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행을 - 칼럼니스트 박사의 '여자들의 여행법'
박사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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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했다. 흔히 여행서라 하면 왁자스럽고 설레임이 있고 흥겨움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하지 않을 남자와 여행을 하고 혼자 여행하기를 두려워 했다는 저자의

발자욱에는 왜 외로움이 느껴질까.

 

-그렇다. 장거리 이동 중에 내가 마주하는 것은 내 안의 거울만은 아니다. 시간과 통째로, 온전히,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그 시시와 각각을 바라보는 것. 그 안에서 내 몸이 천천히 고통에 가 닿으며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103p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서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 장식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녔을 길 위에서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고독과 마주했던 모양이다.

 

 

한 달에 3분의 1을 차지하는 생리가 결코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생리통이 고통스럽고 부피가 큰 생리대를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고 조언할 만큼 여자의

여행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불편하기 때문에 '몸'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는 여자는 참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밖을 봄과 동시에 안을 보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몸'을 들여다 볼줄 아는 여자의 이름이

'박사'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듯 싶다.

 

 

더 이상 여자로 바라봐 주지 않아 오히려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아줌마'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라는데 분명 '아줌마'인 나는 대범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해 짐을 꾸리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이렇게라도 먼저 길을 떠났던 여자의 이야기에 트렁크를 얹고 묻어 다닐 수 밖에.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떠나고야 말 그 날, 나는 이 책을 다시 뽑아들고 여자가 조목조목

짚어주었던 품목대로 짐을 꾸리고 제대로 여행하기 예습을 하게 될 것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주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바라다 보는 법을 익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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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신 1 - 그들, 여신을 사랑하다, 개정판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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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을 쓴다는 일은 능력있는 작가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고증된 사료도 부족했을 것이고 자료수집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제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설은 거의 확실하다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구다라(백제)의 천민의 딸이 일본의 애첩녀였던 미도리의 딸이 되어 적통인

세자를 제치고 왕이 되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수많은 여자와 즐기다가 성병에 걸려 생식력을 잃은 왕에게 거짓으로 임신하였다고

알린 기녀출신의 미도리는 구다라의 천민녀인 순덕을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양 키우게 된다.

자손이 없는 왕을 대신해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가 왕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딸이었던

히미코는 섭정을 하고 있는 대비 수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궁에 입궁하게 된다.

'잊혀진 아이'가 되어 궁안에서 버려진 아이로 살아가는 히미코는 차가운 의지와

인내로 '왕'이 되는 꿈을 놓지 않는다.

왕의 동생인 다카미역시 자신이 가질수도 있었던 '왕'을 자신의 아들인 세자 와타나베에게

물려주기 위해 히미코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히미코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이 물려받을 왕의 자리마저도 히미코에게

넘겨주고 만다. 손에 별모양의 손금이 있으면 천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에 칼로

자신의 손바닥에 별을 그려넣은 히미코의 야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다라의 왕자인 의후는 천민이었던 어머니를 범하여 태어난 서자로서 왕과 세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채 핍박을 당하다가 인질로 잠시 불려온 히미코를 보고 역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자역시 히미코를 탐내자 구다라의 왕은 의후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만다.

왜로 돌아간 히미코와 와타나베, 그리고 히미코를 잊지 못하는 전쟁터의 의후의 엇갈린 사랑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히미코는 왕이 되는 조건에 자신의 자손을 낳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궁을

불로 지지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 히미코를 곁에서 지켜주는 와타나베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히미코는 이복누이 수우와

와타나베를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접게된다.

왕이라는 명예를 누리기 위해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닌 진정한 왕이 되기위해 자신의 사랑과

목숨까지도 바친 히미코의 일생은 고통과 외로움 뿐이었다.

왕이여 영원하라는 기미가요의 주인공이었던 구다라의 여인 히미코!

그녀는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궁에서 현명하게 처신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가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에게 추앙받는 여왕이 되었다. 마치 하늘에 있는 태양처럼 그렇게 빛나는 왕이 된 것이다.

