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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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열한 살짜리 소년 디아만테와 아홉 살 소녀 비타는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의 엘리스 섬에 도착한다.

자식을 다섯이나 굶겨 죽일 정도로 가난한 석공의 아들인 디아만테는 오로지 동생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과

의지 하나만으로 미국에서의 힘겹고 험난한 생활을 버텨나간다.

똑똑하고 강인하고 고지식한 디아만테가 꿈꾸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비타는 감성적이고 즉흥적이고 다혈질이다. 비타에게 유일한 남자였던 디아만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디아만테는 10년이란 시간을 댓가로 지불하고서야 진정한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패배자가 되어 이탈리아로 되돌아 오지만 그 후의 삶도 밝지 않았다.

단지 그의 후손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물려주었을 뿐이었다.

비타는 이탈리아로 떠난 디아만테가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서양을 건너 그에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 했다. 38년후이긴 했지만.

 



 

비타와 디아만테의 이야기는 20세기 초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해 간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사이다. 그 시절 가난과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던 이탈리아 남부출신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인 멜라니아 마추코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던 디아만테의 실패한 삶이 사실 후손들이 누렸던 자유로운 삶의

씨앗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녀가 되짚어 나간 디아만테의 삶은 자신의 핏줄의 기록이었고 할아버지가 댓가로

지불한 10년간의 삶이 결코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판결서의 기초가 되었다.

 

비타의 아름다움은 강인하고 자유로운 영혼때문에 더욱 빛났을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세사람의 남자는

그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 부와 권력을 누린 로코, 어둔 광산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로 팔 하나와 7천달러를

얻은 제레미아는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 풍족한 삶을 살고자 했던 꿈을 접고 미국에 정착한다.

그리고 비타가 유일하게 붙잡고 싶었던 사랑의 남자 디아만테는 그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  대부분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삶이 이 세남자의 삶과 닮았을 것이다.

4년을 노예처럼 일하고도 고작 30달러만을 손에 쥔 디아만테의 삶이 또한  그 시절 그들의 삶고 비슷했을 것이다.

 

사랑은 인생을 충만하게 하지만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디아만테와 비타의 삶은 불행했을까.

아니면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까.

비록 늦었지만 대서양을 건너 그에게 온 비타의 손을 왜 잡아주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았던 다이 대위에게 자신이 아버지임을 말해주지 못하고 끝내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는지...묻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붙들지 못했던 디아만테의 초라해 보이는 삶은 자신의 손녀의 책속에서

강인함과 섬세함을 지닌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00년간의 궤적을 따라 할아버지와 자신의 핏줄,

아니 그 시대 이탈리아인들이 선택한 삶에 타당성을 증거한 작가의 정신이 너무도 감동스럽게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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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지옥 紙屋 - 신청곡 안 틀어 드립니다
윤성현 지음 / 바다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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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 싶었던 남자가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사람에 더 가깝고, 세상일에

치열한 고민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기엔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크다는 걸 깨닫고

감수성과 열정이 미덕이 되는 직업을 찾아 결국 라디오 PD가 되었다고 했다.

전국이 있는 현역 라디오 PD의 수가 오백명 정도라니 라디오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너무 적은수라 놀랍기도 하다.  이 남자처럼 라디오 PD가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여

이직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급격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점 라디오 PD의 설자리가

없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진로수정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단지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남자처럼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맘을 접으라는

조언이 더 적당한 말이겠다. 이 남자가 진행한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없어 '잘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겠지만 틀림없이 제대로 만든 방송일 것이다.

이름의 중성적인 느낌때문에 여자가 아닐까 시작했던 초입에서는 시니컬하고 제맘대로 해보겠다는

우격다짐때문에..아하 고집있는 남자구나..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이남자 웬만한 여자보다 섬세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아직 옛 태를 간직한 부암동에 살면서 고즈넉하고 맘편해서 좋다는 그의 성향에서 아직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골목을 지나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냄새를 맡으며 의외로 소박한 '카레라이스'로 허기진 영혼까지 채우고

아침 빗소리에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일줄 아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를 웃게해줄 유머를 익히고 그녀를 위한 노래를 직접 만들어 들려주고 싶다는 이런 남자가 만든

작품이라면 일단 진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드는 감동이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지금 제 자취방으로 온대요. 청소를 안 해놨는데 걱정이에요'라는 청취자의 고민에..

'피임이나 잘 하시죠' 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는 일순 냉혹해보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군더더기 없고

효율적인 대답인가. 이 대답에 악의적인 독기가 느껴지는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취방까지 찾아온 남자와 우아하게 차만 한잔 마시고 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고치고 후회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자는데...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키고 PD의 자격을 운운

했다니..우주선이 하늘을 떠다니는 세상에..이 무슨 짚신 옆구리 터지는 소린가.

