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찰 - 포도청을 통해 바라본 조선인의 삶
허남오 지음 / 가람기획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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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흥미로운데 이렇게도 지루할 수가!

단순한 사실들만 나열한 느낌이라 너무 지루했다.

조선 포도청 조직에 대한 분석 등을 기대했는데 마치 조직도를 그대로 옮겨 쓴 느낌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에피소드들을 보면, 확실히 19세기로 갈수록 민란이 많아지고 공권력에 대한 도전도 자주 일어났는데 진압하는 과정도 매우 잔혹한 느낌이다.

꼭 민란의 의미가 아니어도 포졸들을 폭행하는 식으로 불만 표출을 하다 보니 사망하는 사고도 자주 일어났고 그래서인지 진압은 효수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민중과 관아 모두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폭력이 일상화된 느낌이다.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는 의금부의 문초 장면은 고위 관료나 양반들의 정치적 문제였던 반면, 이 책은 포도청 즉 도적질과 살인 방화 같은 진짜 범죄들을 다루는 관청 이야기라 좀더 살벌한 느낌이 든다.

전문적인 법관들이 없어 수령이 재판까지 담당해야 하므로 형법을 잘 몰라 아전들의 농간에 휘둘린다고 정약용이 <흠흠신서>를 쓴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정약용은 현실적인 학자였던 듯 싶다.

범죄의 처벌은 거의 대부분이 태형과 같은 신체형이었는데 속전을 강요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죄인들이 바치는 속전으로 관아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잡혀 들어가면 엄청난 돈이 들었다.

공노비는 생산성을 담당하여 관청의 운영 비용을 줄였다.

지방까지 관료 조직을 세우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을텐데, 조선 정부는 유향소 같은 향촌 자치제와, 노비제 등을 통해 나름대로 잘 운영했던 셈이다.

폐쇄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500년이나 무너지지 않고 잘 지탱해 갔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오늘날의 북한 사회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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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제 - 중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카와 고지로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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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문고의 번역본인 AK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이면서도 내용은 알차고 번역도 비교적 매끄러워 쉽게 접할 수 있어 참 좋다.

주제를 좁게 잡아 전문적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이 담보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다는 게 장점이다.

살림문고 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시리즈라 생각된다.

일본의 중국학 서적들은 서구 학계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고 그래서 신선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 중 한 명일 듯한 한 무제이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평전에 그치지 않고 한 무제가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기술한 점이 인상적이다.

유학을 국교로 세운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단순히 사상적 통일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주재자로써 권력 뿐 아니라 권위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무력을 앞세운 진시황의 진 제국이 곧 무너진 반면, 무제 이후로 중국의 황제는 서양과는 다른 진정한 전제군주가 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그의 호전적인 성격으로 서역과 남월 등으로 국토가 넓어졌고 그 배경에는 물론 선대 황제들이 닦은 부유함이 기초가 됐지만 역시 구슬을 꿴 것은 무제 본인의 역량이었다.

당시만 해도 쉽게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것일까?

누이 평양공주의 노비였던 위자부가 정식 황후가 되고 그의 오라비 위청이 전공을 세워 식읍을 받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들린다.

창읍왕을 낳은 이부인 역시 한낱 가객에 지나지 않은 이언년의 누이였고, 후궁의 출신이야 미천할 수 있다지만 그의 형제인 이광리가 장군에 임명되어 원정을 떠난 예도 그렇다.

심지어 평양공주는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 해도 자기 집안의 노비 출신이었던 위청과 재혼하기까지 한다.

공고한 신분제가 아직 뿌리를 내리기 전인 고대 사회라 가능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일부종사라는 미명하에 과부의 재혼을 막은 성리학의 교조주의는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시켰는가.

무제는 유교 경전을 국교화 시킬 정도의 확고한 유학인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주술적인 신비주의가 같이 있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어쩌면 이제 막 유학이 자리잡는 고대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봉선 같은 제천 의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유학과 신비주의의 습합을 통해 나온 현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고의 변으로 첫째 황후인 진아교와 둘째 황후인 위자부와 여태자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가능했으리라.

오늘날 우리가 단순히 주술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목숨을 좌지우지 했던 것이다.

확실히 고대인은 현대인과 다른 정신 세계를 가진 것 같다.

중국 역사에 혁혁한 발자취를 남긴 영웅적 군주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이었다.

번역자의 각주도 아주 꼼꼼하다.


