 칭찬하는 게 아님을 공기 중에 흐르는 분위기로 알 수 있지요. 그럴수록 몸과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어요.^^*

페크pek0501 2014-09-04 13:52   좋아요 0 | URL
1. 몸과 마음은 하나다, 이런 말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 저는 그 둘이 각각 따로 놀 때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팜 님도 그러시군요...
가령 오늘 같은 날, 몸은 사우나를 하고 싶은데 마음은 귀찮아서 사우나하러 가지 않거든요. 어떤 날은 몸은 잠을 자고 싶은데 그래서 졸리운데 마음은 할일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졸음을 깨거든요. 어떤 때는 몸이 이기고 어떤 때는 마음이 이깁니다.

맑은 하늘이 아름다운 날에 기분이 맑은 하루가 되시길...

마태우스 2014-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글구 저는 "이 글은 좋네!"라는 말이 "이 글도 좋네"보다 좋아요. 그 글만 유독 잘썼다는 말 같아서요. 막상 들으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넌 아직도 소주냐,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같이 안놀 거에요. 소주가 얼마나 좋은 술인데

페크pek0501 2014-09-17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서재에 소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도 잘하겠습니다.
이 글은 좋네, 라는 말이 좋으시다니 님의 겸손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군요.

ㅋㅋㅋ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혹시 양주만 마시는 교수님이 아니신지... 호호~~

마태우스 2014-09-17 11:37   좋아요 0 | URL
아니어용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고 저 정말 소주 좋아해요

페크pek0501 2014-09-21 21:05   좋아요 0 | URL
아, 성함이... 알고 있음...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ㅋ
 

 

 

1. 폰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 '스마트폰 소외족'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의 만남은 편리함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외출하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날씨가 흐려 비가 올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컴퓨터를 켜기 위해 도로 집으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갖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스마트폰이 편리하겠다. 나는 이와 같은 편리함을 취하고 싶을 뿐, 스마트폰을 컴퓨터 대용으로 쓰길 바라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주고받는 것, 지하철 노선 보는 것, 음악 듣는 것, 사진 찍는 것, 메모하는 것 등을 하겠지만 알라디너의 글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읽는다든지 할 때처럼 긴 글을 읽을 때엔 컴퓨터의 큰 화면으로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폰으로 인해 눈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많이 보면 눈물이 말라 노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30대 젊은 층의 노안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폰의 노예가 되지 않음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

 

 

 

 

 

 

 

2. 미묘한 심리 (1) : ‘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말하면 그건 기분이 상한다.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겠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존심이 상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런 인간의 심리가 재밌다. 이런 심리를 볼 수 있는 소설이 좋다. 그래서 소설을 즐겨 읽는다.

 

 

 

 

 

 

 

3. 미묘한 심리 (2) :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이 나를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다. 남편이 나를 짝사랑을 한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둘이 연애를 하게 되었고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될 분이 나를 신붓감으로 반대한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질 수 없을 때 더 갖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생겼다.
이름 붙여진 것은 각자 그 성질에 따라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이다.
실로 욕망을 영원히 벗어난 자만이 비밀스러운 본질을 볼 수 있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노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59쪽. 

 

 

욕망은 비밀스러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보게 만든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의 경우 시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다른 건 따질 것 없이 오로지 결혼해야 한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님. ㅋ 내 친구가 말했듯이, 딱 나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본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반대가 완강하진 않았다. 워낙 선량한 분이다. (지방에 사는) 우리 시어머니가 나를 반대한 이유를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서울 여자’라서 싫고 ‘잡지사 기자’라서 싫었단다. 드센 여자인 줄 알고... 나, 하나도 드세지 않은데...)

 

 

티브이 드라마에서도 흔희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신붓감을 데리고 왔을 때, 그 신붓감이 맘에 들지 않는 어머니는 오로지 두 사람을 떼어 놓을 궁리만 한다. 떼어 놓고 싶은 욕망으로 ‘떼어 놓음’의 결과만을 볼 뿐, 자신의 아들이 그 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이 행복하길 가장 바라는 어머니가 결과적으론 아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기억해 두기로 한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4. 사랑과 겸손의 관계 : 한 번쯤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한 번쯤 실연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긋나는 게 인생이다, 가 되겠다. 그러니 실연당했다고 해서 창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결혼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다행인 것이다. 만약 이성을 만나게 될 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도대체 누구랑 결혼해야 된단 말인가. 서로 좋아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는 건 절묘한, 신의 한 수.

