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기분이 좋아진 것은 어느 님의 댓글 덕분이다. 무심코 서재에 들어왔다가 ‘똑똑 처음 인사드립니다^^’라고 시작하는 그 님의 댓글을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면서 오늘 글 한 편을 올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좋았쓰~, 오늘 글 한 편 올리겠쓰.~’

 

 

누군가가 내 서재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표명하면 새 글을 올리는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좀 바보 같나? 으음~ 바보 같다...)

 

 

‘똑똑 처음 인사드립니다.^^’, 아주 좋은 표현인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서재에 처음으로 댓글을 쓰고 싶을 때 이렇게 써야지. ㅋㅋ

 

 

오늘 나는 누군가가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기기만 해도 따뜻한 미소를 받은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고마운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야 안젤루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말

 

그날 나는 누군가에게 미소 짓기만 해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 지지 의사표기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마야 안젤루)

 

- 서동식 저, <나를 위한 하루 선물>, 25쪽.

 

 

 

이 글을 책에서 처음 읽고 나서 ‘뻔한 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여겼다. 그런데 뻔한 말이라고 여겨져도 읽기를 잘했다. 이 책을 사고 나서 ‘참 불필요한 책을 샀네.’라고 여겼다. 그런데 불필요한 책이라고 여겨져도 사기를 잘했다.

 

 

이렇게 인용해서 써먹을 줄이야. 이렇게 사유할 기회를 얻을 줄이야. 이렇게 깊은 의미를 느낄 줄이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3-04-05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ㅎㅎ 좋은기분은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오더라구요. 페크님도 그분도 좋은기분 서로 나누셨으니 저까지 덩달아 기분 좋아져요. 여긴 잔뜩 흐려요. 내일 강풍과 폭우가 올 거라는데 벌써부터 어째 분위기가 심상지 않아요.^^

페크pek0501 2013-04-07 09:1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도 덩달아 기분 좋다니, 저는 더욱 좋아집니다.
어제 비 오더니 오늘 날씨는 햇살 가득할 것 같아요. 맑아요, 서울은요.^^

수이 2013-04-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첫 인사라는 건 한없이 반갑기만 한 거였어요.
공감하기만 맨날 누르고 말았는데 이제부터라도 인사도 제대로 하고 별말 아니어도 소소한 안부라도 묻고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분 좋은 글이에요.

페크pek0501 2013-04-07 09:17   좋아요 0 | URL
첫 인사, 첫 만남, 첫 인연... 모두 설레고 즐거운 것이지요.
공감하기만 누르시지 말고 '잘 보고 갑니다'라는 간단한 댓글이라도 남겨 주시면
받는 사람은 기분이 참 좋답니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실 2013-04-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프레이야님이랑 팜므느와르님이 페크님 좋은 분이라고 알려주셨거든요^^
좋은 분을 알게 되서 기뻐요^^

페크pek0501 2013-04-07 09:1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그런데 제가 좋은 분이라고 알려 주셨군요.
으음~~ 제가 좀 착한 척을 했나 봐요. ㅋ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을 다 읽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이어서 꼼꼼히 읽었다. 기억해 두고 싶은 글엔 밑줄을 그었고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적어 놓았다. 우리의 자기 인식은 얼마나 정확할까? 이 책을 읽고 ‘나는 나를 모른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 <새로운 무의식>의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시작하게 되질 않는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리뷰를 쓰는 게 부담스러워 그런 것 같다. 한 권의 책 전체를 관통하여 써야 하기에 리뷰를 쓰는 건 어렵다. 그래서 그동안 리뷰보단 비교적 쉽게 느껴지는 페이퍼 형식의 글을 쓰게 되었나 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 이거 언제 없어지려나. 어깨에 힘 좀 빼자, 대충 써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내가 뭐 작가처럼 잘 써야 하나...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웃었다. 히히~~. ‘작가는 아니되 작가처럼 쓰기’가 내가 지향하는 태도라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것도 과대망상이라고 해야 하나.