<오류>

곽광은 형 곽거병보다는 외숙부인 위청을 닮아 독실하고 중후한 인품의 소유자이면서도

-> 위청의 여동생 위소아가 곽중유와 결혼해서 낳은 이가 곽거병이고, 곽광은 곽중유의 다른 처가 낳은 아들이므로 위청의 친조카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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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의 반역 - 광해군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
계승범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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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중종의 시대를 재밌게 읽어 이번 책도 기대를 했고 제목도 흥미롭다.

<모후의 반역>이라고 하니, 막연히 아들의 권력을 탐한 대비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인수대비나 문정왕후, 정순왕후 같은 수렴청정 했던 대비들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광해군 시대의 인목대비 폐위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목도 인상적으로 잘 지었고 표지도 눈에 확 띈다.

내용은 꼼꼼하게 사료를 인용한 덕에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지루한 면도 있으나 광해군 시대와 17세기를 기점으로 주자학 일변도로 변하게 된 효치국가 조선에 관한 흥미로운 저작이라 생각한다.

좋은 역사서는 단순히 사료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자료는 위키백과만 봐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이 갖는 시대적 의미와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해석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교양서들이 많이 발간되면 좋겠다.


광해군 시대라고 하면 책에 나온 바대로 중립외교를 잘 했으나 사대주의자들에게 쫓겨난 불행한 왕이라는 평가와, 근래 들어서는 토목공사 등으로 민생이 파탄되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양립한다.

저자는 반정의 중요한 명분이었던 대비 폐위에 집중한다.

보통 대북 세력의 전횡으로 폐모살제를 강행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정국을 주도한 이는 광해군임을 밝힌다.

조선시대 왕이라는 존재가 신하들에게 끌려다니는 무력한 군주는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불행을 맞아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광해군이 세자위에 오른 후 분조를 이끈 경험은 부왕 선조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나라 내부 사정 때문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은 무려 다섯 번이라 거절된다.

태종처럼 과감성 있게 신하들을 휘어잡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광해군은 16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가슴 졸이며 아버지의 냉대를 참았고 드디어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추숭 문제는 비단 광해군 뿐 아니라 여러 왕들에게서 보였던 행태 같다.

성종도 아버지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숭했고 훗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도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숭했다.

멀리 명나라에서도 가정제가 아버리 흥왕을 황제로 추숭하기 위해 신하들과 격론을 벌였고 다들 승리했다.

그런 의미에서 후궁인 어머니를 공성왕후로 추숭하기 위한 광해군의 노력이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정통성이 워낙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다만 전후 사회 안정을 시켜야 할 때이고 더군다나 후금의 흥기로 국제 정세도 불안정할 때에 무리한 궁궐 건축과 더불어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인 점은 결국 정권 찬탈로 귀결되고 만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고 보면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둔 영조가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즉위해 무신란을 평정하면서 신하들을 압도하고 52년간 재위한 것은 영조 자신의 놀라운 정치력 덕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도 물론 안정적이었지만 말이다.

유교 국가, 더군다나 교조주의적 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에서 반역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모후를 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하다.

광해군의 극심한 컴플렉스가 아니었다면 무리하게 서궁에 유폐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폐위 시도가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부르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충의 개념으로 사적인 의리를 얼마든지 폐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에 반역한다면 사적인 혈육의 의리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선에서 신성시했던 주자도 충을 먼저 내세웠다.

광해군이 폐위된 후 명나라를 배신한 것을 응징하겠다던 인조는 오히려 청에 신속하는 바람에 반정의 주된 명분은 불효한 것이 되버렸다.

조선은 이제 진정한 효치국가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충이라는 공적 개념 보다 붕당이라는 사적 의리를 우선시 하게 된 배경으로 본다.

조선은 진정한 국민국가로 재탄생하지 못한 셈이다.

숙종과 영정조 시대의 왕권 강화는 단순히 왕이라는 존재감만으로는 안 되고, 사부, 즉 왕이 신하들을 압도하는 지식까지 갖추어야 가능했다고 본다.

이런 관점이 신선하다.

그러니 정조 이후 어린 왕의 즉위는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이 전횡하는 세도정치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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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yox 2021-07-1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독자는 아니신듯.. 지식과 앎의 깊이가.. 상당한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아직 못 읽었습니다만.
저자의 전작들을 좀 읽어서 기대되는 바인데..
너무 자세하게 평을 하셔서 ㅠㅜ..
저같은 사람이 진짜 평범한 독자같은데..
 