 

 

여러분은 아시는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조심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화를 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사랑을 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평상시에 겸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요즘 ‘겸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생활에서도 글을 쓸 때도 겸손하고 싶어서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함이란 우리의 재능과 미덕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나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속에 부족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신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으며, 그분께서 주신 모든 재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대해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데 있다.
라코르데르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9쪽.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아는 것, 이게 중요하겠다.

 

 

이런 속담이 생각난다.

 

 

아랍 속담 :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34쪽.

 

 

 

 

 

 

 

 

 

 

 

 

 

 

 

 

 

 

 

 

 

 

 

5. 반해 버린 책 : 그저께 책을 읽다가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아, 잠을 자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책을 덮었다. 바로<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이란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감상할 수 있고 그의 글 쓰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을 전부라 여기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갈등과 대립이 생겼을 때, 각자가 자기 입장만이 옳다고 우기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연암의 우언寓言을 들어 보자.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 희지 않다 의심하네.
흑과 백이 각자 자기가 옳다 하면
하늘도 응당 그 판결 싫어하리.
「발승암기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53쪽.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다고 의심한다는 구절, 짧지만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글로 보인다. 연암의 글이다.

 

 

역시 연암이 쓴 다음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다. 어느 글의 첫머리라고 한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후유” 하고 한숨지으며 말했다. “쯧쯧! 자기에게 있으면서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했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사람과 비교하면 누가 나을까?“ 마침내 함께 청허聽虛선생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선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몰라.“  
「낭환집 서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2쪽.

 

 

이 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특히 연암은 대체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쟁을 걸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곧 연암의 글은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논쟁을 촉발하거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반성을 유도하거나 독자에게 흥미를 주려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 과감하고 분명한 논지를 제기하라는 것이 연암이 말하는 서두의 글쓰기 요령이다.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3~114쪽. 


 
이 책을 보느라 밤잠을 적게 잤는데 내가 왜 이렇게 책에 집중하며 살까, 생각해 보니 책을 친구 삼아 살게 된 게 습관이 되어서인 것 같다. 책과 친구가 되면 외롭지 않아 좋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일깨워 주는 글을 만났다.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친구가 없다고 탄식할 것 없이 책과 함께 노닐면 된다. 책이 없으면 구름과 놀이 내 친구고, 구름과 놀이 없으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하면 된다. 나는 갈매기가 없으면 남쪽 마을의 홰나무를 바라보며 친구 삼아도 되고 잎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해도 그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다.  
「선귤당농소」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2쪽.

 

 

아, 이 글도 좋다. 시기하는 친구나 의심하는 친구는 ‘친구 명단’에서 빼야 하는 거구나.

 

 

다음의 글 역시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멍청한 원님 앞에 사나운 백성들이 몰려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같고, 매미 소리는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는 서당에서 시험 일이 닥쳐 글을 소리 내어 외는 것 같으며, 닭 울음소리는 올곧은 한 선비가 자기 임무로 여기고 바른말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발끈해서 낯빛을 붉히고 손을 치켜들고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 자 모양으로 찡그리고 손가락은 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삐죽삐죽한 모습이 문득 대나무 모양이었다.  
「죽오기」竹塢記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4~75쪽.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 닭 울음소리에 대한 표현이 재밌다. 탁월하다. 

 

 

탁월한 글이 담긴 책을 탁월한 선택으로 구입했더니 밤잠을 덜 자게 만들어 그 다음날 몸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었네. 행복한 불평을 해 본다.

 

 

 

 

 

 

 

6. 깊게 파기 :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이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다. 자전적 소설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경험해서 잘 아는 것’을 쓴 소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7.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 : 9월이 오려고 한다. 9월이 늦게 왔으면 좋겠다. 9월이 오면 금방 가을이 될 것 같아서다. 며칠 전, 세 시 넘어 은행 일을 볼 게 있어서 집을 나섰다. 은행 일을 보고 나서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부근을 돌며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의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흐려서 낮인데도 마치 해 질 무렵처럼 느껴졌던 것. 걸으니 더웠다. 길을 지나다 어느 편의점 유리창에 아이스커피가 천 원부터, 라고 씌어 있는 걸 보았다. 갑자기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커피액에 얼음을 넣은 종이컵까지 포함하여 천 원밖에 하지 않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비싼 줄 알고 안 사 먹었잖아. 나,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네. 길에서 마시자니 교양 없어 보이는 나이인 것 같아 집에 와서 마시니 구수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의 맛에 행복하다. 천 원이 주는 행복에 취한 시간이었다.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것은. 