고대 일본의 전통과 의례, 마쓰리의 풍경까지 되살려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과연 일본사람들이 왕이었던 히미코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인정할지는 모르지만 백제의 왕이

왜의 왕이었던 것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숨어버린 히미코의 마지막은 비감하기만 하다. 그녀가 죽자 태양도 몸을

숨기고 온백성은 눈물로 그녀를 추모했다. 사랑했던 남자와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불행한

여자로, 하지만 훌륭한 왕으로 자신의 삶을 다한 히미코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그녀가 통치했던 그 시절의 백성들은 참으로 행복한 백성들이었다.

사랑도 버리고 고독한 삶을 선택하면서도 왕이 되고 싶었던 히미코처럼 우리에게 이런 왕은 왜

나타나지 않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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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걸음의 여행
리처드 C. 모라이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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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운명을 믿는가'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단연코 '믿는다'라고 답할 것이다.

천부적인 미각을 타고난 인도 소년 하산은 비록 사랑하는 엄마를 잃는 불행한 사건을

겪긴 했지만 분명 행운아이다.

도시락배달로 성실하게 일하던 할아버지가 요리솜씨 좋은 할머니의 요리를 미군들에게

파는 것으로 성공의 열쇠를 쥐게 된 것이나 우연히 구입해둔 땅으로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

그런 조부와 아버지를 둔 하산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빈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는

확실히 행운을 가진 아이였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마다 곁에서 조언을 하던 하산은 자신이 뛰어난 미각과 후각을 가진

훌륭한 요리사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폭도들에 의해 엄마가 살해되는 사건 이후 런던으로 나중에 프랑스로 오게된 것도 우연만은

아닌듯 싶다. 뤼미에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이르러 정착을 결심하고 사들인 집앞에 마담

말로리가 운영하는 르 솔드 플뢰뢰르 레스토랑이 있었던 것도 하산의 운명에 프로그램된

길에 있었다.

 

 

읽는 내내 인도의 대표음식인 카페와 탄두리, 그리고 고소한 달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자꾸만 샘솟는 식욕과 싸워야 했다.

프랑스의 이민자였던 인도소년 하산이 미슐랭이 주는 별 세개의 레스토랑 셰프로 성장한 것은

대단한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대마초를 피우고 여자 뒤꽁무니나 쫒던 하산의 능력을 알아보고 앙숙과 다름없는 하산의

아버지를 온몸으로 대항하고 굴복시켜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 마담 말로리의 감각도 대단하다.

숨은 진주를 캐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산이 막연히 짐작한 것처럼 파리의 레스토랑에 취직을 시켜주고 뒤를 봐준 것은 분명 마담

말로리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신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정해진 운명이 있다해도 하산의 노력과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다문화사회가 된 우리도 여전히 이민자에 대해 마음을 다 열지는 않는다.

백인 우월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셰프로 인정받은 하산의 여정이 즐거웠다.

대단한 식탐가인 하산 아버지의 세상과 맞장뜨기법도 속이 후련했다.

왠지 소설속의 이야기만이라기에는 음식의 묘사나 인물들의 묘사가 너무 생생하다.

파리시내 한복판에 도사견이 그려져 있는 '르 시엥 메샹'레스토랑에 피부가 가무잡잡한 인도 남자

하산이 멋진 요리사복을 입고 바쁘게 오갈 것 같은 모습이 자꾸 어른거리니 말이다.

그리고 저자인 리처드 C. 모라이스는 분명 대단한 미식가이거나 식도락가라는 것에 내기를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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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감 - 씁쓸하고 향기로운 야생초의 유혹
아리카와 히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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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달콤 쌉싸름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맛있는 소설이다.

여성작가의 섬세한 터치가 도시에서 찌든 오염된 마음을 산뜻하게 씻어준다.

일본에서 사랑받는 유명작가가 된 이유를 충분히 알것만 같다.

우리 곁에 있는 풀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색다른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그게 그것 같은 잡초에 어찌 마음을 기울였을까.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그리고 그것을 짚어내는

젊은 남녀의 아주 특별한 사랑이야기이다.