 

 

 

- 그러나 나의 과대망상은 심각하진 않다.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읽으며 저자의 깊은 사유에 감탄하며 기죽었으니까. 이 정도로 글을 잘 쓰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할까.

 

 

 

- 그저께 친구 모임에 나갈 때는 지하철을 탔는데, 집에 올 땐 택시를 탔다. 택시요금이 5,860원이 나왔다. 택시 기사에게 만원을 내면서 “그냥 6,000원 받으세요.”라고 말해서 4,000원을 거스름돈으로 받고 내렸다. 140원을 덜 받은 것, 내가 잘한 일일까. 나처럼 푼돈을 챙겨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상상해 보니, 잘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십 원짜리도 다 챙겨 받으려 하면 택시 기사가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남들은 몇 십 원 정도는 챙기지 않던데 손님은 유별나시네요.” 그러면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손님)이 욕을 먹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개인의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여전히 스타일이 아줌마 같지 않다고. (살이 찌지 않아 그런가 보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내 눈이 탁해졌고 내 피부가 까칠해졌다고 한다. 내가 20대였을 땐 맑은 눈과 좋은 피부가 돋보이는 애였다고 한다. 나한테 그런 강점이 있었나. 그런 강점을 이제야 말해 주다니, 진작 말해 주지... 나이가 들어 눈이 탁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고, 피부라도 윤기가 흐르게 해야겠다 싶어서 매일 밤 우유로 세수를 하고 씻어 내기로 했다. 나 아직 여자가 맞는가 보다. 옷 사거나 멋 내는 걸 귀찮아해서 이젠 여자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우유로 세수하는 것, 며칠이나 가려나.

 

 

 

- 봄이다. 푸짐하게 퍼져 있는 봄 햇살이 눈부신 세상을 만들어 내는 봄이다. 요즘 따뜻한 햇살을 가득 등에 받으며 걷곤 하는데, 워낙 추웠던 겨울을 보내서 그런지 봄 햇살이 ‘하늘이 주시는 선물’ 같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실컷 누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 봄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므로, 머지않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므로 봄 햇살을 많이 받아서 비타민 D를 보충해야지. 

 

 

 

- 오늘 내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글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옮긴다.

 

 

.............................

옮깁니다.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이렇게 말해왔다. “몸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오늘날의 사회 신경과학은 그 처방을 지지한다. 심지어 몇몇 연구는 그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복한 사람의 육체적 상태를 취하면 실제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라는 것이다. 나의 막내아들 니콜라이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언젠가 농구를 하다가 희한한 사고로 손이 부러졌을 때, 아들은 갑자기 울음을 멈추더니 웃기 시작했다. 통증이 올 때 크게 웃으면 한결 낫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재발견한 오래된 지혜, “그런 척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격언은 오늘날 과학 연구의 진지한 주제이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55쪽~256쪽.

 

 

 

 

“그런 척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요? 작가인 척하고 글을 쓰다 보면 실제로 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날이 오겠군요.

 

 

 

 

자신이 예수라고 믿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지만, 자신이 NBA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거나, (스티브) 잡스처럼 자기 회사에서 쫓겨난 수모를 딛고서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고 믿거나, 자신이 훌륭한 과학자나 작가나 배우나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좋을지도 모른다. 믿음이 완벽하게 현실이 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은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긍정적인 힘이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94쪽.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나중에 뒤를 돌아보면서 이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자신의 앞길에서 점들이 이어져 있다고 믿으면, 설령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되더라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마음을 따를 수 있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94쪽.

 

 

 

 

 

 

심리적 문헌에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착각‘이 -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 이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가 수두룩하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95쪽.

