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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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가던 시절에...물론 정조는 이 우물안에서

빠져나오고자 애를 쓰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병인지 독살인지로 삶을 마감한 뒤에 우이도가 고향인

홍어장수 문순득은 3년 2개월에 걸친 표류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나주 영산포에 가서 팔고 쌀과 물품을 사서 섬에 되파는 업을 하고 있던

문순득은 갓 혼인을 한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홍어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고달픈 표류자의

신세가 된다. 보잘 것 없던 배를 타고 거대한 태풍에 맞서 살아 귀환했다는 것으로 보면 행운은 분명한데

만약 그가 단순히 살아 왔다는 것으로만 한다면 그의 이름을 지금 내가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음과 맞서는 험난한 여정속에서도 그의 의지와 빛나는 관찰력과 강렬한 호기심은 결국 그의 고향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을 만나 그의 표류담은 '표해시말'이란 책으로 남았다.

그리고 정약전은 그 젊은이에게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라는 뜻으로 천초(天初)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처음 홍어장수 문순득이란 인물을 만난 것은 KBS역사스페셜이란 방송에서였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았다면 기껏 섬과 육지나 오가는 장사치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에게 태풍은 재앙이었겠지만 당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실학자들이나 이 글을 읽고 있는 후세에

우리들은 분명 어둠에 갇힌 눈을 뜨고 도대체 그 시대에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아마 세상을 떠나기전 문순득 자신도

그 시간들을 재앙으로만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풍습과 많이 닮았다는 오키나와의 역사는 눈여겨 볼만한 기록이다.

단지 전후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미국에게 일본은 반환을 요구했고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그 곳이 사실은 독립된 나라였다는 것도 놀랍고 언어와 풍습등이 일본에 복속되는 과정이

그저 남의 얘기로만 흘려 들기에는 우리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조그만 섬출신의 장사치가 험난한 여정을 견디면서도 총기를 잃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응용하려했던 그의 지적 호기심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수많은 표류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인물임에는 분명해보인다. 더구나 정약전,정약용 형제를 만나 이렇듯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의 눈을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간절함 바람같은 것이 하늘에

닿았던 것이 아닌지. 그가 사상이나 당파에만 얽매인 양반이었다면 결코 이런 생생한 기록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적극적인 장사치로서의 사고가 큰 도움이 되었던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여정이 흥미롭기만 하다.

조선의 신통치 않은 배라도 제대로 만들어 보기를 소망했던 염원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넓디 넓은 세상에서 보고 들은 문순득의 귀중한 체험들이 가난과 억압으로 신음하던

불쌍한 백성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음은 당파싸움에만 연연하던 무지몽매한 양반네들의

한심함이었으니 어찌 다 말로 할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로운 유배생활을 했던

두 형제들에 의해 수많은 저서로 남으니 그것으로 위로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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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 작품집
아오야마 고지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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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 작가이다. '이즈의 무희''설국''금수'와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그의 이름으로 시상되는 순수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의 모음집이다.

 

여류작가인 이나바 마유미의 청각(靑角)은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여자가 여행중에 발견한

시마반도의 바닷가 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하고 마을 사람들과 만날일이 없을 정도로 한가롭기만 마을에서 고양이와

생활하던 여자가 실종된 할머니의 그림자를 보면서 허공에 떠버린 시간들을 매듭짓기 위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빛을 보러가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확히 그녀가 매듭지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김장철에 가끔 봐왔던

청각이란 해초가 문득 그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던 모양이다.

누구든 생각지도 못했던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고 잊었던 기억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대한

결심을 하게도 만든다. 나는 어떤 계기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빛을 찾을 수 있을지..

