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기 좋은 시간
김재진 지음 / 고흐의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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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부터 인간은 '이별'을 예약한다.

사랑하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삶을 다하고 떠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예외없는 이별이니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예약인 셈이다.

 

 

누구나 후회없는 삶을 꿈꾸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 살기를 바란다.

때로는 원치않은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다. 엊그제 읽었던 책에서 내 마음에 다가온 문장 하나.

인연도 수명이 있어요. 나와 피로 이어진 사람들도 친분으로 이어진 사람들과의 인연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왔다 가는 모든 생명은 이별이란 운명을 각인한 채 잠시 살다갈 뿐이다.

 


 

팔팔하게 오래 살다가 3일만 앓다 죽자는 얘기가 친구들 사이에 회자될 나이가 되고 보니

살아온 시간들 속에 '후회'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남는 것 같아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나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아팠다기 보다 감사했던 나로서는

아마도 저자가 했던 부모님에 대한 뼈아픈 말들이 그나마 나보다 사랑이 넘쳤던 사람이었구나 싶다. 내 마른 가슴에서 부모에게 했던 일들이 그닥 후회스럽진 않았다.

다만 너무 일찍 떠나버린 동생들에 대한 후회는 넘쳤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만나는 순간이

온다면 용서를 빌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시인이 지나온 시간들을 시로 끌어낸 흔적들 중 유독 이별이나 슬픔이란

싯귀에 마음이 닿는다. 잘 살지 못해서 그런것 인지도.

 

 

한 평생 난 내 안의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까.

들판에 눈보라는 늘 매서웠고 미움과 아픔과 그리움이 담긴 항아리는

여전히 비우지 못해 어느 순간 이 삶을 끝나는 날 아마도 나는

비우지 못한 항아리가 부끄러워 떠나는 걸 망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시집을 보면 소설에 비해 얄팍한 그 무게감이 참 좋았다.

시 한편이 소설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 마저도 무겁다는 걸 알기에

물리적인 가벼움에 잠시 위안이 다가온다.

때로 이해되기 어려운 시도 있지만 인생을 가볍게 살지 않았던 예술가의 무게가

그대로 담겨있다는 걸 안다. 시원한 바람보다 더 먼저 내 가슴에 닿았던 싯귀가

가을을 닮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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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슬로우 퀵 퀵 네오픽션 ON시리즈 15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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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슬로우 퀵퀵~~'

오래된 드라마에서 쿠웨이트 박이란 인물이 추던 춤이 떠올랐다.

춤바람이라고 해서 우리 문화에는 캬바레나 콜라텍 같은데로 춤을 추러 가는 일이

불륜 비슷한 일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제목으로 보면 무슨 춤에 관한 소설인가 싶었는데 좀비 소설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 좀비!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서 끔찍하게 생명을 죽여대는 존재.

으윽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좀비영화는 절대 보지 않는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바다에 표류하는 배안에 죽어 있던 시체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서해안 섬 영생도는 온갖 군상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함축한 것 같은 무대이다.

이상 곽수는 오래전 학생운동을 하다 모진 고문을 못 견디고 동지들 이름을 술술 불었던 경력 이후 고향인 영생도도 돌아와 고기를 잡고 영생수산을 경영하고 이장을 하고 있다.

서해안 고기를 휩쓸어가는 중국어선때문에 사업도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자 농어촌 체험 마을로 선정되어 지원비를 받아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체험마을을 꾸미고 첫 손님인 미래대학교 학생들이 섬으로 들어오기로 한 날!

앞서 표류하던 선박을 조사하던 해경이 다시 살아난 시체에게 물려 바다에 떨어져 사라졌었고 하필 농어촌 체험마을 선정사업을 펼치려던 영생도에 도착한다.

그렇게 시작된 좀비들의 습격으로 마을 사람들과 섬에 도착한 학생들이 차례 차례

죽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도 영약한 인간들은 잘도 숨어있다가 결국 살아온 댓가를 치루기도 하고

누군가는 힘을 합쳐 좀비들을 물리치기도 한다.

마치 두 남녀의 멋진 스텝으로 우아해진 왈츠처럼. 그렇게 살아난 남 녀는 섬을 빠져나간다.