 

 

 

 

이만하면 긍정적인 착각을 좀 해도 되겠지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크아이즈 2013-03-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언니님,
글이 안 돼요, 글이...
그런 척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는 신념이 부족해서일까요?
저 마감시켜야 할 숙제가 있는데, 글이 안 돼서 퍼질러 앉아 만개한 벚꽃 보면서 울고 있습니다. 남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을 원고지 백 매가 제겐 힘겨운 노동일 뿐입니다.
봄날은 이렇게 오고 가는데ㅠ
제게도 긍정적 착각을 분양해주시어요.^*

페크pek0501 2013-03-30 13:27   좋아요 0 | URL
팜 님, 너무 엄살이 심한 것 같은데요.
글발 좋으신 님 때문에 제가 기죽었던 고백을 꼭 해야 합니까?ㅋㅋ
원고지 백 매라면 누구에게도 아무렇지도 않을 원고는 아니죠.
요즘 원고지를 사용하지 않으니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원고지는 학생들과 수업할 때만 잠깐 사용한답니다. 원고지 작성법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거든요.
제가 올린 페이퍼로 긍정적 착각을 분양받으시길 바랍니다. 하하~~

세실 2013-04-0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도 가끔 택시타면 종이돈만 받게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할수도 있겠군요.
우유 세수 오늘부터 해봐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3-04-05 16:47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반갑습니다.
많이 본 닉네임이고요, 저도 님의 서재에 몇 번 들어간 적이 있어요.
프레이야 님과 팜 님과 친하신 분으로 알고 있어요.
이렇게 댓글을 남겨 주시니 매우 영광입니다.

택시 글에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5백원 이상은 받아요.ㅋㅋ

우유 세수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또 매일 에센스와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고 자니까
이젠 얼굴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러요.
초면에 자랑질이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

세실 2013-04-06 11:10   좋아요 0 | URL
호호호 저도 팁 하나 알려드릴게요.
스킨을 바르고....나이*2 만큼 두드려 주라고 합니다. (많이 두드리라는 의미겠죠?)
스킨이 잘 스며들어야 화장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크림 바를땐 검지와 중지로 눈가, 입가를 편뒤 주름을 메운다는 느낌으로 발라주라고 합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13-04-07 09:24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두드려야 합니까? 제 나이가 좀 많은데... 거기다 두 배라니...ㅋㅋ
제가 신문에서 본 건데요, 아이크림이 없을 땐 그냥 영양크림을 눈가에 듬뿍 발라 주면 아이크림을 바른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아이크림을 안 쓰고 영양크림으로 대신한답니다. 주름은 없는 편이라서 고 정도로 ...ㅋ
예쁘게 피부를 가꾸는 일도 쉽지 않군요. 그래도 해야겠지요? 미운 건 싫으니까.
반가웠습니다. ^^
 

 

 

 

1.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하구나

 

 

어머니와 함께 어느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가 들어 놓은 예금이 만기가 되어 다른 금융 상품으로 계약을 하러 간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같이 가 달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보다 젊은 내가 따라가면 더 현명한 계약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30대 후반(또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팀장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며 자기의 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그리고 새로 계약하면 좋을 금융 상품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꽤 똑똑하게 말을 잘했다. 그 많은 상품에 대해 어떻게 외워서 그렇게 잘 말할 수가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그 사람이 가진 ‘직업적 유능함’이란 무기가 화려한 빛을 뿜어내어서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키가 작은 편이고 약간 뚱뚱한 체격으로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내 눈에 무척 멋있어 보였다. 각 금융 상품 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나는 잘 몰라서 어머니에게 어떤 조언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펀드상품이나 신탁상품을 비롯하여 내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것들도 많아서 뭐가 뭔지 잘 몰랐다. 거치식펀드와 적립식펀드의 차이, CMA통장의 장점 등 그 팀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 내가 이렇게 무지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어머니는 그 팀장이 권하는 금융 상품으로 계약을 했고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조언을 하지 못하고 공연히 발품만 팔았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직업적 유능함이란 게 그렇게 멋있는 것이구나, 자기 방도 따로 있고 멋지네.’하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논술에 대해선 논술 강사인 나보다 모를 거야, 논술은 내가 전문이잖아.’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래도 초라함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글을 떠올리고 나선 위로가 되었다.