 

호리에 도시유키의 스탠스 도트는 작가의 나이로 봤을 때 상당히 윗세대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외지인들도 거의 오지 않을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 이제는 더 이상 볼링을

치러 오는 사람도 없는 볼링장에서의 마지막 영업일의 모습은 주인공의 약해진 청력만큼이나

쓸쓸한 느낌이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한때는 예약을 해야 할만큼 북적거리던

영업장을 폐쇄해야 하는 늙은 주인의은 볼링핀의 독특한 파열음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 것조차

잘 들리지 않는 귀때문에 자신의 삶도 같이 저버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잘 그려져 있다.

누구든지 기어이 다가오는 저무는 시간들을 볼링장의 마지막 영업일에 맞추어 담담히 잘 그려져 있다.

 

아오야마 고지의 '슬픈 나의 연인'또한 황혼녘의 쓸쓸함과 한때는 열렬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타오르지 못하는 슬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의 치매를 지켜보면서 늙은 작가는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기저귀를 차야 할 만큼 심해지는 아내의 병을 귀찮아 하지 않고

보살펴주는 늙은 남편의 모습은 눈물겹고 감동스럽다. 누구든 이런 노후를 맞기는 싫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맞게되는 병과 죽음! 삶은 쓸쓸하다. 하지만 어느 시간을 살든 치열하게 그리고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했던 노을의 빚깔을 닮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일본의 순수문학상을 대표하는 작품답게 하나같이 작품이 뛰어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연히 일본의 대지진의 재앙이 있었다. 첫번째 작품의 무대였던 시마반도는

안녕할까? 대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또한번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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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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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우리는 미래의 어느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행성과 무량1호, 혹은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행성들이

우주에 흩어져 있는 그 어느때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지 과거에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음으로..미래의 어느 시간쯤으로

설정하도록 하자. 지구에 외계인들이 쳐들어왔다. 물론 식민지를 만들고 싶어서 왔을 것이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충원시켜줄 인간들이 필요했다.  지구는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을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말하자면 외계인의 본부인 셈이다.

몽땅 부수고 죽이기 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재생산하면서 지구를 보존하기로 결정한

모양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 로봇과 시원찮은 인간들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굴러가기는 했다. 물론 그 인간을 지배하는 건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지도자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빅 브라더'라고 불리는 지도자가 잠깐 지구를 조종하던 시기도 있긴 했었다.

암튼 인간을 뛰어넘는 로봇과 자신의 의지를 잃은 인간들이 그럭저럭 얼키고 설켜 살아가고 있는

지구를 떠나 외계로 떠난 지구인들도 있다.

이리저리 우주를 방황하다 텔레토비 동산처럼 아름답고 골프장을 닮은 풀밭과 초록색 털이

복슬복슬한 동그랗고 살찐 모양이 마치 브로콜리와 닮은 초식동물이 느리게 살아가는 행성에

도착한 남자들과 아이들도 있다.

외계인의 침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한에서 탈출해온 남자와 군대 가기 싫어 지구에서

도망친 남한 남자는 서로가 왜 적인지도 모른 채 총을 겨누다가 결국 그 '브로콜리 평원'에서

최후를 맞는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링커 바이러스의 간섭으로 변형된 유전자로 태어난 아이를

낳고 또 낳아서 좀 더 수명은 짧아지고 이성과 언어를 잃은 후손들이 되어 행성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가끔은 태평양에 떠있는 조그마한 섬을 소유할 수도 있었던 것 처럼 우주에 떠있는 자그만

행성하나를 차지한 늙은 교수도 있다.

잘 만들어진 기성품 시스템을 마다하고 스스로 시스템을 만든 덕분에 나무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지구에서 조선이라고 불려지던 어느 나라에 이생이란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인간의 탈을 쓴 여우족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우의 육신을 감싸는 인간의 탈이 되었다는 옛이야기를

기억하는 인간은 더 이상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다.

 

DJUNA(듀나)라는 필명으로 SF소설이나 영화평론을 쓴다는 이 작가는 미래지향적이고 환상지향적인

인물인 모양이다. 지금 일본은 지진으로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난리이고 지구의 에너지의 보고인

중동 어디에선가는 더 이상 자유를 구속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총을 들고 전쟁을 치루고 있다.