의식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면 죽은 듯이 침묵하는 것이 중간은 간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자신과 대화하는 이 남자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내가 던진 돌로 하여 상처입은 사람들이 없는지를 먼저 헤아려 볼일이다.

이 남자를 깊은 밤 출출해지는 시간에 '심야식당'의 간판에 불을 켜고 배고픈 사람들을 기다리는 맘좋은

식당아저씨로 생각했다면 오산이지만 적어도 뭔가에 허기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남자임은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한권을 남길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니..이 책으로 남자의 자격은

갖춘셈이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러주고 사랑하는 여자를 웃겨주기 위해 익힌 유머를 써먹을 상대를

만나기는 한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의 허기를 채워줄 사랑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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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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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는 일본 열도 4개 섬중 가장 작은 섬으로 그곳에 있는 88개의 천년고찰을

차례로 참배해가며 하나의 원으로 완성하는 순례길이 있다.

1200년전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 스님이 시코쿠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수행한 것이

시초가 된 이길은 연간 15만 명의 순례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찾는 동야의 산티아고 같은

순례지다.

 



 

이 곳을 걷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끝없는 추락의 끝에 다다른 후에 벼락처럼 정신이 들어

도대체 어느 길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혹은 고단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제발로 걸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싶어..그리고 지금껏

받아온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에..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이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저자인 최송현은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아 그 길로 깊은 산속에 들어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산속에 들어갔던 것 처럼 그렇게 시코쿠의 순례길이 접어든

이 작가는 이제 자신이 쓴 이 책이 누군가에게 벼락이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순례는 저의 종합병원이에요. 아마도 저는 죽을 때까지 일 년에 적어도 한번은 순례를 다닐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삶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상처받고 가끔은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샹그릴라를 찾아..혹은 부와 명예를 찾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정작 참다운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정표도 없는 길위에 내팽겨진 것 같은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약으로도 사람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려 끙끙거리게 될 때...비로소 시코쿠의 순례길이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혹은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보일것 같은 이 길이

나에게도 치유의 길이 되어줄 것인가.

 



 

' 순례 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도장이었고 그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순례자에게는 안내자이자 사범이자

스승이었다. 날씨, 사람, 하늘, 바다, 풀, 벌레, 이야기, 자동차, 강, 바람이란 이름을 가진.' -254p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던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부처였고 스승이었음을 이제

내가 알겠다.

그가 만난 부처를 나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일본말을 잘해야 할텐데...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의 눈빛을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가 없는 내가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의 뜻을 어찌 읽어낼 것인가.

아니 솔직히 '모기여 자네 집이라는 건가 왜 자꾸 무는거야'하며 툭툭 떨쳐버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난 아직 문명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시코쿠의 순례길에  흰색의 수의를 닮은

하쿠이를 입고 외로움과 싸우며 걸을 자신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 집착과 욕심과 인연들이 너무 많아 나는 속물의 걸음으로 그곳을 걷기가 두렵다.

 

'내 영혼은 홀로 있기를. 침묵하기를. 대자연에 마음을 열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 영혼의 밥이었다.

그것을 통해 내 영혼은 자랐다.' -248p

 

그의 등을 허락도 없이 타고 앉아 시코쿠를 돌아본 것 만으로도 바다거북의 긴 호흡이 느껴졌다.

거북이는 인간을 용서했지만 나는 여전히 복장이 터지고 분노가 끓어 올라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기만

하고 시코쿠의 순례길은 오늘에서야 내 시야에 들어왔건만 비겁한 나는 짐을 꾸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멀지 않은 시코쿠의 거리감때문에 핑계거리마저 빈약해진 변명을...오다이시상은 용서해 주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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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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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몇 십년에 걸친 추적을 곁들여 풀이해 놓은 책이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자식 역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로 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 혹은 무관심과 폭력 같은 일들이 아이가 자라 평생 살아갈

그 시간속에 얼만큼 큰 자산으로 혹은 상처로 각인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잘난 부모, 성공한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족함이 없이 성장하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가 훌륭한

부모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거릿 대처라면 대영제국의 '철의 여왕'이라 불렸던 대단한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온통 정치에만 관심을 두고 딸에게는 아주 소홀했던 엄마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영국국민들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생명을 주고 핏줄을 나눈 자식에게는 냉혹한 엄마였을 뿐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나 마리린 몬로의 부모 역시 좋은 부모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로 부터 버려지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역경을 극복한 스타들이

우울증이나 망각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이나 마약으로 인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성공의 시간들 틈틈이 마치 숨어있던 도둑이 갑자기 나타나듯이 정상적인 생활속에 숨어