 

 

내게 위로가 된 글은 버나드 쇼(1856~1950)의 글이다.

 

 

 

우리 중 최고라는 사람도 99퍼센트는 군중에 속하고 1퍼센트만 적임자에 속한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몇 가지가 다인 줄 알고 자기가 모르는 수많은 것들은 받아들일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자만’이라는 천박한 질병에 시달린다. 나는 몇 가지는 매우 잘한다. 하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 구제불능의 얼간이나 다름없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자부심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결국 군중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나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셈이다.

- G. 버나드 쇼 저, <쇼에게 세상을 묻다>, 51쪽~52쪽.

 

 

 

교육에 대한 언급에선 겸손한 자세를 배운다.

 

 

 

교육은 유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올해로 미수(米壽, 88세)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가진 미약한 능력으로도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 G. 버나드 쇼 저, <쇼에게 세상을 묻다>, 315쪽.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도 88세에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데 나는 얼마나 배워야 할 게 많을 것인가. 내가 은행에 대해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그것에서 초라함을 느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의 자만이 아닐까.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므로 나의 자만이 아닐까.

 

 

나의 무지를 깨닫기도 하고 나의 자만을 깨닫기도 하였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버나드 쇼의 지적인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이 책은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세상일에 대해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우리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명쾌하게 해석해 준다.

 

 

 

 

 

(끝)

 

(이 페이퍼는 여기서 끝날 뻔했다. 그러나...)

 

 

 

 

 

 

2. 내가 내 감정에 대해 무지하구나

 

 

그러나 며칠 뒤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팀장이 멋있어 보였던 건, 또 내가 초라함을 느꼈던 건 그녀의 ‘직업적 유능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뽀얀 피부의 얼굴에 분홍색의 볼터치가 돋보이는 화장을 해서 화사한 얼굴이었고, 투피스 정장의 옷차림이었는데, 그런 모습에서 보기 좋게 부티가 흘렀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 (그녀에 비해 나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정장의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날 나를 기죽게 만든 건 그녀의 화장한 얼굴과 정장의 옷차림이었나, 만약 화장기 없는 얼굴에 정장이 아닌 옷차림이었어도 그녀가 멋있어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에 따르면 작화증(作話症)이라는 용어는 보통 꾸며낸 말로 기억의 빈틈을 메우면서 그것을 사실로 믿는 상태를 뜻하는데, 인간은 누구나 감정에 대한 지식의 빈틈을 작화하듯이 메우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나 친구들에게 “왜 그 차를 타니?”, “왜 그 남자를 좋아하니?”, “왜 그 농담에 웃었니?”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스스로 그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를 때가 많다. 누군가 이유를 대보라고 하면, 일종의 자기 성찰과도 같은 숙고를 통해서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아무리 잘 안다고 믿더라도, 실은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를뿐더러 그 무의식적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우리는 대신에 그럴싸한 설명을 지어내고, 아예 틀렸거나 일부만 옳은 그 설명을 믿어버린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59쪽~260쪽.

 

 

 

 

이런 오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것은 어쩌다 우연히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현상이며,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감정적, 문화적 정보의 저장고를 기반으로 삼아서 벌어지는 활동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 머릿속에 저장된 문화적 규범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가장 그럴싸한 설명을 골라낸다는 것이다.

 

 

이것을 ‘채용’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채용해보았다면, 내가 왜 저 사람을 옳은 선택으로 여길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정당한 대답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런가? 여전히 그때 생각했던 그 이유로 그 사람을 골랐다고 믿는가? 어쩌면 당신의 추론은 거꾸로였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서 받은 느낌으로 먼저 선호를 형성한 다음에,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규범을 끌어들여서 그 감정을 설명한 것이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61쪽.

