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에게


“엄마 어디야?”

네가 초등하교 5학년인 열두 살이었을 때 내가 너에게서 가장 많이 받았던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엄마 어디야?”였다. 내가 시장에 가거나 친구 모임에 가서 집에 없는 날이면 너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없음을 알고 그런 문자를 내게 보내곤 했다. 내가 어디에 있다고 말하면 너는 “언제 와?” 하는 문자를 보내고 나를 기다렸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도 네가 5학년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너의 주된 관심은 엄마였으니 엄마가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했을 터. 그래서 핸드폰을 갖게 되자 내게 그런 문자를 보냈으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내 눈에 애기였다. 언제 커서 집에 엄마가 없어도 찾지 않을까, 언제 커서 나로부터 독립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네가 중학생이 되고부터 돌변하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내가 외출을 해도 “엄마 어디야?”라는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애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중학생 소녀가 된 듯했다. 그때 난 너에게도 너의 세계가 생긴 거라고, 드디어 엄마와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세계를 가진 거라고 여겼다. 


너에게 라디오를 듣는 취미가 생긴 것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디오가 친구가 되어 주니 엄마의 외출로 불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중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을 사귄 것도 한몫했겠다. 이제 엄마의 존재는 너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되었다. 이 사실이 기뻤다. 결혼한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부담을 갖고 있기에 아이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돌아보면 엄마를 찾던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너를 찾으니 말이다. 밤이 되면 너의 귀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일이 언제 끝나니?”, “언제 와?” 하고 내가 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우리 모녀 관계에서 기다렸던 자는 기다리게 하는 자가 되고, 기다리게 했던 자는 기다리는 자가 되었다.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엄마 타령이나 하던 아이가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게다가 노력 끝에 절실히 바라던 한 전문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너에게 용돈을 주었던 내가 오히려 너에게 용돈을 받고 있는 요즘 자식을 키우는 보람을 느낀다. 자식을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사는 너는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하여 너는 내게 고마운 딸이다. 


너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너를 항상 응원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파이팅!  

                        

                                                                 2025년 5월 27일 엄마가.




........................

한 달 전쯤 딸에게 내가 쓴 편지 내용이다.  

딸 생일날에 생일을 축하한다며 축하금을 주었는데 딸은 받지 않겠다며 

그 대신 자신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쓰게 된 것이다.  

노트북으로 쓰기 시작하여 편지지에 옮겨 적고 편지 봉투에 넣어 딸에게 전했다.

참고로 남편도 똑같은 부탁을 받아서 딸에게 편지를 써서 주었다.

딸은 힘들 때마다 남편과 내가 준 편지를 읽겠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이런 글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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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5-06-23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뭉클해요. 따님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아름다운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Vanessa 2025-06-24 01:38   좋아요 1 | URL
ㅇㅇ

페크pek0501 2025-06-24 12:29   좋아요 1 | URL
문나잇 님. 아름다운 글이라니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십니다. 자식을 키워 본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올린 글일 뿐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0   좋아요 0 | URL
Vanessa 님. 댓글 한 표,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5-06-23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돈 대신 편지를 부탁하다니 너무 사랑스럽네요. 페크님 편지도 감동적입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1   좋아요 0 | URL
감동적이라는 표현, 참 기분 좋네요. 별로 감동적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독서괭 님의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카스피 2025-06-24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님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네요^^