하긴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그동안 영화나 소설에서만 보았던 지구종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브로콜리 평원이 있는 어느 행성에 도착하여 최후를 맞거나 유전자가 변형된 후손을 남길 바에는

차라리 지구가 제 몫을 못하는 마지막 날에 같이 최후를 맞고 싶다.

다소 엉뚱하고 엽기적인 이 책이 문득 공포스러워 지는 것은 정말 미래의 어느 날, 듀나가 상상으로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예언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갑자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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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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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고전 '그리스 로마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와 역사가 버무려진 명작이다.

아마 이 책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 어려운 동화같기도 하고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문명과 사상이 움트고 발전되어온 과정이

아주 재미있게 그려진 이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리스도보다 반세기 뒤어 태어난 그리스의 역사가이며

작가인 플루타르코스가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보다 한세기전에 씌여진 책이다.

 



 

나폴레옹과 베에토벤은 성서보다 아름답다고 했고 에라스무스는 성서에 버금가는 신성한 책이라고도

했으며 에머슨은 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목숨을 걸고 들어가 꺼내고 싶은 책이라고 했을만큼

많은 영웅들이 극찬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유럽중심의 문화가 인류를 선도하기 시작했고

그 계기와 흐름을 따라가는데 너무나 생생한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잘 입력이 안된다는 점이 어렵긴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나 소크라테스나 피타고라스와 같은 인물외에도

그런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신화속의 인물들까지 세세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점은 참 대단한 일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경계가 분명치 않지만 어느 인물이건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사랑을 위해 아비를 배신한 타포스의 공주 코아이토와 메데이아, 스퀼라를 보면 역시 사랑은 핏줄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로 인해 아비가 죽고 제나라가 거덜이 나더라도 말이다.

 

초기 신화를 보면 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신반인의 인물들과 짐승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참으로 열정이 대단했던 모양인지 여러곳에서

자식을 얻는다. 그중에는 저승의 왕 하네스의 아내인 페르세포네도 있으며 결국 영웅 테세우스가

죽음을 맞는 계기가 되는 인물이 된다. 물론 주신(酒神)디오뉘소스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다.

디오뉘소스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제우스의 허벅지속에서 나머지 달을 채워 나왔다는 전설을

가진 인물로 힌두스의 땅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비법을 배워 전세계에 술과 황음난교를 전파하고

결국 자신도 술과 타락으로 죽음을 맞는 비운을 맞는다.

 



 

최초의 민주주의의 씨앗이었던 스파르타의 뤼쿠르고스의 대법전을 보면 참으로 황당한

법령이 있긴 하지만 고대에서 최초로 평등과 시민의식에 대한 열망이 싹튼 것만으로도

인류에게 참으로 대단한 영향을 준 국가일 것이다.

빈부의 차이를 없애고 똑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많은 말을 삼가게 했던 지도자 뤼쿠르고스를

보면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얼마나 한심한 인물들인지를 또한번 느끼게 된다.

여자들도 알몸으로 겨루기에 참가했다거나 약탈에 가까운 결혼풍습, 동성애가 허물이 되지 않았다는

기록은 당시 스라르타의 경직된 사회성에 비해 좀 의외스럽긴 하다.

 

영웅 알렉산드로스가 존경했다는 견유철학자 디오니게스의 어느 권력에도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부자와 귀족들을 조롱하며 평생 여유를 즐기며 살았다니 과연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아니되었다면

디오니게스가 되리라'했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이 책에 등장했던 수많은 영웅들도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것 처럼 보여도 비참한 최후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보면 조의조식했던 디오니게스의 삶도 오히려 거추장스럽지 않아 담백해보이기까지 한다.

'너 자신을 알라'로 사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라 아폴로에 있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문구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그의 아내가 사실은 악처보다는 현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하긴 소크라테스처럼 집안일에 무심한 남편을 어느 부인이 그냥 두고 보기만 했을까.

