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경제학 - 세상을 바꾸는 착한 경제 생활
줄리엣 B. 쇼어 지음, 구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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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속가능성을 위한 소비. 입문서로는 쏠쏠한. 다만 정리에 충실하고 독창성은 미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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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1-06-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3의 경제학이라는 영역을 저자가 더 깔끔하고 과감하게 구성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 단, 감안해야 할 것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소비, 윤리적 소비를 둘러싼 담론의 갈등이 워낙 미약하단 사실. 그래서 뻔한 말들이 돌고 돈다는 한계. 찬사든 비판이든 '윤리적 소비'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들이 진부해보이는 건 왜일까. 어쩌면 그 찝찝함이 우리 시대의 징후일지도.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
가엘 게르날레크 레비 지음, 문신원 옮김 / 프리미엄북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푸코의 리비에르 사건 관찰기 만큼이나 흥미로운. 임신의 사회심리를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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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1-06-0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연결고리 : 마이클 센델의 생명윤리에 관한 논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내용과 함께 버무려 생각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 1 -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분위기? 김수현이거나, 임성한이거나 

김수현 드라마의 그 조근조근한 태도로 삶을 되뇌이는 대사 맛 혹은 임성한 드라마의 인물들이 뜬금 없이 내던지는 한국 사회에 대한 현실, 그것을 기괴스럽게/ 속물스럽게 내는 맛. 박해천 선생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이 두 맛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 두 맛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아파트'란 놈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 당연한 담론의 장소로 늘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또 그 이야기야?"하지만(여기에는 '막장'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며 우리의 고단한 삶을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려는 현대인들의 반복된 일상이 포함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느새 '또 그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는 상황. 우리는 이를 "한국 사회의 무엇"이란 말로 제법 유식하게 포장하여 하룻밤을 지샐 준비가 되어 있거나, 또 누군가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에이..말도 안 돼"라는 불신 섞인 반응과 함께 그 이야기를 더 믿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는 아마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감수성을 지닌 것 같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가 선택한 시선들은 저 삶 속에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지만, 그 반복된 이 한국의 / 도시의 / 서울의 이야기가 '반복의 재미'를 주고 있음을 저자 본인이 알아채고 말하는 듯한 '경험의 눈'을 가졌다. 그 눈으로 그려낸 이야기. 이것이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분위기다. 

 

 

# 2 '1 픽션'의 효과에 대한 아쉬움

좀 에둘러가는 설명을 버리고, 이 책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간략하게 읊조리자면, 저자는 "아파트는 한국의 시각 문화를 어떻게 변모시켰는가라는 질문을 내던지고 그에 대한 해법을 구해가는 여정을 담고"(7)싶었다 한다. 우선 이를 위해 '가짜 자서전' 혹은 '허구의 회고담'이라는 글쓰기-형식을 시도한다(이는 '1-픽션'이라는 챕터의 내용을 채운다). 이 형식을 이끌어가는 행위자는 "1960년대 초반 완공 당시의 마포아파트를 바라보던 항공 카메라의 시선, 반포에서 압구정을 거쳐 잠실로 이어지던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197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강남의 아파트에 거주해왔던 1940년대생의 강남 1세대, 그리고 최근 고급 가전제품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각광받고 있는 꽃무늬 장식, 이렇게 1명의 인간과 3개의 비인간"(8)이다.   

저자는 "3개와 1명의 행위자들 뒤로 숨어"(8), "그들은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10)라는 표현으로 저자 자신의 시선을 '수줍게' 서문에서 예고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숨기 효과'가 그렇게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 들진 않았다. 인물의 회고 속에 그리고 비인물의 '의인화된' 시선 속에 들어간 '저자의 그 방대한 지식'이 저자가 택한 여러 소설의 구절과 엮이어 나는 글 속 내음이 군데군데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저자가 조직해놓은 그 지식의 구성도가 주는 위압감은 '화자'의 생생한 맛을 잃어버리게 하는 효과로 나타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가상의 입'을 빌릴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그것을 신경쓰며 지식을 편집할 때 쓴 에너지(설정된 가상- '화자'의 입에 알맞게 배치될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는 에너지)로 더 새로운/섬세한 이야기들을 하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면 좋았을 걸.  

저자는 가상의 화자들을 설정함으로써 아마도 그 화자들을 둘러싼 진부한 담론들을 각개격파하고, 이로써 아파트에 대한 그리고 아파트를 관통하는 시각 문화에 대한 제 3의 관점을 설명/발굴하고 싶었는 듯 하지만, 읽는 사람이 '가상-화자'라는 주체에 대해 의식을 하게 만드는 독특함의 수준은 그리 높게 평할 수 없었다. 즉, 1명의 인간과 3개의 비인간의 입을 빌려, 저자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싶다는 솔직함, 그리고 당연히 독자들도 그 형식을 빌어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는 상식적인 이해는 이 책을 여행하기 전에 모두가 따르는 여행의 규칙임은 뭐 당연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와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대감 즉,저자가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그 가상-화자들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내는 독창적인 목소리, 그것의 재현이 가능할까라는 기대감 차원에선  그것이 그렇게 돋보이지는 않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한땀 한땀 뜬 '1-픽션의 형식이 챙기고 싶어하는 효과'에 대해선 그 정성 만큼에 비례하는 인정을/공감을 표할 수 없었다. 