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그리고 그 후
임근혜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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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온 초판을 읽으면서 영국의 새로운 미술가 집단 yBa 에 대해 알게 됐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때는 개념도 생소하고 처음 듣는 미술가들이라 꽤 힘들게 읽었던 듯한데 벌써 몇 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많이 접한 덕분에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쉽게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표지 디자인도 산뜻하고 책 내용도 어렵지 않고 도판도 충분히 많아 영국 현대미술을 편한 마음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어느새 데미언 허스트는 세계 최고의 작품값을 받는 예술가가 되어 있다.

현대미술에 별다른 식견이나 취향은 없지만 상어를 방부제에 넣어 전시한다거나 두개골을 다이아몬드로 장식하는 등의 죽음에 관한 그의 성찰은 인상적이다.

영국 현대미술의 특장점은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 같은 현대미술을, 대중문화처럼 쉽게 접할 수 있게 다가갔다는 점일 것이다.

터너상을 TV 로 생중계 해주다니, 놀랍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 수준으로 예술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불안감이 있을 것 같다.

60년대 미국의 팝아트 느낌이랄까?

복제가 예술이 되는 사고의 전환이 신선하면서도 결국은 키치처럼 느껴진다.

다른 얘기지만, 어제 읽은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이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목적으로 전달하는 질적 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역시 현대 예술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다.


<인상깊은 구절>

130p

이처럼 미술계와 연예계에 걸친 광범위한 인맥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미술을 알리는 것이 조플링이 견지하는 대중주의 전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존하는 불확실한 현대미술시장에서 그나마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지표가 바로 '대중적 인지도' 또는 '작가의 명성'이기 때문이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국민 가수 엘턴 존의 소장품'이라는 말 한마디가 평론가가 공들여 쓴 책 한 권 보다 훨씬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 아닌가.

514p

어느 사회건 '창조적 소수자'들이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제적 여건이 좋아져 대형 미술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미술시장에 돈이 넘쳐난다고 해도 남다른 예술적 성취는 불가능하다. yBa 라 불리는 작가들이 없었다면 영국의 공공미술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졌을테고, 대형 미술관에는 유럽 대가들이 명작전으로 일색을 이뤘을 것이며, 화랑에는 여전히 잘나가는 뉴욕 미술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아류가 판쳤을테니 말이다.

 예술의 특권이자 의무인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민주적인 환경 즉, 벽이 없는 교육과 차이를 끌어안는 관대함이야 말로 우리가 "21세기는 창조산업의 시대"라는 구호를 외치기 이전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오류>

324p

찰스 2세의 초대로 영국을 방문한 페레트 파울 루벤스가 런던에 머무르며

-> 찰스 2세가 아니라 찰스 1세 때 영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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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 -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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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를 무신론자로 이끈 분, 내 인생의 가치관 변화에 꽤 영향을 끼친 분이라 가급적 저작들을 읽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렵다!

내 과학 수준의 한계인가, 상세한 설명들은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일단 지루하다.

당위적으로 적응을 위한 자연선택과 점진적 진화가 "진리"임은 알겠는데 상세한 논증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나름 생화학을 전공했는데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약간의 절망감이 들면서도 과학과 대중의 괴리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므로 이 차이를 잘 메꾸는 것이 과학 저술가들의 역할인 것 같기도 하다.

도킨스는 명성있는 과학자답게, 대중에게 흥미를 끈다는 미명하에 과학을 우스꽝스럽고 가벼운 것으로 희화화 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수준있는 문학연구가 대중들에게는 겨우 드라마 캐릭터 분석으로 전락한 세태가 과학 대중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과학 저술에도 노벨 문학상이 수여되길 바란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도킨스는 과학이 문학과 다름없는 예술적 위대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과학의 이미지는 일종의 실용주의적 기술 같은 느낌인데, 생명의 탄생과 같은 진리를 찾는 열망은 반드시 실용적 이익이 없다 할지라도 예술처럼 그 자체로서 훌륭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단순한 방법론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를 알아내는 탐험의 과정인 것 같다.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이라는 책 제목처럼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예술처럼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궁극의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가치관이나 신념, 민족이나 종교 등에 의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이므로 과학이 종교를 대신한 도덕적 원칙이 될 가능성에 대한 시사도 신선했다.

도덕적 진보는 종교가 아닌 현실 그 자체를 연구하는 과학을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인권의 진전, 상호협력주의, 평등의식, 생명존중 등이 과연 종교를 통해 이룬 것인가?

세속적인 국가일수록 양성평등과 개인의 자유, 복지 등에 훨씬 더 앞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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