페크pek0501 2025-06-24 12:33   좋아요 0 | URL
어떤 점이 딸을 잘 키운 거라고 느끼신 걸까요?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노력하며 사는 일꾼이라서?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딸이라서? 어느 포인트에서 느끼셨을지 잘 모르겠어염. 카스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희선 2025-06-24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페크 님한테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멋지네요 그런 말 듣고 편지 못 쓴다고 하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페크 님은 쓰셨군요 어릴 때 따님이 어땠는지도 기억하시고... 따님도 잊은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해마다 편지를 쓰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6-24 12:36   좋아요 0 | URL
희선 님은 편지 얘기에 느낌이 남다르실 듯합니다. 처음엔 편지 쓰기 싫다고 그냥 돈으로 받으라 했지요. 글이란 게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이지 꼭 해야 하는 숙제 같으면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꼭 편지를 받고 싶다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래도 우리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 술술 써졌어요. 해마다 쓰는 건 못 하겠고, 몇 년에 한 번쯤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6-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따님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었네요.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그 마음도, 그리고 이에 편지를 써주신 두 분의 마음과 결행도 참 아름답습니다. 편지 내용도 감동이구요ㅠㅠ
시간에 따라 표현하는 법은 달라졌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돈독함을 저도 느끼게 되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어버이날에 부모가 애들한테 편지나 카드를 받는 일이 있어도 애들한테 편지 쓰는 부모는 흔치 않을 겁니다. 딸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어요. 요즘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이유가 아마 딸이 더 효도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잉크냄새 2025-06-24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에게 평생을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 생겼네요.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0 | URL
아, 소중한 보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6-2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쓰신 편지도 좋지만, 힘들때 부모님이 쓰신 편지를 읽겠다는 따님도 참 좋아보여요.
편지 쓰는 일들이 없지 않지만, 부모님께 쓰는 일은 적고, 반대로 부모님이 남겨주신 일들도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화목한 가정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페크님, 날씨가 계속 더워진다고 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7 11:19   좋아요 1 | URL
힘들 때 부모의 편지를 읽겠다는 것, 저도 우리엄마한테 말해 보지 않은 거네요.ㅋㅋ
주위를 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화목한 것 같아요.
아직은 밤잠을 잘 때 추워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자기에 요즘 날씨가 좋다고 느낍니다. 낮에 더운 것쯤은 견딜 만합니다. 이 정도의 더위로 여름이 진행되길 바란다면 헛 꿈, 이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26쪽)

⇨ 그를 이해할 수 없으니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공감하면 악덕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생길 텐데.



녀는 고리오 씨에 대해 품었던 친근감보다 더욱 강하게 그를 미워해야겠다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증오는 고리오 씨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깨진 희망에 비례했다.(34쪽)

⇨ 이처럼 감정이란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러하다. A 님이 B 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C 님이 B 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B 님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되는가? 인간은 이치에 맞지 않는 데가 있는 존재다.

 


인간의 마음이 애정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와 반대로 증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거의 발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34쪽)

⇨ 애정을 숨길 수는 있어도 증오는 숨기기 어려운 법. 증오를 느낄 때 인내가 필요하기에 어렵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으로 인해 멈추지 않는 증오 때문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쩨쩨하니까 남도 쩨쩨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35쪽)

⇨ 남들도 자신과 똑같이 쩨쩨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자기만 쩨쩨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간은 어려운 일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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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2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언젠가 위 내시경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검사를 마치고 나서 의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질문할 사항을 미리 종이에 적어 가지고 갔다. 걷기 운동을 할 때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 것도 건강에 좋은지, 커피가 위에 나쁘다고 들었는데 하루에 몇 잔까지 괜찮은지 등을 물었다. 내 물음에 의사는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군요.”라고 덧붙였다. 이 말, 맘에 들었다. “건강염려증이 있으시군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상대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는 게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아 걷기 운동을 하고 발레를 하는 것이다. 




**

티브이를 통해 ‘이혼숙련캠프’를 시청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부부 사이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부부 간 말을 조심해서 한다면 싸우는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게 말하는 배우자에게 싸움을 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곱게 하려면 언어를 다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프란츠 카프카가 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것으로, 부자지간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다. 실제로 카프카는 아버지와 불화하여 고통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혹독한 말과 판단으로 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닌 막강한 힘에 대해 마치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구시더군요. 저도 아버지에게 말로 상처를 입힌 적이 물론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말하는 순간에 벌써 제 자신도 괴롭다는 것을 알았고, 하던 말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내뱉었을 뿐이었어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후회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말로 끝없이 남을 공격해 댔고, 말하는 중에나 말해 버린 후에나 그 누구도 마음에 걸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카프카, 53쪽)


아버지의 말씀은 세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판단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고, 그 부분에서 아버지는 결국 당신의 의도를 완전히 망친 셈입니다.(카프카, 53쪽)


화자인 아들은 아버지의 언어 사용을 통해서 아버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식을 동물 사료라고 부르며, 집짐승같은 가정부가 요리를 망쳐 버렸다고 하셨어요.(카프카, 54쪽)


이 한 줄의 글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인격을 말해 주는 법이니까. 음식이 맛없다고 해서 가정부를 집짐승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라니.