 

 

# 3 디자인의 정치학/사회학이 건네는 몇 가지 메시지들 

 3.1 '지배의 미학'을 간파하기 -  계획과 구성, 도시 생산의 언어

 그러나, '1 픽션'의 형식-효과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할 만한 저자의 시선을 채우는 내용, 그것에서 새어 나오는 디자인과 사회적 관련성에 대한 저자의 문화학적 혜안은 (문화연구가 늘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상의 문화가 (끊임없는 해석과 규정 속에서) 늘 자극 충만한 그리고 재미있는 것임을 알려주는 통로가 된다.  

"지배는 그 자체의 미학을 가진다" - 마르쿠제 

우선 저자의 시선에 동참하고 싶다면 당신은 간단한 워밍 업 정도는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책이라면, 저자가 참여했던 단행본 기획서 중 <한국의 디자인 02 -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현실문화연구,2008)에서 <공전하는 파편들 / 80년대 시각문화에 대한 몇 가지 기억>정도는 읽어주면 좋다. 저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사회문화사적 관점을 빌어 아파트의 특수성과 한국 사회의 맥락을 연결짓는 언급을 자주 하는데,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나누고 해석해보고 싶다면 권유할만한 글이다. (나도 이 글의 도움을 얻었다) 저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작하면서 도시 공간을 둘러싼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을 관장하는 건축가, 그 의미를 해석하는 비평가, 또 그 건축가와 비평가가 무시할 수 없는 국가 /사회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계획'과 '구성'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체제. 여기에 저자가 본격적으로 건드리려는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조건이 더해지면서 저자는 '계획'과 '구성'이 단순히 도시를 가꾸는 '디자인'적 언어를 넘어, 지배의 언어로 한국의 아파트에 연관되어왔음을 이야기한다. '지배의 미학' 그것은 '디자인의 정치학'으로 설명할/ 간파할 수 있는 상징이다. 우리가 리펜슈탈의 영화에서 느꼈던 그 '일치단결'에 대한 소스라침을 계속 곱씹어 본 적이 있었다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디자인'의 언어에 정치가 들어간다는 것이 전혀 이상할 리 없을 것이다. 아파트는 집단, 집중, 집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 개발'의 진취성을 알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 아파트에 거주하게 될 사람들 자체를 '모델'로 삼아 한국의 근대화가 더욱 발전되어야 하는 당위를 계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3.2 디자인의 사회성, 배출되는 문화  

 저자는 한국의 정치사 속에 내포된 정치 기획적인 디자인의 언어, 그것이 구성한 도시상 속에서 한국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부딪힌 사물 그리고 그 사물에 밀착된 디자인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마치 장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 1968>를 연상하게 만드는 저자의 '구성된 눈'은 한국 사회가 집착해 온 '스위트 홈'의 욕망을 집 안에 배치된 사물 각각의 특성을 설명해가며 끄집어낸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시각 문화라는 관점 속에서 거울/창(窓)의 의미, 베란다의 의미, 텔레비전의 의미, 세탁기의 의미, 욕실의 의미, 화장실의 의미, 거실의 의미 등등에 대한 설명을 해 나가는데, 여기에는 도시사회학,가정학,문화연구,역사학,여성학 등 다양한 학문 분과가 한 번씩은 밟아 나갔던 한국 근대화 과정과 주거 문화의 연관성에 대한 학술적 성과 참조, 그리고 도시성을 주제로 한 소설 구절들과의 조우 과정이 개입된다. 특히 저자가 신경 쓴 부분은 한국-서울-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이 섞는 생활 언어가 소설가 특유의 사색으로 조명된 몇몇 소설 구절의 인용, 그것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박완서의 <서울 사람들>, 정이현의 <특별 과외>, 김영하의 <이사>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서울을 살아간다는 것의 심정을 두텁게 표현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2의 내용과 유사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의도한 실험성일 수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인문/사회학자들이 소설을 인용하면서 그 소설이 가진 깊이를 도구적으로 채용하는 부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있어 소설의 구절 각각이 갖는 공감과 저자가 이런 소설 구절이 갖는 삶에 대한 진득한 성찰에 기대어 선보이려는 또 하나의 효과에 대한 공감은 읽으면서 구분하고 싶었다.  