 

 

 

 

 


 

8. 위로가 되는 말 : 남에게 추천할 만큼 좋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 내용을 잊게 된다. 그래서 누가 그 책의 내용을 말하라면 말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생각한 것은 '책은 읽어서 뭐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서 인용했던 글은 잊지 않게 된다. 인용한 글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서 이것도 옮겨 놓는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마거릿 대처)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이렇게 인용하고 나면 이 말도 내 머릿속에 저장되겠지. 살면서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말이다.

 

 

기억해 두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쓴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내가 요즘 실패한 일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더 현명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믿어야지.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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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8-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결과만 본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를 수첩에 적고,
미묘한 심리(1),(2)에 완전 공감하며,
동네 한바퀴를 돌면 벼가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하여 드디어 가을이구나 하고,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참 좋아요. 페크님의 글을 읽는 시간이요.

페크pek0501 2014-08-31 12:22   좋아요 0 | URL
늘 제 글을 응원해 주시는 메리포핀스님께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잘 받으세요... ㅋ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 이 댓글, 참 좋군요... 저도 수첩에 적어야 할 것 같은데요...

stella.K 2014-08-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은 결혼을 하셨군요.ㅋ
여름의 끝을 부여잡는 요맘 때가 좀 애틋하긴 하죠.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은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름이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페크pek0501 2014-08-31 12:2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님아...
가장 좋은 결혼은 아니고... 평범해염...ㅋ

이 여름이 가는 건 아쉽지만 그래서 늦여름이 길어지는 건 좋지만
만약 다시 초여름으로 돌아가서 석 달이나 더워야 한다면 그건 싫으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늦여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초여름.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8-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간의 속물근성을 아주 신랄하고 냉정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연속으로 읽어보자고 결심하고, 모파상 모옴 헉슬리 이 세명의 단편 몇 편을 연속으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페크 님은 헉슬리 단편들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페크pek0501 2014-09-01 13:40   좋아요 0 | URL
흐흐~~ 헉슬리의 단편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단편을 썼다는 것도 몰랐네요.
논술에서 많이 출제되는 작품이 '멋진 신세계'라서 헉슬리를 알게 되었죠. 논술에선 조지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이죠.
모파상의 단편집은 읽었고 제가 어느 페이퍼에서 인용도 했어요.
모옴은 장편만 여러 작품 읽었어요.

헉슬리의 단편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

단발머리 2014-09-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이 문장을 그래도 옮겨서 제 방에 가져가고 싶어요. ....
페크님 좋아하시는 늦여름 빨리 지나가는 소리가 막 들려요.
오늘 아침에는 비도 많이 왔구요.
좋아하시는 날씨, 많이 만끽하시기 바래요~~

페크pek0501 2014-09-03 13:18   좋아요 0 | URL
어머낫!
댓글에서 제 글을 복사 붙이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 기분이 무지 좋잖아요.

제 글, 님의 방으로 가져 가셔도 됩니다. 하하~~

맞아요. 늦여름도 가려하는지 오늘 아침엔 추워서 긴 팔 옷을 입고 싶더라고요.
지금도 이 멋진 늦여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마태우스 2014-09-1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편의점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맛없을 줄 알고 안먹었다는.
2) 반대라는 말에 욱하셨군요! 전 "시어머니가 반대해서 어이가 없었다 해달라고 졸라도 할까말까인데"라는 글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전입니다.
3) 저도 스맛폰 사고나서 님같은 결심을 했지요. 비교적 잘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아무래도 책보는 시간이 줄긴 했어요. 카메라로만 쓰려고 하는데 그게 늘 잘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4-09-17 10:26   좋아요 0 | URL
1) 저도 처음 마셔 봤어요. ㅋ
2) 아, 반전... 신붓감으로 나를 반대하더니, 그게 저에겐 반전이었죠.
3) 책 책 책, 우리 폰보다 책을 더 사랑하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