****
















38. 인간의 본성


사람의 본성은 사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꾸밈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격앙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문제, 낯선 사태에 임하여서도 잘 나타난다. 습관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베이컨, 174) 






지난 주 가족이 함께 2박 3일간 바다가 보이는 곳에 머물렀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바다가 있는 사진이 가장 맘에 들었다.

가는 곳마다 바다의 모습이 달랐고 바다의 색깔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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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0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 여행을 갔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ㅠ
프사도 그렇게 벽지도 그렇고 완전 여름이네요.딱 요맘 때가 좋죠. 초여름.
이제 2주후면 장마 걱정해야 하고 장마 지나면 더위 걱정해야 하고,
더위 지나면 태풍 걱정해야하고. 줄줄이네요.
물론 그렇다고 꼭 걱정만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 인상이 중요하듯 언상도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해요.
인상은 좋은데 언어가 박색이면 안 어울리잖아요. 인상이 안 좋아도 언어를 잘 쓰면
밉지가 않고. 그런 거죠.
칼럼은 다시 쓰고 계신가요?^^

페크pek0501 2025-06-05 10:37   좋아요 1 | URL
여행한 지가 오래되셨군요. 스텔라 님은 맘만 먹으면 여행 갈 수 있지요.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시는 거죠. 저는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행을 즐기는 분들 보면 저도 부럽습니다. 맛집 다니며 사 먹는 건 여행 중 큰 기쁨이더군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게 좋더라고요. 3일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이틀을 쉬었네요. 이젠 체력이 안 따라줍니다.ㅋㅋ 장마, 폭염, 태풍... 근심의 그림자는 늘 있죠.
친구를 사귈 때도 말을 곱게 하는 이가 좋죠. 모든 인간관계가 그럴 거라고 봐요.
칼럼은 조금밖에 쓰질 못했어요.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레이스 2025-06-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선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넘 슬펐어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읽었어요. 저는 판결, 이란 제목으로 봤는데 같은 작품일 겁니다. 아버지가 사형을 선고하자 아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끝나는 걸로 기억합니다. 충격적인 소설이었어요. 아버지는 체격이 좋고 권위적, 가부장적인 듯하고 아들은 마르고 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작가가 될 재목임을 못 알아보고 뭐든 못마땅해한거죠. 아버지가 아들의 개성을 존중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버지가 엄격하면 무조건 아들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인 거죠.^^

꼬마요정 2025-06-05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가까이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 말을 막 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죠ㅠㅠ 카프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 아버지는 자신에게 막말하는 사람 못 견뎠을 거 같아요…

바다가 정말 이쁩니다. 이제 여름이로군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6   좋아요 2 | URL
그래서 가족 간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가깝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위인이죠.
여행 가서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찍는데 건질 것은 꼭 바다가 있는 풍경이더라고요.
꼬마 요정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잉크냄새 2025-06-05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과 염려의 경계는 불안과 집착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06 12:19   좋아요 0 | URL
평상시엔 태평하게 살다가 몸의 이상 증세가 느껴지면 불안과 집착이 생겨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땐 건강염려증이 있는 상태 같아요. 큰 병에 걸려 고통받고 사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희선 2025-06-07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람한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지 않나 싶어요 가까워서 그런 거겠군요 식구도 남이기는 한데, 그걸 생각하면 조금 조심할지도... 부모한테 상처 받은 건 평생 잊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

페크 님 바다 보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6-10 20:34   좋아요 1 | URL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조심을 하지 않아 상처받는 일이 있지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쩌면 가장 불친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 겨울바다도 좋지만 여름바다도 좋더군요.^^