다만, 저자가 풍부한 참조를 통해 '스위트 홈'을 구성해 온 사물의 체계를 해부하고, 각 사물의 기능과 상징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역사적 맥락과 성실하게 잇는 작업은 '디자인의 단독성'?(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이 아닌 '디자인의 사회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디자인의 사회성'은, 즉 사물과 함께 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사물의 사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문화적 상징을 돋보이게 하며, 무엇보다 그 사물과 공존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특징과 늘 관계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관계가 인간의 문화를 배출시킨다.  이러한 '디자인의 사회학'은 인간의 감정을 (아파트의 기능과 함께)/ 동일한 형태의 아파트를 '구별 짓게' 장식하려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아파트는 '재산 증식'으로서의 장소로 늘 경제와 인간 도덕의 틀 속에서 뻔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더 깊이 아파트의 문화적 의미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파트에 투영해 온 실천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그 사례들이 하나, 둘 보여지면서 하고 싶은 아파트에 대한 저자의 변은  아래의 구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옮긴이 :박해천의 말을 전하는 가상의 화자)는 감각의 생산양식을 구축해 거주자들이 독특한 시각성의 논리를 체화하도록 노력했고, 일상성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독특한 구별짓기의 알고리즘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들 내면의 윤곽을 주조하는 거푸집이었던 것이다"(67)

   

 3.3   디자인과 사물의 친밀성, 그 사이에 있는 인간 욕망의 내밀성 

 '디자인의 정치학'을 통해 지배의 언어를 간파하고, '디자인의 사회학'을 통해 아파트를 구성하고 있던 한국 사회 내 '스위트 홈'에 대한 욕망의 발견이 사실 저자의 독창적인 작업 성과라고만 볼 수 없다. 일찍이 린 슈피겔, 로저 실버스톤, 에릭 허쉬, 데이비드 몰리, 소냐 리빙스턴, 아르준 아파두라이 등 많은 미디어/문화연구자들이 '가족'의 상징성을 구성하는 사물 연구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 당시 근대성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공적 영역/사적 영역의 구분, 발달된 소비 문화와 이와 유관한 가족 내 정체성의 재구성 등이 한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일상문화연구의 뜨거운 테마로 떠올랐다. 이 연구 과정은 가령,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물이 곧 미디어이며, 그 미디어가 집 안에 어떻게 배치/활용되는가가 곧 그 집의 이미지, 그리고 그 집을 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가족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보여지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이론화 작업 및 사례 연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더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 연구자들의 책을 구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개인적으로 로저 실버스톤과 에릭 허쉬가 기획한 <Consuming Technologies, 1992>를 권하고 싶다.) 

이 연구들의 성과가 집적되면서, 그 집적된 결과물들의 혜택을 독서 과정을 통해 누려본 결과를 잠시 공유하자면 우리의 집을 구성하는 사물들, (학술적으로는 주로 '홈 테크놀로지'라는 개념을 쓰는데) 그 사물의 기능과 상징을 매개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사물, 사물을 휘감는 디자인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디자인의 상호관련성'이라는 그 진부한 메시지를 넘어 디자인이 어떻게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특수성을 닮아가려 하는지, 인간은 사물과 사물의 디자인의 기능과 상징에 어떤 영향을 받고, 그 받은 영향을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려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되묻는 게 필요한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여기서 특히 한국 사회의 거주 문화를 집중 분석하면서 그 거주의 의미에 인간과 사물의 관계가 서로 끊임없이 맺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맺어짐은 사물의 기능에 단순히 끌려다니는 인간의 모습과 사물을 주체적으로 소유/활용함으로써 타인에게 자신을 '재현'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사회인임을 확인받는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기나긴 /반복적인 현대인의 싸움 가운데 아파트는 늘 핵심이 되어 왔다. 그리고 '피로감'이 될 정도로 우리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에 그 피로감은 둔감함으로 바꾸었나 할 정도로 또 아무렇지 않은 주거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저자가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은 '솔직함'일 것이다. 저자가 정성을 들여가며 쪼개어 놓은 아파트의 의미, 아파트 속 방의 의미, 그 방을 채우는 사물의 의미에는 인간이  추구하고 싶은  내밀한 욕망이 있음을, 그리고 현대인은 스스로 늘 그 욕망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함을 은밀히 발설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 4. '곳'을 비우거나 또 채우거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다 비우고 다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곳'을 다 비울 때 나타난 그 공백들(흰 벽지만이 남은)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걸까. 그 공백 자체가 디자인이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그 순간 어떤 마음을 디자인하고 싶은 걸까라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리고 나는 '곳'을 비우며, 채워졌던 옛 시간에  남겨졌던 사물과 벽 간의 먼지, 그리고 검은 자욱들을 바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내내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나 이외에 이 집을 채우는 모든 사물들이 나 빼고 이미 친해져 있던 것일까. '곳'을 비우거나 또 채우거나. 사물에게 말 걸기. 디자인과 친해지기. 내 욕망에 솔직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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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5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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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최상의 해결어로 떠오른 한국 사회에서, 그것을 극복할 인간-언어에 대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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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디어를 연구하는가? 방송문화진흥총서 94
로저 실버스톤 지음, 김세은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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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재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에스엠시알이' 에 지친 언론학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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