'저좀 주워가시지 않을래요? 절대로 물지는 않겠습니다.'라는 행려병자 남자의 첫마디에

웃음이 터진다. 이십대 회사원인 사야카는 회식이 끝난 어느날 집앞 화단에 쓰러져 있는

이츠키란 남자를 만나게 된다. 너무 굶어 일어날 기운도 없이 쓰러져 있던 남자의 첫마디에

별 두려움없이 자신의 집으로 들이게 된 사야카는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성도 가르쳐 주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이츠키는 들에 핀 야생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머위와 달래 고사리와 명아주등 지천에 널린 먹는 야채들이 왜 내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제아무리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다. 모든 풀에는 제각기 이름이 있다지만 내가 아는 것은

쑥이나 민들레정도이다. 하지만 저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고 가진 맛도 전부 다르다.

이츠키는 이런 미묘한 맛의 차이를 가려 요리를 하고 천연에 가장 가까운 맛을 낸다.

편의점이나 도시락체인점의 요리에 익숙했던 사야카는 이츠키의 요리에 감동을 받고

서서히 그를 사랑하게 된다.

도대체 조그만 연립주택안에 남녀의 건전한 동거가 가능한 것일까.

두 남녀의 야생화채취의 소풍이 길어지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요리가 소개될수록 왜 두사람은

건전동거인의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지 안달이 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렇게 독자들의 안달을 잠재우듯 아름다운 결합이 이루어지지만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이츠키!

야생풀을 알아가고 두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에 행복했건만 마지막까지 이츠키의 존재에

궁금함을 해소할 길이 없다. 그래서 사야카의 아픔이 깊어질 수록 나는 책의 마지막장에 이를때까지

읽는 속도를 늦출수가 없었다. 그들이 사랑의 결말이 궁금했고 이츠키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공부가 없이는 쓸수 없었을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역량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재도 특이할 뿐만 아니라 기묘한 동거라는 설정도 기발하지 않은가.

작가의 전작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필적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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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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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의 마음은 의외로 연약하다.

바로 어제도 사랑하는 친구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한 중학생의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였지만 자신을 멀리한다는 게 살해의 이유였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이로 자라 너무아 외로웠을 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지만 외로움만큼은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큰사랑을 부담스러워하여 피했던 친구를 살해함으로써 아픔을 끝내고야 말았다.

누구나 가슴한켠에는 상처도 있고 외로움도 있다.

곁에 있는 누구라도 그 상처와 외로움을 알아봐 준다면 어이없는 죽음들은 없을텐데 우리는 쉬워보이는

이런 일조차 해주지 못하는 얼빼기 어른일 뿐이다.

 

 

어린시절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형과 함께 사는 중3의 강민은 어느 날 자신이

사랑하고 길렀던 강아지 찡코를 무자비하게 때려 죽이고 만다.

극심한 피부병에 걸려 버려진 못생긴 강아지를 거둬 친구처럼 동생처럼 사랑을 나눴던

찡코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고질병인 아토피가 도져 살을 파내고 싶을만큼 괴로움에 시달린다.

공부를 멀리하고 기타에만 매달리는 형은 동생을 잘 돌보지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고 다시 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미나는 폭식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비만녀로 정보지 사장인 외삼촌집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이다. 어느 날 이웃의 소년 강민이 찡코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환청의 원인을 찾아나선 미나는 잊고자 했던 자신의 상처와 만나게 되고 강민과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정신과 오원장의 권유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상담소를 찾은 강민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준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를 감싸안게 된다.

미나역시 이런 강민의 가족들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길을 찾게된다.

아버지도 형도 강민이도 미나도 모두 외로웠기 때문에 상대를 봐줄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기 위해 폭력으로 폭식으로 위장을 한 셈이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야 한다.

친한 친구의 하소연과 이웃의 고왔던 여인의 죽음, 그리고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은성이라는

아이의 고백으로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아픔은 생생한 현실속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굳이 상처를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가.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우리는 모두 상대의 탓만 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직 너무 여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안겨줌으로써 우리사회는 보이지 않는

비극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과 청소년의 문제에 눈을 돌린 작가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화해함으로써 희망이란 미래를 내어준 작가의 결말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문득 손찌검으로 폭언으로 내 아이들에게 비수를 꽂은 일은 없는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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