동서고금 어디를 막론하고 철없는 남편은 넘쳐났던 모양이다.

 

아쉬운 점은 이 작품이 작가의 유고집이라는 것이다. 오랜기간 준비하고 집필하였음에도 진작 출간하지

못했던 이유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대한 미진함때문에 결국 가방을 꾸려 현장을 둘러

봐야 했던 작가의 열정때문이었음을 나중에 부친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알게되었노라는 아드님의 후기를

보니 가슴이 찡해졌다. 그래서일까. 그 시대 그 이야기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의 삽화수준이 놀랍기만 하다.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았던 그리스 로마시대의 영웅처럼 작가 이윤기도 그렇게 살다 갔으니 그와

그리스 로마신화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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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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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모든 것’이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희망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에 대한 바람이어서 희망이다.

악과 부덕과 불운이 넘치도록 많은 세상이어서 희망이 귀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실인 경우가 더 많다.

시력이 엄첨 좋다는 몽골인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법이다.

아무 감정도 없고 있는 그대로를 찍어내는 카메라의 렌즈조차도 조작이 개입된다니

조작된 것들이 진실이고 조작되지 않은 것들이 허구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오직 인류에게만 유전된다는 ’농담유전자’는 이렇듯 공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건강을 선물하고 활기를 주는 ’삶의 비타민’인 셈이다.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작가의 모습은 집 앞 공원에서 마주치는 여느 아저씨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자그마한 키에 중학교 2학년때 서울에 왔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꿋꿋하게 고향의 사투리를 고수하는 그의 고집이 조금 느껴지긴 했다.

 



 

’파이는 파이다’에서 처럼 중학교에 입학한 첫 수학시간 단지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던졌던 질문 하나가 결국 그에게 수학은 끔찍한 학문이라는 지독한 배신감에 빠지게 된다.

"파이가 뭡니까?"

"파이는 너희 같은 촌놈들이 공부 안하면 인생이 파이지. 뭐가 어쨋길래."

사실 사춘기에 있어 스승이란 때로는 하기 싫었던 과목을 잘하게도 만들고 첫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련만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가 한 인간의 생에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수학에 나올만한 문제를 깡그리 외워서 시험을 봐도 대학을 갈 수 있는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막국수에 반해 며칠이라도 막국수만

먹고 지내도 좋을 것 같다던 그의 입맛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음식이기도 한 배추전에 대한 향수와 제대로 된 비빔밥을 먹자고 차를 타고 달려가 기어이

뭉개지지 않고 살아있는 밥알을 느끼면서 행복해하질 않나 중국 사오싱이라는 도시에서 만난

’푸른 파를 곁들인 가지볶음(청총가자)를 먹으면서 싱싱한 파에 적당한 볼륨감을 느끼는 장면을 보면

가히 그의 식도락은 대단한 경지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 ’북방자매점’이란 식당의 세자매를 보며 서시의

아름다움을 떠올랐기 때문에 그 맛이 더 특별할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난 그 집을 선택한 사람이 분명

그 일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주와 맥주를 섞어 먹어 몽롱하였다고 말만 안했다면 누가 선택하였든 대수도 아니었을테지만.

 



 

작가로서 세상을 보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까지 깊게 봐야만 하겠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것들을 봐야 해서 세상 사는 일이 고단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이나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지나 능력은 불수의근처럼 통제불능이거니와,

타고난 팔자려니 어쩌겠는가. 덕분에 잘 숙성되고 제대로 걸러진 약주처럼 맛좋은 세상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고 있으니 모자라고 우민한 우리들은 그저 그의 농담에 웃기만 하면 될것을.

그가 들이댄 카메라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실랄하고 따뜻하고 유쾌하고 담백하다.

 



 

앞으로 그가 세상에 내어 놓을 작품들은 예사롭지 않은 그의 감성과 잘 어우러져

제대로 곰삭은 맛으로 다가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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