서니데이 2025-06-0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휴가 다녀오셨군요. 너무 덥기 전에 여름 휴가도 다녀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더운 시기에 나가면 기분 전환은 될 수 있지만 어디든 너무 더워서 에어컨 냉방 되는 실내가 더 좋은 것 같아서요.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가 잘 나오면 안도하게 되는데, 그래도 질문하고 싶을 때가 있을거예요. 건강염려증으로 보이는 건 조금 걱정인데, 미리 필요한 내용을 준비해가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6월이 되면서 날씨가 이제 여름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해요. 서울도 거의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더운 날이 되었다고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10 20:38   좋아요 1 | URL
아주 더운 여름보다 5~6월의 여행이 좋더라고요. 폭염일 때는 집콕, 이 가장 좋아요. 저는 암이 가장 무서워요. 고통을 죽는 날까지 치러야 하거든요. 차라리 전쟁이 나서 죽게 된다면 암보다 덜 무서울 것 같아요.
오늘도 더웠답니다. 저녁이 되니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 여름 저녁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어요. 여름도 매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5-06-17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말 날씨가 많이 덥고, 이번주는 비가 오고 습도가 높더니 다시 더워지네요.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비가 조금 더 자주 올 것 같아요. 일찍 더운 것 같은데, 한주 사이에 더 많이 더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저녁엔 덜 더워서 창문 닫고 편안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0 11: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잘 지내시겠죠? 저는 여름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닙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닌데 몸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기운도 없고요. 요즘 낮엔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것이 참 좋네요. 일단 밤잠을 더위로 설치지는 않으니까요.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yamoo 2025-06-20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장에서도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그걸 듣는 사람들도 별로 문제제기를 안하구요...가족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는데, 가족이라고해서 막말을 하는 부모나 부부가 많은 듯해요.

그나저나 저 바닷가 풍경...넘 멋지네요. 어딘가욤? 국내면 여름 휴가 때 가볼 의향이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20 11:50   좋아요 0 | URL
그게 잘못된 거라고 인지할 줄 알면 막말을 하지 않겠지요.
특히 친숙한 가족간이기에 말조심이 필요합니다.
바닷가. 부산입니다. 부산 해운대를 추천합니다!!!

yamoo 2025-06-20 14:24   좋아요 1 | URL
헐~~~ 해운대군요!! 해운대는 총 4번 갔는데...다른 시각에서 본 뷰라 새롭게 보입니다요!!

페크pek0501 2025-06-22 10:51   좋아요 0 | URL
사진은 각도, 가 중요하죠. 각도에 따라 다른 풍경이 되어요.
위의 사진 두 장은 우리가 투숙했던 호텔방 (12층이던가?) 높은 층에서 찍은 거랍니다.
1) 땅과 바다와 하늘을 삼등분한 사진,
2) 베란다의 의자를 찍은 사진.
어디를 놀러 가도 바다가 있는 풍경 사진이 가장 맘에 듭니다.^^

모나리자 2025-06-2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 색깔이 그림에 나오는 풍경 같아요~~
저도 내일 바다에 놀러갑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갔던 작은 해수욕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네요.
카프카의 아버지와의 불화는 유명하지요. 카프카가 문득 읽고 싶어집니다.^^
주말 잘 지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6-22 10:57   좋아요 0 | URL
모나리자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여름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있어 휴식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아프지는 않은데 목소리가 변하더군요. 무리하면 더 병이 날 것 같아 조심하고 있어요.
바다로 놀러 가시는군요. 좋겠습니다. 바다 사진 많이 찍으시고 눈에 많이 담아 오시길... 아이들이 크고 나니 해수욕장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천탕, 수영장 같은 곳에 갑니다. 카프카를 읽으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

이 책에서 뽑아 옮겼다. 



4. 복수


어떤 사람들은 복수를 결행하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보복을 당하는 까닭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비교적 대범한 자세다. 보복을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는 데 복수의 기쁨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24쪽)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복수하려는 사람이 상대편에게 내가 꼭 복수하고 말거야.” 또는 밤길 조심해.”라는 말로 겁을 주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편이 뉘우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시청자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그렇게 썼을까? 


