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박에 가득 담긴프리지어 흥정하며비싸다고 툴툴대던 사내에게안개는 덤이라며한 다발 얹어 주는 꽃 사내안개꽃 한 다발에얼굴 웃음 감추면서속주머니 열고 있는중년의 한 푼수봄눈 녹아거리는 촉촉하게 윤이 나고은행잎 쫌쫌 입을 내미는태평로 한 자리손에 쥔 꽃 무더기만나는 첫 사람에게 이유 없이 안기리라푼수 푼수,꽃푼수-31~32쪽
멸치 똥이 아니라 멸치 속이여그게 실은 멸치 오장육부라니까오죽 속상했으면그 창자가 그 쓸개가 그 간댕이가모두 녹아 꼬부라져 시꺼멓게 탔을까푸른 바다를 입에 물고 헤엄치던그 생생한 목숨가마솥에 넣고 끓여 대고 그것도 모자라다시 햇볕에 말려더 이상 오르라들 것도 없는 몸또다시 끓여 국물을 내고너덜너덜한 몸통은 걸려 버리는그 신세 생각하며속이 다 꼬실라 진 것이란 말여똥이라니똥이 아니라멸치 속이라니까우려먹고찍어 먹는-16~17쪽
나무종이에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무도 그만큼 자라는지 궁금하다 종이에다 글을 쓰다 잘못 해서 버려도 나무가 그만큼 더 빨리 자랄는지 걱정이 된다 내가 종이에다 쓰는 쓰잘데 없는 글 때문에 나무들이 자꾸 스러지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구겨진다-98쪽
세월바람벽에 못을 치고달력을 건다한 달에한 장씩 넘기면서달력 어깨에 쌓인앙금을 턴다-97쪽
밥할머니는 평생밥 밖에 몰랐다아가 밥 먹어라 - 밥 먹다가동냥치 밥 주고설거지 끝나면개 밥 주고벽시계 밥 먹이고성냥골로 귓밥 파다가감나무에 남은까치밥 쳐다보다가대처로 나간큰아들 생각한다(밥이나 먹었는지...)-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