 

어떤 비극이 닥쳐도 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도 죽음도 선택은 아니지만 운명은 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은 겪어야 하는 운명.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들의 존재는 두렵다. 우리 삶속에 다시 등장하는 불행의 그림자처럼. 그래도 합을 맞춰 슬로우 슬로우 퀵퀵 하다보면 불행도 슬며시 비켜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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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탄생 - 인류학, 사회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뇌과학까지 감정 연구의 역사와 미래
얀 플럼퍼 지음, 양윤희 옮김,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기획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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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인류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그간 감정에 대해 연구해온 자료들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감정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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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탄생 - 인류학, 사회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뇌과학까지 감정 연구의 역사와 미래
얀 플럼퍼 지음, 양윤희 옮김,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기획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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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섬세함이나 다양함을 능가할 대상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감정'이란 어디에서 생성되는 것인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해왔던 것 같다. 결국 뇌의 어느 부분에서 느끼고 그에 따르는 호르몬들이 분출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이런 감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을 넘어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감정'이란 오감을 통해 받아들여진 어떤 정보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감정을 느끼는 '힘', 혹은 특징은 유전되는 것일까 학습되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런 것에 주목하여 그간 감정에 대해 연구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저서와 주장을 곁들여 풀이를 해놓았다.

증오와 분노같은 감정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살인같은 범죄를 발생시킨다.

우리 몸에서 감정을 일으키는 회로에 대한 연구는 현대에 이르러 신경과학에까지 이어진다.

 


 

 

결국 감정은 인간의 신체 어느 부분-거의 뇌가 담당한다고 알려져있다-에서 느끼고 그에 따른

반응을 끌어낸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감정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는 이론은 흥미롭다.

흔히 연쇄살인을 하는 사이코패스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욱하는 감정, 분노조절장애같이 극단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범죄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발산한는 것이 좋은지 아예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정의하기 힘들다.

 

 

그동안 이어져 온 감정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처럼 명표한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그저 기쁨, 슬픔, 분노, 고통같은 단어로만 정의하기 힘든 것처럼 감정이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느끼는 마음의 기분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어려운 주제로 이루어진 책이라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본 감정의 결과는 무척 흥미로왔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분노나 고통같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비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이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감정'이란 존재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감정'에 의해 인류는 또 어떤 역사를 써나갈지 궁금해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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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날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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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일생에 하루쯤은 '눈이 부신 날'이 있지 않을까.

다만 그걸 알았는지 몰랐는지만 다를 뿐. 나는 스물 중반이 오기 직전 어느 화창한 봄 날에 아, 오늘이 내 일생에 가장 눈부신 날로 기억되겠구나 했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 눈이 부신 날이 계속되지 않는 법, 누군가는 그 눈부신 순간이 섬광처럼 지나가고 누군가는 오래 오래 머물기도 한다. 사랑이 내게 왔던 어느 날은 눈부신 하루였겠지만 아픈 이별은 언제든지 다가오고 다시는 살아질 것 같지 않는 날들로 변해 고통이 시작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하필 내 친한 친구로 인해 깨져버린 날, 그건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친했던 친구의 배신 합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더 아픈 이별로 남고 마음정리를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의 한 마디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모든 인연에는 수명이 있어요.'

아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에 있었던 인연들과의 이별들도 수명이 있었던 것이었구나.

갑자기 소설속 은처럼 나에게도 위안이 몰려왔다. 내 잘못이 아니었어.

 


 

갑작스런 팬데믹 이후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에게 이상징후들이 보인다고 한다.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 낯설고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이 결핍되고...그런 결핍들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것 또한 앞선 세대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었는지.

 

 

아날로그 시대를 뛰어넘어 디지털 시대가 오고 생각지 못했던 편리의 세상이 도래했을 때, 과연 인류는 행복할까. 서울과 수원을 13분만에 돌파하고 심지어 뉴질랜드를 1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교통시스템이 깔리고 재택근무는 일상이 되는 그런 세상.

하지만 지구오염은 더 심해져서 여러명이 함께 모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상이 되는 그런 세상이 인류가 꿈꾸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이든 천지개벽의 세상이든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가끔 나는 내가 살아왔던 시간속에 존재했던 가난과 불편함과 오류의 어떤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결핍이 없어지는 세상이 왔지만 또 다른 결핍이 기다리는 세상따위을 맞고 싶지 않다.

불편하지만 서로 부대끼고 배려하고 섞여사는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올 때-이미 왔을지도 모르지만-나는 비겁할지도 모르지만 기계로 끼워맞춘 장기같은건 하지 않은 채 점잖은 죽음을 맞고 싶다. 그리고 남겨진 내 아이들이 맞을 미래의 시간들이 편리함에만 길들여 많은 것들을 잃고 새로운 결핍의 시간들을 겪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눈부신 어떤 날'이 미래에 존재하지 않고 이미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했던 따뜻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조금쯤은 두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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