나는 복수하려는 사람은 복수의 계획을 상대편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작가가 그렇게 썼다고 본다. 그 엄청난 복수의 계획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또 상대편이 자신이 복수할 거라는 것을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떤 불행이 닥치리라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에 떨게 만드니까.


복수를 궁리하는 사람은 곧 나아서 쾌유될 수도 있었을 상처를 늘 아프게 간직하는 셈이다.(24쪽)


해칠 방법을 모색하며 마음이 편할 리 없다. 



5. 역경


번성한다고 두려움과 번거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요, 역경 속이라고 위안과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재봉일이나 수예에서 슬프고 장중한 바탕에 경쾌한 무늬를 넣는 것이, 밝은 바탕에 어둡고 침울한 무늬를 넣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그러니 이와 같은 눈의 즐거움에 미루어 마음의 즐거움을 판단해보라. 향이나 양념은 피우거나 빻을 때 가장 향기로운 법이다. 미덕도 이러한 값진 향기와 같다. 번성은 악덕을 가장 잘 드러내지만, 역경은 미덕을 가장 잘 드러낸다.(27쪽)



7. 부모와 자식


자녀에게 용돈을 인색하게 주는 것은 해로운 실책이다. 그로 인하여 자녀들이 비열해지고 수단을 부리게 되고 좋지 않은 친구와 사귀게 된다. 그리고 풍족해지면 쉽게 방탕해진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한 권위는 유지하면서도 돈줄까지 틀어쥐지 않을 때에야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부모나 학교 선생이나 하인이나 모두들) 어린 자식들 간에 경쟁심을 일으키고 부채질하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다. 대개의 경우 이것은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 불화의 씨가 되어 가정에 풍파를 일으킨다.(34쪽)



8. 결혼과 독신 생활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게는 반려자이며,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38쪽)



10. 사랑


부부의 사랑은 인간을 만든다. 친구 간의 사랑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방탕한 사랑은 인간을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게 한다.(48쪽) 



23. 자기 자신을 위한 지혜


제 자신만을 위한 지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타락한 행위다. 그것은 집이 무너지기 조금 전에 틀림없이 빠져나가는 쥐의 지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땅을 파서 살 곳을 마련해준 오소리를 쫓아내는 여우의 지혜다. 그러나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키케로가 폼페이를 가리켜 말한 것처럼 “비길 데 없이 자기 편애에 빠진 사람”은 대체로 불행하다는 점이다. 평생을 두고 제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결국은 그들 자신이 운명의 변덕에 제물이 되고 만다. 운명의 날개를 제 몸을 아끼는 잔꾀로 묶어두었다고 잘못 생각했을 뿐이다.(108~109쪽)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행복하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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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2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게 알리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복합적일 것 같아요.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가 뉘우치기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복수를 정당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합리화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니고 너가 문제라는 책임 전가일 수도 있겠고...인간군상만큼 많을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26 10:08   좋아요 0 | URL
복수를 알리는 이유가 말씀하신대로 복합적이겠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딱 한 가지 때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네가 먼저 시작했고 나는 그것에 복수를 할 따름이라는 명분을 알리려는 이유도 있겠어요.복수를 위해 상대편의 애인을 뺏는 경우도 있더군요.
잉크냄새 님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5-25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날씨가 더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장미가 피었네요. 5월이니 이제 그럴 때도 된 것 같은데, 참 예쁘네요. 집 가까운 아파트 담장에 장미가 예쁘게 핀 곳이 있어요. 시간 될 때 가봐야겠어요.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말 중에 ˝밤길 조심해˝라는 말이 위협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 뭘까요.^^;