 

 

 

이 책에서 재밌는 실험이 하나 소개된다. 바위투성이 땅으로부터 70미터 위에서 흔들거리는 나무판 다리에 있는 남자들을 각각 한 여성과 인터뷰를 하게 했다. 그 남자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 때문에 많이 긴장하게 될 것이다. 이때 그들은 빠른 맥박 등 아드레날린의 효과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자신의 신체 반응이 나무판 다리 때문임을 자각했을 텐데도, 그것을 성적 공감대에 의한 반응으로 착각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실험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가 위험한 나무판 다리 때문이 아니라 그 매력적인 여성 때문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실험이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당신이 친구나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신체적으로 교란된 상태라고 하자. 어깨와 목이 딱딱하고, 머리가 아프고, 맥박이 빨라진다.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그 감각을 야기한 갈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과 대화할 때, 당신은 그 감정이 눈앞의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255쪽.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안다고 믿는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잘 정리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종종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책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므로.

 

 

다시 생각해 본다. 그날 은행의 그 팀장이 내 눈에 멋있어 보였던 이유는 뭐였을까. 각 금융 상품을 막힘없이 설명하는 그녀의 직업적 유능함 때문인가, 자기의 방을 따로 가질 수 있는 그녀의 사회적 위치 때문인가, 화사한 얼굴 때문인가, 정장 옷차림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나는 모르겠다.

 

 

<새로운 무의식>에 따르면, 인간에겐 ‘감정적 착각’이란 게 종종 일어난다. 그러니 자신의 어떤 감정에 대한 확신은 금물이다.

 

 

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의 글로 마무리한다.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블레즈 파스칼)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저, <새로운 무의식>, 19쪽.

 

 

 

 

 

 

 

 

**********

‘무의식’이라고 하면 프로이트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당대에는 무의식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날엔 fMRI가 등장함으로써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엮은 것이 <새로운 무의식>이란 책이다.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3-03-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적 착각. 스스로 깨치셨군요. 단기적 판단 수단에서 장기적 판단 수단으로 (본능)-감정-이성이 있고, 그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페크pek0501 2013-03-26 13:53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서 좋은 점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책에서 읽은 내용을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뭐 그래서 제가 더 똑똑해지는 건 같지 않고(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비현실적인 바보가 되어가는 걸 느껴요.) 그저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아요.
독서가 삶을 특별히 이롭게 하는 건 없고 다만 정신 건강엔 좋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두 번째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3-03-2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은 책 두 권 담아갑니다.
인간이란 참 이해불가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이해가능한 동물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새삼, 단순하게 가는 것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상에서 진지한 생각을 건져 조근조근 들려주시니 참 좋습니다.
느긋한 봄날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3-03-26 13:55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단순하게 살고 싶은 1인이에요.
또 일상에서 진지한 생각을 건지고 싶은 1인이에요.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쯤은 알게 된 나이에 있네요.
오늘 햇살이 푸짐한 날이네요. 창문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를 잽싸게 하고
(청소하는 시간이 아까워요.ㅋㅋ) 봄날의 푸짐한 햇살을 받으러 밖에 나가야겠어요. 많이 걸어야겠어요. 뭐 살 것도 있고요.

세 번째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종이달 2022-05-20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2-05-24 12: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날씨가 춥지만 않으면 거의 매일 걷는다. 한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걸을 수 있으며, 많이 걸을 땐 두 시간도 걷을 수 있다.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걷는 재미로 걷고, 엠피쓰리와 이어폰을 이용해서 음악 듣는 재미로 걷는다.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보는데 이것도 재밌다. 같은 길을 걷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걷기도 한다. 최근엔 한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그 부근을 많이 다녔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깊숙이 위치해 있는 학교라 눈에 띄지 않아서 늦게 발견한 것이다. 학교가 참 맘에 든다. 나 어릴 적 학교와 닮아서인 듯하다. ‘초등학교’하면 연상되는 그런 모습의 학교다. 낮이든 밤이든 학교에 들어서면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날은 나도 그들 속에 끼어 운동장을 돈다.