들어와 행복을 훔치는 과거의 상처들은 보이지 않는 칼날과도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구덩이에 빠졌어도 잘 헤치고 나와 칼날에 휘둘리지 않고 성공한 삶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절망의 끝에서 만난 생부에 의해

혹은 이모나 고모같은 친척이나 다양한 멘토들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한 경우에는 끝까지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와이 카우와이 섬에서 태어난 약 7백명의 아이들을 40년 넘게 추적한 결과를 보면

환경이 어려운 여건에서 자란 210명의 아이들중 3분의 2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3분의 1일은 위험도가 높은 가정에서 자란아이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난을 이기고 자신이 자랐던 환경을 자신의 2세만큼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극복의 의지가 있다고 한다.

 

이렇듯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장술이 많고 이기적인지 잘못된 사실을

실제처럼 믿고 기억함으로써 평생의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기억들을 드러내고 치유함으로써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고 상처가 있었다면

치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에 시달렸던 미국의 유명배우 스티브 마틴의 경우를 보면

 

어린 시절의 불행을 많은 사람들에게 당당히 밝히고 불행한 과거가 자신이 예술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지금은 흰머리를 휘날리며 코미디영화의 대가가 된 그의 삶자체가 바로 멘토인 것이다.

 

판단이 어렵고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던 어린시절의 무력함은 어쩔수 없다고 치자.

다행히 곁에 손을 잡아주고 능력을 알아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그건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그럴 사람조차 없다고 해도 스스로 소중하게 자신을 관리하자.

 

인생에 고비마다 만나는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순전히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과거의 상처에만 매달려 도태된다면 엄청난 확률로

이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어린 자식에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고 하지 않던가.

유년의 상처를 스스로 따뜻하게 끌어안는 방법만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으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면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탄생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행복한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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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금학도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4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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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되고 소망에 아름다움을 빼면 욕망이 된다' -237p

 

내게 가진 소망이 혹 욕망이 아니던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거리에 쓰레기가 적어질수록 오물은 엉뚱한 곳에 쌓이고 멋지게 차려 입은 옷속에 웅크리고 있는

속물은 가리고 싶어도 자꾸 삐져 나오려고 한다.

 

배고프던 시절에는 밥 한그릇이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쓸데없는 살이 덕지덕지한 요즘,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웬일인지 더욱 극심하기만 하다.

믿든 안 믿든 이 세상에 인류가 등장하기전 부터 존재 했을리라 짐작되는 선계(仙界)에 존재들이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속물들 때문이 아닐까.

 

환상인가, 실제인가 모호한 신비의 세계로 이끄는 흰머리의 소년은 누구인가.

인간의 세상과 선계의 세상을 넘나드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걸까.

어느날 용이 되지 못하고 이땅에 떨어진 이무기가 산다는 도로무기소 근처에서 사라져버린 소년!

석달만에 나타난 그 소년은 자신이 신선들이 산다는 오학동에 다녀왔노라고 했다.

백학이 천년을 지나면 현학이 되고 현학이 천년을 지나면 금학이 되어 온통 벽오동나무들이 우거진

숲에서 살고 있고 선계의 그림 한장을 그려주며 언젠가 이 그림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올거라고 소년을 되돌려 보냈다던 그곳...과연 그곳이 있을 것인가.

 



 

정신병자로 오해를 받으면서도 소년은 그림을 들고 다니며 자신을 오학동으로 돌려보내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 사이 세상은 극심하게 썩어가고 신뢰는 병들어 가고 있었지만

선계의 그곳만을 그리며 30년이 지난 어느 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파가 그 단서가 된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이 우주의 공간속에 우리의 존재는 티끌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나역시

알수가 없다. 하지만 '오학동'이 어딘가에는 실제하여 희망처럼 군림하기를 바란다.

 

흰머리소년처럼 누군가가 그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면 꿈으로 끝날 일이었다.

스스로 집착을 버리고 가벼워 짐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그곳!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선계의 오학동과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의 마을이 자꾸 겹쳐졌다.

그곳에도 흰머리 소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쪽이기 보다는 신선쪽에 가까워 보이는 그가 소년이 찾던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속 선계의 마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존재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나누어 주는 신선의

모습이 작가와 묘하게 닮아 있지 않은가.

이 작품 이후 그가 수염을 나부끼며 긴 지팡이를 땅에 부딪히며 일갈하는 것 같은 작품들이

나온 것을 보면 과히 틀린 짐작은 아닐 것이다.

꿀맛을 보지 않고도 달다고 말하고 진리를 겉껍질을 잠시 매만져보고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맹꽁이처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는 오학동의 무덕선인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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