잘 읽었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26 10:11   좋아요 1 | URL
그저께인가 찍은 사진입니다. 장미가 시들기 전에 잘 찍어 둔 것 같아요. 걷기 운동을 하다가 찍었어요.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 맞습니다. ˝차 조심해.˝라고 말해도 무서울 것 같습니다.ㅋㅋ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입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희선 2025-05-26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한테 알리고 싶어하는군요 저라면 아무 말 안 하고 할 듯합니다 그런 거 알리면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생각이 더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 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괜찮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5-26 10:13   좋아요 1 | URL
아무 말 안 하고 복수하면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는데 겁을 주고 싶고 내가 가만히 있을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기도 할 것 같아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하니 복수하기보단 마음을 추스르는 게 좋을 듯요. 가장 좋은 복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게 산다, 는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yamoo 2025-05-29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이컨 수필집과 몽테뉴 수필집을 다 읽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근데 인용하신 걸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거 같기는 합니다..ㅎㅎ

에세이집은 한 권을 제외하고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단 하나의 예외가 쇼펜하우어의 에세이집이죠. 너무 강렬한 주장이라 안 잊혀져요..ㅎㅎ

페크pek0501 2025-05-31 12:53   좋아요 0 | URL
1561생인 베이컨의 수필은 비유법의 구사 능력이 뛰어나 읽는 재미가 있어요. 그걸 배우기 위해 읽어요. 시대에 뒤떨어진 문장이 보이긴 합니다만, 가령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믿지 않아 잘못 쓴 부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대의 글이라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책 뒤쪽에 꼼꼼하게 미주가 정리돼 있어 역시 좋은 출판사는 다르구나 싶어요.
저도 쇼펜하우어의 책은 세 권쯤 읽은 것 같아요. 재밌죠.^^
 



그런데 언어 마술사 같은 내 동행자는 대단한 재능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하나의 건축물을 내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 건축물은 그 자체로 규정되어 솟아오르는 듯이 보였고, 어떤 내적 필연성으로 존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내가 그 안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 그 건축물 안에는 결여되어 있기에 아쉬웠고, 그저 단지 하나의 단순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럴듯한 완결과 완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 흔히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듯이 말이다. 어쨌든 나는 유창하게 떠드는 그 남자의 말을 기꺼이 경청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몰두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나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가 내 정신과 주의력을 요구했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101쪽.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도 지옥이 있으니,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그것이다.”

또 최근에 나는 악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동정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곳으로부터 인간들에게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참으로 나는 뇌우의 징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말도 명심하라. 모든 위대한 사랑은 모든 동정을 넘어 선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조차도 창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5쪽.





완독회 

이병률


(상략)


찬 소주를 앞에 놓고 대개의 우리가 반복하는 일이란

소매를 접고 접어도 별반 뒤집어지지 않는 질문 같은 

것일지도


시 한 편씩을 돌아가며 읽는 낭독회를 마쳤지만 그래봤자

매번 그것으로 어제의 기분을 누르며 살려는 것


모두가 밤을 헤엄치는 기분에 빠져 있다

나만 혼자 바람 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곳으로부터 모두를 꺼내야겠다는 마음을 조금 섞고

싶어서겠다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61쪽.





시기와 질투에 관한 명언 :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헤시오도스)

동정보다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낫다.(헤로도토스)

바보들을 우리는 시기가 아니라 경멸한다. 시기는 일종의 칭찬이기 때문이다.(J. 게이)

번영을 누리는 친구를 질투심 없이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아에스킬로스)

사람은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을 때 미움도 가장 많이 받는다.(J. 드라이든)

사람의 마음에 시기심만큼 강하게 뿌리 내린 감정은 없다.(R. B. 셰리든)

시기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예프투셴코)

시기하는 자는 자기 화살로 자기를 죽인다.(익명)

질투는 휴일이 없다.(베이컨)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라로슈푸코)