 

 

그래도 걷는 재미 중에서 으뜸은 내 마음의 풍경과 만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어제 걸으면서 오쇼 라즈니쉬가 쓴 글을 생각했다.

 

 

....................

한 젊은이가 할머니를 모시고 걸작 미술 전시회를 구경 갔다. 거기서 생전 처음으로 빈센트 반 고호의 진짜 그림을 본 할머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이가 물었다.

“왜 웃으세요, 할머니?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웃기지 않니? 이 복사판 그림 좀 봐라. 내가 이십 년 동안이나 갖고 있는 달력 그림을 똑같이 베꼈지 뭐니?”

사실은 그 달력이 이 그림을 베낀 것이고 이것이 진짜 그림인데 할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의 진짜는 내 방에 이십 년 동안이나 걸려 있었단다.”

 

*****

가짜에 감염될 때 그대, 진짜를 놓치고 만다. 그대의 눈이 가짜로 가득 차 있으면 진짜와 만났을 때 그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겠는가.

 

- 오쇼 라즈니쉬 저, <배꼽>에서.

....................

 

 

 

나도 내 마음의 방에 가짜의 달력 그림을 갖고 있으면서 진짜라고 여기는 게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가짜의 달력 그림을 떼지는 못하더라도 가짜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1월에 있었던 일이다. 동네 슈퍼에 전화해서 쌀 십 킬로를 배달시켰다. 누런 종이 포대에 든 쌀이 배달되었다. 쌀을 씻기 위해 종이 포대의 윗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쌀을 푸려고 보니 쌀 위에 흰 종이가 보였다. ‘이게 뭐지?’하고 꺼내 보니 흰 봉투였다. 봉투 안을 보니 돈이 있었다. 자그마치 만 원짜리 지폐였다. 처음엔 가짜 돈인가 싶어 의심했는데, 살펴보니 진짜 돈이었다. 쌀을 샀더니 이런 횡재가 생기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만 원이 든 봉투에는 김포 쌀을 애용해 달라는 문구와 함께 ‘신김포 농협’이라고 씌어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신김포 농협에서 1월 한 달 동안 백 포대에 하나씩 만원을 넣는 행사를 한다는 것이니, 내가 만 원이 든 쌀 포대를 만날 확률은 일 퍼센트였던 것. 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몇 년간 김포 쌀을 사 먹으면서 천 원의 지폐가 나온 적이 한 번 있기는 했다. 그때도 공짜로 얻은 돈에 기분이 좋았는데, 이번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그때보다 열 배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이 돈 때문에 우리 네 식구가 즐겁게 하하하 웃었다.

 

 

쌀을 홍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넣은 것이겠지만, 그 쌀을 계속 사 먹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쩌다 한 번 공짜로 돈을 얻는 행운을 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아이디어를 낸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직접 돈을 넣는 작업을 했던 누군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들은 누군지 모를 타인이 그 돈을 발견하고 즐거워할 표정을 상상하며 그런 일을 했으리라.

 

 

그날 ‘만 원’은 우리 집에 몰래 온 귀한 손님이었다. 그것은 세상이 내게 전해 주는 사랑의 손길이었으므로. 세상과 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가 생각난다.

 

.....................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약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내가 일 퍼센트의 행운을 잡아 본 것,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일 퍼센트의 행운이 즐거운 이유를 말해 보시오.”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게 될 것 같다.

 

 

첫째, 공짜로 만 원이 생겨서 즐겁다.

둘째, 내가 운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져 즐겁다.

셋째, 훈훈한 인정미가 있는 세상이 느껴져 즐겁다.

 

 

이 가운데, 셋째의 대답이 가장 맘에 든다. ‘세상은 아름다운 책이지만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골도니)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자 세상을 아름답게 읽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