이 중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는 말이 와 닿는다. 상대편을 사랑해도 자존심을 챙기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니던가. 보통 사람은 자존심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할 만큼 이기적이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작가가 소설에서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해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렸다면, 그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세상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 고통에 독자가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세상이 되기 위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그 고통은 그저 타인의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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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5-1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간만에 언니와 제가 같이 읽은 책이 나왔네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읽은지 꽤 되죠. 서재 활동 초기 때였던 것 같은데.
살짝 지루했던 것 같기도한데 나름 괜찮았던 책으로.
원래 독일문학이 좀 그렇잖아요. 요즘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어디 좋은데 다녀오셨나봐요. 어제 소나기치곤 장맛비처럼 내리고 약간 후텁지근한 것으로 보아
이제 초여름으로 넘어가려나 보다 싶어요. 덥기 전에 잘 다녀오셨네요.^^

페크pek0501 2025-05-17 20:36   좋아요 0 | URL
하하~~ 오늘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를 완독했어요.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아이디어가 기발하잖아요. 그림자를 풀밭에서 살짝 거둬들여 둘둘 말아 접어 가지고 간다는 것.
그림자를 주는 대신 금화 주머니를 받게 되어 부자가 되었으나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고 사람들한테 무시 받는 존재가 됩니다. 과연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ㅋㅋ여러 가지를 유추해 보라는 게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집니다.^^

yamoo 2025-05-17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끝내줍니다. 그리고 싶은 풍경이네요. ㅎㅎ
저도 그림자를 판 사나이 재밌게 읽었더랬죠. 가장 필요없은 게 인간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라 일종의 동화책 같았죠.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17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이런저런 글을 끌어다 썼어요. 지금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신록이 한창 예쁠 때라서요. 한번 그려 보십시오. 푸른 5월의 풍경을!!!
저는 그림자를~ 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가지고 있어야 차별 받지 않는다, 쪽으로 읽었어요. 이민자, 성소수자 쪽으로도 생각해 봤네요.^^

잉크냄새 2025-05-17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가 연두연두 초록초록 합니다.
계절을 걷다 보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이맘때즘의 계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페크pek0501 2025-05-18 15:50   좋아요 0 | URL
연두 초록이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건가요?
잉크냄새 님의 표현이 참 좋으십니다!!

서니데이 2025-05-18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지난번 서재 사진의 분홍색 꽃도 좋았지만, 연초록 풍경 사진도 참 좋네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없다고 생각하면 결핍이나 소외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지만,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다음에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사진 잘 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18 15:55   좋아요 1 | URL
날씨가 참 좋네요. 집에 있기 아까울 정도로요. 그러나 집에 있는 게 저는 더 좋아요.
연초록도 예쁘지만 빗물이 고여 있는 게 맘에 들어 서재의 전체 배경으로 올려 봤어요. 의자 밑에 빗물이 있지요.
다수의 모양새나 성향을 따르지 않으면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문제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흥미를 끄는 소설입니다.
푸른 5월이 길게 길게 ~~~ 머물다 가면 좋겠습니다^^


2025-05-2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2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5-05-2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참 잘 찍으시네요.
초록으로 가득찬 화면이 너무 좋네요.

시기와 질투.
저도 한때 질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어차피 질투한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투 자체를 안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질투를 해서 내가 뭔가 달라진다면 그건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질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저는 달리기 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저렇게 잘 달릴 수 있는 젊은 신체에 질투가 나지만,
저는 절대 젊은 몸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아무 소용없는 감정입니다.
그냥 이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이고,
이 몸으로도 어떻게든 달리기와 다른 좋아하는 운동들을 잘 하도록
익숙해지는 길 밖에 없겠지요.

페크pek0501 2025-05-23 12:14   좋아요 0 | URL
사진은 스마트폰 덕분입니다. 사진 찍고 나서 색상을 밝게 입히고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는 등 편집을 합니다. 사진 잘 찍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잘 모를 땐 대각선 구도를 활용하라고 하더군요. 맨 아래의 두 사진이 대각선 구도죠. 완전한 대각선보다 살짝 비껴가는 듯해야 더 좋은 것 같아 그렇게 찍는 편입니다. 사람만 없으면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이 끼인 사진이 많아 잘라내곤 합니다. 초상권 침해, 운운할까 봐서요.ㅋㅋ
저도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는 말이 와 닿더라고요. 젊은이들이 당연히 부럽죠. 더 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이것도 불가능한 바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